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페이스북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새로 영국 총리가 된 보리스 존슨의 우스꽝스러운 사진들이었지요.   그 중에서 하나는 먹을 것과 관계되어 있어 특히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보리스 존슨이 손에 훈제 청어(kipper)를 들고 뭔가 떠들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정치인이 대중 앞에서 손에 훈제 청어를 들고 연설을 했을까요 ?

 



관련 뉴스를 뒤져보니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두 우습게 여기고 놀리는 보리스 존슨이 더욱 우습게 보일만 한 사건이 있었더군요.

보리스 존슨이 훈제 청어에 관해 연설을 한 것은 보수파 정치 모임에서였습니다.  보리스 존슨의 주장에 따르면 맨(Man) 섬의 훈제 청어 상인이 훈제 청어를 얼음팩(ice pillow)으로 포장해야 했는데, 이는 '무의미하고 비용만 높이는데다 환경 파괴적'인 일이며, 이 모든 것은 EU의 비합리적 규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규정이 존재한다면 그건 정말 보리스 존슨의 주장대로 무의미한 규정일 것입니다.  훈제 청어는 대표적인 장기 보전 식품이므로 그걸 얼음으로 포장하는 것은 통조림을 얼음 포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비합리적인 EU 규제에 대해서는 어느 영국 신문사 편집인으로부터 들었다고 언급하면서, 이런 비합리적인 규제나 남발하는 EU로부터 영국이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체 어느 신문사 편집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전형적인 가짜 뉴스였습니다.  보리스 존슨의 연설 내용에 발끈한 EU 측에서 밝혔는데 EU에는 그런 규정이 없으며, 영국에 그런 규제가 있다면 그건 순수하게 영국 국내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지적하는 리투아니아의 EU 감독관인 안드리우카이티스(Vytenis Andriukaitis)는 트위터에 이렇게 쓰며 보리스 존슨을 조롱했습니다.

"생선은 머리부터 먼저 상합니다.  유력한 총리 후보로서, 보리스 당신은 머리를 차갑게 유지하실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 결국 그 얼음팩이 완전히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닐 겁니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에서 모든 이들이 조롱거리로 즐겨삼는 인물이긴 한데, 이 뉴스를 전한 기사의 제목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아래와 같았거든요.

"Boris Johnson’s kipper claim is red herring, says EU"
보리스 존슨의 훈제 청어 주장은 붉은 청어(사실을 왜곡하는 것)라고 EU가 말했다.

여기서 red herring, 즉 붉은 청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  원래 청어는 등푸른 생선인데, 이걸 훈제하면 좀 붉은 색을 띠게 됩니다.  그래서 붉은 청어란 곧 훈제 청어를 뜻하는데, 이는 관용어로서 '사실을 오도하는 것, 잘못된 실마리' 등을 뜻합니다.  왜 훈체 청어가 그런 불명예스러운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주로 통용되는 이야기는 영국에서 여우나 토끼 등을 쫓는 사냥개를 훈련시킬 때, 일부러 그 추격로를 가로질러 훈체 청어를 문질러 둠으로써 사냥개를 혼란에 빠뜨리는 함정을 놓는다고 합니다.  미숙한 사냥개는 처음에는 강렬한 훈제 청어의 냄새에 이끌려 원래 쫓던 사냥감을 놓치게 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사냥개를 훈련시킬 때 훈제 청어를 이용한 그런 함정을 쓰는 관행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807년 2월 14일, 정기 간행물인 Political Register에서 영국 언론인인 윌리엄 코벳(William Cobbett)이 아래와 같은 기사를 내놓으면서 붉은 청어라는 것이 뭔가 사실을 오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거의 굳어져 버렸습니다.  거기서 코벳은 자신이 어릴 때 사냥개 훈련에서 훈제 청어를 썼다고 언급하면서, 제4차 대불 동맹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했다고 잘못 보도한 영국 언론을 비판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It was a mere transitory effect of the political red-herring; for, on the Saturday, the scent became as cold as a stone."

"그건 정치적 사실의 왜곡(붉은 청어)에 의한 그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토요일이 되자 그 냄새는 마치 돌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Red herring이라는 단어를 영국 사전에 올리는데 큰 공헌을 한 윌리엄 코벳입니다.  가짜 뉴스를 전한 언론들을 비판하면서 쓴 red herring이란 단어 자체가 알고 보면 잘못된 정보에서 나온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이렇게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강한 인상을 남기면 정치인이나 언론인이나 원하는 바를 이룬 셈이지요.  아무리 터무니 없는 가짜 뉴스라고 해도, 일단 유력 정치인 또는 유력 일간지가 언급을 하면 그 사실 자체가 뉴스가 되어 대중에게 인식되니까요.  사실 그런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굳이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뉴스를 그냥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이 가짜 뉴스 전성시대를 이끄는 주된 요인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저나 저 신임 영국 총리는 왜 하필이면 왜곡의 상징인 훈제 청어에 대해 왜곡된 주장을 펼쳤던 것일까요 ?  그냥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었던 것일까요 ?






Source : https://www.ft.com/content/1ba5b9c4-a954-11e9-b6ee-3cdf3174eb89
https://english.stackexchange.com/questions/30239/where-does-the-phrase-red-herring-come-from
https://en.wikipedia.org/wiki/Red_herring


최근 제가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는 (다른 교회도 다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맥추절을 기념하는 설교가 있었습니다.  맥추절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안식일만 빼고) 매일 뿌려주시던 만나와 메추리를 먹고 살던 유대인들이 드디어 가나안에 정착하여 뿌린 첫 곡식을 거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에서는 그 다음날부터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지 않기 시작했다고 하니 무상급식이 중단된 슬픈 날이기도 하네요.

그날 목사님의 설교 주제는 더 이상 농경사회도 아닌 현대인들이 여전히 맥추절을 지켜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냥 짧게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 이었지요.  저는 이 목사님의 설교는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만,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솔직히 현대 한국 개신교에서 굳이 수천년 전 유대인들의 절기인 맥추절을 지켜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보거든요.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다 지키자면 돼지고기도 먹어서는 안 되고 선지국도 먹어서는 안 되며, 토지의 소유권은 영구적으로 매매되어서는 안 되고 그냥 최대 50년 동안의 사용권만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내용이 하나님께서 직접 지키라고 명하신 내용입니다.  


레위기 25장 
23절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8절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우리 사회의 부동산 부자들이 들으면 "빨갱이들이냐 !" 라며 벌컥 화를 낼 이야기입니다만, 엄연히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내용입니다.  악성 부채탕감과 토지공개념은 알고 보면 성경에 적혀있는 사상인 셈이지요.)

 



그러나 제가 이 목사님 설교는 무척 좋아하는 이유는, 이 목사님께서는 설교 준비를 참 많이 하시는지 매번 설교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번에도 맥추절 관련 구절인 출애급기 23장을 언급하셨는데, 덕분에 저도 간만에 출애급기 23장을 한번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내용이 많더군요.


1절 너희는 헛된 소문을 퍼뜨리지 말며 허위 증언을 하여 악한 사람을 돕지 말아라.
5절 또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이 짐을 실은 채 쓰러져 있는 나귀를 일으키려고 애쓰는 것을 보거든 그냥 지나가지 말고 그를 도와주어라.
8절 너희는 뇌물을 받지 말아라.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사람의 진술을 묵살시킨다.
9절 너희는 외국인을 학대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집트에서 외국인이었으므로 너희는 외국인의 심정이 어떠한지 알고 있다.
11절 7년째 되는 해에는 땅을 갈지 말고 묵혀 두어라. 거기서 저절로 자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하라. 그리고 너희 포도원과 감람원에도 그렇게 하라.


현대적인 도덕 관념이나 사회 정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정말 꼭 지켜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를 건성건성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지난 20년 넘게 교회 생활을 하면서, 제가 이 출애급기 23장 중에서 교회 설교를 통해 들은 내용은 아래의 딱 하나 뿐이었습니다.  저 위의 정말 훌륭한 계율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목사님은 (저 개인적으로는) 한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15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온 1월의 정한 때에 무교절을 지켜라. 너희는 7일 동안의 이 명절 기간에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하며 나에게 경배하러 올 때에는 빈손으로 오는 자가 없어야 한다.


이번 목사님은 그러지 않으셨지만, 예전 목사님들 중에는 특히 저 마지막 구절,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경배하러 오지 말라'라는 부분을 강조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맥추절 감사헌금 봉투는 따로 만들어서 주보 속에 끼워두셨지요.  

일부 개신교 성직자분들은 북한 공산당에게서 박해받은 개신교의 역사 때문인지 상당히 강경한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성도들일텐데, 하나님께서 엄격히 금지하신 가짜 뉴스 유포에 적극적으로 열을 올리시는 것은 무척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원수지간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움에 처한 원수를 못 본 척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말씀도 그렇고,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베풀며 살라는 말씀의 취지를 이해한다면, 사실 기독교인이라면 복지 확대와 평화 정착에 찬성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이런 것이었어요.  성경에 뭐라고 씌여 있건 간에, 결국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습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동성애자들은 쳐죽이라고 나오지만 그건 선지국 먹은 사람들은 자손까지 쓸어버리겠다는 말씀과 동격이므로 현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동성애자도 그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든 사람들인데,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핍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한글자 한글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조차 정말 한글자 한글자 그대로 지키는 분들은 본 적이 없고, 그 분들도 그냥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지키는 것 같습니다.  가령 위에서 인용한 출애급기 23장 15절에는 분명히 무교절 1주일 간에는 누룩 넣지 않은 빵 즉 무교병을 먹어야 하는데, 아마 그 분들조차도 1주일 동안 그런 무교병을 먹으며 지내지는 않으실 거에요.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든 미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저 또한 같은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만) 그렇게 자신의 미약함과 어리석음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의 에고가 너무 강해서 결국 자신의 뜻을 신의 뜻이라고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종교는 선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직자들의 말을 맹신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성서를 읽고 공부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원래 신학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언어에 통달해야 하는 등 상당히 고차원적인 학문이라서, 성경 한권 붙잡고 자기 혼자 해석을 하다가는 이단이라는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실제로 지식이 부족해서 엉뚱한 결론을 나름대로 내기도 쉽고요.  자신의 생각에 저 분의 말씀이 옳다라고 생각되는 성직자 분이 있다면 그런 존경할 만한 분의 말씀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제가 '성직자의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도, 그 말씀에 복종할 필요도 없다' 라고 하면 아마 화를 내실 목사님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목사님들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은 흠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개신교 자체가 바로 똑같은 이유로 바티칸 교황청이 성서의 해석을 독점하는 권위에 반발하여 생겨난 종단이라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1810년은 나폴레옹에게 있어 드물게 조용한 한 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지에서는 계속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이어지기는 했습니다만, 1809년 바그람 전투 이후 나폴레옹 본인이 직접 뛰어들 만큼 큰 전쟁은 없었지요.  그리고 1810년은 그의 제국이 최대 규모로 팽창했던 시기였습니다.  네덜란드와 북부 독일 공국들을 병합하여 프랑스의 영토가 사상 최대의 크기로 늘어난 것이지요.  게다가 유서깊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혼인을 맺고 정권의 영속성을 위한 아들까지 얻었으니, 정말 1810년은 나폴레옹에게 절정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숙적 영국과의 전쟁도 매우 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웰링턴을 스페인에서 몰아낸 것에 이어 마세나가 영국의 발판인 포르투갈까지 침공해들어갔고 (물론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싸움인 대륙 봉쇄령으로 인한 영국의 곤경이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곡물 가격은 대륙 봉쇄령 이후 60%나 치솟았고 이로 인해 영국 국민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대륙 봉쇄령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표면적으로는 잘 되고 있었습니다.  1805년 5110만 파운드이던 수출액이 1808년에는 4970만으로 떨어지더니 1810년에는 다시 6220만 파운드로 늘어났거든요.  이는 유럽 대륙으로의 수출이 막히자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수출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밀수 등을 통해 여전히 유럽에도 많은 상품을 팔고 있었지요.  그러나 1810년 중순 이후 나폴레옹의 밀수 단속이 강화된데다,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수출 특성상 대금의 상당 부분을 현금 대신 원자재나 채권을 받아야 했던 것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부족한데 유럽 대륙의 전쟁 자금은 금화나 은화로 된 경화로 지급해야 했으니, 아무리 영국이 부자 나라라고 해도 돈이 마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1809년 한 해에만 무려 4420만 파운드를 전비로 지출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의심쩍은 지폐만 넘쳐날 뿐 경화가 부족해지자 영국에서는 극심한 인플레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사재기가 발생하여 더욱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에 빠진데다, 금본위제 재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은행들도 재무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1811년에는 금융 불안정과 함께 수출액도 4390만 파운드로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유럽 대륙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으나, 당시 영국처럼 산업과 금융이 발달한 나라가 없었으니, 그 타격은 당연히 영국이 가장 크게 입었습니다.  




('템즈 강에서의 선적'이라는 Samuel Scott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폴레옹에게 승기가 막 보이려는 시기인 1810년 마지막 날, 이 모든 것의 방향을 확 돌려놓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1810년 12월 31일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 1세의 칙령이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은 영국과의 공공연한 무역 재개 및 나폴레옹에 대한 사실상의 도전장이었거든요.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


이미 다룬 내용입니다만, 기억 전환을 위해 잠깐 정리를 해보면 이렇습니다.  나폴레옹은 스페인의 정복을 위해서는 영국을 먼저 굴복시켜야 한다고 나름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상품들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큰 유혹인지라 유럽 각국은 대륙 봉쇄령을 위반하고 밀수를 계속 했습니다.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가 다스리는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나폴레옹 본인도 '면허제'라는 이름 하에 몇몇 상인들에게 영국 상품을 공식적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해줄 정도였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은 대륙 봉쇄령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유럽의 주요 해안가를 아예 프랑스 영토로 병합해버렸습니다.  그것이 네덜란드 및 발트해에 면한 함부르크(Hamburg), 브레멘(Bremen), 뤼벡(Lubeck) 등 북서부 독일 소공국들의 병합이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프랑스의 영토는 사상 최대로 확장되었고, 영국의 재정난이 더 심해지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대륙 봉쇄령의 이런 강압적인 실행은 영국 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의 고통도 증가시켰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동맹국들의 불신과 반발심도 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의 체면을 무시하고, 알렉산드르가 가장 아끼는 누이동생 예카테리나의 남편이 다스리는 올덴부르크(Oldenburg) 공국까지 병합해버린 것은 당시 유럽 대륙의 양대 세력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싸늘한 적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아, 프랑스가 이토록 크고 아름다운 적이 있었던가 ??)




나폴레옹의 관점에서 이런 병합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공동의 적국인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나폴레옹은 올덴부르크의 병합에 대한 충분한 보상도 제시했습니다.  즉, 2년 전 알렉산드르와 아름다운 우정을 쌓았던 회담 장소였던 에르푸르트(Erfurt)를 보상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모욕으로 받아들인 알렉산드르는 나폴레옹의 보상안을 거부했고, 1810년 12월 31일 러시아 황제 칙령(ukase)으로 대응했습니다.  이 칙령은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크게 2가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1) 프랑스산 비단과 와인에 높은 관세를 부과

2) 중립국 선박의 상품이 "명확히" 영국산이 아닌 경우 러시아 항구에 입항 허용


이는 대표적인 프랑스 상품을 배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영국 상품에 대해 환영하는 초대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냥 허술하게라도 가짜 서류만 만들어 제출하면 되었으니까요.  아는 나폴레옹의 패권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장이었고 이는 전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도발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자의식 과잉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렉산드르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여동생이 가엾다고 해도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요 ?


당연히 그런 결정까지는 크고 작은 많은 다른 요소들이 관여했습니다만, 가장 큰 것은 역시 폴란드와 영국이었습니다.


서방 진출을 국가 정책으로 삼는 러시아에게 있어 폴란드는 서쪽에 확보한 소중한 발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샤바 공국은, 아무리 독립국이 아니라 작센 왕의 개인 영지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러시아에게 눈엣가시 같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공국에 불과할지라도 폴란드인들의 독립 정권이 있다는 것은 러시아령 폴란드인들에게 독립의 열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1809년 제5차 대불동맹전쟁시 바르샤바 공국이 오스트리아의 침공에 맞서 꽤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바그람 전투의 결과 더 넓은 영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혹시라도 폴란드가 정식으로 독립 왕국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러시아에게 주었습니다.  


러시아의 이런 불안감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가 영리하게도 부지런히 조장했습니다.  유능한 외교관이었던 메테르니히는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를 비밀리에 이간질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 목표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나폴레옹의 패망이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 때문이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와 국경을 접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은 당시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반도를 빼앗고 싶어 했는데, 그 강력한 경쟁자가 러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프랑스가 동맹 관계라면 오스트리아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메테르니히는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사이의 맹약인 틸지트(Tilsit) 조약을 깨뜨리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았고, 이를 위해서 폴란드를 수단으로 정했습니다.  즉, '나폴레옹이 폴란드를 독립시키려 한다'라는 소문을 빈과 바르샤바에 꾸준히 퍼뜨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1810년판 가짜 뉴스였던 셈인데, 메테르니히의 비밀 선동에 홀딱 넘어간 순진한 폴란드인들은 독립 열망에 부풀었고, 바르샤바 신문들은 독립이라는 희망찬 뉴스를 꾸준히 찍어댔습니다.  이런 상황은 빈과 바르샤바에 있던 러시아인들에 의해 그대로 알렉산드르에게 들어갔고, 그의 우려와 분노는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 쿠라킨(Alexander Borisovich Kurakin, Александр Борисович Куракин)을 통해 나폴레옹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파리 사교계를 사로잡아 '다이아몬드 대공'으로 불렸던 쿠라킨 대사입니다.  그는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코스별로 차례차례 서빙되는 러시아식 정찬 방식(service à la russe)을 프랑스에 전해 오늘날의 프랑스 코스 요리를 완성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막아보려 많은 애를 썼습니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대로 화를 냈습니다.  나폴레옹이 바로 작년 오스트리아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틸지트 조약에 따르면 알렉산드르는 즉각 병력을 파견하여 나폴레옹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쳐부수어야 했습니다.  그런 편의를 바라고 나폴레옹은 폴란드 애인의 애원도 뿌리치고 폴란드 독립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핀란드까지 러시아에게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은혜를 모두 잊고 러시아는 교활하게도 러시아령 폴란드 인근에 병력만 배치해두고 어느 쪽이든 승리하는 쪽에 붙기 위해 눈치만 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공국이 오스트리아군의 공세를 분쇄하자 오스트리아령 폴란드로 침입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건 황제들끼리 우정을 나눈 동맹국의 처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꾹 참고 우방국 대우를 해주었더니 나폴레옹은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던 폴란드 독립에 대해 항의해온다 ?  이런 뻔뻔스럽고 무례한 행동에 대해 공손하게 대응할 나폴레옹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의 처가집인 오스트리아는 메테르니히의 획책 하에 끊임없이 러시아군의 이동 및 요새 강화에 대해 나폴레옹에게 고자질을 하며 이런 위기를 부추겼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과 이런 험악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알렉산드르는 각지의 요새를 강화하고 군대를 정비하는 등 전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 것은 역시 폴란드 건이 컸습니다.  알렉산드르는 교황을 잡아가둔 나폴레옹의 폭거가 독실한 카톨릭인 폴란드 국민들에게 공분을 샀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좀더 많은 자치권과 좀더 관대한 헌법을 약속하며 폴란드인들에게 18세기때처럼 러시아의 보호국으로 남는 것이 폴란드에게 유리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지만, 바르샤바에 그가 심어둔 밀사들은 바르샤바의 분위기를 솔직하게 그대로 전해왔습니다.  폴란드는 나폴레옹이 결국 폴란드에게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보고서를 접한 알렉산드르는 결국 프랑스와의 전쟁을 결국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폴란드인들에게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도 역시 메테르니히의 획책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나폴레옹은 냄새나는 폴란드인들을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치가/외교관인 메테르니히(Klemens Wenzel Nepomuk Lothar, Prince von Metternich-Winneburg zu Beilstein)입니다.  가짜 뉴스를 정치 외교에 활용하는데 있어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르에게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폴란드 외에도 또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었지요.  그것은 물론 영국, 좀더 정확하게는 영국과의 무역이었습니다.  러시아는 드넓은 평원을 가진 대농업 국가였습니다.  그런 러시아가 홍차와 설탕, 면직물, 비단, 강철 등의 물품을 수입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남아도는 자국산 밀과 아마 등의 농산물을 수출하는 것 뿐이었는데, 원래 그 가장 큰 고객이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 때문에 영국과의 교역이 막히자 러시아의 귀족들은 돈줄이 막혔고, 그 불만은 짜르 알렉산드르의 정권을 위태롭게 할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알렉산드로서는 그런 불만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거기에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나폴레옹이 여동생 시댁인 올덴부르크를 제멋대로 병합해버리고 (이건 가짜 뉴스에 의한 오해였지만) 폴란드까지 독립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1810년 12월 31일, 그는 나폴레옹의 따귀를 갈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칙령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1811년 4월 2일자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미 러시아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태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전쟁은 발발할 것이오.  나와 알렉산드르가 아무리 그를 막기 위해 노력하거나 프랑스와 러시아의 국익이 아무리 해를 입는다고 해도 말이오.  난 이런 상황을 자주 보았고, 내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쟁이 발발할 거라는 것은 마치 오페라의 줄거리가 펼쳐지는 것과 같이 뻔한 이야기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바로 영국이오."


이제 나폴레옹의 제국은 몰락을 향한 폭풍 속으로 휘말려들어갑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istory of the Expedition to Russia Undertaken by the Emperor Napoleon  by Philippe-Paul Comte de Segur

https://www.britannica.com/event/Napoleonic-Wars/The-Continental-System-and-the-blockade-1807-11

https://georgianera.wordpress.com/2015/04/16/the-port-of-london-in-the-18th-century/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Kurakin



** 목요일은 예전 다음 블로그의 글을 옮겨놓고 있고, 이건 2011년 2월의 글입니다.  유튜브에 '일부' 개신교 일당이 가짜 뉴스 풀어놓는 것은 이때부터 횡행했던 일이었군요 !



2011년 2월 경에 흥미로운 유튜브 비디오를 하나 보았습니다.  유럽 및 북미에서의 이슬람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금 틀어보니 아직도 이 비디오 클립은 버젓이 온라인 상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EksbSKw6YY


원래 영어로 제작된 이 비디오는, 지도나 그림, 음악도 무척 정성들여 만들었더군요.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전문 성우같은 목소리의 한국어로 더빙되었고, 각종 도표도 모두 깔끔한 전문가의 솜씨로 한글화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군가 꽤 돈을 들여서 만든 것이고, 또 그 덕분에, 상당히 신뢰성있는 자료라는 인상을 줍니다.  마치 BBC나 K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불과 20~30년 안에 유럽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유럽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현재 프랑스의 20세 미만 인구의 30%는 이미 이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반 프랑스 가정의 가구당 출산률은 1.8명인데, 프랑스 내의 무슬림 출산률은 무려 8.1명이나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프랑스 남부에서는 교회보다 이슬람 모스크가 더 많다고 덧붙입니다.





또한 네덜란드는 15년 내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벨기에 신생아의 50%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있다고 하고요.  또 유럽의 기독교도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몇년 안에, 러시아군의 40%는 무슬림 병사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러시아군의 절반 가까이가 이슬람교도라니 !






결정적인 증거도 들이댑니다.  바로 독일 통계청입니다.  여기서, 독일은 2050년에는 무슬림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인용합니다.






염장지르는 소리도 곁들입니다.  서구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중동권 국가 지도자인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어록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슬람은 폭탄 테러 없이도 유럽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유럽내 이슬람 인구 폭발을 통해서요.






이 비디오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사실일까요 ?  한마디로 말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무슨 사람이 토끼나 돼지도 아니고 가구당 8명이 넘는 자녀를 평균적으로 낳을 수 있겠습니까 ?  일단 프랑스에서는 종교별로 인구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국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인구 통계 조사를 사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면, 프랑스내 무슬림 가정의 평균 출산률이 8.1명이라는 신뢰성 있는 결과는 낼 수 없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에 가장 많은 무슬림 이민을 보내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나 모로코의 가구당 출산률은 2.38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낭만적인 프랑스로 이민갔다고 해서 갑자기 3배 넘는 출산률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이슬람 인구는 5%에 불과합니다.  벨기에에서는 6%에 불과하고요.  이들이 순식간에 그렇게 많은 신생아를 낳을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독일 통계청이 발표했다는 예측, 즉 2050년까지 독일은 무슬림 공화국이 된다는 것은 새빨간 날조입니다.  독일 연방 통계청의 부청장인 발터 라데르마허(Walter Radermacher)에 따르면, 독일의 인구가 감소 추세라는 발표를 한 것은 맞지만, 2050년 무슬림 어쩌고 한 발언은 독일 통계청에서는 나오지 않은 말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종교적으로 민감한 그런 문제를 정부 기관에서 섣불리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믿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 비디오에 대한 반론은 모두 영국 BBC의 보도를 인용한 것입니다.  Source는 http://news.bbc.co.uk/2/hi/8189231.stm 를 참조하십시요.)


카다피의 발언도 그렇습니다.  카다피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어디 뉴스의 해외 토픽에 반드시 보도가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제가 카다피라면 유럽 내에서 반 이슬람 운동에 유용하게 인용될 그런 민감한 발언을 서방 언론에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허위 정보를 담은 비디오를 비용을 들여가며 만들어 올렸을까요 ?  그것이 누구이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작 비디오는 전세계적으로 약 1천만번 접속되었습니다.  국내용으로 한글 더빙된 버전은 다행히 약 1,200회 정도만 접속되었습니다. 이 원작 비디오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린 분은 (이 분이 만드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기독교 신자이신 것 같습니다.  (올리신 다른 비디오를 보니 교회 관련 내용이 주종이더군요.)


이 비디오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목적은 대략 짐작이 갑니다.  유럽의 이슬람 이민 및 그 2세들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남부 및 대도시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아랍계 이민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본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극우파들이 그런 무슬림 이민들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기존 프랑스인들의 직업 안정성과 치안을 위협한다고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 세력을 늘이려고 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에 공감하고 있는 편이라는 우려섞인 뉴스도 읽었습니다.  아마 이 비디오는 그런 감정을 더욱 조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기존 교회 중 많은 수가 이슬람 모스크로 이미 바뀌었다'라든가, 카다피의 어록, 그리고 그렇잖아도 위협적인 러시아군을 (잠재적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는) 무슬림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는 멀쩡한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비디오를 기독교 세력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반아랍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만들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아무튼 공격 대상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으로 삼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구조를 끌어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비디오 내용은 너무나 뜻 밖인 것들이 많아서, 저도 처음에 이 비디오를 볼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게다가 공격받는 대상인 무슬림들의 반발은 더욱 강했지요.  덕택에 이 비디오에서 주장되는 바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유튜브 비디오도 올라왔습니다.  물론 공격 비디오에 비하면 조회수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만, 실은 이런 반박 비디오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 공격 비디오 원작자의 의도에 놀아나는 행위 같습니다. 





(반박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갈등의 올가미는 조여들어 옵니다.)




그 원작 비디오의 목적은 갈등 조장입니다.  이렇게 반박 자료를 만들어 올리면, 그에 대해 다시 혐오성 댓글이 달리면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 (혹은 국수주의자들)의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는 형태가 되지요.  가령 이 반박 비디오에는 '좋은 자료다'라는 감사 댓글도 있지만, '우리 무슬림들은 더 단결하여 백인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무시 못하게 해야 한다'라는 무슬림 수구꼴통의 의견도 달리고, 또 다음과 같은 무슬림 이민들에 대한 혐오 댓글도 달렸습니다.


Just another fag who wants whites gone so his brown friends can rape and pillage.  

백인들을 다 쫓아내고 그의 갈색 피부 친구들이 강간과 약탈을 저지르길 바라는 쓰레기가 또 있구만.


저는 사실 무슬림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저 뉴스나 책, 인터넷 댓글에서 읽은 것이 전부지요.  무슬림들이 정말 안 좋은 족속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디오가 기독교 정신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BBC 보도처럼, 이 비디오의 상당 부분은 날조 및 허위입니다.  성경의 십계명 중에 동성애 하지 말라는 계명은 없지만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은 있습니다.  이 비디오를 만든 사람이 기독교적 신앙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면,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은 박애와 믿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종교를 가졌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 및 혐오를 일으키려는 것은 전혀 기독교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예수님이 본다면 (이건 불교도들과 부처님의 관계도 비슷할 것 같은데) 예수님이 크게 슬퍼하실 것 같지 않으십니까 ?





The Letter of Marque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


(잭의 사략선에서 군의관 및 군의관 보조로 일하는 스티븐과 마틴이, 200여명의 승무원들 중 한명의 악마 숭배교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공공연하게 악마를 숭배한단 말인가 ?"


"그렇다네.  그 친구는 악마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이야기해주는데, 그 이름은 공작새라고 하더군.  그들의 사원에 가면 공작새의 초상이 있다네."


"그렇게 괴이한 관점을 가진 친구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부적절하려나 ?"


"괜찮다네.  그 친구는 비밀스럽게 이야기한 게 아니거든.  선장의 요리사인 아디(Adi)가 바로 그 친구야."


"난 그 친구가 아르메니아인으로서 그레고리파 기독교도인줄 알았는데."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 친구는 다스니(Dasni) 인으로서,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 사이에 걸친 지역 출신이라네."


"그럼 그 친구는 신을 전혀 믿지 않나 ?"


"아냐, 믿어.  그 친구와 그 동족들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과, 신의 성스러운 본질을 믿는다네.  그리고 마호멧을 예언자로서 인정하고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을 인정해.  하지만 그들 말에 따르면, 신께서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용서하고 그를 원래 자리로 복위시켜 주었다는 거야.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그러므로 이 세계의 속된 일들은 악마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거지.  그러니까 다른 존재를 섬기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온순하고 성격 좋은 친구처럼 보이던데.  게다가 확실히 요리 솜씨도 끝내주고 말일세."


"그렇지. 그 친구가 내게 자신의 종교에 대해 친절하게 말해주면서, 진짜 터키 과자 로쿰(lokum, 영어로는 Turkish Delight)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줬었어.  성서에 나오는 데보라(Deborah)는 정말 죄가 될 정도로 그 과자에 탐닉했었다는군.  그리고 또 자신의 출신지인 다스니 지방의 황량한 산악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지.  거기서는 사람들이 반지하식 주택에 사는데, 한편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핍박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쿠르드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 가족들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화합이 잘되는데다, 아주 먼 친척에게까지 강한 애정으로 결속되어 있다는군.  분명한 건 다스니 인들은 자기들의 교리처럼 (악마스럽게) 생활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사실 누가 그러겠나 ?  만약 아디가 우리 기독교인들이 따르는 믿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우리가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비교를 해 본다면, 우리가 그 친구를 쳐다보는 것처럼 그 친구도 우리의 종교 생활에 대해 크게 놀라게 될 걸세."






(Turkish delight...  나니아 연대기에서 마녀가 그 꼬마를 처음 만났을 때 주었던 그 허연 가루가 잔뜩 묻은 젤리같은 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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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열심히 재미있게 보았던 허영만 화백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의 한장면입니다.  테무진이 흉악범 마을에 사람을 모집하러 갔다가, 사실은 이들이 죄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야기해주는 장면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악마교라는 것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하는 가르침이라면,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를 만들수는 없겠지요.  아마 몇몇 사이코들이 개인적으로 섬기는 컬트 정도로 끝날 것입니다.)




저 위 인용 소설 속의 대화 내용처럼, 성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가진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지만, 제가 아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 교회에 정말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들은 듣거나 보았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그 돈으로 크고 호화로운 교회 건물을 짓거나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무슬림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찬송가를 부르게 하더군요.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눠주라고 한 것은 아닐텐데요.  또 원수가 뺨을 때리거든 반대쪽 빰을 내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미국은 쌍동이 빌딩이 공격당했을 때, 왜 저들이 미국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은 별로 하지 않은 것같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들이쳤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조지 부시는 정말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같지는 않고, 그냥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도자답더군요.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죽음과 비극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공격했으니 우리는 더 강하게 보복하겠다 !!!  이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의 가르침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인간의 이해 관계를 거치면서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예 제도지요.  17~18세기 당시 노예 무역이 한창일 때, 천만뜻밖에도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기독교적인 이론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와 노예로 부려먹는 것을 합리화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노예제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이 없고, 오히려 노예는 주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나와 있을 뿐더러, 아프리카에서 예수님을 모르고 이교도로 살다가 그 영혼이 영원히 저주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백인 농장주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기독교로 전도시키는 것이 흑인들의 영혼을 위해 더 나은 조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사는 방법인가요 ?  하지만 결국 노예제 폐지도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기독교 단체들의 노력이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




TV 뉴스를 보니 어떤 대형 교회 목사님은 시가 3억원 짜리 외제차를 (아마 벤틀리였던 것 같은데) 타고 다닌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흥분된 인터뷰를 잠깐 들어보니 이건 선물을 받은 것인데, 자기가 이 차를 교회에 봉헌했다고 하더군요.  그 인터뷰를 들으니 저도 덩달아 흥분이 되던데요.  그러면서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 중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by Victor Higo  (배경 : 1810년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 ----------------------


(디뉴 지방의 담당 주교가 교구에서 이런저런 구제 활동을 벌이다보니, 비용이 쪼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이 어렵다고 한탄을 하니, 주교의 식모인 마글로아 부인이 예전 왕정 시대 때는 주교에게 마차 및 여행 경비를 정부에서 보조해주었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주교는 정부에 마차 및 여행 경비 보조를 신청합니다.  정부에서는 토의 끝에, 주교에게 마차, 우편, 여행 경비로 3천 프랑의 예산을 배정해줍니다.)


이것이 그 지역 시민 사회에 상당한 격분을 불러 일으켰다.  또, 예전 혁명 시절에 500인 위원회의 의원이었고 뷔르메르 18일 사건 (나폴레옹의 쿠데타)을 지지했던, 현직 원로원 의원으로서 그 주교의 관할지인 디뉴 근처에서 멋진 원로원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물급 인사도 이 움직임에 동조하여, 다음과 같은 분노의 편지를 비고 드 프레므뉴(Bigot de Premeneu) 씨에게 보냈다.


(역주 : 500원 위원회는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해산시킨 의회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요. 이 원로원 의원은 그저 권력만을 좇아 움직이는 지조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비고 드 프레므뉴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로서, 나폴레옹 민법전의 편저자이자 나폴레옹 밑에서 종교성 장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마차 비용이라고요 ?  주민이 4천명 밖에 안되는 좁은 마을에서 무슨 마차가 필요합니까 ?  우편요금과 설교 여행 경비라고요 ?  이런 여행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길도 없는 산간 마을에서 편지를 나르느라 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  이 지방 사람들은 말 등에 올라타고 여행을 합니다.  샤토-아르누의 듀랑스에 있는 다리는 황소가 끄는 달구지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입니다.  이 성직자라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습니다.  탐욕스럽고 구두쇠이지요.  이 주교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도덕적인 인물처럼 시작하고는 결국 다른 성직자들과 똑같이 행동하는군요.  이 주교는 유개 마차와 멋진 이륜 마차를 갖고 싶다는거지요.  예전 시절의 주교들이 가진 모든 사치품을 다 가지고 싶다는 겁니다.  이런 비공식적인 성직자들이라니 !  백작 각하, 황제 폐하께서 이런 협잡꾼들을 다 제거해버리지 않으신다면 일이 제대로 처리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황은 물러가라 !  (이 시절에는 나폴레옹과 교황과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등등



다른 한편으로 주교관 식모 마담 마글로아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녀는 주교의 여동생인 밥티스틴 양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주 좋아요. 이제 주교님께서 비록 다른 사람 생각만 하시는 것으로 시작은 했지만, 결국 자신 생각도 하셔야 하거든요.  그분이 자선활동에 모든 돈을 다 써버리셨지만 이제 우리를 위한 3천 프랑이 있으니, 고생이 끝난거지요 !"


하지만 그날 저녁, 주교는 다음과 같은 노트를 적어서 여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마차 및 여행 경비 내역


구제 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고기 수프                 1500 프랑

엑스(Aix) 지방의 어머니회                               250 프랑

드라귀냥(Draguignan) 지방의 어머니회              250 프랑

버려진 아이들 비용                                         500 프랑

고아들 비용                                                  500 프랑


이것이 미리엘 주교의 개인 비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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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미리엘 주교가 나중에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건네주는 그 착한 신부님입니다...  원래 서양 속담에 as poor as church mouse 라는 말이 있지요.  신도들이 헌금을 안 내서 교회 쥐가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따라, 돈될 만 한 것은 모두 내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때문에 교회에 돈이 없는 것이지요.  부디 그 대형 교회 목사님도 레미제라블의 이 장면은 좀 읽어보셨으면 해요.  이미 읽어보셨을까요 ?  그렇다면 약간 비극이겠네요. 



최근 몇몇 언론에서 '주한미군에게 난연(flame-resistant) 군복을 지급할 계획이며, 이는 한국에서 곧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라는 취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202004289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3448676


"주한미군사령부가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전투복'을 주한미군 전원에게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관련 업체에 주문한 것으로 1일 알려졌습니다. 난연 전투복은 미군이 2006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병을 폭발 화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이번 결정은 유사시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전 준비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반면 '민중의 소리'라는 매체에서 아래와 같은 반박 보도를 내기도 했고, 헤랄드경제 인터넷판에서도 같은 취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http://www.vop.co.kr/A00001250287.html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202000531


"주한미군 관계자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한미군사령부가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難燃·Flame Resistant) 전투복을 주한미군 전원에게 지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와 관련해 “(직업군인인) 미군에게 지급한다는 자체가 틀린 명백한 오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주한미군의 이번 결정은 유사시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전 준비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는 내용과 관련해서도 “우리는 자주 군복을 교체한다”면서 “모두 미군(개인)이 자체 구매하는 것이고, 주한미군이 독립해서 특수복을 지급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어느 쪽 보도가 맞는 말일까요 ?   만약 이것이 미군의 북침 작전 조짐이라면, 주한미군 측에서야 작전 보안상 당연히 부인할 것입니다.  그러니 주한미군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민중의 소리 기사 중에서, “(직업군인인) 미군에게 지급한다는 자체가 틀린 명백한 오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건 미군 군복의 구매 절차에 대해 잘 모르는 기자가 낸 오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랑은 결코 아니지만) 저는 약 25년 전에 카투사로 복무를 했습니다.  그때 매우 신기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미군은 군복을 '지급'받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미군 기지마다 '군복 상점'이 있고, 미군들은 거기서 군복과 군화, 군모 등을 돈을 주고 삽니다.  세상에, 군복을 돈 주고 사입어야 한다니 !  무슨 놈의 군대가 이렇단 말입니까 ??


그런데 의외로, 병사들이 자기 돈으로 군복을 사입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꽤 보편적인 일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병사들에게 군대가 일괄적으로 군복을 '지급'하는 것은 오히려 더 특별한 경우입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니까, 당연히 수건과 비누부터 시작해서 군복과 헬멧, 총기류는 물론 하루 세끼와 숙소까지 모두 군이 지급합니다.  그러나 미군은 모병된 직업 군인들입니다.  이들은 충분한 급여를 받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돈을 내고 군으로부터 구입하는 것입니다.  사실 군복 뿐만 아니라, 군 식당(dining facility 혹은 DFAC, 혹은 그냥 mess hall)에서 주는 식사에 대해서도 급여 공제의 형태로 별도로 돈을 냅니다.  물론 미군조차도 군인 급여라는 것은 결코 넉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군들에게는 군복을 사기 위한 수당(annual stipend for the purchase of uniforms and accessories)이 별도로 지급됩니다.   그럼 병영 막사에 대해서도 월세를 내냐고요 ?  제가 군 시절 미군하고 뭐 아주 친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역시 급여에서 공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매우 싼 가격이겠지요.  가족이 있는 경우 군 막사가 아니라 기지 밖 민간 숙소에서 지내는 미군도 꽤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급여에서 막사 월세가 공제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 민간 숙소의 월세는 병사 개인 돈으로 지불해야겠지요.  


설마 그럼 M4 라이플 같은 개인 화기류도 자기 돈으로 구매하는 것이냐 라고 놀라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군화와 군모(soft cap), 군복류는 피복류로서, 일종의 소모품이자 개인 소유물로 처리됩니다만, 총기는 물론 헬멧과 배낭, 탄띠 등은 소모품이 아니라 전투용 장비로 취급되고 군의 소유물을 병사들이 대여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쉽게 이해하려면 병사가 한 기지에서 다른 기지로 전출 가는 상황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경우 병사는 군복과 여별의 군화 등을 더플백에 넣어서 가되, 헬멧과 배낭, 총기류는 기지에 반납하고 갑니다.  헬멧과 전투용 배낭은 군 장비이고, 군모와 더플백은 개인 소유물인 셈이지요.





저 위 '민중의 소리' 기사에서 “(직업군인인) 미군에게 지급한다는 자체가 틀린 명백한 오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미군 당국이 병사들 개개인에게 군복을 지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소리이지요. 


그런데, 사실 그게 또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1년부터 2014년까지의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및 평정 작전을 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 참전한 병력들에게는 저 위 세계일보 기사에서처럼 난연성 군복(Flame-resistant Army Combat Uniform, FRACU)을 지급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마 공짜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제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일부 금액이 참전 병사들의 급여에서 공제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전 투입에 따른 이런저런 추가 수당이 훨씬 많았을테니 별 티는 나지 않았겠지요.  참고로, 군모부터 전투복, 군화와 양말까지를 다 사려면 병사 개인은 대략 100달러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주한미군 병사들에게 저 난연성 군복이 지급될 것이라는 뉴스가 반드시 오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미군 내에 정보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오보라기보다는, 오해가 빚은 기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구글링을 해보시면 쉽게 공감하실 것입니다.  즉, 아래 미육군 신규 군복 교체 관련 공고와 기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armyg1.army.mil/hr/uniform/docs/FRACU.pdf

https://www.armytimes.com/news/your-army/2015/06/01/camo-update-new-acus-hit-store-shelves-july-1/

http://www.hcdmag.com/ar-670-1/combat-uniform-ensemble/



요약하면, 미육군은 2015년부터 군복(Army Combat Uniform, ACU)을 작전용 위장복(Operational Camouflage Pattern, OCP)으로 교체하고 있습니다.  이건 일괄적으로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기지내 군복 상점에 배포되는 군복이 신상으로 바뀐다는 것 뿐입니다.  병사들은 기존 군복이 낡고 헤어져 새 군복을 살 때, 새로운 OCP 디자인의 ACU를 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ACU 교체 계획은 2019년까지, 무려 4년에 걸쳐 진행됩니다.  기존에 만들어 비축해놓은 기존 UCP(Universal Camouflage Pattern) 디자인의 ACU가 다 소진될 때까지 넉넉한 시간을 주는 것이지요.  이 기간 동안에는 새 군복과 예전 군복을 혼용해서 입는 것이 허용됩니다.  물론 2019년 이후에는 기존 UCP 디자인의 ACU를 입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윗 사진이 UCP이고 아랫 사진이 신규 OCP입니다.  뭐 민간인의 눈엔 둘다 그냥 군복일 뿐이지요.)




이 새 군복 프로그램과 난연성 군복은 무슨 상관일까요 ?  미군도 예전부터 난연성 군복, 즉 FRACU를 입었던 것은 아닙니다.  미군에게 난연성 군복이 지급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Operation Enduring Freedom 중이던 2010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좋았다고 생각되었는지, 불연성 면직과 나일론, 아라미드 섬유로 만들어진 FRACU를 이번 새로운 군복 프로그램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ACU와 난연성 FRACU가 군복 상점에서 시판됩니다.  또, 아프가니스탄 등지로부터 재배치되는 병사들에게, 현장에서 입던 FRACU를 새로 배치받은 기지에서도 평상 근무복으로 입을 수 있도록 허가하는 조치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문제의 난연 전투복 Flame-Resistant Army Combat Uniform, FRACU 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난연성 군복인 FRACU가 군복 상점에 배포되는 것은 미군이 2015년~2019년 사이에 진행 중인 새로운 군복 교체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입니다.  주한 미군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전세계에 주둔한 모든 미군 기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올림픽 끝나면 전쟁 난다는 것은 근거없는 괴담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FRACU가 일반 ACU보다는 비쌀 것이고, 따라서 병사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FRACU보다는 일반 ACU를 사려고 할 것 같습니다.  혹시 병사들에게 적어도 1벌의 FRACU를 갖추라는 강제 규정이 함께 내려졌는지 찾아보았으나, 그런 기사는 인터넷에는 뜨지 않네요.  글쎄요, 굳이 별도의 강제 지시가 없더라도, 전투시 자신의 생존에 대한 문제니까 더 비싸더라도 자발적으로 FRACU를 구매하는 병사들이 많을지도 모르지요.  





사족 1.   

미군은 돈을 내고 군복을 사입는다면, 카투사는 어떻게 하냐고요 ?  카투사도 같은 미군 군복 상점에 가서 군복을 삽니다.  잘 기억은 안 나는데, 1년에 한번인가 2년에 한번인가, 카투사 병사들에게도 거기서 군복류를 살 수 있는 일종의 포인트가 주어지고, 그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하여 필요한 군복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포인트로는 야전 상의 한벌 사기에도 불충분한 금액이었고, 그냥 군복 바지와 상의 정도를 살 수 있는 금액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족 2.  

망나니 미군 병사들이 군복 살 돈으로 술을 마셔버리고 그냥 낡은 군복을 입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어떻게 될까요 ?  실제로 그런 케이스를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런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낡은 군복을 입는다면, 평상 근무시 부사관에게 지적을 받을 것이고, 특히 1년에 한번 정도 있는 장비 검열 때 반드시 지적을 받게 됩니다.  직업 군인이니 그렇게 지적을 받는 것은 근무 평점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니, 돈 몇 푼 아끼려고 무리하게 낡은 군복만 입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족 3.  

헬멧과 소총, 배낭 등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부대 소유 장비로서 전출시 반납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혹시 사용 중에 헬멧이나 배낭 등을 파손시키는 경우 병사 개인이 돈으로 변상해야 할까요 ?  제가 알기로는 변상해야 합니다.  그런 장비를 지급/반납하는 창고(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에서는 장비를 반납 받을 때 꼼꼼히 검사하여 파손된 부분이 없는지 조사하거든요.  물론 정당한 사유(fair wear & tear)인 경우에는 부대 지휘관이 승인하면 그에 대한 변제를 면제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설마 소총도...??  제가 알기로는 총기 등의 무기류는 별도로 관리되며, fair wear & tear 이외의 파손이나 분실은 돈으로 변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군법회의감이라고...  그러니 군에 간 아들이 집에 전화를 걸어 'K2 소총을 망가뜨려 급히 돈이 필요하니 송금을 해달라'는 소리를 하면 그냥 매정하게 끊으시면 되겠습니다.


사족 4.  

역사적으로 군대가 군복을 지급하는 것이 더 드문 일이라고 했지요.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들은 갑옷과 방패, 창 등을 모두 개인 비용으로 마련해야 했습니다.  중세 영국에서 유사시 소집되는 농민병들도 무기와 장비를 자기 돈으로 마련해서 소집에 응해야 했고요.  제 기억으로는 어느 책에선가 그런 무기와 장비는 '따뜻한 누비옷과 철제 헬멧, 그리고 튼튼한 창 한 자루'라고 규정되었다고 읽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 병사들은 자신의 비용으로 벙거지와 군복, 창 등을 마련해야 했다고 들었는데, 제가 그쪽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사족 5.  

제 블로그의 주제인 나폴레옹 시대는 어땠을까요 ?  모병제이던 당시 영국군은 최초 입대시 지급받는 군복류에 대해 모두 돈을 내야 했습니다.  물론 입대할 때 군복살 돈을 들고 입대해야 했던 것은 아니고, 급여에서 공제되었습니다.  심지어 전투에서 만약 머스켓 소총을 분실하거나 파손하면 그 비용도 급여에서 공제되었습니다.  물론 지휘관이 전투 상황상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인정해주면 면제를 받았지요.  징집제인던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프랑스군은 직업 군인인 영국군의 약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았지만, 아무튼 급여를 받긴 받았거든요.  제가 전에 인용했던 당시 프랑스 징집병이던 쿠아녜의 회고록 중 아래 내용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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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진한 쿠아녜의 여단은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 크레모나(Cremona)에 수비대로 주둔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쿠아녜는 난감한 일을 겪습니다.  수비대의 거처가 벼룩과 빈대가 들끓는 짚단을 쌓아놓은 곳이다보니, 이 해충에게 시달리던 쿠아녜는 군복 자켓에서 벼룩과 빈대를 없애겠다고 잿물을 만들어 자켓을 담궈놓습니다.  그러나 자켓이 너무 싸구려 원단으로 만든 것이었는지 아니면 잿물이 너무 강한 것이었는지, 안감만 남기고 자켓이 그냥 녹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  당장 입을 옷이 없어진 쿠아녜는 글자를 아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고향 집의 아버지와 삼촌에게 편지를 각각 씁니다.  군복을 새로 살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는 것이지요.  나중에 늦게나마 착불 형식의 답장들이 왔고, 쿠아녜는 그 편지 2통 값으로 3프랑(약 3만7천원 정도)의 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글자를 아는 하사관에게 그 내용을 읽어달라고 하니, 아버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 돈을 못보내겠다는 내용이었고, 삼촌은 세금을 방금 낸 상태가 돈이 한푼도 없다는 핑계로 역시 돈을 못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쿠아녜는 크게 실망하고 삐져서, 두번 다시 아버지나 삼촌과는 편지를 주고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동료들에게 꿨던 우편비용 3프랑을 갚아야 했으므로, 1번에 15수(약 9천원 정도)의 가격으로 민치오 강변에서 동료들 보초 서는 것을 대신 서주어야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