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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의 멋과 희열 - The Commodore 중 한 장면 전에 회사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조건 싸우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그게 검이건 자동화기건 광선총이든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잘 생기고 능력있는 남자들이 여자 하나를 놓고 싸우는 내용이라는 설도 있긴 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들이 다 무식하게 쌈박질만 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남자들은 짐승 수준에서 크게 발달한 존재들이 아니다 보니, 제일 좋아하는 내용이 피튀기며 싸우는 내용이긴 합니다. (태권도 vs. 유도, 야구배트 vs. 재크 나이프, F-15 vs. 라팔,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로마 군단 vs. 몽골 기병, 사자 vs. 호랑이...) 하지만 그렇게 싸우는 .. 2020. 7. 9.
쿠투조프의 마성적 매력 쿠투조프가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 알렉산드르로부터 정식으로 야전군 총사령관의 임명장을 받은 것은 1812년 8월 20일이었습니다만, 하루가 급한 전시 상황에서도 쿠투조프는 당장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임명장을 받고 나와서 한 최초의 일은 카잔 성당(Kazanskiy Kafedralniy Sobor, the Cathedral of Our Lady of Kazan)에 가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제복 코트를 벗고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의 성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참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음 날도 출발하지 않고, 이번에는 와이프까지 데리고 상트 블라디미르(St. Vladimir) 성당에 가서 역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임명장을 받은.. 2020. 7. 6.
가로활대의 정체와 인버고든(Invergordon) 반란 사건 최근에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래와 같이 두 척의 넬슨급 전함 두 척을 선두로, 영국 로열 네이비의 전함들이 열을 지어 정박한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어차피 넬슨급 전함은 딱 두 척 뿐이니 하나는 넬슨(HMS Nelson)이고 다른 하나는 로드니(HMS Rodney)일텐데,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저는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모든 전함들 옆구리에 긴 막대가 가로로 꽂혀 있고 거기서 뭔가 밧줄을 늘어뜨리고 있더군요. 저게 말로만 듣던 어뢰 방어망(torpedo net)을 지지하는 가로활대인가 싶어서 그 커뮤니티에 댓글로 물어보았습니다. 친절하게도 댓글이 한 20~30개가 달리더군요. 먼저 어뢰 방어망은 아주 무겁기 때문에 저런 가느다란 가로활대로는 지탱할 수가 없답니다. 저건 boat .. 2020. 7. 2.
행운(?)의 쿠투조프 (3) 이하는 랑쥬롱이 그의 비망록에 남겨놓은 쿠투조프에 대한 평가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만, 아마 사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투조프처럼 기백은 넘치지만 별 개성이 없는 인물이 드물 것이다. 수완과 교활함의 그렇게 조합됨과 동시에, 실질적인 재주가 보잘 것 없으면서 거기에 도덕성까지 결여된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억력이 아주 비상하고 배운 것도 많으면서,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의 대화를 그토록 재치있게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었고,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 온화함은 조금 가식적인 것이었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쿠투조프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들이었다. 그는 화가 났거나 상대방이 .. 2020. 6. 29.
전함 HMS Barham의 격침과 영국 최후의 마녀 이야기 1941년 11월 26일은 독일 해군 중위 티센하우젠(Hans-Diedrich von Tiesenhausen)에게 운수 대통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잠수함 U-331의 음탐사가 멀리서 들려오는 군함들의 엔진 소리를 탐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군함들은 대략 그의 잠수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군함들의 정체는 영국 해군 전함 3척과 그를 둘러싼 구축함 8척이었습니다. 티센하우젠 중위는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 이들은 리비아로 향하는 이탈리아군 수송단을 요격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나선 퀸 엘리자베스 호(HMS Queen Elizabeth), 밸리언트 호(HMS Valiant), 그리고 바럼 호(HMS Barham), 그러니까 모두 1910년 초반에 진수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척과 그를 호위하.. 2020. 6. 25.
행운(?)의 쿠투조프 (2) 1788년 시작된 전쟁에서, 쿠투조프는 포템킨(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uricheski) 대공의 지휘 하에 흑해 연안의 오스만 투르크 요새 오차코프(Ochakov)를 공격 중이었습니다. 수보로프 장군은 '총알은 빗나간다, 총검은 그러지 않는다' 라는 명언처럼 보병 돌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에 비해 포템킨 대공은 원거리에서 포위한 채 포격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병사들은 당장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장기간 포위 작전을 하다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온갖 질병이 유행하며 병사들이 픽픽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템킨 대공입니다. 그는 러시아가 새로 정복한 흑해 연안 일대 전체의 주지사로 있었는데, 그가 당시 건설.. 2020. 6. 22.
새로운 신분제 - 집주인이 현대의 귀족인걸까? 앤 헤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200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 잡지사 비서로 취직한 앤 헤서웨이가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건배를 할 때 아주 인상적인 건배사를 합니다. 기억들 나시나요? 바로 "To jobs that pay the rent" (월세를 내줄 일자리를 위하여) 였습니다. 에드 쉬란(Ed Sheeran)의 출세곡은 마약에 중독된 매춘 여성에 대한 노래인 'A team'인데, 그 가사 중에도 'Struggling to pay rent' 라는 부분이 있지요. 노래 속의 여성은 매춘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명품 가방은 커녕 월세를 내기 위해 아둥바둥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To jobs that pay the rent") 이렇게 서구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저렇게 집세.. 2020. 6. 18.
행운(?)의 쿠투조프 (1) 알렉산드르가 쿠투조프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오른쪽 눈을 매우 싫어했지요. 심하게 뒤틀린 사팔뜨기 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의 오른쪽 눈은 실명한 상태라는 말도 있고, 양쪽 눈이 다 잘 보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쿠투조프를 정말 영웅적인 현인으로 묘사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쿠투조프의 오른쪽 눈 실명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다소 애매하게 나옵니다. (가만 보면 쿠투조프의 초상화는 대부분 얼굴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오른쪽 눈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 검열 이후 장교들의 쾌활한 분위기는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중대는 기분 좋게 행진했다. 사방에서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렸다. ".. 2020. 6. 15.
포트 낙스(Fort Knox) 이야기 원래 지폐, 즉 은행권(bank note)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짜 돈을 은행에 맡겨두고 받은 영수증입니다. 진짜 돈은 바로 금이지요. 그런데 진짜 돈인 금은 무겁고 유통시키면 조금씩 마모되니까, 대신 이 '영수증'을 들고 은행에 가면 진짜 돈으로 바꿔준다며 유통시킨 것이 바로 지폐입니다. 그래서 사실 영국이나 프랑스나 18세기까지만 해도 한 국가 안에서 지폐 발행권이 꼭 정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종류의 지폐가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가령 나폴레옹은 1803년 파리 시내에서는 지폐는 프랑스 중앙은행(Banc de France)에서만 발행할 수 있도록 선포합니다. 그 전에는 파리 시내에서조차도 여러가지 지폐(은행권)이 남발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지폐 남발 막장의 끝을 보여준 아시냐(assi.. 2020. 6. 11.
골드바 이야기 - 1940년 영국 경순양함 에머랄드 호와 2020년 뉴욕 상품거래소 저는 소위 말하는 골드버그(gold bug), 즉 금성애자입니다. 전에 어떤 정권에서였는지 장관 후보자가 과거에 부동산 투기했던 것이 드러나서 청문회에서 추궁을 당하자, '부동산을 너무 사랑해서 샀을 뿐 투기는 아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저는 투기 목적도 당연히 있지만, 저야말로 그냥 금이 너무 좋아서 금을 삽니다. 이 글은 6/6 토요일에 미리 짜집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간밤에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금값이 2.25% 폭락하여 "내가 하는 투자가 다 그렇지"라고 자포자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글이 나올 6/8 월요일에는 또 얼마나 더 폭락했을지 모르겠군요. (제게는 무척 슬픈 날입니다.) (그러나 너무 고소해하지는 말아주세요. 혹시 압니까, 제가 1100불에 샀을지. 제가 언제 샀.. 2020. 6. 8.
"딸 같은 며느리"란 없다 웹질 하다 재미있는 사진을 본 김에 퍼왔어요. (Source : https://twitter.com/OnePenny0605/status/1265220599430803456 ) 우리나라 시부모님들 중에는 "아들의 결혼이란 딸 같은 며느리를 새로 집에 들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그게 모든 비극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의 결혼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은 "아들이 자기 짝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자식도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 커서 독립해야 하는 자식을 언제까지 자기 곁에 묶어 두려는 것은 부모의 과욕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서구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이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라고 하시지만.. 2020. 6. 4.
두 도시의 분위기 - 쿠투조프의 등장 전방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나폴레옹과 바클레이 등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동안, 후방의 러시아인들도 적어도 마음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황실 가족들이 모여 살던 서구적 도시 상트 페체르부르크는 상류층이나 서민층이나 모두 '이 전쟁은 이미 진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주도적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는데 성공하고 8월 초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돌아온 알렉산드르가 보니, 심지어 자기 모친인 황태후조차도 각종 귀중품을 이미 도시 밖으로 빼돌려 놓고 자신도 언제든 피난갈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귀족 가문들도 모두 말과 마차를 즉시 출발 가능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트 페체르부르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적어도.. 2020.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