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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 잡담 - 뒤죽박죽 상륙작전 보통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군이 미군으로부터 위성사진이니 뭐니 해서 아르헨티나 수비군의 온갖 세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별로. 영국군은 포클랜드 섬 정확히 어디어디에 활주로가 있고 어디에 경공격기들이 배치되었는지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함. 단지 아르헨군의 무선통신 도청 및 암호 해독은 꽤 잘 되었음. 가령 아르헨티나군의 무전 속에 'Calderon'이라는 항공기지 이름이 나오는데, 이게 포트 스탠리를 말하는 건지 혹은 아르헨티나 본토의 공군기지 이름을 말하는 것인지 전혀 몰랐음. 정보부가 열심히 분석한 끝에 아무래도 칼데론은 여태까지 영국군이 파악하고 있던 것 이외의 추가적인 활주로를 지칭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따라 항공 정찰을 통해 포클랜드 서(West) .. 2022. 3. 10.
캡틴 아메리카와 기획 부동산 - 1813년 나폴레옹의 전비 마련 당시 병사 하나를 입히고 배낭이니 잡낭(giberne) 같은 각종 장구류를 갖추는데 157프랑이 들었고, 머스켓 소총으로 무장시키는데 추가로 100프랑이 들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20만 병력을 갖추는데 약 5천1백만 프랑이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포병대와 기병대도 편성해야 하고 급여도 지급해야 했으므로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나폴레옹이 1798년 약 2만5천의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을 떠날 때 추정된 필요 예산이 약 9백만 프랑이었습니다. 이건 약 5천만 프랑으로 추산되는 해군 함대 비용을 제외한 예산이었습니다. 1인당 360프랑이 들어간 셈이지요. 15년 동안에 인플레가 있었을테니 실제로는 인당 400프랑 이상 들었을 것입니다. 또 비슷하게 참조해볼 수 있는 수치는 .. 2022. 3. 7.
잭 오브리가 말하는 엔클로저 운동 - 공유지의 비극 소규모 자영농의 몰락은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도 아니고, 또 20세기 들어서서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17세기부터 진행되던 일이고, 특히 나폴레옹 전쟁 동안에 급속도로 진행된 일입니다, 소위 말하는 인클로저(inclosure, 당시 스펠링은 enclosure가 아니라 inclosure였고, 지금도 법률 용어로는 inclosure라고 한다는군요) 운동이라는 것이었지요. 아마 고딩 세계사 시간에들 배우셨을텐데, 그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시험에는 나오지 않지만, Patrick O'Brian의 나폴레옹 전쟁 소설인 'Yellow Admiral'을 통해 공부해보도록 하시지요. Yellow Admiral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4년 영국) ----------------.. 2022. 3. 3.
파운드와 프랑 - 신용과 귀금속의 경쟁 앞서 보셨다시피, 전쟁에 필요한 3대 자원 중 사람과 장비는 사실 나폴레옹이 뭔가 극적이고 기발한 묘책을 내놓아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고, 그냥 프랑스의 웅후한 역량을 믿고 활용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만들었다기 보다는 프랑스가 나폴레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3대 자원 중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바로 돈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여기엔 분명히 누군가의 결정이 필요했고, 그 결정을 내릴 사람은 나폴레옹 밖에 없었습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1798년 프랑스 대혁명이 나고 제1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지면서 프랑스 혁명정부도 당장 돈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정부도 처음에는 합리적이고 나름 기발한 방법으로 돈 문제를 해결했습.. 2022. 2. 28.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원탁의 기사들의 모험 포클랜드 전쟁에서 벌어진 첫 상륙전인 San Carlos 전투에 대해 밀덕들은 주로 아르헨티나 공군기들이 얼마나 용감히 싸웠는지, 그리고 영국 구축함과 프리깃함들이 얼마나 곤경을 겪었는지에 대해 집중. 그러나 그 작전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상륙함들. 이 전투에는 당시 로열 네이비가 가진 모든 상륙전 자원이 총동원됨. 즉, Fearless-class의 LPD (Landing Platform Dock) 2척, 그리고 Round Table-class의 LSL (Landing Ship Logistic) 6척이 모조리 참전. 그것도 부족하여 Canberra를 비롯한 민간 여객선 및 화물선 등도 동원됨. 아무래도 LCU 및 LCVP 등의 상륙정을 직접 발진시킬 수 있는 LPD가 2척 밖에 없었던 것이 병력과 물자 .. 2022. 2. 24.
석탄과 머스켓 - 1813년 프랑스의 병기창 지난 편에서, 전시에는 인구의 2.5% 정도를 병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 같은 경우 7년 전쟁 기간 중 인구의 6%에 달하는 병력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 용병들이긴 했습니다. 왜 인구 대비 더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기 3년 전인 1786년, 프랑스의 무장병력은 고작 16만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8년 뒤인 1794년, 제1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럽 전체와 싸워야 했던 프랑스 혁명정부는 무려 80만의 병력을 소집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프랑스 인구가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았으.. 2022. 2. 21.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어? 왜 거기에? 영국 포클랜드 원정군의 주축은 로열네이비였지만 따지고 보면 해군의 임무는 지상군을 안전하게 상륙시켜 제 할 일을 하게 해주는 것. 그리고 섬을 공격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지상군의 상륙. 부동산 투자와 상륙작전은 공통점이 많은데 바로 입지와 타이밍이 절대적이라는 점. 상륙 및 교두보 확보의 임무를 지게 된 것은 로열마린, 그러니까 영국 해병대의 제3 코만도 여단(3 Commando Brigade)의 지휘관 Julian Thompson. 그런데 외지인이 지방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그래서 현지 사정에 밝고 믿을 만한 공인중개사 확보가 필수. 톰슨 중장에게는 천만다행으로, 그에게는 Ewen Southby-Tailyour 소령(아래 사진)이 있었음. 사우스비 소령은 바로 4년 전에 포.. 2022. 2. 17.
마리-루이즈여 전진하라 - 1813년의 새로운 군대 먼저, 나폴레옹이 어떻게 병력을 충원했는지 보시겠습니다. 나폴레옹이 바로 며칠 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들에게 떠들었듯이 그에게는 이미 30만의 새로운 군대를 편성할 계획이 다 서있었습니다. 그 중 10만은 오스트리아-프로이센에서 뽑아낼 생각이었으니 20만이라고 쳐도, 근 1년에 걸쳐 편성했던 50만 대군을 방금 다 말아먹고 돌아온 주제에 봄이 되기 전 3개월 안에 20만 대군을 새로 편성하겠다는 말은 과장이 심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계산 착오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그다지 큰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는 혹시 땅에 뿌리면 병사들이 솟아난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용의 이빨 같은 거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나폴레옹에게는 용의 이빨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프랑스였지요. (땅에 뿌리면 병사들.. 2022. 2. 13.
포클랜드 전쟁 잡담 - 아르헨티나 지상군의 고민과 선택 짐작하시다시피 대만에 대한 중국의 침공 가능성 때문.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 안 한다 침공할 수 있다 어림없다 등등 말은 많지만 사실 붙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름. 기술적인 문제의 핵심은 중국이 대만 일대에서 제공권 장악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와 중국 해군에게 대만 해협을 가로지른 상륙작전 수행 능력이 있느냐인데, 사실 그것도 당사자인 중국도 모를 거임. 밀덕들이 참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는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실은 이때도 고명하신 군사전문가들은 모두 영국 원정군의 패배를 예상.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결과는 영국군의 완승. 대만 섬의 크기는 36,197 km², 포클랜드 섬의 크기는 12,173 km² (생각보다 큼). 일반적으로 상륙작전에서 교두보 확보 여부 자체는 섬의 크기가 작을 수록 .. 2022. 2. 10.
원정 실패의 계산서 - 빈털터리 나폴레옹 12월 19일 조례부터 정무를 시작한 나폴레옹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고 의욕이 넘쳤습니다. 전례없는 패전에 불안해하던 그의 정부 각료들은 갑자기 황제가 파리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렸는데, 그런 관료들에게 나폴레옹 개인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러시아 원정을 떠나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비(非)프랑스인 장교들조차도 먼 발치에서나마 나폴레옹을 보고는 자기로 모르게 흥분되고 감화되어 열정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대부분의 왕정이 다 그렇긴 합니다만, 확실히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나폴레옹 개인의 개입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즉각 새로운 병력 모집과 부대 편성을 위한 지시를 부지런히 날리기 시작했.. 2022. 2. 7.
밀리터리 잡담 - 수직착함이 과연 더 안전한가? 사진1은 며칠전 남중국해에서 꼬로록한 F-35C의 모습. USS Carl Vinson에 착함하다가 분명히 갑판에 닿았으나 문제가 생겨 조종사 포함 7명의 부상자를 내고 저 모양이 됨. 정확한 사고 경위는 알려진 바 없으나 부상자가 저렇게 여러명 발생한 것을 보면 아마도 arresting wire가 끊어진 듯. F-35C는 날개 면적을 늘리는 등 CATOBAR 함재기에 맞게 설계 변경을 했으나 여전히 착함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진2는 WW2 때 착함 사고를 내는 Corsair... 어레스팅 와이어도 그냥 쇠줄이 아니라 각종 피스톤과 밸브에 구성된 압력 장치에 연결되어있고, 착함하는 함재기의 남은 연료, 무장 등의 무게에 따라 그 인장력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의외로 매우 복잡한데, .. 2022. 2. 3.
새벽의 불청객 - 2주간의 로드 무비 12월 11일 새벽, 꾸벅꾸벌 졸며 썰매를 달리던 나폴레옹은 콜랭쿠르에게 마치 우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 지나고 있는 소도시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워비치(Łowicz)라는 대답을 듣고는, 마치 정말 우연히 생각났다는 듯이 나폴레옹은 '여기서 머지 않은 곳에 마리아 발레프스카의 집이 있다'라며 잠깐 거기에 들러 옛 연인에게 안부인사(?)나 전하면 어떨까라며 콜랭쿠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마 나폴레옹은 바르샤바를 떠난 뒤 워비치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그 비상한 머리로 암산하면서 딱 그 시간대에 콜랭쿠르에게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물으려고 벼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남자였고, 나폴레옹은 마리아 발레프스카를 한때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워비치(Łowicz)는 나폴레옹이 드레스덴을 거.. 2022.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