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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158

"우리 쿠투조프가 달라졌어요" - 양배추 수프와 반란의 씨앗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가 제각각 번뇌에 사로 잡혀 있는 동안 전쟁의 피해는 러시아 농노들이 그대로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러시아 농노들을 보호해줘야 할 러시아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전에 보신 것처럼 쿠투조프는 모스크바 성벽의 서문을 통해 입성하여 동문을 통해 빠져나간 뒤, 남동쪽으로 뻗은 리아잔(Ryazan) 대로를 따라 그대로 약 100km의 거리를 직진했습니다. 아마 3일 정도 행군했을 것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어, 쿠투조프에겐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모스크바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모스크바(Moskva) 강은 리아잔 대로와 거의 평행으로 남동쪽으로 흘렀는데, 이 모스크바 강은 콜롬나(Kolomna) 인근에서 리아잔 대로를 관통하게 됩니다. 쿠투조.. 2021. 2. 22.
농노를 위한 나라는 없다 - 1812년 프랑스군 후방에서의 게릴라전 몽골 침공 이래 가장 중대한 국난인 나폴레옹의 침공을 맞은 이후, 농노들을 자체 무장시켜 전쟁에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러시아 지배층 사이에서 논쟁이 꽤 많았습니다. 성스러운 러시아 수호를 위해 당연히 농노들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지도자 뿐이니 귀족인 장원주들이 앞장 서서 농노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낭만파도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침공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러시아 귀족들은 모두 스페인에서 스페인 민중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부르봉 왕가를 지지하며 프랑스 침략자들에 맞서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1809년 오스트리아 주동으로 제5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졌던 원인도 스페인에서 프랑스가 고전하는 것을 보고 합스부르크 왕가가 자신감을 얻은 것이 컸지요. 러시아 .. 2021. 2. 15.
애국과 반란 사이에서 - 1812년 러시아 농노들과 프랑스군 전두환의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시절, 혹시 일본군이 쳐들어 온다면 여러분은 독재정권을 타도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일본군에게 협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누가 뭐래도 외적을 몰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일본군과 싸우시겠습니까? 다소 황당한 설정입니다만,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은 러시아의 농노들이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쿠투조프의 후퇴 소식을 접한 알렉산드르가 이런 패배를 접한 러시아 귀족들의 동태에 대해 묻자 '제가 그 일원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정도로 강직했던 젊은 귀족 볼콘스키(Sergei Volkonsky) 대공은 알렉산드르가 농민들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 그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 하셔도 됩니다. 모든 농노들이.. 2021. 2. 8.
편지와 성경 - 짜르는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보지요. 쿠투조프가 마치 모스크바를 사수하려는 것처럼 쇼를 하느라 모스크바 외곽에서 병사들에게 삽질을 시키고 있던 9월 11일, 저 멀리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는 시내 모든 성당의 종과 포병대의 축포가 울렸고 온갖 건물들에 있는 대로 조명을 밝히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가 끝난 날 새벽, 쿠투조프가 '보로디노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렀다'라고 주장한 보고서가 알렉산드르에게 도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전체가 난리가 나서 위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크게 기뻐한 알렉산드르는 이 승리에 숟가락을 얹고자, 자신이 고안한 '나폴레옹을 꺾을 추가 작전안'을 담은 편지를 체르니셰프(Chernyshev) 대령에게 들려 쿠투.. 2021. 2. 1.
착각과 현실 - "승리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나폴레옹은 누가 뭐래도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랍(Rapp) 장군은 이때 나폴레옹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라인 강과 모스크바 사이에 어느 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병사 하나하나를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충성심 때문에 과장으로 부풀려진 것이 분명한 평가였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네만 강을 건너기 전에, 그의 60만 대군의 모든 연대들과 그 대령급 지휘관들을 모두 기억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대화재라는 뜻하지 않은 참변 속에서도 그의 명석한 두뇌는 쉴 사이 없이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했으며, 그의 계산에 따르면 그의 그랑다르메가 모스크바에 눌러앉아 겨울을 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비록 대화재가 많은 것을 파괴하긴 했지만, 모스크바의 창고에는 그의 대군이 적어도.. 2021. 1. 25.
나폴레옹과 주석 단추 - 도시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최근에 어떤 책 광고에서 재미있는 삽화를 본 김에 이번 주는 잠시 쉬어가는 잡담 코너로 꾸밉니다. 그 삽화는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프랑스군 병사들의 외투 단추는 주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석은 극심한 추위 속에서는 화학적 성격이 변하여 가루로 부서지기 때문에, 1812년 러시아의 추위 속에서 군복 단추가 다 떨어져 나간 병사들이 옷을 여미지 못해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이 망한 이유가 주석 단추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전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한글 검색만 해봐도 그런 이야기를 다룬 포스팅이 많습니다. 실제로 주석에는 특이한 성질이 있습니다. 금속이 결정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많겠습니다만, 철이건 구리건 금속은 상온에서 각각 .. 2021. 1. 18.
복덕방의 호구 - 조급한 나폴레옹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던 나폴레옹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알렉산드르와 평화 조약을 맺고 파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모스크바까지 점령한 것인데, 러시아인들이 모스크바에 불까지 지르고 도망친 것을 보면 도저히 평화 조약을 맺으려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흥정은 해봐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쪽이 흥정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저쪽에 알려야 거래가 이루어질텐데, 그걸 저쪽에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부른 사람이 투톨민(Ivan Akinfevich Tutolmin)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장이었습니다. 투톨민은 원래 러시아군에서 장군까지 지내다가 퇴역한 노인이었는데, 모스크바 시내의 대형 고아원 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원아들을 내버릴 수가 없어.. 2021. 1. 11.
상트 페체르부르그를 향하여 ? - 고민 속의 나폴레옹 모스크바로 돌아온 나폴레옹이 구상한 기본 방향은 다음 목표를 찾아 전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바로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러시아의 공식 수도 상트 페체르부르그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랑다르메의 주력 군단들은 모스크바에 그대로 두고, 외젠의 제4 군단만 차출하여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진격할 생각이었습니다. 주력 군단들을 모스크바에 주둔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외젠의 군단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되었고, 둘째, 남쪽으로 후퇴한 쿠투조프의 러시아 야전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정확하게는 모스크바의 보급품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상트 페체르부르그는 군사적 방비가 든든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의 쓸만한 병력은 모두 쿠투조프의 휘하에 있었으므로, 상트 페체르부르그와 나.. 2021. 1. 4.
Now what ? - 잿더미 속에서 나폴레옹이 위대한 군사 지도자가 된 이유는 대포를 기가 막히게 잘 쏘았기 때문도 아니었고, 전에 없던 신박한 보병 전술을 개발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승리를 위해 꺾어야 할 목표를 명확하게 선정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놀라운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적의 도시를 함락시키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항상 적의 주력 부대를 신속하게 격파하는 것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목표는 적 주력 부대의 병사들을 많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의 전투 역량과 의지를 꺾는 것이었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 위험을 떠안고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출세 계기였던 툴롱(Toulon) 포위전이었습니다. 1793년 툴롱.. 2020. 12. 28.
1812년 모스크바 대화재 (2) - 희극과 비극 9월 15일 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 곳곳에서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시내 가옥의 2/3 정도가 빈 도시에서 병사들에 의해서든 부랑자들에 의해서든 약탈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약탈을 하다보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만 시내 주택들의 상당수가 목재로 지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우려하면서 그가 이미 모스크바 주지사로 임명했던 모르티에 원수에게 불을 끄고 방화범들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당황스럽게도 소방 펌프차를 한 대도 구할 수 없었던 병사들은 불을 끌 수는 없었지만 방화범들은 쉽게 잡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부랑자들인지 로스톱친의 부하들인지 정체는 불분명했지만, 이런 방화범들은 즉석에서 총살에 처해졌습니다. 나.. 2020. 12. 21.
1812 모스크바 대화재 (1) - 방화? 실화? 또는 필연 모스크바 주지사인 로스톱친은 러시아군이 나폴레옹을 간단히 무찌를 것이라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이미 여러번에 걸쳐 '만에 하나라도' 프랑스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한다면 그들은 잿더미 이외에 아무 것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모스크바를 사수하겠다는 쿠투조프의 약속을 애초부터 로스톱친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9월 13일 저녁에 쿠투조프로부터 모스크바를 포기한다는 공식 통보를 받기 전부터, 로스톱친은 시내에 불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화 펌프를 모두 시내에서 철수시키고 인화물을 곡물과 의류, 가죽 등의 상품을 저장한 창고 주변에 가져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준비와 실행을 모스크바 경찰 국장인 보로넨코(Voronenko)에게 지시하면서,.. 2020. 12. 14.
텅빈 거리의 군악대 -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입성 그랑다르메 본대가 모스크바를 내려다 볼 수 있는 포클로나이아(Poklonnaia) 언덕에 올라선 것은 다음날인 1812년 9월 14일 오후였습니다. 근위대 소속의 부르고뉴(Adrien Jean-Baptiste François Bourgogne) 하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 언덕 정상에 오른 병사들은 모두 흥분하여 아직 고개 아래에 있는 동료들에게 "모스꾸, 모스꾸 (Moscou, 모스크바의 프랑스어 표기)"를 외쳤습니다. 그 소리에 모든 병사들은 서둘러 정상에 올라 저 멀리 모스크바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부르고뉴 하사는 이 순간, 여태까지 겪었던 모든 고난과 굶주림, 위험 등은 다 사라져버렸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병사들은 이제 저 곳에서 편안하게 겨울을 날 생각과, 모스크바의 세련된 여인들과 사랑(?)을 .. 2020.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