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1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2) - 나폴레옹 버프는 없다 10월 7일 오전, 마이센으로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 벤너비츠(Bennewitz)에서 보내온 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당장이라도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 같아 보이던 블뤼허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멀더강의 우안에 멈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먼저 엘베 강변의 프랑스군 요새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포위 공격을 마무리하여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뒤에 움직이려는 것 같다는 네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네는 결단성과 용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자였으나 결코 지략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네의 추측성 보고를 나폴레옹이 100% 믿었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때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보고만 골라서 믿.. 2025. 3. 3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1) - 전진과 철수 나폴레옹에게는 블뤼허와 베르나도트를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괴멸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전투에서 이들을 패배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번에도 이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당장 라이프치히로 무작정 달려가기 보다는, 먼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뒤 먼저 엘스터와 데사우의 다리들, 즉 블뤼허와 베르나도트의 탈출로부터 끊기로 합니다. 이건 너무 낙관적으로 승리를 자신하는 행위 아니었을까요? 나폴레옹은 블뤼허-베르나도트와의 결전에서 패배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1차적인 계획은 먼저 마이센으로 간 뒤, 거기서 정보를 더 획득하여 그에 따라 토르가우로 갈지 뷔르첸으로 갈지 정한다는 것이었.. 2025. 3. 2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5) - 원수들의 불화 먼저 블뤼허의 관점에서 전황을 살펴 보겠습니다. 블뤼허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이 즉각 남쪽의 바트 뒤벤(Bad Düben)으로 진격하여 네의 병력을 밀어내고 10월 6일까지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뒤, 거기서 하루 이틀 뒤에 뒤따라 올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과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나폴레옹이 대군을 이끌고 달려와 블뤼허와 베르나도트가 합류하기 전에 블뤼허를 박살낼 위험성도 있었지만, 드레스덴 인근의 연합군이 10월 3일에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분명히 드레스덴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 것입니다. 원래는 베르나도트와의 합류 지점은 라이프치히가 아니라 바트 뒤벤에서 합류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소극적인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릴 것이 뻔하다고 생.. 2025. 2. 1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0) - 들켜 버린 편지 타우엔치언이 블뤼허에게 전한 소식은 애써 놓았던 엘스터의 다리가, 불과 몇 개 대대의 그랑다르메가 엘베 강 건너 바르텐부르크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놀란 베르나도트의 명령에 의해 해체되었다는 매우 복장 터지는 소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타우엔치언은 여태까지 베르나도트의 지휘에서 벗어나 블뤼허와 작전을 함께 하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쳤지만, 얼굴을 맞대고 나서 하는 소리는 베르나도트의 명령에 따라 그의 제4군단 전체를 북서쪽인 예센(Jeßen)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네의 위협을 받은 베르나도트가 모든 부대를 로슬라우(Roßlau) 일대로 불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슐레지엔 방면군이 도강 지점으로 찍어놓았던 뮐베르크(Mühlberg)에도 타우엔치언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2024. 12. 3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9) - 막상막하 적군이 삽질을 하면 아군에게는 기회가 생기기 마련이었습니다. 네가 엘스터-바르텐부르크 방면에서 연달아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은 단지 연합군에게 피해를 입힐 기회가 사라졌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네의 베를린 방면군이 막아야 할 적군, 그러니까 베르나도트의 본진은 데사우(Dessau) 일대에서 무인지경으로 활개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베르나도트의 본진과 대치하고 있는 것은 드프랑스(Jean-Marie Defrance) 장군의 중기병 사단 하나와 다보로프스키(Jan Henryk Dąbrowski)의 폴란드 보병사단 하나 뿐이었습니다. (드프랑스 장군입니다. 그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민이지만 나름 중산층의 삶을 살았는데, 천성이 군인이었는지 혁명 이전에 이미 사병으로 카리브해의.. 2024. 12. 2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 - 명령 불복종 여태까지 왜 바이에른이 10월 8일 오스트리아와 리드(Ried) 조약을 맺고 나폴레옹을 배신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셨습니다. 이제 다시 시선을 나폴레옹과 슈바르첸베르크, 블뤼허와 베르나도트에게 돌려보시겠습니다. 9월 6일 덴너비츠(Dennewitz) 전투에서 베르나도트가 네를 완패시킨 뒤, 과연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먼저 나폴레옹은 8월 29~30일의 쿨름 전투 이후에도 보헤미아로 쳐들어가 슈바르첸베르크의 보헤미아 방면군과 결전을 벌이려고 시도는 해보았습니다. 그는 생시르의 제14군단을 선두로 빅토르의 제2군단과 근위대, 그리고 와해된 방담의 제1군단 잔존 병력까지 보헤미아로 넘어가는 얼츠거비어거(Erzgebirge) 산맥 일대에 투입했습니다. 실제로 생시르의 제14군단의 선두는 9월.. 2024. 10. 28. 뤼첸 전투 (11) - 이긴 거야, 진 거야? 나폴레옹 시대에는 아직 세균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따라서 소독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항생제 따위는 물론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언제나 전사보다는 병사의 가능성이 훨씬 높았고, 그냥 찰과상에 불과한 가벼운 부상도 재수가 없으면 치명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 전체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던 샤른호스트가 바로 그런 희생자였습니다. 그는 이 날 전투에서 유탄에 발에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부상일 뿐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거의 2달 뒤인 6월 말, 협상을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결국 그 부상이 악화되어 숨을 거둡니다. 그러나 최소한 전투 당일 밤이나 그 후 며칠 동안에는 기본적인 사무를 보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 2022. 11. 14. 뤼첸 전투 하루 전 상황 - 나폴레옹, 퍽치기 위기 일발 나폴레옹은 4월 24일 마인츠를 떠나 약 250km의 길을 밤에도 쉬지 않고 마차로 달려 그 다음 날인 25일 저녁 9시에 에르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집결한 근위대와 합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동쪽 약 20km 지점에 있는 바이마르(Weimar) 주변에는 4만5천의 막강 병력을 자랑하는 네 원수의 제3 군단이 포진해 있었고, 에르푸르트 남동쪽 약 50km 지점의 잘펠트(Saalfeld) 일대에는 베르트랑(Henri Gatien Bertrand)의 1만8천에 달하는 제4 군단이 있었습니다. 2만4천이 배속된 우디노의 제12 군단도 에르푸르트 남쪽 90km 지점인 코부르크(Coburg)에 주둔했고, 역시 2만4천인 마르몽의 제6 군단은 에르푸르트 서쪽 약 25km 지점인 고타(Gotha)에 도착해 .. 2022. 8. 29. 누가 비트겐슈타인을 괴롭히나 - 손무의 일화 비트겐슈타인의 작전안은 매우 뛰어난 분석과 예측에 기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그 핵심은 현재까지 포착된 프랑스군의 이동 및 집결 상황으로 볼 때, 나폴레옹의 의도는 라이프치히를 거쳐 토르가우(Torgau)로 진격하여 그 곳의 포위를 푸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마도 베를린으로 진격하여 프로이센을 굴복시키려 할 것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보았습니다. 프로이센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갈지 연합군의 근거지인 슐레지엔의 브레슬라우로 갈지는 사실 당시 나폴레옹도 결심을 굳히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적어도 나폴레옹의 진격 방향이 라이프치히라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1650년 경의 토르가우의 전경입니다. 엘베 강변의 주요 요새도시 중 하나로서, 그 앞의 다리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여기를 장악하면 엘.. 2022. 8. 22. 상책과 하책 - 두 천재 참모의 작전안 나폴레옹이 잘러 강 서쪽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프로이센군 수뇌부를 걱정시켰다기 보다는 흥분과 전율을 넘어 기대감에 차오르게 했습니다. 가장 흥분한 사람은 블뤼허 본인이었는데, 사실 블뤼허는 이 희대의 괴물과 어떻게 싸워야 하겠다는 작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프로이센군의 모든 작전은 블뤼허가 아니라 그의 참모들인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도맡아 짜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다고 블뤼허가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샤른호스트는 블뤼허를 매우 존중하고 있었는데, 블뤼허의 진짜 가치는 비상한 머리로 기가 막힌 작전안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적과의 싸움에 임했을 때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부하들에게 용기와 투지를 불어넣고 사기를 고취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용기와 투지가 넘쳐나는 프로.. 2022. 8. 8. 네 갈래의 도로 - 샤른호스트의 고뇌 3월 30일, 드레스덴에 도착한 블뤼허는 하르덴베르크에게 엘베 강을 건너 진격을 시작하겠으며, 베를린 점령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던 비트겐슈타인의 러시아군도 함께 움직여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바로 이때 4일 전에 비트겐슈타인이 보내온 편지가 비로소 도착했습니다. 그 내용은 자신이 베를린과 마그데부르크 사이의 딱 중간 위치인 벨지히(Belzig)에 사령부를 차렸는데, 여기서 샤른호스트와 만나 향후 작전계획을 논의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좋게 말하면 그런 것이었고 공손한 표현 뒤의 실질적인 내용은 샤른호스트와 향후 작전 계획을 논의하기 전에는 한발자욱도 더 전진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샤른호스트는 당장 말을 달려 하룻만에 벨.. 2022. 7. 4.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