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7 06:30



Desolation Island by Patrick O'Brien (배경 : 1811년 HMS Leopard 함상) ------


(워건 부인은 군함 뱃바닥에 있는 영창에 갇혀 오스트레일리아의 유형지로 가는 신세입니다.  군의관인 머투어린이 이 여자를 검진합니다.)


"그렇게 절망하여 외톨이 노릇을 고집하시면 틀림없이 건강을 해치게 될 겁니다."


그녀는 미소를 쥐어짜 보이고는 말했다.  "어쩌면 이건 그냥 나폴리 비스킷(Naples biscuits) 때문일거에요.  최소한 1천개는 먹었거든요."


"줄곧 나폴리 비스킷만 드셨다고요 ?  이 군함에서 식사를 제공하지 않던가요 ?"


"주긴 하지요.  곧 그런 식사도 맛있게 먹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불평한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신 것이 언제였나요 ?"


"글쎄요, 정말 오래 전이긴 한데... 클라지스(Clarges) 가에서였을거에요."


머투어린은 그 클라지스 가에서 제대로 정신차린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클라지스 가에 살았던 유명 인사로는 넬슨 제독과 염문을 일으킨 레이디 해밀턴이 있습니다 - 역주)  "나폴리 비스킷만 드셔가지고는... 아마 안색이 노랗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말린 카탈로니아 소시지를 하나 꺼내어 수술용 메스로 끄트머리의 껍질을 벗겨내고는 말했다.  "이젠 시장하신가요 ?"


"아 그럼요 !  아마 바닷 바람 때문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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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의 모습을 잘 그려낸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오브리-머투어린(Aubrey-Maturin) 시리즈에는 여러가지 음식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그 배경 때문에 긴 항해 중에 선상에서 먹는 음식에 대한 묘사가 많습니다.  그 중 무척 독특한 것으로 인상에 남았던 것이 저 나폴리 비스킷(Naples biscuits)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게으름 때문에 이 과자가 대체 어떤 것인지 또 무엇으로 만든 것이길래 긴 항해를 떠날 때 1천개 넘개 가져갈 정도로 보존성이 좋은지 찾아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회사 내의 카페에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카운터에 놓인 과자 포장지를 멍하니 보다가 Napolitaner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 과자 이름을 보고 몇 년전에 읽었던 저 소설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 과자가 이 웨하스 과자인가 ?  아니, 웨하스가 보존성이 좋은가 ??





(비싼 이탈리아제 웨하스라고 해서 뭐 딱히 더 맛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실은 저 과자 이름을 보고 나서, 제가 몇 년 전에 읽은 저 나폴리 비스킷의 정확한 스펠링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Neapolitan biscuit으로 기억했더랬어요.  맨 처음 저 Neapolitan이라는 형용사를 보고는, 대체 저게 무슨 나라 이름인지 짐작을 못 했습니다.  제가 Sharpe 시리즈나 Hornblower 시리즈 등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하도 많아서 도저히 영어 사전을 일일이 뒤져 가면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Naples는 딱 보고 아, 저게 나폴리의 영어식 표현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Neapolitan이라는 것이 그 Naples의 형용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나폴리의 역사에 대해 제가 좀 더 알았다면 저 Neapolitan이라는 단어가 Naples의 형용사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을 것입니다.  원래 나폴리(Napoli)라는 이탈리아어는 Neápolis (Νεάπολις)라는 헬라어/라틴어에서 나온 것으로서, 새로운 (nea-, neo-) 도시 (polis)라는 뜻입니다.  로마가 융성하기 전,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진출했던 그리스인들이 세운 식민도시였거든요.  역설적으로, 현재 나폴리는 그 원래 이름과는 달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이 그리스 식민도시들 중에서 나폴리를 찾아 BoA요)





(나폴리 항구의 모습입니다.)




이탈리아는 원래부터 남부와 북부 간의 빈부격차가 큰 나라였고, 그런 경향이 근래에는 더욱 커졌다고 하던데, 당연히 나폴리도 남부에 속하고 있고 또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폴리는 로마 시대부터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매우 존중받는 도시였고, 그런 경향은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15~17세기에 나폴리에서 왔다, 나폴리제다 라고 하면 굉장히 고급품이고 우아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영국에서도 선진 나폴리의 명성은 마찬가지였는데, 정말로 나폴리에서 온 것인지는 의심스럽지만 영국 튜더(Tudor) 왕조 시대부터 이미 '나폴리에서 온 비스킷'이라면서 유행한 과자가 바로 Naples biscuit이었습니다.  나폴리 비스킷의 레시피를 보면 그냥 우유와 설탕, 그리고 특히 계란을 많이 넣은 과자입니다.  계란 거품을 이용하여 부풀려 구웠기 때문에 과자 속에 공기가 많이 들어 있어 먹기에 훨씬 부드럽고 달콤했지요.  비슷한 시기에 유래된 비슷한 과자로 레이디핑거(Ladyfinger) 또는 사보이 비스킷(Savoy biscuit)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는 15세기 후반에 사보이 공작의 궁정을 방문한 프랑스 왕을 접대하기 위해 특별히 구워진 과자라고 하고, 그 과자 자체에 대한 묘사는 재료나 모양이 나폴리 비스킷과 똑같습니다.  아마 당시 많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나폴리나 사보이나 다 이탈리아의 잘 나가는 화려한 동네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폴리 비스킷이라고 알려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계란과 설탕을 많이 넣어 구운 비스킷이 보존성이 좋을까요 ?  특히 나폴리 비스킷에 대해 뒤지면서 약간 헷갈렸던 것이, '나폴리 비스킷은 레이디핑거 같은 것인데, 레이디핑거는 스폰지 케익이다' 라고 설명된 포스팅이 많더라고요.  대체 어떻게 스폰지 케익의 보존성이 좋을 수 있단 말인가요 ?  그런데도 이 나폴리 비스킷은 저 오브리-머투어린 소설 속에 나온 것처럼 보존성이 좋아서 좀 여유있는 승객들이 항해에 나설 때 꼭 챙겨가는 음식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  한참을 고민하며 비스킷의 보존성에 대해 별의별 사이트를 뒤져 보았는데, 한참 만에야 그럴싸한 답을 아래 사이트에서 찾았습니다.


https://www.janeausten.co.uk/naples-bisket-or-sponge-cake/


여기서 인용된 유명 작가 제인 오스틴의 일기 중 하나가 있습니다.  제인이 언니인 카산드라에게 한 말입니다.


"스폰지 케익을 사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잘 알지 ?"  (1808년 6월 15일 수요일)


여기서 말하는 스폰지 케익이라는 것은 요즘 우리가 흔히 먹는 부드러운 스폰지 케익과는 다소 다른 것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빵이나 과자를 부풀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천연 이스트를 썼는데, 17세기 중반이 되면서 이스트 대신 계란 거품을 이용해서 과자를 부풀리는 요리 기법이 주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란 거품을 이용해 부풀린 과자류에도 당연히 기포 공간이 많아서 뻑뻑한 비스킷보다는 훨씬 부드러웠고, 그래서 그런 과자류를 스폰지 케익이라고 불렀다는군요.  다만, 이 시대의 스폰지 케익은 요즘의 스폰지 케익보다는 쿠키에 더 가까운 물건이었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아직 비닐 포장지도 없고 냉장고도 없는 시절에는 오래 두고 먹을 과자를 구우려면 바싹 구워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 상식이었겠지요. 




(이건 Ladyfingers의 사진입니다.  나폴리 비스킷의 모양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당시 나폴리 비스킷이라는 것은 뻑뻑하고 맛없는 당시의 선원용 비스킷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맛있는 쿠키에 가까운 과자라서, 패스트리 같은 빵과자에 비하면 보존성이 좋아서 중산층 승객이 먼 항해에 나설 때 챙겨가지 딱 좋은 과자였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게 이 포스팅을 올리게 한 저 Napolitaner라는 웨하스는 나폴리 비스킷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물건일까요 ?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웨하스(wafer) 과자는 1898년, 오스트리아의 Mann이라는 제과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크림을 넣은 웨하스인데, 여기에 나폴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나폴리 지역에서 재배된 헤이즐넛만을 써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 속에 든 초콜릿 크림의 대부분은 초콜릿이 아니라 헤이즐넛으로 만든 것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저 로아커(Loaker) 사의 Napolitaner라는 과자의 성분표를 보면 헤이즐넛 9%에 코코아 성분도 약간 들어가기는 합니다.  저는 그 설명을 보고 로아커 사도 오스트리아 회사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로아커는 남부 티롤에 근거를 둔 이탈리아 회사로서, 1925년에 남부 티롤 출신인 알폰스 로아커라는 사람이 만든 제과점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아마 독일계 오스트리아 주민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하는 바람에 졸지에 이탈리아인이 된 사람이었나 봅니다.  저 Napolitaner 라는 단어는 독일어도 아니고, 이탈리아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도 아닌, 묘한 단어입니다.  어쩌다 저런 무국적 이름이 붙었는지는 누가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솨요.




(잘 익은 헤이즐넛 열매입니다.  누텔라 같은 경우도 사실 카카오 열매보다는 팜 오일과 헤이즐넛이 더 많이 사용된 스프레드입니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에는 원래 헤이즐넛을 많이 재배했는데, 전쟁 직후 카카오가 귀하던 194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 사업가가 카카오 대신 이 남아도는 헤이즐넛을 이용해서 뭔가 만들어보자 라고 해서 만든 것이 페레로 로쉐 초콜렛과 누텔라라고 합니다.)




추가) 나폴리라는 도시 이름이 혼란을 일으킨 건 제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나폴리의 형용사는 영어로는 Neapolitan이지만 불어로는 Napolitain 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나폴레옹의 Napoleon과 헷갈리기 딱 좋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헷갈렸다고 합니다.  그 좋은 예가 밀푀유(Mille-feuille, 불어로 천개의 잎사귀라는 뜻)라는 프랑스식 크림 패스트리의 이름입니다.  이 크림 패스트리가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에서 유래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대략 16세기부터 만들어진 빵과자인데, 이것도 나폴리식 과자(gateau napolitain)라고 소개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나폴리식 과자가 아니라 나폴레옹식 과자로 오해를 해버렸고, 그래서 실제로 지금도 밀푀유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러시아식 밀푀유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밀푀유 과자는 엉뚱하게 러시아에서 Наполеон(키릴 문자로 나폴레옹이라는 스펠링을 쓴 것입니다.  저 대학 다닐때 러시아어 1학기 들었습니다ㅋ)이라는 이름으로 큰 명성을 얻었고, 거기에 덧붙여 이런저런 의미를 많이 부여 받았습니다.  밀푀유 특유의 겹겹이 쌓인 많은 층들은 프랑스의 그랑 다르메(Grande Armee) 대군을 뜻하는 것이고, 삼각형으로 자른 과자 모양은 나폴레옹의 이각모(bicorne)을 뜻하는 것이고 (모든 케익은 자르면 삼각형이 되지 않나요 ?), 또 이 과자 위에 뿌려진 패스트리 가루는 나폴레옹을 물리치는데 큰 기여를 한 러시아의 눈을 뜻하는 것이다 등등입니다.  엉뚱한 착각이 로맨틱한 이야기를 낳습니다.  해로울 건 없지요.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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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9.27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ㅎㅎ

  2. 랴균 2018.09.27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 과자 군대에서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ㅎㅎ

    반갑네요

    먹기만 했을뿐 이름의 유래는 생각해본적도 없는데 말이죠.

  3. 나폴레타나 2018.09.27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흥미진진한 연재들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분야긴하지만 남자들의 수트도 최고급, 최고의 제품들은 나폴리에서 제작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패션하면 밀라노를 떠올리지만 남성복의 정점인 수트만큼은 아직 나폴리의 몇몇 브랜드들이 세계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르네상스 시기 나폴리의 명성을 아직 잇고 있는 유일한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장 땜에 몇 번 이 곳을 가본 결과, 밀라노같은 도시에 비해 낙후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연경관만큼은 감탄이 나오더군요 ^^

2018.09.03 06:30

한 십여년 전에, 집에서 National Geographic 잡지를 구독한 적이 있었습니다.  와이프가 어찌어찌하다가 구독하게 된 것이었는데, 영문판이었습니다...  그렇쟎아도 내용이 심오한 잡지였는데 영문판이니 더욱 읽기가 어려워 결국 대부분 읽지도 않은채 구독이 끝나버렸지요.  그런데 그 얼마 안 되는 읽은 기사 중에 곡물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게 기억되는 부분이, "만약 콩이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지 못 했을 것이다"라는 문구였습니다.  즉,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태어났을 때 아프리카 평원에 콩류가 없었다면 인류가 큰 뇌를 발달시키는데 필요한 단백질과 지방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콩은 지금도 인류에게 값싼 단백질과 기름을 선물하는 매우 귀한 작물입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때 대두(soy bean)를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과 수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콩이 가격이 저렴하고 구하기도 쉬운 것에 비해 영양과 건강 측면에서는 고기보다 오히려 더 낫다는 것은 성경책에도 나옵니다.  구약 다니엘서 1장 12절~15절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부분의 배경은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정벌하고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인 귀족 청년들을 인질로 잡아간 뒤 바빌로니아 궁전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당시 그 지방의 풍습에 따라 이렇게 인질로 잡혀간 타민족 귀족 청년들은 노예치고는 좋은 대접과 교육을 받고 바빌로니아 왕국에 충성하도록 육성되었지요.  그런데 다니엘은 유대인인지라 돼지고기나 토끼고기등 먹는 것에 가리는 것이 많았고,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먹는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기와 와인을 먹이려는 느부갓네살 왕의 환관과 협상을 하지요.


(단 1: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단 1: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단 1: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단 1: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다니엘이 바빌론 왕이 내리는 음식을 거부하는 장면입니다.)




요즘 상식으로 생각하면 고기와 술 대신에 채소와 물을 먹고 마시면 피부가 더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정말 배추나 시금치 같은 채소만 먹고 다니엘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  아마 체중이 많이 줄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고기를 먹는 다른 노예 소년들에 비해 다니엘과 유대 소년들은 살이 빠져 비리비리한 모습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체 무슨 채소를 먹었던 것일까요 ?  바로 콩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  킹 제임스 버전의 영문판 성경을 읽어보면 나옵니다.  



Daniel 1:12 Prove thy servants, I beseech thee, ten days; and let them give us pulse to eat, and water to drink. 



여기서 pulse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저도 이번에 사전 뒤져보고 알았습니다만 이 pulse는 심장 박동이라는 뜻이 아니라 콩류를 뜻하는 단어더군요.  이렇게 종교적 이유로 미심쩍은 육류를 피하는 주민들을 위해 콩을 공급한 사례는 비교적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전에 미군이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기 위해 준비 중일 때,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 대한 사전 공작의 일환으로 주민들에게 일종의 전투 식량 같은 레토르트 포장의 식품을 수송기를 이용해 대량으로 공중 살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악한 미국놈들이 음식에 돼지고기를 섞었을 수도 있다고 주민들이 생각하면 곤란하니까, 아예 육류는 철저하게 빼고 100% 식물성으로 된 음식을 뿌렸습니다.  전투 식량처럼 휴지와 사탕, 포크 등이 포함된 그 식량 팩 메뉴 중 주식으로 넣은 것이 '식초로 맛을 낸 콩'이었지요.  저는 그때 그 기사를 읽으면서 과연 그 콩 요리는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했는데, 불행히도 아직까지 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요리 이름도 모르겠어요.


실제로 콩류는 지금도 곡물(grain)이 아니라 채소(vegetable)에 속하는 콩류(legume)으로 분류됩니다.  이건 나폴레옹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일일 배식 품목을 보면 특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건조 채소입니다.  


빵 1.5 파운드

고기 1.1 파운드

건조 채소 0.25 파운드

브랜디 0.0625 파인트

와인 0.25 파인트

식초 0.05 파인트


건조 채소가 나온다고 해서 '역시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영양의 균형을 생각하는 미식가의 나라'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건조 채소라는 것은 영국군도 자주 배식하던 말린 완두콩을 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거든요.  1800년의 제2차 이탈리아 침공 때부터 나폴레옹 밑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던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에도 '아마 천지창조 때 함께 창조된 것처럼 오래된 말린 콩'이 배급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병사들은 이렇게 말린 콩으로 어떤 요리를 해먹었을까요 ?  여기에 대해서는 영국 해군이 아주 좋은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완두콩 수프(pea soup)입니다.  군대, 특히 군함에서는 말린 완두콩이 매우 좋은 식품으로 무척 각광받았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일단 싸고, 잘 말리면 아주 오래 보존이 가능한데다 부피도 작고, 특히 알갱이가 작다보니 헐렁한 자루에 넣어서 보관하면 건빵과는 달리 좁은 뱃바닥 구석진 공간에도 비집고 들어가기 딱 좋은 형태로 구겨져서 보관 공간도 적게 차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푹 삶기만 하면 맛도 괜찮고 아주 든든한 수프가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수병들도 매주 똑같이 주어지는 염장고기와 건빵, 오트밀 등의 단조로운 식사 중에서 오직 불평하지 않은 것은 럼주와 이 완두콩 수프였다고 합니다.  


영국 해군에서는 이렇게 하도 완두콩 수프를 많이 먹다보니, '완두콩 수프 진급'(pea-soup promotion)이라는 용어까지 나왔습니다.  이건 우리나라 군대의 '짬밥'과 똑같은 의미로서, 복무 기간이 길어서 연공 서열에 이루어지는 진급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영국 해군 Frank H Shaw 대령이 쓴 "The Navy of Tomorrow"의 일부입니다.  책 아래 부분을 보면 pea-soup promotion이라는 단어와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소스는 http://www.godfreydykes.info/PROPER%20NAVAL%20RESEARCH.htm )





(완두콩 수프입니다.)



(이건 핀란드식 완두콩 수프라는데, 수프라기보다는 죽에 가깝군요 !)




완두콩 수프는 당시 농부/노동자 계급 가정에서도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결코 비싼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또 요즘 수퍼 푸드라고 각광받는 렌틸콩(lentils) 같은 경우, 고대시절부터 빵조차 마음대로 못 먹는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으로 애용된 매우 저렴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싼 콩도 있었을까요 ?  제가 어릴 때 어린이 문고판 버전의 레미제라블을 읽고 뭔가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푸른콩'에 대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그 구절 하나하나가 잘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선량한 빈민으로 변장한 테나르디에가 자선 활동을 하던 장발장을 공범들과 함께 자기 집으로 유인하여 묶어놓은 뒤, '푸른 콩을 먹는 너희 같은 부자들은 우리 같은 빈민들의 사정을 모른다'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아, 푸른콩은 비싼 음식인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푸른콩이 뭔지 잘 모른다는 점이었는데, 처음에는 완두콩을 말하는 것인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완두콩이 뭐 그렇게까지 비싼 콩은 아니쟎아요 ?  그러다 나중에, 직장 다니면서 미국에 출장갔다가 줄기콩이라는 채소를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콩깍지 채로 먹는 신기한 채소를 본 셈인데, 나중에 그 채소 이름이 green bean(string bean이라고도 하지요)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어렸을 때 읽었던 푸른콩이 아마 이 채소인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줄기콩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채소가 되었지요.  일반 콩보다는 약간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어판 레미제라블을 찾아서 (물론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니, 의외로 어렸을 때 읽은 '푸른콩'은 줄기콩이 아니라 그냥 완두콩이더라구요 ?



"Vous mangez des truffes, vous mangez des bottes d'asperges a quarante francs au mois de Janvier, des petits pois, vous vous gavez, et, quand vous voulez savoir s'il fait froid, vous regardez dans le journal ce que marque le thermometre.


너희들은 송로버섯을 먹고, 1월달에 한 단에 40프랑 하는 아스파라거스와 완두콩(petits pois)을 실컷 먹고, 얼마나 추운지 알고 싶을 땐 신문에서 온도계 눈금이 얼마인지를 찾아보지."



당시 40프랑이면 현재 우리 돈으로 약 40만원 정도인데, 비닐하우스도 없던 당시 아스파라거스를 1월에 먹으려면 이렇게 무척 비쌀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로마시대에는 겨울 축제 때 아스파라거스를 쓰려고 알프스 산맥 높은 곳에 쌓인 눈 속에 묻어서 냉동 보관하기도 했다지요.  




(이건 흰 아스파라거스입니다.  저도 신입사원 즈음에 외국 출장 나갔다가 처음 아스파라거스를 먹어보고는, 무슨 채소인진 몰라도 옥수수 비슷한 맛이 나서 신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궁금함을 못 참고 그 외국 host에게 이게 무슨 채소냐라고 물었더니 그 외국인이 아니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아스파라거스라고 알려주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저도 애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 때마다 좀 색다른 재료로 만든 색다른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애는 그런 제 노력을 그냥 잔소리로 거부하여 그만 FAIL...)




그러나 완두콩은 대체 왜 비싼 음식으로 여기에 나열되었을까요 ?  처음에는 저는 pois가 완두고 petit는 작다는 뜻이니, 아마 완전히 자란 완두콩 말고 아직 어려서 부드럽고 작은 완두콩은 더 비싼 음식이었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 정보화 세상 정말 좋습니다) 그것도 아니더군요.  Pois는 그냥 식물로서의 완두를 말하는 것이고, 사람이 먹는 완두콩은 보통 petit pois라고들 부른답니다.  가령 안델센 동화 중에서 20장의 매트리스와 20장의 오리털 이불 밑에 넣어둔 완두콩이 배겨서 잠을 못자는 여자를 진짜 공주로 인정했다는 '공주와 완두콩' 이야기의 불어 번역도 'La Princesse au petit pois'라고 petit를 붙인 pois를 씁니다.




('공주와 완두콩' 이야기에 나오는 20장의 매트리스와 20장의 오리털 이불이 있는 침대 위에 누운 공주의 모습입니다.  관광객 유치용으로 덴마크에 만든 것이래요.)




결국 왜 레미제라블의 테나르디에가 완두콩을 전형적인 부자들의 음식으로 지칭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두콩이 일반 대두나 강낭콩 같은 것보다 더 비싼가 싶어서 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콩 가격을 살펴보았는데 의외로 콩 종류에 따라 가격 차이가 거의 없더라구요.  완두콩이라고 더 비싼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카투사로 미군에 복무할 때, 한번은 평택 지역에 가서 야전 훈련을 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식사는 맛없는 MRE(Meal Ready to Eat)를 뜯어먹는데, 마지막 날은 평택의 Camp Humphreys에서 대형 금속제 용기에 더운 밥을 실어다 먹여주더군요.  그때 메뉴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 중 더운 채소, 즉 hot vegetable로 나온 것이 리마콩(lima beans)이었습니다.   보통 콩보다 한 2배는 더 큼직하고 납작한 연두색 콩을 뭔가 닭이나 돼지 육수 같은 것과 함께 삶은, 간단한 요리였어요.  나름 맛있더군요.  저는 그때 그렇게 큰 콩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옆의 미군에게 '야 이 콩은 이름이 뭐냐' 라고 물으니 '라이마 빈즈'라고 답을 하면서 '그거 비싼 콩이야'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기회에 외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격을 보니... 비싸긴 개뿔, 그냥 완두콩이나 대두나 리마콩이나 다 가격은 비슷비슷하던데요 ?




(제가 그때 야외 훈련장에서 먹었던 리마콩이 딱 저렇게 생겼습니다.  다만 이 사진 속의 콩은 너무 삶아서 콩이 물러터진 것처럼 보이네요. 스파게티 면이나 콩이나 알덴테(al dente)로 약간 씹는 맛이 있어야 좋은데 말이지요.)




영국 해군 수병들이나 나폴레옹의 병사들이나 미군이나 콩은 기본적으로 삶아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동양에서는 좀더 복잡하게 가공해서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콩을 그냥 삶아서 먹는 건 소나 말 여물 줄 때나 그렇게 하는 것이었지요.   가령 김성한 작가의 소설 '임진왜란'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조선 조정은 명군의 요구대로 그들에게 일정한 급식을 약속하였다.  장군들에 대해서는 각각 접반사가 따라붙어 특별한 대접을 하는 외에 천총, 파총 등 장교 이하 사병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한 식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 장교들에 대해서는 천자호반(天字號飯)이라 하여 고기, XX, 채소, 자반 각 한접시, 밥 한그릇, 술 석 잔.

. 각 관아에서 파송되어 온 연락관에 대해서는 지자호반(地字號飯)이라 하여 고기, XX, 채소 각 한접시에 밥 한그릇.

. 일반 병사들에 대해서는 인자호반(人字號飯)이라 하여 XX와 소금에 절인 새우 각 한접시에 밥 한 그릇.

. 그들이 타는 말에 대해서도 규정이 있어 한끼에 콩 소두 한말, 풀 한단씩.  단 점심에는 삶은 콩을 소두로 4되.



여기서 명나라 군대의 장교부터 말단 졸병까지 모두의 식단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저 XX라는 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  두부였습니다.  명군의 말까지도 콩을 꼭 먹이도록 되어있었으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결국 다 콩을 필수적으로 먹었던 셈입니다.  다시 한번 콩의 식품으로서의 우수성이 드러나는 부분이지요.  




(저는 두부를 그냥 부쳐먹는 거 좋아합니다.)



(한국의 콩 요리 중에서 최고봉은 메주로 만든 된장이지요.  메주치고는 너무 예쁘지요 ?  어느 식당 벽에 걸린 플라스틱 장식품을 제가 사진으로 찍어온 거에요.)




오늘의 콩 이야기도 나폴레옹의 일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폴레옹이 콩 종류를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아침은 버터에 부친 달걀 프라이와 함께 콩 샐러드를 먹었다고 하지요.  그 외에도 원정 때 전쟁터 근처 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던 식량인 감자와 함께 콩과 렌틸콩 같은 것도 매우 좋아했다지요.   이집트 원정 때도 카이로를 향해 진격할 때, 병사들은 '이집트 농민들을 약탈하지 말라'는 그의 명령을 무시하고 재주껏 닭 같은 것을 훔쳐다 먹었지만, 그는 끝까지 굳건하게 나일 강변의 농가에 잔뜩 쌓여 있던 파바(fava) 콩 삶은 것만 줄기차게 먹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의 참모들도 카이로를 점령할 때까지 지겹게 콩만 먹어야 했다고 하지요.  그렇게 콩을 좋아하던 나폴레옹이 유일하게 절대 식탁에 올리지 못하게 한 콩이 있었으니 바로 줄기콩(불어로는 haricot vert, 푸른 콩이라는 뜻인데 깍지 채로 먹습니다)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줄기콩 맛이나 식감을 딱히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답니다.  다만 깍지 채 먹는 채소이다보니, 필연적으로 깍지에 딸려있는 긴 심지 같은 섬유질이 미처 제거되지 못하고 딸려올 수 있는데, 나폴레옹은 그런 것이 입 안에 들어오면 마치 사람 머리카락처럼 느껴져서 구역질을 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그 정도로 음식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싫어했던 것이지요.




(줄기콩 요리입니다.  저도 이거 매우 좋아합니다.)




그런 나폴레옹이 한번은 어느 전투 현장을 시찰하며 병사들의 생활 환경을 검열하는 중에, 병사들이 마침 끓이고 있던 수프를 한 접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렇게 병사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으며 병사들과의 유대감을 높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먹다보니 수프에서 그만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  나폴레옹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니, 근위대 병사가 나폴레옹에 대한 외경심으로 바짝 얼은 채 보고 있더랍니다.  이런 와중에 'ㅆㅂ 나 안 먹어'라고 수프를 내동댕이치면 병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  나폴레옹은 진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머리카락을 건져내고 그 수프를 싹싹 긁어먹은 뒤, 한 접시 더 달라는 호기까지 부렸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집사였던 콩스탕(Constant)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 두번째 수프 그릇에서도 그만 머리카락이 나왔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과연 그 두번째 접시까지 다 비웠는지는 기록이 없네요.






Source : Les Miserables by Victor Hugo

http://www.foodtimeline.org/foodcolonial.html

http://www.godfreydykes.info/PROPER%20NAVAL%20RESEARCH.htm

https://www.harmonyhousefoods.com/Bean-Legume-Family-Pack-8-Varieties-Gallon-Size_p_1849.html

http://www.piratesurgeon.com/pages/surgeon_pages/pork2.html

http://www.godfreydykes.info/THE_GOODNESS_IN_PEA_SOUP.htm

http://www.naturalhub.com/natural_food_guide_grains_beans_seeds.htm

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Daniel+1%3A12-15&version=AKJV

https://fr.wikipedia.org/wiki/La_Princesse_au_petit_pois

https://www.epicurious.com/recipes/food/views/haricots-verts-with-herb-butter-240576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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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에헤 2018.09.03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하고 두부 좋아해서 자주 먹는데 이 글 읽으니까 더 좋아졌어요

  2. 까까님 2018.09.03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깍지콩으로 알고있었는데 줄기콩이 널리 쓰이는 이름인가보네요
    맛있기는 한데 저렇게 접시에 줄기콩만 가득 담아준다면... 글쎄요... 그건 정말 글쎄요일 것 같습니다 ^^;;
    근데 예전에 어디선가 콩의 원산지가 만주쪽이라고 본 기억이 나는데 그건 아닌가보네요?
    품종마다 원산지가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가 주로 먹는 일부 품종에 한해서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구요
    퇴근 시간 임박해서 비는 퍼지게 오고 배는 고픈데... 오늘은 퇴근길 지하상가의 유혹을 어찌 견뎌낼지 걱정입니다
    안전하게 퇴근하시고 맛난 저녁 드십시오~

  3. 카를대공 2018.09.03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이 건강에 좋은건 알겠지만 전 정말 못 먹겠더군요.
    특히 콩밥은 어휴ㅠㅠ

  4. 밥동뎅 2018.09.03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얘기 넘 좋아요.
    자주 올려주세염~~^^

  5. 유애경 2018.09.04 0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다이어트한다고 읽은 책 몇권중에 있던 내용인데요.
    원래 인간의 몸은 야채,곡물,과일을 먹기에적합한 구조로 만들어졌고 인간의 치아도 육식이 아닌 초식(?)에 적합한 구조래요.
    단백질은 콩종류 등을 통해서 충분히 섭취할수 있기 때문에 굳이 육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니엘들이 채식을 하고도 건강할수 있었던건 그런 맥락에서도 생각해 볼만하네요.

    • 이산이아닌가벼 2018.09.04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요? 여러 학설이 있겠지만, 영양학적으로는 인간과 비슷한 구조로 된 것들이 섭취효율이 높다고 해요. 식물 단백질보다는 동물 단백질이 섭취효율성이 높고, 동물 단백질 중에서 최고봉은...

    • 0_- 2018.09.06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채식주의 종교신자인 저자가 썼을 것이라 추측되는 책 하나에서 그런다고 완전히 믿으시다니, 큰일나실 분이네요...

      인간(및 그 유인원 조상)이 농경생활 한 기간이 길었겠습니까, 수렵생활이 길었겠습니까? 수렵을 못하는 시기에도 뭔가를 먹어야 하기에 채집에서도 영양소를 얻을 수 있게 진화 한 정도의 사실을 무슨 야채/곡물/과일을 먹기에 적합한 구조라니, 호도도 이런 호도가 없네요. 애초에 인간이 정말 채식에 적합하다면 소나 양 같이 풀에도 많이 들어있는 섬유소도 에너지원으로 써야겠지요? 그럴거면 저런 동물들 처럼 되새김질 및 반추위가 존재해야 하는데, 실상은 어떤가요? 장이 좀 길다 뿐, 그냥 다른 육식동물 같이 일자로 쭉- 나가는 소화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섬유소를 열량전환을 못 시키고, 부산물 처리의 보조용으로만 사용(=변비치료)되고 있지요. ^^

    • 유애경 2018.09.06 1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저런 내용도 있더라는 얘기지 그걸 완전히 믿고 그걸 남한테 강요하는게 아닌데요? 그런 얘기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 볼수도 있지 않냐는 말입니다!

    • 유애경 2018.09.07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나저나 뭘 근거로 채식주의 종교 신자라고 추측하시는지?

    • 0_- 2018.09.09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정의하는 종교란 다음과 같습니다; 근거없는 믿음 및 이 믿음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체계.
      "원래 인간의 몸은..."
      읽으셨다는 글에서 "원래"라는 소리가 있었다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근거가 없을 수 밖에요. 과학으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역사 이전 인간의 원류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댓글 잘 읽어보세요. 님이 채식주의 종교 믿는다고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읽으셨다는 글이 채식주의 종교신자로 의심된다고 쓴 글이지요.

    • 유애경 2018.09.09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무슨 근거로 그책의 저자가 채식주의 종교신자라고 추측 하셨냐는 질문 이었습니다. 그 저자가 흔한 채식주의 종교인 이었다면 저도 무시 했을겁니다!
      논쟁을 벌일 정도로 저는 똑똑하지 못해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는 못하겠는데요.
      이 세상에는 과학적인 증거를 제시못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해명할수 없는일도 많지 않나요?
      전 어디까지나,그 내용이 인상적이었기에 이렇게도 생각해 볼수가 있지않나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것 뿐입니다. 거기에 대고 큰일날 사람이라느니 사실을 호도 한다느니...
      좀 과잉반응 아닌가요?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피력히는건 자유지만 특히나 대댓글 다실때는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신경좀 써주세요.

  6. 2018.09.05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석공 2018.09.05 0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8. Aaa 2018.09.05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아프가니스탄 얘기가 나와서 반갑네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soy bean이 자연적으로 나지 않아서 식물성 단백질 섭취가 어렵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쟁통이니 동물 섭취도 어렵구요.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서 유아들의 성장도 더디고 특히 여성 출산이 많이 위험하다고 해서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 환경에 맞는 soy bean 개발과 두유 및 아프가니스탄 일반 식습관에 맞는 식단 개발에 힘쓰는 NEI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데요 참 콩은 여러 사람을 돕는 유용한 식물인 것 같습니다.

  9. 2018.09.06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8.08.30 06:30

저는 여러번 밝혔다시피 비만인 편입니다.  젊었을 때는 괜찮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늘어나는 체중으로 좌절과 굴욕을 맛본 사람이 저 하나 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폴레옹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포병 소위 시절의 나폴레옹...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




그의 많은 초상화에서 보듯이, 젊은 시절 나폴레옹은 상당히 마른 편이었습니다.  그를 당시 직접 본 많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도 '야위었다, 마치 아픈 사람같은 안색이었다'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그는 제1통령 시절, 튈르리 궁에서 지낼 때부터 겨울철에는 벽난로의 불을 크게 피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른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도 추위에 무척 약했기 때문입니다.





(제1통령 시절 날씬했던 나폴레옹의 모습)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 자신이 나중에 살찐 반대머리 중년남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나 봅니다.  그는 제1통령 시절 그의 소년 사관 학교 시절 친구이자, 비서였던 부리엔에게 자신의 비쩍 마른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난 40대가 돼도 뚱보 먹보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원정 때의 나폴레옹은 무척 가냘픈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 그림처럼 멋있지는 않았겠지요.)




나폴레옹이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1806년 경부터라고 합니다.  이때라면 나폴레옹이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에서 프러시아를 무찌르고 폴란드 바르샤바에 입성할 때였지요.  나폴레옹이 살이 찌기 시작한 것과의 관계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이때 즈음 나폴레옹은 일평생 가장 사랑했다고 할만 한 여인, 즉 폴란드의 마리 발레프스카 백작 부인을 만나게 되지요.  나폴레옹은 그 이전부터 방탕한 여자 관계로 유명했으니, 꼭 이 새로운 여자로 인해 생활이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사랑이라는 그 심리 상태가 나폴레옹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되었을 때, 유일하게 찾아온 여자들은 그의 어머니와 발레프스카 뿐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생활이 그를 살찌게 했을까요 ?  나폴레옹과 저는 생활 습관에도 공통점이 2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빨리 먹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식사를 무척 빨리 하는 편이었습니다.  당시 중산층의 식사는 와인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보통 1시간 가까이 걸리기 마련이었으나, 나폴레옹은 '밥먹으면서 떠들면 안된다'는 한국식 가정 교육을 받았는지, 대개 15분 정도면 한 대접 뚝딱 해치우고 식탁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포로로서 유형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끌려가는 영국 군함 노섬버랜드(HMS Northumberland)호에서도 이 습관을 그대로 고집했습니다.  상대가 프랑스의 황제이니만큼, 당연히 그 영국 군함 함장은 그를 식탁에 초대했고, 영국 해군의 전통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는 함장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으나, 나폴레옹은 아무 말 없이 후다닥 음식을 집어먹고는 '이만 실례'하면서 벌떡 일어나 나가는 바람에, 동석했던 영국 해군 장교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벨레로폰 선상에서의 나폴레옹.  원래 나폴레옹은 HMS Bellerophon에게 항복했으나, 나폴레옹이 낡은 벨레로폰 호의 상태에 심각한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에 희대의 거물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모실 영광을 노섬버랜드 호에게 양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노섬버랜드 호의 함장이었던 로스(Ross)가 남긴 기록에는, 나폴레옹의 외양에 대해 매우 안 좋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뚱뚱한 편으로서, 보통 우리가 배불뚝이(pot-bellied)라고 부르는 몸매였다.  다리의 모양새는 좋았으나 걸음걸이는 왠지 서툴렀고, 뒤뚱거리는 것과 일부러 뽐내며 걷는 것 중간 정도로, 뭔가 이상해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가 파도에 출렁이는 배의 움직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빨리 먹는다는 점을 빼고는, 살이 찔만한 식생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위가 그리 좋지 않아서 과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음식을 많이 차리지 말라고 요리사에게 주문하기도 했고, 1813년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독일 원정을 떠날 때는 '아무리 황제라도 전쟁터에까지 요리사가 너무 많이 따라다닌다'며 요리사의 수를 대폭 줄이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마치 나폴레옹은 그 이전까지는 전쟁터에도 수많은 요리사를 데리고 다니며 산해진미를 즐긴 것 처럼 보입니다.  가령 치킨 마렝고(Chicken Marengo)라는, 나폴레옹과 관련된 전설과도 같은 요리가 있습니다.  1800년, 나폴레옹은 북부 이탈리아의 <마렝고>에서 오스트리아의 대군과 맞붙어 처음에는 거의 패전하는 듯하다가, 지원군의 도움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둡니다. 짜릿한 승리를 거둔 뒤 나폴레옹은 몹시 허기가 져서 개인 요리사인 뒤낭(Dunand)에게 식사 준비를 시킵니다.  





(구글을 뒤져보면 이것이 치킨 마렝고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이 잔뜩 있는데, 그래도 이 사진이 원래의 치킨 마렝고를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사진 같습니다.  저도 뭐 먹어봤어야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할텐데...  아무튼 건빵 대신 바게트 빵을, 그리고 가재와 달걀이 있긴 하네요.  가재의 존재 여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나폴레옹의 보급마차는 제 시간에 전장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뒤낭은 아무 준비도 없이 근처에서 허겁지겁 긁어모은 재료, 즉 닭과 토마토, 계란, 가재, 올리브 기름, 그리고 병사들의 건빵 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치킨 마렝고>라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책 '대사 각하의 요리사'입니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닭고기와 토마토, 마늘, 오일, 달걀, 꼬냑 정도면 굉장히 호사스러운 재료 아닌가요 ?  최소한 우리집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합니다. 뒤낭은 마렝고 전투가 벌어진지 5년 뒤인 1805년에야 나폴레옹의 요리사가 되었다는 것부터, 프랑스에 치킨 마렝고라는 요리가 정말 등장한 것은 1820년대부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북부의 전쟁터에서는 6월 중순에 토마토를 구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치킨 마렝고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나폴레옹 전술의 기본은 '미칠 듯한 기동력'이었기 때문에, 황제 자신조차도 따로 식량을 챙겨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저녁 식사가 그의 마멜룩 시종인 루스탐이 병사들에게 얻어온 고기 한조각에 감자 몇 개인 경우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사에서, 유일하게 사치품인데다 그다지 건강에 이롭지 못한 것은 딱 하나, 포도주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원래 먹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만, 좋은 포도주만은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샹베르탱 포도주를 즐겨했으므로, 1812년 러시아 침공시에도 상당량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레드 와인이 꼭 살이 찌는 음료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취할 정도로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었고, 적당량의 와인은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하던 포도주라는 광고는 없네요...  출처는 http://darkone.egloos.com/820578 )




그렇다면 대체 왜 나폴레옹은 살이 찐 것일까요 ?  그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자신이 원인 분석을 한 것이 있습니다.  즉, 나폴레옹은 뭔가 안좋은 일로 외국 대사와 만나 그를 질책하면서, '나는 최근 몇 년 간을 전장을 누비느라 쉬지 못해 살이 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쉬질 못해서 살이 쪘다 ?'  무척 기묘한 논리이긴 합니다만, 전혀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나폴레옹의 운동 습관과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운동을 그렇게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당대의 인물인지라, 그의 생전에, 그리고 그의 사후에, 나폴레옹에 대한 수많은 회고록과 비망목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그가 펜싱을 즐겨했다던가, 매일 구보나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딱 하나, 나폴레옹이 즐겼던 운동은 승마와 사냥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얼마나 (말에게 말고 사람에게) 운동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처럼 운동을 전혀 안하는 것보다야 확실히 몸에 좋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전쟁터에서는 자유로운 승마를 즐길 기회가 별로 없고, 나폴레옹은 전쟁터로 이동할 때 말보다는 마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정상적인 운동을 못했기 때문에 살이 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쟁터를 너무 쏘다니느라고 살이 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쟁터를 누비느라 살이 쪘다면, 더 젊었던 시절부터 그랬어야지요.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고, 낙타를 타고 이집트 사막을 누빌 때는 날씬했쟎습니까 ?  





(유명한 다비드의 그림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실제로는 안정적인 발걸음의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습니다.) 



최근에 http://www.foodtimeline.org/foodcolonial.html 라는 웹사이트를 읽었는데, 이 웹사이트에서 인용한 크리스티앙 기(Christian Guy)라는 분의 'An Illustrated History of French Cuisine From Charlemagne to Charles de Gaulle'라는 책의 인용문을 보니 여기에 나폴레옹이 왜 살이 쪘는가에 대한 실마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전형적인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습니다 !  그는 감자, 콩, 렌틸콩 등 든든한 곡물류를 좋아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식 파스타를 매우 좋아해서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한 접시씩을 싹 비웠다고 합니다.  그의 집사였던 콩스탕(Constant)에 따르면 그가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부댕 알라 리셜리외(Boudin a la Richelieu, 리셜리외 식 소시지, 돼지피와 지방으로 만든 소시지에 계피를 넣은 구운 사과를 곁들인 요리), 크넬(quenelle, 크림을 넣은 미트볼 요리) 등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시종의 기록에도, 나폴레옹은 삶은 쇠고기나 양고기를 한 조각 먹는 정도로서, 결코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답니다.  요즘 전형적인 한국식 식단인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단(이하 고탄저지)이 비만과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페이스북을 뒤덮던데, 나폴레옹도 정말 그런 고탄저지 식단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은 특히 전쟁터를 많이 돌아다녔고, 그럴 때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마른 빵을 넣고 끓인 수프나 모닥불로 구운 감자 같은 것을 얻어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두 전형적인 고탄저지 식단입니다.  





(나폴레옹이 좋아했다는 quenelle이라는 것은 다진 생선이나 고기를 계란 같은 모양의 덩어리로 뭉치고 크림을 넣어 요리한 일종의 미트볼 요리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에서 나폴레옹과 저의 공통적인 식습관이 빨리 먹는다는 점 외에 한 가지 더 있다고 했는데, 탄수화물을 좋아한다는 점이 바로 두번째 공통점이거든요.  저도 빵이나 국수 등 특히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매우, 매~우 좋아합니다.  저도 정말 고탄저지 식단의 희생양인 모양입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이래로 더욱 살이 쪘습니다.  영국은 나폴레옹에 대해 무척 안좋은 대접을 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무더위와 지루함에 빈곤까지 겹쳐 '비참'을 간신히 면한 정도였습니다.  좋아하던 승마도 당연히 못했으니, 더욱 살이 쪘겠지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의 나폴레옹... 이렇게 초라한 뚱보 아저씨가 된 나폴레옹을 보고 영국인들은 속으로 무척이나 웃었겠지요.)




나폴레옹은 위암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의 아버지와 두 여동생이 모두 위암으로 죽었고, 또 그의 사후 부검을 했던 영국인 의사들이 모두 위암이 사망 원인이라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독살설이 끈질기게 나돌았습니다.  이렇게 나폴레옹 독살설이 나돌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비만입니다.  위암이라면 제대로 먹지를 못해 살이 빠지기 마련입니다만, 나폴레옹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 뚱뚱했기 때문에, 위암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사망 몇 주 전부터 급격히 체중이 줄었다고 합니다.  결국 위암이 그의 사망 원인이라는 것은 여전히 정설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사진이 아닌 관계로, 얼마나 사실적일지는 의문입니다만, 확실히 얼굴은 좀 말라 보이는군요.) 




나폴레옹의 시대에 비만은 요즘처럼 죄악시되는 꼴불견이었을까요 ?  요즘처럼까지야 아니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부와 권력의 상징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의 미의 기준으로 요즘처럼 비쩍 마른 스타일이 '먹혔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경우는, 고대 그리스때부터 줄곧, 근육질의 건강한 몸매가 당연히 인기가 좋았지요.  당시 경기병들의 복장이, 몸에 쫙 달라붙는 야시시한 쫄바지였다는 것만 봐도 그렇쟎습니까 ?  스판덱스 소재의 신축성있는 바지가 없던 시절에, 기병 장교들은 정말 꽉 끼는 바지를 입기 위해 다리에 그리스를 바르기도 할 정도로, 근육질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기에 애를 썼습니다.  또 나폴레옹도 자신의 몸이, 의지와는 달리 볼품없이 살이 찌는 것에 대해 꽤 당혹해했다고 합니다.  





 (간지 폭풍 경기병들에게 돼지 따위는 필요없다 !!  그림 속의 기병이 칼 대신 담배 파이프를 들고 돌격하는 것을 보니 저건 광기병 라살(Lasalle 장군입니다.)




아래는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에서, 비만에 관련된 부분들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재미로 읽어보세요.






Sharpe's Devil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20년 세인트 헬레나 섬) --------


하퍼는 그의 넓은 모자챙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망할 놈의 노새를 좀 데려와주면 좋겠네요. 이 빌어먹을 더위 때문에 죽겠어요. 정말이요. 저 고지 위에 올라가면 좀 시원하겠지요."


"자네가 그렇게 뚱뚱하지만 않았다면 그냥 걸어가면 되었을 거야." 샤프는 부드럽게 말했다.


"뚱뚱하다고요 !  난 그냥 몸이 좋은 거에요 !"  이 즉각적이고도 분노에 가득찬 반응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라서, 제3자가 듣고 있었다면 아마 이것이 이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되풀이되온 실랑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었다.  


"몸이 좋은 거가 뭐 잘못된 거 아니쟎아요 ?"  하퍼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빌어먹을(Mother of Christ), 누가 아주 잘먹고 잘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강하다는 증표에 대해 뭐라고 궁시렁거릴 필요는 없쟎아요 !  중령님 자신을 보라구요 ! 아마 성령께서도 중령님보다는 뼈에 붙은 살이 좀더 많을 걸요.  내가 중령님을 삶으면 라드(제과용 동물성 지방)를 1파운드도 못 건질 것 같네요.  중령님도 저처럼 먹어야 한다구요 !"  패트릭 하퍼는 자랑스럽게 자기 가슴을 쿵 내리쳤는데, 이로 인해 그의 배까지 마치 지진같은 울렁임이 물결쳤다.


"먹는 것 문제가 아니야."  샤프가 말했다.  "맥주라구."


"스타우트(독한 흑맥주:역주)는 살 안쪄요 !"  패트릭 하퍼는 정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샤프의 휘하의 하사관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샤프는 자기 옆에서 싸워줄 전우로 그 이외에 다른 누구도 두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몇년 동안, 이 아일랜드 출신의 하사관은 더블린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게다가 맥주집 주인은 자기집 맥주를 마시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거든요."  하퍼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주인이 파는 물건 품질을 신뢰한다고요.  정말이에요.  게다가, 이사벨라(하퍼의 스페인 출신 와이프:역주)는 내가 살이 좀 붙는 걸 좋아해요.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나요."


"그렇다면 자네는 더블린에서 가장 건강한 놈팽이일거야." 샤프는 악의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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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 Commander by Patrick O'Brian (배경 1803년, 영국 군함 HMS Sophie) ------


(함장 잭이 장교들을 불러모아 놓고 기습 상륙 작전의 계획을 의논합니다.)


"만(灣)에서 탑까지 달려가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치고, 그리고..."


"20분 정도로 계획하지요." 스티븐이 끼어들었다.  "여러분처럼 혈색좋은 뚱뚱한(portly)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무리하게 달리면 일사병이나 울혈로 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제발, 제발 부탁인데 의사 선생, 그런 말씀은 안하셨으면 좋겠소이다." 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교들은 모두 꾸짖는 듯한 눈빛으로 스티븐을 쏘아 보았다.  잭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난 결코 뚱뚱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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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군요.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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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돌로레스 2018.08.30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승마는 운동량이 꽤 됩니다. 말의 움직임에 맞춰 계속 몸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거든요. 말이 달릴 때 기수보면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잖아요. 가볍게 뛸 때는 리드미컬하게 안장에 엉덩이를 뗐다 붙였다 계속 해야합니다. 물론 해본 적없이 하는 썰입니다. 그리고 저도 오늘부터 고기를 좀...

    • 유애경 2018.08.31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승마를 아주 단시간 기본만 배우다가 그만둔 경험이 있는데요. 말씀대로 말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니까 허벅지에는 좋은 운동이 되는것 같았어요. 근데 매일 꾸준히 장시간 하지 않는한 다이어트는 좀 힘들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아마도 나폴레옹은 살이 찌기 쉬운 체질이었을지도...

      개인적으로는 나폴레옹 독살설이 신빙성이 있는것 같아요. 사후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 일반 평균치의 20배가 넘는 비소가 검출되었다는데 여러 경로를 통해서 비소를 흡입하게 되었고 위암과 더불어 죽음을 더 앞당기게 된건 아닐까 싶은...

      마리아 발레프스카는 진심으로 나폴레옹을 끝까지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임종때 나폴레옹이 끼고 있던 있던 -마리아 에게서 받은-반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대요.
      '당신이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직도 당신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나름대로 행복한(?)남자 였을지도...^_^


    • 수비니우스 2018.08.31 0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가 비육지탄을 말한것 보면... 자전거만 타도 허벅지가 땡기는데 승마는 몇십배는 더 허벅지가 땡길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 돌로레스 2018.08.31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애경/ 전 승마할 여유도 없지만 하는 걸 보니 힘들어서 못하겠다란...운동은 되겠지만 무릎 관절엔 안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근요. 왠만한 운동이 다 무릎 관절엔 안좋습니다만 쉴새 없이 무릎을 굽혔다 폈다하는 승마는 더 하지 않나란...

  2. reinhardt100 2018.08.30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고기는 약'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또한 거칠고 소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실질강건의 상징이라 생각하다보니 치즈나 유제품, 낫또 같은 것들을 곁들인 잡곡류를 매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합니다. 밥이나 빵도 될 수 있으면 제분을 안 한거만 골라먹고 특히 설탕이라면 질색이라 단것도 안 먹는 편입니다.

    일단 나폴레옹의 식습관이 상당히 영양학적으로는 불균형했다고 봐야 하는데 이거야 당시 전장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해야겠네요. 다만, 확실히 야채 및 채소 섭취에 무관심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육상에서도 괴혈병이 꽤 발병했다고 하는데 그게 전혀 웃을 일이 아닌 거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습관에서 야채를 지속적으로 섭취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게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입니다.

  3. SooPA 2018.08.30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이곳저곳 돌아보다 재밌는 역사와 관련된 포스트를 보게되어 발길을 멈추게 되었네요 ㅎㅎ 아직 글빨도 안되고 경험도 부족하여 많이 모자라지만 정성어린 포스팅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하고 한번 들러주세요!!

  4. 카를대공 2018.08.31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부끄럽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거의 탄수화물 중독 증상에까지 이르러 봤는데요,
    확실히 고탄수화물 식단이 살도 잘 찌거니와 몸에 무진장 안 좋습니다.
    (제 인생 최대 몸무게를 고탄수 식단 때 찍었습니다)

    흰쌀밥,빵,면류 등을 섭취하게 되면 당이 급격히 올라가는데 이렇게 되면 살도 찌기 쉽고 당뇨병에 아주 직빵입니다.

    나폴레옹이 말년에(워털루 즈음부터)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판단력이 이상해진걸 내분비계 질환 때문이라고 의심 받기도 하는데 식습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설탕 들어간 음식이나 군것질류,빵이라도 확 줄이시길 권합니다.

    참,커피믹스는 그야말로 이쪽류 끝판왕이니 꼭 끊으세요.

    • 장구벌레 2018.09.05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빵과 쌀밥 없는 식생활이라, 상상하기 어렵네요.
      저도 공복혈당 110 나와서 걱정하고 있긴 하거든요

  5. 마근엄 2018.09.02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설명을 붙이자면, 사진의 와인은 즈브레 샹베르탕(Gevrey Chambertin)이고, 나폴레옹이 즐겨마신 술은 샹베르탕(Chambertin)입니다. 전자는 '마을' 후자는 '밭'의 이름입니다. 샹베르탕 밭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마을에 아예 그 밭의 이름이 들어가게 된 거죠. 전자쪽이 더 범위가 넓고, 생산량이 많고 (덜 희소하고), 맛도 떨어집니다. (꼭 좋은 구획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므로)

    프랑스에서 와인의 등급체계가 법적으로 정리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이야기지만 나폴레옹 이전부터 소위 유명 생산지, 유명한 밭은 존재했고 샹베르탕이 그런 밭 중의 하나입니다.

  6. 소화낭자 2018.09.12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렝과 저의 유일한 공통점은 살이 쪘따는 것이군요.ㅎㅎㅎㅎ

  7. ㅇㅇ 2018.09.14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맥주 와인 좋아하는데 나이들어 배불뚝 될까 두렵군요ㅜㅜ

  8. 결혼도 2018.10.22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중 증가에 한 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대사가 떨어질 쯤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총각시절에는 지지리도 안찌던 살이 결혼하자마자 폭풍같이 붙더군요. 10킬로가 도무지 사라지질 않습니다.

  9. ㅇㅇ 2019.07.10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달동안 하루 죽 한그릇으로 살면 살은 무조건 빠집니다.

2018.08.27 06:30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국민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 즉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임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북구의 촌뜨기 스웨덴 사람들이 국제 사정을 몰라서 가진 소원일 뿐,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사람들의 소망을 처리하는데 있어, 자신이 그저 지시받은 목표를 무조건 수행해내는 단순무식한 장군이 아니라 목표 설정 자체부터 재검토하는 진정한 국가 지도자급 인물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증명해보입니다.


그는 떠오르는 강대국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나폴레옹의 힘을 빌어 일시적으로 되찾아온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 결국 반드시 러시아와 끝없는 전쟁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러시아는 끊임없이 서방으로 진출하려는 나라였고, 또 핀란드와는 넓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핀란드인들은 스웨덴의 통치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핀란드인들의 지지도 없이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꿈 깨라, 너희들은 씹지도 못할 고깃덩이를 탐내고 있다'라고 핀잔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이 진정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핀란드가 아니라 노르웨이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노르웨이를 보유하고 있는 덴마크는 러시아에 비하면 매우 허약한 상대였고, 또 지정학적으로도 노르웨이만 손에 넣으면 스칸디나비아 반도 내에서 스웨덴은 외적의 침입을 우려하지 않고 단단한 천연 국경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국경은 무려 1340km나 됩니다.  지금도 핀란드는 러시아의 간섭과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요.  Finlandization이라는 말이 사전에 실릴 정도니까요.   위 지도에서 붉은색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게 빼앗긴 핀란드 영토입니다.)




(베르나도트의 구상처럼 노르웨이를 손에 넣으면, 스웨덴은 바다에 의해 유럽과 분리되어 국방에 있어 매우 안전한 상태가 됩니다.)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에게 프랑스에 대한 적대 행위 금지 약속을 받아내려 했던 것처럼, 베르나도트도 나폴레옹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르웨이였습니다.  아마 자신의 퇴직금조로 생각했던 것일까요 ?  아마 이때가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의 뒤틀린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것입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그에 응하지 않고 그 기회를 뻥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눌지도 모르는 스웨덴에게 줄 선물을 프랑스 말을 잘 따르는 착실한 동맹국인 덴마크로부터 뜯어낼 수는 없기 떄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생각해보면 이때 베르나도트에게 노르웨이를 선물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덴마크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노르웨이를 양보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는다고 해도 프랑스로부터 떨어져 나갈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를 선물함으로써 스웨덴을 확실한 프랑스 동맹으로 끌어들였다면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의 패배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노르웨이를 선물꾸러미에 넣어오지는 못했지만, 베르나도트는 1810년 11월 2일 스톡홀름에 도착하여 엄청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름을 스웨덴식 카알 요한(Karl Johan)으로 바꾸고 또 스웨덴 법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종교도 카톨릭에서 개신교인 루터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스톡홀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좋은 인상을 주며 재빨리 인기와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심지어 평민인 그가 왕세자로 책봉된 것을 내심 못마땅히 여기고 있던 국왕 카알 13세와 그의 왕비 샤를로타도 베르나도트를 각각 따로 만나보고는 그의 사람됨과 군주로서의 그릇에 크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카알 13세는 베르나도트를 처음 만나 본 뒤,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왕세자 책봉에 있어서) 난 꽤 큰 도박을 벌였는데, 결국 내가 이긴 것 같구만."


샤를로타도 베르나도트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신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르나도트가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인기를 독차지하며 대세남이 된 것은 결코 그의 사교성이나 예의범절이 훌륭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 준비된 군주였는지는 도착 3일 뒤인 1810년 11월 5일 스웨덴 의회(Riksdag)에서 행한 다음 연설 내용을 직접 읽어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간만에 불어 공부하는 셈 치고 불어 원문과 대조 번역했습니다.  물론 구글 번역기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 J'ai vu la guerre de près, j'en connais tous les fléaux ; il n'est point de conquête qui puisse consoler la patrie du sang de ses enfants, versé sur une terre étrangère. J'ai vu le grand Empereur des Français, tant de fois couronné des lauriers de la victoire, entouré de ses armées invincibles, soupirer après l'olivier de la paix. Oui, Messieurs, la paix est le seul but glorieux d'un gouvernement sage et éclairé ; ce n'est point l'étendue d'un Etat qui en constitue la force et l'indépendance : ce sont ses lois, son commerce, son industrie, et par-dessus tout, son esprit national. »


"나는 전쟁을 가까운 거리에서 봐왔습니다.  나는 그 모든 참상을 잘 압니다.  외국 땅에 뿌려진 그 자식들의 피에 대해 조국이 위로받을 정도의 정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또 그 무적의 군대에 둘러싸인 위대한 프랑스 황제가 평화의 올리브 가지 뒤에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평화야말로 현명하고 계몽된 정부의 유일하게 영광스러운 목표입니다.  국력과 독립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국가의 영토 넓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국가의 법과, 통상과, 산업과, 그리고 무엇보다 그 국민 정신입니다."



어떻습니까 ?  어느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이 하는 연설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명문 아닌가요 ?  제가 베르나도트에 대해 이렇게 따로 긴 시리즈를 쓰게 된 것도 이 연설문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군인이었으나 결코 총칼의 힘으로 스웨덴을 부강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고, 나폴레옹의 부하였음에도 나폴레옹의 지시에 따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핀란드를 바라는 스웨덴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스웨덴 왕세자로 선출되었으면서도 결코 그 위험한 욕망을 채워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샤를로타 왕비가 끈질기게 구스타프 왕자를 지지했던 것은 그녀가 속절없는 보수 혈통주의자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 아우구스트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덴마크인도, 러시아인도, 프랑스인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스웨덴인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즉, 스웨덴은 더 이상 러시아와 같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바랐던 것입니다.  


베르나도트는 스톡홀름에 오자마자 정말 스웨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자신이 결코 나폴레옹의 강아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인들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것인지를 설득했고, 대신 노르웨이를 손에 넣는 것이 스웨덴이 영원히 스웨덴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조야에 알렸습니다.  그는 이런 진정성과 뛰어난 식견에 바탕을 둔 리더쉽을 통해서, 비록 강력한 의회에 의해 선출된 외국 태생의 왕세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실질적인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특히 의회는 분열되어 있었고 국왕 카알 13세는 건상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베르나도트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현실론자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곧 스웨덴에 대해 대륙봉쇄령에 참여할 것과 영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영국과의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스웨덴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에 대해 이를 갈면서도, 그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무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어서 영국에 선전포고한다는 제스처를 뚜렷히 드러냈기 때문에, 영국도 사실상 스웨덴을 중립국으로 간주했습니다.  비록 교역량은 1/10 수준으로 급감할 수 밖에 없기는 했지만 영국과의 무역도 암암리에 계속 되었습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베르나도트가 오늘날 프랑스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는 것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편이 아니라 동맹국 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베르나도트의 잘못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폴레옹의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차후 러시아 침공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813년 10월의 라이프치히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프랑스어로 Bataille des Nations, 즉 여러 나라들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참전한 대전투였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빠졌지만, 이탈리아와 나폴리까지 참전했으니까요.  여기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결정됩니다.)




카알 13세가 베르나도트의 왕위 계승에 대해 '도박에서 이겼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표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베르나도트가 운수대통하여 평민 하사관에서 시작하여 왕위에 올랐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의 업적을 보면 로또를 맞은 것은 베르나도트가 아니라 스웨덴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가 위대한 왕이었다는 점은 오늘날 스웨덴의 중립노선을 확고히 닦았다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과거 17세기 북구의 사자라고 불리며 30년 전쟁에서 맹활약했던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Gustavus Adolphus)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이끌었다고는 하지만 반면에 스웨덴을 기나긴 전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많은 스웨덴 청년들이 외국 땅에서 싸우지 않아도 될 전쟁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지요.  


그러나 베르나도트는 제6차 대불동맹전쟁에 참전한 것과 스웨덴과의 합병을 반대하는 노르웨이에 대한 군사작전 외에는 전혀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무조건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었던 노르웨이 전쟁에서도 노르웨이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등 매우 관대한 협상 조건을 내걸어 최대한 전쟁을 빨리 끝냈지요.  스웨덴 역사상 이 1814년 노르웨이 작전이 스웨덴이 참전했던 마지막 전쟁이었습니다.  스웨덴의 중립과 그에 따른 안정과 평화가 오늘날 스웨덴의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북구의 사자 구스타프 아돌프입니다.  비록 멋있는 별명을 달아서 폼은 나겠지만, 그런 멋진 별명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웨덴 병사들이 죽어야 했을까요 ?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불멸의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그의 전쟁으로 상처입은 많은 국가들 중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잃은 국가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또 그는 경제왕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국민 경제에 대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스웨덴 귀족인 트롤-바흐트마이스터(Trolle-Wachtmeister)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왕세자 시절, 스웨덴 궁정에서 통치에 대한 실무 교육을 받을 때  베르나도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부분에 대해서만은 자신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스웨덴에 나보다 더 휼륭한 군인이 300명이 있다고 해도 뭐라고 반박하지 않겠네.  하지만 난 경제 부문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특별한 수업을 거쳤으므로, 그 부문에 대해서만은 내가 스웨덴 내에서 최고 전문가라고 자신하네."   


베르나도트는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이 경제왕임을 증명해보였습니다.  그는 내륙 교통 통신망에 투자하고 통상을 장려하며, 민법과 형법을 정비 반포하고 교육을 진흥하는 등 나폴레옹의 프랑스 통치를 상당히 모방하여 내치에 매우 열정적으로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 그의 26년 통치 기간 동안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의 노년기에는 노르웨이를 제외한 스웨덴 국내의 인구만 해도 구스타프 4세가 핀란드를 잃기 직전 스웨덴과 핀란드의 인구를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은 셈이지요.   그도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점차 우클릭하여 언론 검열을 하는 등 욕을 먹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그는 스웨덴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국민들로부터도 사랑받는 인기왕이었습니다.  




(그의 검열 정책 등으로 인해 인기가 추락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평생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행복한 왕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하는 그의 통치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만, 일개 사병에서 출발하여 나폴레옹 휘하 원수까지 올랐다가 왕이 된 그의 경력에 대해, 국민들이 '어때 우리 왕 쩔지?' 라며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로써 1810년의 주요 사건이었던 베르나도트의 스웨덴 왕세자 책봉건이 끝났습니다.  마무리는 카더라 통신으로 끝내겠습니다.  흔히 베르나도트는 젊은 시절 열혈 자코뱅으로서 가슴에 'Mort aux Rois' (Death to the Kings, 왕들에게 죽음을)라는 문신을 새겼고, 이로 인해 왕이 된 이후 절대 사람들에게 옷을 벗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의 사후에 그의 시신을 검시한 궁정 관료들에 의해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기억은 안나지만) 저도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영어판 Wikipedia에 따르면 그런 문신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소문이며, 그런 소문이 나게 된 것은 1833년 공연된 'Le Camarade de lit' (잠자리 친구)라는 프랑스 연극에서 어떤 늙은 척탄병이 '지금은 스웨덴 왕이 된 베르나도트가 그런 문신을 새겨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연극 속에서도 나중에 그 문신은 흔히 알려진 대로 'Mort aux Rois'가 아니라 'Vive la république' (공화국 만세)라는 문구인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그런 문신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분명히 젊은 시절 베르나도트는 열혈 공화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1797년 남긴 기록에 '원칙과 확신에 의한 공화주의자로서, 나는 왕당파놈들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II_of_Sweden

https://fr.wikipedia.org/wiki/Charles_XIV_Jean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V_John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Hedvig_Elisabeth_Charlotte_of_Holstein-Gottorp

https://en.wikipedia.org/wiki/Union_between_Sweden_and_Norway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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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애경 2018.08.27 0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겠죠! 그래도 베르나도트는 확실히 안팎으로 훌륭한 왕이었던것 같습니다.

  2. 석총 2018.08.27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젠 보아르네와 사돈을 맺을 칼 요한 그러고보니 조세핀은 유럽의 1대 할머니네요

  3. 웃자웃어 2018.08.27 0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헌데, 베르나도트가 연합국에 참전하지 않더라도, 나폴레옹의 몰락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아닌가요?

    • Dogswellfish 2018.08.27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그나마 팽팽하던 전세를 연합군 쪽으로 돌려놓은 것은 스웨덴 군의 도착때문이었습니다.

    • 웃자웃어 2018.08.2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즉 스웨덴이 연합군으로 참전한게 나폴레옹의 몰락을 앞당겼단 이야기군요. 나폴레옹의 몰락 자체는 스웨덴이 참전하지 않아도 피할수 없겠지만.

  4. 곰소문 2018.08.27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대한 영웅담, 드디어 마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5. TheK2017 2018.08.27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6년간이었군요.
    훌륭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6. 카를대공 2018.08.28 0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편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저도 단순한 배신자 이미지였던 베르나도트를 조금이나마 새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오래된 인상이라 아직 얄밉긴 합니다ㅋㅋ)

    예전에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에 대해 경쟁심을 불태우며 특히 경제에 대해 잘 안다고 호언장담 했던 나시카님 블로그의 장면이 생각 납니다.
    그 땐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그게 허언이 아니었군요.

    오히려 내치만 보면 나폴레옹보다 나을 수도?


    그리고 10편에 걸친 이야기를 보며 또 나시카님 블로그에서 예전에 봤던 굉장히 인상적인 문장이 생각납니다.

    베르나도트 이야기를 하시며 진정한 영웅은 배신을 당하지 않는다고 칭기스칸을 예시로 드셨었지요.
    (그게 본문인지 댓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찾아보니 칭기스칸은 놀랍게도 그 넓은 영토를 운영하면 정말 한 번도 배신을 안 당했더군요.깜짝 놀랐습니다.

    확실히 나폴레옹은 성격적인 결함 때문인지 베르나도트에게 너무 어정쩡한 자세로 대한거 같습니다.

    처리할거면 확실히 처리하거나(모로 장군처럼) 아니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어야지요......

  7. 카를대공 2018.08.28 0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두에 러시아-핀란드 관계를 보니 문득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가 떠오르네요.

    인터넷하다 주워들은 얘기지만 미국쪽 싱크탱크에선 한국이 결국 러시아 간섭을 받는 핀란드 꼴이 될 것이다,이리 예상하는 곳도 있다더군요.


    나시카님과 댓글에 나타나시는 많은 고수분들 고견이 궁금합니다.정말 한국 미래는 그쪽에 가까운걸까요?

    (베르나도트 마지막편에 느끼는게 많다보니 주절주절 말이 많아졌네요.양해 부탁드립니다)

    • nasica 2018.08.28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는 좀 뜬금없네요 ?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중국 경제권에 어느 정도 얽혀있다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장사가 돈이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reinhardt100 2018.08.28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상, 구소련 혹은 러시아의 간섭을 받는 핀란드 꼴이 벌써 되어 가는 중입니다. 지금 정권 하는 짓 보면 답 나옵니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구소련의 위성국가나 다름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소련연방의 17번째 준가맹국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고, 실제로 코메콘의 준회원국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핀란드를 (준)회원국으로 가맹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게다가 핀란드에서는 케코넨 시절에 반소행위금지법까지 알아서(?) 제정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신 이 정도로 기어줬으니(?) 소련이 핀란드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좀 주긴 했습니다. 구 소련이 필요로 하는 서방제 물자가 코콤(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의 통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핀란드 기업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입하면서 꽤 바가지를 일부러 씌워주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석유파동 당시, 소련은 핀란드에 수출하는 탄화수소류에 대해서만큼은 '사회주의 형제국에 적용하는 가격'을 동일하게 적용해주어 핀란드 경제가 석유파동에서 꽤나 자유롭게 해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핀란드는 러시아 의존도가 꽤나 높은 편입니다. 당장 러시아가 핀란드에 탄화수소류 수출하지 않으면 겨울에 난방도 못할 수준이고 노키아가 박살나버린 상황에서 핀란드는 더더욱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러시아 경제가 제재 때문에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핀란드까지 어려워지면서 핀란드 경제도 연일 추락하고 있는게 현실이니까요.

      한국이 '러시아(구소련) 간섭을 받는 핀란드'가 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본-미국의 해양 3각동맹을 전방위적으로 굳건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방법밖에는 현재로써는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 웃자웃어 2018.08.29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 정부는 한국이 대중무역의존도가 높아서 살살기는 것일뿐 100% 친중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예로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에 맞서 한국에게 무역동맹을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죠.

    • 장구벌레 2018.08.29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중도 그냥 모토만 그럴껄요?
      백군기,전인범같은 당소속 전문가 말은 개무시하고,
      김광진,김종대 같은 사람들의 말만 편취하며
      사드 반대하다가 정권잡으니 나몰라라잖아요 ㅋ

    • reinhardt100 2018.08.29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웃자웃어) 무역동맹 제안했는데 이걸 덥석 물었으면 그냥 미국이 금융공세 제대로 걸었을 겁니다. 사실,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미국이 격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환율조작의심인데 참여정부-실용정부 내내 이 문제 때문에 대립이 꽤 있었습니다. 환율 가지고 공세를 걸기 시작하면 지금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시피합니다.

      장구벌레) 친중이 단순한 모토는 아닌 듯 싶습니다. 솔직히 미국이 보기에는 '중국몽'이라는 걸 대놓고 추종하는 듯이 보였던 거는 사실이니까요. 다만, 최근 중국이 미국한테 아작날 상황이라는 걸 좀 보면서 정신 차렸을려나 모르겠습니다.

    • 수비니우스 2018.08.29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번정권 들어서 한미일 동맹이 약화됐다는 소리는 못들어본것 같은데... 설마 또 전승절 참가한다는줄 ㄷㄷ 남북한이 영구분단 까짓거 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네덜란드하고 벨기에하고 영영 갈라섰듯이) 중국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대중국 무역을 확 줄여보는건 어떨까요?

    • 웃자웃어 2018.08.29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 정부가 외교는 미국과 중국 양쪽을 대놓고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대놓고 어느 한쪽을 자극했다간 대한민국경제가 2015년 부터 급격히 침체되기 시작했는데, 그 침체된경제에 치명타를 입으면, 국민들이 생계난에 시달리게 될테니까요.

    • 장구벌레 2018.08.30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비니우스// 한일 관계는 파탄 상태죠. 우리가 원인이 아니지만.
      전승절 참여까지 해가며 뭔가 얻어왔다면 친중도 고려못할 선택지는 아니겠습니다만,
      여전히 북한에 전략물자나 팔아제끼고 북핵 스폰싱 하는 거 보고 전환하는거 아니겠습니까?

  8. 투팍아마르 2018.08.2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회 연설문만 봐도 베르나도트의 영민함이 보이는것 같군요. 중급규모의 나라인 스웨덴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여 거기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하므로써 전후 스웨덴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보상을 움켜쥔 뛰어난 왕인것 같습니다. 저 당시의 스웨덴에서 4강국에 둘러싸인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 오버랩 되는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9. reinhardt100 2018.08.28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합병하는 것으로 핀란드를 대체하는게 국방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도 유리했다? 시대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12세기부터 스웨덴은 핀란드라는 내부 식민지를 얻음으로써 덴마크나 러시아 같은 자신들보다 인구가 더 많은 국가를 상대로 비교적 대등하게 싸워왔습니다. 16세기 북방 7년전쟁부터 스웨덴-핀란드는 주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국력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절정기가 17세기와 18세기 초반의 연이어 나온 전사군주들의 시대였습니다. '북방의 사자왕'구스타프 아돌프 2세-'전사왕'카를 10세-'유성왕'카를 12세 이 3명의 군주 휘하 스웨덴은 자신들의 본래 국력보다 훨씬 막강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30년 전쟁 후반기부터 폴란드,러시아,덴마크를 연속적으로 공격하던 1631년부터 1660년까지 스웨덴은 30년 동안 말 그대로 전시체제로 돌아갔습니다. 더 올려잡으면 1563년의 북방 7년 전쟁 시절부터였으니까 100년간 전쟁이 일상화된 나라였습니다. 100년간 스웨덴-핀란드의 인구는 150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때는 스웨덴-핀란드 인들로만 10만 병력을 동원할 정도였습니다. 왜 당시 이 나라가 그토록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했는가? 북방의 2류 국가였던 스웨덴-핀란드에게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거대한 군사력이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스웨덴-핀란드가 확장한 영토는 당시 인구 150만 국가 치고는 굉장히 넓었습니다. 당장, 켁스홀름(남부 및 서부 카렐리야), 잉게르만란트(에스토니아 북부), 리브란트(에스토니아 남부와 라트비아), 동부 포메른, (슈트랄준트 등의) 메클렌부르크 일부, 브레멘, 트뢰넬라그(트론헤임), 스코네 등이었고 전사왕 카를 10세 때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 절반을 확보했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네덜란드 등의 차관에 의해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17세기 스웨덴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군사력에 의한 주변국가의 부를 획득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사왕 카를 10세 같은 경우에는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모두를 통합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제국을 건설한 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러시아까지 모두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의 제국이면 스웨덴-핀란드의 경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스웨덴-핀란드가 사실상 유럽 2위 혹은 3위권 내의 군사대국으로써 중부 및 동부 유럽을 제패했던 시절, 스웨덴-핀란드 경제는 말 그대로 욱일승천의 기세였습니다. 인구 150만의 국가로써는 도저히 도달 불가능할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니까요. 30년 전쟁 당시에는 독일과 체코, 폴란드와 러시아 침공 당시에는 해당 점령지역에서 엄청난 부를 약탈해왔고 이걸 바탕으로 스웨덴이 자랑하던 구리와 철, 타르, 목재 등에 기반한 군수공업력을 갖추는데 성공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은 인구 만 단위의 도시가 그 전에는 없었지만 1660년대 이후 군수공업 등의 제조업이 급격하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만 단위의 도시가 등장, 급속한 발전을 17세기 내내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걸 맛본 스웨덴인들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있어 동반자로써의 핀란드가 없어지는 것을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봐야 할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사왕 카를 10세는 대단히 유능했습니다.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 2세가 구축한 스웨덴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유명하지만, 이 왕이 했던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해협 행진'이라는 전대미문의 작전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1658년 초반에 발트 해가 얼어붙자 전투병력 8천명과 지원병력 4천명을 대놓고 발트 해에 밀어넣어 덴마크군의 방어선을 전부 붕괴시킨 작전이었는데 당시, 유럽 군사학계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죠. '더 이상 바다가 천혜의 방어선이 될 수 없다.'는 명제가 현실화된 것이었으니까요.

    • 카를대공 2018.08.29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현 정부가 정말 친중쪽 정권이 맞나요?요즘 인터넷을 보면 그렇게 비판하는 의견이 많긴 하던데요.

      경제적으로 친해지는거야 어쩔 수 없긴한데 궁극적으로는 저도 친미가 답이라고 보거든요.

    • 수비니우스 2018.08.29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17세기에야 잘나갔지만 18세기 초에 러시아한테 털리고 이후 국력이 러시아하고 비교할수 없게 된 스웨덴이 핀란드를 되찾기 위해 러시아하고 계속 척지는 행동을 하는게 19세기 초 스웨덴의 국익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10. 카를대공 2018.08.28 2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럴수가!제가 중국을 그만 러시아라고 잘못 쓰고 말았군요;;

    정신 못 차리고 혼동 일으킨 점 죄송합니다ㅠㅠ

    나시카님 관심 있으시다면 러시아 간섭 받는 핀란드,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낀 폴란드와 같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포스팅도 가능하실지요?

    어떤 미국 석학은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운한 나라를 한국과 폴란드로 꼽더군요. . . . . .

  11. nashorn 2018.08.29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운한 국가는 20세기 중반전인..
    벨기에가 아닐지..
    통일된 한국이 오길 빨리 기다려봅니다

  12. 수비니우스 2018.08.29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여러분, 평화야말로 현명하고 계몽된 정부의 유일하게 영광스러운 목표입니다. "
    정말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이 하는 연설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뒤의 말도 굉장히 훌륭하네요.

  13. 나삼 2018.08.30 0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 정부가 친중 친북을 어서 버리고 친미 로 돌아서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2018.08.23 06:30

저로 하여금 이 블로그를 연재하게 만든 것은 세 권(..은 아니고 세 세트)의 소설입니다.  모두 영국 소설이고, 제 블로그에 자주 출입하시는 분들은 이미 다들 아시는, Sharpe, Hornblower, 그리고 Aubrey-Maturin 시리즈입니다.  이 세 종류의 소설은 모두 영국인이 쓴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있지요.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20대 정도의 하급 장교(Sharpe의 경우는 일병 계급부터 시작합니다)에서 시작하여, 노년에 제독(역시 출신 성분이 미천한 Sharpe의 경우는 신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중령에서 스톱)까지 이르게 되지요.  이 장편 시리즈물의 주인공들이 도중에 포로가 되기도 하고, 함정에 빠져 계급을 박탈당하기도 하는 등 갖은 난관을 겪다가, 결국 이겨내고 승진을 거듭하여 젊은 시절 꿈꾸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계급만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천박한 앵글로색슨들은 '돈과 명예'를 다 가지려는 경향이 있지요.  아무리 주인공이 높은 직위에 오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고 해도, 가난하다고 하면 독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주인공들은 결국 경제적으로도 다들 어느 정도 한몫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고상한 배달민족의 후예인데도, 그런 속물주의에 묘하게 끌립니다.  독자로서의 '저'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의 저도 명예나 지위, 성취감 같은 것들보다 '돈'이 제일 소중한 것도 사실이고요.  


오늘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하는 두가지, 즉 먹을 것과 돈 중 후자에 대한 것입니다.  저 3 종류 소설 주인공들의 재테크 관련 장면 몇가지를 모아보았습니다.


먼저, Sharpe입니다. 런던 고아원 출신의 비천한 신분인 리처드 샤프는 사병으로서 인도에서 복무하다가, 영국의 마이소르 왕국 침공 때 티푸 술탄을 살해하고 그의 몸에서 각종 보석류를 훔쳐서 떼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귀족 유부녀와의 비극적인 동거 생활 끝에 전재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 장교로 복무하지요.  그러다 스페인에서 철수하는 프랑스군 짐마차를 비토리아 전투에서 약탈하면서 다시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역시 비극적인 결혼 생활이 파탄나면서 땡전 한푼 건지지 못하고 다시 빈털터리가 됩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에서 아름답고 착한 과부를 만나, 그녀의 수익도 안 나는 농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가 시작되고, 이 덕분에 우리는 샤프가 평소에 얼마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지 엿볼 수 있게 됩니다.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nrwell (배경 : 1815년 벨기에) -----------------------------------


(샤프는 네덜란드 왕자의 사령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네덜란드 왕자의 정부(情婦)인 폴레뜨와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샤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루실에게 무척 힘든 상황이야.  내가 자기 동포들인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


"그럼 왜 싸우나요 ?"  폴레뜨는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내 무보직 보수(half-pay) 때문이지.  내가 군에 합류하는 걸 거부했다면, 군은 내 연금을 끊어버렸을텐데, 현재로서는 그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수입원이거든.  그래서 왕자가 날 소환했을 때, 난 그에 응해야 했지."


"하지만 오기 싫었단 말인가요 ?"  폴레뜨는 약삭빠르게 물었다.


"꼭 오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건 사실이었다.  비록 그날 아침에, 그는 프랑스군을 정찰하면서 자기가 이런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며칠 동안은 루실의 불행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다시 병정 노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령님은 그저 돈을 위해 싸우시는군요."  폴레뜨는 마치 그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는 듯, 지겹다는 투로 말했다.  "왕자님은 댁이 중령 노릇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주시나요 ?"


"일당이 1파운드 하고도 3실링 10펜스지."  그것이 샤프가 기병 연대의 명예 중령 계급에 대한 보수였는데, 이 금액은 샤프가 일생 동안 번 것 중 최고의 일당이었다.  이 금액 중 절반은 장교 식당의 식대와 사령부의 하인들 급료로 공제되버렸지만, 그래도 샤프는 아주 부자처럼 느꼈다.  어쨌든 그가 무보직 중위로서 받던 2실링 9펜스의 일당보다는 훨씬 괜찮은 보수였다.  원래 그가 군을 떠날 때의 계급은 소령이었지만, 기마 근위대(Horse Guards)의 서기들은 그의 소령 계급은 그저 명예 계급일 뿐 연대 계급이 아니므로, 그는 중위의 연금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 전쟁은 샤프에게 있어서 뜻밖의 횡재였고, 사실 그건 영불 양군의 수많은 무보직 장교들에게 다 해당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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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가 평상시 중위의 무보직 보수로 받던 2실링 9펜스를 요즘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만5천원 정도됩니다.  그야말로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순으로 가장 마지막 편이라고 할 수 있는 Sharpe's Ransom 편을 읽어보면, 프랑스에서 농부로 정착한 샤프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농장에서 수익이 나건 말건 그래도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연금(half-pay)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해서, 좀더 고전적인 작품인 Hornblower 시리즈의 혼블로워는, 비록 가난한 30대를 보냈지만 중년에 이르러 금전운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적의 집중 공격에 배와 선원들을 잃고 항복하여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교묘하게 탈출한 것이 뜻밖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어 인기가 급등한 것이 계기가 되지요.





(Hornblower 시리즈 중 'Happy Return' 편은 1951년 그레고리 펙 주연의 Captain Horatio Hornblower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Flying Colours by C. S. Forester (배경 : 1811년 영국) -------------------


(혼블로워가 탈출 후 섭정공에게서 직접 Bath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들 때, 목에 걸었던 커다란 별 장식이 그의 가슴에 쿵하고 와 닿았다.


"축하하네, 대령." 섭정공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해군이고, 해군에는 대령(Colonel)이라는 계급이 없습니다: 역주)


혼블로워는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보고, 혼블로워는 섭정공이 그의 계급에 대해 단순히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하 ?" 그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마치 뭘 묻듯이 말했다.


공작이 설명해주었다. "전하께서는 자네를 해병 대령(Colonel of Marines)으로 임명하시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네."


해병 대령은 매년 연봉으로 1200 파운드를 받게 되는데, 그에 따른 의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즉, 그 계급은 뭔가 공을 세운 함장들에게 상으로서 주어지는 신분으로서, 그 효력은 그가 제독으로 승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미 그에게는 나포 포상금으로 6천 파운드가 있었다.  이제 보직을 못 받는 상황이 되더라도, 최소한 함장의 무보직 급여(half-pay)에 덧붙여 1년에 1200 파운드의 수입이 있게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 인생 최초로, 금전적인 안정을 얻게 된 셈이었다.  이제 그는 리본과 별 장식으로 된 작위도 받았다.  그는 사실 그가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룬 것이었다.


"이 불쌍한 친구는 정신이 아찔한가 보구만."  섭정공은 기뻐하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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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서 샤프가 받는 중위의 무보직 보수를 1년 내내 받는다고 해도 불과 50파운드 정도인데, 혼블로워는 매년 1200 파운드(현재 원화로 약 3억원)를 받게 되네요.  저 정도면 정말 직장 생활 할만 하겠네요.


하지만 혼블로워의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니까, 모두가 이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Aubrey-Maturin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는 30대의 젊은 시절부터 해군의 특성을 살려 나포 포상금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읍니다.  살제로 한 개인이 이렇게 많은 나포 포상금을 얻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잭 오브리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어떻게 굴렸을까요 ?  은행 ?  채권 ?  주식 투자 ?  부동산 ?  한마디로 말하면 시작은 부동산, 즉 살 집과 주변 텃밭 같은 것을 사들였고, 이어서 말들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차고에 포르쉐와 아우디를 들여놓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시절에는 은행이나 주식 시장이 없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란은행, 즉 Bank of England는 1694년에 영국 해군의 확장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설립된 바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잡다한 은행들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주식시장도 성행했습니다.  18세기의 유명한 '남해 거품 사건'이 이미 18세기에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잭 오브리는 그런 금융 재테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잭 오브리는 생애 최악의 항해를 하게 되지요.)




Desolation Island  by Patrick O'Brian (배경: 1811년 영국) ------------------------------------


한 반 마일 쯤 걷고 난 뒤, 잭이 말했다.  "난 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무엇보다도 그는 씨티(The City, 런던 내 당시 유명한 금융사들이 몰려 있던 구역을 일컫는 이름)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네.  그는 펀드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있고, 또 한번은 내게 은행주에 좀 투자를 하면 그 달이 지나기 전에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기도 했지.  그리고 정말로, 미스터 퍼시벌이 성명을 발표했고, 덕택에 몇몇 사람들은 수천 파운드의 순이익을 올렸어.  하지만 난 그처럼 단순한 사람은 아니라네, 스티븐.   주식이나 유가증권은 도박이야.  그리고 난 내가 잘 이해하는 것들에만 집중한다네.  배나 말 같은 것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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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금융 재테크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돈을 적극적으로 불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돈을 날릴 걱정은 없지요.  원래 돈이 많을 수록 돈을 불리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지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아지지 않습니까 ?  하지만 불행하게도 잭 오브리는 그런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나중에 일종의 사기꾼 벤처 사업가에게 거액을 투자하여 그야말로 모조리 말아먹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느라 육지 사정에 어두운 뱃사람들, 특히 나포 포상금으로 부자가 된 함장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육지 상어(land shark)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잭 오브리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손실을 만회하려는 초조감에, 더 큰 불행을 겪게 됩니다.  잭 오브리의 실존 모델인 코크레인 경이 겪은 실제 사건인 1814년 런던 주식시장 조작 사건에 휘말려, 잭 오브리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바다에서 한몫을 잡아 재기하지요. 


하지만 이제 비싼 수업료를 내고 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운 잭 오브리는 무척 조심스러운 투자자가 됩니다.  주식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안전자산인 국공채 정도만 손을 대지요.





The Thirteen Gun Salute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태평양 HMS Dianne 함상) ------------


하지만 선원들 중 대부분은, 특히 2배 및 2.5배 배당을 받는 선원들은 오브리 함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오브리 함장은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매우 훌륭한 조언을 주는 편이었다.  그가 주창하는 것은 근검절약과 조심스러운 투자 그리고 기대 수익률을 작게 가져가는 것이었고, 5% 해군 채권이 그가 괜찮다고 인정하는 최대 한도였다. 


뱃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브리 함장이 비록 '행운의 잭 오브리'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나포 실적이 좋아서, 가장 최근의 깜짝 놀랄 정도의 나포물 전에도, 최소한 3번 정도 큰 돈을 벌었지만, 일단 뭍에 오르면 운이 영 좋지 않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때 그는 경주마들을 마굿간에 채워두고 브룩스(Brook's) 클럽에서 눈에 띄는 생활을 하는 등 호사를 누렸었다.  또 한때는 남의 말에 잘 넘어가는 팔랑귀여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벤처 사업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는 그의 투자는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금전적 조언을 주는데 있어 그보다 더 적임자는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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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위에서 말한 5% 해군 채권 (Navy five per cent)라는 것은 대체 어떤 물건이었을까요 ?  Consol이라고 불렸던 정부 통합 국채(Consolidated Annuities)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증권 편에서 소개드린 바 있었습니다.  이건 당시 다양한 금리로 나오던 정부의 채권을 대략 3% 정도의 이율로 통합하여 발행하던 것이지요.  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 즉 1751년부터 1920년대까지 존재하던 채권이라서, 혼블로워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학 작품에서도 다루어지던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5% 해군 채권이라는 것은 상당히 단기간, 즉 1810년부터 1821년 사이에만 발행되었던 것입니다.  





(그 유명한 Navy Five per cent 채권입니다.  1천 파운드에 대한 이자로 5실링을 헤스터 부인에게 지불한다는 증서인데, 왜 5% 이자에 고작 5실링만 주는지는 이해가 안되는데요 ??  매주 지급되는 이자라고 해도 1파운드 정도씩은 이자로 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  아시는 분은 댓글 좀 굽신굽신)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전비 마련 때문에, 영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본위제의 기본 규칙, 즉 영란은행에서 발행된 지폐를 영란은행에 가져가면 그 액면가만큼의 금으로 태환해준다는 것도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  이 불태환 조치는 1797년부터 1821년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유럽의 진짜 금본위제는 이 이후라고들 하지요.)  이 일시적인 비상 조치가 끝난 시기와, 5% 해군 채권 발행이 종료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보면,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도 경제가 제 궤도에 오르는데는 약 6년 정도가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영국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빚을 잘 갚았기 떄문에 전쟁 중에도 세금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도 전쟁에 돈을 댈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도 채권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특히 혁명 때는 아시냐(Assignat) 지폐로 파멸적인 사고를 친 바 있었으므로 국민들이 국채 따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폴레옹은 오로지 세금과 전쟁 배상금만으로 전시 금융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도 따로 다룰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당시 영국 수상인 윌리엄 피트가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것에 대해 당시 나왔던 풍자 만화입니다.  이 만화에서 처음으로 나온 "Old Lady of Threadneedle Street"라는 영란은행에 대한 별명은 지금까지도 통용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영국 정부의 이런 재정난의 주범은 바로 영국의 로열 네이비, 해군이었습니다.  육군도 돈을 많이 먹는 괴물이지만,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그러므로 전쟁 수행 능력이 바로 해군에 집중되어 있던 영국은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금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영국 정부는,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폐를 찍어댈 수도 없었으므로, 궁여치책으로 해군 장교 및 공무원, 해군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에게 지폐 대신 연 금리 5% 짜리 채권으로 급료와 물품 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받는 사람들로서도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표적 안전 투자처였던 Consol의 금리가 (이 역시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일시적으로 4~5%로 뛴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만) 3%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영국 정부나 다름없는 영국 해군에서 발행한 5% 채권이라면 아주 짭짤한 이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던 일반인들도 이 채권을 사기 시작했고, 이것이 당시에 아주 인기있는 재태크 수단이 되었습니다.   가령 세계일주로 유명한 영국 쿡 선장의 부하였던 윌리엄 베일리(William Bayly)라는 사람도 유서에서 자기 유산의 일부를 5% 해군 채권(Navy five per cent)으로 남긴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 일년에 어느 정도 수입이 있으면 대략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또, 당시 중산층이라고 하면 생업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계급을 뜻했는데, 이런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대략 어느 정도의 목돈이 있어야 했을까요 ?





(저 책 표지의 광고 카피가 명작이군요.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이 정말 부럽소.  굉장한 재미가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오 !')




The Ionian Mission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HMS Surprise 함상) ------------


(선상에서 장교들 간에 시 낭송 경쟁이 벌어집니다.  드라이버 중위가 여자의 지참금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시를 낭송합니다.)


"...

과도한 부를 갈망하지 말라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증명된 것은

품위있는 충족함과 사랑이니까"


"정말 훌륭하군 !" 사무장이 그의 투표 용지를 적으며 외쳤다.  "하지만 중위님이 인식하는 품위있는 충족함이란 대략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  그러니까, 그저 월급 뿐인 사람에게 말입니다 ?"


드라이버 중위는 웃고 숨을 고르더니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 여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이 1년 이자 수익이 200 파운드 정도 나올 정도의 금액 정도면 족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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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위와 같이, 약 200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5천만원이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 시골의 대표적인 신사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국교회 신부의 연 수입이 저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라면 중산층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군요.  5% 해군 채권은 드물게 괜찮은 투자처였으니 예외로 치고, 당시의 대표적인 안전 투자처인 Consol의 금리가 3%였으니까, 연 200 파운드가 나오려면 대략 6700 파운드의 원금이 있어야 했습니다.  현재 원화로는 대략 16억원 정도네요.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는 당시 영국 국채 금리보다 더 낮은 2.4% 정도입니다만, 당시 영국은 물가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플레, 특히 부동산 인플레가 만만치 않아 국채 금리로만 먹고 산다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10년 국채 금리 수익률 추이입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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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8.2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ㅎㅎ 다음블로그에서 정주행을 한번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나씩 리뉴얼되어 올라오는 글 읽는것도 재밌네요.

  2. 뱀장수 2018.08.23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는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부디 이 글에는 이상한 댓글들이 안달렸으면 좋겠네요

  3. reinhardt100 2018.08.25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부통합국채'와 '5% 해군 채권'의 성격은 꽤 다릅니다. 전자는 일종의 현대의 'mortgage'개념의 시초지만 후자는 '군용수표, 일종의 군표' 개념이었으니까요.

    유독 당시 영국에서 '부동산저당증권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닌 mortgage개념'이 발달한 이유가 영국의 화폐발권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정량의 지급준비용 정금만 있으면 아무 민간은행이라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지급준비용 정금과 연계하여 지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장은 이렇게 해서 통화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지만 태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거였죠. 이 때문에 영국정부는 각 민간은행과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발행한 지폐(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종의 법정화폐로써보다는 태환권리를 표창한 유가증권의 일종), 채권, 담보물권증서, 수표, 외국채등에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것들을 매입 혹은 저당권을 설정한 후,'정부보증을 통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통합국채로써 대금을 지급해줍니다. 이를 수령한 거래 객체들은 런던의 시티 같은데서 이를 거래하였고, 이 덕분에 금융시장의 안정 유지에도 한 몫 했습니다. 흔히, 순수자본주의 시절에는 국가가 자유방임적 자세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금융분야에서는 이런 개입주의적 자세를 자주 취했습니다. 결코 약육강식 적자생존식의 막장은 아니었죠. 복지체계가 미흡해서 크게 문제가 된 겁니다.

    '5% 해군 채권'의 경우, 일종의 군용수표적 성격이 강했고, 사실상 이는 수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채권'의 형식을 빌어서 발행한 '실질적인 유가증권의 일종으로써의 수표'라고 봐야 합니다. 이게 왜 수표냐면 당시에도 채권발행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준거법률에 의해서 발행해야 하는데 정부통합국채와 이 5% 해군 채권은 준거법률이 전혀 달랐습니다. 후자는 해군관계법령에 의해 발행했으니까요. 즉, 물자구매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종의 가상계좌를 만들어 놓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유가증권을 발행, 거래 객체에게 유포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유가증권을 모집하여 영란은행이나 다른 민간금융기관에서 대금을 상환받을 수 있게 하고 유가증권자체는 소각처리했습니다. 채권은 원금상환을 하지 않아도 이자지급을 하면 계속 거래 가능했지만, 이 5% 해군 채권이란 물건은 일정 거래기간 내에 반드시 유가증권을 모집하는 해군측에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표로써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군표가 가장 많이 활용된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일본이 가장 많이 활용했습니다. 전시재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지급준비용 정금이 필요했지만 이를 보유하지 못했던 일본은 각 점령지별로 초기에는 조선은행권, 만주국은행권, 대만은행권, 남양청의 남양개발금고권 등의 식민지 은행권을 살포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현지화폐단위에 근거한 군표를 살포해서 점령지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답이 안 나와서 아예 화북교통은행권, 중앙연합준비은행권, 몽강은행권등 중앙은행을 발족시켜서 현지 화폐를 직접 발권 및 유포시켜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걸 본 서구 연합국과 중화민국이 빡이 칠 대로 쳐서 전후 처리에서 가장 중시한 것 중 하나가 '안정적인 국제금융 및 결제 시스템의 확립'이었고 이 때문에 IMF가 발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비를 군표로 지불하는 것을 꽤나 엄격히 제한시켰고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 시기부터는 막 개념이 도입된 신용카드에 의해 지불하도록 권장했습니다. VISA카드가 사실상 세계 공통이 된 게 이 시기 미군의 전비조달을 위해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4. eithel 2018.08.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저 5 schillings는 이자로 5실링을 지급한다는게 아니라 5실링 주화로 1천파운드를 납입했다는 의미같네요. 다른 네이비 파이브 퍼 센트들을 보니 금이나 주화로 납부한걸 기입해뒀더라구요.

  5. ㅁㄴㅇㄹ 2018.08.3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걸 보니 당시 청나라 공행 총수?가 영국을 믿고 계속 영국 채권에 투자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6. 청명 2019.05.01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여 년 전부뎌 가끔 봤는데 ᆢ여름에 프랑스
    여행가느라 처음부터 훑어 보는 중입니댜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8.08.20 06:30

아우구스트 왕세자와 폰 페르센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사태는 험악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왕의 역할일텐데, 카알 13세는 정작 거의 아무 역할을 못 했습니다.  이미 1809년 11월 이미 한차례 심장마비를 일으킨 이후 건강 문제로 인해 국정에 거의 참여를 못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스웨덴의 조야는 모두 안정을 원했는데, 이 혼란이 끝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후계자를 조속히 선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문제는 카알 13세의 왕비 샤를로타(Hedvig Elisabet Charlotta) 왕비였습니다.  살해된 폰 페르센과 함께 구스타프파의 수장 노릇을 해왔던 여걸이던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스타프 왕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공공연히 구스타프 왕자가 왕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민중의 지지를 받는 아우구스트 왕세자가 의문사를 당한 상황에서 구스타프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될 경우 폭동이 일어날 것이 뻔했습니다.  아마 민중이 참는다고 하더라도 구스타프 4세를 쿠데타로 몰아냈던 스웨덴 군부가 가만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직면한 샤를로타 왕비도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녀는 구스타프 왕자가 정 안 된다면 구스타프 집안의 원류인 홀슈타인(Holstein) 가문의 페터(Peter)가 왕세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새 왕세자를 선출하는 회의는 외레브로(Örebro) 성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회의가 열리는 동안 샤를로타 왕비는 스트룀스홀름(Strömsholm) 궁에 사실상 연금되었습니다.  그녀의 간섭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스트룀스홀름(Strömsholm) 궁입니다.  노르딕 양식이라 그런지 왕궁치고는 상당히 단촐하네요.)




굳이 샤를로타 왕비를 연금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전통적으로 스웨덴의 왕위는 의회(Riksdag)와 러시아가 결정하는 자리였거든요.  당시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강국인 프랑스의 눈치도 봐야 했습니다.  물론 이 회의에 러시아 대표나 프랑스 대표가 와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참석자들의 마음 속은 어떤 사람을 왕세자로 뽑아야 주변국들의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로 복잡했습니다.  1810년 8월 21알 그 결과로 뽑힌 것이 바로 베르나도트였습니다.


베르나도트의 이름이 스웨덴에 알려진 것은 뤼벡에서 스웨덴 포로들을 친절하게 대해준 사건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사람들, 특히 군부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지요.  칼 뫼르너가 독단으로 그에게 왕세자 자리를 권유한 것은 스웨덴 왕실의 분노를 살 정도로 처음에는 어처구니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만,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의외로 프랑스 군단장이자 당대 최고의 권력자 나폴레옹 황제의 인척인 베르나도트가 매우 합리적인 선택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도 천하의 나폴레옹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에 불과했고 경쟁 관계이던 덴마크도 나폴레옹의 보호를 받는 처지였으니, 나폴레옹의 친척을 왕세자로 뽑는다면 스웨덴도 자연스럽게 나폴레옹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스트룀스홀름 궁에 연금되어 있던 샤를로타 왕비는 베르나도트가 새 왕세자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통보한 사람은 아델스바르드( Fredrik August Adelswärd)라는 관료였는데, 그는 평민이 스웨덴 왕위를 잇게 된 것에 대해 왕비께서 언짢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으나, 왕가의 안정을 위해 부디 기쁜 척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에 대해 왕비도 왕국에 안정만 가져올 수 있다면 누가 왕이 되더라도 환영하겠다고 말하며, 그에게 재능과 선량한 마음이 있다면 혈통이 어떤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매우 진보적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샤를로타 왕비입니다.  이 분이 쓰신 일기는 자신의 사후 50년 이후에 출간해도 좋다는 취지로 씌여졌고, 실제로 1902년부터 조금씩 스웨덴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지금도 귀중한 스웨덴 왕실 역사 자료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왕비가 쓴 일기를 왜 스웨덴어로 번역하냐고요 ?  이 분은 일기를 프랑스어로 쓰셨거든요.  당시 유럽 상류 사회는 다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니, 프랑스 사람인 베르나도트를 왕으로 모셔와도 일반 스웨덴 서민과 직접 이야기할 일이 없는 한 신하들과의 언어 소통 문제는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미국 역사가인 슬로안(William Milligan Sloane)이 쓴 나폴레옹 전기(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에 따르면, 이때 베르나도트가 선출된 것은 프랑스에 대한 스웨덴의 정보망이 사실상 마비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현대를 살고 계신 여러분과는 달리, 당시 스웨덴 귀족 사회와 군부에서는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의 미묘하면서도 팽팽한 긴장 관계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의심도 듭니다만, 살해된 폰 페르센이 스웨덴에서 높은 직위를 누렸던 이유 중 하나가 그가 마리 앙트와네트를 통해 프랑스 부르봉 왕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폰 페르센은 스웨덴 귀족이면서도 프랑스군에 복무하며 심지어 미국 독립전쟁까지 따라 갔었지요.  왜 스웨덴 귀족이 그렇게 남의 나라 군대에 복무했을까요 ?  아니, 애초에 스웨덴 국왕이 왜 그런 것을 허용했을까요 ?  폰 페르센은 구스타프 4세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3세의 심복이었는데, 그가 우연한 기회에 부르봉 왕가에 줄을 댔다는 것은 폰 페르센 개인 뿐만 아니라 스웨덴 전체를 위해서도 크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폰 페르센을 통해 당대 유럽의 손꼽히는 강국이었던 프랑스의 고급 정보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혁명이 일어나고 마리 앙트와네트가 처형되고, 이어서 폰 페르센까지 어이없이 죽어버리자 프랑스에 대한 스웨덴의 정보망에 큰 구멍이 뚫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 사이에 어떤 알력과 갈등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폴레옹의 기관지나 다름없었던 르 모니퇴르(Le Moniteur Universel)지에서 상세히 있는 그대로 보도할 리가 없었으므로, 당시 나폴레옹의 측근들이 아니라면 그런 사실에 대해 알 방법이 마땅치 않았을 것입니다.



(르 모니퇴르 신문입니다.  1815년 7월 10일 판이니 워털루 전투 이후에 나온 신문입니다.  그래서 국왕(Le Roi)께서 누구누구를 무엇무엇으로 임명하셨다라는 소리가 나오네요.)




이렇게 순진한 스웨덴 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베르나도트를 자신들의 왕세자로 모셔가겠다고 프랑스에 통보해오자, 속이 뒤틀린 것은 당연히 나폴레옹이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황제의 체면이 있는 걸요 !  그런데 나폴레옹은 체면이 좀 깎일 각오를 하고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왕세자가 되는 것에 충분히 초를 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베르나도트의 시민권 문제였습니다.  베르나도트는 어디까지나 프랑스 시민이자 나폴레옹 황제의 신민이었으므로 그가 스웨덴 왕세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프랑스 시민권을 버려야 했는데, 그렇게 시민권을 버리는 행위는 프랑스의 주권자인 황제 나폴레옹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이를 이용하여 베르나도트와 딜을 하나 성사시키려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시민권 포기 신청서를 들고 온 베르나도트에게 조건을 하나 내걸었습니다.  향후 스웨덴이 절대 프랑스에 대해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베르나도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웨덴 왕세자가 될 경우 자신의 의무는 프랑스가 아니라 스웨덴을 위한 것이 되므로, 그렇게 스웨덴의 국익에 반할 수 있는 약속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나폴레옹도 나름 당대의 영웅이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더 이상 치사하게 질척거리지 않고 쿨하게 이렇게 말하며 베르나도트의 신청서에 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가시오, 이제 당신과 나의 운명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지켜봅시다."    


스웨덴 사람들이 프랑스 내부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에 대해 이미 상당한 공부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스웨덴이 왜 자신을 왕세자로 택했는지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웨덴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스웨덴이 당대 최고 권력자 나폴레옹의 부하이자 인척인 자신을 왕세자로 삼은 이유는 나폴레옹의 힘을 빌어 최근 잃었던 것을 되찾으려 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핀란드였고, 핀란드는 러시아의 수중에 있었습니다.  


과연 베르나도트는 이 어려운 퀘스트를 어떻게 수행했을까요 ?  



** 아마 다음 편이 베르나도트 마지막 편이 될 것 같군요.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II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V_John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Hedvig_Elisabeth_Charlotte_of_Holstein-Gottorp

https://en.wikipedia.org/wiki/Union_between_Sweden_and_Norway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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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곰소문 2018.08.20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흥미진진 하네요. 일부러 스포일러 안하게 검색도 안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lol

  2. nashorn 2018.08.20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는척 하면 안되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를 좀 더 존중했으면
    나폴레옹한테 더 좋은 결과가 있을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3. 유애경 2018.08.20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르나도트가 왕세자가 되기까지 정말 여러가지-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조건과상황(?)이 얽혀 있었네요!
    여러모로 치사한 나폴레옹이 쿨하게 서명했다는것 까지도 ...

  4. 카를대공 2018.08.20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베르나도트편을 읽으며 알게 된것이 의외로 왕세자가 되는 과정이 험난했으며 우연에 의해 촉발된 것이었군요;
    전 정말 스무스하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베르나도트도 맨 처음 나폴레옹 전쟁을 접했을 무렵엔 단순 배신자인줄 알았습니다만 그게 아니었군요.

    나시카님께서도 수차례 말씀하셨지만 괜히 거물이 아닌가 봅니다.

    이번편에서도 깡다구 보통이 아닌걸 보여주네요.

  5. TheK2017 2018.08.20 16: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과연. 과연. 정말 궁금합니다.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 멋지네요. ^ㅇ^*

  6. 하이텔슈리 2018.08.20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의 친척을 왕세자로 뽑는다면 스웨덴도 자연스럽게 나폴레옹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에서 '아 ... 할 말을 잊었습니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뭐 그게 이유 중에 하나였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서도 참...

    *.해결책이 아마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된다였죠? 그걸 정말 해냈고. (...)

2018.08.16 06:30

최근에 흥미로운 보험 사기 관련 뉴스가 있었습니다.  길이 100m가 넘는 4천톤급 원양어선에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화재를 일으킨 뒤, 보험금으로 무려 6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아냈다는 것이었지요.  (https://news.v.daum.net/v/20180809072704748 참조)  거기서 저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애초에 그런 큰 배를 구입하는데 들었던 금액이었습니다.  19억원이더라구요.  비록 낡은 중고어선이라서 많이 내려간 가격이긴 했지만, 그 정도면 서울에 있는 좋은 동네 넓은 아파트 가격이쟎아요 ?  저는 그런 큰 배는 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서,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정도면 물론 큰 액수이긴 하지만 로또 한방이면 가능한 금액이라는 점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길이 100m 정도의 선박이면 크기가 어떨지 궁금해하시는 분들께서는 망원동 쪽에 정박해서 이젠 공원이 되어 있는 서울함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서울함은 1985년에 취역하여 30년 사용하다가 퇴역한 울산급 호위함인데, 길이가 100m 정도입니다.  다만 저 원양어선처럼 뚱뚱하지 않고 군함답게 날씬하여 배수량은 약 1500톤 급이라고 하네요.  




(망원동 쪽에 있는 서울함 공원입니다.  3천원인가... 유료입장이긴 한데, 꽤 괜찮습니다.)




이왕 돈 써서 선주가 되는 김에, 시시한 어선 말고 날렵한 군함을 구매해서 대양을 항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현대에 퇴역 군함으로 대체 뭘 해야 수익을 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시라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제 블로그의 주제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라면 매우 수지 맞는 장사가 있긴 했습니다.  바로 사략선(privateer)입니다.  


사략선은 해적(pirate)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일종의 민간 해군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략선은 전시에 소속 국가로부터 면허장(letter of marque)을 받아서 합법적으로 적대국의 선박을 공격하여 노획하는 역할을 하는 선박입니다.  일반 군함과 다른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함장을 비롯하여 모든 선원은 민간인입니다.  그러나 해적과는 달리 일반적인 통상적인 교전 수칙을 다 지켜야 했습니다.  가령 탈취한 선박의 민간인, 특히 여성의 안전은 절대 보장해야 했습니다.  


- 합법적으로 교전할 수 있는 선박은 면허장(letter of marque)에 표기된 국가 소속의 민간 및 군용 선박입니다.  만약 교전국이 여러 국가라고 하면, 반드시 면허장을 그 해당 국가별로 다 따로 받아야 합니다.  가령 덴마크가 프랑스의 동맹국이자 영국의 적국이라고 해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대한 면허장 2장만 있다고 하면 절대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 사략선의 주목적은 노획품이었습니다.  따라서 적함의 격침보다는 탈취가 목표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가 빨라야 했고 또 승선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수의 전투원을 태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략선은 대포 무장이 빈약한 작은 배였습니다.  이런 작은 배들이 자신의 2배 정도 크고 대포 수도 더 많은 인도 무역선(Indiaman)에 겁도 없이 덤벼들곤 했습니다.


- 원래 목적도 그랬고 또 무장이 빈약했으므로 사략선은 상선을 만나면 공격하고 적 군함을 만나면 빠른 속력을 이용해 도망쳤습니다.  




(동인도 회사 소속 켄트 Kent 호를 공격 중인 프랑스 사략선 콩피앙스 Confiance 호의 모습입니다.  이 사건은 1800년에 있었는데, 저 그림 속에서 작은 배가 콩피앙스입니다.  저 켄트 호는 무려 40문의 대포를 장착한 무장 상선이었고, 특히 화재가 발생한 다른 배의 승객들을 구출해서 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300명의 군인을 포함한 437명의 인원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콩피앙스 호는 15문의 대포에 고작 150명의 선원을 태우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런데도 1시간 반의 전투 끝에 콩피앙스 호는 켄트 호를 나포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때 나포 이후 1시간의 약탈이 허락되었는데 여성 승객들은 엄격하게 보호될 정도로, 프랑스 민간 사략선들은 해적과는 달리 신사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영국 해군성은 이 콩피앙스 호의 선장 로베르 쉬르쿠 Robert Surcouf 에게 현상금을 걸기도 했습니다.   쉬르쿠는 1809년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40 척을 나포하는 활약을 했는데, 이후에는 다른 사략선을 무장시켜 내보내는 선주로서 또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영국 해군성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명예롭게 살다가 1827년 노르망디에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사략선을 바다에 띄우는 것은 매우 위험이 큰 사업이었습니다.  따라서 돈 많은 상인들이 돈을 대서 배와 장비를 사들이고 유능한 선장과 선원들을 고용하여 사략선을 띄웠습니다.  이런 사략선에 가장 좋은 배는 원래 군용으로 제작되었다가 오랜 취역 생활 후 낡아서 퇴역한 작은 슬룹(sloop) 함이었습니다.  속도가 빠른데다 군함 특성상 전투원들을 많이 태우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낡은 중고 선박이라서 유사시 역으로 탈취 당하거나 침몰하더라도 새 배를 잃는 것보다는 손해가 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략선 사업을 하려면 돈이 대략 얼마나 들었을까요 ?  





The Reverse of the Medal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2년 영국 ) --------------


(주인공인 영국 해군 함장 잭 오브리가 증권시세 조작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을 받을 경우 돈도 잃지만 무엇보다 해군에서 불명예 전역을 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의 절친인 군의관 스티븐 머투어린은 잭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잭과 자신이 오랫동안 함께 근무했다가 이제 퇴역하는 영국 해군 소속 낡은 프리깃함인 HMS Surprise를 자신의 돈으로 매입하여 사략선으로 만들 생각을 합니다.  최근 스티븐의 스페인 귀족 대부가 사망하면서, 그에게 엄청난 규모의 금화를 유산으로 남겼거든요.  그에 대해 해군성 관료인 조셉 블레인 경과 스티븐이 대화를 나눕니다.) 


마침내 스티븐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여기 오면서 유죄 판결의 경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잭 오브리는 해군에서 퇴출당할 경우 정신줄을 놓고 폐인이 될 겁니다.  저도 영국에 남아 있고 싶은 생각이 없고요.  그러니 제가 대신 서프라이즈 호를 구입해서 - 잭의 금전 상황이 어렵게 되었으니까요 -  사략선 면허장을 받고 선원들을 계약해서 사략선으로 출항시킬까 생각합니다.  잭을 그 선장으로 해서요.  그에 대해 생각해보신 뒤 내일 제게 조언을 주십사 간청드려도 될까요 ?"


"물론 이지요.  일단은 매우 훌륭한 계획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보직을 얻지 못한 해군 장교들 여럿도 그렇게 사략선에 자리를 얻어서 자신들의 전쟁을 계속 하면서 가끔씩 적의 통상로에 아주 난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큰 수익도 올리고 있지요.  떠나신다고요 ?"


(중략...)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영국 내에 필요한 자금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거래에서는 당장 준비된 자금이 필요하거든요.  만약 없으시다면..."


"있습니다.  군함을 사서 장비를 갖추는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령과 통상 은행'(the Bank of the Holy Ghost and of Commerce)에서 발행한 쓰레드니들 가(Threadneedle Street - 영국 금융기관이 밀집한 거리의 이름)의 어음 3장이 있습니다."  스티븐은 그 중 한 장을 건네면서 말했다.  "만약 이것들로 부족하다면 더 가져올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는 물론, 지금도 런던의 금융기관이 몰려 있는 지역을 'The City'라고 부릅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Threadneedle 거리는 그 City에 속한 거리 이름으로서 지금도 많은 금융기관이 있습니다.)




"맙소사, 머투어린."  조셉 경이 말했다.  "이거 하나로도 내구 연한이 지난(past mark of mouth) 소형 중고 프리깃함은 말할 것도 없이 74문짜리 신규 전열함을 건조하고 선원과 장비를 갖출 수 있겠소."


"서프라이즈 호는 선수 돛을 좀 특별히 달면 정말 민첩하게 내달립니다.  그리고 그 냄새와 낮은 천정, 하갑판의 좁은 공간에 다들 결국 익숙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배는 아주 멋진 사략선이 될 겁니다.  서프라이즈호를 뿌리칠 정도로 빠르거나 화력 대결을 벌여 이길 정도로 중무장한 상선은 많지 않지요.  하지만 이미 아시다시피 먼저 사략 먼허장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그냥 해적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교전국인 국가들 하나하나에 대해 각각 면허장을 받아야 합니다.  제 친구들 중 하나는 프랑스 선박에 대한 면허장만 가지고 있었는데도 전쟁 초기에 네덜란드 선박을 하나 나포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눈치 빠른 영국 해군 함정 하나가 그의 면허장을 보고는 나포된 네덜란드 선박을 몰수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선원들 중 절반을 강제 징발(press)하여 해군에 입대시켰지요.  하지만 제게도 아직 해군성 한 구석에 영향력이 좀 있으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적대국에 대한 면허장을 오늘 오후에 받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했지만, 서프라이즈 호에 대한 경매가 잭 오브리 함장의 공판 바로 하루 전으로 정해졌답니다.  그게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될까요 ?"





(HMS Surprise는 실제로 존재했던 군함입니다.  원래 프랑스 해군이 1793년에 건조한 32문짜리 위니떼(Unité) 호였는데, 1796년 영국이 나포한 뒤 36문짜리 HMS Surprise로 바뀌었습니다.)




(중략 ...)


조셉 경이 말했다.  "토마스 풀링스라면, 오브리 함장의 선임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최근에 준함장(commander)으로 승진한 그 장교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친구 말로는 (비록 함장으로 승진했지만) 자신이 해군 함정을 배정받아 출격할 가능성은 이미 매우 낮은데, 만약 오브리 함장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그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진다고 하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


"안 됐지만 그럴 겁니다.  아무 배경이 없는 준함장이, 더군다나 불명예 전역한 정규 함장과 해군 생활을 했다고 하면, 아무리 그 불명예가 누명에 불과하다고 해도 남은 여생을 육지에서 보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의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요."


"그렇다면 서프라이즈 호를 매입해서 정비하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그의 제안을 제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제 양심이 찔릴 이유는 없겠군요 ?"


"예,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정말 아주 잘 되었군요 !  실은 저도 경매 현장에서 당신을 도와줄 경험있는 뱃사람을 소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을 경우 철저히 사기를 당해서 서프라이즈 호는 뱃바닥의 구리판을 다 뜯기고 아예 진흙뻘에나 어울리는 평저선으로 개조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풀링스가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뛰어난 사람입니다."


(중략 ...  항구에서 머투어린은 마침 정박해 있는 유러디시 호의 함장이자 오브리의 친구인 던다스 함장의 면회를 요청합니다.)


던다스는 그의 함장실에서 사복 차림으로 허겁지겁 뛰어나와 외쳤다.  "오 세상에 머투어린, 제가 늦은 것이, 딱 5분 늦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시내로 나가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는 머투어린을 그의 선실로 안내하고 걱정스럽게 잭 오브리의 안부에 대해 물었다.  던다스는 걱정하는 머투어린에게 해군 관례인 허위 복무 기록(false muster)에 대한 오브리의 문제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키고는 이 공판에 대해 머투어린의 예상은 어떤지 물었다.  민간인의 관점에서 정말 위험한 재판이 될 것이라고 보는지 ?


"제3자 관점에서 보면 유죄 판결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문의 얼굴을 보고 정치적으로 연루된 재판이 과거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재판 결과가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공판에 참석하지 못하고 서프라이즈 호 경매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라 더욱 그래요."


"당신이요 ?  맙소사 !"  던다스는 놀라 외쳤다.  그는 스티븐을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서프라이즈 호는 값이 꽤 나갈 겁니다... 민간용 군함이니 가격이 정말 높을텐데요."


"해군성의 높은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배를 셀머스턴 항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선원 한두 명을 좀 빌려줄 수 있으실런지요 ?  빌려주시는 선원들은 본덴 및 제 하인과 함께 합승마차를 타고 오면 됩니다.  그 동안에 저와 톰 풀링스는 경매 참석을 위해 무개마차를 타고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당장 승조원 팀을 꾸며 드리겠습니다.  경매는 내일이지요 ?  오 맙소사.  당신에겐 정말 시간이 없군요.  오늘 밤 안으로 거기 도착하려면 당장 출발하셔야 합니다.  제가 부둣가에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제 바지선이 유러디시 호 바로 옆에 떠 있거든요.  승조원 팀에 대한 명령을 제가 내리는 대로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경매에 늦으시면 안 되지요.  톰 풀링스가 당신과 함께 간다니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가신다고 했다면 저라도 따라갔을 겁니다.  선박 경매에 따라 붙는 암초와 상어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야 하거든요.  그것들은 다리 하나 쯤은 - 아마 두 개 다 - 가볍게 뜯어가거든요.  그런데 제가 더란트네에서 전에 말씀드렸던 젊은 친구와 만나기로 시내에 약속이 잡혀 있어서 -"


"함장님 형님네가 아니고요 ?"


"아니요.  멜빌과 저는 요즘 말 안 섞고 지냅니다.  제 아이들과 그 엄마를 모욕하고도 걷어 차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인 거지요 - "


(중략...  머투어린은 풀링스와 함께 경매에 참석합니다.  그는 경매장에서 지금은 스웨덴에 있는 아름다운 그의 아내 다이애나 생각에 빠져듭니다.)


비록 그는 사전 경매들과 풀링스의 초기 입찰에 대해 기계적인 관심을 좀 주기는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곧 다이애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버렸다.  다이애나가 크리스티 경매장의 문 안쪽에 서서 고개를 높이 들고 낙찰의 기쁨에 입을 벌리던 모습은 경매 진행자가 단호하게 내리치는 망치 소리에 날아갔고, 풀링스가 낙찰에 대해 축하 인사를 했다.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군의관 선생님.  이제 서프라이즈 호의 선주이십니다 !"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고 그들이 다시 서프라이즈 호의 갑판에 서게 되자 기쁨의 목소리로 풀링스가 말했다.


"아주 엄숙한 일이지."  스티븐이 대답했다.  "하지만 내가 이 배를 오래 소유하지 않기를 바라네.  내일 재판이 잘 진행되어, 오브리 함장이 기쁜 마음으로 내 손에서 이 배를 빼앗아 갔으면 좋겠어.  물론 난 이 배를 아주 사랑해.  내게 이 배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집이자 피난 방주라네."


"거기 당신 !(You, sir)" 풀링스는 밧줄걸이(belayingpin)에 손을 올리며 외쳤다.  "그 꼬인 밧줄에서 손을 떼."


"전 그냥 보기만 했는데요."  항만 노동자 하나가 말했다.


"자넨 당장 판자 다리를 건너 배에서 내려."  풀링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뱃전으로 가서 나룻배를 향해 외쳤다.  "조스핀, 수고스럽겠지만 자네 형을 불러오게."  그는 스티븐에게 말했다.  "이 배의 삭구와 돛대까지 다 도둑맞기 전에 배를 빨리 항구 가운데의 계류장(moorings)으로 끌고 나가야겠습니다.  본덴이 여기 선원들과 함께 이미 와있다면 정말 좋았겠네요.  조류 저쪽의 계류장에 있는 중에도 제겐 감시할 눈이 한 쌍 뿐이거든요."  그는 양동이를 하나 붙잡더니 놀라운 손재주로 그 속에 든 물을 뱃전 아래의 꼬마들에게 뿌렸다.  그 아이들은 훔친 널빤지로 만든 뗏목을 타고 이물 쪽으로 접근해서 프리깃 함체의 구리판을 뜯어가려 하고 있었다.  "야 이 거지같은 못된 꼬마들아(실제 표현은 어머니와 성매매와 기타 아주 험악한 표현이 많이 쓰였습니다.  참고로 당시엔 fXXXer 대신 bugger라는 표현이 많이 쓰였답니다.  남색꾼이라는 뜻입니다 - 역주), 다음 번에 또 그러면 체포해서 교수형에 처할 거야 !  아뇨, 선생님, 이제 경매사의 조수들이 하선했으니 저것들은 우리 배를 아주 정당한 사냥감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계류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거기서도..."


"계류장이라는 것은 부둣가에서 이동시킨다는 뜻인 모양이지 ? 부두나 선창에서 멀리 ?"


"맞습니다.  항구 내의 가운데로요."




(당시 목조 범선들의 바닥에는 구리판을 촘촘히 입혔습니다.  이는 뱃바닥에 달라붙는 따깨비 등의 해양 생물이 목판을 침식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구리는 비쌌으므로 이렇게 바닥에 구리판을 입히는 것은 군함이나 재정이 튼튼한 큰 해운 회사 소속의 상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copper-bottomed'라는 형용사는 '구리판을 바닥에 댄'이라는 뜻 외에 '재정이 든든한'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림은 미해군 대형 프리깃함 USS Constitution에 구리판을 다시 덧대는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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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으로는 이 소설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시리즈 후편들 속에서도 머투어린이 상속 받은 금액이 얼마인지, 그리고 머투어린이 얼마에 서프라이즈 호를 낙찰받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그 책을 읽지는 못 했으나) E.H.H Archibald라는 분이 쓰신 "The Fighting Ship of the Royal Navy"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등급별 군함 건조 비용이 나옵니다.  아래 나오는 비용에는 대포 및 각종 삭구류 등의 비용은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 함체 건조 비용입니다.



대포 수        배수량        건조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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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문           2220톤        67,600파운드

 98문           1920톤         57,120파운드

 74문           1660톤         43,820파운드

 64문           1390톤         35,920파운드

 50문           1050톤         25,700파운드

 44문             890톤        21,400파운드

 32문             700톤         15,080파운드

 28문             600톤         12,420파운드

 24문             530톤         10,550파운드

 20문             440톤          9,100파운드

Sloop함         300톤          6,260파운드



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당시의 1파운드가 대략 25만원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당시 물가를 고려할 때 그건 꼭 맞는 계산법은 아닐 것이겠지요.  당시 해군 위관급 장교의 일당이 3실링(20실링=1파운드) 즉 월급이 약 4.5파운드이고, 현재 한국 해군 중위의 월급여가 대략 230만원 정도라고 하면, 당시 1파운드는 대략 51만원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저 소설속 HMS Surprise는 36문의 대포를 갖춘 약 650톤급 프리깃함이므로 건조 비용이 대략 1만5천 파운드 정도이고 현재 가치로는 약 77억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호는 잭 오브리 함장이 어린 소년 시절 사관생도(midshipman) 생활을 했을 정도로 낡은 군함으로 나옵니다.  진수된지 약 30년 정도가 된 배라고 봐야지요.  중고 선박이 얼마나 가격이 내려갈지 모르겠습니다만, 설마 1/10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대략 1/3 가격, 즉 5천 파운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가치로 26억원 정도입니다.  스티븐 머투어린이 물려받은 금화가 대체 몇 톤이나 되었던 것일까요 ?


기록을 찾아보니 불가리아 해군이 벨기에로부터 2300톤 짜리 빌링겐(Wielingen)급 중고 구축함을 2005년에 2천3백만 유로에 구매한 사례가 있군요.  약 300억원에 산 셈입니다.  화물선 같은 경우, 뒤져보니 대략 선체 길이 100미터에 배수량 2500톤급의 35년 묵은 화물선 가격이 대략 145만불, 즉 16억원 정도하더군요.  여러분도 그 정도 돈만 모으면 선주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럴 돈이 있다면 낡은 화물선보다는 서울에 아파트 사놓는 것이 재테크 측면에서는 더 좋아 보입니다.






Source : The Reverse of the Medal by Patrick O'Brian

http://www.twcenter.net/forums/showthread.php?294049-Cost-of-British-naval-vessals-in-1789

https://forums.civfanatics.com/threads/cost-of-ships-in-the-age-of-sail-cost-compared-to-today.281532/

https://en.wikipedia.org/wiki/HMS_Surprise_(1796)

https://www.yachtworld.com/boats/1984/Custom-Geared-RoRo-Cargo-Ships-3123789/Russia?refSource=browse%20listing#.W3Fv5CgzZnI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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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산이아닌가벼 2018.08.16 1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는 운송시장에 있어서 특히 배는 호황과 불황을 자주 겪다보니 20년된-2년이 아닙니다- 배가 금융위기 전에 신배보다 더 비싸기도 했습니다. 람보르기니로 열심히 택시 영업을 하고 중고로 팔았더니 새람보르기니보다 더 비싼 경우죠. 누가 압니까 20년뒤에 또 거대 호황이 올지요 ㅋ

  2. 보헤미아 2018.08.16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다이애나가 머투린과 다시 이어지나요? HMS 서프라이즈 호에선 미국인 부자 존슨과 눈 맞아가지고 달아난 것으로 아는데..

  3. 유애경 2018.08.16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험사기 기사 보니까 적자 메꾸려고 그랬다는데, 배 불질러서 태워버리고 사기가 발각나서 구속되고 보험금은 물론 반환 당하겠죠? 죄지으면 안되지만 빚때문에 그랬다니까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4. OSHenry 2018.08.16 1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ㅎㅎ

  5. keiway 2018.08.16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은 목요일에 올라왔는데도 새로 쓰신 글이네요? (제가 예전에 못 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쁘게 잘 읽었습니다. 항상 수고가 많으세요.

    요즘도 부자의 끝은 요트이지 않습니까? (자가용 비행기던가요?)
    군함은 가격보다 거기 들어갈 사람을 채우는게 큰일이겠네요 ㅎㅎ

  6. 와플구이 2018.08.16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고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나시카님이 이번글에도 인용한 잭오브리 시리즈의 마스터 앤 커맨더를 최근에 봤는데 말씀하신대로 정말 재밌었습니다 ㅎㅎ
    당시 함선이나 해군생활 뿐만아니라 일반적인 묘사와 전투장면도 디테일하게 잘 그려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하지만 그런 디테일과 용어때문에 함선묘사와 전투기동묘사가 머리속에 잘 그려지않아서 쫌 이해가 힘든부분도 있었네요. 한글로도 힘든데 영어로는 어떻게 읽나 싶었습니다 ㅎㅎ
    현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당시로선 당연하게 여겼던 관습들도 흥미로웠구요.
    특히 마지막 추격전에서 적 함선이 포도탄으로 배를 찢어버리려고 하다가도 항복하니까 용감한 저항을 극찬하면서 환대하는 장면이 패배때문에 씁쓸하긴하지만 흐믓하기도 했었어요.
    예전 포스팅에서 한글로는 이것밖에 출판이 안됐었다고 하셨던것 같은데 더 읽을수 없어서 아쉽네요.
    나시카님이 번역해서 올리셨던것 중에는 샤프 시리즈가 제일 재밌었는데 이것도 한글 출판은 안됐겠죠?

  7. 석공 2018.08.16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빚도 능력이죠..ㅎㅎ

  8. 효혜 2018.08.17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청 재밌어요!!

  9. Spitfire 2018.08.17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예전에 아는분께 들은 내용이지만, 종종 소규모 해운사들은 불황이 오면 배를 '자침'시킨다고 합니다. 운임이 마이너스면 차라리 침몰시키고 보험료받는게 훨씬 이득이라 그렇다네요~ㅜㅜ
    어떤 경우에는 완전범죄를 위해서 한명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놈이 술먹고 홧김에 엔진실에 불지르고 배를 침몰시켰다' 스토리로 간다고 합니다. 범인도 배도 바다밑에 있으니, 돈들여 인양하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침몰시키는 배에는 무거운 화물을 가득 실어야 보험료가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사고내고 한 2년 '모히또'에서 '몰디브' 마시며 놀고 있으면 보험금이 들어오고, 그때쯤이면 시장이 호전되어서 다시 배를 사서 출동한다고 합니다..;; 뱃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끔 육지의 범인이 상상도 하지 못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 Spitfire 2018.10.18 1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에 답글을 어떻게 다는지 몰라서 이제서야 답을 합니다. 제 글을 다시 보니 일반적인 사례인 것처럼 쓴거 같은데, 결코 일반적인 사례는 아님을 밝힙니다.

      사기를 치는건 당연히 쉽지 않지요. 쉬웠다면 너도나도 했을테니까요. 하지만 무슨 일이든 허점은 존재하는 것이고, 지금 시점에 보험이나 사고처리에 대해 비교적 완벽한 체계가 잡힌 것은 그간 수많은 시행착오와 헛점을 보완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의 세법이 삼성의 회피기동을 경험하면서 완성되었듯이요~ㅎㅎ

      제가 저 이야기를 들은게 10년이 넘은 이야기이고 실제 발생한 건 더 오래된 일인데, 그 당시의 시스템이 현재와 같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험업계나 해운업계에서 저런 사기가 통용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몇몇 없을거구요.

      선박은 차입금으로 구매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용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선은 보통 1년이상 장기로 하다보니,현 시점에서 용선료보다 운임이 훨씬 싸다면 침몰시키고 보험처리하는게 손실을 회피하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자도 있을 겁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영세한 규모로 용선 뛰는 이들 중 일부는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게 이 이야기를 해주신 분은 선박관리를 하시던 분인데, 관리하던 배가 두번이나 같은 해역에서 충돌사고를 겪더니 세번째에는 기어이 침몰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선박사고의 여러 에피소드들도 두루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혹시 보험업계에 계시면서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신다면 좀 우려스럽습니다. 보험이란게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하는 건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면 누가 보험에 가입할까요?

  10. 119.75 2018.08.18 1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머투어린이 다이애나와 결혼을 하긴 하나보네요..번역판밖에 못봐서 슬픕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지나가다 2018.08.22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과 스핏파이어님의 댓을에 일부 오류가 있어 관련 업계 종사자 입장에서 설명 드립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해상보험에서 사기를 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해상보험은 선박의 손해를 보상하는 선박보험과 적하의 손해를 보상하는 적하보험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는 가입대상자가 선사(선주)와 화물소유자로 나누어 집니다.
      스핏파이어님은 사기치기가 쉽다고 들으신 듯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로 쉽지 않습니다.
      1. 보험은 기본적으로 손해입은만큼만 보상하는 '실손보상'원칙에 따라 작동됩니다. 그래서, 보험사에서 인수 심사 시 해당 선박의 가액 증빙을 까다롭게 요구합니다. 이번 사기 건의 경우 인수심사의 맹점을 이용해서(자세히 설명하면 좀 문제가 되서 부득이 생략합니다) 실제 구입가의 약 3배 정도로 가입했는데, 업계 담당자들도 어이없고 실무에서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2. 고의적으로 먼 바다에서 선박을 침몰시키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선박이 침몰한다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전문 조사자(surveyor)들이 사고경위 등 제반 사항을 조사해서 보험사에게 보고(report)를 하고 이를 면밀히 검토한 후 보험금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자살하고자 하는 경우가 아닌 한 선박이 침몰하면 선원 자신도 무사히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군대와 마찬가지로 당직자들이 있기 때문에 고의 침몰은 쉽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모든 선원들이 작당을 한다고 해도 침몰 시 그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증언이 어긋나거나 의심되는 정황이 반드시 나오게 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기 건이 그렇듯이 기대만큼 이익을 보지 못한 누군가는 반드시 보험사나 경찰에게 일러바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참고로, 나시카님이 주로 연재하시는 19세기 20세기에는 가능할 지 몰라도 요즘처럼 통신이 발달하고 위성에서 실시간으로 선박을 추적하는 환경 하에서는 어렵습니다. 예를들어 선박들은 의무적으로 침몰사고 시 자동으로 발사되서 구조신호를 발신하는 장치를 탑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신호가 발신되면 인접 국가 및 선박이 소속된 국가의 관계 당국에 위성신호가 자동으로 날아갑니다.
      3. 아울러, 해운업은 전형적인 금융을 기반으로하는 차입금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며, 대부분 선주들은 전체 선박가격의 약 10%만 부담하고 나머지 금액은 10~20년의 상환기간을 갖고 대출을 일으켜서 사업을 통한 운임수입으로 이를 갚아나가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왠만한 가치를 가진 선박을 선주가 자기 비용으로 매입하지 않는 한 보험금을 받아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안됩니다. 이번 사기 건의 경우 매입가격이 16억원 정도밖에 안되고 이를 자기 돈으로 부담한 뒤 보험가입은 약 3배로 부풀려서 했기에 수익성(?)이 높은 사기이지만 현재의 보험 시스템으로는 성사되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어쩌면 어려운데 성공할 뻔 했기에 뉴스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두서없지만 잘못 알고계시는 부분들을 한번 정리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nasica 2018.08.23 1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나가다// 자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험금 타내기가..' 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11. 2018.08.23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투린이 생각하는 다이애나가 3부 서프라이즈에서 머투린을 쥐었다 놨다하다가 총까지 맞게하고 결국은 차버린 다이애나 빌러스인가요?

    영어가 짧아서 원서는 읽다가 처박아둬서 3부이후는 내용을 하나도 모릅니다..

2018.08.09 06:30

** 이번 목요일은 'PX병과 취사병을 없앤다'라는 군 개혁안을 기념하여 올리는 재탕글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군 생활을 했던 미군 부대에는 식당(mess hall)이 2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군 애들 중 취사가 주특기인 애들이 요리도 하고 식당 관리도 했습니다만, 다른 하나에서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미국인 민간 군속 아저씨의 관리 하에 그런 주방일을 했습니다.  즉, 식당이 거의 민영화되어 있더라고요. 


카투사에 가게 되면 미군에서만 사용하는 희한한 용어들을 몇개 배우게 되는데, 그 중 kitchen pol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주방을 감시하는 경찰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방에서 (요리 외에) 하는 청소 및 설거지 같은 잡역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Police up 이라는 단어는 동사로서 뭔가를 청소하다 라는 뜻이 있거든요.  미군의 역사를 보면 예전에는 뭔가 가벼운 죄를 저지른 병사들에게 처벌로 이런 kitchen police를 시켰습니다.  감자껍질 깎기나 바닥 청소 뭐 그런 것들이지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는데, 2017년 6월 25일 일요일에 강경화 장관이 미 제2사단을 찾아 성명을 발표하며, '내가 이렇게 주말에 방문하는 바람에 미군 병사들이 니들 말로 'police up'을 해야 하는 등 내가 민폐를 끼쳤을 거다, 그래도 한미 연합의 중요성은...'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한국 외교부 장관이 'police up'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고 미군들도 웃었을 것 같습니다.  외교에서 해당 외국어를 잘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원래 미군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약간 천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한국군에서는 취사병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미군은 취사특기병을 뭐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벌로 일반 전투병을 주방 허드렛일을 시키기도 하는 것이고, 또 카투사 초창기에는 카투사를 주로 취사병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영화 진주만을 보더라도 흑인인 쿠바 구딩 주니어는 전함에서 멸시받는 주방일을 하면서, 백인 병사들의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권투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한국 전쟁 때만 하더라도 미군은 백인 부대 속에 흑인을 따로 집어 넣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아예 유색 인종에게는 전투 임무를 주지 않았습니다.  열등한 유색 인종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또 흑인들에게 무장 훈련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속셈도 있었지요.




(Beetle Bailey라고, 미군 신문인 Stars & Stripes에 연재되던 군대 코미디 만화입니다.  지금도 연재되지는 않겠지요.  보시다시피 베일리 이병은 주로 주방에서 감자 껍질 벗기는 벌을 자주 받습니다.)




이렇게 천대 받는 취사병은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가진 병과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불과 제1차 세계대전 초창기만 하더라도 취사병이라는 병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군대에서의 모든 식사는 그냥 중대 단위로 알아서들 해먹는 것이 상식이었고, 군 지휘부에서는 오직 식재료와 취사도구의 배급만 책임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독립 전쟁 때나 나폴레옹 전쟁 때나,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군 병력에 대한 식량 보급은 항상 다음과 같이 쇠고기 몇 파운드, 밀가루 몇 파운드 등 재료에 대해서만 기록될 뿐, 점심은 빵과 로스트 비프, 저녁은 파스타와 치킨 등 요리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 중에 펜실바니아 의회에서 병력을 동원하면서 그 병력들에게 지급할 식량 목록을 규정한 내용입니다.  원래 당시에도 미국이 유럽보다 식량 형편이 좋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만, 현대적 기준으로 보기에도 무척 푸짐해 보입니다.


1인당 정량


. 하루 쇠고기 1파운드, 또는 돼지고기 3/4파운드, 또는 염장 생선 1파운드

. 하루 빵 1파운드 또는 밀가루 1파운드

. 일주일에 완두 또는 콩 3파인트, 또는 그에 상응하는 채소 1부셸 당 1달러

. 하루 우유 1파인트, 또는 그에 상응하는 1/72 달러

. 일주일에 쌀 1/2파인트, 또는 옥수수 가루 1파인트,

. 하루 스프루스 비어 (spruce beer, 가문비나무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 술) 1 쿼트 또는 사과주 1 쿼트


(다른 주의 메뉴를 보면 몰트 비어가 들어가기도 하고 버터가 1주일에 6온스씩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진은 영국 해군의 요일별 배식 품목입니다.  맥주를 매일 4.5리터나 !!)





이런 배급과 요리 등은 중대 혹은 대대 단위로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병사들이 순번을 정해 요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순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귀찮은 의무'였으므로, 나중에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취사병이라는 병과가 생겼을 때 병사들이 취사병을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는 뻔합니다.  아마도 그런 역사 때문에 미군을 포함한 유럽 문화권의 군대에서는 취사병을 불명예스러운 병과로 취급했나 봅니다.


이렇게 배급된 날재료로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  그야 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좋은 오븐이나 화력 좋은 가스 레인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들은 주로 남비에 끓여 먹는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븐 없이 병영에서 빵을 구워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대대에서 일괄적으로 구워서 배급되는 빵이 없다면 이들은 배급된 밀가루를 이용해 밀가루 죽을 쑤어 먹거나 요령껏 마련한 돌판이나 철판에서 얇은 전병을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적이지만 아마추어적인 배식 제도는 로마 군단 시절부터 무려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런 배식 제도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도전이란 바로 기나긴 참호전이었습니다.  1914년 마른 (Marne) 강 전투 이후 기관총과 대포를 피해 프랑스군과 독일군 양측이 깊고 체계적인 참호를 파고 참호전에 들어가게 되자, 당장 병사들에게 배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양측 수뇌부 모두에게 있어, 전투란 보병의 전열이 전진하고 기병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돌격하는 그런 장엄한 것이었지, 이렇게 수많은 병사들이 물구덩이나 다름 없는 참호 속에서 두더쥐처럼 웅크리고 수주 동안을 버티는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후방으로 물러나 여유있게 넓은 공간에서 장작을 패고 물을 끓여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좁은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곳에서 밥까지 해먹으라는 것은 무리지요.)




고대 로마군 시절부터 병사들을 따라다녔던 지겨운 건빵(biscuit, hardtack)은 참호전에서도 유용한 지겨운 식량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때 즈음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첫선을 보인 통조림이 보편적으로 유통되던 시절이라 참호 속에서 차가운 통조림을 뜯어먹도록 하는 방안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통조림을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 공급하는 것도 어려웠고, 또 먹을 것이 곧 사기로 이어지는 암울한 전장에서 맛대가리 없는 차가운 통조림만으로 하루 세끼를 때우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대표적 군용 식량으로 알려진 Maconochie(머카너키)는 묽은 고기 수프에 감자, 순무와 당근이 둥둥 떠있는 통조림 스튜였는데,  이걸 먹어본 병사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따뜻할 때 먹으면  Maconochie도 먹을만 하지만, 차가운 채로 먹으면 man-killer다."




(숙명의 머카너키 깡통입니다.)




결국 양측 수뇌부는 일반 전투병들이 순번제로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조리하는 관례를 버리고, 중대 혹은 대대 단위로 조리만 담당하는 병사들을 따로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적의 포탄이 날아오지 않는 후방에서 스튜 같은 음식을 만들어 전방 참호 속으로 보내주기로 한 것입니다.  가령 영국군 같은 경우 대대마다 엄청난 크기의 솥 2개씩이 지급되었고, 여기서 수백명 분량의 음식이 끓여져 전방 참호로 보내졌습니다. 


문제는 솥 2개에서 모든 음식을 하다보니 홍차에서도 말고기 맛이 난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데, 이는 춥고 축축한 벨기에의 참호 속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포탄이 닿지 않는 저 먼 후방에서 끓여서 양동이나 심지어 석유통 속에 담아서 가져오는 음식은 차갑게 식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 전선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Remarque)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없다' 초반부에 보면, 주인공 파울이 소속된 중대 취사병은 그렇지 않지만 옆 중대의 취사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참호 가까운 곳에까지 접근하여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병사들이 더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도 하지요.



(제가 읽은 어떤 소설에서도 이 '서부전선 이상없다'처럼 군대밥과 취사병에 대해 생생하고도 감칠맛 나는 묘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식은 음식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참호 속에 작은 난로를 배급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런 난로는 공식 배급 물품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병사들 개개인이 몇명씩 돈을 모아 구매하여 참호 속에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난로를 사가지고 참호에 들어간 병사들은 왜 군 당국이 중대 단위로 난로를 배급하지 않았는지 곧 깨닫게 됩니다.  연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입니다. 


유럽 서부 전선이 사막도 아닌데 장작으로 쓸 나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숲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연료를 얻는 것이 그렇게까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작은 난로에서 물을 끓일 정도로 충분한 화력을 내기 위해서는 잘게 쪼개진, 잘 마른 장작이 필요한데, 이건 수중에 작은 손도끼가 있고 옆에 숲이 있다고 해서 당장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충분히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연료로 썼다가는 연기가 심하게 나서 독일군의 포격 목표가 되기 딱 좋았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의 근위대로 활약했던 '척탄병 쿠아녜 (Coignet)'의 회고록을 보면,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후 장작을 구하러 산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밤을 새서 걸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또 1807년 폴란드에서 장작을 못 구해 적이 버리고 간 대포의 포가를 끌고 와서 불을 피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체코나 폴란드에 숲이 없어서 장작을 못 구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마 도끼도 없는 상황에서는, 주변이 숲으로 둘러 쌓인 곳이라고 해도 당장 불을 피울 장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쿠웨이트 현지라고 해서 땅에 구멍을 파면 당장 자동차에 넣은 가솔린이 펑펑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군 당국도 병사들의 고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고체 알콜 연료와 빈 깡통 형식으로 구성된 간단한 휴대용 풍로를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미의 조리기 (Tommy's Cooker)라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는 연기가 나지 않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콜라 1캔 정도의 물을 끓이는데 2시간이 걸릴 정도로 비효율적이라서 병사들로부터 욕을 먹기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겠지요.





(토미 쿠커로 참호에서 요란한 연기를 내지 않고 안전하게 차를 끓이는 영국군 병사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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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K2017 2018.08.09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차까지 끓여 먹는 여유라.
    좀 부럽네요. ^ㅇ^*

  2. 헤비웨폰가이 2018.08.09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카너키 깡통 안에 뭐가 들어있나 구글링해봤더니 그냥 고기 스튜네요?

  3. 유애경 2018.08.09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글 맥주와 전쟁에서 본 전투기 연료탱크에 담아 나르는 맥주나 이번글의 석유통에 담아 나르는 음식이나,당시엔 참 절박한 상황이었을텐데도 문장으로만 읽고 상상을 하니 죄송한 얘기지만 웃음이...

    • 최홍락 2018.08.09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파일럿들이 동료 파일럿이
      격추되어 사망할 경우 그 동료 비행기가 사용하던 드롭탱크(기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외부에 장착된 연료 통)에 냄비요리를 해먹으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걸 도무라이 나베라고 했습니다. 일본어로 とむらい(弔い)가 애도의 뜻이 있지요. 전쟁사에서 가장 많이 통하는 격언 중 하나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인데 확실히 먹는것도 그런거 같습니다.

  4. 헝글 2018.08.0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도 군대가자

    • 유애경 2018.08.10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 내용은 여자도 군대가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본문 잘 읽으셨나요?

  5. 이동뎅 2018.08.09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포스트 잘 읽고 있습니다.
    음식 이야기 좀 더 써주시면..^^
    유래없이 무더운 요즘 건강하세요.

  6. reinhardt100 2018.08.09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외로 취사병과가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중세 혹은 근대의 군대에는 다수의 비전투요원들이 항상 따라다녔다는 것 때문입니다. 흔히, 동양에서는 병농일치제가 기본적으로 작동한 시대가 길었기 때문에 비전투요원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개념 자체가 그리 익숙치 않을 수도 있지만 서양에서는 달랐습니다. 로마제국 아니 공화국 후반기부터 이미 제한적 지원병제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동방제국에서의 테마제도 같은 예외가 있지만 이조차도 몇백년만에 프로니아제도로 바뀌는 등 상당기간 내내 용병이 주력인 시대가 됩니다. 흔히, 절대왕정의 상징이라단 상비군을 국민개병제로 운용한 국가가 18세기에 봐도 프로이센을 제외하고 별로 많지 않았고, 프로이센조차도 7년 전쟁 당시에는 병력의 7할을 용병으로 운용해야 했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당장 굶어죽기 싶상이었으니까요.

    서양 군대에서 비전투요원들의 구성은 다양했죠. 장교단 혹은 부사관단의 하인이나 그 가족들부터 해서 비전투용품을 공급해주는 행상들과 그 수하 하인들, 심지어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여성들까지 꽤나 많았습니다. 이유는? 군대가 뿌리는 돈이 꽤나 짭짤했으니까요. 일례로 백년전쟁 내내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경제는 '흑사병'이라는 치명타를 입었는데도 오히려 꽤나 경제성장율 자체는 건실했는데 이유가 전국토가 전장화되었다고 하지만 잉글랜드군의 약탈행렬과 이를 추격하는 프랑스군의 이동이 워낙 빈발해서 오히려 유통망이 급성장하면서 흑사병의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좀 각설이 길었는데, 전투식량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시점은 나폴레옹전쟁시기부터입니다. 니콜라 아페르가 개발한 병조림이 등장하면서 당장은 대량사용이 어려웠지만 꾸준히 개량되었으니까요. 의외로 간과되는 사실입니다만, 러일전쟁이 전투식량의 페러다임을 확 바꾼 전쟁이긴 합니다. 러시아군이나 일본군 모두 당대로써는 유래가 없는 긴 보급거리를 두고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인데 당시 양측 관전무관단 모두 전투식량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서 향후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보고 당시에는 무시되었지만 막상 1차 세계대전 터지니까 잊어버렸던 보고서 꺼내서 나시카님께서 말씀하신 마카너키 통조림 같은 것들 만드느라고 바빴죠.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빈약한 공업력 때문에 전투용품과 달리 식량 같은 것은 북만주에서 자체 해결하는 방식이었지만 일본군의 경우에는 야마토니 쇠고기 통조림 같은 통조림을 러시아군보다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통조림이 전투식량으로써 대거 활용되었는데, 특히 부자군대인 미군은 참전 후 참호에 비가 차니까 아예 먹고 남은 통조림을 바닥에 깔아서 비가 새도 발이 안 젖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썼죠. 의외로 공업대국이던 독일은 통조림을 많이 활용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통조림 만들 설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통조림에 들어갈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괜히 1916년 당시 순무의 계절이 나온게 아닐 정도로 식량사정이 정말 다급했으니까요.

  7. 하모니 2018.08.10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량을 현지조달 하지 않고 전부 보급에 의지하는 작전능력을 최초로 갖춘게 2차대전의 미군이었음

  8. 소화낭자 2018.08.10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 분이, 이렇듯 훌륭한 글솜씨와 탁월한 식견, 박학다식 하기까지,

    존경하고 있습니다.

  9. 사모작(思慕鵲) 2018.08.10 1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5년도에 제가 중학생때 보이스카웃 캠핑을 갔을때 고체연료로 밥을 해 먹던 기억이 납니다.
    밥이 꽤 잘 되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2차 대전 때 보다는 화력이 많이 좋아졌었나 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10. police 2018.08.10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olish up! 이지요, 갑자기 왠 경찰

  11. 501 2018.08.10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0년 11월 카투사 평시인가 기준
    CP L@@@에 키투사 취사병 TO가 있었고
    그게 마지막 COOK입니다

    제가 듣기론 87년 이후론 배치는 없었구요

    그나저나
    Police call 을 가서
    휴지 줍던 기억은 나네요

  12. 2/28일 입대 2018.08.11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먹는 얘기를 읽어서 문득 드는 생각인데, 사치품이었던 담배가 어떤 경로로 일반 사병들한테까지 보급이 되게 된 건가요?

    콰니히그라쯔 전투에서 몰트케가 신선한 담배를 골라서 피는 것을 보고 비스마르크가 안심했다는 야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신선하지 않은' 담배가 있을 정도라면 이미 그때정도 되면 담배의 품질이나 종류가 다양했을까요? 마지막 사진에 병사가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보니 급 궁금해지네요ㅎㅎ
    (그나저나 갑자기 담배가 다시 땡기는 무서운 느낌이....)

  13. 유애경 2018.08.14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책을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나, 읽은적이 있습니다. 물론 열일곱살짜리 교교생이 이해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는데,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구절(장면?)이 두개가 있는데요.

    주인공이 방금전까지도 친하게 얘기를 나누던 고향친구?전우?가 어디선가 날아온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죽었는데 본인은 그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어 주위를 돌아보면서 -하늘이며 숲이며...-묘사한 장면,
    내 친구가 죽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그어디를 둘러봐도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사람이 하나 죽었을뿐이다 .

    또하나는,고향에서 같이 입대했다가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 돌아간 상황에서 죽은 친구의 어머니한테 '내아들은 죽었는데 왜 너희들은 살아있지?라는 자조적인 질문(질책)을 받는 장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이었던 그들을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진입대 하게 선동하던 교사가 그자신도 징집당해 결국은 제자한테 갈굼 당하던...여기서는 솔직히 꼬시다라는 느낌 이었습니다.

    어찌됐던 전쟁이란건 이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줬으면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