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상

영국의 보물 상자, Wardian case 이야기

by nasica 2020. 2. 13.

 

인간이 먹어야 사는 동물의 몸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농업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임에 틀림 없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지요.  어느날 지구상의 모든 농축산업이 생산을 중단한다고 가정해보십시요.  인류가 과연 몇 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저는 그래도 과자도 까먹고 통조림도 따먹고 정부 창고에 무진장 쌓여 처지곤란이라는 정부미도 털어 먹으면 그래도 2~3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https://www.quora.com/Can-humans-current-food-storage-support-us-to-survive-a-whole-year

https://www.theguardian.com/global-development/2012/oct/14/un-global-food-crisis-warning


위 두 사이트에 나온 정보를 대략 요약하면 '모든 조건이 완벽하다면 30주, 실제로는 약 74일을 버틸 수 있다'랍니다.  전세계의 인구가 1년에 소비하는 곡물이 약 25억톤이 넘는데, 그 중 약 9억톤은 가축 사료로 사용된답니다.  가축이 먹는 사료도 결국 고기의 형태로 사람 입에 들어오니까 대략 1인당 230kg의 곡물을 소비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전세계 창고에 저장된 곡물은 6.3억톤 밖에 없답니다.  의외로 많지 않지요 ?  거기에 전세계 이곳저곳에서 사육 중인 240억 마리의 닭과 17억 마리의 소, 10억 마리의 돼지와 20억 마리의 양 및 염소를 한꺼번에 완벽하게 도살/냉장 처리하여 먹는다고 해도, 결국 30주를 버티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냉장과 운송, 분배 등에 문제가 많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74일 후 인류는 사실상 멸망을 할 것이라는 것이 예상입니다.  인터넷이나 전기나 자동차, 심지어 석유가 없더라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냥 불편해지고 하던 것을 못 하게 된다는 것 뿐이지요.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그만큼 농업은 소중한 것입니다.


(농업 생산이 중단될 경우 지구 상에 어떤 지옥도가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시려면 맥카시의 소설 "The Road"를 읽어 보십시요.  매우 재미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영화로도 나왔습니다만 책을 더 권고합니다.  한글판도 나왔습니다.)



몬산토는 왠지 악당스러운 느낌이 나는 기업이라는 점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유전자 조작이 된 종자나 제초제와 살충제 등 인체 유해 논란이 있는 제품들을 생산하기 때문인 점이 큽니다만, 꼭 유전자 조작 종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농작물 씨앗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어서 전세계의 농민들로부터 라이센스비를 받아 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게 꼭 욕을 할 일은 아닌 것이, 누군가가 좋은 씨앗을 혼자만 키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라이센스비를 받더라도 전세계가 키울 수 있도록 나눠주는 것이 전세계를 위해서는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대항해 시대를 낳은 대표적 향신료입니다. 위가 말린 정향, 즉 clove이고, 아래가 육두구, 즉 nutmeg입니다.  육두구의 붉은 씨앗 부분을 mace라고 하고, 그것이 바로 향료로 사용되는 부분이라네요.  저는 육두구는 맛보지 못했고 정향만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향만 해도 아주 근사하고 세련된 냄세가 나더군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화하던 대항해 시대에 몬산토 같은 기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신대륙에서 건너온 옥수수나 감자, 카카오와 담배 같은 새로운 작물들은 아무런 라이센스 비용 없이 기존 세계에도 전파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몬산토 같은 기업보다 더 나쁜 행태를 보여준 기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였습니다.  이 난폭한 상인(또는 침략자)들은 향신료가 나는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Moluccas)에서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 등의 향신료 나무들을 독점했습니다.  그 묘목이나 생씨앗이 외부로 반출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통제했지요.  이는 향신료 장사를 좀더 영구적으로 하기 위해 그나마 생산적으로 행태를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 시대에는 두번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없었던 서양 모험 항해가들은 다른 유럽 선박들이나 아랍 선박들이 향신료를 가져갈 수 없도록 향신료를 걷어들인 뒤 아예 해당 향신료 나무들을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있으니까요.  이런 행태들 때문에 유럽 시장에서 향신료 가격은 하늘을 찔렀고, 향신료는 부자나 귀족들이나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것으로 남았습니다.


(몰루카 제도, 예전에 향료 제도로 알려진 바로 그 지역입니다.)

(프랑스의 문익점, 피에르 퐈브르 선생의 동상입니다.)



그러나 독점은 나쁜 것이고, 많은 이들이 독점을 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갖은 수를 다 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8세기 중반 활약한 퐈브르(Pierre Poivre)라는 프랑스 식물 학자의 경우입니다.  이 양반은 원래 선교사로서, 베트남과 중국 남부 등에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이 분은 오른팔 팔꿈치 아래가 없었는데, 이는 젊은 시절 승객으로 프랑스 선박을 타고 인도로 가다 영국 군함과의 해전이 벌어지자, 용감히 나서서 영국 군함과의 포격전을 돕다 영국 포탄에 손목을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퐈브르는 또한 열정적인 아마추어 원예학자였습니다.  (하긴 그 시절에 프로 원예학자라는 직업이 없었지요.)  그는 인도양에 있는 프랑스의 식민지인 모리셔스(Mauritius, 당시 이름은 Isle de France) 섬에 관리로 재직하면서 온갖 열대 식물들을 모아 식물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식물원은 Pamplemousses Botanical Garden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퐈브르가 조성한 Pamplemousses 식물원입니다.  몇 만 평 되는 큰 규모라고 합니다.)



퐈브르는 네덜란드인들의 향신료에 대한 독점권을 깨기 위해 아주 정공법, 즉 도둑질을 택합니다.  그는 네덜란드인들의 감시가 소홀한 어느 외곽 지역의 섬에도 정향과 육두구 나무가 울창히 자란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1769년 5월 향료 제도를 향해 출항하여 미아오(Miao)라는 작은 섬에서 정향과 육두구의 어린 묘목과 함께 1만여개의 육두구 열매를 채집해 오는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듣고 보면 별 거 아닌 항해담 같습니다만, 이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을 향료 제도에 대한 독점권을 지키기 위해 현지 토착인들은 물론 중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할 것 없이 향료 제도를 얼쩡거리는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감금과 고문, 살해를 자행하는 완전 극악무도한 인간들이었거든요.  결국 퐈브르가 훔쳐온 이 씨앗들은 아프리카 동해안과 잔지바르로 옮겨져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퐈브르가 가져온 귀한 향료 나무 묘목들은 결국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지는 못 했습니다.  선창에 보관해두자니 햇빛을 못 받은 묘목들이 금새 시들어 버렸고, 갑판에 두자니 거친 소금물이 튀어 역시 말라 죽었던 것입니다.  긴 항해에서 그런 묘목들에게 정성껏 물을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요.  씨앗 형태로도 옮겨 심는 것이 가능한 식물은 대양을 건너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모든 식물들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고무는 포르투갈령 브라질에서만 나는 자원으로 남았고, 차는 중국에서만 나는 기호품으로서 영국의 은화를 중국으로 꾸준히 유출시키는 원인이 되었지요.


(런던의 개업의 나대니얼 워드입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 되던 1830년대, 영국 런던에서 의사로 일하던 워드(Nathaniel Bagshaw Ward)라는 이름의 아마추어 식물학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런던의 대기는 석탄 연기에서 나온 아황산가스가 듬뿍 들어간 스모그로 인해 끔찍한 상태였고, 그런 대기 속에서 그가 키우려던 외국 식물 종자 중 제대로 자라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아마추어 식물학자들이 흔히 그러듯 곤충학에도 관심이 많아 어떤 나방의 번데기를 밀봉된 유리병 속에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번데기를 넣은 병 바닥에는 나뭇잎을 깔아 놓았는데, 비록 번데기는 나방으로 깨어나지 못했지만 그 나뭇잎 무더기에서 몇 종류의 잡초와 고사리류가 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했는데, 보다 보니 그렇게 피어난 식물들이 그런 지독한 대기 속에서도 아무런 물도 주지 않고 방치했는데도 무려 4년간을 자라났습니다.  나뭇잎에 있던 수분이 그 유리병 안에서 순환되면서 수분을 공급했고, 밀봉된 병 속에서 이 식물들은 런던의 지독히 오염된 공기로부터 보호되었던 것이지요. 


(여러가지 형태의 워드 상자입니다.)



워드는 이 관찰로부터 워드 상자(Wardian case)라는 것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나무틀과 유리로 만든 간단한 휴대형 밀봉 온실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런던처럼 대기 오염이 심한 곳에서 실내 온실 같은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이 진가를 알아본 식물학자들이 곧 대륙간 묘목 이송에 사용하게 됩니다.  이 워드 상자를 이용하면 묘목 등을 갑판에 놔두어도 소금물이 튀지 않아 햇빛을 충분히 쬐어 줄 수 있었고 물도 따로 주지 않아도 되므로 2~3달 걸리는 대서양 및 태평양 횡단에서도 묘목을 살려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 중반 북극 탐험에 나섰다 실종된 뒤, 최근에야 그 잔해가 발견된 영국 해군의 극지 탐험선 에레버스(HMS Erebus) 호에도 이 워드 상자가 실렸었습니다.  에레버스 호는 북극 탐험에 나서기 전인 1840~1841년 남극 대륙 주변을 일주했는데, 이때 에러보스 호에는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보내지는 뉴질랜드 토착 식물들의 묘목이 들어 있었습니다.


(뉴질랜드 연안의 에레버스 호와 테러 호입니다.  이 둘은 모두 불과 몇 년 뒤인 1845년 북극 탐험에 투입되었다 모두 실종되었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니 무려 170년 뒤네요.)



이 상자 덕분에 영국이 얻은 경제적 이익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브라질에서 전량 수입해야 했던 고무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리랑카와 말레이 등 영국령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재배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수입해야 했던 차도 이젠 인도 아쌈 지방에서 대량 재배되어, 영국의 국민 음료가 맥주와 진에서 홍차로 바뀔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무 나무와 차 나무가 이 워드 상자에 실려 운송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쌀 농사와 보리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게 차 나무나 고무 나무 농사를 짓도록 강요한 영국 식민 정책은 심각한 식량 조달 불균형을 낳아 많은 현지 농민들이 아사하는 비극을 낳기도 했답니다.)



원래 식물학이라고 하면 굉장히 따분하고 심지어 취직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대표적인 순수 학문이라고 인식됩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더 마션"에서도 화성에 남겨진 식물학자 맷 데이먼을 위로한답시고 문자로 통신하던 동료 우주 비행사가 "Botany... not a real science" (식물학은 진짜 과학도 아니쟎아) 라고 놀리는 장면까지도 나오지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식물학만큼 인류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학문이 없습니다.  가령 농생물 기업인 몬산토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몬산토를 통째로 매입한 바이엘 같은 제약 회사에게도 식물학은 매우 중요합니다.  와이프가 어느 책에서 읽고 해준 이야기인데, 그런 신약의 주성분은 주로 식물 쪽에서 나오는데 아마존 밀림 속에는 아직 인류가 연구해보지 않은 각종 식물과 이끼 등이 수천 수만 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미지의 식물 중에 무슨 기적의 신약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아직도 식물학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지요.  

 

(식물학이 진짜 과학 축에는 못 끼는 학문일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맷 데이먼이 식물학이 아닌 전자 공학이나 성형외과 등을 전공했다면 아마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돈 돈 돈으로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가령 워드 상자를 만든 닥터 워드는 이 상자의 발명으로부터 아무런 금전적 이익을 보지 못 했습니다.  그저 그의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았다는 점 정도지요.  그렇다고 워드가 가난 속에 쓸쓸히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뭐니뭐니 해도, 워드의 본업은 의사였거든요.  의사 생활을 계속 하다, 은퇴해서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잘 살다 갔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제가 Wardian case라는 것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이 이 싱가폴 식물원에서였습니다.  워드 상자 옆면에 "역사를 바꾼 상자"라고 되어 있네요.)  

 

 

** 전에 썼던 글인데, 요즘처럼 Covid-19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흉흉한 상황에서 재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이미 생산해놓은 식량 재고만 먹는다면 몇 개월을 버틸 수 있을까'가 궁금했는데, 전에 썼던 글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데 어디에 써놨더라... 하고 찾아보니 이 글 속에 들어있네요.

 

 

 

댓글11

  • 까까님 2020.02.13 09:36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것도 일종의 워드상자로 볼 수 있겠네요
    저는 주말마다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힘 쓰는 일 할 때는 정말 숨이 허덕허덕 차오르지만 사무실에서 꼴 보기 싫은 인간을 패주고픈 마음을 참는 것에 비하면 덜 힘든 것 같더라구요 ^^;;
    문전옥답에서 먹을만큼만 힘들여 농사 짓고 편안하게 쉬어 가며 살고싶습니다(그러다 나라 들어잡수신 조상님들 처럼 욕 먹을 소원이겠지만요)
    답글

  • 루나미아 2020.02.13 11:08

    옛날엔 식물이 바다를 건너는 일도 큰 일이었네요;;
    답글

  • 카를대공 2020.02.13 15:38

    이번은 재탕편이군요.
    저 워드라는 의사가 워드 상자를 개발했다는 얘기가 무척 인상적인 편이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거물 과학자가 아니라도 세상에 기여할 물건을 발명할 수 있는 사회,그것이 진정 우리가 지향해 나갈 사회겠지요.
    답글

  • VDV 2020.02.13 19:11

    함선 이름이 테러라니 참 신기하네요.러시아령 체첸 공화국의 수도가 비슷한 뜻인 그로즈니인 것과 일맥상통하는 네이밍일까요.
    답글

    • nasica 2020.02.13 21:19 신고

      에레버스 호나 테러 호 모두 탐험선으로 개조되기 전에는 박격포함, 즉 bomb ketch였습니다. 대형 박격포를 탑재하는 군함 특성상 선체 구조가 매우 튼튼했거든요. 그리고 박격포함은 화산 등의 이름을 따서 함선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에레버스도 화산 이름이라고 하고, 테러는... 그냥 테러네요.

      그에 비해 나폴레옹 시대에 활약했던 프랑스 전열함 이름 중에는 Heureux (영어로는 Happy)가 있었는데...

  • reinhardt100 2020.02.13 21:34

    육두구와 메이스, 그리고 끝판왕인 정향 같은 향신료 획득을 위해 16세기 이후 서로는 아덴에서 동으로는 일본까지 서구권 각국이 치열하게 싸웠죠. 17세기 당시 최종 승자는 후추와 계피 등 인도에서 생산되는 종목을 뺀 모든 종목을 독점하는데 성공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최초의 주식회사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흔히 아는 잉글랜드-영국 동인도회사는 주식회사로의 개편이 무려 반 세기 가까이 걸릴 정도였고, 프랑스나 덴마크 인도회사는 아예 국왕이 발급한 특허권에 회사 존립근거가 있다보니 회사 성립 당시에는 주식발행 따위는 애초에 생각도 못할 지경이었죠

    이 회사가 그토록 막강한 독점력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동시대 다른 회사들이 가지지 못했던 무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막강한 자체 제조업 능력, 본국의 자금지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말 안 들으면 일단 빠따(?) 들고 참교육(?) 부터 시킨다'는 운영방침이었죠. 특히 마지막이 다른 국가의 회사들과는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흔히, 벵골 대기근을 몇차례나 부른 영국 동인도회사가 워낙 악명 높지만 초기 잉글랜드 동인도회사는 네덜란드에 비하면 정말 신사적이었습니다. 무굴제국 황제한테 무역 특허장을 얻기 위해 해적질도 했지만 그래도 일단 어딜가든 정당하게 교섭을 하려 했고 교섭단도 당시로써는 귀족들을 많이 활용한 편이었으니까요. 반면, 네덜란드 회사는 일단 함포부터 갈기고 보는 집단이었죠.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교역허가 받는 당일 바로 칼들고 가서 현지 포르투갈 총독부터 칼빵을 놓아버린 적까지 있었던 집단입니다.
    답글

  • reinhardt100 2020.02.13 21:53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쓰면 전에 쓴 기억이 있습니다만 19세기가 석탄화학, 20세기는 석유화학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제2차 바이오화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업이 다시 살아날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1990년대 및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는 옛말이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가공무역 국가의 원조인 일본이 의외로 식량자급률이 50%에 육박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죠. 중국과 이란 등의 장래가 극히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수자원이 급속히 고갈되면서 식량자급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며칠 전 인구 1억을 돌파한 이집트 역시 지나친 인구 폭증으로 세계 최대 밀수입국 중 하나로 전락한 것도 무서운 사실이죠. 한국 또한 의외로 간과하고 있지만 쌀을 제외한 식량 자급률은 20% 간신히 넘고 가장 심각한 공업용 원료라든지 사료는 5%에도 미치지 못하는 말 그대로 목숨줄을 저당잡힌 상황이라는 점이 더 무서운 사실입니다.

    거대한 제조업 기반 및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거대한 제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을 항상 고려해야겠죠.
    답글

    • Franken 2020.02.14 19:57

      뭐 AI에 기반한 수직농장 및 배양육 같은 식량생산 방식이라면 노먼 볼로그가 일으킨 녹색혁명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생산성이 어마어마해질 테니깐요.

  • 빛둥 2020.02.14 14:36

    자연상태 식물에 각종 치료약으로 쓰일 수 있는 물질이 있는 것은, 식물이 태양광을 받아 세포내 에너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라디칼로부터, 자기 세포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각종 방법을 진화를 통해 개발해 왔기 때문입니다.

    라디칼을 덜 발생시키기 위해 특정 파장만 사용하도록 하거나 빛의 세기를 줄일 수 있는 구조를 진화시킬 수도 있고, 라디칼이 발생되더라도 이를 중화시키는 항산화물질(예를 들어 카로티노이드)을 다양하게 진화시킬 수도 있고, 인간의 질병인 말라리아 원충을 공격하는 부수적 효과가 있지만, 원래 식물이 원생동물 같은 기생생물을 공격하기 위해 진화시킨 라디칼 생성제(아르테미시닌 같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niche(생태적 지위)가 있고, 이에 맞게 각 생물들이 수억년간 발달시킨 화학물질들이 있습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간에요. 우리는 그런 물질들의 효용을 아주 일부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답글

  • 최홍락 2020.02.15 00:15

    1. 육두구와 정향의 경우 퐈브르를 제외하고도 품종을 빼돌린 사람들이 더 있었습니다. 중국을 오가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씨앗을 빼돌리기도 했고요.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이 향신료의 독점권을 완벽히 행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령 동인도 마카사르는 명목적으로는 네덜란드의 향신료 독점거래지역이었지만 실제로는 영국,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중국, 인도 등 다양한 상인들에게 정향과 육두구를 공급해왔지요. 이렇듯 그 넓은 인도네시아 재배지들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철저하게 커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네덜란드가 이렇게 독점력에 집착한 것도 웃긴 것이 과거 스페인이 야코프 푸거 가문을 통해서 아시아로부터의 향신료 수입 독점권을 행사하려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스페인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향신료 생산지를 확보하면서 주도권을 잃었던 실패를 반복한 것이었으니까요. 항구한 독점이라는 것이 가능하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2. 사실 퐈브르가 정향과 육두구를 빼돌리던 그 시기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입장에서 향신료에대한 관심 자체가 좀 뜸해질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세기 전인 17세기 중반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아시아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중 금액기준으로 60~70%가 향신료와 후추였습니다. 그러던것이 18세기 중반이 되면서 이 비율이 10% 초반 수준까지 급감하고, 대신 면직물이 약 50%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지요. 이는 두가지 이유입니다. 첫째는 역시 공급이 증가하면서 가격 수준도 하락한 것입니다. 1620년대에 네덜란드의 후추 수입은 1670년까지 4배까지 증가하였는데, 이는 영국과의 영란전쟁을 전후로 발생한 공급 경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양국 동인도회사의 출혈경쟁으로 인해 후추가격은 50년동안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였지요. 이는 다른 상품인 커피, 설탕, 코코아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유럽의 향신료 수요가 급감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물품인 유럽의 정향의 수요가 1620년대에는 연 50만파운드였는데, 1700년대 들어 연 30만파운드까지 감소한 것이지요.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영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택한 전략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암본사건에서의 영국인 상인 축출, 그리고 2차영란전쟁에서 승리의 승리로 향신료를 비롯한 각종 플랜테이션 재배지를 대가로 챙긴 네덜란드는 향신료나 식료품 수입에 매진하였지만, 패배로 향신료와 식료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은 영국 동인도회사는 오히려 면직물과 인도를 새로운 타켓으로 잡고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 이것이 양국 회사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에서도 갈림길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어찌보면 새옹지마라는 말이 더 잘어울리는 상황이지 않나 싶습니다.

    3. 그리고 워드상자와 관련하여 고무와 차를 예로 드셨는데, 엄밀히 말하면 고무는 브라질에서 들여온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걸 들여올 때는 7만개의 고무나무 씨앗을 바나나 잎사귀에 싸서 밀반입을 한 것입니다. 아삼 지방에서 재배하는 차는 아예 어디서 밀반입을 한 것이 아니라 이미 16세기 후반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아쌈 지방 정글의 인근 부족들이 잎을 채소처럼 기름에 익혀 먹거나 끓는 물에 우려내 먹는다는 사실이 기록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을 19세기에 로버트 브루스 형제가 재발견을 하였고, 영국 동인도회사는 브루스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결성하여 인도 아쌈종을 이용한 차 플랜트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많은 투자를 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의 고무 재배의 성공은 브라질로부터 고무를 밀반입한 것도 있지만 생산방식에 있어서 브라질보다 말레이시아 플랜테이션이 더 집약적이고 더 효율적으로 많은 양의 고무를 생산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브라질에서도 미국의 파이어스톤사(당시 브라질 고무의 거래는 파이어스톤사가 중심이 되었습니다.)를 중심으로 플랜테이션을 도입하려고 하였으나 이 지역에 도는 마름병으로 인해 실패를 하였죠. 기가 막히게도 동남아시아는 마름병과는 거리가 먼 풍토였고요. 결국 파이어스톤은 브라질을 버리고 라이베리아로 고무 생산기지를 옮기게 됩니다. 대신 브라질은 커피 마름병이 유행하여 공급에 차질을 빚게된 동남아 대신 커피로 방향을 틀어 커피 생산국의 지위를 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가져오게 되고요.

    한편 영국은 말레이시아의 플랜테이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대규모 중국인 인력을 유입시켰는데, 이로 인해 말레이시아에 화교들이 급증하게 되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싱가포르로 분리되는 배경이 되기도 했지요.

    물론 쌀 농사와 보리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게 차 나무나 고무 나무 농사를 짓도록 강요한 영국 식민 정책은 심각한 식량 조달 불균형을 낳아 많은 현지 농민들이 아사하는 비극을 낳기도 했다고 하시지만, 사실 뱅갈 대기근처럼 식량 유통 당국의 뻘짓으로 발생한 특이한 사태를 제외하면 차, 고무 플랜테이션 농장이 농민들의 식량 조달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기엔 좀…반대로 쌀 농사를 강요받았던 영국 식민지 미얀마나 프랑스의 베트남이 이들 플랜테이션 중심의 국가들보다 식량 사정이 더 나았다고 판단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니….

    4. 그리고 식량자급률 통계 수치에 좀 의문이 드네요. 한국의 경우 식량자급률은 50% 수준, 곡물 자급률이 23% 수준입니다. 일본의 경우는 곡물의 경우는 한국보다 약간 높은 27% 수준이나 콩류의 경우 한국이 7%, 일본은 3% 수준이고요. 일본의 경우 10년전에는 한국보다 곡물 자급률이 낮았으나 꾸준히 올린 결과가 27%라고 알고 있습니다. 식량자급률의 경우 일본이 50%를 상회하는 것은 맞는데 한국도 50%에 근접하고 있어 양국이 그리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고요.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 통계가 따로 있어서 이게 혼동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역시 식량 자급률 낮다고 이러다 큰일 난다고 목소리가 나온지 상당히 오랜기간이 지난 상황이니까요.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