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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7) - 전쟁의 안개 나폴레옹의 기습을 피해 할러로 피신했던 블뤼허에게는 3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베르나도트, 전쟁의 안개, 그리고 탄약이었습니다. 첫째, 원래부터 베르나도트는 블뤼허와 그의 프로이센 장군들에게는 나폴레옹보다 더 얄밉고 믿을 수 없는 얌체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블뤼허는 잘러강을 건너 할러로 후퇴를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베르나도트를 자신보다 더 먼저 남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려 애썼습니다. 베르나도트에게 내세운 핑계는 나폴레옹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이 방패 역할을 할 테니 베르나토트의 북부 방면군은 안전하게 먼저 남쪽으로 가시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가 블뤼허보다 용기 측면에서 좀 떨어질지는 몰라도 지능은 훨씬 뛰어났습니다. 블뤼허의 속셈은 자신이 .. 2025. 5. 12.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6) - 나폴레옹의 변덕 나폴레옹이 빋은 편지는 바로 전날인 10월 11일 뮈라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10일에 보르나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러시아군을 무찌르고 전선을 확보했다던 뮈라는 불과 하룻만에 전혀 다른 소식을 전했습니다. 슈바르첸베르크가 후퇴하는 듯 하더니 오히려 더 증강된 병력을 내세워 전진하고 있으며, 중과부적으로 자신은 이미 라이프치히 외곽인 크뢰번(Cröbern)까지 후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건 뷔르첸까지 진격했을 때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불과 5만 정도의 병력을 가진 뮈라가 몇 배의 병력을 거느린 슈바르첸베르크의 북진을 언제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나폴레옹은 이미 전군을 작센에서 빼내 엘베강 우안으로 건너가 식량이 풍부한 브란덴부르크에서 작전을 펼치기로 모든 계획.. 2025. 4. 28.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5) - 집착이 모든 것을 망친다 전장을 작센에서 브란덴부르크로 옮겨버리기 위해 엘베강 우안으로 건너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나폴레옹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정보였습니다. 일단 블뤼허건 베르나도트건 대체 적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공격을 하든 말든 할텐데, 그들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했습니다. 더욱 혼란스럽게도, 사방으로 풀어놓은 척후들과 간첩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첩보를 종합해본 결과로는, 블뤼허는 강을 건넜던 교두보인 바르텐부르크가 아니라 베르나도트의 교두고가 있는 데사우로 간 것 같았습니다. 특히 모크레나에서 용하게 후퇴했던 자켄도 데사우에서 블뤼허의 본대와 합류했다는 소식도 들어왔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블뤼허가 바우첸에서 바르텐부르크까지 5일간이나 북서쪽으로 강행군한 이유는.. 2025. 4. 2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4) - 브란덴부르크로 간다 바트 뒤벤 성(Schloss Schnaditz, 또는 Bad Düben Schloss)에 도착한 나폴레옹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남부 전선에서 보헤미아 방면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던 뮈라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보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군이 페니히(Penig)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비트겐슈타인이 이끄는 러시아군 약 2만5천이 알텐부르크와 자이츠(Zeitz) 사이를 통해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페니히와 자이츠를 잇는 거리는 약 48km로서, 원래 나폴레옹이 뮈라에게 지키라고 지시했던 보르나(Boran)부터 로슐리츠(Rochlitz) 사이의 약 30km 전선보다 훨씬 긴 거리였습니다.  뜻하는 바는 뮈라는 보르나-로슐리츠 전선을 지킬 수 없을 것이므로 결국 라이프치히로 후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 2025. 4. 1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3) - 보고서를 닥달하는 이유 10월 9일 오전 나폴레옹이 블뤼허를 잡겠다고 멀더강을 따라 바트 뒤벤으로 밀고 올라가는 동안, 랑쥬롱의 러시아 군단과 함께 바트 뒤벤에 있던 블뤼허는 휘하 각 군단들에게 라이프치히로의 진격을 취소한다는 명령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블뤼허에게 들어온 여러 첩모에 따르면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로 직행하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후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9일 오후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그랑다르메 병력이 멀더강 좌우 강변을 따라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날아온 보고서는 그 날 아침 7시경 아일렌부르크 동쪽의 모크레나(Mockrehna)에 있던 자켄(Fabian Gottlieb von der Osten-Sacken) 장군이 보낸 것이었는데, 그때만.. 2025. 4. 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2) - 나폴레옹 버프는 없다 10월 7일 오전, 마이센으로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 벤너비츠(Bennewitz)에서 보내온 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당장이라도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 같아 보이던 블뤼허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멀더강의 우안에 멈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먼저 엘베 강변의 프랑스군 요새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포위 공격을 마무리하여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뒤에 움직이려는 것 같다는 네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네는 결단성과 용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자였으나 결코 지략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네의 추측성 보고를 나폴레옹이 100% 믿었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때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보고만 골라서 믿.. 2025. 3. 3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1) - 전진과 철수 나폴레옹에게는 블뤼허와 베르나도트를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괴멸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전투에서 이들을 패배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번에도 이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당장 라이프치히로 무작정 달려가기 보다는, 먼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뒤 먼저 엘스터와 데사우의 다리들, 즉 블뤼허와 베르나도트의 탈출로부터 끊기로 합니다.  이건 너무 낙관적으로 승리를 자신하는 행위 아니었을까요?  나폴레옹은 블뤼허-베르나도트와의 결전에서 패배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1차적인 계획은 먼저 마이센으로 간 뒤, 거기서 정보를 더 획득하여 그에 따라 토르가우로 갈지 뷔르첸으로 갈지 정한다는 것이었.. 2025. 3. 2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0) - 나폴레옹의 산수 동쪽 바우첸 일대에서 대치 중이던 블뤼허가 난데 없이 전군을 이끌고 북쪽 바르텐부르크에 나타났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뻔했습니다.  바로 베르나도트와 합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제 막 남쪽 보헤미아 방면군이 얼츠거비어거 산맥을 넘어 켐니츠 남서쪽 방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 할 나위 없이 분명했습니다.  연합군은 남쪽과 북쪽에서 일제히 움직여 라이프치히에서 합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연합군의 3개 방면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고, 나폴레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의도를 파악하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앞이 보이지 않던 외통수에서 벗어날 기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27일 .. 2025. 3. 1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8)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제 나폴레옹과 그의 그랑다르메 본진이 슈바르첸베르크의 보헤미아 방면군보다 먼저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리며 내렸던 라이프치히로의 진격 명령을 기다렸다는듯이 모조리 취소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라이프치히로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분명했고, 블뤼허조차도 그걸 고집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프치히로 가지 않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치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산된 상태인 슐레지엔 방면군과 북부 방면군을 보헤미아 방면군이 합류하기 전에 각개격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이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나폴레옹에게 덜미를 잡힐 .. 2025. 3. 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7) - 상남자들의 포옹 혐오스러운 프랑스인 베르나도트와의 회담에서 그나이제나우 본인은 핑계를 대고 쏙 빠졌지만 누가 뭐래도 프로이센측의 두뇌는 블뤼허가 아니라 그나이제나우였습니다.  따라서 그나이제나우는 이 회담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히 적은 협상 가이드를 통역 역할로 동석한 뮈플링에게 주었지만, 블루허를 통해 베르나도트에게 전달될 요구 사항들은 뮈플링이 보기에도사실상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요구 사항의 핵심은 베르나도트가 블뤼허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당장 라이프치히로 달려가자는 것이었는데, 프로이센 사람들이 보기에 겁장이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베르나도트가 그런 대담한 계획에 동의할 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Frères d'armes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전우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필연적으로, H.. 2025. 2. 2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6) -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마르몽의 기대와는 달리, 거기에 쓰인 나폴레옹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자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네.  적군의 동향에 대한 정보나 보내게."  나름 자신의 나폴레옹의 심복이라고 여기고 있던 마르몽은 나폴레옹의 이런 홀대에 격노했고,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네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여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 북동쪽의 타우차(Taucha)로 이동했습니다.  이렇게 이동을 하더라도, 멀더 강변의 아일렌부르크처럼 다리가 있는 곳에는 1개 대대 정도의 병력을 수비대로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통이 난 마르몽은 '뭐 따로 명시적인 명령은 없었으니까'라는 식으로 정말 단 한 명의 병사도 남겨두지 않고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남쪽 타우차로 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그 일대까지.. 2025.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