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743

레이더 개발 이야기 (31) - 다리가 굽은 까마귀의 비상과 추락 당시 영국군은 이름까지는 모르고 있었으나, WW2 초기 루프트바페가 사용하던 전파 항법 시스템의 이름은 Knickebein (크니커바인, '굽은 다리'라는 뜻으로 북구 신화에 나오는 까마귀의 이름). 이 시스템은 31 MHz라는 당시로서는 꽤 높은 주파수의 전파를 커다란 야기(Yagi-Uda) 안테나를 이용하여 좁은 각도의 지향성 전파로 쏘는 것이 핵심. 하나의 source에서 발생시킨 전파를 두 대의 안테나로 duplexer switch를 통해 분기시켜 쏘았으므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다보니 그 안테나 모양은 약간 굽은 형태를 띠게 되었음. 또한 앞서 설명한 사정거리 50km 정도의 Lorentz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형상만 커다랗게 하여 사정거리를 늘린 것이다보니, 안테나가 엄청나게 커졌음. 그러.. 2023. 4. 27.
바우첸 전투 (3) - 노란 제복의 정체 5월 20일에서 21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연합군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전날 오후의 공격으로 슈프레 강을 성공적으로 건넜을 뿐만 아니라 연합군과 멱살을 쥔 상태, 즉 연합군 최전선과 고작 200m 간격을 사이에 둔 채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이는 뤼첸 전투 때처럼 밤 사이에 연합군이 몰래 후퇴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폴레옹이 원하던 바였습니다. 이런 중대한 상황에서 열린 연합군 수뇌부의 작전 회의는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이센군에서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물론, 총사령관인 블뤼허가 참석하지 않고 그나이제나우와 국왕의 연락 장교인 뮈플링(Müffling)만 참석했습니다. 노령인 블뤼허는 피곤하여 쉬어야 했고, 어차피 프로이센군의 실세는 그나이제나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2023. 4. 24.
레이더 개발 이야기 (30) - 독일 공군의 비밀 Butt 보고서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처칠부터 데본셔의 농부 아저씨까지 영국인들 모두가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이 독일 주요 공장 지대를 다 때려부수고 있다고 믿었음.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 사령부 (Bomber Command)에서 그렇게 주장한 것도 이유였지만, 당장 루프트바페 폭격기들이 영국의 주요 공장과 도시를 야밤 중에도 잘만 때려 부수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 독일 애들이 하는 것을 영국인이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루프트바페의 폭격 패턴을 보면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기는 했음. 대부분 엉뚱한 곳에 폭탄을 떨구긴 하는데, 가끔씩 일부 폭격기 편대는 아주 정확하게 폭탄을 떨구는 것. 처음에는 그냥 '저 편대에는 수학 잘하는 항법사가 있었고 저 편대 항법사는 수학을 잘 못하는 모양.. 2023. 4. 20.
바우첸 전투 (2) - 프랑스군보다 더 미운 러시아군 오후 1시 경에 쿼티츠(Quatitz)에 나타난 술트의 프랑스군은 이런저런 마을에 분산되어 있던 프로이센군을 쉽게 분쇄한 뒤, 니더구리쉬에 배치되어 있던 클라이스트의 작은 군단을 사정없이 몰아붙였습니다. 클라이스트는 천천히 밀려났지만 슈프레 강 건너 뵐라우와 키페른 등의 언덕들에서 쏘아대는 프로이센군의 포격 덕분에 3시간 동안이나 니더구리쉬 마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프로이센군이 슈프레 강을 건너 후퇴한 뒤에도 프랑스군은 한참 동안 그 다리를 건너지 못했는데, 역시 강 건너 언덕에서 쏟아지는 치열한 포격 때문이었습니다. 이 병목은 강 좌안의 고틀롭(Gottlobs) 언덕을 프랑스군이 장악한 뒤 거기에 중포들을 방열하여 강 건너 뵐라우 언덕의 프로이센 포병대들을 제압한 후에야 해결되었습니다. 프랑스군 보.. 2023. 4. 17.
레이더 개발 이야기 (29) - 한밤중의 길찾기 소위 Battle of Britain이라고 불리는 싸움은 1940년 9월부터 1941년 6월까지 루프트바페의 영국 폭격 및 그에 대한 로열 에어포스의 요격이 주된 양상이었지만, 그 이전부터도 로열 에어포스도 당하고만 산 것은 아니었고 바다를 건너 독일군 목표물에 대해 폭격을 단행. 1939년 말까지만 해도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들은 (아직 프랑스 항복 이전이었으므로) 프랑스 동부의 전선이나 네덜란드, 그리고 발트 해 연안의 각종 섬과 독일 해군 기지 등에 대해 과감한 폭격 작전을 주간에 실시. 이유는 유럽 대륙은 넓고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는 한정적이었으므로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대한 요격이 그다지 조직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못했기 때문. 그러나 1939년 12월 18일, 22대의 Vickers Welli.. 2023. 4. 13.
바우첸 전투 (1) - 마침내 시작된 전투 당시 대부분의 전투는 새벽 일찍 동이 트기 직전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5월 20일 아침 해가 꽤 높이 올라와 사방을 비출 때까지도 바우첸 일대는 조용했습니다. 연합군의 전초선을 지키던 보초들은 오늘도 지난 1주일 넘게 그랬던 것처럼 조용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9시가 좀 넘어서, 바우첸 시내의 교회탑에서 프랑스군 진영을 감시하고 있던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 일부가 북동쪽을 향해 행군을 시작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바우첸을 소개할 때 자주 사용되는 사진의 구도가 딱 이런 구도입니다. 바우첸은 탑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교회 첨탑이 많습니다. 저기 보이는 강이 슈프레(Spree) 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에 대해 바트겐슈타인이 미리 작전계획을 .. 2023. 4. 10.
레이더 개발 이야기 (28) - 항법사가 되기 위한 길 WW2 중간에 개발된 공대지 레이더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항법사(navigator)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야 함. 1939년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 사령부 산하에는 총 280대의 폭격기가 존재. 그러나 WW2가 발발하면서 폭격기 사령부도 급격히 팽창하여 1942년 5월말 쾰른(Cologne) 야간 폭격 작전 한 번에 로열 에어포스는 한꺼번에 무려 1천대의 폭격기를 투입. ** 그림1은 영국의 쾰른 폭격을 기념하는 '공식' 그림. 참고로 쾰른(Köln)의 영어 이름은 프랑스식인 콜로뉴(Cologne). 지금은 라인 강변 동쪽까지 확장되었지만 원래 프랑스와 독일의 자연 경계인 라인 강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원래는 게르마니아를 통치하던 로마의 근거지 노릇을 하던 병영 도시. 여기서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 2023. 4. 6.
바우첸 전투 (0) - 복습편 : 짜르와 총사령관 이제 1813년 5월 20일, 바우첸 전투 당일 새벽이 되었으니 여기서 잠깐 복습을 하겠습니다. 바우첸 전투는 크게 보면 나폴레옹이 커다랗게 그린 그림에 연합군이 말려들어 벌어진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그린 그림은 크게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베를린을 위협하여 프로이센군을 러시아군으로부터 이탈시키려 했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게 제대로 안 될 경우 베를린을 위협하던 네의 병력을 바우첸 뒤쪽에 투입하여 연합군의 퇴로를 끊기 위함이었습니다. 네의 병력을 바우첸 뒤쪽으로 투입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즐겨 쓰던 '망치와 모루' 전법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바우첸 서쪽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연합군을 밀어 붙이면서 모루의 역할을 할 때, 북쪽에서 내려온 .. 2023. 4. 3.
레이더 개발 이야기 (27) - 기술 싸움과 머리 싸움 공대함 레이더 ASV Mk II와 Leigh 탐조등 조합이 이제 막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지 2~3달 된 1942년 8월 경부터 로열 에어포스 해양 초계기들 중 일부가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 레이더 스코프에 유보트를 포착하고 신이 나서 달려가보면 귀신처럼 유보트가 사라졌다는 것. 처음에는 레이더 오작동인가 싶었으나 곧 독일놈들이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여 초계기가 다가온다는 것을 경보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음. 9월 경에는 모든 초계기들이 그런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는 FuMB 1 (Funkmessbeobachtungsgerät, 전파 측정 장치)라는 공식 명칭이지만 실제로는 그 장치를 만든 파리 소재 프랑스 회사의 이름을 따 그냥 Metox라고 불리는 간단한 장치 덕분. .. 2023. 3. 30.
바우첸을 향하여 (16) - 헛도는 톱니바퀴들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프랑스군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요크는 바클레이의 어처구니 없는 지원군 요청에 아무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정말로 자신의 부대 중 제2 여단을 떼내어 숲길을 통해 바클레이가 있는 쾨니히스바르타로 보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크가 정말 제대로 된 군인 정신의 지휘관인지 정반대로 관료주의에 빠져 현실 파악을 못하는 인간인지 헷갈립니다만, 직후의 행동을 보면 요크가 닳을 대로 닳은 늙은 여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크는 2시간 정도 싸운 끝에 어차피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황 파악을 못한 바클레이가 병력 지원을 요청하자 요크는 후퇴할 명분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바클레이의 명령대로 지원군을 보내면서 '지원군을 보내고 .. 2023. 3.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26) - 어둠 속의 빛 레이더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송신 펄스(pulse)파의 길이를 짧게 만드는 것. 이것이 길면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의 최소거리가 너무 길어지게 됨. 펄스가 발사되고 있는데 반사파가 되돌아오면 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 전파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니 펄스 길이가 1 micro-second (µs)일 경우 최소 탐지거리는 약 150m. 그런데 WW2 기술로는 영국 공군이 대잠 초계기에 장착한 공대함 레이더 ASV Mk II의 최소 탐지거리는 900m 이상. (레이더 송신 펄스파의 길이(width)에 대한 그림. 저 펄스 길이가 짧을 수록 레이더의 최소 탐지 거리가 짧아지므로 좋은 것.) WW2 당시 U-boat는 부상한 상태로 작은 sail (잠수함 위쪽에 불쑥 솟아난 구조물)만 물 위로 내민 채 디.. 2023. 3. 23.
바우첸을 향하여 (15) - 오해는 오해를 낳고 군내 서열에 있어서 훨씬 선임이자 바로 작년 자신의 직속 상관이었던 바클레이의 존재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였습니다. 과거에 바클레이가 비트겐슈타인을 괴롭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의 경직된 서열 문화에서 작년의 직속 상관이 지금 자신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중요 전장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던 좌익의 정반대쪽인 우익, 그것도 프로이센군이 지키는 우익보다 더 오른쪽 맨 끝 부분인 크렉비츠(Kreckwitz) 마을 쪽에 바클레이를 배치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합군의 우익쪽, 즉 북쪽에서 로리스통의 프랑스군 1개 군단이 내려오고 있다는 첩보는 바클레이를 아예 멀리 보내버려 자신의 전장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 좋은 .. 2023.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