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보니까 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네요.  '나 정도면 미국에서도 중간은 가는구나, 걱정 안 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걱정하셔야 합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딱 중간에 속하는 평범한 서민의 삶은 힘듭니다.  특히 노후에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되고요.  늙어서 폐지 주으러 다니지 않으려면 상위 20% 안에는 들어야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모으고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or die trying.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라는 제목의 맷 데이먼 주연의 2017년 영화가 있습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환경 보호와 빈부격차 해소 등의 메시지를 담은 블랙 코미디 영화입니다.  주된 내용은 사람을 손바닥 정도의 길이로 줄이는 신기술이 개발된 것을 배경으로, 경제적 이익 혹은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스스로 소인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7600만불 들여서 5500만불을 벌어들인 망작입니다.)



고달픈 중하위층 소시민의 삶에 시달리던 맷 데이먼 부부도 소인이 되면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살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소인이 되어 소인들을 위한 전용 단지 레저랜드(Leisureland)에 사는 것을 택합니다.  그를 위해 상담받는 과정 중에 저같은 자본주의적 속물 근성을 가진 사람이 매우 흥미로워 할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담원 : 그러니까 고객분의 현재 대출금과, 퇴직 연금, 기타 저축금을 보면 현재 자본은 15만2천불(약 1억8천만원)이세요.  여러분, 아주 넉넉한 금액입니다.

폴(맷 데이먼) : 넉넉해요 ?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먼 금액 같은데요.

오드리 : 그러게요.

상담원 : 아니에요.  보세요.  표의 이 열을 보시면 돼요, 오드리.  등가 금액란이요.  여러분은 확실히 블루칩 등급에 속해요.  레저랜드에서는 여러분이 가진 15만2천불이... 평생 먹고 살기에 넉넉한 1천2백50만불(약 150억원)에 해당해요.  


저는 여기서 등가 금액보다는 폴이 가졌던 원래 금액에 더 솔깃했습니다.  폴은 원래 의과전문대학원에 가려 했으나 집안 사정 때문에 진학하지 못하고 그냥 육류 가공 공장 내의 물리 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멀쩡한 직업이 있는 40대의 중산층입니다.  그런데 가진 순자산이 고작 15만2천불이다 ?  저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아함을 가지고 있던 중, 최근에 흥미로운 기사를 봤습니다.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9/08/01/upshot/are-you-rich.html

원래는 (물론 미국 기준으로) 각자 살고 있는 도시에서 자신이 부자인지 아닌지 여부를 평가해주는 설문부터 시작하는 기사였는데, 나이별로 자신이 전체 인구 중 몇%에 해당하는 지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제공됩니다.  저는 저와 맷 데이먼이 공통적으로 속한 40대 후반 ~ 50대 초반의 그룹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미국의 50세 가장의 가구 기준으로 볼 때 딱 중간값에 해당하는 집안은 12만7천불(약 1억5천만원)의 순자산을 가진 것입니다.  이건 평균값이 아니라 중간값(median)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적습니다.  그러니까 저 영화 속 맷 데이먼이 가진 자산 15만2천불이 딱 현실에 맞는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개인이 아닌) 가구 기준으로 볼 때 부자라고 불리려면 상위 몇%여야 할까요 ?  이 기사에서는 그에 대한 기준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전체 가구의 상위 5% 이상이어야 부자라고 불릴 것 같은데, 그렇게 한다면 미국에서 나이 60세의 가구가 부잣집이라고 자부하려면 약 440만불(약 53억원)이 있어야 합니다.  40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훨씬 적어서, 110만불(약 14억원)이면 부자라고 자부하셔도 됩니다.




재산은 많은데 사업이든 월급이든 소득이 별로 없는 집도 있을 수 있고, 버는 것은 많지만 모아둔 재산이 별로 없는 집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미국도 그건 마찬가지인데, 어쩌면 미국은 그런 부분에서 더 역동적일 수 있습니다.  미국내 가구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미국 가구 중 무려 39%가 최소 1년간은 소득 상위 5%에 속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미국 가구 중 거의 절반 정도는 한때나마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건 꽤 뜻 밖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큰 비율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표가 마련되었는데, 이 표는 보기가 좀 까다롭습니다.  가로축은 연간 소득액이고, 왼쪽의 세로축은 순자산액, 오른쪽의 세로축은 연간 소득 대비 몇 배의 자산을 가지는지를 보여주는 눈금입니다.  그리고 저 초록색 곡선은 가구 연소득액의 상위%에 따른 가구 순자산액을 보여줍니다.  소득 상위 10%, 즉 아래에서부터 90%인 경우 연소득의 거의 6배에 해당하는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소득 상위 10% (바닥부터 90%)는 17만불(약 2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그 6배인 100만불(약 12억원)을 축적해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소비지향적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연간 2억원씩 버는 집에서 고작 12억원 밖에 안 가지고 있다니 제 생각보다는 버는 것에 비해 모아두는 것이 좀 적은 것 같네요.  그런데 소득이 내려갈 수록 모아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상위 20% (바닥부터 80%)만 해도 11만불(1억3천만원)을 버는데 모아둔 것은 고작 그 3배인 33만불(약 4억원)에 불과합니다.



왜 이렇게 소득 대비 자산 비율이 급격하게 차이가 날까요 ?  이 기사에 따르면 그 원인 중 하나는 '부자는 재산을 사업체와 주식으로 가지고 있지만 중간층은 주로 주택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상위 10%는 전체 주식의 90% 정도를 소유합니다.  그러나 부동산은 전체의 고작 50% 정도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한국의 사정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하는 것보다는 그럴 돈으로 그냥 강남 아파트를 사서 가만히 쥐고 있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것 같습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다시 영화 '다운사이징'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습니다.  인간 축소술을 개발한 어떤 노르웨이 박사의 대사인데, 인간의 자원 남용과 환경 파괴 때문에 이제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놓여있음을 한탄하며 하는 말입니다.

"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명체는 그다지 성공적인 종은 아니었군요.  그토록 지능이 높았는데도 말이에요.  고작 20만년을 버텼네요.  악어는 호두알만한 두뇌를 가지고도 2억년을 살아남았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수천년간 세상의 종말을 예견해왔는데, 이제 그게 정말로 일어나고 있어요."
(Not a very successful species, these Homo Sapiens, even with such great intelligence.  Barely 200,000 years.  Alligator has survived 200 million years with a brain the size of a walnut.  People have been predicting the end of the world for thousands of years.  And now it's really happening.)

무엇이 인간을 멸망시킬까요 ?  끊임없는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이어지는 현대 산업사회는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대형 운석이나 태양 활동의 변화가 아니라면, 결국 인간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멸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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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itfire 2019.09.12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퇴직금까지 끌어모아도 중년에 15만불이라면 미래가 불투명하다 생각할만 하네요. 반면 40대에 100만불이면 최소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이 된거니 중산층 이상 부자소리 들을만 하구요.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니 이제 선진국이랑 비교할만한 수준이 된듯 합니다.

    미국은 부자가 되기위해 사업과 투자를 하고 한국은 부동산을 사는 것은 양국의 인구/영토적 특성과 시장의 규모와 투자여건, 그리고 자본가에 대한 시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단순 비교는 좀 힘들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상식 중 하나가 빈부격차를 해소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인데, 이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가난한자는 재산이 0에 수렴하는데, 부자는 이자수입만으로도 가난한자들의 수입 이상을 벌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세제는 소득세 위주다 보니 아무리 누진세를 때려도 기존에 마련한 재산에 대해서는 함부로 세금을 거둘 수도 없지요. 자연적으로 산술적으로 빈부격차는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빈부격차의 해소에 역량을 쏟는 것보다는 부자는 부자대로 빈자는 빈자대로 자신의 삶 자체를 중심에 두고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진국 국민들 처럼요.

  2. 빛둥 2019.09.12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mlbpark.donga.com/mp/b.php?m=search&p=61&b=bullpen&id=201803020014288789&select=swt&query=%EB%B9%9B%EB%91%A5&user=&site=donga.com&reply=&source=&sig=h6j9SY-gi3eRKfX@hlj9Rg-A5mlq

    제가 예전에 엠엘비파크 게시한에 적었던 글인데, 미국 가정의 wealth 평균값은 우리나라의 2배가 넘지만, 중간값(median)을 비교하면, 오히려 우리가 약간 더 높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wealth_per_adult

    영문위키피디아에서 업데이트된 최신 자료로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평등한 국가인 것은 아니고, 그만큼 미국이 부의 편재가 (유럽 및 동아시아 고소득국가보다) 심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3. ㅇㅇ 2019.09.13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40대에 내집은 커녕, 저축 2억을 달성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네요ㅜㅠ 저축을 정말 열심히 해야겠군요.

  4. 에타 2019.09.13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수치가 놀랍지만은 않네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몇가지 추가 설명 더합니다.

    우선 미국인의 삶에서 빚(loan)이란 뗄레야 뗄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선 집을 살때에는 "당연히" 모기지를 끼고 사구요. 다운페이(계약시 융자 이외에 내가 내는 돈) 역시 집값의 20% 내면 낼만큼 냈다고 합니다. 5%내는 사람도 많아요.. 한국에서는 LTV규정때문에 집값의 거의 절반이상을 본인이 부담해야한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학자금 대출.. 요새 한국도 많아지고 있습니다만..미국은 대학교 학비가 너무 비싸서 다들 학자금 대출을 하고 로스쿨이나 메디컬스쿨까지 가면 거의 40-50까지 갚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다 빚값느라 쓰이게 되죠.

    그외에도 미국 사람들은 저축 정말 안해요. 알뜰하게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생각없이 그 달 월급을 그 달에 다 쓰죠. 부족하면 또 론을 받기도 하구요. 또 차를 살때도 또 론을 받고..생활 자체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생각 없이 빚지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그러다보니 50이 되어도 자산이 저정도 밖에 될수 없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한국도 점점 저렇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학자금 대출이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고, 전세 집도 있긴 합니다만 월세집들도 엄청늘어나서 예전에 비해 돈을 모으기는 상대적으로 더 힘들어졌어요.

    미국 자체가 한국보다 더 세금을 걷고 또 사회보장제도도 더 잘되어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빈부격차는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네요 ㅠ 그나마 다행이란 점은 아시안들은 그래도 악착같이 벌어서 잘살더라구요;;

  5. Eugen 2019.09.13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하지만 이전 글 주제를 이어서 쓰는데 제가 연기를 해봤자 제가 상속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아버지가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는 제사받는 걸 원하지않으세요. 그냥 죽으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라고 말하셨어요. 그리고 진짜 조부모님의 재산만 원했으면 셋이서 벌초하는데 가서 농약을 먹였겠죠. 근데 그렇게 미친 사람은 아니라서...

    • Eugen 2019.09.13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왜 이리 극단적이에요? 날 사칭한 놈 댓글을 보니 보수가 제3의 길을 가면 파시즘 뿐 인데 1차대전 후 독일만 봐도 알 수 있고요... 그냥 내버려 두면 안되요?

    • Eugen 2019.09.13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치병은 정신병이라더니 그래서 친구가 없겠죠. 정치병자들은

    • Eugen 2019.09.13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진짜 또라이들이 많네요. 날 사칭한 놈하고 알타리무같은 사람. 그냥 쿄애니갤이랑 군갤에서 놀까...

    • Eugen 2019.09.13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아버지 할머니를 껴안을 때 뭉클함이 있어요. 남들은 모르겠지만 어릴 때 같이 살면 뭐랄까.. 애절함?이 생겨서 그런것 같아요. 마침 질문을 하길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제가 조부모님을 사랑하는 건 진짜인 것같아요. 제사만 중요하고 재산이 중요했다면 제가 여름방학 2개월 동안 시골에 있는게 말이 안되요. 안 그랬다면 제사만 지내고 땡이였겠죠

    • Eugen 2019.09.13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 집안은 부모님이 이혼한 것만 빼면 가족과 친척들끼리 화목하거든요. 사촌들이 따로 모여서 서면에서 술자리를 가진 적도 있고요. 원수진 사람이 딱히 없어요.

    • Eugen 2019.09.13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극단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계량화가 가능하겠지만 뭐 편리하겠지만 세상은 다양한 성격에 다양한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맞지 않지요. 경제학자가 경제학계말고 다른데서 취업해서 성공 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죠? 그런거에요. 분명히 과학이 위대하고 승리하는 건 맞는데 그건 사회와 자연만 그렇지 개별적인 개인으로 넘어가면 형이상학적인 것도 중요하거든요.그래서 주인장이 개신교를 믿는 거겠죠.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내가 누구인가...

    • Eugen 2019.09.13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주제에 벗어난 글을 쓰는 건 정말 죄송한데요. 사칭 댓글조작을 당하니까 진짜 기분이 더러워서 그랬어요.

    • Eugen 2019.09.13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리고 저 보고 연기하는 거 아니냐고 하신 분. 진짜 고마워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뭔지 생각하게 됬거든요. 또, 저는 보수이지만 보수의 편이 아니고 애국자지만 애국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잘못해도 무조건 편들어서 생긴 게 문슬람이고 애국한다고 하다가 망한게 나치독일이에요. 패튼 장군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자신이 애국자가 되려하질 말고 적군이 애국자가 되도록 만들어라." 그래서 적군(독일군)을 애국자로(죽게) 만들어줬고 나치독일도 패망했잖아요.

  6. ㅇㅇ 2019.09.18 2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어려운이야기네요

  7. 유쾌한 봉자씨 2019.10.05 2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글귀보다 늙어서 폐지 주우러 다니지 않으려면만 보입니다.
    가슴에 콕하고 박히네요. 진짜로 이제부터라도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