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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60

레이더 개발 이야기 (50) - 계산 연습하는 소위들 그리핀 소령의 Fighter Director Control 학교에 입교 명령을 받은 20여명의 신임 소위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음. 일단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 이들의 궁금증은 첫날 그리핀 소령이 이들에게 보안 선서를 받고 나서 설명해준 레이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츰 해소. 그때까지도 미군 전체에서 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 기밀이었던 것. 레이더 발명 이전에는 항공모함의 함재 전투기를 이용한 함대 방공의 개념이 없었나? 있긴 했는데 최소한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개념 자체는 없었음. 어차피 어느 방향에서 몇 대의 적기가 날아올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CAP (Combat Air Patrol)의 지휘는 .. 2023. 10. 12.
레이더 개발 이야기 (49) - 미해군의 준비 미해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이더 시스템 CXAM을 장착하고 장시간 운용해본 항모 USS Yorktown은 레이더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전투기 관제를 위해서는 이를 운용하기 위한 전문적인 인원과 함께 레이더 운용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리포트를 1941년 3월에 올림. 그때까지만 해도 미해군에서는 레이더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새로운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 운용 담당자를 장교가 아닌 부사관(chief petty officer)으로 배정했을 정도. 근데 그렇게 해놓으니 도저히 운용이 안 됨. 그 부사관들이 자기가 레이더 스코프에서 본 정보, 즉 무의미한 거리와 방위각을 아무 기준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전화로 보내오니 함교에 있는 고위 사관들이 .. 2023. 10. 5.
레이더 개발 이야기 (48) - 포클랜드 상공의 H2S H2S와 그 개량 버전인 H2X는 이렇게 WW2에서 로열 에어포스가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 이후에도 로열 에어포스는 물론 미공군의 폭격기에서도 계속 사용됨. 그러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외로운 섬 포클랜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활약함. WW2 때 개발된 레이더를 1980년대에도 썼다고?? 의외지만 진짜임. 일단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장수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적 몰락 때문. WW2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뭐래도 미국. WW2를 거치면서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으로서 사실상 자유세계를 석권. 그에 버금가는 승자는 소련. 잠재적 경쟁국이었던 독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동서독으로 분할하여 재기를 막은 뒤, 동유럽을 석권하고 공산주의를 전파하여 미국과 .. 2023. 9. 21.
레이더 개발 이야기 (47) - 멤피스 벨과 H2X H2S는 밤눈이 어두운 로열 에어포스 항법사들에게 성공적으로 독일로 가는 밤길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쾰른이나 함부르크를 폭격할 때는 나오지 않던 불평이 베를린 폭격에서는 쏟아져 나옴. 1943년 8월 말과 9월 초, 3번에 걸친 베를린 폭격 작전후, 폭격기 사령부와 레이더 개발팀 사이의 연락 장교 역할을 하던 새워드(Saward) 중령이 베를린 상공에서 찍은 H2S 레이더 스코프의 사진을 레이더 개발팀애게 전달. 개발팀이 보니 그냥 무의미한 허연 점들과 패턴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을 뿐, 뭔가 눈에 띄는 랜드마크 지형물을 구별할 수가 없었음. 다른 도시에서는 잘 통하던 H2S가 왜 유독 베를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을까? 이유는 도시의 규모.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여러 소왕국들이 분립하여 .. 2023. 9. 14.
레이더 개발 이야기 (46) - 핵폭탄을 터뜨린 레이더 노든 폭탄 조준경의 위력을 확신하고 있던 미육군 제8 항공단이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주간 폭격을 고집한 것에 비해 로열 에어포스가 (실은 폭탄이 목표물에 명중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간 폭격을 고수한 이뉴는 딱 하나, 독일 전투기들이 무서웠기 떄문. 1943년 봄, 로열 에어포스의 폭격기 사령부는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었음. 독일도 레이더 기술과 그를 이용한 요격 기술이 점점 좋아지면서 독일 야간 전투기들이 깜깜한 밤중에 영국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 비록 아직 전체 출격 대수의 4% 정도만 그렇게 요격되어 격추되었지만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음. 게다가 이제 곧 다시 여름이 됨. 여름이 되면 그만큼 해가 길어질 것이고, 그건 그만큼 영.. 2023. 9. 7.
레이더 개발 이야기 (45) - 레이더 깎는 노인, 아니 영국 공군 H2S 공대지 레이더는 테스트를 거치면 거칠 수록 점점 더 개선됨. 1942년 4월, H2S를 테스트하던 항법장교 E. Dickie 중위는 '지도는 언제나 북쪽이 위인데, H2S 레이더 스코프는 폭격기 기수 방향이 위로 되어 있어서 헷갈린다'라고 불평. 이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다, 속성 훈련만 받고 살 떨리는 독일 야간 폭격에 투입되는 항법사들의 질적 문제를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덜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그에 대한 개선 작업이 이루어짐. H2S의 PPI scope 화면을 폭격기의 자이로컴패스(gyrocompass)와 서버(servo) 모터를 통해 동기화시켜 항상 위가 북쪽을 향하도록 회전시킨 것. (Anschütz 자이로컴패스의 단면도. 안슈츠는 1905년 독일 Kiel에서 설립된.. 2023. 8. 31.
레이더 개발 이야기 (44) - 기술 강국 독일의 허상 독일애들도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처웰 경이 염려했던 것을 즉각 생각해냄. 즉,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에 장착된 H2S 레이더가 쏘아대는 전자파를 추적하면 루프트바페의 야간 전투기가 쉽게 폭격기들을 사냥할 수 있겠다는 것. 그래서 Telefunken사에게 H2S 전파 수신기를 주문함. 그런데 해보니 이게 쉽지 않음. 독일은 전파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실험으로 입증한 헤르츠 박사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당시 물리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나라였지만, 전자 소재 산업을 등한히 했던 것이 이제 와서 뼈저린 후회거리가 됨. 당시 H2S는 GHz 단위의 microwave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독일은 고작 수백 MHz의 UHF, VHF를 사용하고 있었음. 근데 GHz 단위의 H2S 전파를 수신하고 추적하려면 당.. 2023. 8. 24.
레이더 개발 이야기 (43) - 독일의 대응 괴링을 경악시킨 항법용 공대지 레이더 H2S의 실체를 알게 된 독일군은 그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절치부심. 여태껏 거의 3년 동안 영국과 독일은 서로의 전파 항법 시스템에 대해 jamming을 주거니 받거니 한 사이였으므로, 이번에도 jamming을 시도. 일단 제일 먼저 시도한 것은 decoy. 얇은 금속판을 접합하여 삼각뿔 등의 다면체를 만들고 이를 교외의 공터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건물 등 폭탄이 떨어져도 괜찮은 곳에 잔뜩 배치. 이는 직각으로 맞닿은 금속판이 레이더 신호를 가장 강력하고 선명하게 반사하기 때문임. 그런 금속판으로 만든 다면체를 보통 radar reflector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그럴싸하게 설치해놓으면 영국 폭격기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하게 큰 물체를 보게 되므로 '여기는 어디.. 2023. 8. 17.
레이더 개발 이야기 (42) - 로테르담에서 온 장치 로열 에어포스 폭격기들이 밤길을 못 찾아 여태껏 삽질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 폭로된 Butt 보고서 파문 이후, 항법사들의 밤눈이 되어줄 공대지 레이더 H2S에 대한 영국 정부의 기대는 하늘을 찔렀고 그에 비례하여 개발진에 대한 압박도 대단했음. 1942년 7월, 처칠은 직접 10월 중순까지 H2S 레이더 200 세트를 준비해놓으라고 명령하여 레이더 개발팀을 깜놀시킴. 모든 지원이 다 집중되었으나, 결국 이 마감일은 지키지 못함. 1943년 1월까지도 고작 12대의 Stirling 폭격기와 12대의 Halifax 폭격기에만 H2S가 장착됨. 그리고 이들은 당장 실전에 투입됨. 바로 1943년 1월 30일의 함부르크 폭격. (함부르크 상공의 랭카스터 폭격기. 이 사진이 바로 최초의 H2S를 이용한 폭격이 있.. 2023. 8. 10.
레이더 개발 이야기 (41) - 죽 쒀서 괴링 줄 일 있냐? H2S 레이더의 성능과 효용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음. 하지만 이걸 폭격기에 달아 독일로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음. 이유는 폭격기가 하는 일은 2가지, 하나는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사포든 적 전투기든 적의 방공망에 걸려 적지에 추락하는 것이기 때문. 전파 항법 장치 Gee 수신기를 장착한 폭격기들이 독일에서 격추되었고, 거기서 수거된 Gee 수신기들을 독일이 수리하여 역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H2S 레이더를 장착한 폭격기를 독일에 보내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염려했던 것. 특히나 문제가 되었던 것은 H2S에는 Gee에 없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 달려 있었다는 점. 바로 cavity magnetron. 강력한 고주파 microwave를 쉽게 만들.. 2023. 8. 3.
레이더 개발 이야기 (40) - 공대지 레이더와 금주법 원래 초창기 레이더는 Chain Home 지대공 radar나 해양 초계기에 장착했던 ASV 공대함 radar처럼 그냥 일련의 쇠막대기로 이루어져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엔 전혀 레이더스럽지 않았음. 게다가 그 스코프 화면도 수평선에 가끔씩 삐빅하고 위로 치솟는 지점이 나타나는 정도로서, 레이더라기보다는 마치 심장박동수 화면처럼 보였음. 게다가 스코프로는 거리만 측정 가능했고, 방향은 Bellini–Tosi direction finder 코일의 다이얼을 이리저리 틀어서 간신히 찾을 수 있었음. 그러다 1942년 즈음해서 화면 중앙에 레이더 자체가 위치한 PPI (plan position indicator) 디스플레이가 고안되면서 모든 것이 확 좋아짐. 특히 이 디스플레이는 cavity magnetron의 발.. 2023. 7.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39) - 센티미터의 마법 공대공 레이더 연구를 시작하던 "Taffy" Bowen이 개발 초창기 1.5m 파장 길이의 상대적 낮은 주파수 전파로 테스트를 할 때부터, 이미 레이더 스코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뚜렷한 반사파가 잡히는 것을 알고 있었음. 그런 물체들은 부두의 구조물, 절벽, 선박 등이었는데 공통점은 물 위에 수직으로 서있는 물체들이었다는 것. 이는 전파를 잘 반사하지 않는 매끈한 수면 위에 수직으로 서있는 물체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반사파를 보내기 때문이었고, 이 발견을 이용해 공대함 레이더 ASV를 만들어 대잠수함 작전에 매우 잘 활용했음. (전에 ASV 설명하면서 그렸던 이 그림 기억하시는지. 위가 지표면에 부딪히는 전파의 반사이고 아래가 해면에 부딪히는 전파의 반사.) 공대함 레이더가 가능하다면 공대지 레이더도 가.. 2023.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