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7 06:30

 


"폴란드는 아침거리일 뿐이다... 러시아가 저녁을 먹을 곳은 어디일까 ?"
-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당시 영국 의회 의원이었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점점 서쪽을 밀고 나오는 러시아에 대해 한 말

"이 꼬마는 자기 모순의 매듭덩어리 같구먼."
- 전제 군주 집안에 태어난 왕자로서, 스위스 출신 가정교사에게서 계몽사상으로 교육을 받은 어린 손자 알렉산드르를 보고 예카테리나 대제가 평한 말

"난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이고 진실된 생각과 말,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  난 이기적 사람인데 그 주된 이유는 허영심 때문이다."
- 1789년, 당시 12살이던 알렉산드르가 적은 일기 중에서   

"내 계획은 와이프와 함께 라인 강변에 정착하여, 평범한 사람으로서 친구들과 함께 자연 철학을 공부하며 행복을 찾는 것이다."
- 1796년 당시 19세이던 왕자 알렉산드르가 친구에게 한 말

"이 황태자가 성당에 들어갈 때보니 자기 할아버지를 살해한 자들이 앞장서서 들어가고, 황태자를 둘러싼 자들은 자기 아버지를 시해한 자들이고, 황태자를 시해할 준비가 된 자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가더군요."
- 알렉산드르의 비자발적 묵인 하에 아버지 파벨 1세가 암살된 이후 알렉산드르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어느 프랑스 망명 귀족의 편지 중에서

"제 아버지를 암살한 귀족들을 처벌하지 않고 여전히 고위직에 두고 있는 러시아 짜르가 이런 비난을 하다니 매우 희한한 일이다."  
 - 1804년 앙기엥(Enghien) 공작을 납치하여 사법살인한 나폴레옹의 행위를 알렉산드르가 맹비난하자 그에 대해 대외적으로 발표한 프랑스 외무부의 반응.  알렉산드르는 괜히 나섰다며 크게 후회했다고 전해짐.

"이 전투에서 러시아군보다 짜르 알렉산드르 개인이 훨씬 더 철저히 패배했다."   
-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이후 프랑스 외교관 Joseph de Maistre의 편지에서    


"완전히 새로운 체제가 현재까지의 체제를 교체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나폴레옹 황제와 직접 만나 담판 짓는다면 그런 체제에 대해 매우 쉽게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 1807년 틸지트(Tilsit) 회담 직전 프랑스 측에 보낸 알렉산드르의 편지 중에서

 



"내가 보나파르트와 단 둘이서 마주 앉아 하루에 몇 시간씩 대화를 하며 며칠을 보냈다는 것을 상상해보거라.  정말 꿈 같은 일이 아니냐 ?"
- 1807년 틸지트 회담 이후 여동생 예카테리나에게 보낸 알렉산드르의 편지 중에서

"폐하, 조심하소서 !  선황 폐하의 전철을 밟을까 두렵사옵니다."  
- 틸지트 회담 이후 어느 알렉산드르의 심복 중 하나가

"폐하와의 동맹, 특히 영국과의 전쟁은 이 나라에서의 자연스러운 사고 방식 자체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이건 마치 완전한 개종과 같은 수준의 일입니다."
- 틸지트 회담의 결과로 러시아의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이루어진 뒤 상트 페체르부르그 주재 프랑스 대사가 나폴레옹에게 보낸 편지에서 

"러시아군과 프랑스군, 그리고 일부 오스트리아군으로 이루어진 5만의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하여 아시아로 출정한다면, 단지 유프라테스 강까지만 진격해도 영국은 벌벌 떨며 대륙의 발 밑에 무릎 꿇을 것입니다."
- 1808년 2월 알렉산드르에게 보낸 나폴레옹의 편지 중에서

"이게 바로 틸지트에서 사용되는 언어야 !"
- 위의 나폴레옹의 편지를 읽으며 흥분한 알렉산드르가 내뱉은 찬탄

"알렉산드르, 너의 몰락을 스스로 자초해서는 안 된다 !  백성들의 존경은 잃기는 쉽지만 되찾기는 어렵단다.  그 회의에 참석한다면 넌 그걸 잃을 것이고 결국 제국을 잃고 가족들도 파멸시킬 거란다."
- 1808년 9월 나폴레옹이 소집한 에르푸르트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출발하려는 알렉산드르에게 보낸 모후의 편지 

"우리가 공공연하게 군비를 확충하고 무장 병력을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나폴레옹를 비난하는 것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오로지 심오한 침묵 속에서만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위의 모후의 편지에 대한 알렉산드르의 답장

"나폴레옹은 내가 그저 바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오래 웃는 법이지. (중략) 유럽은 우리 둘이 공존할 수 있을 정도로 넓지 않단다.  둘 중 하나는 조만간 무릎을 꿇어야 할 거야."
- 위의 편지와 함께 따로 여동생 예카테리나에게 보낸 알렉산드르의 답장

 

"두 황제는 서로의 조치에 대해 비교적 만족한 상태로 헤어졌다.  그러나 기저에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었다."

- 에르푸르트 조약 직후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 콜랭쿠르의 관측

"유럽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폐하 뿐입니다.  폐하께서 그러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폴레옹에게 반기를 드시는 것입니다."
- 에르푸르트 조약 기간 중 알렉산드르와 몰래 접촉한 프랑스 전직 외무장관 탈레랑이 알렉산드르에게 한 말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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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06.17 0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파벨 1세가 장기집권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습니다. 파벨 1세가 흔히 암군이라고 생각되지만 그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엘리자베타 여제 이후 모순에 가득차던 농노제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고 급진적으로라도 개혁하려고 했던 군주였죠. 주 7일 중 4~7일을 귀족의 토지에서 일하는 수준의 막장 농노제를 건드려버린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죽고 난 후 아들인 알렉산드르 1세는 외치에 집중하여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자로써 죽을 때까지 확실한 권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내정은 바뀐거 없었고 제정 러시아와 로마노프 왕조 또한 긴 몰락의 세월을 걷게 됩니다.

  2. 00 2019.06.17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족들이 천상외교를 하던 당대론 애매하되 현대 기준에서 탈레랑은 매국노가 확실하군요.

  3. 유애경 2019.06.17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세때 친구에게 한 말과 대관식에 참가한 프랑스 망명귀족의 편지에서 어찌보면 알렉산드르도 시대의 피해자(?) 였을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황가의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후계자로 태어났을뿐 진정으로 그길을 원했을까...

  4. 수비니우스 2019.06.17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공공연하게 군비를 확충하고 무장 병력을 과시하거나, 요란하게 나폴레옹를 비난하는 것은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오로지 심오한 침묵 속에서만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말이 인상깊네요.

2019.06.13 06:30


Hornblower and the Atropos by C.S.Forester (배경: 1805년 영국 근해 HMS Atropos 함상) ----------------

(아트로포스 호의 함장인 혼블로워는 밤늦도록 그날 있었던 프랑스 사략선 나포건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막 끝내고 보고서 내용에 나름 흡족해하며 다시 읽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함장실 문에 노크가 있었다.  대체 방해받지 않을 순간이 전혀 없단 말인가 ?

"들어와."  그가 말했다.

들어온 사람은 선임사관인 존스였다.  그는 혼블로워의 손에 들려져 있는 깃털펜과 테이블에 놓인 잉크병과 종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실례합니다, 함장님."  존스가 말했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게 아니었으면 합니다."

"무슨 일인가 ?" 혼블로워가 물었다.  그는 존스 중위에 대한 동정심이 별로 없었고, 그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군성에 보고서를 보내실 생각이셨다면 말입니다, 그러실 생각이셨던 것 같습니다만, 함장님..."

"그래, 물론 그럴 생각이네."

"혹시 제 이름을 언급하실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함장님... 그러실 것인지 여쭈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함장님... 감히 제멋대로 생각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만약 존스가 해군성에 보낼 보고서에다 자신에 대해 특별히 잘 언급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면 그런 부탁은 절대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미스터 존스 ?"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저 제 이름이 너무 흔한 것이라서 말입니다, 함장님, 존 존스라는 이름 말입니다.  현재 중위 명부에 오른 것만도 12명의 존 존스가 있습니다, 함장님.  알고 계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9번 존 존스 (John Jones the Ninth)입니다.  해군성에서는 저를 그렇게 지칭합니다, 함장님.  만약 함장님 보고서에 그렇게 씌여있지 않다면, 아마도..."

"잘 알겠네, 미스터 존스.  무슨 말인지 이해하네.  제대로 처리가 될 거라고 믿어도 되네."

"감사합니다, 함장님."

존스가 나간 뒤, 혼블로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보고서를 들여다 보고는, 새 종이를 한장 꺼냈다.  존스의 이름 뒤에다 '9번 (the Ninth)'이라는 글자를 읽을 만하게 삽입할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 종이 위에다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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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소설 한 구절에서 무엇을 느끼시나요 ?  저는 아, 워드 프로세서는 신의 축복 (또는 빌 게이츠의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워드 프로세서가 없었던 나폴레옹 시대의 문서 작업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지요.

군인이라는 직업에서 성공하려면, 꼭 적군을 많이 죽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기가 이러이러한 지휘력을 발휘하여 이러이러한 전과를 올렸다는 것을 상부에 제대로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사실 이건  꼭 군인이라는 직종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화 되어 있어서 상관이라는 작자들이 존재하는 모든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지요.  제대로 된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고서 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단 그 보고 내용이 패전보다는 승전 쪽에 가까운 것이 좋을 것이고, 또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러워, 읽는 사람이 요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조리있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에서 영어 교육보다는 국어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문장력 때문입니다.  대학도 나오고 직장생활도 할 만큼 한 사람들이 쓴 보고서나 메일을 읽어보면, 대체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거든요.  어떤 사람은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고 하던데, 거기에도 동의합니다.  결국 언어라는 것은 의사 소통 수단이고, 의사 소통이 원활하려면 생각과 사실을 언어로 조리있게 정리해서 조합해야 하는 것이쟎습니까 ?  결국 한국말로 또이또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영어로도 (발음은 둘째치고) 또이또이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and of Brothers의 한 장면이지요.  딕 윈터스 대위, 승진을 위해서는 M1 소총보다 타자기를 더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 !)



보고 내용도 승전보이고, 문장도 조리있게 잘 작성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엔 글씨가 문제가 됩니다.  요즘이야 타자기를 거쳐 워드 프로세서에서 대부분의 보고서가 작성되니까, 작성자는 어떤 폰트를 고를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대개의 경우 아예 폰트도 미리 지정해두지요.)  그러나 나폴레옹 시대처럼 아직도 이게 보고서인지 문학 작품인지 헷갈려하는 시대에는, 그 내용 못지 않게 우아한 글씨체도 중요했습니다.  우아한 글씨체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알파벳 문화권에는 인쇄체와 필기체라는 것의 차이가 꽤 컸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아동 문학인 '보물섬'의 한 장면을 보시지요.



보물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  (배경 : 18세기 후반 영국) ---------------------------------------

그래서 몇 주가 지난 뒤, 마침내 어느날 닥터 리브지께 편지가 한 통 날아들었다.  그 편지에는 '닥터의 부재시에는 톰 레드루쓰 또는 젊은 호킨스가 개봉할 것' 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조건에 따라 우리는, 사실 우리라기 보다는 나는 -- 왜냐하면 산지기 레드루쓰는 인쇄된 것 외에는 잘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다음과 같은 중요한 소식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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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산지기 톰 레드루쓰처럼 필기체의 알파벳은 잘 읽지 못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때 저 위 문장을 읽고는, '나는 저런 무식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중학교에 진학하여 영어를 배울 때 필기체 쓰는 연습도 나름 열심히 했었습니다만 (요즘도 학교에서 필기체 읽고쓰는 것을 따로 배우나요 ?) 여전히 필기체 문장은 읽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가끔씩 볼 수 있는 나폴레옹 시대의 그림이나 편지에 씌인 글을 읽는데 애를 많이 먹습니다.  글쎄요,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당시 사람들 중에도 (저 레드루쓰처럼) 남이 필기체로 쓴 편지를 읽기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특히 원래 쓴 글씨가 개발새발이라면 더더욱 그랬겠지요.  그래서 글씨를 예쁘고 신속하게 써줄 수 있는 서기(clerk)이라는 직업이 있었지요.  나폴레옹도 자기가 직접 펜대를 굴리며 글을 쓴 경우가 (특히 나중에 황제가 된 이후에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대개 몇명의 서기들에게 둘러 싸여 속사포처럼 빠르게 구술을 하면, 서기들이 진땀을 흘리며 받아 적었지요.  

이 시대의 서기들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 외에도 독특한 할 일이 더 있었습니다.  모래질이었습니다.  


'아르마다', 개럿 매팅리 작, 박상이 옮김, 가지않은 길 출판 (배경 : 1589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사건 당시) --------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침착성에 대한 일화입니다.)

그 비서는 익숙하지 않은 일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왕에게 금방 쓴 문서를 받아들자 그것을 모래로 문지르는 대신 그만 잉크병을 쏟아버렸다.  왕이 진노하리라는 생각에 몸을 움찔하던 비서는 이런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잉크라네.  이것이 모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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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방금 쓴 문서를 모래로 문질렀을까요 ?  짐작하시다시피, 잉크를 말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잉크는 매염제(gall, 일종의 진딧물 벌레집), 검댕, 황산철, 고무질 등을 섞어만든 것으로서, 요즘의 잉크처럼 종이에 잘 흡수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깃털펜에 이런 잉크를 묻혀서 정성껏 쓴 다음에, 곧장 종이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가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종이에 그대로 찍혀 일종의 데칼코마니가 되기 쉽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잉크를 말리는 작업을 해야 했는데, 불에 종이를 쬐다가는 자칫 불이 붙어버릴 위험도 있었고, 또 종이가 누렇게 말라비틀어질 수도 있었으므로 불로 말리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바로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 위에 고운 모래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고운 모래는 잉크를 순식간에 흡수해버릴 수 있는데다가, 고운 모래로 문지른 종이면은, 당시 품질이 그리 좋지 못한 종이면을 곱게 갈아주어 표면의 느낌을 맨질맨질하게 해주는 효과까지 내주었습니다.



(사진 속 편지 위의 작은 후추병 같은 것이 sand shaker 입니다.  저것으로 고운 모래를 편지 위에 뿌렸습니다.)



이렇게 금방 쓴 잉크 위에 모래를 뿌리던 관습과 나폴레옹에게 연관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휘하 장군들 중 가장 일찍부터 나폴레옹을 섬기기 시작했던 사람은 바로 '폭풍우'라는 별명을 가진 쥐노(Jean-Andoche Junot)였습니다.  그는 1795년 툴롱 포위전 때 나폴레옹을 만났는데, 당시 나이가 겨우 2살 많았던 나폴레옹이 이미 대위 계급이었던 것에 비해 일개 하사관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그래도 혁명 전에는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미지수...) 법학도였던지라, 나폴레옹의 서기로 임명이 되었습니다.  툴롱 포위전이 한창일 때, 나폴레옹이 전선에서 뭔가를 구술하여 쥐노에게 받아쓰게한 직후였습니다.  바로 옆에 영국군의 포탄이 떨어져 흙먼지가 나폴레옹과 쥐노에게 우수수 떨어졌는데, 쥐노는 전혀 놀라지 않고 나폴레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덕택에 편지에 모래를 뿌리지 않아도 되겠네요."

이 용기와 재치가 넘치는 애드립에 깊은 인상을 받은 나폴레옹은 이때부터 쥐노를 진정한 부관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 쥐노의 인생이 확 변하게 되었지요.  

 


(실제 전공에서나 사람들의 비망록에서나, 쥐노는 그다지 능력있는 사람으로 부각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젊은 와이프를 나폴레옹이 무척 좋아했다고...)



나폴레옹 시대에 서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는 주요 업무는 구술 받은 편지나 문서를 쓰고, 거기에 모래 뿌리는 것 외에도 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 복사기 !  당시에는 타자기는 커녕, 아직 먹지(carbon paper)가 발명되지 않았던 때라서, 편지든 뭐든 문서라는 것을 하나 만든 다음에는 그 복사본을 손으로 일일이 베껴써야 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인류 문명을 바꾸어 놓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서기의 일상 업무를 바꾸지는 못했거든요.  따라서 나폴레옹의 참모 본부에 있던 서기들은 정말 눈알이 빠져라 열심히 서류들을 써대고, 베껴대야 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처럼 말이 많고 편지도 많이 썼던 사령관 밑에 있던 서기들은 정말 죽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나폴레옹 시대에 이미 복사기가 이미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발발 전이던 1785년 조지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독립선언문을 (손으로) 작성할 때, 이미 복사기를 이용하여 여러 본의 독립선언문을 동시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복사기는 과연 어떤 물건이고,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을까요 ?

미국인들에게는 자존심 상하게도, 미국 독립선언문을 복사한 복사기는 영국제였습니다.  제조사는 James Watt & Co. 사였습니다.  예, 바로 증기 기관을 발명했던 바로 그 제임스 와트가 맞습니다.  이 복사기는 1780년에 제임스 와트가 특허를 받은 것으로서, 제임스 와트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습니다.  와트는 사업상 하도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지 일일이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쓸 때마다 최소한 한통씩 복사본을 만들어 두어야 했었는데, 와트는 나폴레옹이 아닌지라 서기들로 둘러 싸이지 않아서, 자기가 직접 베껴야 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습식 복사기였습니다.  



(이건 강릉 경포대 바로 옆에 있는 참소리 박물관이라는 곳에 전시된 진짜 James Watt 의 복사기입니다.  전 세계에 원본이 이거 딱 1대 남았는데, 그것이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이 박물관에 있다고 하네요.  이 박물관은 한마디로 말하면 에디슨 박물관인데, 처음에는 비싼 입장료 (대인 7천원)에 놀라고, 다음에는 전시품들의 알참과 진귀함에 놀라고, 박물관 직원들의 재미있는 해설에 또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강릉 관광가실 때 강추.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 습식 복사기의 원리는 나름 간단했습니다.  잉크도 좀더 진하고 특수하게 만들고, 종이를 아주 얇은 종이를 골라서 문서를 쓴 뒤, 그 원본 문서와 복사지를 맑은 물에 적신 뒤 압착 롤러로 눌러서, 원본 문서의 잉크가 복사지에게도 묻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글쎄요, 이렇게 하면 원본 문서의 품질에도 악영향이 좀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이 습식 복사기는 나름 꽤 인기가 있어서, 제임스 와트에게 상업적 성공, 즉 돈다발을 안겨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작은 나무 상자에 쏙 들어가도록 설계된 휴대용 복사기까지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습식 복사기는 20세기 초까지도 일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초기의 이 습식 복사기를 이용하여 제대로 복사를 하려면, 종이를 무려 12시간이나 적셔야 했기 때문에, 성질 급한 나폴레옹의 참모부에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형태의 복사기는 문학 작품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원본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까지도 그대로 묘사됩니다.  바로 발자크의 '관료주의'라는 소설에서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 아직 못 읽어보았고, 이 복사기 이야기가 이 책에 나온다는 사실도 참소리 박물관에 전시된 저 Watt 복사기의 설명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Bureaucracy by Honore de Balzac  (배경 : 1830년대 파리) ------------------------------------

세바스티앙이 절실한 마음으로 그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메모와 함께 그가 마저 베껴쓰지 못한 복사본이 순서대로 들어있었고, 그는 그것들을 라부르뎅이 지시한 대로 즉시 책상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12월말 즈음의 이 사무실들은 아침에도 꽤 어두웠고, 실제로 아침 10시까지도 램프를 켜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결과, 세비스티앙은 종이에 남겨진 복사기의 눌린 자국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9시 30분 경에 라부르뎅이 그의 메모를 보았을 때, 그는 즉각 이 문서에 복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복사 담당 서기들의 일을 이런 수기(手記) 압착식 복사기로 대체할 수 없을까 하고 고려 중이었으므로 더욱 쉽게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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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반에도, 이미 과학 기술이 사람들, 주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일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보실 수 있지요 ?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요.  오늘날 프랑스나 영국은 선진국으로서 국민 대부분이 잘 살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런 나라들이 실업률이 높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서류를 베껴쓰는 복사 담당 서기라는 것이 그다지 매력적인 직업은 아닌 것은 확실하지요.

 

** 목요일 재탕글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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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되니츠 2019.06.14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 많이 벌면 저런 거 쟁여다가 자산 보전하고 싶지요.

  2. Eugen 2019.06.14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리가 판화랑 비슷하네요. 초등학생때 비슷한거 해본 적이 있어요.

2019.06.03 06:30



화이팅이 그의 앞에 나타났는데 그의 주홍색 코트가 더럽혀지고 손목에는 검을 대롱대롱 매단 채였다.  그의 눈빛은 충혈되고 흐릿했다.

"저들을 뒤로 물리게."  부시는 전투의 광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화이팅은 부시를 알아보고 이 명령을 이해하는데 1~2초 걸리는 모양이었다.

"예, 부관님."  그가 말했다.

빌딩 너머를 보니 또 다른 수병들 한무리가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혼블로워의 공격조가 반대쪽 성벽에서 출입구를 찾은 모양이었다.  부시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마침 근처에 나타난 그의 부하들 한무리를 불렀다.

"나를 따라와."  그는 말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성곽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는 사람 하나가 죽어넘어져 있었지만 부시는 힐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성곽 위쪽에는 포안을 통해 밖을 겨누고 있는 6문의 거포로 이루어진 주 포대가 있었다.   그 너머는 하늘이었는데, 온통 피처럼 붉은 색의 새벽놀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의 최고점을 향해 지상에서 약 1/3 정도 지점까지는 색상이 굉장했는데, 부시가 그걸 보느라 잠깐 멈춘 사이에 수평선 위에 낀 구름 사이로 태양의 황금빛 광채가 비쳤고, 붉은 놀은 눈에 띄게 희미해졌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게 공격에 걸린 시간을 재는 척도였다.  가장 이른 시간의 새벽에서 열대의 일출까지는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부시는 멈춰서서 이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체감상으로는 이미 늦은 오후가 되었을 시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포좌로부터는 전체 만의 전경이 훤히 보였다.  저 반대편 해안이 보였고, 리나운 호가 좌초되었던 여울과(그게 고작 어제 일이었던가 ?), 저쪽의 언덕으로 급하게 이어지는 구릉지대가 보였다.  그 지점의 기슭 부분에는 주변 지형과 날카롭게 구분된 또다른 포대의 모습이 보였다.  왼쪽으로는 반도의 높이가 툭 낮아져 일련의 바위투성이 돌출부가 푸른 바다 속으로 펼친 손가락처럼 뻗어 있었다.  그 위치를 더 지나 돌면 스캇츠맨 만의 사파이어 색깔의 잔잔한 수면이 보였고, 거기에 선미 돛대의 중간 돛(mizen topsail)에 밝은 햇빛을 받고 있는 리나운 호가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전열함이 마치 예쁜 장난감처럼 보였다.  부시는 그 배를 보고는 잠깐 숨이 멎었다.  그건 그 광경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안도감 때문이었다.  전열함이 눈에 보이니 그에 연관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전투로 흐려졌던 그의 이성이 밀물처럼 되돌아왔다.  이제 해야 할 일이 천가지는 되었던 것이다.  

 

 

 

(선수 돛대를 foremast, 중간 돛대를 mainmast, 선미 돛대를 mizen mast 라고 합니다.  각 돛대마다 돛을 위, 중간, 아래 해서 3폭을 달지요.  그러나 topsail이라는 것이 꼭대기 돛이 아니라 중간 돛입니다.  맨 꼭대기의 돛은 topgallant sail, 혹은 줄여서 t'gallant sail이라고 부릅니다.  복잡하더라고요.)

 



혼블로워가 다른 경사로를 통해 올라왔다.  헝클어진 군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허수아비처럼 보였다.  그도 부시처럼 한 손에는 군도를, 다른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웰라드가 그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수병용 군도를 들고 있었는데, 그의 바로 뒤에는 한 20명 정도의 수병들이 아직 군기가 빠지지 않은 모습으로 총검까지 착검한 머스켓 소총을 쥐고 전투 태세로 따르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비록 찌그러졌지만 군모가 아직 그의 머리에 붙어 있어서 혼블로워는 거기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하려 했는데, 다음 순간 손에 아직 칼을 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산신히 멈췄다.  

"좋은 아침일세." 부시는 자동적으로 대꾸했다.

"축하드립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그의 입에 걸린 미소는 마치 시체가 씩 웃는 모습 같았다.  그의 입술과 턱에는 수염이 삐죽삐죽 자라 있었다.

"고맙네."  부시가 말했다.

혼블로워는 권총을 그의 벨트에 쑤셔넣고 군도를 칼집에 넣었다.

"저쪽 전부는 제가 장악했습니다, 부관님."  그는 뒤쪽으로 손짓을 하며 계속 말했다.  "계속 진행할까요 ?"

"그래, 그러게, 미스터 혼블로워."

"예, 부관님."

이번에는 혼블로워가 모자에 손을 대고 경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부사관과 수병들을 포대에 배치하는 명령을 재빨리 내렸다.

"보시다시피, 부관님."  혼블로워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몇 놈은 도망쳤습니다."

부시는 만 아래로 이르는 가파른 언덕사면을 내려다보았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거기 보였다.

"우리를 귀찮게 할 정도는 아니군."  그는 말했다.  이제서야 그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예, 부관님.  주 성문에 40명의 포로를 잡아 놓고 경비를 붙여 놓았습니다.  화이팅이 나머지를 잡아들이고 있더군요.  허락하시면 이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부관님."

"그러게, 미스터 혼블로워."

공격의 광기 속에서도 최소한 누군가는 맑은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시는 저쪽 경사로로 내려갔다.  부사관 하나와 수병 두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그들은 차렷 자세를 취했다.

"뭘 하고 있나 ?"  그가 물었다.

"이거 화약고임다, 부관님." (This yere's the magazine, zur,)  그 부사관, 즉 선수 돛대 망루의 조장인 암브로즈가 대답했다.  그는 벌써 몇 년째 해군에서 복무하면서도 어릴 때 익힌 데본(Devon) 지방의 거친 사투리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저흰 그걸 지키고 있슴다."

"미스터 혼블로워의 명령인가 ?"

"녜, 부관님." (Iss, zur.)

주 성문 근처에 한무리의 낙담한 포로들이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혼블로워는 이미 그들에 대해 보고했었다.  하지만 그가 보고하지 않은 경비들도 있었다.  우물에 보초 하나가 있었고, 성문에도 경비들이 서있었다.  공격조에서 가장 믿을 만한 부사관인 울튼이 성문 옆 긴 목조 건물에 6명의 수병들을 데리고 경비를 서고 있었다.

"자네 임무는 뭔가 ?" 부시가 물었다.

"식량 창고를 지키고 있습니다, 부관님.  술도 여기 있습니다."

"알겠네."

만약 공격에 참여했던 미친 놈들, 가령 부시에게 총검을 찔러댔던 그 해병 같은 놈들이 술을 손에 넣는다면 정말 통제불능의 상황이 될 것이었다.

부시의 공격조에서 그의 부하로 있는 사관생도인 애벗이 서둘러 뛰어왔다.

"자넨 대체 뭘하고 있었던 건가 ?"  부시가 신경질적으로 캐물었다.  "공격이 시작된 이후로 전혀 보이질 않더군."

"죄송합니다, 부관님."  애벗이 사과했다.  물론 그는 공격의 광기 속에 휩쓸렸겠지만 그건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방금 어린 웰러드가 혼블로워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본 뒤에는 특히 그랬다.

"전열함에 신호를 보낼 준비를 하게."  부시가 명령했다.  "자넨 벌써 5분 전에 준비를 마쳤어야 했어.  대포 3문에서 대포알을 빼내게.  깃발을 가지고 있던게 누구였지 ?  찾아내서 스페인 깃발 위에 올리게.  빨리 서둘러, 빌어먹을."

승리는 달콤할지 몰라도 이제 반응이 가라앉자 부시의 성질머리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부시는 잠 한숨 못잤고 아침도 먹지 못했다.  비록 요새를 점령한지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 10분 동안 멍하니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양심을 찔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그가 해놓았어야 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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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까지 해서 Lieutenant Hornblower 중에서 제가 번역하려고 했던 부분이 다 끝났습니다.  처음엔 뭔가 다른 일로 싱숭생숭하여 도저히 나폴레옹 연재를 할 심적 상태가 아니라서 일단 이걸로 때우자 라고 시작했는데, 번역하면서 저도 잘 이해 못했던 부분, 가령 nipper라든가 messenger라든가 하는 해양 용어를 알게 된 건 저로서도 즐거웠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다 이해들 하시겠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해군에서의 모험담과 전투 장면 등에 치중하지 않습니다.  혼블로워의 군대 생활을 보면 여러분들이 조직 생활, 더 나아가 사회 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셔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정말 대조되는 것이 임시 함장 버클랜드의 우유부단함과 부시의 단순무식함, 그리고 혼블로워의 주도면밀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른 나폴레옹 전쟁 소설인 Sharpe 시리즈에서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지휘관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버클랜드는 여러가지 면에서 고구마인데, 특히 지휘관이라는 사람이 결정을 못 내리고 우물쭈물하는 것은 정말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혼블로워는 평상시에 주의깊게 주변 상황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계산을 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경우에 대해 회사에서든 영업장에서든 혼블로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정말 승승장구할 것 같네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지만 조직 생활이라는 것이 사람의 유능함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운도 따라야 하고, 인맥도 있어야 하지요.  빽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혼블로워도 그 때문에 쓴 맛을 보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시면, 정말 흥미진진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부터는 다시 나폴레옹 연재를 시작해야 하는데, 솔직히 그동안 읽은 것이 없어서 제대로 연재가 될지는 장담 못드리겟습니다.  일단은 오랜만에 먹을것과 마실것 이야기 한편 쓰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고맙고, 또 여전히 모자란 글이 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읽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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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06.03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초부터 지방 출장이 연달아 잡혀서 지금 고속버스 안에서 댓글 달고 있습니다. 혼블로워 시리즈는 처음 보다시피하는건데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좀 쉬시면서 급한(?) 일부터 먼저 처리하셔도 저같은 독자들은 언제든지 글을 볼 겁니다. 언제까지고 새로운 글 기다리겠습니다. 나시카님

  2. 메뚝 2019.06.03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설로 읽었는데도 첨부된 사진과 해설을 읽고 있으니 재미가 2배(?)입니다.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3. 되니츠 2019.06.03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싸움 잘한다고 진급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게 여기서도 드러나네요.

  4. 푸른 2019.06.03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도 읽을 글은 주시면 제가 더 고맙지요ㅎㅎㅎ

  5. keiway 2019.06.03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이팅입니다.

  6. 유애경 2019.06.03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조직이든 윗사람이 혹은 책임자가 무능하면... 훌륭한 리더를 만나는것도 참 행운인것 같아요!
    앞으로도 좋은글 기대할께요.

  7. 이타카 2019.06.03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연재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8. minstorm 2019.06.03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 년동안 눈팅만 하다가 처음 댓글 달아봅니다. 항상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나시카님 화이팅!!!!

  9. 웃자웃어 2019.06.04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원정이 드디어 시작되는 거군요.

  10. 까까님 2019.06.04 2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실에서는 어려운 결정은 부하가 방향을 잡아줄 때까지 뭉개고 책임도 부하에게 떠미는 것이 리더죠
    그래야 장수한다고 믿는가본데 별로 그렇지도 못하더군요
    그런 임원 팀장들을 보고 얻은 교훈은 어차피 때되면 가는 인생 창피하게 가지 말자, 그리고 갈 때 까지밖에 못하는 일 소신껏 해보자입니다
    발라 모르굴리스

2019.05.27 06:30

 

이제 드디어, 바로 앞 요새 너머의 하늘이 약간 더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구름 위로 달이 올라온 것일까 ?  그 쪽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하늘은 보라색 벨벳 같았고, 아직 별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희미한 빛이 하늘에 있었다.  부시는 몸을 뒤척이며 벨트에 불편하게 끼워져 있는 권총들을 더듬어 보았다.  그것들은 모두 공이치기가 반만 당겨진 안전 위치 (at half cock, PS1 참조) 상태였다.  그는 나중에 공이치기를 완전히 뒤로 당겨놓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  수평선을 보니 보라색 하늘에 무언가 붉그스름한 색이 살짝 비치는 것 같았다.  

"부대에게 명령을 전달하라."  부시가 말했다.  "공격 준비."

그는 명령이 대오를 따라 전달되기를 기다렸지만, 줄의 끝 부분까지 명령이 전달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다 흐르기도 전에 도랑 안의 수병들 사이에서는 소음과 북적거림이 생겨났다.  어느 집단에나 있기 마련인 빌어먹을 바보들이, 명령이 전달되자마자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 그 바보들은 그 명령을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최소한 전염성이 있었다.  대오를 따라 누워있던 수병들은 양 날개쪽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시가 있는 중앙 쪽으로 되돌아오는 이중의 물결과 같은 모습으로 주섬주섬 일어났다.  부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군도를 뽑아들고 손에 균형을 맞추어 본 뒤 손에 꼭 맞는 위치로 칼자루를 움켜쥐고는 왼손으로 권총을 하나 뽑아들고 공이치기를 완전히 뒤로 젖혔다.  오른쪽 너머에서는 갑자기 금속성의 철커덕 소리들이 났다.  해병들이 총검을 끼우고 있는 것이었다.  부시가 보니 이젠 좌우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진 !" 그가 이렇게 말하자 수병들의 대오가 도랑으로부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침착하게, 거기 !"

그는 마지막 말을 거의 소리지르다시피 했다.  조만간 이 대오 중 성급한 놈들은 달리기 시작할 것이지만, 그게 더 늦게 시작될 수록 더 나았다.  그는 수병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제각각 따로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파도를 유지한 채 요새에 도달하기를 원했다.  저 왼쪽에서 혼블로워가 역시 "침착하게"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전진의 소음이 지금쯤은 요새에서도 들렸을 것이고, 경계를 풀고 있는 졸린 스페인 보초병들이라고 해도 알아차릴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곧 보초가 당직 부사관을 부를 것이고, 그 부사관이 달려와 눈으로 본 뒤 약간 머뭇거리다가 경보를 울릴 것이었다.  요새는 이제 막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먼 사각형의 모습으로 부시의 눈 앞에 우뚝 서있었다.  그는 점점 빨라지는 자신의 걸음을 자제할 수가 없었다.  수병들의 대오도 그를 따라 서둘러 따라왔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함성을 질렀고, 곧 다른 성미 급한 놈들이 함성을 따라 질렀다.  전체 대오가 뛰기 시작했고, 부시도 그들을 따라 뛰었다.

마치 마법처럼, 그들은 곧 석회암을 거의 수직으로 잘라 파놓은 6피트(약 1.8m) 깊이의 해자 언저리에 도착했다.  

"가자 !"  부시가 외쳤다.

양손에 군도와 권총을 각각 든 상태였지만, 그는 등을 요새 쪽으로 돌린 채 팔꿈치를 해자 언저리에 걸고 매달린 뒤 해자 바닥으로 뛰어내려 급경사면을 내려갈 수 있었다.  해자 바닥에는 물이 채워져 있지는 않았지만 미끄럽고 울퉁불퉁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반대편 해자 벽면으로 뛰어갔다.  고함을 외쳐대는 수병들도 그 반대 벽면에 달라붙었다.

"날 밀어 올려라 !"

부시는 양 옆의 수병들에게 외쳤다.  그들은 부시의 두 넓적 다리에 각각 어깨를 댄 뒤 거의 던지다시피 그를 올렸다.  그는 요새 벽면과 해자 사이의 좁은 대지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채로 기어올라갔다.  몇 야드(약 0.9m) 옆에서 어떤 수병이 벌써 쇠갈퀴가 달린 밧줄을 요새벽 위로 던지려 하고 있었다.  쇠갈퀴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도로 떨어졌는데, 부시 바로 옆 1야드도 안되는 거리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 수병은 부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시 쇠갈퀴를 휙 낚아챈 뒤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요새벽 위로 던졌다.  이번에는 쇠갈퀴가 제대로 걸렸다.  그 수병은 발을 벽에 대고 밧줄을 움켜쥐더니 미친 사람처럼 벽을 기어올랐다.  그 수병이 절반 정도 올라가기도 전에, 다른 수병이 나타나 그 밧줄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흥분하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다른 수병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다음 순서를 다투었다.  성벽 저쪽 좀 떨어진 곳에서도 쇠갈퀴가 제대로 걸려 또 한무리의 수병들이 소리를 질러대며 밧줄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러더니 머스켓 소총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꽤 많은 수의 총성이 울렸다.  여태까지 맡던 상쾌한 밤 공기와는 날카롭게 대조되는 화약 연기가 부시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오른쪽 편에 있는 성벽의 다른쪽 면에서는 해병들이 요새벽에 뚫린 포안(embrasure : 대포를 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요새 안으로 침투하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었다.  부시는 돌파구가 있을까 하고 그의 왼쪽을 돌아 보았다.  돌아보길 정말 잘 했다 싶었다.  요새 출입을 위해 옹벽 구석에 만들어둔 쪽문(sally point)이 있었던 것이다.  이 쪽문은 무쇠로 테를 두른 넓은 목재 문으로서, 요새 모서리 부분에 돌출되어 만들어진 보루(projecting bastion)로 가려진 부분 안쪽에 가려져 있었다.  수병들 중 멍청이 두 명이 이 쪽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위쪽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스페인군에게 머스켓 소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원래 평균적인 수준의 수병에게는 머스켓 소총을 쥐여줘서는 안 되었다.  부시는 이 소란 속에서도 잘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보루와 거기 옆면에 뚫린 sally point 입니다.)

 

 


"도끼 든 수병은 이쪽으로 !  도끼 !  도끼 !"

해자 속에는 아직 기어올라오지 못한 수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들 속을 뚫고 나와 해자 벽면을 기어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시의 공격조에서 분대를 맡고 있고 또 힘이 세기로 유명한 갑판장 조수인 실크가 해자 위의 좁은 공간 저쪽에서 달려오더니 도끼를 아래에서 건네 받았다.  그는 엄청난 힘과 끈기로 온몸을 실어가며 도끼를 힘껏 휘둘러 쪽문을 쪼개기 시작했다.  도끼를 든 수병 하나가 더 도착하더니 팔꿈치로 부시를 밀어내고는 문짝에 도끼질을 시작했지만, 그 친구는 실크만큼 기술이 좋지도 않고 힘이 세지도 않았다.   그들이 힘껏 내리치는 도끼질 소리는 보루 벽과 요새 성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크게 울렸다.  무쇠를 덧댄 문짝이 열리더니 빗장 너머로 강철의 번뜩임이 눈에 들어왔다.  부시는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실크의 도끼가 문짝을 완전히 꿰뚫고 지나갔고, 그는 도끼날을 비틀어 빼냈다.  그러더니 그는 조준을 바꾸어 도끼를 문짝 중간을 향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는 세 번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가 멈추고는 도끼를 든 다른 수병에게 어디를 내리치라고 지시를 했다.  실크는 다시 도끼질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도끼를 내려놓고 그가 뚫어놓은 문짝의 삐죽삐죽한 구멍에 손을, 문짝에는 발을 대고는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해 문짝의 한쪽 부분 전체를 뜯어내버렸다.  그렇게 뜯겨나간 부분 너머에는 빗장이 보였다.  실크의 도끼가 그 위에 반복해서 내리꽂히더니 결국 빗장을 부러뜨렸다.  실크는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도끼를 손에 든 채 그 삐죽삐죽한 구멍을 통해 뛰어들어갔다.

"뒤를 따르라, 제군들 !" 부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를 따라 뛰어들어갔다.

들어온 부분은 요새의 탁 트인 마당이었다.  부시는 죽어 넘어진 사람에게 걸려 넘어졌는데,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한무리의 사내들이 보였다.  그들은 잠옷(shirts) 차림이거나 아예 벌거벗고 있은 상태로서,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을 길게 기른 커피색 얼굴들을 하고 있었고 손에는 해전용 군도(cutlass)와 권총 등을 들고 있었다.  실크가 도끼를 휘두르며 미친 사람처럼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스페인군 하나가 그 도끼에 맞아 쓰러졌다.  그 스페인 병사가 별 소용도 없이 손을 올려 그 도끼를 막다가 잘린 손가락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부시의 눈에 보였다.  부시도 앞으로 달려나가는 동안 권총들이 발사되며 총성이 울렸고 화약 연기가 물결처럼 퍼졌다.  그의 뒤에는 따라오는 수병들이 잔뜩 있었다.  부시의 군도가 스페인군의 칼에 부딪힌 다음 순간 스페인 병사들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부시는 눈 앞에서 달아나는 벌거벗은 어깨에 칼을 내리 꽂았고 비명과 함께 그 살에 뻘건 상처가 그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쫓던 스페인 병사는 망령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부시는 다른 적을 찾아 뛰다가, 군모도 잃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불똥이 튀는 듯한 눈빛으로 귀신처럼 고함을 질러대는 레드 코트 차람의 해병과 마주쳤다.  부시는 그 해병이 자신을 향해 총검을 찔러대는 바람에 그걸 칼로 젖혀내야 했다.

"침착해라, 이 멍청아 !"  부시가 외쳤다.  그는 이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병의 그 미친 듯한 눈빛 속에 자신을 알아보는 듯 하는 표정이 서리더니 총검을 들고 다른 쪽으로 총검을 돌리고는 뛰어가버렸다.  저 뒤쪽에는 다른 해병들도 있었다.  성벽의 포안을 통해 요새 안으로 침입해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모두 싸움의 광기에 취해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이쪽으로도 새롭게 우르르 수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쇠갈퀴가 달린 밧줄로 성벽을 넘어온 패거리들이 성벽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 저쪽을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그것들을 둘러싸고 우글거리고 있었고 그쪽에서는 총성과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 그것들은 병영과 창고일 것이고, 수비대원들은 침입자들의 광기를 피해 그쪽으로 달아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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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아마 제 블로그 출입하시는 분들은 저 half-cock이 어떤 뜻인지 다 이해하시겠습니다만 새로 오신 분들도 일부 있을테니 여기서 다시 한번 설명드립니다.

 

Half-cock이라는 상태를 이해하시려면 먼저 당시의 부싯돌 점화 방식(flintlock)의 머스켓 소총이나 권총의 장전 방식을 아셔야 합니다.

1. 왼손으로 머스켓총을 수평으로 잡고, 격철(doghead=cock=hammer)를 한단계 뒤로 당깁니다.  이를 half-cock 위치라고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방아쇠를 당겨도 격철이 격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점화덮개를 앞으로 밀어서 들어올립니다.  

2. 오른손으로 탄약포를 하나 꺼내 입으로 앞대가리 부분, 즉 머스켓 볼이 든 부분을 입으로 물어 뜯어냅니다.  이때 당연히 총알은 입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총알 뿐만 아니라 화약도 조금 입에 들어갔지요.

3. 입에 납으로 된 머스켓 볼을 문 채로, 손에 든 뜯어진 탄약포를 조금 기울여 점화접시에 약간량의 화약을 부어 넣습니다.  이 동작을 priming, 즉 뇌관 장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점화접시 덮개를 당겨 닫아서, 점화접시를 가립니다.

4. 이제 왼손으로 잡은 머스켓 총을 수직으로 세워 개머리판을 땅에 닿게 세웁니다.

5. 탄약포의 화약을 모두 총구에 들이붓고, 빈 탄약포 껍질도 밀어넣습니다.  이 빈 종이껍질은 화약을 틀어막는 마개(wadding) 역할을 합니다.  이어서 입에 물고 있던 머스켓 볼을 총구에 뱉습니다.

6. 총신 아래에 끼워져 있는 장전봉(ramrod)을 꺼내어, 총구에 끼워진 빈 탄약포 껍질과 머스켓 볼을 총신 저 속 끝의 약실까지 힘차게 밀어넣습니다.  이때 이미 발포한 뒤라면 총강 내부가 타다 남은 탄약포 껍질이나 화약 찌꺼기에 의해 지저분해진 상태이므로, 이렇게 장전봉으로 총알을 밀어넣는 작업은 꽤 힘든 작업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요즘보다 더 총강 내부를 청소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때 빈 탄약포 껍질과 머스켓 볼을 꾹꾹 눌러두지 않으면 화약이 폭발할 때의 가스가 머스켓 볼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지 못합니다.

7. 다시 장전봉을 총신 아래의 홈에 끼워 넣습니다.

8. 머스켓 소총을 다시 들어올리고, 격철을 한단계 더 뒤로 당깁니다.  이것이 full-cock 위치이고, 이제 격발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9.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격철에 끼워진 부싯돌이 점화덮개를 강하게 내리치면서 불꽃이 튀고, 이 불꽃이 점화 접시에 담긴 약간의 화약을 폭발시킵니다.  이 화염이 점화접시 밑부분의 좁은 구멍을 타고 약실에 번져서 약실의 화약을 폭발시키고 총알이 발사됩니다.  이때 점화접시의 불붙은 화약 중 일부는 튀어나와 사수의 뺨에 닿게 되어 따가움과 동시에 시커먼 검댕을 묻히게 되고, 또 총구에서 나오는 화약 연기는 사수의 시야를 거의 완벽하게 가려서 목표물에 명중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게 됩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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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05.27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ally point. 저 구조물이 서구 근대식 요새에서 가장 확실하게 쓰인 전투가 몰타 공방전이었죠. 이전에는 기껏해야 소화용이나 석궁, 소총발사용이었지만 기사단이 포격용으로 쓸 수 있게 성벽을 배조해서 터키군 공성탑을 박살내면서 순식간에 전 유럽에 퍼지게 된 구조물입니다.

    가장 유명한 형태 중 하나가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의 반원형 형태인데 저거 때문에 프랑스군이 1672년 공성전에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탄막이 그대로 펼쳐졌거든요.

  2. 푸른 2019.05.27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전투장면이 되니 몇배는 흥미진진해지네요ㅋㅋㅋ

  3. 이타카 2019.06.03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블로워 드라마에서도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나오는 요새 침투 작전이네요!

2019.05.20 06:30

 

전진이 시작되었다.  석회암이 둥글게 돔처럼 덮힌 반도의 꼭대기 위에는 긴 풀이 자라나 있었고, 간간히 나무도 있었다.  오솔길에서 벗어나면 높이 제멋대로 자란 억센 풀숲 때문에 걷는 것이 약간 어려웠지만 전반적으로는 걷기 쉬운 길이었다.  병력들은 촘촘히 뭉친 채로 대오를 유지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이제 수병들의 눈이 완전히 어둠에 익숙해져서 별빛만으로도 길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혼블로워가 보고했던 도랑은 완만한 경사로 얕게 움푹 파인 것에 불과하여 건너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부시는 화이팅을 옆에 낀 채로 해병들의 선두에 서서 걸었다.  그의 주변은 마치 따뜻한 담요같은 암흑으로 감싸여 있었다.  이 행군에는 뭔가 마치 꿈결같은 분위기가 있었는데, 아마도 부시가 지난 24시간 동안 한순간도 잠을 자지 못한데다 그동안 겪은 피로로 멍해졌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요새가 위치한 곳은 반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었으므로 당연히 오솔길은 완만하게 오르막길이었다.

"아!" 갑자기 화이팅이 소리를 냈다.

오솔길은 탁 트인 바다 쪽에서 멀어져 만으로 향하는 방향, 즉 오른쪽을 향해 굽어졌고, 그들은 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부분을 지나서 이제 만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오른쪽을 보니 만 아래까지가 훤히 보였고, 만 해변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낮게 깔린 구름을 뚫고 수평선 위에 달빛이 약간 비쳤기 떄문이었다.  

"미스터 부시, 부관님 ?"

이건 웰러드의 목소리였는데, 이번에는 좀더 가다듬은 목소리였다.

"여기 있네."

"미스터 혼블로워가 또 저를 보냈습니다, 부관님.  앞에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도랑이 하나 더 있습니다.  게다가 한떼의 가축과 맞닥뜨렸습니다, 부관님.  언덕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그것들을 꺠워서 지금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고맙네, 잘 알겠네."  부시가 말했다.

부시는 그의 지휘 하에 있는 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범한 사내들과 평범 이하의 사내들을 아주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이 인간들이 오솔길을 따라가다 가축떼와 마주친다면 이들은 적과 만났다고 오인할 것이 틀림없었다.  설령 총성이 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력들이 몹시 흥분할 것이고 소음도 요란할 것이었다.

"미스터 혼블로워에게 우린 여기서 15분간 멈춰 있겠다고 전하게."

"예, 부관님."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친 수병들에게 휴식하면서 저 뒤쪽 대오가 따라잡을 기회를 주는 것은 어쨌거나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쉬는 동안 수병들에게 가축떼를 만날 가능성에 대해 한명 한명에게 경고를 주는 것도 가능했다.  부시는 원래 멍청한데다 이렇게 지친 사내들에게 그저 대오를 따라 말을 전달하는 것은 충분치 않을 뿐만 아니라 꽤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명령을 내려 대오를 멈추게 했는데, 졸면서 걷던 수병들은 걷다 멈춘 앞사람과 철커덕 소리를 내며 당연하다는 듯 부딪혔고 궁시렁거리며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퍼졌다.  부사관들이 그런 소란을 조용히 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풀밭에 드러누운 수병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동안 부시관 하나가 또다른 문제거리를 부시에게 보고했다.

"수병 블랙 말입니다, 부관님.  그 녀석 취했습니다."

"취했다고 ?"

"수통에 담아둔 독주를 마신 것이 틀림 없습니다, 부관님.  입에서 술냄새가 나거든요.  그걸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슴다, 부관님." (Dunno 'ow 'e got it, sir.)

휘하에 100하고 80명이나 되는 수병들과 해병들이 있다보니, 그 중에 최소 하나는 취할 만도 했다.  어떻게든 술을 손에 넣고 기회만 되면 취해버리는 재주는 귀나 눈처럼 영국 수병 신체의 일부같은 것이었다.

"지금 어디 있나 ?"

"그 녀석이 소란을 피웠습니다, 부관님.  그래서  귓구녕에다 한방 먹여줬더니 지금은 조용함다, 부관님." (I clipped 'im on the ear'ole an' 'e's quiet now, sir.)

부시의 짐작에, 이 간단한 문장에는 말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더 물어볼 이유도 없었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믿을 만한 수병 하나를 골라서 우리가 출발할 때 블랙과 함께 남겨두고 가게."

"예, 부관님."

결국 상륙조는 술에 취한 블랙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녀석이 더 이상 말썽 못부리게 돌봐줄 수병 하나까지 추가로 잃은 셈이 되었따.  하지만 여태까지 더 많은 낙오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꽤 운이 좋은 셈이었다.

대오가 다시 출발하자 저 앞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혼블로워가 확실해 보이는 후리후리하고 마른 체형의 실루엣이 희미한 달빛을 등지고 나타났다.  그는 부시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걸으며 상황을 보고했다.  

"요새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부관님."

"그런가 ?"

"예, 부관님.  여기서 약 1마일 (1.6km) 떨어진 곳에 도랑 같은 것이 또 하나 나옵니다.  요새는 그 너머에 있고요.  달빛을 등지고 보입니다.  도랑에서 0.5 마일, 어쩌면 그보다 더 가깝습니다.  전위대가 오거든 도랑 앞에서 멈추게 하라는 명령과 함께 거기에 웰러드와 새들러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고맙네."

부시는 울퉁불퉁한 땅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피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먹이 냄새를 맡은 호랑이가 도약을 위해 근육에 힘을 주는 것처럼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부시는 전투 체질이었고, 이제 곧 전투가 벌어진다는 생각은 그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앞으로 해뜨기까지 2시간.  시간은 충분했다.

"도랑에서 요새까지 0.5 마일이라고 ?"  그가 물었다.

"아마 그보다 더 가까울 겁니다, 부관님."

"알겠네.  거기 멈춰서 해뜨기를 기다리지."

"예, 부관님.  제 공격조에 합류하러 가도 되겠습니까 ?"

"가도 좋네, 미스터 혼블로워."

부시와 화이팅은 대오 중에서 가장 느리고 서툰 사람들에게 맞춰 행군 속도를 느리고 꼼꼼한 발걸음 속도로 억제하고 있었다.  부시도 이 순간에는 전투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의 보폭을 막 넓히려는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중이었다.  혼블로워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부시는 그의 걸음걸이가 어색한 것을 보았지만, 이 부하의 넘치는 활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화이팅과 최종 공격 작전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도랑 입구에는 부사관 하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시는 대오 뒤로 멈출 준비를 하라는 말을 전달시킨 뒤, 조금 있다가 대오를 정지시켰다.  그는 앞으로 나가 정찰을 했다.  옆에 화이팅과 혼블로워를 낀 채로 그는 하늘을 배경으로 요사의 직사각형 실루엣을 관찰했다.  심지어 깃대까지도 어두운 직선 모양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행군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사들을 째려보던 그의 얼굴 표정이 이젠 긴박한 상황에서 실종되었던 사람 좋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작전을 위한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져 명령이 나직한 목소리로 이리저리 전달되었으며, 마지막 주의가 내려졌다.  병력을 도랑 속으로 몰아넣었다가 돌격을 위해 포진시켜야 했으므로, 지금이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화이팅의 조용한 한마디에 부시는 다소 머뭇거리며 고민을 했다.

"병력들에게 장전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릴까요, 부관님 ?"

"아니,"  마침내 부시가 대답했다.  "냉병기만 쓴다. (Cold steel.)"

 

 

(총알이 없는 빈 총이라고 해도 저렇게 시퍼런 날의 총검을 꽂으면 꽤 훌륭한 무기가 됩니다.  저런 총검은 사실상 베는 목적으로는 못 쓰고 찌르는 용도로만 쓸 수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이 많은 머스켓 소총에 장전을 허락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장전봉이 딸그락거리는 소음이 필연적인데다, 어떤 바보가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혼블로워는 좌측으로 갔고, 화이팅은 그의 해병들을 이끌고 우측을 행했으며, 부시가 그의 공격조를 이끌고 중앙에 드러누웠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행군으로 인해 다리가 아팠다.  드러누우니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그의 머리는 헤엄을 치는 듯 잠으로 빠져들 것 같았다.  그는 정신을 다시 차리기 위해 일어나 앉았다.  지친 것 빼고는 기다리는 시간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당직이 따르는 다년간의 바다 생활과, 지겹기 짝이 없는 다년간의 전쟁 기간은 그에게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게 했다.  일부 수병들은 바위투성이 도랑에 누웠다가 실제로 잠이 들어버렸다.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났다가 옆사람이 툭 쳐서 깨웠는지 코 고는 소리가 갑자기 뚝 그치는 것을 부시는 여러차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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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5.20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검한 m16하곤 차원이 다르게 깁니다, 간수하기 힘들겠다 싶은데요

    • reinhardt100 2019.05.20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군 예비군 첫해였나? 당시 칼빈 소총탄을 교탄 소모해야 한다고 지원자 받아서 칼빈으로 사격했었던 적이 있었죠. 솔직히 쏘면서 정말 기겁했는데 노리쇠가 덜컥덜컥 거리면서 왔다갔다 했었습니다. 그 때 아 이거 총 터지면 그냥 국군수도병원가네? 생각나더군요.

      그건 그렇고 그때 칼빈이나 M-1용 대검 착검된 것도 봤는데 (물론 날을 죽인 겁니다만) 19세기 이전의 소켓형 총검이나 샤스포나 그라스 소총의 야타간식 총검과는 확실히 다르겠더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야타간식 총검 길이가 최대 70cm가 넘는건데 저거 들고 총검돌격하면 진짜 찌르기가 주된 용도겠다 생각 들었습니다.

  2. 푸른 2019.05.20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전투에 돌입하겠네요. 언덕을 올라오는 것도 흥미진진했는데 전투는 또 얼마나 재밌을까요!

2019.05.13 06:30


제9장

더 시원한 육지에 접근하면서 바닷바람은 멈춰버렸지만, 육지와 바다의 기압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이 한밤중의 바람 한점 없는 시간대였다.  바다 쪽으로 몇 마일만 가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무역풍이 불겠지만, 이 해변에는 눅눅한 고요함이 압도적이었다.  대서양에서 밀려오는 긴 파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첫번째 여울에 부딪히자마자 잠깐 부서지는 듯 하다가 다시 살아나, 마치 한때 건강하다가 최근 병을 앓아 아직 쇠약한 사람처럼 서쪽의 해변에 규칙적으로 부딪혀 거품으로 터지곤 했다.  사마나 반도의 석회암 절벽이 시작되는 이곳에는, 작은 물길이 절벽에 꽤 넓은 협곡(gully)을 파놓은 으슥한 구석이 넓은 해변 맨 동쪽 끝부분에 있었다.  그리고 바다와 파도, 그리고 해변이 모두 불타오르는 듯 했다.  밤의 암흑 속에서 바닷물 속의 인광이 형형하게 빛났고 파도와 함께 치솟아 해변까지 밀려왔는데, 론치 보트들이 해변으로 저어갈 때 노를 환하게 빛냈다.  보트들은 마치 불 위에 떠있는 듯 했는데, 보트가 지나간 자국마다 불빛이 새롭게 피어났다.  그래서 각 론치 보트들은 뒤에 긴 불의 꼬리를 달고 움직였고 노가 물을 저을 때마다 보트의 양쪽에 생생한 긴 자국이 생겼다. 

(바닷물이 이렇게 빛나는 것은 플랑크톤 등의 해양 미생물 때문입니다.)

 



협곡 입구에의 상륙과 등정은 모두 쉬운 일이었다.  론치 보트들이 해변의 모래에 이물을 파묻자마자 상륙조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액체로 된 화염 같은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무기와 탄약포 상자들이 젖지 않도록 그것들을 머리 높이 들어올린 채 걸었다.  상륙 대원 중 경험 많은 뱃사람들조차도 인광의 강렬함에 깊은 인상을 받을 정도였으니, 바다에 익숙하지 않았던 수병들은 그 광경에 흥분하여 소곤소곤 잡담 소리를 크게 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매서운 명령이 쏘아붙여졌다.  부시는 론치 보트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첨벙첨벙 걸어 상륙한 뒤 대지의 익숙하지 않은 견고함 위에 우뚝 섰다.  그러는 사이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상륙했다.  흠뻑 젖은 그의 바지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gully는 원래 도랑이라는 뜻의 단어로서, 빗물이나 시냇물 등의 흐름에 의해 땅이 깎여나간 길고 움푹 들어간 지형을 말합니다.  보통 계곡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작고 좁은 것을 gully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저는 그냥 "꽤 넓은 협곡"이라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번역했습니다.) 



다른 론치 보트 방향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나 그의 앞에 섰다.

"제 공격조는 모두 상륙했습니다, 부관님."  그 그림자가 보고했다.

"좋아, 미스터 혼블로워."

"그러면 제가 전위대와 함께 협곡을 올라갈까요, 부관님 ?"

"그래, 미스터 혼블로워.  명령을 수행하게."

부시는 자신의 금욕적인 훈련과 냉정한 성격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긴장되면서도 흥분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전투를 개시하고 싶었지만 혼블로워와 상의하여 짠 조심스러운 작전 계획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공격조가 열을 지어 집합하는 동안 옆에 비켜 서있었고, 혼블로워는 다른 공격조에게 소리를 질러 명령을 내렸다.

"우현 팀 !  나를 바싹 따라오도록.  모두 바로 앞 사람과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너희들의 머스켓 소총에는 탄약이 장전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라.  적을 만나더라도 방아쇠를 당겨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상황에선 냉병기(cold steel : 화약무기가 아니라 총검이나 군도, 도끼 같은 총성이 나지 않는 무기만 쓰라는 이야기 : 역주)만 써야 한다.  만약 너희 중에 멍청이가 있어서 그 사이에 탄약을 장전해놓았다가 적과 조우시 발포를 한다면 그 녀석은 내일 갑판 중앙통로(gangway)에서 채찍질 48대를 맞을 줄 알아라.  그건 확실히 보장해주마.  울튼 !"

 

(Gangway라는 것은 윗 그림에서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해놓은 것으로서, forecastle(선수갑판)과 quarterdeck(선미갑판)을 연결하는 좌우측의 연결 통로입니다.  중앙의 빈공간에는 주갑판(main deck)이 노출되어 있고, 여기서는 대형 보트가 그 노출 공간에 놓여있네요.  이 그림에서 우현의 gangway는 일부러 널빤지를 깔지 않아 그 밑의 구조물을 노출시켜 놓은 상태입니다.)  

 



"예, 부관님 !"

"뒤쪽 열을 이끌도록.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  우측열부터 전진."

혼블로워의 공격조는 열을 지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해병들도 이미 상륙을 시작했는데, 인광을 배경으로 하니 그들의 주홍색 자켓이 시커멓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줄을 맞춰 서니, 하얀색 십자 밴드(crossbelt)들이 희미하게 2열로 줄지어 선 것이 보였다.  부사관들이 해병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땍땍거리며 명령을 날렸다.  왼손으로는 여전히 군도 자루를 쥔 채, 부시는 오른손을 더듬어 벨트에 찬 권총들과 주머니에 든 탄약포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림자 하나가 그들 앞에 서더니 발뒤꿈치를 절도있게 철컥 붙였다.

"전원 집합 이상무입니다, 부관님.  행군 준비 완료."  화이팅의 목소리였다.

"고맙네.  출발해도 좋네.  미스터 애벗 !"

"부관님 !"

"자넨에겐 따로 받은 명령이 있지.  나는 해병 분견대와 함께 출발하겠네.  우리를 따라오도록."

"예, 부관님."

협곡을 따라 기어오르는 것은 꽤 길고 힘든 길이었다.  바닥을 덮고 있던 것이 곧 모래에서 넓고 평평한 석회암 바위로 바뀌었는데, 이 북쪽 사면에 풍부하게 내리는 열대우 덕분에 이 석회암 바위 틈에서도 억센 수풀이 자라나 있었다.  협곡 바닥의 물길 자체만 평탄한 통로가 될 수 있었다.  모든 물이 석회암 사이로 빠져들어가 지금은 물길이 말라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사실 물길 바닥면도 평탄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바닥이 울퉁불퉁한데다 가파른 바위면이 솟아있어 부시는 그 위를 기어올라야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는 땀을 줄줄 흘려야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기어올랐다.  그의 뒤로 해병들이 서투르게 기어오르며 장화를 부딪히고 무기와 장비를 철컥거렸기 때문에, 1마일(1.6km) 떨어진 곳에서도 이 소음을 다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미끄러져 넘어지며 욕을 했다.

"니 머리통 속 그 혓바닥 조용히 못 시켜 ?"  상병 하나가 땍땍거렸다.

"조용 !"  화이팅이 고개를 돌려 으르렁댔다.

전진 또 전진.  여기저기서 수풀이 하도 높게 자라 희미한 별빛을 가릴 정도였다.  부시는 아주 건장한 사내였지만 바위를 더듬어 기어오르다보니 숨이 가빠올랐다.  기어오르며 보니 여기저기서 반딧불이 보였다.  몇 년만에 보는 반딧불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해병들은 반딧불을 보고는 더 참지 못하고 잡담이 튀어나왔다.  부시는 저런 멍청한 잡담으로 그들 자신의 목숨은 물론 전체 작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저 통제불능 녀석들에게 분통이 터졌다.  

"저 녀석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부관님."  화이팅이 말하고는 뒤따르는 해병들의 대오가 자신을 지나치도록 뒤로 빠졌다.

더 위에서는 나름대로는 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끽끽거리는 목소리 하나가 어둠 속에서 그를 반겼다.

"미스터 부시 맞으신가요 ?"

"맞네."

"저 웰러드입니다, 부관님.  미스터 혼블로워가 저를 길잡이로 내려보냈습니다.  여기 바로 위쪽부터는 초원지대가 펼쳐집니다."  알겠다고 부시가 대답했다.

그는 잠시 서서 자켓 소매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러는 동안 해병들이 그의 뒤에 따라 붙었다.  다시 출발하니 오를 길이 그다지 많이 남지는 않았었다.  웰러드는 한무리의 어둑어둑한 나무들을 지나쳐서 그를 이끌었는데, 걷다보니 부시의 발 밑에 풀밭이 느껴졌다.  계속 오르막길이긴 했지만 아까의 협곡에 비하면 아주 완만한 경사에 불과하여 걷기가 훨씬 편해졌다.  이제 그들의 앞길에는 그리 힘들 것이 없어 보였다.

"아군입니다."  웰러드가 말했다.  "이쪽은 미스터 부시가 계십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부관님."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혼블로워였다.

혼블로워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보고했다.

"제 공격조는 바로 앞 쪽에 정렬해있습니다, 부관님.  새들러와 함께 믿을 만한 친구 두 명을 정찰조로 먼저 보내놓았습니다."

"잘했네."  부시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건 진심이었다.

해병 부사관이 화이팅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전원 집합 완료했습니다, 대위님.  채프먼 빼고요, 대위님.  그녀석은 지 말에 따르면 발목을 삐었답니다, 대위님.  저 뒤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대위님."
("All present, sir, 'cept for Chapman, sir. 'E's sprained 'is ankle, or 'e says 'e 'as, sir. Left 'im be'ind back there, sir.  :  런던 코크니 토박이 발음에서는 H 발음이 없다더니... 역주)

"병사들 쉬라고 하게, 화이팅 대위." 부시가 말했다.

전열함의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것은 열대 지방의 절벽을 기어오르는 행군에 대한 훈련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전날 그렇게 기진맥진하게 고생한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해병들은 드러누웠고, 그 중 일부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끙끙 앓는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런 신음소리에 대해 해병 부사관은 매서운 발길질로 못마땅함을 표시했다.

"우린 이쪽 능선에 서있습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저기 저쪽면에서는 만 안쪽을 내려다 보실 수 있습니다."

"요새로부터는 3마일 정도 될까, 어떻게 생각하나 ?"

부시는 질문으로 그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지휘관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블로워의 보고 준비가 하도 잘 되어 있어서 부시는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요.  최대로 쳐도 4마일 이내입니다, 부관님.  지금부터 4시간 후면 동이 트고, 달은 30분 후에 뜹니다."

"그렇지."

"짐작하셨겠지만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요새가 나올 겁니다."

"그래."

혼블로워는 분명히 부하 노릇을 잘 하는 친구였다.  부시는 이제서야 반도의 능선을 따라 자연적으로 생긴 오솔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사실 그 순간까지 그에겐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었다.

혼블로워가 계속 말했다.  "허락만 해주시면 제 공격조의 지휘를 제임스에게 맡기고 저는 새들러와 웰러드를 데리고 먼저 가서 지형이 어떤지 보고 오겠습니다."

"좋네, 미스터 혼블로워."

하지만 혼블로워가 떠나자마자 부시에겐 모호한 짜증이 느껴졌다.  가만 생각해보니 혼블로워는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부시는 그의 권위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생각들은 수병들의 제2 공격조가 도착하면서 날아갔다.  이들은 선발대를 따라 잡느라 땀을 흘리며 헐떡거렸다.  그도 방금 전 도착했을 때 얼마나 지쳤는지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에 부시는 그들에게 병력을 합해 출발하기 전에 좀 쉴 시간을 주었다.  어둠 속에서도 한무더기의 벌레들이 병사들의 땀냄새에 이끌려 날아왔고, 부시의 귓가에도 한떼의 벌레들이 웽웽거리며 기회가 날 때마다 그를 물어댔다.  리나운 호의 선원들은 바다에 오래 나가있었으므로 피부도 부드럽고 물기에 딱 좋았다.  부시는 철썩 자기 귓가를 때리며 욕을 했고, 그의 지휘 하에 있는 모든 수병들이 그렇게 했다.  (*PS1 참조)

"미스터 부시, 부관님 ?"

다시 혼블로워였다.

"뭔가 ?"

"분명한 오솔길입니다, 부관님.  바로 앞에서 도랑을 가로지르게 되지만 심각한 장애물은 아닙니다."

"고맙네, 미스터 혼블로워.  전진하겠네.  자네 공격조부터 출발시키게."

"예, 부관님." 

 

 

 

*PS1) 당시 자메이카, 산토 도밍고 등의 카리브 해 지역은 하얀 황금, 즉 설탕이 나는 섬이기도 했지만 황열병 때문에 죽음의 섬이기도 했습니다.  황열병은 원래 서아프리카에서 노예들과 함께 들어온 병인데,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아마도 모기의 알이나 애벌레가 노예선에 실린 채 카리브 해에 온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고 합니다.  황열병은 마을이나 요새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는 특히 저렇게 야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농부들이나 군인들에게 많이 발생했습니다.  모기는 고인 물이 있는 곳에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야외에 주로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카리브 해 지역에서는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적과 싸우느라 산과 들을 헤매다보면 전사자보다는 병사자가 훨씬 많은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아이티, 즉 생 도밍그(=산토 도밍고)의 노예 반란이 성공한 것도 결국 저 황열병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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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Tn 2019.05.13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이 육군상대로 육지에서 요새 기습이라니... 정말 별세계 광경이네요 ㅎㅎㅎ

  2. 2/28일 입대 2019.05.13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부사관 승진이 가능한데도. 부사관 정도면 병을 막 걷어 찰 수 있었나봐요 의외네요;;

  3. [][] R.F.[][] 2019.05.13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그렇듯이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인광이란게 신기하기도 하고 엄청 아름다운데, 위와 같은 작전(기습) 상황에서라면 자칫 임무수행에 지장이 될 수도 있겠군요.

2019.05.06 06:30



버클랜드는 결정 장애로 괴로와하면서 (in painful indecision) 그의 두 하급 장교를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부시는 그런 그에게 동정심이 느껴졌다.  만약 이 두번째 공격이 처참하게 실패한다면, 특히 전체 상륙조가 고립되어 항복이라도 해야 한다면 버클랜드의 미래는 확실하게 끝장나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요새를 점령한다면, 함장님," 혼블로워가 말을 이었다.  "만 안에 있는 사략선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그 만을 정박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건 사실이지."  버클랜드도 동의했다.  그것이 그가 받은 명령을 아주 깔끔하고도 경제적으로 완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게 성공한다면 그의 평판은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다.

리나운 호가 파도를 타면서 전함의 목판들이 박자에 맞춰 삐걱거렸다.  무역풍이 선실 안으로 불어들어왔고, 선실 안의 갑갑함을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부시의 땀투성이 얼굴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빌어먹을."  버클랜드가 갑자기 신중함을 떨쳐버리고는 결정을 내렸다.  "하자구."

"알겠습니다, 함장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부시는 그 결정에 기쁨을 드러내는 말을 뭔가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혼블로워도 중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했다.  버클랜드를 너무 노골적으로 행동 쪽으로 몰아붙이면 역효과를 내어 지금이라도 버클랜드가 결정을 번복하는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

비록 이 결정이 내려지긴 했어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결정을 하나 더 내릴 것이 남아 있었다.  

"누가 상륙조를 지휘할 거지 ?" 버클랜드가 물었다.  그건 사실 수사적인 질문이었다.  버클랜드 말고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부사와 혼블로워에게 명백했다.  그들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불쌍한 로버츠가 살아 있었다면 그의 의무였을텐데 말이야."  버클랜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부시 쪽을 돌아보았다.

"미스터 부시, 자네가 지휘를 맡게."

"예, 함장님."

부시는 의자에서 일어나 낮은 갑판 들보에 부딪히지 않도록 고개를 불편하게 숙인 채 섰다.

"자네와 함께 상륙할 사람으로 누구를 데리고 가고 싶은가 ?"

혼블로워는 이 회의 내내 일어나 있었는데, 이제 그는 몸의 중심을 이쪽 발에서 저쪽 발로 왔다갔다 옮겨가며 초조해 하고 있었다.

"제가 더 필요하신지요, 함장님 ?"  혼블로워는 버클랜드에게 말했다.

부시는 그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는 혼블로워 내면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공손하고 성실한 장교로서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부시는 전함에 남아 있는 부관인 스미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는 당연히 상륙조에 포함될 해병 대위인 화이팅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또 하급 장교로 활용될 수 있는 사관생도들과 보조 항법사들이 있었다.  그는 이제 위험하고 절박한 전투 작전의 책임을 맡아야 했다.  작전에 들어가면 그 성공은 버클랜드의 근무 고과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그 자신의 근무 고과에도 영향을 주는 중대한 일이 될 것이었다.  이런 일, 그러니까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이 떄에 그는 누구를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을까 ?  만약 그가 다른 부관을 한 명 더 요청한다면 그는 상륙조의 지휘 서열 2위를 맡게 될 것이며, 현장에서 뭔가 결정을 내릴 때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었다.

"이 자리에 미스터 혼블로워가 더 필요한가, 미스터 부시 ?"  버클랜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적극적인 차석 지휘관이 될 재목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가만히 있질 못하는 차석 지휘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었다.  그는 툭하면 - 최소한 머리 속으로는 - 비판적으로 나올 것이었다.  그는 그의 명령 하나하나를 혼블로워가 다 듣고 있는 자리에서 지휘관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시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논쟁은 장점과 단점을 또박또박 짚어가며 명확히 틀을 짜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그의 다년간의 경혐에서 비롯된 편견과 본능의 충돌이었고, 그런 것을 부시는 말로 명확히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혼블로워도 스미스도 필요없다고 막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에 혼블로워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혼블로워는 그냥 무표정인 얼굴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으나, 부시의 동정어린 눈에는 혼블로워가 이 상륙조에 끼고 싶어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가 훤히 보였다.  물론 어떤 장교라도, 자신을 빛나게 할 기회가 되는 이런 작전에 당연히 끼고 싶어할 것이었다.  그러나 혼블로워를 요동치게 만드는 것은 그것보다는 좀 더 긴박한 동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손은 양 옆에 '차렷' 자세로 있었으나, 부시가 보니 그의 긴 손가락은 넓적다리를 초조하게 톡톡 두드리다가 자제하다가 다시 못 견디고 두드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부시가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은 냉정한 판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친절 때문이었다.  어쩌면 애정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덧 이 불안하고 다재다능한 젊은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육체적 용기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는 미스터 혼블로워를 함께 데려갔으면 합니다, 함장님."  그는 말했다.  이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그의 자유의지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형이라면 뭔가 신나는 일을 할 때 부담이 좀 되더라도, 그저 친절한 마음에서 훨씬 어린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그가 이 말을 하자 그에 호응하여 혼블로워가 부시에게 눈길을 던졌는데, 그 눈빛을 보니 개인적 감정을 섞어서 결정을 했다는 후회가 싹 사라져버렸다.  혼블로워의 눈빛에는 안심과 함께 고마움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서, 부시는 마치 자기가 굉장히 친절한 아량을 베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결정함으로써 자기가 더 위대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혼블로워를 사지로 끌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 혼블로워가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부시에게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알겠네, 미스터 부시." 버클랜드가 말했다.  그에게 흔한 일이었지만, 결정을 하고나서 그는 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나면 내게는 부관이 한명 밖에 안 남는군."

"카베리가 당직을 맡을 겁니다, 함장님."  부시가 대답했다.  "그리고 당직 사관 역할을 잘 해낼 보조 항법사가 몇 명 있습니다."

부시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물 듯 반대에 대해 반박으로 맞서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알겠네." 버클랜드는 거의 한숨을 내쉬다시피하며 다시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뭐 때문에 안절부절한 건가, 미스터 혼블로워 ?"

"아무것도 아닙니다, 함장님."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 것 같은데.  까놓고 말해보게. (Out with it)"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함장님.  기다려도 되는 일입니다.  다만 항로 변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함장님.  지금 스캇치맨 만으로 항로를 변경하면 시간 낭비를 없앨 수 있습니다."

"그렇겠군."  해군 내의 모든 장교들처럼 버클랜드도 바람과 날씨는 언제든 변덕을 부릴 수 있으며, 따라서 바다에서 뭔가 결정을 내리면 절대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옆구리를 찔러주지 않으면 자꾸 그걸 잊는 것 같았다.  "그래, 알겠네.  그러면 당장 전함을 순풍 방향으로 항로를 변경하는 것이 좋겠군.  지금 항로는 어느 방향이지 ?"

전함의 항로를 변경하는 난리법석이 잦아든 뒤 버클랜드는 일행을 데리고 그의 선실로 돌아가 지친 듯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새삼스럽게 다시 시작된 걱정으로 초조하다는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변덕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당분간은 미스터 혼블로워가 만족스러워하겠군."  그는 말했다.  "이제 자네가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게, 미스터 부시."

상륙작전에 대한 토의는 편성할 수병들과 그들에게 지급할 장비들, 다음날 아침 어디서 어떻게 랑데뷰할 것인지 등에 대해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이런 사항들이 정리되는 동안 혼블로워는 나서지 않고 학구적인 태도로 뒤쪽에 잠자코 있었다.

"뭐 제안할 거라도 있나, 미스터 혼블로워 ?" 부시가 결국 물었다.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예의상으로라도 그렇게 질문을 해야 했다.  

"딱 하나 있습니다.  줄을 연결한 보트 갈퀴(boat grapnel)들을 좀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새 벽을 기어올라야 한다면 그것들이 유용할 것입니다."

 

(해전을 벌일 때 상대편 군함이나 보트에 던져 넣어 잡아당길 때 사용되는 보트 갈퀴입니다.)



"그렇겠군."  부시도 동의했다.  "그것들이 지급되도록 신경써주게."

"예, 부관님."

"전령이 필요한가, 미스터 혼블로워 ?"  버클랜드가 물었다.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함장님." 

"누구 특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나 ?"

"괜찮으시다면 웰라드가 좋겠습니다, 함장님.  침착하고 생각이 빠른 친구입니다."

"알겠네."  버클랜드는 웰라드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듣고는 혼블로워를 째려보았으나 (웰라드는 소여 함장이 햇치 통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함장 수행 능력을 상실하게 된 사건과 관련이 되었던 사관생도입니다 : 역주) 당장은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 하지 않고 넘어갔다.

"다른 건 없나 ?  없다고 ?  미스터 부시는 ?  모두 된건가 ?"

"예,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버클랜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두두 두들겼다.  방금 항로를 변경한 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그의 결정이 확고히 굳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명령을 내린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수병들을 잠에서 깨워서 무기를 지급하고 상륙에 대한 지시사항을 전달한다면 더 이상 그 결정을 철회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될 것이었다.  다시 시도했다가 혹시 실패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대참사가 되는 셈이었다.  성공을 이끌어내는 것은 그의 권한 밖의 일일지 몰라도, 실패를 회피하는 것은 분명히 그의 권한 내의 일이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를 몰인정하게 쳐다보고 있는 두 부하 장교의 시선과 눈을 마주쳤다.  아니야, 이미 철회하기엔 늦었어.  나중에라도 철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그의 실수였다.  그는 철회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명령을 전달하는 일만 남았군."  그는 말했다.  "그렇게 전달되도록 해주겠나 ?"

"예,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부시와 혼블로워가 막 선실을 나서려는 찰라에 버클랜드가 오랫동안 묻고 싶었던 질문을 마침내 했다.  이 질문은 혼블로워가 웰라드를 언급하면서 궁금증이 다시 피어난 것이긴 했지만, 이 질문을 하려면 갑자기 대화 주제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뭔가 결정을 내렸다는 성취감으로 뿌듯해하고 있던 버클랜드는 용기를 내어 이 질문을 마침내 꺼냈다.  어쨌거나 이건 기분이 고조되는 순간이었으므로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미스터 혼블로워." 그는 말하자 혼블로워는 문 가에 멈춰섰다.  "대체 함장님은 어쩌다 햇치 통로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지 ?"  

부시는 혼블로워의 얼굴에서 그 열정 넘치는 표정이 싸악 사라지고 무표정의 가면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1~2초 정도가 걸렸다.

"아마 균형을 잃으셨던 것 같습니다, 함장님."  혼블로워는 매우 정중하지만 전혀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함이 그날밤 요동이 심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함장님."    (누군가 함장을 햇치 통로 아래로 떠밀어버린 것 같긴 한데, 사람들은 웰라드 혹은 혼블로워 둘 중 하나가 그랬다고 의심들 하고 있습니다. : 역주)

"그랬던 것 같네." 버클랜드가 대답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실망감과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혼블로워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 얼굴에서 얻어낼 정보는 전혀 없었다.  "아, 알겠네. 하던 일 계속 하게."

"예, 함장님."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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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이예 2019.05.06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댓글 영광을.
    빌어먹을." 부시가 갑자기 신중함을 떨쳐버리고는 결정을 내렸다. "하자구." "알겠습니다, 함장님."
    함장님이라고 답한건 봐서는 앞에 부시가 말한게 아니라 함장인 버클랜드가 아닐까 합니다.
    매번 좋은글감사합니다.

  2. 푸른 2019.05.06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더 흥미진진해지네요! 다음편이 기다려지는군요ㅎㅎ

  3. ㅇㅇ 2019.05.06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함장은 어떤 이유로 넘어지게 되었던 건가요?
    원서라도 사서 봐야겠네요!

  4. 진충보국 2019.05.19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주인장님의 해박한 지식에 항상 놀라고 있습니다^^! 근데
    '항법사' 도 좋지만 '항해사' 로 바꾸시는건 어떤가요? 항법사 하면 공군 느낌이 나는것 같습니다만ㅎㅎ

2019.04.29 06:30

 


혼블로워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도 서둘러 끼워입은 티가 나는 모습으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재빨리 선실에 나타났다.  들어서면서 그는 초조한 듯이 선실을 둘러 보았는데, 왜 상관들이 있는 이 선실로 소환이 되었는지에 대해 불안해하며 마음 고생을 한 것이 분명했고, 그 불안함은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들은 이 작전 계획이란 게 대체 뭔가 ?" 버클랜드가 물었다.  "듣자하니 요새를 습격하는 것에 대해 뭔가 제안할 것이 있다더군, 미스터 혼블로워."

혼블로워는 즉각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논점에 대해 정리하고 이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그의 최초 작전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부시는 리나운 호의 공격 시도가 실패하는 바람에 기습이라는 초기 이점을 잃은 상황에서 그의 작전 계획에 대해서 말하라고 요청받는 것은 혼블로워에게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시가 보아하니 혼블로워는 그의 생각을 재정리하고 있었다. 

"저는 상륙 작전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장님."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스페인놈들(Dons : 스페인 사람들을 비하하는 명칭)이 인근에 전열함이 와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젠 가능성이 없다라는 이야기인가 ?"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실망이 뒤섞인 듯 했다.  안도는 그가 더 이상 뭔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실망은 성공을 거둘 뭔가 쉬운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혼블로워는 이제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과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그게 보였다.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긴 합니다, 함장님.  즉각 실행하기만 한다면요."

"당장 ?"  지금은 한밤중이었고 수병들은 지친 싱태였다.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제안에 대한 놀람이 드러났다.  "오늘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

"오늘밤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스페인놈들이 우리가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  표현 죄송합니다, 함장님.  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그들이 본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석양 무렵에 사마나 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지요.  걔들은 아주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얼마나 그럴지 잘 아실 겁니다, 함장님.  그러니 육지쪽 다른 방면으로부터 새벽에 공격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부시에게는 그럴 듯 하게 들렸다.  그는 그에 동조하는 작은 소리를 냈는데, 그게 이 토의에서 그가 기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험이었다.

"이 공격을 자네라면 어떻게 조직하겠나, 미스터 혼블로워 ?"  버클랜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이제 그의 생각을 완전히 정리해놓고 있었다.  얼굴에 지친 표정이 사라지더니 이젠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스캇츠맨 만을 향하기에 바람이 좋습니다.  아마 2시간 안에, 그러니까 자정 이전에 그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상륙조를 짜서 준비시켜 놓을 시간이 충분합니다.  수병 100명과 해병들을 동원하면 됩니다.  거기에 상륙하기 좋은 해변이 있더군요.  어제 보았지요.  거기 내륙은 습지투성이일 겁니다.  반도의 언덕이 다시 시작되는 곳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습지의 반도쪽 측면에 상륙할 수 있습니다.  어제 그 지점을 봐놨습니다, 함장님."

"그래서 ?"

혼블로워는 거기까지 이야기해줘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더 나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흠칫 깨달았다.

"상륙조는 능선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함장님.  길을 잃거나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 쪽은 바다고 다른 쪽은 사마나 만이니까요.  그들은 능선을 따라서 전진하면 됩니다.  그러면 새벽에 요새를 습격할 수 있습니다.  습지와 절벽이 있으니 스페인놈들은 그 쪽으로는 경계를 소홀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함장님."

"자네 말에 따르면 굉장히 쉽게 들리는군, 미스터 혼블로워.  하지만 180명이라고 ? (PS2 참조 : 역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함장님."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

"그 요새에서 우리에게 발포한 대포는 모두 6문이었습니다.  최대로 따져 봐도 그 요새의 인원수는 아마 90명, 아마 60명이 더 맞을 겁니다.  탄약조와 가열로에서 일하는 인원을 다 합해도 150명 정도일 겁니다.  어쩌면 100명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들 병력 전부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

"스페인놈들은 섬의 그 쪽으로부터는 우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흑인 반란노예들과 어쩌면 프랑스군, 그리고 자메이카의 영국군에 대해 방비하고 있지요.  흑인들이 습지를 지나 그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험이 도사라는 쪽은 사마나 만의 남쪽입니다.  스페인놈들은 머스켓 소총을 쥘 수 있는 인원은 모조리 그 쪽에 배치했을 겁니다.  그 쪽이 도시가 있는 쪽이고 그 쪽이 이 투쌩(Toussaint : 아이티의 노예 반란 지도자.  PS1 참조)인지 뭔지 하는 친구가 으르렁 대고 있는 쪽입니다, 함장님."

이 긴 말의 마지막 단어는 뒤늦게나마 운 좋게 생각해낸 덕분에 나온 것이었다.  분명히 혼블로워는 뻔한 내용을 상관에게 너무 설교하듯 지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부시는 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온 흑인들과 프랑스군 이야기에 버클랜드가 불편해서 몸을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시는 볼 자격이 없었던 그 비밀 명령서에는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아이티 동부입니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관련된 무언가 과감한 지시 사항들이 담겨있음이 틀림없었다.  산토 도밍고에서는 반란 노예들과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서로 패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형식적으로나마 동맹 관계인데도 그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 일에서 흑인들과 프랑스군은 일단 빼지."  버클랜드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부시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예, 함장님.  하지만 스페인놈들은 안 그럴 겁니다."  혼블로워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은 우리보다는 흑인들을 더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넨 이 공격이 성공할 것 같다는 거지 ?"  버클랜드는 화제를 바꾸려 애를 쓰며 말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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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투쌩과 아이티(생 도밍그 = 산토 도밍고) 노예 반란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link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nasica1.tistory.com/84

(전형적인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HMS Bellerophon 입니다.  2열의 포갑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PS.2  혼블로워가 '수병 100명과 해병들'이라고 말하니까 버클랜드가 '180명?'이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리나운 호의 해병 숫자는 총 80명 정도로 보입니다.  실제로 당시 74문짜리 전열함의 총 승조원 숫자는 대략 500~650명 정도인데, 전열함에 탑승하는 해병의 숫자는 대략 포 1문당 1명 플러스 장교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략 74문짜리 전열함에는 80여명이 탑승하는 것이 맞습니다.

Source : http://www.britishmedals.us/collections/GA/brady.html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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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4.29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다 봤는데 전투부터 분위기 까지 묘사력이 장난 아니네요 ㄷㄷ 번역 감사드립니다. 너무 재밌어요
    혼블로워의 작전이 성공할지 기대됩니다

  2. 2/28일 입대 2019.04.29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 여전히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해병의 임무가 수병들의 통제에 있는데 인원수 기준이 수병 몇 명 당 해병 몇 명이 아니라 포 한 문당 한 명이라는게 신기하네요.

    • eithel 2019.04.29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 시대에서는 포 수=함의 전투력=함의 크기=승조원 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를 칭할 때 몇톤급, 몇명급이라고 하지 않고 74문짜리 전열함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