분류 전체보기87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8)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제 나폴레옹과 그의 그랑다르메 본진이 슈바르첸베르크의 보헤미아 방면군보다 먼저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리며 내렸던 라이프치히로의 진격 명령을 기다렸다는듯이 모조리 취소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라이프치히로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분명했고, 블뤼허조차도 그걸 고집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프치히로 가지 않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치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산된 상태인 슐레지엔 방면군과 북부 방면군을 보헤미아 방면군이 합류하기 전에 각개격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이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나폴레옹에게 덜미를 잡힐 .. 2025. 3. 3.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3) - 전열함의 시대 원래 전통적인 유럽식 해전은 전열함(ship of the line)들끼리의 싸움. 나폴레옹 전쟁 이전부터, 최소한 2열의 포갑판에 74문 정도의 대포를 장착한 거구의 전열함들이 마치 보병 대오를 이루듯 전열을 짜고 상대 함대와 대포질을 해대다, 결국 칼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 수병들이 적함에 널빤지(board)를 대고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이는 것으로 끝남. 이렇게 적함에 뛰어드는 전투원들을 boarding party, 즉 승선조라고 불렀음.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넬슨의 기함 HMS Victory.) 그런데 그 시절에도 해군에는 프리깃(frigate) 함들이 있었음. 전열함들과는 달리 그냥 1열의 포갑판만 갖추고 40문 정도의 대포를 갖춘 프리깃들은 전열함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서 속도가 빨랐고 주로 정.. 2025. 2. 2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7) - 상남자들의 포옹 혐오스러운 프랑스인 베르나도트와의 회담에서 그나이제나우 본인은 핑계를 대고 쏙 빠졌지만 누가 뭐래도 프로이센측의 두뇌는 블뤼허가 아니라 그나이제나우였습니다. 따라서 그나이제나우는 이 회담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히 적은 협상 가이드를 통역 역할로 동석한 뮈플링에게 주었지만, 블루허를 통해 베르나도트에게 전달될 요구 사항들은 뮈플링이 보기에도사실상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요구 사항의 핵심은 베르나도트가 블뤼허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당장 라이프치히로 달려가자는 것이었는데, 프로이센 사람들이 보기에 겁장이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베르나도트가 그런 대담한 계획에 동의할 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Frères d'armes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전우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필연적으로, H.. 2025. 2. 24.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2) - 달빛 해전 결국 이런 비극적 사고로 인해, 이후 당분간은 이런 위험한 야간 요격 작전은 실시하지 않게 됨. 나폴레옹도 야간 전투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었다고 하는데, 가만 보면 역사적으로 강대국 지휘관들은 모두 야간 전투를 싫어하고, 약한 측이 언제나 야습을 선호함. 이유는 간단.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행성 동물로서 시각에 의존하는 바가 매우 크고, 그래서 야간 전투란 필연적으로 극심한 혼란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 혼란 속에서는 통제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기 마련이고, 통제가 안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음. 즉, 낮에 싸우면 여유있게 승리를 거뒀을 쪽이 밤에는 까딱 잘못하면 지거나 이거더라도 피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강대국 군대에서는 굳이 야간 전투를 선호하.. 2025. 2. 2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6) -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마르몽의 기대와는 달리, 거기에 쓰인 나폴레옹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자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네. 적군의 동향에 대한 정보나 보내게." 나름 자신의 나폴레옹의 심복이라고 여기고 있던 마르몽은 나폴레옹의 이런 홀대에 격노했고,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네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여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 북동쪽의 타우차(Taucha)로 이동했습니다. 이렇게 이동을 하더라도, 멀더 강변의 아일렌부르크처럼 다리가 있는 곳에는 1개 대대 정도의 병력을 수비대로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통이 난 마르몽은 '뭐 따로 명시적인 명령은 없었으니까'라는 식으로 정말 단 한 명의 병사도 남겨두지 않고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남쪽 타우차로 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그 일대까지.. 2025. 2. 17.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 - 용감한 늙은 조종사는... 1943년 11월, 타라와와 마킨 섬 점령 작전 때 미해군 항모들은 일본 해군 폭격기들의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렸음. 그러나 신형 SM 레이더의 정확한 유도를 받은 F6F Hellcat 전투기들이 내습하는 일본 폭격기들을 모조리 사냥.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낮의 경우. 밤에 날아오는 일본 폭격기들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응 수단이 없었음. 당시에도 이미 공대공 레이더를 장착한 야간 전투기가 활약 중이었지만, 레이더를 장착하고 그 레이더 운용병을 태워야 했던 당시 야간 전투기들은 예외없이 모조리 쌍발 전투기 혹은 쌍발 전투기로 개조한 폭격기. (사진은 미육군 최초의 야간 전투기로 설계 제조된 Northrop P-61 Black Widow. 1943년 10월에 최초로 공장에서 출고되었고, 취역한 것은 .. 2025. 2. 1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5) - 원수들의 불화 먼저 블뤼허의 관점에서 전황을 살펴 보겠습니다. 블뤼허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이 즉각 남쪽의 바트 뒤벤(Bad Düben)으로 진격하여 네의 병력을 밀어내고 10월 6일까지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뒤, 거기서 하루 이틀 뒤에 뒤따라 올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과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나폴레옹이 대군을 이끌고 달려와 블뤼허와 베르나도트가 합류하기 전에 블뤼허를 박살낼 위험성도 있었지만, 드레스덴 인근의 연합군이 10월 3일에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분명히 드레스덴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 것입니다. 원래는 베르나도트와의 합류 지점은 라이프치히가 아니라 바트 뒤벤에서 합류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소극적인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릴 것이 뻔하다고 생.. 2025. 2. 10. WW2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이야기 (1) - 밤에 가면 되지! 1943년 중반 이후 cavity magnetron을 이용한 SM radar까지 도입되면서 미해군 항모전단의 대공 방어 태세는 더욱 공고해짐. 어지간한 공습은 한참 전부터 미리 파악이 가능했고, SM 레이더는 내습하는 적편대의 대수와 함께 이들이 몇 단계 고도로 나누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까지도 모조리 탐지 가능했음. 덕분에 어지간해서는 장비에 만족할 줄을 몰랐던 함장들도 보고서에 SM radar를 이용한 전투기 관제는 매우 효율적이라고 다들 적었을 정도. (이 사진은 Essex급 정규항모로 새로 건조된 USS Lexington (CV-16)의 CIC의 높은 의자에 앉은 Fighter Director Officer Allan F. Fleming 중령의 모습. 대략 1943년 11월 Gilbert 제.. 2025. 2. 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4) - 나폴레옹의 무기를 빼앗다 1813년 10월 초, 나폴레옹과 연합군의 대치 상태에서 분명히 전체 병력수는 연합군에게 유리했습니다. 연합군은 러시아에서 새로 편성되어 보헤미아 일대에 도착한 폴란드 방면군을 포함하면 약 32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약 22만의 병력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실질적으로 제갈공명도 극복하기 어려운 전력 차이였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어느 한쪽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에서 벌어진 전투는 찾기 힘듭니다. 이유는 그렇게 병력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약한 쪽이 전투를 회피하고 후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후퇴를 하다 보면 추격하는 측의 병력은 점령지 여기저기 수비군을 남기느라 병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계속 되다보면 결국 약한 쪽에게도 기회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1812년 .. 2025. 2. 3. 새로운 레이더, 새로운 항모 (2) - 함교냐 CIC냐 해군은 해군대로, 육군은 육군대로 자기들이 가장 많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는데 (한편 공군은 지들이 편하게 지낸다는 거 스스로 인지하는 것 같음), 육군의 어려움 중 하나는 최전선에서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조명을 마음대로 켜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분명히 장교 및 부사관은 한밤중에라도 상황판에 숫자나 그림을 그려가며 작전 회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음. 그러던 중 영국 육군 누군가가 plexiglass의 가장자리에 자외선을 비추면 그 위에 색연필(grease pencil)로 써놓은 글자가 어둠 속에서 빛난다는 것을 발견. (색연필을 grease pencil이라고 하는데, 보통 china marker 또는 chinagraph pencil라고도 부름. 이유는 중국에서 발명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자기.. 2025. 1. 30. 영국의 전략 자원 - 노르웨이의 숲 ** 개인 사정으로 오늘은 과거 글을 재탕합니다. 죄송합니다.제가 처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상실의 시대" 또는 "노르웨이의 숲"이었습니다. 대체 이 난봉꾼 주인공의 문란한 성생활을 그린 소설 내용과 노르웨이의 숲과는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의아해하셨을 겁니다. 그 소설 제목의 원천이 되었던, 비틀즈의 동명곡의 가사에서도 Norwegian wood, 즉 노르웨이산 나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느냐에서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속에서 이를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해석했는데, 가사 내용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노르웨이산 가구'라고 번역해야 하는데, 하루키가 잘 모르고, 혹은 일부러 오역을 했다고도 합니다. 원래의 뜻은 정말.. 2025. 1. 27. 새로운 레이더, 새로운 항모 (1) - WW2의 플렉시글라스 언제든 사고로 인해 강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자동차의 창문은 안전을 위해 특수 유리로 만들어짐. 앞창문, 그러니까 윈드쉴드는 두 장의 판유리 사이에 인장강도가 좋은 합성수지 필름을 집어넣고 접합한 것을 쓰고 옆창문과 뒷유리는 특수 열처리를 통해 강도를 높이고 깨질 때도 날카로운 파편이 튀지 않도록 만든 것을 쓰는 것이 보통. 그런데 WW2 당시의 군용기에는 어떤 유리가 사용되었을까? 폭격기든 전투기든 수송기든 언제든 불시착 또는 기총소사, 대공포 등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므로 그 유리를 일반 유리를 쓰면 곤란. (저게 다 유리라면... 적 전투기로부터 기총소사 한 번 받으면 진짜 슬픈 일이 많이 벌어질 듯.) 흔히 플라스틱은 WW2 이후에야 대량 생산되었다고 오해하기 쉬움. 이유는 보병들의 소.. 2025. 1. 23. 이전 1 2 3 4 5 6 7 ··· 7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