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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49) - 미해군의 준비 미해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이더 시스템 CXAM을 장착하고 장시간 운용해본 항모 USS Yorktown은 레이더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전투기 관제를 위해서는 이를 운용하기 위한 전문적인 인원과 함께 레이더 운용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리포트를 1941년 3월에 올림. 그때까지만 해도 미해군에서는 레이더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새로운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 운용 담당자를 장교가 아닌 부사관(chief petty officer)으로 배정했을 정도. 근데 그렇게 해놓으니 도저히 운용이 안 됨. 그 부사관들이 자기가 레이더 스코프에서 본 정보, 즉 무의미한 거리와 방위각을 아무 기준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전화로 보내오니 함교에 있는 고위 사관들이 .. 2023. 10. 5.
레이더 개발 이야기 (48) - 포클랜드 상공의 H2S H2S와 그 개량 버전인 H2X는 이렇게 WW2에서 로열 에어포스가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 이후에도 로열 에어포스는 물론 미공군의 폭격기에서도 계속 사용됨. 그러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외로운 섬 포클랜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활약함. WW2 때 개발된 레이더를 1980년대에도 썼다고?? 의외지만 진짜임. 일단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장수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적 몰락 때문. WW2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뭐래도 미국. WW2를 거치면서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으로서 사실상 자유세계를 석권. 그에 버금가는 승자는 소련. 잠재적 경쟁국이었던 독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동서독으로 분할하여 재기를 막은 뒤, 동유럽을 석권하고 공산주의를 전파하여 미국과 .. 2023. 9. 21.
레이더 개발 이야기 (47) - 멤피스 벨과 H2X H2S는 밤눈이 어두운 로열 에어포스 항법사들에게 성공적으로 독일로 가는 밤길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쾰른이나 함부르크를 폭격할 때는 나오지 않던 불평이 베를린 폭격에서는 쏟아져 나옴. 1943년 8월 말과 9월 초, 3번에 걸친 베를린 폭격 작전후, 폭격기 사령부와 레이더 개발팀 사이의 연락 장교 역할을 하던 새워드(Saward) 중령이 베를린 상공에서 찍은 H2S 레이더 스코프의 사진을 레이더 개발팀애게 전달. 개발팀이 보니 그냥 무의미한 허연 점들과 패턴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을 뿐, 뭔가 눈에 띄는 랜드마크 지형물을 구별할 수가 없었음. 다른 도시에서는 잘 통하던 H2S가 왜 유독 베를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을까? 이유는 도시의 규모.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여러 소왕국들이 분립하여 .. 2023. 9. 14.
레이더 개발 이야기 (43) - 독일의 대응 괴링을 경악시킨 항법용 공대지 레이더 H2S의 실체를 알게 된 독일군은 그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절치부심. 여태껏 거의 3년 동안 영국과 독일은 서로의 전파 항법 시스템에 대해 jamming을 주거니 받거니 한 사이였으므로, 이번에도 jamming을 시도. 일단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decoy. 얇은 금속판을 접합하여 삼각뿔 등의 다면체를 만들고 이를 교외의 공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건물 등 폭탄이 떨어져도 괜찮은 곳에 잔뜩 배치. 이는 직각으로 맞닿은 금속판이 레이더 신호를 가장 강력하고 선명하게 반사하기 때문임. 그런 금속판으로 만든 다면체를 보통 radar reflector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그럴싸하게 설치해놓으면 영국 폭격기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하게 큰 물체를 보게 되므로 '여기는 어디.. 2023. 8. 17.
레이더 개발 이야기 (42) - 로테르담에서 온 장치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이 밤길을 못 찾아 여태껏 삽질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 폭로된 Butt 보고서 파문 이후, 항법사들의 밤눈이 되어줄 공대지 레이더 H2S에 대한 영국 정부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고 그에 비례하여 개발진에 대한 압박도 대단했음. 1942년 7월, 처칠은 직접 10월 중순까지 H2S 레이더 200 세트를 준비해놓으라고 명령하여 레이더 개발팀을 깜놀시킴. 모든 지원이 다 집중되었으나, 결국 이 마감일은 지키지 못함. 1943년 1월까지도 고작 12대의 Stirling 폭격기와 12대의 Halifax 폭격기에만 H2S가 장착됨. 그리고 이들은 당장 실전에 투입됨. 바로 1943년 1월 30일의 함부르크 폭격. (함부르크 상공의 랭카스터 폭격기. 이 사진이 바로 최초의 H2S를 이용한 폭격이 있.. 2023. 8. 10.
레이더 개발 이야기 (40) - 공대지 레이더와 금주법 원래 초창기 레이더는 Chain Home 지대공 radar나 해양 초계기에 장착했던 ASV 공대함 radar처럼 그냥 일련의 쇠막대기로 이루어져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레이더스럽지 않았음. 게다가 그 스코프 화면도 수평선에 가끔씩 삐빅하고 위로 치솟는 지점이 나타나는 정도로서, 레이더라기보다는 마치 심장박동수 화면처럼 보였음. 게다가 스코프로는 거리만 측정 가능했고, 방향은 Bellini–Tosi direction finder 코일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틀어서 간신히 찾을 수 있었음. 그러다 1942년 즈음해서 화면 중앙에 레이더 자체가 위치한 PPI (plan position indicator) 디스플레이가 고안되면서 모든 것이 확 좋아짐. 특히 이 디스플레이는 cavity magnetron의 발.. 2023. 7.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39) - 센티미터의 마법 공대공 레이더 연구를 시작하던 "Taffy" Bowen이 개발 초창기 1.5m 파장 길이의 상대적 낮은 주파수 전파로 테스트를 할 때부터, 이미 레이더 스코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뚜렷한 반사파가 잡히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런 물체들은 부두의 구조물, 절벽, 선박 등이었는데 공통점은 물 위에 수직으로 서있는 물체들이었다는 것. 이는 전파를 잘 반사하지 않는 매끈한 수면 위에 수직으로 서있는 물체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반사파를 보내기 때문이었고, 이 발견을 이용해 공대함 레이더 ASV를 만들어 대잠수함 작전에 매우 잘 활용했음. (전에 ASV 설명하면서 그렸던 이 그림 기억하시는지. 위가 지표면에 부딪히는 전파의 반사이고 아래가 해면에 부딪히는 전파의 반사.) 공대함 레이더가 가능하다면 공대지 레이더도 가.. 2023. 7. 20.
레이더 개발 이야기 (38) - 바보야, 지구는 둥글쟎아! Gee를 이용한 폭격을 시작하고서도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 사령부(Bomber Command)는 그렇게까지 행복해하지 않았음. 이유는 일단 정확도. Gee의 개념 특성상, 기지국에서 멀면 멀수록 정확도가 점점 더 떨어짐. 그러니 격추된 영국 랭카스터 폭격기에서 수거한 Gee 수신기를 수리하여 자국 폭격기에 싣고 영국의 밤 하늘로 날아온 루프트바페에게는 Gee가 꽤 정밀한 폭격 유도를 해주었으나, 정작 정품 사용자인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은 머나먼 독일에서는 꽤나 부정확했음. 독일 쾰른 상공에서는 오차가 1.6km까지도 벌어졌는데, 당시 폭탄의 살상 범위는 건물의 경우 10m 이내, 사람의 경우 100m 이내였기 때문에 이건 정밀 폭격과는 거리가 멀었음. 그래서 그런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로열 에어포스는 갖.. 2023. 7. 13.
레이더 개발 이야기 (37) - 피해갈 수 없는 jamming과의 싸움 1941년 8월, 로열 에어포스는 Gee의 효용성에 확신을 가지고 양산을 결정. 그러나 양산 결정을 한다고 당장 수신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며, 생산라인 갖추고 충분한 개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다음해인 42년 5월 경에나 가능. 당장 전쟁이 급한 로열 에어포스는 먼저 손으로 한땀한땀 납땜을 해서라도 300개만 먼저 만들어달라고 독려. 그나마 그런 수제 Gee 수신기도 42년 1월에나 만들어짐. 그렇게 만들어진 수제 Gee 수신기를 이용한 첫 공습은 42년 3월 8일 밤에 200대의 폭격기를 동원한 서부 독일의 Essen 공습 작전. 몇몇 폭격기에 Gee 수신기를 장착하여 선두에 서게 한 것. 목표물은 이 도시에 있던 Krupp사의 공장이었으나 정작 이 공장에는 폭탄이 하나도 안 떨어지고 .. 2023. 7. 6.
레이더 개발 이야기 (36) - 이제 우리는 독일로 간다 1939년 말까지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들은 발트 해 연안의 독일 해군 기지 등에 대해 과감한 주간 폭격을 실시하고도 큰 피해가 없었음. 이유는 프랑스도 아직 항복하지 않았고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는 한정적이었으므로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대한 요격 활동이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1939년 12월 18일, 22대의 Vickers Wellington 폭격기들이 헬리골란트 만의 빌헬름스하벤(Wilhelmshaven) 항구를 공격할 때, 한 떼의 루프트바페 전투기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정확하게 달려들어 개박살을 내놓음. 결국 22대의 웰링턴 폭격기들 중 10대가 격추되었고 2대는 손상을 입고 바다에 불시착했으며 기지로 돌아온 10대 중 3대는 손상이 너무 커 폐기처분될 정도. 독일 전투기들.. 2023. 6. 29.
레이더 개발 이야기 (34) - Orfordness의 등대 WW2 중 독일의 전파를 이용한 항법 기술은 사악한 영국놈들의 jamming을 당해서 망했을 뿐, 기술 혁신의 산물. 그런데 왜 영국애들은 왜 그런 기술 혁신을 못 이루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영국애들도 전파를 이용한 항법은 그 전부터 연구했고 실제로 구현도 했음. Loop antenna를 이용한 전파 방향 탐지(radio direction finding, RDF)는 무선통신 초기 때부터 있었던 기술이었고, 따라서 이걸 이용하여 초장거리 등대로 사용하려는 계획은 예전부터 있었음. 그러나 잘 안 되었던 이유는 필요한 고리형 안테나의 크기 때문. 정확한 방향을 잡으려면 고리형 안테나가 커야 했는데, 5미터짜리 대형 loop antenna는 선박에서도 부담스러운 물건이었으므로 항공기에서는 더더욱 불가.. 2023. 5. 18.
레이더 개발 이야기 (33) - 농락 당한 애꾸눈 신 코벤트리 폭격 이후 익스거레트조차 영국놈들의 전파 방해에 막히게 되자 루프트바페는 준비하고 있던 비장의 마지막 카드를 내밈. 이건 X-Gerät의 뒤를 잇는 Y-Gerät. 영국이 이 입실론거레트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역시나 독일의 암호 체계 Enigma를 해독했기 때문. 입실론거레트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자주 나오기 시작하고 영국의 전파 방해에 지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폭격 사례들이 등장하기 시작. 로열 에어포스는 대체 이번에는 어떤 원리를 이용한 전파 항법이길래 재밍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를 고민. 그런데 이니그마를 자세히 분석해보니, 입실론거레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자주 등장. 그 이름은 보탄(Wotan). 고대 독일 신화에 등장하는 보탄은 스칸디나비아의 오딘에 해당하는 신. 그런데 입.. 2023.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