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451 라이프치히 전투 (2) - 뮈라의 전초전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전투 전에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라이프치히 주변을 남북과 동서로 어지럽게 가로지르는 플라이서(Pleiße), 바이서 엘스터(Weiße Elster, 하얀 엘스터), 파르터(Parthe)의 세 지류들은 하나하나가 1개 군단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엘베강 같은 커다란 강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이 지류들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대의 이동을 크게 지연시키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를 선점하고 자신의 방어선 안쪽의 다리들을 제외한 그 일대의 다리들을 미리 파괴해 놓으면 연합군의 움직임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 강들 중 바이서 엘스터가 가장 큰 강이었고 파르터와 .. 2025. 6. 2. 라이프치히 전투 (1) - 사지(死地)인가 생지(生地)인가? 10월 14일 정오 무렵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에 도착하면서 이제 우리는 라이프치히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격적인 전투 시작에 앞서, 왜 나폴레옹은 하필 라이프치히에서 운명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폴레옹하면 우리는 백마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모습을 흔히 연상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폴레옹은 전장으로 이동할 때 마차를 탔습니다. 이는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출신치고는 말 타는 것에 꽤나 미숙한 편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누가 뭐래도 말을 타는 것은 의외로 꽤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바트 뒤벤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나폴레옹이 마차를 타고 35km를 이동하여 라이프치히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는데, 속력을 계산해보면 대략 7km/h로서 완전무장한 병.. 2025. 5. 2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8) - 슈바르첸베르크는 손빈급 10월 13일 늦은 밤과 14일 새벽에 블뤼허의 사령부로 쏟아져 들어온 정찰 보고는 그의 3가지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해주었습니다. 바트 뒤벤에서 대규모 병력이 라이프치히로 이동함과 동시에 약 1만5천의 군단급 병력이 블뤼허가 있는 할러 방향으로 이동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온 것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할러 방면으로 이동하는 군단은 마르몽의 제6군단으로서, 이는 명백하게 블뤼허가 라이프치히로 향하는 것을 막으려는 견제 부대가 분명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분명해지면 베르나도트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고 해도 라이프치히로 달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도 베르나도트 역시 14일 낮에 블뤼허에게 편지를 써보냈으며, 그 내용은 15일 새벽에 전군을 이끌고 블뤼허와의 합류를 위해 할러 방면으로의 강행군을 .. 2025. 5. 19.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7) - 전쟁의 안개 나폴레옹의 기습을 피해 할러로 피신했던 블뤼허에게는 3가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베르나도트, 전쟁의 안개, 그리고 탄약이었습니다. 첫째, 원래부터 베르나도트는 블뤼허와 그의 프로이센 장군들에게는 나폴레옹보다 더 얄밉고 믿을 수 없는 얌체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블뤼허는 잘러강을 건너 할러로 후퇴를 시작하기 전에 어떻게든 베르나도트를 자신보다 더 먼저 남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려 애썼습니다. 베르나도트에게 내세운 핑계는 나폴레옹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이 방패 역할을 할 테니 베르나토트의 북부 방면군은 안전하게 먼저 남쪽으로 가시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가 블뤼허보다 용기 측면에서 좀 떨어질지는 몰라도 지능은 훨씬 뛰어났습니다. 블뤼허의 속셈은 자신이 .. 2025. 5. 12.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6) - 나폴레옹의 변덕 나폴레옹이 빋은 편지는 바로 전날인 10월 11일 뮈라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10일에 보르나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러시아군을 무찌르고 전선을 확보했다던 뮈라는 불과 하룻만에 전혀 다른 소식을 전했습니다. 슈바르첸베르크가 후퇴하는 듯 하더니 오히려 더 증강된 병력을 내세워 전진하고 있으며, 중과부적으로 자신은 이미 라이프치히 외곽인 크뢰번(Cröbern)까지 후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건 뷔르첸까지 진격했을 때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불과 5만 정도의 병력을 가진 뮈라가 몇 배의 병력을 거느린 슈바르첸베르크의 북진을 언제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나폴레옹은 이미 전군을 작센에서 빼내 엘베강 우안으로 건너가 식량이 풍부한 브란덴부르크에서 작전을 펼치기로 모든 계획.. 2025. 4. 28.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5) - 집착이 모든 것을 망친다 전장을 작센에서 브란덴부르크로 옮겨버리기 위해 엘베강 우안으로 건너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나폴레옹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정보였습니다. 일단 블뤼허건 베르나도트건 대체 적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공격을 하든 말든 할텐데, 그들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했습니다. 더욱 혼란스럽게도, 사방으로 풀어놓은 척후들과 간첩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첩보를 종합해본 결과로는, 블뤼허는 강을 건넜던 교두보인 바르텐부르크가 아니라 베르나도트의 교두고가 있는 데사우로 간 것 같았습니다. 특히 모크레나에서 용하게 후퇴했던 자켄도 데사우에서 블뤼허의 본대와 합류했다는 소식도 들어왔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블뤼허가 바우첸에서 바르텐부르크까지 5일간이나 북서쪽으로 강행군한 이유는.. 2025. 4. 2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4) - 브란덴부르크로 간다 바트 뒤벤 성(Schloss Schnaditz, 또는 Bad Düben Schloss)에 도착한 나폴레옹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남부 전선에서 보헤미아 방면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던 뮈라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보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군이 페니히(Penig)를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비트겐슈타인이 이끄는 러시아군 약 2만5천이 알텐부르크와 자이츠(Zeitz) 사이를 통해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페니히와 자이츠를 잇는 거리는 약 48km로서, 원래 나폴레옹이 뮈라에게 지키라고 지시했던 보르나(Boran)부터 로슐리츠(Rochlitz) 사이의 약 30km 전선보다 훨씬 긴 거리였습니다. 뜻하는 바는 뮈라는 보르나-로슐리츠 전선을 지킬 수 없을 것이므로 결국 라이프치히로 후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습.. 2025. 4. 1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3) - 보고서를 닥달하는 이유 10월 9일 오전 나폴레옹이 블뤼허를 잡겠다고 멀더강을 따라 바트 뒤벤으로 밀고 올라가는 동안, 랑쥬롱의 러시아 군단과 함께 바트 뒤벤에 있던 블뤼허는 휘하 각 군단들에게 라이프치히로의 진격을 취소한다는 명령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블뤼허에게 들어온 여러 첩모에 따르면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로 직행하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후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9일 오후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그랑다르메 병력이 멀더강 좌우 강변을 따라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날아온 보고서는 그 날 아침 7시경 아일렌부르크 동쪽의 모크레나(Mockrehna)에 있던 자켄(Fabian Gottlieb von der Osten-Sacken) 장군이 보낸 것이었는데, 그때만.. 2025. 4. 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2) - 나폴레옹 버프는 없다 10월 7일 오전, 마이센으로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 벤너비츠(Bennewitz)에서 보내온 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당장이라도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 같아 보이던 블뤼허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멀더강의 우안에 멈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먼저 엘베 강변의 프랑스군 요새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포위 공격을 마무리하여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뒤에 움직이려는 것 같다는 네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네는 결단성과 용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자였으나 결코 지략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네의 추측성 보고를 나폴레옹이 100% 믿었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때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보고만 골라서 믿.. 2025. 3. 3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1) - 전진과 철수 나폴레옹에게는 블뤼허와 베르나도트를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괴멸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전투에서 이들을 패배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번에도 이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당장 라이프치히로 무작정 달려가기 보다는, 먼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뒤 먼저 엘스터와 데사우의 다리들, 즉 블뤼허와 베르나도트의 탈출로부터 끊기로 합니다. 이건 너무 낙관적으로 승리를 자신하는 행위 아니었을까요? 나폴레옹은 블뤼허-베르나도트와의 결전에서 패배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1차적인 계획은 먼저 마이센으로 간 뒤, 거기서 정보를 더 획득하여 그에 따라 토르가우로 갈지 뷔르첸으로 갈지 정한다는 것이었.. 2025. 3. 2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0) - 나폴레옹의 산수 동쪽 바우첸 일대에서 대치 중이던 블뤼허가 난데 없이 전군을 이끌고 북쪽 바르텐부르크에 나타났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뻔했습니다. 바로 베르나도트와 합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제 막 남쪽 보헤미아 방면군이 얼츠거비어거 산맥을 넘어 켐니츠 남서쪽 방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 할 나위 없이 분명했습니다. 연합군은 남쪽과 북쪽에서 일제히 움직여 라이프치히에서 합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연합군의 3개 방면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고, 나폴레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의도를 파악하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앞이 보이지 않던 외통수에서 벗어날 기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27일 .. 2025. 3. 1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이전 1 2 3 4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