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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육군 1주일치 식단

by nasica 2020. 8. 27.

인터넷질 하다가 구글에서 찾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육군 배식에 대한 포스터를 찾았습니다.  그거 번역했어요.  물론 종이 위에 인쇄된 것과 실제 병사들 식탁에 올랐던 것 사이에는 간격이 크겠지만... 저희 집보다 잘 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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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병사들이 육군 입대 이후 첫달 동안 평균 7파운드씩 체중이 늘었을까?"

엉클 샘(미 정부를 의인화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잘 먹는 군대의 모든 병사들에게 하루에 고기 1파운드를 처방합니다.

모든 좋은 엄마의 첫번째 관심은 아들이 충분히 먹도록 하는 것입니다.  엉클 샘의 보급부대는 오늘날 우리 군대의 모든 병사들에게 엄마처럼 세심히 배려합니다.  병사들의 식사는 영양이 풍부하고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병사들은 입대한 첫달 동안 체중이 평균 7파운드 늘어납니다.  어떤 병사들은 20파운드 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건 물렁살(soft fat)이 찌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군은 고기를 먹는 활동적인 군대입니다.  군장병들은 근육을 키워주는 고기를 매일 1파운드씩 먹습니다.  

나날이 증강되는 우리 육군을 먹이기 위해 정부가 새로 공장을 짓거나 재정 부담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이미 우리나라의 육가공 산업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지금 이 순간, Armour & Company (아머 앤 컴퍼니, 회사 이름) 및 기타 육가공 업체들은 육류와 닭고기, 유제품을 육군에게만 해도 매일 수백만 파운드씩 공급하고 잇습니다. 아머 사는 렌드-리스(lend-lease,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연합군 군수지원 정책) 프로그램에 따라 우리 연합국에게도 매일 수톤씩의 식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향에 있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도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민간 가정을 위해서는 언제나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군 장병들이 먼저니까요.  우리는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병사 개개인이 받는 배식량을 보십시요"

여기 실제 육군 병사를 위한 주간 메뉴가 있습니다.  제6 군단 병사들이 9월 6일 주간에 실제로 받은 식단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먹는 것과 비교할 때 어떤가요 ?

 

일요일 
아침 : 오렌지, 옥수수 가루 죽(corn meal mush), 우유, 돼지고기 소시지, 감자튀김, 토스트와 버터, 커피
점심 : 세이지 허브로 구운 오리고기, 드레싱과 지블릿 소스(giblet sauce, 닭이나 오리 내장으로 만든 육즙 소스), 고구마 맛탕(candied sweet potatoes, 진짜 고구마 맛탕인듯?), 완두콩, 빵과 버터, 채소 샐러드, 초컬릿 파이, 커피
저녁 : 볼로냐 소시지, 간 소시지(liver sausage), 치즈, 삶은 강낭콩, 빵과 버터, 셀러리, 딜 피클, 복숭아, 홍차

 

(서양 고구마 맛탕 candied sweet potatoes)

 



월요일 
아침 : 조리한 말린 자두, 여러 종류의 시리얼, 우유, 토마토 오믈렛, 튀긴 옥수수죽, 토스트-버터, 커피
점심 : 콩 수프, 삶은 콘 비프, 삶은 감자-양배추-당근-무, 빵과 버터, 양파, 커스터드 빵 푸딩(bread custard), 레모네이드
저녁 : 로스트 비프, 으깬 삶은 감자, 시금치, 빵과 버터, 날 당근, 애플 코블러(apple cobbler, 사과와 설탕과 귀리로 만든 디저트), 코코아

 

 

(애플 코블러, 굳이 번역하면 귀리-설탕-사과 범벅 ?)

 



화요일 
아침 : 포도, 압착 귀리, 우유, (가려서 안 보임), 잼, 커피
점심 : 로스트 비프, 해시 브라운, 줄기콩 버터 볶음, 빵과 버터, 파인애플-양배추 샐러드, 아이스크림, 홍차
저녁 : 햄버거 스테이크, 양파튀김, 프렌치 구운 감자, 케첩-피클, 빵과 버터, 구운 사과, 잼, 커피

수요일 
아침 : 자몽, 여러 종류의 시리얼, 우유, 베이컨과 스크램블드 에그, 토스트와 버터, 커피
점심 : 쌀을 넣은 치킨 수프, 치킨 아 라 킹(chicken a la king, 크림 소스를 넣은 닭 스튜), 으깬 삶은 감자, 빵과 버터, 양상추와 토마토 샐러드, 프렌치 드레싱, 애플 파이, 레모네이드
저녁 : 삶은 프랑크 소시지, 사우어크라우트, 삶은 감자, 빵과 버터, 양파, 살구 코블러(apricot cobbler), 홍차

목요일 
아침 : 토마토 주스, 압착 귀리, 우유, 달걀 프라이, 감자 깍뚝썰기, 토스트-버터, 커피
점심 : 채소 수프, 토마토 소스를 얹은 비프 로프, 구운 감자, 시금치, 빵과 버터, 양파-사탕무 샐러드, 초컬릿 케이크(Devil's Food cake), 홍차
저녁 : 양고기 팟 파이(lamb pot pie, 크림 소스 스튜 위에 파이 껍질 얹은 요리), 구운 호박, 옥수수 버터구이, 빵과 버터, 건포도-당근 샐러드, 마요네즈, 사과 소스, 코코아

 

 

(이건 Lamb pot pie가 아니라 chicken pot pie 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복무할 때도 주식으로 자주 나오는 음식이었는데, 먹을 만 합니다.  냉동 식품으로도 많이 나오고요.)

 



금요일 
아침 : 사과, 여러 종류의 시리얼, 우유, 베이컨 오믈렛, 얇게 썰어 튀긴 감자(cottage fried potatoes), 토스트-버터, 커피
점심 : 박하 젤리를 얹은 양고기 구이, 으깬 삶은 감자, 콜리플라워, 빵과 버터, 양상추 샐러드, 프렌치 드레싱, 아이스크림, 커피
저녁 : 조개 크림 수프(clam chowder), 크림 소스를 얹은 연어 구이, 완두콩, 빵과 버터, 잼, 토마토, 컵케이크, 홍차

토요일 
아침 : 자몽 주스, 옥수수 가루 죽, 우유, 돼지고기 소시지, 프렌치 토스트, 빵과 버터, 커피
점심 : 완두콩 수프(split pea soup), 고기국물을 얹은 빵가루 입힌 포크찹(breaded pork chops), 감자 그라탕, 줄기콩, 빵과 버터, 토마토, 버터스캇치 파이(butterscotch pie, 버터와 설탕으로 만든 소를 넣은 파이), 레모네이드
저녁 : 소 간 튀김, 양파 튀김, 치즈 얹어 구운 감자, 버터로 볶은 당근, 빵과 버터, 컴비네이션 샐러드, 쌀 커스터드 푸딩, 커피

 

 

(요즘도 수퍼에서 '버터스캇치 캔디'라는 것을 파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 맛이 나는 파이 아닐까 합니다.)

   

 

 

댓글23

  • reinhardt100 2020.08.27 10:03

    미국인들이야 워낙 저 당시에 전세계 기준으로 가장 잘 먹는 국가에 속했죠. 그나마 비슷한 국가가 2차 세계대전 이전 프랑스 정도?

    러일전쟁 이전 일본에서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을 간 가네코 겐타로라고 나중에 법무대신까지 승진한 일본 내 보통법의 중시조라고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방학 때는 미국 동부에 있는 조선소를 다니면서 알바를 하여 학비를 벌었는데 이 사람이 나중에 미국 유학을 회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죠. '아침에 5센트만 있으면 신선한 야채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 시리얼, 우유, 커피, 과일을 구내 식당이나 조선소 밖의 식당에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같이 근무하던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은 이거 때문에라도 미국에 이민 왔다.'라고요. 당시 유럽에서 저 정도 식단은 중산층도 큰 마음 먹고 먹어야 할 수준이었는데 미국에서는 블루칼라도 기본으로 알 정도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의 비전투손실 중 영양실조로 인한 경우는 과달카날 전투 이후로는 거의 없었는데 미군 내 자체 연구 결과로는 제공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즉, 항공 공수작전에 의한 보급만 되면 비전투손실을 급격히 줄일 수 있다는 건데 실제로 이후 미군은 항공 공수작전에 의한 보급으로 적군을 소모시키는데 성공합니다. 당장, 베트남전의 케산이 대표적이죠. 같은 걸 시도했던 프랑스군이 디엔비엔푸에서 주력이 붕괴되는 바람에 전쟁 자체를 패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미군의 저런 식단을 뒷받침해준 거대한 농업 및 제조업 생산력은 1930년대 대공황의 유휴 설비가 총가동되어 군비로 집중되면서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 저 때 민간인들은 일종의 배급제를 통해 육류소비가 제한되었으니까요. 미국 민간인들의 희생(?)으로 마련한 식량이 가장 많이 보급된 국가가 소련인데 약 430만톤이 미국에서 지원되었죠.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소련이 필요로 하는 전체 식량의 최소 1/4,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비타민 계열과 소금, 단백질 계열이 꽤 포함되어 적어도 괴혈병이나 아사사태가 벌어지는 것, 공세가 끊기는 것을 막아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미국의 식량 지원이 없었다면 소련은 당장 괴혈병이나 영양결핍 때문에라도 끝없이 소모되어 A-A선까지 후퇴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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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웅진 2020.08.27 12:05

      저기 식단에도 생선이라곤 클렘차우더와 연어 정도인 걸 보면, 역시나 고기는 배급제였지만 생선은 그런 거 없던 민간 상황이 생각나네요.

      뭐, 에르빈 로멜 장군이 카제린에서 대승을 거두고(그래서 FDR께서 개빡치셔서 "우리 애♫♫♬들, 싸울 줄은 아는 거요?!"라고 각료들을 갈구셨다던...), 그러고도 "작전상 후퇴"를 감행하신 이유가 "어느 미군 병사의 소지품 중에 섞여있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초코케이크" 때문이었으니...

      가네코 켄타로.... 포츠머스 조약 체결 때 FDR의 친일파 사촌형에게서 참 잘 대접받았다고 <임페리얼 크루즈>에 나오던....

    • reinhardt100 2020.08.27 13:09

      미국이야 알라스카, 대서양 연안 같이 세계적인 어장군을 몇개씩이나 근해에 가지고 있다 보니까 생선은 충분했죠.

      생선 하니까 생각 나는데 원래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섬 연안의 어업권은 예상외지만 프랑스가 20세기 초반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7년 전쟁에서 패하면서 캐나다를 영국에 할양했지만 대신 어업권만은 끝까지 가져갔는데 이게 1904년 영프협상 때 캐나다로 넘어가면서 미국과 캐나다간의 어업협정을 추가로 체결, 미국 어선단에게 개방됩니다. 이 덕분에라도 미국은 생선은 넘쳐나게 됩니다.

    • ㅇㅇ 2020.09.02 19:32

      430만톤이면 현재 북한 1년 작물생산량에도 못미치는 수치인데(농업생산량이 아니라 작물생산량) 인구 2억가까이 되던 국가의 전황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 reinhardt100 2020.09.05 01:13

      당시 소련 경작지 중 절반 이상이 모스크바 이서 지역에 있었는데 반면 인구 절반 이상이 모스크바 이동에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비타민이나 소금은 거진 2/3 이상을 점령된 돈바츠나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같은 지역에서 생산했다는 겁니다.

      소금이 중요한 건 당장 사람의 염분보충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공업용 소금 때문입니다. 화학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료 중 하나가 바로 소금인데 이건 천일염 따위의 해수로부터 생산되는 소금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닙니다. 당장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이 지금은 리튬으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소금광산으로 유명했던 사막입니다. 이게 없으면 전시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화학산업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당시만 해도 소련의 화학산업 기술력은 미국, 독일, 일본 같은 화학대국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죠. 이 판국에 소금마저 없으면 당장 군수물자 생산은 골로 가는 거죠. 가뜩이나 독일군을 상대하는데 초반에는 1:20이라는 말도 안 되는 교환비를 내면서도 '양으로 질을 상대한다'는 전쟁수행을 하는 판에 양적 우위를 담보해줄 소금이 없다면 결과야 말 안 해도 나올 겁니다.

    • 아즈라엘 2020.09.23 00:06

      대서양 어장하니까 대서양 대구가 생각나네요
      덩치가 엄청나게 크죠
      그런게 무진장 잡히는 어장이니 ㄷㄷㄷ

  • Franken 2020.08.27 11:56

    주인장 말씀대로 현지 사정 및 보급, 취사병 솜씨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해야 겠지만... 현재 기준에서 봐도 좋은 메뉴군요.
    답글

    • 장웅진 2020.08.27 12:09

      헌데... 보급 정량 관련 표 같은 것만 보면
      태평양 전쟁 때의 일본군 그리고 현재의 북한군이 우리 국군보다 급양 상태가 더 좋다죠.

    • reinhardt100 2020.08.27 13:01

      일본군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급 수준은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일단, 무엇보다도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근대화의 선봉이 바로 군대였거든요. 흔히 말하는 경양식, 카레라이스, 단팥빵, 양갱, 그 외 다른 각종 서양식 조리기구 대다수가 일본군에서 개량을 거쳐 민간에 퍼진 것들이었으니까요.

      또, 비록 못먹고 못살던 시절(?)이었지만 장병들 식단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육해군성이나 대장성, 내무성 등에서 원래 꽤나 신경을 썼습니다. 군 장병은 '천황폐하의 적자'였으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고요.

    • 가람이 2020.08.27 20:16

      일본군의 보급수준은 병영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인데, 야전기준으로는 망했죠.
      병영에서 밥먹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병영을 나가서 야전에서 밥먹을 때 망한 거죠.

      야전취사차가 없이 각자 밥해먹으려니 비효율적인 약탈에 의존하게 되었죠
      독일제라면 환장하면서 독일육군의 야전취사차는 왜 도입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죠.

    • reinhardt100 2020.08.28 09:07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우선은 비싸다는 겁니다. 독일군의 야전취사차를 일본에서도 도입하려고 1920년대 초반에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야마나시 군축, 우가치 군축 등 두 차례의 군축에 더해 예산 삭감을 당하는 바람에 도저히 이걸 살 돈이 없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불을 지른게 1차 세계대전이나 시베리아 출병 당시 일본군이 중고 무기를 제정 러시아나 백군에 팔아버리면서 그만큼 국가 예산으로 신형으로 전투장비를 교체했는데 그 비용만 당시 금액으로 무려 3억엔이나 쏟아부었거든요. 7억엔의 출병 경비 중 절반 가까이를 써서 육군이 대장성에 예산 신청하기에 무리가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 더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주된 작전지역이었던 만주, 화북, 몽강, 동부 시베리아, 연해주 모두가 밀 같은 군용 식량이 작전 지역에서 주로 제배되었기 때문에 굳이 야전취사차로 돌아다니면서 배식하느니 차라리 각자 반합주고 알아서 조달하라고 하는게 더 낫겠다고 여긴 것도 있습니다. 이게 관동군이나 지나총군에서는 가능했는데 남방총군의 주된 작전 지역인 동남아나 남양군도 같은데서는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 아즈라엘 2020.09.07 23:46

      일본군의 전통을 계승(?)한 국군도 야전취사에 대해서는홀대하는 경향이 짙죠
      야전취사의 방법이나 메뉴의 문제가 큽니다. 환경이 제약되는 야전에서 요리하거나 먹기 불편한 주둔식을 그대로 야전식으로 만들려다 보니 조리병도 환장하고 병사들도 환장하고

  • 장웅진 2020.08.27 12:00

    우째 사병식당 메뉴판에는 "수육통조림 김치찌개"라고 써있었는데, 실제로는 "꽁치통조림 김치찌개"가 나오던 상황이 생각나면서...
    오리고기나 프랑크푸르트소시지 대신에 스팸이 나온다든가, 삶은 콘비프와 삶은 야채 대신에 콘비프 스튜가 나온다든가....

    "쇠고기 없는 쌀밥"
    "닭고기 없는 쌀밥"
    "새우 없는 쌀밥"
    "쌀벌레를 고기라 생각하고 드십쇼!" _ 퍼시픽에서.... 도조 보급을 받은 과달카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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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nhardt100 2020.08.27 13:06

      과달카날이야 전반부에는 제해권 자체가 일본군에게 넘어간 상황이라 대규모 수송선이 접안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고 무엇보다도 사보 섬 해전 때문에 수송함대가 원래 양륙하기로 되어 있던 보급품의 1/3 정도 내리고 바로 탈출해버려서 상황이 더욱 심각했죠.

      미군 역사상 가장 보급이 어려웠던 전투가 필리핀 함락 당시 바탄이나 코레히도르 전투, 그리고 과달카날이었는데 과달카날이 꽤나 중요한 게 미군이 자랑하는 보급역량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에서 전투를 펼친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미군은 이 때를 마지막으로 제공권을 빼앗긴 적이 없었으니까요.

  • 이때도 미군은 잘 먹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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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spe 2020.08.28 07:22

    2차대전 미군만도 못한 식생활을 하는 중이군요..ㅠ 반찬이라곤 김에 김치에 계란프라이 명란젓 한조각 먹고 있는데...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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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ri-j 2020.08.28 19:19

    이렇게 좋은 메뉴에 배부르게 먹여주건만, 국가와 시대를 불문하고 늘 나오는 한마디는 "짬밥 x같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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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자웃어 2020.08.30 11:40

    1805년당시의 오스트리아군 규모는 어느정도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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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수 2020.09.03 12:11

    2차대전 일본군의 경우 병영식은 매우 우수했으나 전투식은 너무 형편 없었고, 조리를 병사들이 직접하는 근대적 방식으로 운용하여 민간 약탈과 범죄가 많았죠.. 사실 2차대전때 전투식을 완전 자가조달한 군대는 미군 뿐이긴 했지만.. 일본군은 너무 심했음..
    답글

    • 아즈라엘 2020.09.23 00:00

      국군 창군부터 한국전 중반까지 급양 형태를 보면 육본에서는 쌀만 농협에서 구매해서 부대에 보급하고 나머지 부식은 부대예산으로 구매해서 급양을 했다는데 일본군의 영향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김익렬 대령의 일화에도 나오죠,멸치뻥튀기)
      나중에 미군의 권고로 우리 군에도 중앙급양제도가 도입되서 주식 부식일체를 육본에서 대량구매 후 보급을 했다더군요.

  • KMD 2020.09.04 13:52

    역시 강력한 군사력의 원천은 마르지 않는 돈이군요... 만고불변의 진리인 듯 합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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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즈라엘 2020.09.23 00:02

    저는 이 블로그에서 먹는 이야기가 제일 좋습니다 ㅎ
    답글

  • 나그네 2020.10.15 13:50

    내 기준으로 군대 가보니 사회 있을 때보다 고기는 더 많이 먹은 거 같음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이 매끼 빠지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가지는 나옴

    말년에 빈둥거리다 심심해서 자주 부식 수령차 따라 나가 봤는데 고기나 채소등 재료는 상당히 좋음

    훈련소나 대대 같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먹는 큰 부대에서는 확실히 좋은 재료 가지고 맛 없게 만들지만
    소규모 부대에서는 꽤 맛있게 나온 기억이...

    문제는 훈련 나가서 야전에서 해 먹을 때인데...
    반합 들고 똥국에 밥 말아 김치 언져 먹고 있으면 딱 거지꼴임
    절대 전쟁 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듬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음

    제대 후에 IMF 터지고 군인들 반찬 갯수 한 가지씩 줄인다는 뉴스 보고 서글펐음
    나라가 잘살고볼일입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