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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쿠투조프 (3) 이하는 랑쥬롱이 그의 비망록에 남겨놓은 쿠투조프에 대한 평가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만, 아마 사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투조프처럼 기백은 넘치지만 별 개성이 없는 인물이 드물 것이다. 수완과 교활함의 그렇게 조합됨과 동시에, 실질적인 재주가 보잘 것 없으면서 거기에 도덕성까지 결여된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억력이 아주 비상하고 배운 것도 많으면서,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의 대화를 그토록 재치있게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었고,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 온화함은 조금 가식적인 것이었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쿠투조프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들이었다. 그는 화가 났거나 상대방이 .. 2020. 6. 29.
전함 HMS Barham의 격침과 영국 최후의 마녀 이야기 1941년 11월 26일은 독일 해군 중위 티센하우젠(Hans-Diedrich von Tiesenhausen)에게 운수 대통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잠수함 U-331의 음탐사가 멀리서 들려오는 군함들의 엔진 소리를 탐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군함들은 대략 그의 잠수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군함들의 정체는 영국 해군 전함 3척과 그를 둘러싼 구축함 8척이었습니다. 티센하우젠 중위는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 이들은 리비아로 향하는 이탈리아군 수송단을 요격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나선 퀸 엘리자베스 호(HMS Queen Elizabeth), 밸리언트 호(HMS Valiant), 그리고 바럼 호(HMS Barham), 그러니까 모두 1910년 초반에 진수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척과 그를 호위하.. 2020. 6. 25.
행운(?)의 쿠투조프 (2) 1788년 시작된 전쟁에서, 쿠투조프는 포템킨(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uricheski) 대공의 지휘 하에 흑해 연안의 오스만 투르크 요새 오차코프(Ochakov)를 공격 중이었습니다. 수보로프 장군은 '총알은 빗나간다, 총검은 그러지 않는다' 라는 명언처럼 보병 돌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에 비해 포템킨 대공은 원거리에서 포위한 채 포격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병사들은 당장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장기간 포위 작전을 하다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온갖 질병이 유행하며 병사들이 픽픽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템킨 대공입니다. 그는 러시아가 새로 정복한 흑해 연안 일대 전체의 주지사로 있었는데, 그가 당시 건설.. 2020. 6. 22.
새로운 신분제 - 집주인이 현대의 귀족인걸까? 앤 헤서웨이와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200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 잡지사 비서로 취직한 앤 헤서웨이가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건배를 할 때 아주 인상적인 건배사를 합니다. 기억들 나시나요? 바로 "To jobs that pay the rent" (월세를 내줄 일자리를 위하여) 였습니다. 에드 쉬란(Ed Sheeran)의 출세곡은 마약에 중독된 매춘 여성에 대한 노래인 'A team'인데, 그 가사 중에도 'Struggling to pay rent' 라는 부분이 있지요. 노래 속의 여성은 매춘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명품 가방은 커녕 월세를 내기 위해 아둥바둥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To jobs that pay the rent") 이렇게 서구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저렇게 집세.. 2020. 6. 18.
행운(?)의 쿠투조프 (1) 알렉산드르가 쿠투조프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오른쪽 눈을 매우 싫어했지요. 심하게 뒤틀린 사팔뜨기 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의 오른쪽 눈은 실명한 상태라는 말도 있고, 양쪽 눈이 다 잘 보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쿠투조프를 정말 영웅적인 현인으로 묘사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쿠투조프의 오른쪽 눈 실명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다소 애매하게 나옵니다. (가만 보면 쿠투조프의 초상화는 대부분 얼굴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오른쪽 눈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 검열 이후 장교들의 쾌활한 분위기는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중대는 기분 좋게 행진했다. 사방에서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렸다. ".. 2020. 6. 15.
포트 낙스(Fort Knox) 이야기 원래 지폐, 즉 은행권(bank note)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진짜 돈을 은행에 맡겨두고 받은 영수증입니다. 진짜 돈은 바로 금이지요. 그런데 진짜 돈인 금은 무겁고 유통시키면 조금씩 마모되니까, 대신 이 '영수증'을 들고 은행에 가면 진짜 돈으로 바꿔준다며 유통시킨 것이 바로 지폐입니다. 그래서 사실 영국이나 프랑스나 18세기까지만 해도 한 국가 안에서 지폐 발행권이 꼭 정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종류의 지폐가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가령 나폴레옹은 1803년 파리 시내에서는 지폐는 프랑스 중앙은행(Banc de France)에서만 발행할 수 있도록 선포합니다. 그 전에는 파리 시내에서조차도 여러가지 지폐(은행권)이 남발되었다는 이야기지요. (지폐 남발 막장의 끝을 보여준 아시냐(assi.. 2020. 6. 11.
골드바 이야기 - 1940년 영국 경순양함 에머랄드 호와 2020년 뉴욕 상품거래소 저는 소위 말하는 골드버그(gold bug), 즉 금성애자입니다. 전에 어떤 정권에서였는지 장관 후보자가 과거에 부동산 투기했던 것이 드러나서 청문회에서 추궁을 당하자, '부동산을 너무 사랑해서 샀을 뿐 투기는 아니다' 라고 말씀하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요. 저는 투기 목적도 당연히 있지만, 저야말로 그냥 금이 너무 좋아서 금을 삽니다. 이 글은 6/6 토요일에 미리 짜집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간밤에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금값이 2.25% 폭락하여 "내가 하는 투자가 다 그렇지"라고 자포자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글이 나올 6/8 월요일에는 또 얼마나 더 폭락했을지 모르겠군요. (제게는 무척 슬픈 날입니다.) (그러나 너무 고소해하지는 말아주세요. 혹시 압니까, 제가 1100불에 샀을지. 제가 언제 샀.. 2020. 6. 8.
"딸 같은 며느리"란 없다 웹질 하다 재미있는 사진을 본 김에 퍼왔어요. (Source : https://twitter.com/OnePenny0605/status/1265220599430803456 ) 우리나라 시부모님들 중에는 "아들의 결혼이란 딸 같은 며느리를 새로 집에 들여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그게 모든 비극의 씨앗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의 결혼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은 "아들이 자기 짝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자식도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 커서 독립해야 하는 자식을 언제까지 자기 곁에 묶어 두려는 것은 부모의 과욕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서구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이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라고 하시지만.. 2020. 6. 4.
두 도시의 분위기 - 쿠투조프의 등장 전방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나폴레옹과 바클레이 등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동안, 후방의 러시아인들도 적어도 마음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황실 가족들이 모여 살던 서구적 도시 상트 페체르부르크는 상류층이나 서민층이나 모두 '이 전쟁은 이미 진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주도적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는데 성공하고 8월 초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돌아온 알렉산드르가 보니, 심지어 자기 모친인 황태후조차도 각종 귀중품을 이미 도시 밖으로 빼돌려 놓고 자신도 언제든 피난갈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귀족 가문들도 모두 말과 마차를 즉시 출발 가능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트 페체르부르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적어도.. 2020. 6. 1.
밀덕을 위한 레미제라블 이미 알려져 있는 바입니다만, 레미제라블은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라 영국 영화입니다. 그리고 원작 뮤지컬도 브로드웨이 원작이 아니라 영국 것이고요. 그래서 출연진들 대부분도 영국인들이고, 촬영지도 영국 런던입니다. (저 배경 건물들이 파리의 어디냐고요 ? 삼색기가 휘날린다고 다 파리가 아닙니다. 저기 런던입니다.) 가령 'Look down - Paris' 부분에서 가브로슈가 왠 부자집 마차 창문에 올라가서 'How do you do, my name is Gavroche' 하고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 가사 내용 중에 'What the hell' 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브로슈 역할을 맡은 다니엘 허들스톤이라는 꼬마 배우는 이것을 What the 'ell 이라고 h 발음을 빼고 부릅니다. 덕.. 2020. 5. 28.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조조 래빗 (Jojo Rabbit) 관련 몇가지 * 이 포스팅에는 영화 조조 래빗에 대한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1. 스칼렛 요한슨은 바지를 입는다 이 영화의 의상 담당은 루비오(Mayes C. Rubeo)라는 멕시코 계통의 여자분인데,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의상 부문 후보에 올랐고 아쉽게 수상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광을 얻은 것이고, 실제로 라틴 계열 분들 중에서는 최초로 이 상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 분 인터뷰에 따르면 극중에서 조조의 당차고 용감한 엄마 로지(Rosie) 역의 스칼렛 요한슨과 직접 상의해가면서 로지의 의상을 디자인했답니다. 영화 속에서는 엄마 로지의 직업이 나오지는 않지만, 루비오는 로지가 뭔가 진보적이고 패션 감각이 있는 직업, 가령 무대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2020. 5. 25.
영화 속 쇼핑 장면에서 갈색 봉투 속에 든 것은 정말 파일까? 지난 주에 많은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으며 끝난 화제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저도 (빼놓지 않고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자주 봤습니다. 실제 우리나라 부부치고는 거주하는 집이나 벌이는 파티 등 생활 수준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사실 그런 경향은 꼭 이 드라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렇게 서구적인 삶을 사는 드라마 속의 배우들이 쇼핑을 할 때 꼭 등장하는 소품이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부부의 세계에서도 김희애가 들고 나왔습니다. 커다란 갈색 종이봉투에 든 바게뜨와 길쭉한 대파 몇줄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야 저게 파라는 것을 알겠습니다만, 저는 외국 영화에서 프랑스인들이 쇼핑할 때 꼭 나오는 길쭉한 대파를 볼 때마다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서양 사람들도 파를 먹나.. 2020.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