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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뤼허2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2) - 나폴레옹 버프는 없다 10월 7일 오전, 마이센으로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 벤너비츠(Bennewitz)에서 보내온 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당장이라도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 같아 보이던 블뤼허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멀더강의 우안에 멈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먼저 엘베 강변의 프랑스군 요새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포위 공격을 마무리하여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뒤에 움직이려는 것 같다는 네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네는 결단성과 용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자였으나 결코 지략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네의 추측성 보고를 나폴레옹이 100% 믿었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때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보고만 골라서 믿.. 2025. 3. 31.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0) - 나폴레옹의 산수 동쪽 바우첸 일대에서 대치 중이던 블뤼허가 난데 없이 전군을 이끌고 북쪽 바르텐부르크에 나타났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뻔했습니다.  바로 베르나도트와 합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제 막 남쪽 보헤미아 방면군이 얼츠거비어거 산맥을 넘어 켐니츠 남서쪽 방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 할 나위 없이 분명했습니다.  연합군은 남쪽과 북쪽에서 일제히 움직여 라이프치히에서 합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연합군의 3개 방면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고, 나폴레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의도를 파악하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앞이 보이지 않던 외통수에서 벗어날 기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27일 .. 2025. 3. 1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8)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제 나폴레옹과 그의 그랑다르메 본진이 슈바르첸베르크의 보헤미아 방면군보다 먼저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리며 내렸던 라이프치히로의 진격 명령을 기다렸다는듯이 모조리 취소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라이프치히로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분명했고, 블뤼허조차도 그걸 고집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프치히로 가지 않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치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산된 상태인 슐레지엔 방면군과 북부 방면군을 보헤미아 방면군이 합류하기 전에 각개격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이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나폴레옹에게 덜미를 잡힐 .. 2025. 3. 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7) - 상남자들의 포옹 혐오스러운 프랑스인 베르나도트와의 회담에서 그나이제나우 본인은 핑계를 대고 쏙 빠졌지만 누가 뭐래도 프로이센측의 두뇌는 블뤼허가 아니라 그나이제나우였습니다.  따라서 그나이제나우는 이 회담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히 적은 협상 가이드를 통역 역할로 동석한 뮈플링에게 주었지만, 블루허를 통해 베르나도트에게 전달될 요구 사항들은 뮈플링이 보기에도사실상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요구 사항의 핵심은 베르나도트가 블뤼허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당장 라이프치히로 달려가자는 것이었는데, 프로이센 사람들이 보기에 겁장이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베르나도트가 그런 대담한 계획에 동의할 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Frères d'armes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전우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필연적으로, H.. 2025. 2. 24.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6) -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마르몽의 기대와는 달리, 거기에 쓰인 나폴레옹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자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네.  적군의 동향에 대한 정보나 보내게."  나름 자신의 나폴레옹의 심복이라고 여기고 있던 마르몽은 나폴레옹의 이런 홀대에 격노했고,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네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여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 북동쪽의 타우차(Taucha)로 이동했습니다.  이렇게 이동을 하더라도, 멀더 강변의 아일렌부르크처럼 다리가 있는 곳에는 1개 대대 정도의 병력을 수비대로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통이 난 마르몽은 '뭐 따로 명시적인 명령은 없었으니까'라는 식으로 정말 단 한 명의 병사도 남겨두지 않고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남쪽 타우차로 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그 일대까지.. 2025. 2. 1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4) - 나폴레옹의 무기를 빼앗다 1813년 10월 초, 나폴레옹과 연합군의 대치 상태에서 분명히 전체 병력수는 연합군에게 유리했습니다. 연합군은 러시아에서 새로 편성되어 보헤미아 일대에 도착한 폴란드 방면군을 포함하면 약 32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약 22만의 병력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실질적으로 제갈공명도 극복하기 어려운 전력 차이였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어느 한쪽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에서 벌어진 전투는 찾기 힘듭니다. 이유는 그렇게 병력 차이가 많이 날 경우 약한 쪽이 전투를 회피하고 후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후퇴를 하다 보면 추격하는 측의 병력은 점령지 여기저기 수비군을 남기느라 병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계속 되다보면 결국 약한 쪽에게도 기회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1812년 .. 2025. 2. 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3) - 바르텐부르크 전투 (하) 카알 대공은 이 상태에서 개활지로 나가 란담(Landdamm) 제방을 향해 돌격하는 것은 그냥 자살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자살로 이끌 생각은 없었기에, 과감히 좌측, 그러니까 남쪽으로 우회하여 측면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휘하의 총 4개 대대 중 2개 대대를 현장에 남겨 거기서 바르텐부르크 내의 적군의 이목을 끌도록 하고는 자신은 나머지 2개 대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우호적인 현지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길안내에 따라 개활지로 나설 수 있었는데, 그 개활지는 바르텐부르크와 그 남쪽에 위치한 블레딘(Bleddin) 마을 딱 중간 위치였습니다.  거기서 보니 블레딘 마을에도 대포까지 거느린 그랑다르메 소속 뷔르템베르크군 몇 개 대대가 주둔한 것이 보였습니.. 2025. 1. 2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2) - 바르텐부르크 전투 (상) 지하 미로를 헤쳐나가는 형태의 게임에 대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함정과 괴물이 쏟아져 나온다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하게 전투에 대해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아군의 진격에 전혀 막힘이 없다면 함정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도강 작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최초에 부교를 놓는 과정입니다.  공병들이 다리를 놓고 있는데 강 건너편에서 적군이 대포를 가져다 놓고 포도탄을 쏘아대고 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프로이센군이 옛 부교의 교두보를 재점령하고 기초 공사를 하는데도, 바로 인근인 바르텐부르크의 그랑다르메에서는 아무런 방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뭔가 매우 수상한 일이기는 했습니다. (산탄(caseshot), 캐니스터탄(c.. 2025. 1. 1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1) - 지질학자 베르나도트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 등 프로이센측 기록만 보면 베르나도트처럼 겁이 많고 비협조적이며 이기적인 지휘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합군이 실력이 아니라 신분으로 사령관을 뽑는 것이 관례라고 할지라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서는 그런 관례 없었습니다.  베르나도트는 평민 출신의 부사관 출신으로서, 자신의 능력만으로 프랑스군 원수봉을 손에 쥔 인물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입니다.  생각해보면 장군 자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따냈지만 원수봉을 따낸 것은 나폴레옹의 인척이라는 것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군요.  17세의 나이로 사병으로 입대한 그는 5년만에 부사관이 되었고, 다시 5년만에 부사관으로서는 최고 계급인 특무상사(Adjutant-Major)로 승진했습니다.  이는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 2025. 1. 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6) - 트라헨베르크 의정서의 결함 나폴레옹이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우유부단함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블뤼허는 트라헨베르크 의정서에 알고 보니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취지에 따르면 연합군의 3개 방면군은 곰을 둘러싼 3마리의 사냥개처럼 어느 하나가 곰의 정면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두 마리가 곰의 뒷다리를 물어 뜯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곰이 공격 방향을 휙 바꿔 뒷다리를 무는 사냥개를 공격하면, 그 사냥개는 재빨리 후퇴해야 했고요.   그런데, 지형지물로 인해 재빨리 후퇴를 못한다면 그 사냥개의 운명은 끝장나는 것이었습니다.  블뤼허는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의 신세가 바로 그 끝장난 운명의 사냥개와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엘베강 때문이었습니다.  엘베강을 도강하여 이제 등 뒤에 강을 끼게 되면, .. 2024. 12. 2.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 - 왕세자에 대한 고자질 블뤼허는 베르나도트가 9월 6일 덴너비츠에서 네를 격파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만, 곧 이어 별도로 날아든 뷜로(Friedrich Wilhelm Freiherr von Bülow)의 편지를 읽고는 무척 복잡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뷜로는 베르나도트 밑에서 북부 방면군 산하 프로이센 제3군단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베르나도트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옛 적군인 그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같은 프로이센 사람인 블뤼허에게는 별도의 편지를 보내 '베르나도트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뷜로는 덴너비츠에서 열심히 싸운 것은 자신과 타우엔치언이 지휘하는 프로이센군 제3,4군단 뿐이었으며, 베르나도트는 온갖 핑계를 대며 진격을 미루다 승부가 판가름난 이후인.. 2024.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