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740

드레스덴 전투 (5) -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8월 25일 오후, 알렉산드르와 모로가 즉각 공격을 주장한 것에 대해 슈바르첸베르크는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오스트리아군 상당수가 도착하지 않았고, 드레스덴의 방비 태세도 불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보헤미아 방면군이 드레스덴을 점령하는데, 오스트리아군은 별로 없고 러시아군과 프로이센군만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체면이 구겨질 것을 걱정했던 것도 분명히 반대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여러 국가들의 연합군이란 그래서 어렵습니다. (독일권의 맹주 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프로테스탄트 왕국 프로이센과 가톨릭 제국 오스트리아의 갈등도 첨예했지만, 동방의 제국 러시아와 이름 자체가 동방의 .. 2024. 3. 18.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6) - 미끼 항모 8월 24일 오후 1시 20분, USS Saratoga의 레이더가 무려 150km 밖에서 포착한 대형 항공기 편대는 가만히 보니 사라토가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음. 지난 편에 언급했던 일본해군 '베티' 폭격기는 결국 미해군 항모들을 보지 못했거나 봤어도 무전을 날리지는 못했던 것. 헨더슨 비행장에는 아직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이 공습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 분명. 사라토가에서는 헨더슨 비행장에 공습 경보를 주려고 했으나, 불안한 열대 대기층의 교란으로 인해 무선통신의 치직거림이 너무 심해 교신에 실패. 그러나 헨더슨에서도 완전 무방비로 있지는 않았고, 항상 상공에 4대의 해병대 소속 와일드캣을 CAP(Combat Air Patrol)으로 .. 2024. 3. 14.
드레스덴 전투 (4) - 학부모까지 참석하는 조별 과제 애초에 보헤미아 방면군 사령관 자리는 결코 쉬운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의 자타공인 주력부대인 이 강력한 20만 대군의 지휘권은 상식적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대는 러시아군 수장이 맡는 것이 맞겠으나, 중립으로 있어도 되지만 유럽의 대의를 위해 이 한 몸 던진다는 생색을 내며 참전한 오스트리아에 대한 보상조로 오스트리아 장성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보헤미아 방면군의 지휘권에는 시작부터 러시아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수 밖에 없없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전쟁이란 많은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한 사업인데, 이익이 상충되는 여러 나라가 서로 힘을 합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의 작전이란 마치 학교에서 하는 조별 과제 같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약한 프로이센과 대국 러시아 둘이서 연합군을.. 2024. 3. 11.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5) - 레이더가 좋아한 항공기 열악한 남태평양 과달카날에서 일본군이 버리고 간 활주로를 열심히 다듬은 미해군 공병대는 마침내 8월 20일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한 상태로 개장하고 그 기지 이름을 Henderson Field라고 지음. 일본군이 여기 활주로를 닦고 있다는 것을 안 미군이 화들짝 놀랐던 것과 동일하게, 미군이 곧 활주로를 완성한다는 정보에 일본군도 화들짝. 그래서 일본해군은 최강항모인 쇼가꾸와 즈이가꾸 등 항모 3척과 전함 2척, 순양함 9척과 다수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함대에 상륙할 육군 1500까지 싣고 과달카날로 출동. 일본해군이 항모들을 대거 출동시킨 것은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 따위 때문이 아니라 그 일대에 얼씬대는 것이 분명한 미해군 항모를 잡기 위한 것. 과달카날의 활주로는 꼭 항모를 동원하지 않아도 의외로 잡.. 2024. 3. 7.
드레스덴 전투 (3) - BC 353 vs. AD 1813 기원전 353년 위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제왕이 조나라에 구원군을 보내려 하자, 손빈이 그를 말리면서 위군이 조나라에 몰려가 상대적으로 텅 비어있던 위나라의 도읍 대량을 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당황한 위군은 자신들의 도성을 구하려 조나라에 대한 포위 공격을 풀고 회군했습니다. 이것이 사기에 나오는 위위구조(圍魏救趙)라는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손빈이 1813년 8월 드레스덴을 구원해야 하는 나폴레옹이 드레스덴에 입성하지 않고 피르나를 향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무릎을 탁 치며 저 서양인은 자신의 수제자나 다름없다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위나라가 조나라의 한단을 공격할 때, 제나라가 위나라의 대량을 침으로써 한단.. 2024. 3. 4.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4) - 기술은 없어도 전술은 있다 1942년 8월초부터 과달카날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해군은 레이더를 경시했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음. 1) 일단 미해군의 CXAM 레이더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고 2) 레이더만으로 제로센을 쏘아 떨어뜨리지는 못했기 때문. 먼저, 8월 7일 새벽 미해병대가 미해군의 엄호하에 툴라기와 과달카날 등에 상륙하자, 라바울의 일본군 기지에서는 미쓰비시 G4M1 "Betty" 쌍발 폭격기 27대를 날려보내 상륙 함대를 공격. 일찌감치 이들의 내습을 알고 있던 미해군은 Wildcat 전투기들을 보내 요격하려 했으나, 문제가 2가지 있었음. 첫째, 이 27대의 폭격기에는 17대의 제로센 호위 전투기들이 딸려 있었음. 둘째, 언제나 그렇지만 CXAM 레이더는 포착된 적기의 고도 파악을 제대.. 2024. 2. 29.
드레스덴 전투 (2) - "포위해버리죠 뭐" 8월 23일, 나폴레옹은 분명히 시간, 공간과 병력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습니다.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를 묘책을 짜내자면, 먼저 나폴레옹 같은 군사적 천재가 어쩌다 일을 이렇게 망쳐 놓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폴레옹은 애초에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꽤 든든히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슐레지엔으로 블뤼허를 치러 가면서 이렇게 장담한 바가 있었습니다. "만약 적군이 드레스덴으로 진군해온다면, 드레스덴으로부터 방담은 2일 거리에, 빅토르는 3일 거리에, 그리고 내 근위 사단들은 4일 거리에 있으니, 이 모두가 드레스덴의 제14군단을 도우러 달려올 것이다." 기억하시겠지만, 빅토르의 제2군단 약 2만은 나폴레옹이 원래 보헤미아 방면군의 침투로로 예상했던 .. 2024. 2. 26.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3) - 남자라면 중후장대(重厚長大)! 그러니까 일본은 레이더 개발을 위한 기초 기술도 가지고 있었고 레이더라는 물건이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었음. 전쟁 전에는 기술 이전을 꺼리던 독일도 WW2 개전 이후 적극적으로 레이더 기술을 일본에 전수해주려 했는데, 아예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레이더 한 세트를 잠수함에 실어 일본에 보냈음. 그러나 그렇게 두 척을 연달아 보냈으나 두 척 모두 일본에 가는 도중 격침됨. 하지만 별도로 보낸 주요 부품과 설계도는 그대로 일본에 도착. 뿐만 아니라 싱가폴의 영국군 기지를 함락시킨 뒤 영국 육군의 GL Mk-2 radar와 탐조등 제어용 레이더 (Searchlight Control, SLC)를 노획했고 특히 SLC의 조작법이 적힌 문서도 고스란히 획득. 필리핀 .. 2024. 2. 22.
드레스덴 전투 (1) - 하늘과 땅과 사람 슈바르첸베르크가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거쳐 드레스덴을 들이친 것은 분명히 나폴레옹의 의표를 찌른 멋진 작전이었습니다. 아무리 나폴레옹이 다 계산 안에 있던 움직임일 뿐이라며 침착한 척 했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당시 전황은 마치 새끼곰을 지키는 어미곰 한 마리를 사냥개 세 마리가 둘러싸고 위협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 새끼곰이 바로 드레스덴이었습니다. 드레스덴은 작센 왕국의 수도라는 상징성과 교통의 요지라는 점 외에도 그랑다르메의 온갖 군수품이 쌓인 보급 중심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미곰이 동쪽 사냥개인 블뤼허를 거세게 쫓아내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쪽 사냥개가 새끼곰의 뒷다리를 덥썩 물고 끌고가려는 상황이 8월 22일의 상황이었습니다.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넘은 보헤미아 방면군은 거.. 2024. 2. 19.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2) - 상상력의 부족은 외국어로 메운다 1920~30년대 일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파 분야 석학이 있었으니 바로 도호쿠(東北) 대학의 야기 히데쯔구 교수. 이 양반이 지향성 안테나인 야기-우다 안테나를 만든 그 야기 교수임. 이 양반은 고주파 생성 방법에 대해서도 당연히 관심이 있었음. WW2가 시작된 1939년, 고주파 레이더에 사용할 cavity magnetron을 만든 영국의 John Randall 교수와 그의 대학원생 조교 Harry Boot도 자기들이 마그네트론을 처음 만든 것이 아니었음. 지난 레이더 개발 이야기 (16) - 마침내, Cavity Magnetron! 에서도 소개했듯이, 그 양반들도 1916년 미국 제네럴 일렉트릭 사의 엔지니어 Albert W. Hull이 발표한 논문에서 마그네트론이라는 이름과 그 원리를 처음 봤.. 2024. 2. 15.
드레스덴을 향하여 (10) - 그의 사전에 원수 두 명은 없다 8월 23일 오후, 드레스덴 남쪽 피르나(Pirna)에 주둔하고 있던 생시르 원수로부터 나폴레옹에게 날아든 급보의 내용은 나름 극적이었습니다. 그랑다르메가 지키고 있지 않던 페터스발트(Peterswald) 고개길을 이용하여 러시아군 군단 하나가 쳐들어왔고 그 뒤로는 오스트리아군이 따르고 있는데, 그 규모는 오스트리아군 전체로 보인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습니다. 전에 언급한 것처럼 이때 점심을 먹고 있던 나폴레옹은 들고있던 와인잔을 탁자에 내리치며 깨뜨렸다고 전해지지만, 그렇다고 그가 완전 패닉에 빠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드레스덴 방어 계획은 결코 지타우와 럼부르크, 즉 보헤미아에서 작센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철통같이 지킨다는 정적인 것이 아니었거든요. 기본적인 방어는 피르나에 주둔한 생시르의 제1.. 2024. 2. 12.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1) - 일본군의 비밀 병기 항공모함의 약점은 공격 당하면 침몰한다는 것이지만 장점은 30노트의 속력으로 먼 바다를 움직이므로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워 공격하기도 어렵다는 것. 지상에 건설해놓은 항공기지의 장점과 약점은 정확하게 그 반대. 불침항모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항상 적의 폭격과 포격에 두들겨 맞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함.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항공모함은 보급 문제로 며칠 혹은 몇 주만 그 해역에 머물 수 있지만 항공기지는 그냥 영원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수 있다는 점. 게다가 선박의 배수량은 무한정 커질 수 없으므로 항모의 규모와 그 역량에는 제한이 있지만, 항공기지의 규모와 방어 시설은 거기에 얼마나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무한정에 가깝게 커질 수 있음. 따라서 결국은 항공기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임. (에섹.. 2024.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