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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27) - 기술 싸움과 머리 싸움 공대함 레이더 ASV Mk II와 Leigh 탐조등 조합이 이제 막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지 2~3달 된 1942년 8월 경부터 로열 에어포스 해양 초계기들 중 일부가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 레이더 스코프에 유보트를 포착하고 신이 나서 달려가보면 귀신처럼 유보트가 사라졌다는 것. 처음에는 레이더 오작동인가 싶었으나 곧 독일놈들이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여 초계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경보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음. 9월 경에는 모든 초계기들이 그런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는 FuMB 1 (Funkmessbeobachtungsgerät, 전파 측정 장치)라는 공식 명칭이지만 실제로는 그 장치를 만든 파리 소재 프랑스 회사의 이름을 따 그냥 Metox라고 불리는 간단한 장치 덕분. .. 2023. 3. 30.
바우첸을 향하여 (16) - 헛도는 톱니바퀴들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요크는 바클레이의 어처구니 없는 지원군 요청에 아무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말로 자신의 부대 중 제2 여단을 떼내어 숲길을 통해 바클레이가 있는 쾨니히스바르타로 보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크가 정말 제대로 된 군인 정신의 지휘관인지 정반대로 관료주의에 빠져 현실 파악을 못하는 인간인지 헷갈립니다만, 직후의 행동을 보면 요크가 닳을 대로 닳은 늙은 여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크는 2시간 정도 싸운 끝에 어차피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황 파악을 못한 바클레이가 병력 지원을 요청하자 요크는 후퇴할 명분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바클레이의 명령대로 지원군을 보내면서 '지원군을 보내고 .. 2023. 3.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26) - 어둠 속의 빛 레이더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송신 펄스(pulse)파의 길이를 짧게 만드는 것. 이것이 길면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의 최소거리가 너무 길어지게 됨. 펄스가 발사되고 있는데 반사파가 되돌아오면 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 전파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니 펄스 길이가 1 micro-second (µs)일 경우 최소 탐지거리는 약 150m. 그런데 WW2 기술로는 영국 공군이 대잠 초계기에 장착한 공대함 레이더 ASV Mk II의 최소 탐지거리는 900m 이상. (레이더 송신 펄스파의 길이(width)에 대한 그림. 저 펄스 길이가 짧을 수록 레이더의 최소 탐지 거리가 짧아지므로 좋은 것.) WW2 당시 U-boat는 부상한 상태로 작은 sail (잠수함 위쪽에 불쑥 솟아난 구조물)만 물 위로 내민 채 디.. 2023. 3. 23.
바우첸을 향하여 (15) - 오해는 오해를 낳고 군내 서열에 있어서 훨씬 선임이자 바로 작년 자신의 직속 상관이었던 바클레이의 존재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습니다. 과거에 바클레이가 비트겐슈타인을 괴롭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의 경직된 서열 문화에서 작년의 직속 상관이 지금 자신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중요 전장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던 좌익의 정반대쪽인 우익, 그것도 프로이센군이 지키는 우익보다 더 오른쪽 맨 끝 부분인 크렉비츠(Kreckwitz) 마을 쪽에 바클레이를 배치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합군의 우익쪽, 즉 북쪽에서 로리스통의 프랑스군 1개 군단이 내려오고 있다는 첩보는 바클레이를 아예 멀리 보내버려 자신의 전장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 좋은 .. 2023. 3. 20.
레이더 개발 이야기 (25) - 전쟁은 깡이 아니라 창의력으로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항법용 외에는 실제 전과가 별로 없었던 ASV Mk. I 공대함 레이더를 개량한 ASV Mk. II는 실은 그냥 개장된 Mk. I으로서, 기본적인 성능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음. 그냥 수신기 및 전기장치를 좀더 안정적으로 재구성했는데, 그나마 1940년 여름에야 공급이 시작됨. 첫 전과가 나온 것은 1940년 11월 30일. Armstrong Whitworth Whitley 초계기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의 만인 Biscay 만에서 U-boat (U-71)를 레이더로 포착하고 공격하여 손상을 입힌 것. 그러나 U-71은 손상만 입었을 뿐 문제 없이 살아남아 연합군의 대서양의 보급로에서 계속 피해를 입힘. 해양 초계기에 ASV를 장착하면서부터 U-boat에 대한 주간 공격 횟수가 20% 정.. 2023. 3. 16.
바우첸을 향하여 (14) -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본다 5월 19일 오전, 네슈비츠(Neschwitz)로 가던 로리스통이 뜻하지 않게 길 위에서 맞닥뜨린 사람은 그루시(Emmanuel de Grouchy)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전날인 18일 오전 10시, 베르티에가 보낸 명령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명령서에서 베르티에는 비로소 나폴레옹의 의도를 촘촘히 적었는데, 더욱 바람직했던 것은 여러 통의 암호화된 사본을 만들어 보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중 한 통을 가지고 네의 사령부를 찾아나섰던 것이 그루시였지요. 이렇게 그루시를 길 위에서 만난 덕분에 네는 나폴레옹의 본진 위치가 생각보다 더 서쪽이며, 나폴레옹이 네가 21일까지는 연합군의 측면을 위협하는 위치인 드레사(Drehsa)에 도착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Within cannon-sho.. 2023. 3. 13.
레이더 개발 이야기 (24) - 초도기의 위력 1939년 후반부터 ASV(공대함) 레이더는 Fairey Swordfish와 Lockheed Hudson 등의 항공기에 순차적으로 설치 시작하여 1940년 초부터는 실제 전력화에 들어감. ASV 레이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AI(공대공) 레이더는 1940년 7월 경에나 최초로 전력화에 들어갔기 때문에, 결국 영국 공군의 ASV Mark I 레이더가 세계 최초의 항공기 탑재 레이더가 됨. (경폭격기 및 초계기로 사용된 Lockheed Hudson. 원래 여객기로 개발된 것을 군용으로 전용한 것. 록히드사의 항공기 고객 중 최초의 주요 구매 고객이 바로 로열 에어포스였고 그 첫 주문이 이 헛슨 폭격기 200대였음.) (게리 올드먼 주연의 처칠 영화 'The Darkest Hour'. 그 영화 중간에 처칠이.. 2023. 3. 9.
바우첸을 향하여 (13) - 혼란은 전선을 넘어 바우첸 앞에 이미 도착해있던 기존 군단들, 즉 막도날의 제11, 베르트랑의 제4, 마르몽의 제6 군단은 별 다른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디노의 제12 군단이 새로 바우첸에 더 접근하여 코삭 기병들을 쫓아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신참 근위대와 제1 예비기병군단은 나폴레옹과 함께 5월 18일 바우첸에 도착했고, 최후까지 드레스덴에 남아있던 고참 근위대와 근위 포병대, 공병대 등도 18일 아침 바우첸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왜 바우첸에서 대치한 양군은 그렇게 조용했을까요? 프랑스군 측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네의 병력이 북쪽에서 나타나길 기다렸으니까요. 그러나 연합군 측에서는 아직 병력 집결이 완료되지 않은 프랑스군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그냥 내버려 둔 것은 꽤 이상한.. 2023. 3. 6.
레이더 개발 이야기 (23) - 네덜란드로 구축함이 달려간 이유 공대공 레이더가 파장 길이 문제로 개발이 벽에 부딪힌 상태였던 것에 반해, 공대함 레이더인 ASV(Air-to-Surface Vessel) 레이더는 cavity magnetron이 개발되기 전에도 꽤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됨. 그러나 ASV도 더 좋은 진공관이 필요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이 문제는 송신기보다는 수신기에 더 민감했음. Bowen과 그의 팀은 가용한 진공관들을 이용하여 온갖 수신기 설계를 고안해보았으나, 대부분의 영국 전기전자 업체들은 쓸만한 수신기 설계에 실패하거나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음.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될 무렵인지라 듣보잡(실은 극비)인 ASV 레이더 개발은 우선순위가 떨어졌던 것. 그러다 보웬은 우연히 BBC에서 실험하던 45MHz 텔레비전 방송 관련하여 Pye Electron.. 2023. 3. 2.
바우첸을 향하여 (12) - 큰 일은 작은 실수에서 현대화된 전쟁일 수록 기술의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는다고 하지만 전쟁이란 많은 수가 적은 수를 이기는 게임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나 현대전에 있어서나 병법의 기초는 적은 분산시키고 아군은 집결시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장을 휩쓴 이유도 바로 그것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813년 5월, 바우첸 전투를 앞둔 나폴레옹은 전체 병력의 1/3 정도를 뚝 떼어 네에게 베를린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하여 스스로를 분산시켰습니다. 그에 비해 연합군은 바우첸에 집결했습니다. 대체 나폴레옹은 왜 이런 악수를 둔 것일까요? 나폴레옹이 네의 군단들을 베를린 쪽으로 향하게 한 것은 연합군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프로이센군의 이탈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덫.. 2023. 2.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22) - 우연히 잡힌 신호 야간 전투기를 위한 공대공 레이더를 만들고 테스트하던 영국 공군 개발팀은 1937년 3월 Western Electric Type 316A 진공관을 이용하여 1.25m 길이의 파장을 가진 레이더를 복엽 폭격기 Handley Page Heyford에 장착하고 공중에서 테스트를 수행. (폭격기 Handley Page Heyford. 최고 속력 220km/h에 최대 폭장량 1.1톤에 불과. 1933년에 도입되었으나 1936년에는 이미 생산 중단.) 혹시나 하고 수행해본 테스트 결과는 역시나 신통치 않았음. 그 진공관에서 만들 수 있는 펄스파의 출력은 불과 100W에 불과했기 때문에 탐지할 수 있는 상대 항공기까지의 거리는 매우 제한적. 다만, 가만 보니 앞에 표적 항공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레이더 스코프에 .. 2023. 2. 23.
바우첸을 향하여 (11) - 달갑지 않은 지원군 콜랭쿠르가 나폴레옹과 말 위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먼저 말을 달려 향한 곳은 바우첸의 연합군 진지였습니다. 콜랭쿠르는 5월 19일 밤, 바우첸 외곽의 러시아군 초소 앞에 나타나 알렉산드르와의 회담을 요청했습니다.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에게 보내는 사절로 콜랭쿠르를 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콜랭쿠르는 1812년 러시아 침공 직전까지 주러시아 프랑스 대사로 있었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평화를 위해 정말 진심으로 노력한 사람인데다, 인품 자체가 훌륭하여 알렉산드르도 개인적으로 호감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콜랭쿠르가 나폴레옹의 별로 진정성 없는 메시지, 즉 '무의미한 피와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휴전하고 평화 협정을 논의하자'는 이야기를 개인적인 진심을 담아 전달했지.. 2023.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