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모임에서 디도서 2장을 읽었습니다.  기분이 확 상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딛 2: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딛 2: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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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 2: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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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예수님의 말씀은 아니고 바울이 크레테 섬의 기독교 지도자 티투스(Titus,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순혈주의를 지향했던 다른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로마 제국 내의 비유대인들에 대한 전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고, 그의 서신이 신약성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드로 등 예수님의 12사도들은 대부분 어부 등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학식이 깊지 않았으나, 바울은 어려서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바리새인 엘리트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의 서신과 이론이 높게 평가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를 예수님과 바울의 공저 작품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12사도 안에 들기는 커녕 한번도 예수님 생전 모습을 뵌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위 미켈란젤로 그림에서도 묘사된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적 개종을 겪었으니 베드로급의 인물이라 할 수 있지요.)

 



바울은 세속 권력에 대해 매우 순응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세상 물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엘리트답게, 당시 로마제국의 권력에 대항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기독교 사회는 물론 전세계에서 악용이 되풀이되는 아래 로마서 13장의 문구도 남겼습니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마찬가지로, 디도서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그 특정 구절만 딱 떼어 사용되면 악용되기 매우 쉽습니다.  바울이 저런 말을 편지에 쓴 이유는 사실 디도서 2장 5절 뒷부분에도 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딛 2:6)"

즉,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기독교 커뮤니티는 신흥 종교가 대부분 그렇듯이 기존 사회에서 많은 의심과 질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고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는 당시 기존 사회 질서에 크게 위협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장 교회의 안정과 교세의 확장이 최우선이었던 바울로서는 그런 주변의 의심과 질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비기독교 사회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위아래도 없다더라, 기독교인들은 제국의 권력에 도전한다더라, 기독교를 믿으면 여자들이 건방져지고 노예들이 달아난다더라' 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저런 '당시 사회에 맞는 행동지침'을 내린 것에 불과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  노예제도는 하나님도 인정한 것이니 노예는 절대 해방을 꿈꾸지 말고 무조건 주인에게 복종하라 ?  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바울이 21세기 뉴욕에서 기독교의 터전을 닦고 있었다면, 저 구절은 틀림없이 아래와 같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평등함을 믿고 서로 도우며 사랑하고
노동자와 자본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생을 위해 애쓰며"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힘으로 한글자한글자 그대로 받아적은 성경의 말씀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냐?' 라며 반발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선지국을 먹으면 자손까지 멸종시키겠다라던가, 혼외정사를 하면 돌로 쳐죽인다든가 하는 것이 현대 상황에서 맞는 이야기이겠습니까 ?  실제로 모세의 율법에는 이혼이 허락되었지만, 예수님은 '그건 그때 상황에 따른 율법이었고...'라면서 이젠 이혼 안된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카톨릭에서 낙태는 물론 피임도구까지 금지하는 것은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낙태죄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도 그 폐지에 대해 반발이 심한 모양이던데, 그렇게 도덕적이신 분들이 성경에는 일언반구도 안 나오는 낙태에 대해서는 강경하시고, 돌로 쳐죽이라고 명백하게 나온 목사님 간통에 대해서는 어흠어흠하며 어물쩍 넘어가시는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씌여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