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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14) - 베르나도트의 운수 좋은 날 원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싸움에 있어서 스웨덴의 도움이 절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스웨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승리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총검과 대포를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는데,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가 많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각각 3천만에 육박했던 프랑스와 러시아에 비하면 인구가 240만 정도에 불과했던 스웨덴은 초라한 수준의 병력만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후 영토를 절반 이상 빼앗긴 프로이센은 인구가 975만에서 450만으로 줄어드는 봉변을 당했지만, 그래도 스웨덴의 2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자신의 영토와 바로 인접한 작센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종의 .. 2023. 10. 2.
대잠전 전문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격침하라! 최근 SNS에 이상한 무늬의 의상을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진에 밀덕임이 분명한 어떤 사람의 comment가 올라옴. (번역 : 테일러 스위프트의 의상 완전 좋아! 저 의상은 배경에 비친 그녀의 몸매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서 독일군 U-boat들이 그녀의 거리, 속도, 진행 방향을 계산하는데 애를 먹게 만들거든!) WW2 당시, 그리고 상당 부분은 현대전에서도, 잠수함에서 수상함으로 어뢰를 쏘는 것은 매우 살 떨리는 순간. 자동화기 쏘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번에 2~4발을 한꺼번에 쏘는 것이니 무조건 one shot one kill을 해야 함. 잠수함이 노릴 만한 대형 군함은 홀로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내가 쏜 것이 명중하든 명중하지 않든 곧 그 호위함들이 달려들어 나에게 폭뢰를 마구 투하할 것이 .. 2023. 9. 28.
휴전 (13) - 작전이 정치에 휘둘리다 로마노프 왕가는 원래는 러시아 가문이었지만, 점차 독일계 귀족 가문과 결혼을 통해 점점 서구화되었고, 특히 독일 공작 가문 출신으로 짜르에 등극한 표트르 3세 이후로는 사실상 독일계 귀족 가문 출신 인사들이 짜르에 등극했습니다. 남편안 표트르 3세를 쫓아내고 여황이 된 예카테리나 대제도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었지요. 나폴레옹과 자웅을 겨루던 알렉산드르 1세가 바로 그 부부의 손자였는데,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내도 모두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르는 19세 때 친구에게 자신은 아내와 함께 독일 라인 강변에 정차가여 자연 철학을 공부하며 행복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렉산드르는 독일계 인사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샤른호스트의 말이라면 뭐든 다 믿고 따른 것.. 2023. 9. 25.
레이더 개발 이야기 (48) - 포클랜드 상공의 H2S H2S와 그 개량 버전인 H2X는 이렇게 WW2에서 로열 에어포스가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 이후에도 로열 에어포스는 물론 미공군의 폭격기에서도 계속 사용됨. 그러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외로운 섬 포클랜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활약함. WW2 때 개발된 레이더를 1980년대에도 썼다고?? 의외지만 진짜임. 일단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장수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적 몰락 때문. WW2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뭐래도 미국. WW2를 거치면서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으로서 사실상 자유세계를 석권. 그에 버금가는 승자는 소련. 잠재적 경쟁국이었던 독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동서독으로 분할하여 재기를 막은 뒤, 동유럽을 석권하고 공산주의를 전파하여 미국과 .. 2023. 9. 21.
휴전 (12) - 오스트리아의 준비 상황 6월 27일의 드레스덴 회견이 대실패로 끝난 것은 오스트리아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메테르니히의 임기응변으로 일단 나폴레옹을 7월 5일의 프라하 회담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장 파국은 피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연합국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은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제 오스트리아도 전쟁에 뛰어들어 피를 보게 되었는데, 아직 전쟁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제 전투가 재개되면, 나폴레옹의 주된 공격 방향은 바로 오스트리아를 향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메테르니히가 드레스덴으로 떠나기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와 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장군들은 이미 전투 재개를 가정하고 이런저런 작전안을 논의하고.. 2023. 9. 18.
레이더 개발 이야기 (47) - 멤피스 벨과 H2X H2S는 밤눈이 어두운 로열 에어포스 항법사들에게 성공적으로 독일로 가는 밤길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쾰른이나 함부르크를 폭격할 때는 나오지 않던 불평이 베를린 폭격에서는 쏟아져 나옴. 1943년 8월 말과 9월 초, 3번에 걸친 베를린 폭격 작전후, 폭격기 사령부와 레이더 개발팀 사이의 연락 장교 역할을 하던 새워드(Saward) 중령이 베를린 상공에서 찍은 H2S 레이더 스코프의 사진을 레이더 개발팀애게 전달. 개발팀이 보니 그냥 무의미한 허연 점들과 패턴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을 뿐, 뭔가 눈에 띄는 랜드마크 지형물을 구별할 수가 없었음. 다른 도시에서는 잘 통하던 H2S가 왜 유독 베를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을까? 이유는 도시의 규모.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여러 소왕국들이 분립하여 .. 2023. 9. 14.
휴전 (11) - 나폴레옹 대폭발 6월 27일 드레스덴으로 메테르니히를 불러 면담을 한 나폴레옹이 무려 무려 9시간이 넘는 이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뭔가 할 말이 많긴 많았을 것 같은데 정말 아무도 배석시키지 않고 1대1로만 면담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를 명확하게 기록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폴레옹도 메테르니히도 각각 회고록을 남겼습니다만, 당대의 모든 회고록이 그렇듯이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 써놓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두 사람도 9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시시콜콜 녹취록을 적어 놓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많은 정보를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메테르니히가 그 회담이 있었던 날 밤 자신의 주군인 프란.. 2023. 9. 11.
레이더 개발 이야기 (46) - 핵폭탄을 터뜨린 레이더 노든 폭탄 조준경의 위력을 확신하고 있던 미육군 제8 항공단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주간 폭격을 고집한 것에 비해 로열 에어포스가 (실은 폭탄이 목표물에 명중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간 폭격을 고수한 이뉴는 딱 하나, 독일 전투기들이 무서웠기 떄문. 1943년 봄,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 사령부는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었음. 독일도 레이더 기술과 그를 이용한 요격 기술이 점점 좋아지면서 독일 야간 전투기들이 깜깜한 밤중에 영국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 비록 아직 전체 출격 대수의 4% 정도만 그렇게 요격되어 격추되었지만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음. 게다가 이제 곧 다시 여름이 됨. 여름이 되면 그만큼 해가 길어질 것이고, 그건 그만큼 영.. 2023. 9. 7.
휴전 (10) - 메테르니히, 드레스덴을 향하다 영국은 여기저기 돈을 뿌려대며 연합군 진영 내에서 영국의 입지를 다지려고 노력했으나, 역시 당장 전쟁 당사자들에게는 돈보다는 총칼이 더 소중한 법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6월 중순, 라이헨바흐(Reichenbach) 조약으로 여실히 드러납니다. 6월 하순, 메테르니히는 드레스덴에서 만나자는 나폴레옹의 초대를 받습니다. 그 초대에 응해 드레스덴으로 출발하기 전에, 나폴레옹과의 회담에서 제시할 조건들에 대해 러시아 및 프로이센 측과 최종 합의를 보기 위해 라이헨바흐의 연합군 진영에 들렀습니다. 여기서 라인 연방 해체나 프로이센의 영토 회복 등에 대한 요구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메테르니히의 4개 요구 조건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메테르니히의 조건이 그대로 통과되었습니다. 대신 만약 나폴레옹이 .. 2023. 9. 4.
레이더 개발 이야기 (45) - 레이더 깎는 노인, 아니 영국 공군 H2S 공대지 레이더는 테스트를 거치면 거칠 수록 점점 더 개선됨. 1942년 4월, H2S를 테스트하던 항법장교 E. Dickie 중위는 '지도는 언제나 북쪽이 위인데, H2S 레이더 스코프는 폭격기 기수 방향이 위로 되어 있어서 헷갈린다'라고 불평. 이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다, 속성 훈련만 받고 살 떨리는 독일 야간 폭격에 투입되는 항법사들의 질적 문제를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덜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그에 대한 개선 작업이 이루어짐. H2S의 PPI scope 화면을 폭격기의 자이로컴패스(gyrocompass)와 서버(servo) 모터를 통해 동기화시켜 항상 위가 북쪽을 향하도록 회전시킨 것. (Anschütz 자이로컴패스의 단면도. 안슈츠는 1905년 독일 Kiel에서 설립된.. 2023. 8. 31.
휴전 (9) - 우리한테 병력이 없지 돈이 없겠나? 오스트리아의 이런 움직임은 연합군 사령부에 와 있던 영국인들에게도 결국 포착되었습니다. 주프로이센 대사 자격으로 현장에 있던 스튜어트 장군은 6월 6일, 이런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본국에 보냈고, 외무부 장관인 캐슬레이는 한참 말을 달려 북부 독일의 항구를 통해 전달된 이 편지를 6월 22일에야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제3대 런던데리(Londonderry) 후작 스튜어트(Charles William Stewart)의 초상화입니다. 1813년 이후 프로이센 주재 영국 대사로서, 이후 오스트리아 주재 영국 대사로 활약하며 나폴레옹의 몰락에 한몫 했습니다.) (윗 그림 속 스튜어트가 입고 있는 자켓은 영화 MI7 Dead Reckoning에서 맨티스가 입고 설친 자켓이기도 합니다. 이 자켓을 부르는 일반 명.. 2023. 8. 28.
레이더 개발 이야기 (44) - 기술 강국 독일의 허상 독일애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처웰 경이 염려했던 것을 즉각 생각해냄. 즉,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장착된 H2S 레이더가 쏘아대는 전자파를 추적하면 루프트바페의 야간 전투기가 쉽게 폭격기들을 사냥할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Telefunken사에게 H2S 전파 수신기를 주문함. 그런데 해보니 이게 쉽지 않음. 독일은 전파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입증한 헤르츠 박사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당시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나라였지만, 전자 소재 산업을 등한히 했던 것이 이제 와서 뼈저린 후회거리가 됨. 당시 H2S는 GHz 단위의 microwave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고작 수백 MHz의 UHF, VHF를 사용하고 있었음. 근데 GHz 단위의 H2S 전파를 수신하고 추적하려면 당.. 2023.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