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반 년 정도 전부터 어느 유명 교회의 인터넷 설교를 들으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갈라디아 서를 읽고 있는데, 와이프가 감탄하며 말하기를 기독교 교리의 정수가 모두 이 책에 들어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와이프가 한탄하며 말하기를 '내가 교회를 다닌지 30년이 훨씬 넘었는데, 대체 그 동안 목사님들이 이 갈라디아 서를 인용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대해서 제 대꾸는 이랬습니다.
"아마... 많은 신자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 믿으면 복을 받아서 물질이 풍요해지고 몸도 건강해집니다!' 라는 설교라서 그런 것 아닐까 ?"
그래서 또다시 우리 부부의 영원한 부부 싸움 테마인 종교 논쟁이 잠깐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전에 케이블 TV에서 본 영화 하나가 기억났습니다.
Miracles from Heaven이라는 2016년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이건 실화에 바탕을 둔 기독교 영화인데, 줄거리를 한줄 요약하면 불치병에 걸린 어린 딸이 기적에 의해 치유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 가족은 매우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어린 딸이 고약한 불치병에 걸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생이 심했던 엄마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신자 몇 명이 엄마에게 다가와 말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요약하면 이런 거였어요.
"너의 딸이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것은 틀림없이 너의 가족의 믿음이 약했거나 뭔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그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
별로 신실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교회 다닌지 20년이 넘는 제게는 기독교인들의 그런 식의 사고 방식이 사실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정말 자기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100%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결국 '니가 뭔가 죄를 지었으니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거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평생 잘 먹고 잘 사는 일도 많습니다만, 그건 또 그들이 죽은 뒤에 영원한 지옥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오히려 불쌍한 일이라고들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서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어차피 인생은 찰라의 순간에 불과하고, 죽은 뒤에 맞이할 천국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영원의 삶이니, 지상에서 물질이나 건강의 복을 받아야만 예수님 믿는 보람이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제 시덥쟎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데, 그 대부분이 목사님들에게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큰 상처를 준 목사님 말씀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교회들 중 두 목사님이 같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한분은 장로교이고 다른 한분은 감리교셨는데도 동일한 일화를 인용하셨습니다.
"미국에서의 연구 조사 결과인데, 독실한 기독교 가문과 믿음이 없는 가문을 몇 대를 걸쳐 조사해보니 이렇더라. 믿음이 강한 가문에서는 교수가 몇 명, 장군이 몇 명, 목사가 몇 명, 성공한 사업가가 몇 명... 그에 비해 믿음이 없는 가문에서는 도둑이 몇 명, 사기꾼이 몇 명, 창녀가 몇 명..."
뭐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제게 정말 큰 상처와 분노를 준 것은 다음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몇 명 나왔다더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정신이나 신체에 장애가 없는 분들께서는 본인이 잘 나서, 본인이 깨끗한 영혼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덕분에 건강을 누리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제 사지가 멀쩡한 이유는 그냥 운이 좋아서 그런 것 뿐이고, 저도 한끝만 운이 나빴어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뭔가 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것이 마치 뭔가 죄에 대한 벌인 것처럼 말하는 저런 설교에는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어디 가서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합니다만, 사실 진짜 믿음이 있는 기독교인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인격을 가진 분이고 우리 미천한 인간들과 기도와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해 정말로 소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천지 창조와 생명의 탄생이 신의 조화라는 것을 믿습니다만, 신이 과연 인성을 가지고 질투와 사랑을 하시는 분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레오너드 코헨의 노래 중에 Nevermind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The high indifference
Some call fate
But we had names
More intimate
어떤이들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고귀한 무심함
하지만 우리에겐
더 친밀한 이름들이 있지
왜 신께서는 어떤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얼굴을, 어떤 이에게는 추한 외모를 주셨을까요 ? 글쎄요. 신의 눈에는 얘나 쟤나 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을까요 ? 제가 성경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신을 high indifference라고 생각합니다. 신께서는 이미 이 세상을 (우리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그 속에서 우리가 부질없이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적인 자세로 보고 계시다고요. 신이 이미 이 세상을 의도대로 만들어 놓으셨고 모든 것이 그 틀 안에서 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 과정 중에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고 해서 신께 고쳐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 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진심으로 기도하면 행성의 자전조차도 역행시킬 수 있다고 하니, 기독교인이라면 신께 기도하며 뭔가 물리적인 징표를 바라는 것이 나쁜 일 같지는 않습니다.
(열왕기 하 20장 8절 ~ 11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안 믿으면 너 이단... 그런데 가만히 저 성경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양의 운행이나 지구 자전을 변경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해시계 주변의 햇빛만 굴절시키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그냥 선지자 이사야가 해시계의 눈금만 조작했을 수도...)
아, 저 영화 속에서는 저 엄마도 신도들의 그런 말에 큰 상처를 받지만, 결국 하나님의 기적으로 아이의 불치병이 완치됩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매우 적지요. 그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해서 병으로 죽거나 평생 고생하는 사람들은 정말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일까요 ? 글쎄요.
어떤 교회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마다 장로들이나 신도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의 예를 들으시면서 'XXX의 경우를 보라,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니 저렇게 성공하시는 것 아니냐, 여러분도 예수님 믿고 성공하시기 바란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물질적으로 성공하신 분들을 위해 지상에 오시지 않았고, 가난하고 죄많고 병든자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언급이 성직자의 입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신도들이 모이고, 그래야 헌금액이 많아지거든요.
저는 성경이 한글자 한글자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금과옥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예수님께서는 신의 공의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부를 남기셨다는 것만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면서 그런 개인적인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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