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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대공14

아스페른-에슬링 4편 - 카알 대공의 생각 몰리토르(Molitor) 장군의 프랑스군 선발대가 로바우 섬에서 오스트리아군 수비대를 쫓아내고 있던 5월 19일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카알 대공은 나폴레옹이 뉘스도르프 혹은 다른 어디로 도강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오스트리아군 사령부에서는 5월 18일 저녁부터 이루어진 프랑스군의 도강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카알 대공이 오스트리아군 본대를 도나우 강가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위치시켜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송양지인은 십팔사략에 나오는 고사로서,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양공의 일화입니다. http://blog.daum.net/wahnjae/17994302 참조)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중국 고사성어에서도 나오듯이, 강을 건너는 적은 그야말로 상대하기 가장 쉬운 상대였습니다. .. 2017. 2. 26.
아스페른-에슬링 3편 - 순조로운(?) 도하 포병 전문가인 베르트랑 장군의 계산에 따르면 대포가 건널만 한 부교를 짓기 위해서는 20피트, 즉 약 18미터마다 한 척의 보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자면 최소 80척의 보트가 필요했는데, 비엔나 일대를 나흘 동안 미친 듯 뒤지니 90척의 보트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부교 건설에 사용될 만한 상태인 것은 70척 뿐이었고 그나마 부교를 위해 보트를 고정시키는데 꼭 필요했던 닻은 정말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속이 탔습니다. 그는 작업 현장에 계속 참모를 파견하여 널빤지가 어쩌고 로프가 어쩌고 하는 지극히 잡다한 보고를 일일이 직접 챙기며 부교 건설을 위한 자재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고, 마침내 충분한 수의 보트를 확보하여 5월 19일부터는 부교 건설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 2017.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