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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아프리카의 기아는 무엇 때문인가 ?

by nasica 2019. 9. 26.


저는 아주 예전부터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저토록 기아에 시달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아프리카 일부 지역이 한시적으로 굶주리는 것 뿐, 아프리카가 기아에 시달리는 생지옥이라는 이미지는 구호단체들이 더 많은 기부금을 노리고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프리카가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이라는 것은 맞는 말인 모양입니다.  특히 제가 궁금했던 것은, 사람이 살기에 훨씬 척박한 지역인 사막 지대나 북극 인근 지역에서는 저런 빈곤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데, 왜 유독 아프리카에서만 저렇게 기아가 자주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생각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식민지화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사막이든 고원이든 모든 토지는 먹여살릴 인구 수가 정해져있는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노동력 착취를 위해 아프리카가 먹여살릴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인구 수를 늘려놓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생각이었지요.  가령 인도 등 다른 곡창지대 식민지에서 실어오는 옥수수나 카사바로 식량을 공급하면서 노동력을 키워 아프리카의 광물 자원을 채취한다던가 커피 농사를 짓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러다가 식민지배가 끝나버리면서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곡물 공급은 나몰라라 한 채로 무책임하게 철수해버린 것이 근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그런 내용에 대해 제대로 찾아본 적은 없어서 궁금증도 해소할 겸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자료들이 지목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 사회 인프라 미비 
- 빈곤 
- 분쟁 
- 기후 변화 

 

이 외에 AIDS 등 질병의 창궐을 이유로 뽑기도 하고, 심지어 남녀 불평등까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기관까지 있었습니다.  (이유는 제가 보기에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서 여기에 옮겨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기관에서도 유럽의 식민 지배를 이유의 원인으로 뽑은 자료는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분석 기관들이 모조리 미국 및 유럽 기관들이니까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은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가 아프리카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던가 유럽은 죄가 없다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적지 않은 유럽 연구자들이 유럽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12/oct/22/resource-extraction-colonialism-legacy-poor-countries )

 



저는 나름대로 혼자 생각해낸 제 얼치기 이론이 맞다면,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했던 19세기~20세기에 아프리카의 인구가 급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에 어쩌다 본 인포그래픽에서, 근대 이전에는 아프리카의 인구수가 유럽 인구수보다 적었는데, 이젠 유럽 인구수보다 아프리카의 인구수가 거의 2배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인구 추이를 찾아봤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 생각은 틀린 것 같더군요.  아프리카에 기아가 발생하는 이유는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고 빈곤한데다, 전쟁이 잦고 기후 변화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아프리카의 인구는 유럽의 침탈 때문에 오히려 늘지 못했습니다.  유럽인의 침략 이전에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철기 문명이 도입되면서 농산물 생산이 늘어난 결과로 인구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또 아프리카에서 주식으로 많이 애용되는 카사바(cassava)는 남미가 원산지로서 16세기 경 포르투갈에 의해 아프리카에 옥수수와 함께 도입되었는데, 제 생각대로라면 이때 아프리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나머지 전세계에서 인구가 늘어날 때 아프리카의 인구는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카사바 정물화입니다. 카사바는 건조한 지대에서도 매우 잘 자라는 대표적 구황 작물이자, 옥수수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주식으로 많이 이용하는 기초식품입니다.)

 

(카사바는 전분이 풍부한 뿌리 채소입니다.  왼쪽이 카사바를 빻아 만든 대표적인 아프리카 음식인 푸푸(fufu)입니다.)

 

 

 

이유는 유럽인들이 주도한 노예 무역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잡아갔고, 또 팔아먹을 노예를 잡아들이느라 흑인 왕국들끼리 벌인 전쟁 때문이었답니다.  그러다 19세기 이후 노예 무역이 금지되면서 다시 아프리카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증가세가 두드러졌습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인구가 증가한 것은 유럽의 식민 지배 시절이 아니라 해방 이후였던 것입니다.  특히 인구 증가 추이는 1970년대 이후 더 가속화되었습니다.   

 

 


사실 인구 급증이 아프리카의 문제이긴 한 것 같습니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무려 6배가 넘게 증가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무절제한 임신과 출산이 아프리카 비극의 원인인 것일까요 ?  

 



글쎄요, 인구 급증이 문제이긴 한데, 아프리카만 인구가 늘어난 것도 아닙니다.  제가 아프리카와 비교했던 건조 지대인 요르단과 시리아도 같은 기간 동안 인구가 그것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시리아는 내전 때문에 인구가 급감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요르단이나 시리아에 기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전세계에서 인구는 늘었습니다.  

(이탈리아의 90년대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다만 타지역은 늘어난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도 발전했고, 아프리카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이 모든 비극의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율이 다른 지역을 압도할 정도로 높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UN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율은 나머지 전세계보다 88% 더 높습니다.  전세계적으로는 여성 1인당 2.5명의 자녀를 낳는데, 아프리카에서는 4.7명입니다.  니제르(Niger)의 경우 1인당 GDP가 하루에 1달러 이하 수준이지만, 여성 한명이 평생 가지는 아이의 수는 평균 7명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가족 계획 교육이 그렇게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명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경향이 일반적인 것도 아니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교육 수준이 높아질 수록 출산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서유럽이나 동아시아는 인구 증가율이 매우 낮은데, 대신 생산성은 좋은 편입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그렇게 아이를 적게 출산하는 대신 그 아이에게 집중적인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생산성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일 수록 피임을 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야 노동력도 풍부해지고 시장도 커지며, 그래야 기업들도 발전하고 국가로서도 세수가 늘어나니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인구 증가가 꼭 필효합니다.  그러나 지구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니니까, 언제까지고 인구가 늘어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인구 증가세가 확연히 꺾이고 아예 멸종으로 치닫는다고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애를 더 낳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젠 늘어나지 않는 인구를 억지로 늘일 생각보다는 줄어드는 인구에 맞춰 어떻게 우리 사회를 적응시켜 나가야 하는지 연구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합니다.

 

 

 

Source : https://www.worldhunger.org/africa-hunger-poverty-facts-2018/
https://borgenproject.org/causes-hunger-africa/
https://www.sos-usa.org/about-us/where-we-work/africa/hunger-in-africa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professionals-network/2016/jan/11/population-growth-in-africa-grasping-the-scale-of-the-challenge
https://population.un.org/wpp/Graphs/
https://www.ncbi.nlm.nih.gov/pubmed/12159345
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s_of_Africa
http://worldpopulationreview.com
http://www.fao.org/3/a0154e/A0154E02.htm

 

 

댓글30

  • 뮤뮤 2019.09.26 08:19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에서 피임에 대한 인식이 더 부정적인 경향이 있고(혹은 피임교육 자체가 부재하거나) 아프리카 기아의 근본적 원인이 경제성장을 상회하는 인구성장이라면 남녀불평등도 충분히 기아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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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삼 2019.09.26 08:25

    이승만 박정희 같은 인물이 없었던 것도 한 요인입니다. 식민지 출신 장군들이 독립 후 정권을 잡는 일이이 대다수 엿는데 거의 본인들 배를 채우느라 나라 발전을 등한시 했기때문 입니다 식민지 본국이나 미국 소련등이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을 해주었으나 한국처럼 기업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고 독재자들의 곳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겟습니다만 이런 지도자들도 한 몫 했다고 봅니다 아시아에서 필리핀만유독 뒤쳐진 이유도 이것이 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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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2019.09.26 09:36

      이런 댓글을 보면 우익들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는데, 아무 근거를 못대면서 그냥 한두명의 뛰어난 지도자 덕분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서 한치도 발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 김일성 숭배와 뭐가 다르죠?

      동아시아의 경제적 발전은 토지개혁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미군정이 실시한 토지 개혁에 의해 부와 생산수단이 다수에게 분배되었지요. 그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킬 수 있었고요.

      필리핀을 보세요. 대부분의 토지를 일부 특권층이 다 독점하고 있습니다.

    • 지나가던 2019.09.26 15:22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까닭을 박통에게서 찾을 수는 있겠으나
      다른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 것을 박통이 없어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 지나가던 2019.09.26 15:24

      그리고 토지개혁은- 중공과 북한에도 있었습니다. 성공한 나라가 토지개혁을 한 것은 맞지만 토지개혁을 해서 성공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 나삼 2019.09.26 22:38

      같은 토지개혁이 아닙니다. 한국은 유상몰수 무상분배였고 유상몰수의 자본이 한국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반면 중국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비교하시다니 한국의 토지분배의 대단함을 모르시는군요.

    • 수비니우스 2019.09.26 22:56

      이승만 박정희 같은분들이 12년 18년을 독재해서 이정도로 눈부시게 경제발전을 했으니 30년 40년씩 해먹었더라면 대한민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1위했을거라는 상상이 듭니다 앗아아...

    • 루나미아 2019.09.27 00:42

      박정희는 적절한 경제발전 전략을 세웠고 기업들이 발전하도록 제대로 지원했으니 확실히 경제성장에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오히려 부정선거와 사법살인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후퇴시키기만 했으니 인정하기 어렵네요

  • 머니백투미 2019.09.26 18:28 신고

    포스팅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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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군단 2019.09.26 19:02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러시아랑 중국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곳이에요.북아프리카에는 아랍인들,셈족이 많고 남아프리카에는 흑인들,함족이 많죠.아프리카만큼 다양한 인종이 사는 대륙도 드물겁니다.그래서 특정 인종의 문제나 도태되야 할 사람들이 도태되지 않아서라고는 보지 않아요.

    카다피 축출 전 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사회주의였음에도 풍부한 자원 덕에 아프리카치고는 괜찮은 삶의 질을 구가하긴 했지만, 대약진 운동과 문화 혁명을 겪은 중국은 아프리카 최빈국들만도 못 살았는데 경제의 개혁 이후 빠르게 복구해서 중진국 수준은 달성한거 보면 인종이나 문화 문제보다는 이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네요.소련과 중국 둘 다 냉전기에 사회주의 혁명을 아프리카에 널리 수출했으니까요.지금도 그 영향 받은 나라들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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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즈라엘 2019.09.26 21:06

    아프리카는 산아제한 이런게 시급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적인 산아제한이라기는 그렇고 제대로 먹이고 키울수 없다면 낳는걸 줄여야지요. UN에서 아프리카에 콘돔공장 지어놓고 공짜로 뿌려서라도 마구잡이로 무책임하게 낳는것부터 좀 지양할걸 권장해야 할듯합니다
    어린애들 무대책으로 잔뜩 낳아서 쫄쫄굶어서 공익광고 나오는거 더이상 못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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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nhardt100 2019.09.26 21:30

    아프리카의 경우, 일단 사하라 사막의 존재가 꽤 큽니다. 사하라 사막의 확대로 인해 남진하던 유목민들과 정주민들간에 전투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치열했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 이전에는 노예무역의 영향이 큽니다. 특히 인도양 연안에는 8세기 이후부터 꾸준히 아랍인들이 노예무역을 하다보니 인구 정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0년 아프리카의 해 이후에는 한동안 이루어진 무분별한 경작지 확대 및 목축 확대로 인한 사막화 가속화와 수자원 고갈, 냉전과 종족 문제로 인한 내전, 사회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에이즈 등의 창궐이 인구 문제의 한 원인으로 봐야 할 겁니다. 게다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보츠와나, 케냐, 탄자니아, 가봉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았죠. 대표적인 파탄국가 짐바브웨는 차치하더라도요. 남아공 같은 경우도 만델라 이후 상당히 경제가 개판나서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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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나미아 2019.09.27 00:57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켜야 하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내전, 쿠데타, 부정부패, 부족갈등 등으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라가 많죠.
    아시아 국가들은 그래도 비교적 안정적인 국가가 많죠. 그러나 아프리카는 그것조차 부재하는 일이 많아요. 사업을 하기에는 물적 인적 자본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법과 제도조차 제대로 보장되기 어려운 환경이 되겠죠.

    또 그런 불안정한 나라는 정부의 행정력 유지에도 급급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볼 여건조차 안 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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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자웃어 2019.09.27 09:37

    하지만 유럽의 식민지배가 아프리카의 여러국가들의 사회갈등 심화로 이어져 아프리카의 여러국가들의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쳐 위의 원인들 상당부분에 기여한것또한 사실입니다.
    답글

    • ㅇㅇ 2019.09.27 21:39

      아프리카 인들이 남녀평등과 같은 서구적 가치를 반대한다는 애기는 못 들어봤어요. 중동 국가들은 과거부터 기독교와 대립해온 역사의 일환이지 않을까요? 이란은 서구가 침략하던 20세기 초엔 오히려 입헌 운동이 일어났고, 서구의 침략과는 멀어졌을 때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으니 말이에요.
      식민지 피해의식 때문에 서구적 가치를 반대하기보다는, 그 사회의 가치가 원래 국제적 가치와의 간격이 컸다던가 시민사회가 미비해 자정능력이 부족하여 그랬다고 봐요

      욱일기나 독도에 대한 태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도 글로벌의 보편적 시각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건 올바른 예시가 아닌 것 같네요. 외국에서도 아시아의 반발을 인식하고 욱일기를 자제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실효지배를 바탕으로 도발을 반쯤 무시하는 전략은 외국인들이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린 일본의 이웃나라인데, 그 특징을 무시하고 세계 평균과 같은 수준으로 일본을 인식해야하는 게 더 이상한데요?

  • msoo 2019.09.27 17:17

    아프리카는 유럽인들이 들어왔을 때도 부족국가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백인들이 식민지배를 위해서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그으면서 국가들이 탄생했지만 여전히 부족국가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스스로의 힘으로 봉건제국가는 커녕 고대국가단계도 이루지 못한 나라들이 놔둔다고 발전하고 잘살게 될리가 없죠. 역사나 국가나 다 거쳐야 될 단계가 있는 거죠. 물론 모든 아프리카국가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죠. 아프리카는 광대한 대륙이고 나일강유역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룬 국가들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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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즈라엘 2019.09.28 11:11

    국민들이 빈곤한 가장 큰 이유는 정치불안으로 인한 치안의 부재입니다
    정치가 불안하고 정부가 확고하지 않으면 치안이 부재할수 밖에 없고
    그 틈을 틈타 이놈저놈 반군으로 일어나서 행정력부재로 인해 개판이 되니 국민들이 빈곤할수밖에 없죠. 아프리카 같은 경우에는 여러 부족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놓은 국가다 보니 정부의 권위가 땅에 추락해 있고 무정부상태로 지내는 국가가 많다보니 자연히 국민들이 고통받을수 밖에요
    일단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치안을 확고히 잡아야 국민들이 기아에 고통받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 진행될겁니다
    답글

  • 최홍락 2019.09.29 15:33

    1. 아프리카가 통계적으로 보면 기아와 빈곤율이 높은것은 맞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하라 이남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에 국한되어 있고 동부,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기아지수에 따르면 남아시아보다 양호한 수준이고요. 개별 국가로 보면 중진국 함정하면 떠오르는 나라들도 있고 (중진국 함정에 걸린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중진국 함정을 탈출한 국가로 한국 등과 함께 거론되는 모리셔스) 중앙아프리카의 적도 기니나 셰이셸 등 소득수준 높은 국가들도 있고요. 이렇게 경제수준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진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구성하고 있지요.

    2. 아프리카의 빈곤 문제를 식민지 시절의 수탈때문이다라는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ᆢ

    우선 틀린 부분은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오랜기간동안 수탈을 당해왔던 서부해안 국가들이나 수탈을 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오지로 남아있던 국가들이나 빈곤 수준이나 기아 수준이 저마다 제각각인지라 수탈이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런것 같고요.

    다만 맞는 부분이 있다면 식민지배시절에 구축된 산업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 식민지 시절에 수탈당해오던 1차 생산물과 원자재를 수출하는 산업시스템인데

    이런 경제체제에서의 생산물의 경우 진입장벽도 거의 없어서 잠깐 가격이 좋았던 시절에 너도 나도 새롭게 재배에 뛰어들게 되고 그러한 경쟁이 국가간 민족, 주민간 내분으로까지 번지게 되지요. 또한 운좋게 내분을 수습한다고 해도 이런 생산물들은 한계효용이나 부가가치, 가격변동성에 대한 민감도 측면에서 지나치게 취약해서 부를 쌓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콜렛이라는 산업에 있어 서플라이 체인의 상위에 있는 벨기에가 올릴 수 있는 부가가치와 카카오만 파는 아프리카 국가의 부가가치는 비교불가이지요. 그러나 이 아프리카 국가는 과거 식민지 시절 구축된 서플라이체인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지속된 경로의존성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여기에 부족한 인프라, 부족한 교육수준, 그외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겹쳐서 상황이 악화된것이 중앙 아프리카의 빈곤국가들의 현실이 된것이고요.

    3.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빈곤한 국가들과 발전한 국가의 차이야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어서 이것이 요인이다라고 딱잘라 말할 수 있는게 없어요. 이는 서구와 오리엔트의 경제발전사를 전공으로 하는 사학자들이 지금까지도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지리적 위치의 문제라는 시각, 우연의 산물이라는 시각, 포용적 제도의 문제라는 시각 등 다양한 가설이 있는데 제각각 의의와 한계가 있지요.

    심지어 한 국가의 어느시점의 경제상태에 대한 관점도 변하는걸요. 과거에는 50년대 한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라는 관점이 우세했으나 요새는 그당시 한국이 빈곤한 국가는 맞지만 실질GDP로 따지면 다른 빈곤국가들보다 양호한 상황이었다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때 오늘날 한국의 번영이 역사속에서 우연 내지는 한끗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다른 국가들의 발전경로에 대한 평가도 조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4. 토지개혁 얘기도 나오는데 토지개혁 성공 사례는 한국, 일본, 대만이 있고 좀더 시계를 앞으로 돌리면 성공적 토지개혁 사례로, 합스부르크 2중군주정이 몰락하면서 독립하였던 체코슬로바키아도 있습니다. 이 국가에서는 독립하면서 정치적 특권을 상실하였건 과거 이민족 대지주들의 토지들을 수용하여 농민들에게 배분할 수 있었으므로, 전간기에 중소자영농민들의 증가가 현저하게 발생하였습니다.

    토지개혁에 있어서는 실패사례도 많고 성공사례도 냉전시 동아시아 외의 사례들도 존재해서 이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할 수 있겠네요.

    한국의 경우만 놓고 보자면ᆢ정부 수립 이전인 미군정시기부터 일본지주 소유분 농지를 신한공사를 통해 우선 농지개혁이 실시되었는데 그 규모가 29만 헥타르였습니다. 2차로 정부 수립후 시행된 농지개혁 대상 토지가 60만헥타르였다는걸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가 정부수립 전에 이행된것이지요.

    이승만은 집권 전부터 농지개혁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이에 진보적이며 평소 농지개혁을 역설해온 조봉암과 강정택을 농림부의 장·차관으로 기용했습니다. 당시 남한 인구의 70%가 농민이었고, 그 중 80%가 소작농이었던지라 유권자를 장악하려는 정치적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1949년 중국 공산화되는 것을 목도하고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을 막기 위해, 냉전 체제에서 적극적 방어전략의 일환으로 시행된 부분이 있고요.

    농지개혁 시행과정 역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던것이실제로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조봉암은 농지개혁안을 만들었지만, 한민당의 공격을 받아 사퇴해야 했고, 재직시절에 농지개혁을 통과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전쟁시 서울 수복 이후, 이승만은 농지개혁의 1년 연기를 검토했으나 이번엔 미국이 농지개혁 1년 연기 시도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북한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총력전이 필요하고, 농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인데, 결국 미국이 이승만을 강하게 압박해서, 농지개혁은 연기되지 않고 예정대로 실시됐지요.

    결과적으로, 이승만, 조봉암, 중국의 공산화, 북한의 체제위협, 미국의 막후 역할이 남한의 농지개혁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에 영향을 미쳤던셈이고 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냉전의 최전선이라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징이 농지개혁을 만들어냈다고도 볼 수 있겠죠. 또 전쟁이라는 대규모 사회격변기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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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삼 2019.09.29 16:08

      그러게요.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처음 봅니다 . 저보고 이승만 아이돌 빠순이 취급을 하는데 대화 할 수준이 안됨을 느낍니다.

    • 최홍락 2019.09.29 17:51

      나삼/ 저는 이승만의 토지개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토지개혁을 말하는겁니다. 대한민국의 토지개혁이 어느 한사람 작품이 아니라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에 의한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것이고요. 이승만을 제외한다고 비난하실거면 저도 같이 비난하셔도 됩니다.

    • reinhardt100 2019.09.29 18:22

      간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농지개혁 이 문제가 초창기 국운을 걸만큼 중요한 문제였죠. 실제로 중부지방에 고착된 중후반기 전선 양상에서 현지조달해야 하는데 있어 국군이 중공군이나 인민군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 이유 중 하나가 이거라는 연구결과도 많습니다.

      체코의 경우 좀 특이한데 이중제국이 성립될 당시부터 이미 산업화에 어느 정도 안착해서 대규모 고동력을 필요로 하던 독일계 혹은 체코계 자본가들이 합스부르크 왕조를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꾸준히 내부 저발전 지역이던 갈리시아, 우크라이나 서남부 5주뿐만 아니라 모라비아나 슬로바키아 지역의 농민들에 대한 지주들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면서 노동력을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헝가리에서 이짓을 똑같이 하려다가 못했죠. 이중제국에서 헝가리는 말 그대로 마자르 민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판이었는데 어디서 체코 따위가 덤비냐 식으로 번졌으니 헝가리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령에 비해 지주세력이 막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국의 경제적 주도권을 쥔 체코 지역의 자본가들에게 헝가리는 말이 안 통하는 반동지주들 집단으로 보이기에 충분했고 서서히 이중제국에서 헝가리와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판이라면 차라리 독립하자 분위가가 강해지기 시작합니다.

      독립 이후 체코는 헝가리 왕국령이던 슬로바키아와 루테니아 일부를 합병, 중소농민 육성책을 꽤 강경하게 자국 내에서 시행하여 자칫하면 저임금 노동력 공급 부족에 시달릴 뻔한 위기를 넘기고 한때나마 유럽 제일의 중공업 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할 정도로 경제가 연착륙합니다. 종주국 오스트리아가 패전 이후 경제가 만신창이 되어 버린 것과 반대되는 결과였죠. 재미있는 것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농업정책은 공산당 및 사회주의 계열이 오히려 너무 급진적이라고 할 정도로 꽤 강경했다는 겁니다.

    • nasica 2019.09.30 10:50 신고

      박정희와 차우세스쿠는 독재를 하며 중공업 투자에 올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합니다. 둘 다 오일 쇼크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말년에 공장 가동률이 심각하게 낮아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둘 다 총에 맞아 죽었다는 점에서도 동일합니다.

      차이가 나는 점은 루마니아보다 한국이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인데, 그게 한국인들의 우수성 때문일까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일까요, 그냥 운일까요, 모든 것이 주 여호와 하나님 덕분일까요 ?

      모든 주장에는 각자 일리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그냥 각자 원하는 대로 생각한다는 점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최홍락 2019.09.30 23:59

      Nasica/ 보통 20세기에 중공업 육성을 추진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동아시아 국가들과 같이 성공한 케이스와 동유럽, 중남미 국가와 같이 실패한 케이스로 분류가 되는데요. 굳이 차이점을 찾으라면 전자의 경우 대외교역 및 수출확대를 목표로 추진된 반면 후자의 경우 자급자족 경제를 운용하는 수입대체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것이 성패를 가른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 유치산업인 중화학공업을 육성 및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라 하더라도 단순히 수입관세 부과를 통해 특정 산업을 보호하는 것 혹은 일시적으로 무역장벽을 높이는 것과 아예 무역체제를 대내지향적으로 만드는 것은 크게 다르다는 점이 이해가 되어야 하지않나 싶네요. 

    • 최홍락 2019.10.01 07:47

      빨갱이 사회주의 타령하는 누군가의 눈에는 토지개혁도 사회주의 놀음일테니 토지개혁 추진한 이승만도 사회주의자라고 해보시던가요.

      참고로 신생국가에서 토지개혁을 강력히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한 미군정 소속의 농업경제학자가 울프 라데진스키였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혁명이후 미국으로 도망친 이민자 출신인데 미군정내에서 토지개혁 정책을 주도한게 바로 이사람이죠. 나중에 메카시즘 광풍의 시기에 그정책으로 말미암아 축출되었지만...그가 주장한 토지개혁은 일본, 대만,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었죠. 입으로만 구호로만 주장한 메카시즘과 그가 주장한 사유재산권 침해요소가 있는 정책 중 어떤것이 앞선 국가들의 방어에 더 효과가 있었는지는ᆢㅋ

      P.s 나도 한가지 편견이라면 가지고 있는데 평소에 흑인들이나 개도국 인종 무시하던 인간들중에 그나라에서 온 technician들 와서 영어로 회의 진행하면 입도 뻥긋못하거나 엉뚱햐 소리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더군요. 자기 객관화가 그리 안되는 인간들이 많아요ㅋ나라가 잘사는거랑 개인의 급이란 다른것이더군요.

    • 플로렌스 2019.10.01 10:00

      알타리무라는 인간의 뇌는 모든 것이 공산주의 자본주의로 밖에 구별이 안 되나봐요. 박정희가 중화학공업 한답시고 추진한 무슨무슨 5개년계획 이런게 스탈린이 추진한 공산당식 중앙계획경제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네요. 아마 알타리무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지금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팽창한 것이 공산당의 우수한 지도력 때문이라고 침튀기며 열변하고 있을 듯.

    • 수비니우스 2019.10.01 12:05

      최홍락님 댓글 잘읽었습니다. 서울 수복 이후 농지개혁 1년 연기가 통과되었다면 한국사도 이승만에 대한 평가도 바뀔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아즈라엘 2019.10.02 15:37

    ㄴ 전 고등학교때 겨우 120대 나왔는데 우월하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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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비니우스 2019.10.03 12:10

      혹시 저에게 말씀해주신 것이라면 먼저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초2때 숫자라서 고등학교 때 다시 측정했다면 다른 숫자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ㅜㅜ 그리고 알타리무님은 말이 없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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