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874 라이프치히 전투 (6) - 나폴레옹의 믿는 구석 마르몽은 자기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는 나폴레옹에 대해 너무나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린덴탈 현장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마르몽의 말을 이렇게 철저히 무시하고 남쪽 전선으로 내려오라고 지시하는 것에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라이프치히 일대를 가로질러 흐르는 여러 작은 강들을 이용하여 적의 움직임을 늦추고 그랑다르메는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입니다. 그런 자신감은 나폴레옹이 10월 16일 오전 7시에 베르티에를 거치지 않고 마르몽에게 직접 보낸 편지에서 잘 드러납니다. "적이 할러 방면으로부터 진격해온다는 조짐은 아무 것도 없네. 거기엔 기병 군단 하나뿐일 거야. 자네가 어제 보고서에서 주장한 것처럼 .. 2025. 6. 30.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9) - 왜 둘로 나눴을까? 11월 11일, 타란토 습격을 위해 항모 HMS Illustrious에 대해 내려진 명령을 보면 매우 구체적이라서, 당시 항모 운용의 세부적인 구석까지 들여다 볼 수 있음. 요약하면 아래와 같음. 1) 정해진 출격 해역 'X'에 오후 8시에 도착. (이때는 아직 달이 안 떠서 어두운 상태) 2) 'X' 위치에 도착하면 현지의 풍향에 따라 바람을 향해 달리도록 침로를 변경한 뒤 30노트로 속도를 올림. (어뢰를 달아서 무거운 Swordfish들은 맞바람을 안지 않으면 이함을 못함) 3) 제1차 공격대 12대 날림. 4) 제1차 공격대의 출격이 끝나면 바람 반대방향으로 17노트 속력으로 달려 다시 출발 위치인 'X'로 이동. 5) 오후 9시에 다시 'X' 위치에서 아까와 똑같이 바람을 향해 30노트로 .. 2025. 6. 26. 라이프치히 전투 (5) - 양치기 소년 마르몽 마르몽 앞에 나타난 3명의 사내는 바로 이틀 전인 10월 13일 바로 북쪽의 델리츠쉬(Delitzsch) 근처에서 코삭 기병들에게 포로가 되었던 프랑스군 장교 1명과 공병(sappeurs) 2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아군 초소에 나타나자마자 다급히 보고할 것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마르몽 앞에서 꽤 놀라운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은 할러(Halle)의 슐레지엔 방면군 사령부까지 끌려가서 취조를 받았으며 기회를 틈타 탈출한 것인데, 거기서 주워들은 것에 따르면 당장 내일 아침까지 슐레지엔 방면군 뿐만 아니라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까지 이곳 린덴탈 인근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푀르(sappeur)는 본문에서 공병이라고만 번역했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전투공병 정도로 번역하는.. 2025. 6. 23.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8) - 왜 자꾸 추락해? 타란토 습격이 끝난 뒤 올린 전과에 대해 영국해군 수뇌부는 물론, 처칠 수상도 크게 기뻐함. 공격을 주도했던 지중해 함대 사령관 커닝햄은 아래와 같이 말하여 그 기쁨을 표현. "고작 6시간의 총 비행시간으로, 20대의 함재기가 이탈리아 함대에 입힌 피해는 (WW1 중의) 유틀란트 해전으로 독일 대양함대에 입힌 피해보다 더 컸다." 이렇게만 보면 영국해군은 정말 적은 전력만 동원하여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 같지만 이 'Judgement' 작전을 위해 영국 지중해 함대가 동원한 자원은 엄청나게 많았음. 지난 편에서 소개했듯이 영국 지중해 함대는 타란토 습격을 위해 몇 주에 걸쳐 정말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타란토 항구에 정찰기를 날려 사진을 찍어댔음. 그 정도로 영국 정찰기가 날아들면 이탈리아군이 아무.. 2025. 6. 19. 라이프치히 전투 (4) - 마르몽의 불만 이때 즈음하여 제6군단장 마르몽(Auguste de Marmont) 원수는 나폴레옹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가 상대해야 했던 적장인 블뤼허가 마르몽보다는 그의 형식적 상관인 베르나도트를 더 미워했듯이, 마르몽 또한 블뤼허보다는 그의 애매한 상관인 네(Michel Ney) 원수를 더 미워했습니다. 바르텐부르크 전투 이후 라이프치히 전투에 이를 때까지 마르몽이 나폴레옹에게 보냈던 많은 편지들은 주로 네에 대한 험담을 담고 있었습니다. 마르몽이 그렇게 네에 대한 음해에 열중한 것에는 사실 개인적인 동기가 다분히 많았습니다. 마르몽과 네는 모두 더 이상 올라갈 계급이 없는 원수였지만, 누가 보더라도 네가 더 선임 원수였고 실제로 네는 마르몽처럼 군단 하나를 지휘하기 보다는 여러 군단을 지휘하는 역할.. 2025. 6. 16.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7) - 파괴를 위한 천문학 타란토 항구에 설치된 방공기구들(barrage balloons)을 항공사진으로 확인한 영국해군은 이리저리 궁리해보다 이건 따로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림. 그래서 조종사들 보고 부딪혀 죽으라고? 그건 아니고 살고 싶으면 알아서 피하라는 뜻. 이를 위해서 영국해군 지휘부가 조종사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은 방공기구들이 항구내 어디에 설치되었는지를 상세하게 표시한 지도. 이게 가능했던 것은 역시나 말타섬 영국공군 Martin Maryland 정찰기들 덕분.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뻔질나게 타란토 항구를 드나들며 항공사진을 계속 찍어왔고, 덕분에 소드피쉬 조종사들은 방공기구들의 숫자와 위치가 변하는지를 수시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음. 원래 타란토 항구에는 총 90개의 방공기구가 크게 3열로 .. 2025. 6. 12. 라이프치히 전투 (3) - 두 개의 전선 나폴레옹은 10월 14일 오후와 15일 내내, 포니아토프스키와 뮈라 등을 비롯한 기존 남부 전선 지휘관들과 긴 대화를 나누며 라이프치히 남쪽에 속속 도착하는 보헤미아 방면군의 포진을 살폈습니다. 적군의 포진과 규모를 보면 다음 날인 16일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이 거의 확실해 보였습니다. 나폴레옹으로서는 혹시라도 자신과 맞닥뜨린 보헤미아 방면군이 겁을 집어먹고 후퇴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고, 대체 저 전선 뒤에 어느 정도의 병력이 도착해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명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보헤미아 방면군은 오스트리아 제1군단 약 3만을 제외한 거의 전원, 그러니까 16만이 넘는 병력이 그날 밤중으로 다 전선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나폴레옹도 베니히센이 .. 2025. 6. 9.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6) - 어뢰 방어망을 넘으면 다음은? 1940년 7월 8일 새벽 다카르 항구에 정박한 프랑스 해군 전함 Richelieu를 향해 돌격하던 6기의 Swordfish 뇌격기들은 적도 인근에서는 지구 자기장이 약하기 때문에 자성 신관의 세팅이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없음. 그러나 영국해군은 자성 신관(magnetic pistol)과 충격 신관(contact pistol)을 둘 다 갖춘 듀플렉스 신관(Duplex piston)을 갖추고 있었고, 이 물건이 언제나 확실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음. 새벽의 어둠을 틈타 적 항구를 기습하는 것은 딱 1번 가능한 일이고, 이럴 때 지나친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달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분산 투자가 안전. 그래서 이 6기.. 2025. 6. 5. 라이프치히 전투 (2) - 뮈라의 전초전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전투 전에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라이프치히 주변을 남북과 동서로 어지럽게 가로지르는 플라이서(Pleiße), 바이서 엘스터(Weiße Elster, 하얀 엘스터), 파르터(Parthe)의 세 지류들은 하나하나가 1개 군단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엘베강 같은 커다란 강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이 지류들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대의 이동을 크게 지연시키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를 선점하고 자신의 방어선 안쪽의 다리들을 제외한 그 일대의 다리들을 미리 파괴해 놓으면 연합군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 강들 중 바이서 엘스터가 가장 큰 강이었고 파르터와 .. 2025. 6. 2.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5) - 지구 전체를 필요로 하는 어뢰 WW1 이후 각국 해군은 어뢰와 잠수함이라는 신무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분주하게 연구. 그래서 나온 것이 지난 번에 설명한 어뢰 방어망과 어뢰 방어 벌지(anti-torpedo bulge, 혹은 그냥 torpedo blister) 등등의 것들. 특히 주요 군함들이 어뢰 방어 벌지를 장착하게 되면서, 이 방패를 어떻게 뚫을 것인지에 대해 각국의 어뢰 전문가들이 골머리를 앓게 됨. 특히 WW1에서의 피해가 적어 상대적으로 국력에 여유가 있던 미국에서는 그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여러가지를 테스트. 가령 아직 미완성인 채로 워싱턴 해군 조약에 걸려 1921년 진수만 시킨 채 녹슬고 있던 전함 USS Washington (BB-47, 3만3천톤, 21노트)를 상대로 실제 어뢰를 발사. 그 결과, 약.. 2025. 5. 29. 라이프치히 전투 (1) - 사지(死地)인가 생지(生地)인가? 10월 14일 정오 무렵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 도착하면서 이제 우리는 라이프치히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격적인 전투 시작에 앞서, 왜 나폴레옹은 하필 라이프치히에서 운명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폴레옹하면 우리는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모습을 흔히 연상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폴레옹은 전장으로 이동할 때 마차를 탔습니다. 이는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출신치고는 말 타는 것에 꽤나 미숙한 편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누가 뭐래도 말을 타는 것은 의외로 꽤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바트 뒤벤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나폴레옹이 마차를 타고 35km를 이동하여 라이프치히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는데, 속력을 계산해보면 대략 7km/h로서 완전무장한 병.. 2025. 5. 26.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14) - 세네갈 항구의 소드피쉬 기본적으로 수심이 얕은 항구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전함을 항공 어뢰로 공격하는 전술은 많은 경험을 수 쌓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 훈련을 해도 어디까지나 가상의 적함을 대상으로 그냥 망망대해에서 할 수 밖에 없음. 특히나 전시에는 더욱 그러함. 전시에는 모든 자원이 부족하므로 아군 전함은 나가 싸우기도 바쁨. 아무리 비활성 훈련용 어뢰라고 해도, 전함이 한가하게 아군 항구에 들어앉아 표적 노릇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음. 게다가 항구 자체도 사용할 수 없음. 전시의 군수품 상하역으로 바쁜 항구에서 '뇌격기 훈련하니까 몇시부터 몇시 사이에 선박 통행을 금지한다' 라고 하는 것도 어려움. 그렇게 아무도 경험이 없는 전술을, 실제 상황과는 크게 다른 환경에서 훈련을 한 조종사들에게 시키면서 .. 2025. 5. 22. 이전 1 2 3 4 ··· 7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