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8 06:30



저 아래 하갑판에서의 열기는 햇볕이 이글거리는 상갑판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혼블로워가 지휘하는 대포들에서 나오는 연기가 대들보 아래까지 가득했다.  혼블로워는 모자를 손에 들고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그는 부시가 나타나자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부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맡은 임무는 분명해 보였다.  아직 대포가 쾅쾅 소리를 내며 포격을 하고 연기가 파도처럼 밀려드는 와중에, 화약 보이들이 새 장약포를 들고 뛰어다니고 화재 진압조가 물통을 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부시의 부하들은 닻줄을 끄집어 내었다.  수백 패덤(fathom : 1 패돔은 1.8m : 역주)에 달하는 닻줄은 무게가 2톤이 약간 넘었다.  다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숙련된 지휘를 받아야 이 다루기 힘든 굵은 닻줄을 고물 쪽으로 빼낼 수 있었으므로, 부시는 이 집중을 요구하는 중대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부시가 닻줄을 다 빼내어 첩첩이 사려놓을 (fake down : 여기서 fake는 밧줄을 쓰기 편하게 접어서 사려놓는다 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 역주) 때 즈음해서 커터 보트(the cutter)가 닻줄 끝을 받기 위해 고물 바로 아래로 저어왔고, 이제 부시는 고물 포문을 통해 그 굵고 긴 닻줄이 조금의 걸림도 없이 술술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동안 론치 보트가 꼬리에 엄청난 무게의 스트림 닻을 매달고 시야에 들어왔다.  론치 보트에 닻을 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결국 저렇게 잘 실은 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두번째 커터 보트가 닻줄 구멍(hawsehole)으로부터 나온 스프링 닻줄(spring cable)을 끌고 왔다.  로버츠가 지휘하고 있었다.  세 보트가 전함 뒤쪽으로 멀어져가는 중에 그가 커터 보트를 부르며 외치는 소리가 부시 귀에 들어왔다.  갑자기 보트들 중간에 물기둥이 솟았다.  두 요새의 포대 중 최소한 하나는 목표물을 바꾼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론치 보트에 포탄이 명중한다면 그건 정말 재앙이 될 것이고, 두 커터 중 한 대에 맞더라도 상황이 매우 안 좋아질 것이었다.


"실례합니다, 부관님."  그의 옆에서 혼블로워 목소리가 들렸다.  부시는 번들거리는 물 위를 쳐다보다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뭔가 ?"


"맨 앞에 있는 함포들을 움직여 뒤쪽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전함의 무게 중심을 뒤쪽으로 옮기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겠군."  부시도 동의했다.  부시가 자신의 권한만으로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중에 슬쩍 보니 혼블로워의 얼굴은 고된 전투로 인해 지저분하고 긴장감이 가득했다.  "버클랜드의 허가를 받는 것이 좋겠네.  원하면 내 이름으로 묻도록 하게."


"예, 부관님."


하갑판의 이 24파운드 함포들은 무게가 각각 2톤 이상씩 나갔다.  선수부에 있는 몇 문을 선미부로 옮긴다면 뻘에 박힌 이물을 빼내는데 꽤 중요한 요소가 될 듯 했다.  부시는 다시 한번 포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첫번째 커터 보트를 지휘하는 사관생도 제임스는 전함의 길이 방향으로 똑바로 케이블이 뻗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만약 닻에서 캡스턴으로 이어지는 닻줄에 약간이라도 각도가 벌어진다면 견인력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론치 보트와 커터 보트가 닻을 던질 준비를 하기 위해 서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 주변의 수면이 해안에서 날아온 일제 사격에 의해 갑자기 물보라로 들끓었다.  포탄이 수면 위에서 튀어가며 일으키는 물보라를 보니 그들에게 포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언덕 위의 요새였다.  거리가 아주 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조준 솜씨가 뛰어난 편이었다.  햇살에 번뜩이는 도끼날이 론치 보트 뒤쪽 허공에 보였다.  부시의 눈에 그 순간적인 번쩍임이 들어온 것이다.  론치 보트 선미에 닻을 묶었던 밧줄을 끊어 닻을 투하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블로워의 함포들은 여전히 불을 뿜고 있어서 그 반동에 따라 전함이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서 우지끈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다른 요새의 포대는 여전히 전함에 대고 포격을 하고 있으며 여전히 명중탄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여전히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혼블로워는 수병들을 시켜 우현 이물 맨 앞에 있던 24파운드 함포 하나를 고물쪽으로 끌고 가게 했다.  이건 포가(carriage)의 가로대 밑에 회전 지렛대를 넣어서 수행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수병들이 이 다루기 힘든 물건을 돌려서 수병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갑판 한가운데를 헤치며 밀고가는 동안 포가에서는 끔찍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하지만 부시에게도 혼블로워를 한번 힐끗 쳐다볼 여유 밖에 없었고, 그도 캡스턴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서둘러 주갑판에 올라가야 했다.


수병들은 스미스와 부스의 감독 하에 이미 캡스턴을 중심으로 바퀴살처럼 펼쳐진 막대 손잡이들에 각각 위치를 잡고 있었다.  캡스턴을 돌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갑판의 함포들에서 수병들을 최후의 한 명까지 차출되고 있었다.  상의는 모조리 벗은 채, 수병들은 손에 침을 뱉고 발 디딜 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들에게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었다.  갑판장(bosun) 부스의 울퉁불퉁한 회초리(knotted rattan : PS1 참조)도 필요 없었다.


"밀어라 !" (Heave away!)  선미갑판에서 버클랜드가 외쳤다.

"밀어라 !" 부스도 외쳤다.  "밀어, 죽을 힘을 다해 밀어 !"  (Heave, and wake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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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Rattan이라는 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등나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야자수 등으로 만든 얇은 막대기, 즉 회초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은 주로 갑판장(bosun 또는 boatswain)과 그의 조수들인 bosun's mate 등이었습니다만, 어지간한 부사관(petty officer)들은 다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기분 나쁜 물건을 들고 다니는 목적은 당연히 수병들을 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영국은 해군이나 육군이나 사병들에 대한 잔혹한 체벌로 악명 높았는데, 그래도 뭔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사병 간에 마구잡이 구타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교나 부사관들이 잘못을 저지른 사병의 이름을 적어놓았다가 정해진 날(주로 일요일)에 부대장이나 함장의 판결을 받아서 주로 채찍질로 처벌했습니다.  이런 채찍질은 등가죽이 홀라당 벗겨질 정도의 중형이라서,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까지 이런 채찍질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갑판장 등이 rattan이라는 회초리를 들고 다니다가, 힘껏 돛줄을 당기라는데 게으름을 피우며 열심히 하지 않는 수병들을 후려갈겼습니다.  때릴 때는 주로 머리통과 어깨 등을 인정사정 없이 마구 내리쳤답니다.  보통은 1~2대씩 본보기 차원에서 내리쳤으나, 이런 매질에는 아무 제한이나 규정 등이 없어서 성격이 잔인한 갑판장이나 갑판장 조수라면 평소 마음에 안 들었던 수병들을 맘먹고 제대로 혼을 내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규율을 중시했던 함장과 장교들은 그런 처사를 묵인했습니다.  그에 대한 항의는 물론 허락되지 않았으며, 일개 수병이 이런 매질에 반향을 할 경우 정말 군법회의에 넘겨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Source : https://www.britishtars.com/search/label/rat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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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늘다래 2019.03.18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내용이 흥미롭네요.
    1편부터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2. 극우지배세계 2019.03.18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상전투를 취급하는 해당 단원상 내용에 작성자님께서 타 전투장면 대비 가지신 차별화된 의의가 있는지 문의드리고 싶습니다, 다음블로그 시절까지 수렴해서 육상 해상 불문하고 전투장면에 있어 이만큼 번역을 통해 소개하신 적은 없는줄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3. TheK2017 2019.03.20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슬프네요. 찍히면 당해야 하는..

2019.03.11 06:30



"조수가 아직 차오르고 있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만조 때까지는 아직 1시간이 남았어요.  다만 우리가 아주 단단히 좌초된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부시는 그저 그를 쳐다보고 혼자 욕을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입으로라도 더러운 욕지거리를 내뱉어야 그의 과도한 스트레스가 다소라도 풀릴 것 같았다.  


"거기 침착하게 해, 더프 !"  혼블로워가 시선을 그로부터 돌려 대포 주변에 모인 함포 조원들을 바라보며 소리 질렀다.  "밀대질을 제대로 해야지 ! (Swab that out properly !)  장전할 때 두 손을 날려먹고 싶은 거야 ?" (당시 대포에 장약을 장전하기 전에 물에 적신 헝겊뭉치가 달린 장전봉으로 밀대질을 하는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전에 쏜 장약의 캔버스 천과 화약 찌꺼기를 닦아내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뜨거워진 대포를 식히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물이 없어서 밀대질로 대포를 식히지 못한다면 다음 장약을 밀어넣을 때 지나치게 뜨거운 포신에 장약이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대포에는 포탄 못지 않게 물이 가득 든 물통도 발포에 필수적인 부품이었습니다. : 역주)


혼블로워가 다시 부시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부시는 자제력을 되찾은 상태였다.


"만조 때까지 1시간이라고 했나 ?" 그가 물었다.


"예, 부관님.  카베리(Carberry : 동료 장교입니다 : 역주)의 계산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맙소사." (God help us.  이건 신이여 우릴 도우소서 라는 기도라기 보다는, 뭔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쓰는 표현입니다.  부시는 앞으로 1시간 정도 꼼짝 못하고 일방적인 포격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 역주)


"제 포격으로는 저 지점의 포대까지 간신히 닿는 정도입니다.  저 대포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저 총안(embrasure : 성곽이나 성벽에 총이나 활, 대포를 쏘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 : 역주)들을 포화로 위협한다면 최소한 저들의 포격 속도는 떨어뜨릴 수 있을 겁니다."


포탄이 명중했는지 또 우지끈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한번 우지끈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 수로 너머의 요새는 아예 사정거리 밖인데."


"맞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화약 보이들은 이 난리통 속에 대포 장약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속을 뚫고 걸어오는 전령 역할의 사관후보생이 하나 있었다.


"미스터 부시, 부관님 ! 미스터 버클랜드에게 보고를 해주시겠습니까 ? 그리고 우리는 좌초한 상태에서 포격을 받고 있습니다, 부관님."


"닥치게.  미스터 혼블로워, 자네에게 여기 지휘를 맡기겠네."


"예, 부관님."


어둠 속에 있다가 맞이한 선미갑판에서의 햇빛은 눈이 부셔서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버클랜드는 난간 근처에 모자도 없이 서있었는데, 자신의 모습을 추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했다.  칸막이 목재에 깊이 박힌 시뻘건 쇳덩어리에 누군가 펌프에서 나오는 호스의 물을 끼얹자 한줄기의 증기가 쐐액하고 내뿜어졌다.  갑판 배수구에는 사망자들이 쓰러져 있었고, 부상자들은 실려 내려가고 있었다.  아마도 포탄 또는 그 포탄으로 흩뿌려진 나무 파편들이 조타수들을 덮쳤고, 그로 인해 잠시 방향 조절이 안되어 좌초해버린 모양이었다.


"우리 닻줄을 잡아당겨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어." (We have to kedge off,) 버클랜드가 말했다.


"예, 함장님."


그 말의 뜻은 닻을 던진 뒤 캡스턴(capstan : 주갑판 가운데 있는 큰 원통형 릴 같은 것으로서, 닻줄을 감을 때 사용합니다 : 역주)으로 닻줄을 감아 당김으로써 뻘에 얹힌 배를 힘으로 빼내겠다는 뜻이었다.  부시는 하갑판의 제한된 시야로 내다보고 짐작한 배의 위치가 실제로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배의 이물이 뻘 속에 박혀 있었으므로, 배를 빼내려면 고물에서부터 빼내야 했다.  바로 머리 위로 포탄 하나가 휭 지나가는 바람에, 부시는 놀라 펄쩍 뛰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고물 포문으로부터 닻줄을 뒤로 빼야 할 걸세."


"예, 함장님."


"로버츠가 스트림 닻(A stream anchor : 조수 흐름 속에서 배를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약간 큰 닻 : 역주)을 론치 보트(launch : 큰 범선에 실린 여러 보트 중 가장 큰 보트.  아래 PS1 참조 : 역주)에 싣고 가서 던질 걸세."


"예, 함장님."


버클랜드가 형식적인 '미스터'를 빼먹었다는 것은 상황의 급박함과 함께 그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제가 담당하는 함포 조원들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함장님." 부시가 말했다.


"그러게."


이제는 규율과 훈련이 진가를 발휘할 때였다.  리나운 호는 절반 이상의 수병들이 브레스트(Brest : 프랑스의 주요 군항입니다 : 역주) 봉쇄 활동 기간 중 잘 훈련된 경험있는 수병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운이 좋은 전함이었다.  플리머스(Plymouth : 영국 해군 기지 항구 : 역주)에서 출발할 때는 강제 징집된(pressed) 장정들로 정원을 채웠었다.  리나운 호가 해협 함대(the Channel Fleet, 영불 해협을 지키던 함대로서 당시 로열 네이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함대였습니다 : 역주)의 일원이었을 때는 그저 훈련이었던 것이, 이제는 함대의 다른 배들과 경쟁하며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함의 생사를 결정지을 작업이 되었다.  부시는 그의 함포 조원들을 불러 모으고 닻줄을 선창에서 꺼내어 고물의 포문을 통해 내려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머리 위 갑판에서는 로버츠의 부하들이 론치 보트를 내려 보내기 위해 견인줄과 활대에 달라 붙었다.





PS1.  당시 전함은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보트를 싣고 다녔습니다.  가령 jolly boat, gig, cutter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launch 보트가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발사한다는 뜻의 launch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니라, 스페인어 lancha(란차, 스페인어로 돛단 큰 보트를 뜻함)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론치 보트는 대략 길이 7m 정도에 2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대형 보트였습니다.  보통은 노를 저었지만 돛을 달고 장거리를 항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1789년 벌어진 바운티(Bounty) 호의 반란 사건에서의 론치 보트였습니다.  블라이(Bligh) 함장과 그 충성파 선원 18명은 반란 선원들에 의해 론치 보트로 쫓겨나 바다에 버려졌는데, 블라이 함장의 뛰어난 항법 실력 덕분에 그들은 이 보트로 6500 km의 거리를 항해하여 인도네시아의 쿠팡(Kupang)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쉬워서 6500 km이지, 서울에서 인도양의 몰디브 제도까지의 거리가 대략 6700km입니다.  대단하지요 ?





(바운티 호에서 론치 보트로 쫓겨나는 블라이 함장과 그의 선원들입니다.)




(지도 속에서 녹색선이 블라이 함장의 항해한 경로입니다.  블라이는 육분의 하나와 해도 몇 장만 들고 론치 보트로 항해했습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Mutiny_on_the_Bou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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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arseeker7000 2019.03.12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영광이. 1등 댓글 ㅎㅎ 항상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2019.03.07 06:30



"바로 아래에 떨어졌습니다, 부관님."  바로 옆 포구에 서있던 혼블로워가 보고했다.  "대포가 뜨거워지면 닿을 것 같습니다." (When the guns are hot they'll reach it. : 아래 PS1. 참조)  


"그럼 계속 하게."


"제1 분대, 발포하라 !" 혼블로워가 외쳤다.


맨 앞의 4문의 함포가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제2 분대 !"


부시는 포격의 충격과 그 반동으로 인해 발 아래 갑판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좁은 공간으로 매케하고 쓰디쓴 화약 연기가 흘러들어 왔다.  소음으로 감각이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다시 해봐, 제군들 !" 혼블로워가 외쳤다.  "분대 조장들은 조준을 똑바로 하게 !"  (see that you point true!)


부시 바로 옆에서 우지끈쿵쾅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가 쓍하고 그를 지나 접합부 근처의 갑판 들보에 박혔다.  열린 포문을 통해 무언가가 날아들어 대포의 포미 부분을 때린 것이었다.  그 옆에 서있던 두 수병이 쓰러졌는데 하나는 죽은 듯 누워있었고 다른 하나는 고통에 몸을 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부시는 그 부상자들에 대한 처리를 명령하려 했으나, 더 중요한 일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의 머리 근처의 갑판 들보에 방금 전 포탄에 의해 깊이 갈라진 틈이 생겼는데, 그 틈 깊은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 대포의 꼬리 부분을 때린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hot shot)이 쪼개지면서 그 파편들이 튄 모양이었다.  그 중 가장 큼직한 조각 하나가 머리 위 들보에 깊히 박혔고 이미 나무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화용 물통을 가져와 !" 부시가 버럭 외쳤다.


전함의 바짝 마른 목재에 깊숙이 박힌 시뻘겋게 달아오른 10파운드짜리 쇳조각은 몇 초 안에 활활 타는 화재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머리 위 상갑판에서는 부산히 움직이는 발소리와 장치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펌프가 철컹철컹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상갑판에서도 화재 진압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혼블로워가 담당하는 대포들이 좌현에서 사격을 계속했고, 포가들이 갑판의 목재 위를 반동하여 구르며 우르르 소리를 냈다.  지옥도 같은 상황이 펼쳐졌고, 그의 주변에는 지옥에서 올라오는 듯한 연기가 물결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로활대들이 회전하면서 돛대들이 또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이 난리통 속에서도 구불구불한 수로를 따라 전함은 항진을 계속 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포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고 침착하게 거리를 짐작해보았으나, 능선 위의 요새는 여전히 사거리 밖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 탄약을 낭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어두컴컴한 갑판 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발 밑에서 느껴지는 배의 움직임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는 그의 엉뚱한 의심을 시험해보기 위해 발끝으로 까치발을 만들어 서보았다(teetered on his toes).  갑판의 각도가 아주 약간 느껴질 만큼 기운 것 같았고, 거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경직성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다.  오 이런 젠장 !  혼블로워가 그를 돌아다보고는 발 밑을 향해 다급한 손짓을 해보이며 그의 이 끔찍한 생각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리나운 호가 좌초한 것이었다.  리나운 호가 진흙뻘 위를 워낙 매끄럽고 천천히 항진하다보니 갑작스럽게 속도가 확 줄어드는 느낌없이 진흙뻘 위에 좌초해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갑판이 기운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뻘 위로 이물을 꽤 드러낸 채 좌초한 것 같았다.  그러는 중에도 요새들에서 날아온 포탄이 명중하면서 뭔가 박살이 나는 듯한 쿵쾅 소리가 계속 되었고, 그로 인한 화재를 진압하러 뛰어다니는 수병들의 발소리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리나운 호는 단단히 좌초 되어버린데다, 저 저주받은 요새들로부터의 포격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마 가열탄들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이 뻘 위에서 산 채로 구워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혼블로워가 손에 시계를 들고 그의 옆으로 왔다.




(A Ship Aground, Yarmouth, by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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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현대적 장비를 갖춘 지금도 처음부터 초탄 명중을 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모든 나폴레옹 시대 역사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처음 쏜 대포알은 cold gun에서 나갔기 때문에 사거리가 좀 짧지만, 연이어 쏘면 gun이 hot 해지므로 사거리가 좀 더 길어진다고 합니다.  이건 과학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대포는 쏘면 쏠 수록 뜨거워져서 포구경도 약간 넓어지고 포강 내부에 화약 및 캔버스 천의 찌꺼기가 끼기 때문에 사거리나 명중률이 좋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cold gun보다 hot gun의 사거리가 더 길어진다고 당시 군인들이 말했던 이유는 아마 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  


당시 육군 포병대나 군함에서나 모두 평상시에 장약과 포탄을 장전한 상태로 대포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장식(muzzle-loading) 대포의 장전에는 꽤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군함에서는 그렇게 대포를 장전한 상태로 유지하지 않는다면, 처음 발포할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화약은 위험한 물건이고 당시 장교들은 수병들의 수준을 매우 낮게 보았기 때문에 평상시 수병들이 램프를 켜고 생활하는 공간인 포갑판 위에 대포 장약을 노출된 채로 대포 옆에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포를 쏘려면 저 아래 선창에 있는 화약고의 자물쇠를 열고 장약을 올려보내야 했기 때문에 최초 발사를 위해서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대포를 그렇게 장탄된 상태로 오래 두는 것에도 단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장약은 황동제 탄피에 밀폐된 것이 아니라 그냥 캔버스 천에 미리 정해진 분량의 흑색화약을 넣어둔 것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그런 캔버스 천으로 된 장약을 대포 약실 속에 밀어넣어두면, 아무리 포구 마개(tompion)로 포구를 막아둔다고 해도 습기가 찰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흑색화약이라는 것은 유황과 목탄, 질산칼륨으로 이루어진 어설픈 혼합물이었습니다.  원래 흑색화약의 폭발력은 목탄의 탄소가 질산칼륨이 제공해주는 산소와 격렬하게 결합하여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거든요.  유황은 거기서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그런 흑색화약을 파도에 흔들리는 배 위의 대포 약실 속에 그냥 가만히 놔둔 채 시간이 흐르면 무거운 물질과 가벼운 물질이 점점 분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유황의 밀도는 대략 2g/cm3, 질산칼륨이 2.11g/cm3 정도로 비슷하지만, 목탄은 0.2g/cm3로 상당히 가볍습니다.  그런 혼합물을 장기간에 걸쳐 파도로 흔들어주면 목탄은 대포 약실 위쪽으로, 유황과 질산칼륨은 대포 약실 아래쪽으로 점점 분리되게 됩니다.  그렇게 따로따로 분리된 상태에서 불이 붙으면 100% 제대로 된 폭발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요약하면, cold gun에서 쏘았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다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너무 오래 약실에 묵혀둔 장약으로 쏘았기 떄문에 제대로 된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서 사거리가 짧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포구마개는 tampion이라고도 하고 tompion이라고 합니다.  특히 당시 군함에서는 외부의 습기로부터 장약을 보호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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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지비 2019.03.07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도 가열된 포구에 포탄을 넣고 10분동안 포대장,대대장들이 사각편각 직접 확인한다고 시간끌면 포탄이 산을 넘어갑니다.

  2. reinhardt100 2019.03.07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다른 이야기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이 탄약이 모자라서 화학탄을 대용품으로 사용했는데 특히 독일군은 전쟁 후반부 평균 40%의 포탄을 화학탄으로 바꾸어 썼다고 합니다.

    의외로 화학탄을 쓰면 편한게 어차피 사거리는 신경 안 써도 되는 참호전 상황에서 화학탄을 쏘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고 하죠. 일반포탄 몇발 쏘면서 포가 좀 몸 좀 풀리면 화학탄으로 어느 정도 정확하게 신경 안 써도 쏴도 거진 타격이 되었거든요. 맞는 쪽에서는 미치는거죠. 갑자기 가스가 확퍼지니까요.

  3. Hot Gun 2019.03.07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대포가 달궈지면 포신이 팽창하여 구멍이 커질것 이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만..
    제 경험상 포신과 같은 물건이 열을 받아 팽창하면 구멍은 작아집니다.!!

    용접할때 쓰는 연장중에 구멍뚫린 구리에 용접봉 같은걸 끼워 쓰는게 있습니다.
    짧은 포신으로 긴 포탄이 나가는 형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될것 같은데 이게 열받으면 잘 안빠지거든요.

    추론을 해보면 어느정도 두께가 있는 파이프, 예를 들면 포신, 같은게 열을 받으면 당연히 팽창을 하겠지만
    이것은 밖으로만 팽창하는게 아니라 '안'으로도 팽창한다는 것 이지요.

    두번째로는 화약의 연소 속도 입니다.
    이것은 현대 총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 약실의 온도가 올라가면 화약은 더 빨리 연소 합니다.
    그래서 약실이 차가울때 보다 약실이 충분히 뜨거워 졌을때 총알이 더 빠른속도로 멀리 날아갑니다.

    이건..영화 '잭리처'에 나왔던 말로 기억합니다.

  4. Hot Gun 2019.03.07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확히 말하면 잘 안빠지고 잘 안끼워진다. 입니다.
    새로 끼우는 용접봉은 차갑지요.
    구멍이 작아지는건 확실합니다.

  5. steelwalker 2019.03.08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ot Gun 님의 말씀이 정확합니다. 포신이 가열이 되면 팽창은 내부와 외부 모두 동시에 일어납니다. 물론 저당시 포신이 청동제로 알고 있는데 청동의 열팽창계수는 확인이 안되는데 구리의 열팽창계수 Volumetric coefficient αV (51)의 경우 철(33.3) 보다 1.5배 크므로 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부체적은 줄어듭니다. 물로 선팽창도 일어나므로 포신의 길이도 미비하지만 조금 늘어납니다.

    • 기본물리 2019.03.11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열팽창 계수 thermal expansion coefficient 까지 아시는 분이 구멍이 작아진다고 하시네요...

      물론 포신의 열팽창 계수가 작고 포탄의 열팽창 계수가 크면 둘사이의 간격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그런 뜻으로 말하시는 건 아닌 거 같은데요.

  6. 기본물리 2019.03.11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인장이 얘기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열팽창하면 늘어나는 게 맞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류가 구멍을 가진 물질이 열팽창하면 구멍이 작아질 거라 생각하는데 구멍도 커집니다. 그냥 구멍이고 머고 다 늘어납니다.

    체결할 때 열박음이란 말도 있죠. 둘다 열줘서 끼운다음에 냉각시키면 간격이 줄어들어 단단한 체결이 됩니다.

  7. 기본물리 2019.03.11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포의 경우 냉간시 화약의 연쇄적인 반응이 늦게 일어나거나 주인장이 말한 습기 때문이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네요.

  8. 기본물리 2019.03.11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으로 팽창한다는 기기묘묘한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과학'을 조금 공부해 보시면 아니라는 걸 아실겁니다.

  9. 추지비 2019.03.14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약은 온도에 민감합니다.
    지금은 도퇴된 장비인 어네스트존은 가온해주는 담요를 따로 이용하여 화약의 온도조절을 했습니다.
    다들 화학시간에 온도10도 올라가면 반응속도는 2배로 늘어난다고 배우지 않았나요?
    따뜻한 화약이 폭발력이 올라가는게 당연한 현상입니다.
    90년도 ATT 실사격때 재사격을 위하여 장전후 간부들이 뻘짓한다고 시간끌다가 포탄이 산을 넘어가 애매한 젖소가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10. Hot Gun 2019.03.14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차바퀴에 쇠태를 끼우는 것 처럼 열을 가해 늘어난 상태에서 끼우고 수축시키는 열박음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부분은 포신과 같이 벽이 두꺼운 파이프 형상의 금속 부품의 경우 가열되면 구멍이 작아지더라는
    실제 현상을 두고 말씀 드린것이고 내측으로도 팽창한다 (포신의 두께가 안밖으로 두꺼워진다)는 저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생각해낸 가설일 뿐입니다.

    포신이 아니라 벽 두께아 아주 얇은 파이프라면 원호는 지름x파이 이므로 1% 팽창시 파이프의 내외 지름도 1% 씩 늘어나겠지만 벽이 아주 두꺼운 파이프라면 이 벽의 두께 역시 팽창하므로 이를 상쇄하거나 혹은 오히려 내부 용적이 줄어들 수도 있다 라는게 가설입니다.

2019.03.04 06:30



포문을 열고 나니 소음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수병들은 몸무게를 실어 견인줄을 당기자 포가가 우르르 소르를 내며 굴러가 포구를 함체 밖으로 내밀었다.  부시는 가장 가까운 함포로 걸어가 허리를 굽혀 열린 포문을 통해 밖을 내다 보았다.  저 멀리 대포가 간신히 닿을까말까 한 거리에 섬의 초록빛 언덕들이 보였다.  이 곳의 절벽은 그렇게까지 경사가 급하지는 않았고, 그 발치에는 정글로 덮힌 평지가 있었다.


"배를 돌려라 ! (Hands wear ship ! : wear ship이란 바람 방향에서 벗어나도록 배를 돌린다는 뜻입니다. : 역주)





(Quarterdeck은 위 그림에서 뒤에서 두번째 층의 갑판을 뜻합니다.  거기에 조타륜이 있습니다.  맨 뒤에 더 높은 갑판이 있는데, 그건 poopdeck이라고 합니다.  영미권 사람들은 확실히 해양민족이라서 그런지 이런 해양 용어가 언어에 많이 녹아 있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직접적인 번역이 쉽지 않네요.)




부시는 선미갑판(quarterdeck : 배 뒤쪽의 높은 갑판으로서 함장 등 주요 고위 장교들과 조타수가 이 갑판에 있습니다. : 역주)에서 소리지르는 로버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그의 발 밑의 갑판이 수평으로 안정화되자, 저 먼 언덕들이 배와 함께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수평활대(yard)들이 돌아가면서 돛대들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그들이 끼고 돌고 있는 것은 사마냐 지점(Samana Point)이 확실했다.  전함의 움직임이 단순한 항로 변경의 결과보다는 훨씬 더 심하게 변했다.  배가 안정적으로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잔잔한 바다에 들어와 만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고 있었다.  부시는 함포 포구 옆에 아예 쭈그리고 앉아 포문 틈으로 해안을 엿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곳은 반도의 남쪽 사면으로서, 만을 향하고 있는 해안선이 바다 쪽의 사면만큼이나 가파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꼭대기에 요새가 있었고 스페인 국기가 그 위에 펄럭이고 있었다.  흥분한 사관생도가 다람쥐처럼 사다리를 종종거리며 내려왔다.


"부관님 ! 부관님 ! 함포 시야에 적 포대가 들어오는 대로 그 쪽으로 사거리 측정용 사격(a ranging shot)을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


부시는 그 생도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누구의 명령이지 ?" 그가 물었다.


"미... 미스터 버클랜드입니다, 부관님."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하게.  알았네.  미스터 버클랜드에게 전갈드리게(My respects to Mr Buckland) 내 함포들이 사거리에 들어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말이야."


"예, 부관님."


요새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화약연기도 아니었다.  부시는 그것이 가열탄(heating shot)을 위한 화로로부터 나오는 연기임을 깨닫고 걱정의 몸서리 같은 것을 느꼈다.  이제 곧 저 요새에서 그들에게 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 대포알을 퍼부을 것인데, 부시에게는 그에 대응 사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요새에 닿을 정도로 함포를 높이 조준할 방법이 없었지만, 저 꼭대기의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한 요새에서는 전함에 매우 쉽게 포탄을 날릴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바르게 세우고는, 비슷한 태도로 대포 옆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혼블로워가 있는 좌현으로 걸어갔다.


"여기 밖으로 튀어나온 지점이 있군요."  혼블로워가 말했다.  "저기 얕은 곳이 보이나요 ?  이 물길은 저 얕은 곳을 돌아서 굽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 지점에 포대에 있네요 ?  저 연기를 보십시요.  가열탄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것 같군."  부시가 말했다.


곧 그들은 매서운 십자포화 속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는 자신들이 그 십자포화 속에 너무 오래 있지 않기를 바랬다.  그에게 상갑판에서 외쳐대는 명령들이 들려왔는데, 곧 가로활대가 돛대를 끼고 돌면서 나는 끼익끼익 소리가 났다.  리나운 호가 굽은 수로를 돌고 있는 것이었다.


"요새에서 발포했습니다, 부관님."  우현의 함수포(the forward guns)를 책임지고 있는 보조 항법사(the master's mate)가 보고했다.  


"알겠네, 미스터 퍼비스." (Very well, Mr Purvis.  Very well은 좋다는 뜻이 아니라 잘 알겠다는 뜻입니다. : 역주)  그는 우현으로 건너가 밖을 내다 보았다.  "포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 봤나 ?"


"아니요, 부관님."


"이쪽에서도 발포하고 있습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보고했다.


"알겠네."


부시의 눈에도 요새가 하얀 포연을 푹 내뿜는 것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요새와 그의 눈 사이에 직선으로 전함으로부터 50야드(즉 45m : 역주) 떨어진 지점에 황금빛 바닷물 표면에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부시의 머리 바로 위 전함의 측면에 뭔가가 우지끈하는 충격과 함께 뚫고 들어왔다.  포탄이 바닷물 위에서 튕긴 뒤 18인치(약 46cm : 역주) 두께의 떡갈나무 목판으로 된 전함의 측면 어딘가에 날아와 박힌 것이다.  잇달아 손가락으로 재빨리 두들기는 듯한 충격들이 뒤따랐다.  (Then followed a devil's tattoo of crashes : 여기서 devil's tattoo 라는 것은 손가락 등으로 초조하게 빨리 뭔가를 두들기는 동작을 뜻합니다 : 역주) 아주 잘 조준이 된 일제 사격이 명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이쪽에서는 저 포대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관님."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러면 어디 한번 해보게."


이제 버클랜드가 햇치 통로에서 직접 나타나 초조하게 외쳤다.


"아직 발포할 각도가 나오지 않는가, 미스터 부시 ?"


"이제 곧 됩니다, 함장님."  (This minute, sir.)



혼블로워는 중앙의 24파운드 포 옆에 서있었다.  함포장(gun captain)은 포가(gun carriage) 밑에 굴리는 지렛대(the rolling handspike)를 밀어넣고는 그의 몸무게를 실어 힘껏 들어올렸다.  포구가 목표물을 향하도록 대포의 양쪽 측면 견인줄(side tackle)을 잡고 있던 수병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줄을 당겨 조준을 했다.  (당시 함포도 이런 식으로 약간의 좌우 조준이 가능헀습니다 : 역주)  앙각 조절 나사(the elevating coign : 아래 PS1 참조)가 포미(breech)에서 완전히 이탈되어 대포는 가능한 최대 앙각(its highest angle of elevation)으로 올려졌다.  함포장은 점화구(touchhole)에서 무쇠 덮개를 벗겨내고 그 구멍에 화약이 잔뜩 재워진 것을 확인한 뒤, "떨어져(Stand clear)"를 외치며 연기를 뿜는 화승간(linstock)을 거기에 들이댔다.  함포는 그 좁은 공간에서 엄청난 폭음을 냈다.  포연 중 일부가 포문을 통해 배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PS1.  당시 대포의 앙각, 즉 포구가 얼마나 위를 향하느냐 하는 각도는 아래 그림과 같은 elevation screw를 이용하여 조절했습니다.  이 두툼한 나사가 대포의 포미, 즉 breech를 떠받치고 있었는데, 이 나사를 최대한 풀면 breech는 나사의 떠받침에서 아예 벗어나 포가 위에 얹히게 됩니다.  그때의 앙각이 그 대포의 최대 앙각이었습니다.   당시 대포, 즉 cannon은 직사화기라서 앙각을 크게 할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고, 이렇게 조절 가능한 앙각도 그다지 크지는 않았습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Cannon 

http://www.clarksvilleonline.com/2017/05/11/clarksville-foundry-casts-replica-cannon-clarksville-rotarys-100th-anniversary/clarksville-foundry-canno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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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erdad 2019.03.04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이런 전투장면을 고증에 맞게 잘묘사한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게있을까요? 전 러셀 크로가 나온 마스터앤커맨더 외에는 잘 못본거같아서요;

    • 2/28일 입대 2019.03.04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화는 아니고 동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인데 유투브에 있네요. 혼블로워 시리즈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eaPTxIrLdz5DY2SmNdQOYo3M5AUxhFWs

      근데 이게 그냥 프리로 풀린건지 아니면 올린 외국인이 저작권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몇 년 전부터 올라와있어서 괜찮은거인지도

  2. 푸른 2019.03.04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이거.. 책을 사러가야겠군요

  3. 최홍락 2019.03.05 0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oop deck는 선미루 갑판으로 해석합니다. 선미의 상갑판에 설치한 선루이고요.

    • Spitfire 2019.03.05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키에 나오네요. Poop이 프랑스어로 '선미'를 뜻하는 le poupe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Poop deck이 한국어로는 선미루 갑판이겠네요.

  4. 세비니 2019.03.06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관님이라는 말보다는... 갑판사관이 어울리지 않나요... 소설을 저도 봤는데 당시 부쉬는 위관 서열 2위여서... 1순위인 버클랜드가 부장이라면 1st lit 인 갑판사관이 더욱더... 아님 차라리 대위님이.. 부관이란 용어는 영 아닌거 같아서요..

2019.02.28 06:30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9세기 초 전형적인 24파운드 함포의 모습입니다.    지금 이 함포는 장전을 위해 후퇴 위치(recoil position)에 놓여 있습니다.  대포 꼬리 부분의 둥근 돌기 같은 쇳덩이가 breech(포미)이고, 거기에 걸린 밧줄이 breeching(포삭)입니다.  그 외에 그림에 10번, 11번이라고 표시된 것이 train tackle, side tacke입니다.  Tackles는 원래 도르래의 밧줄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대포를 발사 위치로 당기고 고정시키기 위한 밧줄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포미 부분에 붙어서 뭔가 하고 있는 남자는 대포 약실 속에 밀어넣은 장약포(powder cartridge, 흑색 화약이 캔버스 천으로 된 헝겊주머니에 담겨있습니다)에 점화구(touchhole, 또는 vent)을 통해 긴 쇠꼬쟁이를 찔러넣어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그 뒤에 점화구로 긴 갈대 등에 화약을 채워넣은 뇌관(priming tube)을 삽입할 것입니다.)


Source :  http://www.navyhistory.org/the-constitution-gun-deck/





곧 화약 보이(powder boy)들이 함포의 장약(charge)을 하나씩 들고 달려왔다.  각 함포의 포삭(砲索, breeching, 대포를 고정시키기 위해 포미의 돌기에 거는 밧줄)을 벗겨냈고 함포 조원들은 포문(port)을 열고 함포를 발포 위치로 밀어내라는 명령을 기다리며 대포 견인줄(tackles) 옆에 대기했다.  부시는 양현을 재빨리 훑어 보았다.  각 함포의 조장들은 모두 제 위치에 있었다.  우현의 각 함포에는 10명씩 대기하고 있었고, 좌현 쪽에는 함포마다 5명씩이 대기했다.  이 숫자들은 24파운드 포의 최대 및 최소 운용 인원수였다.  양현의 함포들 중 어느 쪽이 포격에 동원되더라도 제대로 인원수를 갖추도록 감독하는 것이 부시의 책임이었다.  만약 양현의 함포들이 동시에 포격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는 양쪽에 인원을 공평하게 배분해야 했고, 사상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일부 함포가 포격 불능 상태에 빠지면 그가 함포 조원들을 재조정해야 했다.  부사관(petty officer)들과 준위(warrant officer)들은 각자의 담당 분대의 전투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를 해오고 있었고, 부시는 전령 역할의 의무를 띠고 옆에 서있는 사관생도(midshipman)을 향해 돌아섰다.


"미스터 애봇(Abbott), 하갑판의 전투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하게.  그리고 함포를 내밀 것인지 여쭤보도록."


"예, 부관님 (Aye aye, sir.)"


잠시 전에만 해도 전함은 소음과 북적거림으로 가득했으나, 이제 선체 목판의 끼익거리는 소음을 빼면 모든 움직임이 멈췄고 조용해졌다.  전함은 파도의 리듬에 맟추어 오르내렸다.  주돛대 옆에 서있던 부시는 배의 요동에 따라 자동적으로 몸을 맞추어 균형을 잡았다.  어린 애봇이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미스터 버클랜드의 전언이십니다. (Mr Buckland's compliments, sir : 원래는 버클랜드가 칭찬을 한다 라는 뜻입니다만 영국 해군에서는 거의 관용어구처럼 '누가 보낸 전언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아무리 시급한 전투 상황에서도 이 관용어구를 빼먹지 않아야 한답니다. : 역주)  아직 함포를 내밀지 말라십니다."


"알겠네.  (Very good : 여기서는 매우 좋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잘 알아들었다 정도의 뜻입니다.  보통 very well이라는 표현도 많이 씁니다.  가령 우리 편이 패전하고 있다는 전언을 들었을 때도 very well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 역주)


혼블로워는 포가 견인줄(train tackles)의 고리 볼트(ringbolt)에 맞춰 더 선미 쪽에 서있었다.  그는 애봇이 가져온 전언을 듣기 위해 돌아보았다가 이제 다시 뒤돌아섰다.  그는 양발을 벌리고 서있었는데, 그가 등 뒤에서 양손을 맞잡고 약간 꽉 쥐는 것이 부시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어깨와 그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모습에는 뭔가 경직된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어떤 의미로든 해석될 수 있었다.  전투를 간절히 바라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정반대일 수도 있었다.  함포 조장 한 명이 뭔가 혼블로워에게 말을 걸며 이야기했는데, 부시는 혼블로워가 몸을 돌려 거기에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하갑판의 희미한 채광 속에서도 부시는 혼블로워 얼굴 표정에 긴장감이 깃들어 있고 웃는 미소는 억지로 짜낸 것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뭐, 글쎄, 전투 돌입 직전에 사람들은 종종 저런 모습을 보이곤 하지'라고 부시는 최대한 선심을 발휘해 스스로에게 해명을 했다.


전함은 조용히 항진을 계속 했다.  부시가 귀를 쫑끗 세운 채 상갑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듣고 상황을 유추해보려 했지만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저 멀리 햇치 통로를 통해 어떤 수병의 외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바닥이 없습니다(No bottom, sir), 이 줄로는 바닥이 닿지 않습니다."


즉 돛대고정발판(chains : 돛대를 뱃전 양쪽으로 고정시켜주는 밧줄을 shrouds라고 하는데, 그 shrouds를 뱃전에 고정시키기 위해 뱃전 너머에 설치해놓은 작은 발판을 chains라고 합니다 : 역주)에 수병이 올라가서 납덩이가 달린 밧줄을 던지며 수심을 재고 (taking casts with the lead) 있는 모양이었고, 그건 이 전함이 육지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갑판에 있는 모든이들이 같은 결론을 내리고는 옆사람과 그에 대해 속삭이기 시작했다.






"거기, 조용히 해 !" 부시가 윽박질렀다.


수심측정수(leadsman)의 외침 소리가 또 한번 들리더니, 이번에는 뭔가 우렁찬 호령소리가 뒤따랐다.  곧 하갑판 전체가 소음으로 가득 찼다.  포문을 열고 주갑판의 함포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갑판의 밀폐된 공간에서는 모든 소리가 함체의 목판에 반사되고 증폭되었기 때문에, 함포의 포가(gun truck)가 갑판 바닥을 가로질러 발포 위치로 내밀어지는 것은 마치 천둥같은 소리가 났다.  모든이들이 부시를 쳐다보며 명령을 기다렸지만, 그는 그냥 차분히 서있었다.  명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사관후보생 하나가 사다리를 내려와 명령을 전했다.  


"미스터 버클랜드의 전갈입니다, 부관님, 함포를 발포 위치로 밀어내 주시기 바랍니다."  (Mr Buckland's compliments, sir, and please to run your guns out. : 지금이야 그렇다지만 사람들이 두동강 나고 피가 쏟아지는 처절한 전투 상황에서도 저렇게 compliments니 please니 하는 미사여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좀 우습지요 ? : 역주)


그 사관후보생은 하갑판에 발을 대지도 않은 채로 사다리에서 그 메시지를 새된 소리로 외쳤고, 모든이들이 그 말을 들었다.  하갑판 전체에서 즉각 웅성거림이 일어났고,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은 포문을 열려고 손을 뻗기 시작했다.


"조용 !" 부시가 호통쳤다.  모든 움직임이 검연쩍게 딱 멎었다.


"포문을 열어라 !" (Up ports !)


포문이 열리면서 하갑판의 어둑어둑함이 눈부신 대낮으로 바뀌었다.  좌현 쪽에서 작은 사각형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전함의 흔들림에 따라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갑판을 비추었다.  


"밀어내라 !"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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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팔륜러브 2019.02.28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먹었다!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러시아 원정 엄청 기대중이예요^^♡

  2. 지나가던 2019.02.28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직된 모습이지만 섣부르게 행동해서 계획이 틀어지는걸 막으려는 노력 같기도 하네요. 전투중에서는 하려고 해도 대충 생략되지 않을까요?

  3. 100% 2019.02.28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된 책은 없겠죠?.. 인터파크와 구글북에서는 없네요..

    • 지나가던사람 2019.03.01 0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완역본이 있긴한데 절판되서 도서관이나 중고서점 찾으셔야 됩니다. 번역 수준도 좋진 않구요

  4. 어피리 2019.02.28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해설을 들으니 더 실감나네요. 언제 죽고 죽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별의 별 미사어구 동원한 예의절차라.....비약일지 모르지만 군 수뇌부의 관료의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듯 싶습니다.

  5. 나그네 2019.03.01 0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클릭하자마자 광고배너가 큼지막하게 보여서
    순간 인터넷뉴스링크로 납치됐나 착각했습니다
    분명 즐겨찾기로 들어왔는데;;;
    애드센스 중간에 들어가는게 좀 불편하네요
    글처음이나 끝부분이면 몰라도 글 중간에 들어있으니
    휴대폰으로 보기에 불편한것 같아요

  6. reinhardt100 2019.03.01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열함 등 근대 서구 군함이 그나마 최소한의 탑승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대량의 함포 탑재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형함치고는 그래도 꽤 적은 인원이 사는게 중세 갤리군선들과는 설계 및 운용 사상이 다르니까요.

    예의절차, 이거 단순히 그냥 관습이라고 볼 수 없는게 어떤 상황에라도 이걸 생각하면 심적으로 안정되다보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 TheK2017 2019.03.20 12: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뭔가 따라오는 광고 때문에
    신기하긴 하지만
    좀 당황스럽네요. ^ㅇ^*

2019.02.25 06:30

이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서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제가 요즘 다사다난하여 책을 못 읽고 있습니다.  최소 몇 주 간은 C. S. Forester의 Lieutenant Hornblower 중에서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을 발췌 번역해서 올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혼블로워 시리즈 중에서 최고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이 책은 국내 연경사에서 '혼블로워. 2: 스페인요새를 함락하라'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제 발췌 번역본은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중단될텐데, 재미있다고 생각되시면 영문판이든 한글판이든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010310&barcode=9788989369097





Lieutenant Hornblower by C.S. Forester (배경 : 1801년 카리브 해 HMS Renown 선상) --------------


(부시와 혼블로워가 각각 제3, 제5 부관으로 탑승한 영국 해군의 74문짜리 전함 리나운 호(HMS Renown)는 산토 도밍고 섬의 스페인 해군 요새를 파괴하고 그 곳의 스페인 선박들을 나포하거나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카리브해에 도착합니다.  항해 도중에 함장이 미쳐버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함장은 함장실에 연금되고 제1 부관인 버클랜드가 임시 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다지 뛰어난 지휘관이 아닌 버클랜드는 별다른 계획없이 그냥 스페인 요새의 항구로 밀고 들어가 일제 포격을 하려 합니다.)


저녁 당직(dogwatches : 원래 4시간 단위의 교대근무 시간을 4pm~8pm 사이에는 2시간짜리 2개로 쪼개는데 이걸 dogwatch라고 불렀습니다 : 역주) 시간 동안 혼블로워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이 머리를 숙인 채 혼자서 갑판을 왔다갔다 걸었다.  등 뒤로 맞잡은 혼블로워의 두 손이 초조하게 꿈틀거리고 배배 꼬이는 것이 부시의 눈에 들어왔다.  부시는 잠깐 의심이 들었다.  이 열정적인 젊은 장교에게 혹시 신체적 용기가 없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  그 표현은 부시의 창작품은 아니었다.  그는 그 표현이 몇 년 전 어디서인가 악담으로 사용되는 것을 들었었다.  혼블로워가 겁장이일 수도 있다고 대놓고 스스로 짐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표현을 지금 쓰는 것이 더 나았다.  부시는 그다지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겁장이라면 그는 그 인간과는 뭐든 더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절반 정도 흘렀을 때 갑판을 따라 호각들이 길게 울렸다.  해병들의 북이 두두두 소리를 냈다.


"전투 준비를 위해 갑판을 치운다 !  각자 위치로 !  전투 준비 !"  ("Clear the decks for action! Hands to quarters! Clear for action!"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갑판 아래의 선실을 이루는 격벽이나 식탁 등의 가구, 짐짝 등을 모두 치워 선창에 보관합니다.  그래서 전투 준비에 clear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 역주)


부시는 전투시 자신의 위치인 하(下) 포갑판(lower gundeck)으로 내려갔다.  하 포갑판 전체와 우현의 24파운드 포 17문이 그의 지휘 책임 하에 있었고, 좌현의 포들은 그의 밑에 있는 혼블로워가 맡게 되어 있었다.  수병들은 이미 칸막이를 해체하고 방해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갑판을 따라 군의관 조수들 한 무리가 내려왔는데, 그들은 구속복(straight jacket)을 입인 채 널빤지에 묶어놓은 사람 하나를 떠매고 왔다.  구속복과 결박 끈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힘없이 꿈틀거리며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전투 준비 때문에 함장실을 치우면서 함장을 닻줄 선창(cable tier, 닻줄을 말아두는 맨 바닥 갑판, 대포알이 흘수선 아래를 뚫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선창은 상대적으로 매우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 역주)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북적거림 속에서도 한두 명의 수병들은 그런 함장의 몰골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부시는 재빨리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하 포갑판이 전투 준비 완료가 되었다는 보고를 칭찬받을 만한 시간 안에 올리고 싶었다.  혼블로워도 나타나서 부시에게 경례를 하고는 그의 함포들을 감독하며 서있었다.  이 하갑판의 대부분 구역은 석양 무렵의 어둠에 덮혀 있었다.  상갑판으로 통하는 햇치 통로들(hatchways)로 들어오는 굵은 햇빛 줄기들은 진한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진 갑판의 저 구석까지는 거의 밝혀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군함의 보이들 6명이 모래를 담은 버켓을 들고 와서 갑판 여기저기에 한주먹씩 뿌렸다.  (매끄러운 갑판 위에서 피와 물기로 인해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 역주)  부시는 그들의 작업을 날카로운 눈으로 감독했다.  포수들이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그 모래가 꼭 잘 뿌려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각 함포 옆마다 물을 가득 채운 버켓을 놓아두었는데, 이건 포구를 청소하는 장전봉의 헝겊뭉치를 적시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혹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즉각 진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주돛대의 주변에는 여분의 소화용 물통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군함의 양현에 있는 통에는 화승(slow match)이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어서, 만에 하나 어느 함포의 화승간(火繩桿, linstock, 끝에 화승이 달린 막대기 : 역주)의 불이 꺼질 경우 그 함포 조장이 여기서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불과 물이 준비된 셈이었다.  낮은 천정 들보에 닿을 듯 높은 군모(shako)를 쓰고 선홍색 자켓과 하얀 십자밴드를 맨 해병들이 보초 임무를 위해 갑판 위를 쿵쿵거리며 뛰어왔다.  그린우드 상병은 각 햇치 통로에 장전하고 착검까지 한 보초를 한 명씩 세웠다.  그들의 임무는 겁을 먹고 안전한 흘수선 아래 구역으로 도망치려는 사람이 없도록 인가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햇치 통로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임시 포술장인 미스터 홉스는 조수들과 함께 잠깐 나타났다가 곧 저 아래의 화약고(magazine)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가장자리 천으로 만든 슬리퍼(list slippers)를 신고 있었는데, 이는 전투가 한창일 때 어쩔 수 없이 바닥에 흩뿌려질 약간의 화약가루가 폭발할 위험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Linstock의 모습입니다.  그냥 화승막대기입니다.  이걸 대포의 점화구 즉 touchhole에 대면 대포가 발사되는 것이지요.)




* PS1 : Dogwatch라는 독특한 2시간 짜리 교대 순번을 만든 이유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2교대로 돌아가는 군함의 교대 근무에서, 이렇게 2시간 짜리 순번이 없을 경우 어느 한쪽 교대조가 계속 특정 시간대(가령 0시~4시)에 근무를 서야 하는 불공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4시간 중에 모든 수병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쉴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 PS2 : 저 list slipper라는 단어는 19세기 문학 작품 여기저기에 나오는, 영어권 사람들로서도 약간 신기한 단어인 모양이더라구요.  List라는 것은 천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것인데, 천의 가장자리는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금 견고하게 처리가 되어 있지요.  그런 두꺼운 천으로 만든 슬리퍼를 list slipper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딱딱한 밑창을 가진 구두를 신었다가 구두 바닥과 갑판 사이에 낀 화약가루가 마찰열로 폭발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List slipper라는 단어에 대한 토론은 아래 link를 참조하세요.


http://www.worldwidewords.org/qa/qa-lis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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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멍쿠기자 2019.02.25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배는 장전하고 줄을 당겨서 쏘는건줄 알았는데 불을 붙이는거였군요;;;

    • ㅋㅋ 2019.02.25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당시 영국 해군만 플린트락 방아줄 격발식을 썼다고 합니다. 영국 해군이랄지라도 화승식 대포를 쓰는 함선도 많겠죠

  2. 카를대공 2019.02.25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셔서 책 읽고 나폴레옹(및 여러분야) 글만 쓰셨으면ㅋㅋ

    • reinhardt100 2019.02.26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담이지만 조지 소로소가 원래 50만 파운드를 장만한 후, 평생 철학연구하면서 살려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

      저도 구독자로서 기대하고 있습니다.ㅎ

    • 극우세력 2019.02.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헷지펀드 수괴들 대비 소로스 영감님은 하시는 행동도 차이가 남다르시지요, 흑막정치가나 국제사상가가 그 인간의 본질이지 투기세력이 과연 본업이신지

  3. 2/28일 입대 2019.02.25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침공은 OO위키에서만 읽어도 너무 처절하고 처참하던데 나시카님이 어떻게 풀어주실지 기대가 커요!

    • reinhardt100 2019.02.26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 침공보다 사실 진짜 개판이었던 건 이베리아 전쟁이었죠. 오히려 러시아 원정은 천운으로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그 정도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입니다. 베레지나강에서 철수할 때 영하 20도까지는 안 갔으니 망정이지 만일 독소전쟁기 모스크바 공방전 수준 날씨 같았으면 그랑 드 아르메 및 동맹군은 싸그리 러시아 벌판의 인간비료지층이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 웃자웃어 2019.02.27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폴레옹식 핑계를 직장에서 대면 바로 해고당하죠.

  4. dd 2019.03.20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판된 책을 어떻게 봅니까 ㅠㅠ

2019.02.21 06:30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페인에서 싸우던 영국군 장교의 이야기를 그린 시리즈물, Sharpe 시리즈 중에서 한 장면입니다.  


아래는 그 중 한 장면입니다.  당시 영국군에서는 전사자의 유품을 그대로 유가족에게 보내지 않고, 동료들에게 경매에 붙여 매각한 뒤 그 돈을 유가족에게 송금하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이는 해군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아마도 당시에는 DHL이나 FEDEX가 없어서 그랬나 봅니다.  아래 본문에 보면, 급여 담당관에게 돈의 송금을 맡기고, 그 급여 담당관은 일부 금액을 수수료로 떼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수수료는 대략 몇%였을까요 ?  대략 7~8%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인플레가 심한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너무 심하게 떼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당시에는 온라인 송금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많이 떼는 것 같지도 않군요.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5년 벨기에) ----------------------


왕세자 직속 지원병 연대의 제1중대 지휘관인 해리 프라이스 대위는 탄약상자를 쌓아 만든 임시 연단 위에 올라섰다. 그의 앞에는 근처에 숙영하고 있는 여러 대대에서 온 40~50명의 장교들이 비로 흠뻑 젖은 벌판 위에 모여있었다. 세차게 내리던 비가 이제 부슬비로 변하면서, 서쪽에서는 구름뒤의 희미한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신사 여러분, 준비되셨나요 ?" 프라이스가 외쳤다.


"시작하라구 !"


프라이스는 아주 즐거워하면서, 조롱을 퍼붓는 장교들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고는 특무상사 헉필드로부터 첫번째 물품을 건네 받았다. 해리 프라이스가 희미한 석양 빛 속에 높이 쳐든 것은 뚜껑이 은으로 된 회중시계였다.


"회중시계입니다, 신사 여러분, 고 미클화이트 소령의 유품이지요 ! 이 물건은 아주 약간만 피에 젖었으므로, 잘 닦아내기만 하면 시간이 아주 잘 맞을 겁니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께 엑세터의 마스터슨 제의 회중 시계를 선보입니다 !"


"마스터슨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어 !" 누군가가 외쳤다.


"댁의 무식함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마스터슨은 아주 유서깊고 명성있는 회사입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항상 마스터슨 시계로 시간을 맞추셨고, 덕분에 평생 단 한번도 시골 무도회에 늦으신 적이 없었답니다. 자, 미클화이트 소령의 시계에 1파운드 부르실 분 있을까요 ?"


"1실링 ! (1/20파운드, 당시 일반 사병의 하루 일당이 1실링.  현재 가치로 대략 1만2천원 :역주)"


"자, 협조 좀 합시다 ! 미클화이트 소령은 미망인과 세명의 심성고운 자녀를 남겼습니다. 여러분같으면 어떤 도둑 심보의 후레자식들이 관대하질 않아서 여러분의 부인과 아이들이 빈곤하게 되는 걸 바라시진 않겠지요 ! 자, 1파운드라는 소리를 좀 들어보자구요 !"


"1플로린 ! (2실링:역주)"


"이게 무슨 인형가게인줄 아쇼, 신사여러분 ! 1파운드, 누구 1파운드 부를 사람 ?"


아무도 없었다. 결국 미클화이트의 시계는 6실링에 팔렸고, 인장 반지는 1실링에 팔렸다. 칼라인 대위 물건이던 멋진 은잔은 1파운드였고, 그날 경매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것은 칼라인 대위의 검이었는데 10기니(1기니는 21실링:역주)에 팔렸다. 해리 프라이스가 그날 저녁 팔아야 했던 물건은 62개나 되었는데, 모두 그날 콰트르 브라(Quatre Bras, 4개의 팔이라는 뜻)에서 프랑스 기병대에게 당한 왕세자 직속 지원병 연대 장교의 유품이었다.  경매 가격은 무척 낮은 편이었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 그날 프랑스 기병대가 하도 많은 장교들을 죽여서 시장에 물건이 아주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의 이 물건들은 내일 쏟아져 나올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프라이스는 생각했다.


"칼라인 대위의 박차 한쌍입니다, 신사 여러분 ! 금제품입니다, 제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 주장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조롱을 받았다. "1파운드 있습니까 ?"


"6펜스. (1페니는 1/12 실링)"


"이런 불쌍힐 정도로 빌어먹을 친구들 같으니라고. 내가 2펜스(당시 가장 낮은 단위의 동전이 2펜스였는지, 2펜스라는 것은 싸구려라는 뜻과 동의어: 역주)에 막 내줘버리는 물건이 댁들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소 ? 좀 관대해집시다, 신사여러분 ! 미망인들을 생각하세요 !"


"칼라인은 미혼이었는데 !" 한 중위가 외쳤다.


"그럼 그 인간의 정부를 위해서 1기니 ! 좀 기독교적인 관대함을 보여줘요, 신사 여러분 !"


"내가 그 인간의 정부를 1기니에 사지 ! 하지만 그 인간의 박차는 6펜스야 !"


미클화이트의 유품은 다합쳐서 8파운드 14실링하고도 6펜스에 팔렸다. 칼라인 대위의 소지품은 훨씬 더 많이 값을 받았는데, 그래도 원가보다 훨씬 싼 가격이었다. 항상 기병대 장교처럼 보이고 싶었던 해리 프라이스는 그 박차를 9펜스에 자신이 샀다. 그는 칼라인의 털가죽으로 가장자리를 댄 펠리즈도 샀다.  이는 부유한 장교들이 유행으로 입던, 우아하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옷인데, 망토처럼 한쪽 어깨에 걸쳐 입는 짧은 자켓이었다. 해리 프라이스는 칼라인의 값비싼 장식 의상을 자신의 초라한 붉은 코트 위에 입는 것에 무한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돈과 어음을 대대의 급여담당관에게 전달했고, 이 담당자는 자기 수수료를 챙긴 뒤에, 그 돈을 전사자의 유족들에게 보내게 되어 있었다.


해리 프라이스는 박차를 자신의 장화에 달고는, 울타리를 건너 다른 장교들이 비참한 움막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곳으로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걸어갔다.


그는 달렘보드 소령이 울타리 저 너머에 기대어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오늘 경매에는 참여 안했지요, 피터 ?"


"오늘은 그만, 해리, 오늘은 제발 그만."  달렘보드의 목소리는 더이상의 대화가 반갑지 않다는 듯,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프라이스는 달렘보드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눈치채고는 그냥 울타리를 따라 좀 걸어간 뒤, 앉아서 그의 뒤꿈치를 장식하고 있는 박차를 감탄하듯 쳐다 보았다. 이 박차를 차고 가면, 파리의 숙녀들에게 틀림없이 깊은 인상을 줄 것이고, 사실 그것이 해리 프라이스가 싸우는 최상의 동기였다. 여자들은 외국 군인에게 끌리는 법이었고, 특히 그 군인이 박차와 펠리즈로 장식한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었다.



(목요일이라 전에 다음 블로그에 올렸던 것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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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 2019.02.2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계가 의외로 싸게 팔렸군요? 산업혁명 전이라서 기계식 시계는 엄청 비쌀줄 알았는데

  2. ㅎㅎ 2019.02.21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장에서는 시계찬 군인들이 무더기로 죽었을테니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싸게된거 아닐까요

    • ㅋㅋ 2019.02.21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생각외로 넘 싸서 놀랐네요. 현대에도 해밀턴이나 띠쏘 기계식 시계는 제일 싼게 30만원대인데... 태그호이어나 론진, 오리스로 가면 백은 가볍게 넘구요

  3. ㅋㅋ 2019.02.21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Quatre Bras (French for crossroads; literally "four arms") is a hamlet in the municipality of Genappe.

    It lies on the crossroad of the Charleroi-Brussels road (currently named N5) and the Nivelles-Namur road South of Genappe in Wallonia, Belgium.

    On June 16, 1815 near the crossroads of Quatre Bras, the Battle of Quatre Bras (part of the Waterloo Campaign) was fought between contingents of the Anglo-Allied army and the left wing of the French Army.

    출처: 위키피디아

    제 어설픈 지식으로 딴지 좀 걸자면, quatre bras는 사거리라고 의역하는게 더 맞을것 같습니다.

  4. 뱀장수 2019.02.22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그래도 펠리즈 코트같은걸 입고 있으면 적에게 어느 팔이 진짜 팔인지 현혹시켜 적어도 기병전에선 조금은 쓸모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보네요 ㅎㅎ

  5. Walon 2019.02.22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그렇고 저 20진법 화폐체계는 참 계산하기도 힘든데 왜그렇게 영국인들은 향수를 느끼는지 모르겠네요. 대영제국때 한 거면 일단 그리워하고 보는게 종특인가.

  6. dd 2019.02.22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요즘은 연재 안하시나요? 계속 테마글만 올라오네요 ㅠ 토레스 베드라스에서 끊겼다는..

    • 2/28입대 2019.02.22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토레스-베드라스 선 부터 파리까지 밀고 올라가는 자료를 찾고계시지 않을까요

  7. 유애경 2019.02.22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에 조금 젖은 전사자의 회중시계...잘 닦으면...'
    피가 묻어있는 상태로 경매에 내놓은 모양이죠?
    문장만 보고 상상을 하니 뭔가 좀 섬뜩한 선전문구(?) 라는 느낌이 드네요.

  8. TheK2017 2019.02.24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한편으론 가슴 아프네요.

2019.02.18 06:30

웰링턴은 포르투갈에 상륙하자마자 곧 이베리아 반도의 지형적, 그리고 사회적 특수성이 영국은 물론 프랑스나 독일 등 기타 유럽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으로, 제대로 된 길이 없었습니다 !  이는 스페인의 침공 위협 때문에라도 스페인과의 교통로를 적극 개발하지 않았던 포르투갈의 특수성에도 기인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모두 산업과 통상의 발달이 부진했다는 점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지역간에 거래를 할 상품이 없다보니 마차가 다닐 일도 없고, 마차가 다닐 일이 없으니 넓직한 길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지역 감정이 꽤 심한 나라여서 지방 간의 인적 왕래도 그다지 많지 않다보니, 더더욱 내륙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교통망에 더해,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건조한 편이라서 농업 생산량이 그렇게 풍요롭지는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나 독일의 농가들은 어지간한 농가의 창고문만 걷어차도 밀과 보리, 달걀이 쏟아져 나왔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포르투갈은 척박한 스페인과 대비했을 때조차도 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원래 현지 조달에 의존했던 프랑스군은 이탈리아나 독일에서도 쫄쫄 굶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온 지역이 이렇게 가난하다보니,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어려웠지요.  




(보시다시피 이베리아 반도의 상당 부분이 산지이거나 메마른 지대라서, 농업에 적절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스페인은 올리브유 생산이 매우 활발한 나라입니다만, 그건 반대로 곡물 농사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지대라는 반증입니다.)




현지 조달이 어려우면 본국에서 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베리아 반도의 열악한 내륙 교통망이 발목을 잡습니다.  가뜩이나 프랑스 본토와 스페인 사이에 피레네 산맥이 있는 것도 장애가 되었는데, 해안길을 통해서라도 수송대가 이베리아 반도에 진입한 뒤부터가 진짜 고생길이었던 것입니다.  세계 지도에서 보면 스페인은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별로 큰 땅덩어리처럼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건 메르카토르 도법의 특성상 남쪽에 있는 땅이 좁아보이는 것입니다.  프랑스가 64만 평방 km인 것에 비해 스페인이 50만 평방 km으로서, 스페인은 굉장히 넓은 국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탄한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 높은 산맥과 언덕이 많은 땅이지요.  길도 제대로 없는 그런 땅을 가로질러 20만 대군이 먹을 식량을 마차로 수송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그런 도전은 스페인의 게릴라들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경우, 이베리아 땅이 반도이니만큼 그냥 해상으로 수송한 뒤 내륙으로 운송하면 훨씬 일이 쉬워질 것입니다.  문제는 영국의 저 망할 로열 네이비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프랑스군은 어쩔 수 없이 현지 조달에 의존해야 했는데, 이는 수탈당하는 스페인 민중들에게도 큰 비극이었지만 약탈하는 프랑스군에게도 무척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만명 단위의 대군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그 일대의 식량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게 됩니다.  프랑스군이 먹어치우는 것도 있지만, 그 일대의 농민들이 식량을 감추거나 떠나버리기 때문이었지요.  결국 프랑스군은 한 곳에서 1주일 이상 머무르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굶지 않으려고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유랑하는 거지떼 내지는 떼강도 신세가 된 것이지요.  군사 작전이라는 것에서 이동이 잦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적을 압박하거나 반대로 피하기 위해서이지 굶지 않기 위해서 이동하는 군대에게는 작전의 유연성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스페인에 투입된 근 20만에 가까운 프랑스군 대부분은 먹을 것을 찾아 이동 중이거나, 분산되어 먹을 것을 약탈 중이거나, 혹은 신기루 같은 게릴라들의 뒤를 쫓아 산 속을 헤매면서 세월을 낭비해야 했고, 실제로 영국군이나 스페인군과의 전투에 투입되는 프랑스군은 그 1/4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웰링턴은 유능한 지휘관답게, 이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영국군이 10만 단위의 대군으로 되어 있는 프랑스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군량 조달을 가장 유용한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조건은 비슷했습니다.  길이 형편 없는 것도 똑같았고, 바닷길을 이용할 수 없는 것도 같았습니다.  스페인의 주요 항구들이 대부분 프랑스군 손아귀에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식량을 수송해올 거리는 영국 측이 훨씬 멀었습니다.  영국과 포르투갈 사이의 거리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거리보다 멀었고, 그나마 영국 본토도 대륙 봉쇄령으로 인해 식량난이 심해져서 밀과 빵값이 오르는 등 난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규모로 식량을 포르투갈에 보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미국과 남미, 오스만 투르크, 심지어 북아프리카 모로코 등지에서 식량을 구매하여 포르투갈로 실어날랐습니다.




(혼블로워 시리즈 중에서 (실제 소설이 씌여진 순서는 아니지만) 첫번째 편인 Mr. Midmanship Hornblower는 혼블러워의 사관후보생 시절을 그린 옴니버스식 소설입니다.  그 중 한 에피소드가, 식량으로 소를 사러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 들어갔다가 전염병에 휘말려 격리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국군 병참부에게 진짜 고난은 포르투갈 해변에 온갖 보급품이 잔뜩 쌓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1808년 8월, 당시 쥐노가 점거하고 있던 포르투갈을 탈환하기 위해 웰슬리가 포르투갈 마세이라(Maceira) 만에 상륙했을 때, 전에 언급한 샤우만(August Friedrich Ludolph Schaumann)이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 병참 장교에게 주어진 임무는 터무니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조수도 부하도 없이 혼자서, 그저 공책 한권을 주고는 해변 여기저기에 야적된 수많은 보급품 더미를 조사하여 목록을 작성한 뒤 이제 내륙으로 진격할 영국군 부대를 따라 수송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샤우만이 그런 업무에 숙련된 병참 장교였는가 하면 그게 또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랑스군의 하노버 침공 이전에 하노버 군에서 몇년 장교로 복무했다가 퇴역한 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장부 작성 등의 업무를 좀 해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영국군 소속 독일군 전투 부대인 KGL 제7 연대 소속의 평범한 장교였고, KGL 장교로서는 승진과 연금의 비전이 없다고 보고 일당 7.5 실링(현재 가치로 대략 9만5천원)의 급여를 위해 병참 장교로 자리를 옮긴 아마추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아무런 지침이나 교본이 없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The British Commissary'(영국 병참부)라는 멋대가리없는 제목의 책이 한권 있었는데, 이는 메서리어(Havilland le Mesurier)라는 이름의 영국인이 쓴 것으로서, 당시 영국군 병참부 직원들에게는 수학의 정석이나 다름없는 책이었습니다.  메서리어는 원래 해외 무역업자였다가 프랑스 혁명정부와 영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자 1793년부터 네덜란드 방면 영국군 원정대에 딸린 병참 장교 역할을 했습니다.  1794년에서 그 다음해까지 벌어진 이 방면 전투에서 영국군은 형편없는 성과만 냈을 뿐이었지만, 정말 아무 준비도 안 되어있던 영국군 병참부는 이 난리통 속에서 그나마 나름 경험과 수완을 쌓았던 모양입니다.  그 이후에도 메서리어는 병참부 장교직을 사직했다 복직했다 했는데, 영국군 병참부에 대한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저 'The British Commissary'라는 책을 저술한 것이었습니다.  




(메서리어의 'The British Commissary'입니다.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책입니다만, 저는 못 읽어보았습니다.)




그런 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포르투갈에서의 영국군 병참부는 초기에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참부는 힘만 들고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노동일을 하는 부서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만큼, 빛나는 전통이고 뭐고가 없었던 것입니다.  달랑 책 한 권을 손에 든 경험 없는 병참부 장교들도 막대한 보급품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사실은 병참부 소속 장교들은 진짜 장교도 아니었습니다.  병참부는 군의 일부가 아니라, 재무부의 감독과 지시를 받는 파견직 민간인들이었거든요.  따라서 deputy commissary-general이니 assistant deputy commissary-general이니 하는 것들은 진짜 장군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말단 사병들이 경례를 할 필요도 없는 그야말로 민간인 정부 관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장교들과 엇비슷한, 그러나 분명히 차이가 나는 군복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권총과 군도와 같은 무기도 휴대했습니다.  병사들은 '저것들은 장교 비슷한 군복은 입었지만 장교가 아니며,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와 함께 싸우지 않고 후방으로 도망친다'라고 생각하고 이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적지 않은 경우 무기를 들고 프랑스군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처럼 아군에게 저평가되었지만, 사실 이들의 업무는 제1선 장교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우며 개인적인 창의성과 수완,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전투 현장에서 대포알과 머스켓 탄환에 노출된 채 병사들을 이끌고 전진할 때, 멋진 붉은 제복을 입은 장교가 부릴 수 있는 재주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운이 좋은 자는 살아서 전진할 수 있는 것이고, 운이 나쁜 자는 대포알에 두동강이 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진흙탕 길에 바퀴가 빠진 무거운 수레를 어떻게 빼낼 것인지, 수송에 3일 걸리는 건빵 자루 더미들을 어떻게 2일 안에 최전방까지 나를 것인지, 가진 돈은 50쉴링 밖에 없는데 일당 1쉴링을 요구하는 노새 30마리를 어떻게 3일 동안 빌릴 것인지 등은 그야말로 담당 직원의 역량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성공과 실패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뒤바뀔 수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도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밀가루 자루를 실은 노새들을 끌고 최전선 부대에 도착한 병참부 장교에게 주어지는 것은 '왜 이리 늦게 왔냐' '왜 보급품이 이것 밖에 없는가' 등의 핀잔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병참부는 체계화가 꼭 필요한, 나름대로 무척 섬세하고 정밀한 병과입니다.  가령 포르투갈을 통해 상륙하는 영국군 병사들의 행군에 대해 웰링턴이 병참감(Commissary General)인 케네디(Sir Robert Hugh Kennedy)에게 보낸 지시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들어있습니다.


"상륙하는 부대는 각자 4일치의 빵과 2일치의 고기를 휴대한다.  병사들이 휴대하는 빵 외에, 1만 명의 3일치 빵을 수송해야 하는데, 가능하다면 노새를 이용해 날라야 한다.  각 노새에는 2개의 자루, 즉 224파운드의 짐을 실을 수 있으므로 전체를 위해서는 130마리의 노새가 필요하다."


이 계산은 꽤 합리적입니다.  당시 영국군 병사들의 배식량은 하루에 빵 1파운드였는데, 1만 명의 3일치라면 3만 파운드입니다.  224파운드를 실을 수 있는 노새를 130마리 동원한다면 224 * 130 = 29,120 파운드이므로, 1인당 0.97 파운드씩의 빵을 3일간 보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계산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노새가 먹을 사료는 계산에 넣지 않았쟎습니까 ?  노새는 하루에 10파운드의 곡물을 먹어야 했고, 병사들이 3일 행군하는 것을 따라 나섰다가 다시 보급품이 쌓여있는 항구로 되돌아오려면 왕복에 6일이 걸렸으므로, 노새 1마리가 싣는 224 파운드 중 최소 60파운드의 곡물은 노새가 먹어치우게 되어 있었습니다.  즉, 130마리의 노새의 실제 수송량은 29,120 파운드가 아니라 21,320 파운드였고, 병사들은 3일간 0.97 파운드가 아닌 0.7 파운드라는 부실한 양의 빵을 받아야 했습니다.




(도로망이 형편없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노새들을 이용한 보급품 수송이 정말 최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영국군 병참부도 2년 정도에 걸쳐 노새꾼들과 노새들을 고용하여 운용을 하면서 경험이 쌓여, 그 고용 및 활용, 급여 지급 등 온갖 자질구레한 잡무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은 총사령관인 웰링턴 장군이 이런 노새 한마리가 몇 파운드의 짐을 싣을 수 있으며 그래서 몇 마리의 노새가 필요한지에 대해 계산하여 병참감에게 보내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  이런 편지는 오히려 반대로 병참감이 원정군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보내는 것이 맞겠지요.  당시 웰링턴은 병참부 장교들과 서기들의 무능력에 대해 짜증이 잔뜩 난 상황이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샤우만을 포함한 대부분의 병참 장교들이 별다른 병참 업무 경험도 없이 새로 채용된 사람들이다보니 워낙 아는 것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군 병참부는 웰링턴 하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총사령관 웰링턴이 직접 나서서 '가장 신경써야 하는 부서'라고 지목하면서, 저렇게 노새 몇 마리가 필요하다는 계산까지 세세히 해줄 정도였으니 당연히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특히 1810년 10월부터 다음해 초까지의 대치 끝에 토헤스 베드하스(Torres Vedras) 방어선 앞에 마세나의 프랑스군을 후퇴시킨 승리는 사전에 충분한 군량을 비축해놓은 영국군 병참부가 아니었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 아무도 병참부의 공로를 알아주지 않았지요.  이 사실은 웰링턴 휘하 어지간한 장군들에 대해서는 위키피디아 등의 인터넷 사이트에 많은 정보가 있는 것에 비해, 웰링턴 휘하의 전체 병참부 책임자였던 케네디(Sir Robert Hugh Kennedy)에 대해서는 정말 정보가 없다는 것으로도 반증됩니다.  오히려 영국군 병참부의 위력과 중요성을 잘 알고 두려워했던 것은 적군인 프랑스군이었습니다.  1812년 웰링턴과 대치했던 마르몽(Marmont) 원수는 나폴레옹에게 이와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웰링턴은 제게 보급품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광활한 척박함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마르몽은 유난히 영국군의 노새 부대에 대해 넋두리를 많이 늘어놓았습니다.  1811년에도 그는 나폴레옹의 참모장 베르티에에게 편지를 써서 '영국군은 노새 1만2천 마리를 이용하여 너무나 쉽게 이동한다, 그러니 내게 단 1천2백 마리라도 노새를 좀 공급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개성을 가지고 사람과 소통하는 용들이 등장하는 나오미 노빅의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 '테메레르'에 대해 전에 언급했던 적이 있지요.  대포의 시대라고 해도 그런 거대한 용들 수백 마리로 구성된 군대가 있다면 아마 천하무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거대한 용들에게 먹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Grande Armee)도 일종의 용이었습니다.  그 대군을 일거에 밀어넣으면 스페인 정도야 순식간에 휩쓸어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군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지요.  영국군이 소수로도 내노라하는 나폴레옹의 부하들을 차례로 꺾고 스페인에서 프랑스군을 몰아낸 것은 바로 그 문제를 잘 해결했기 때문이었고, 그 핵심에는 영국의 병참부가 있었습니다.






Source : The Duke Of Wellington And The Supply System During The Peninsular War, by Major Troy T. Kirby

Tracing the Biscuit: The British Commissariat in tite Peninsular War, by William Reid

On The Road With Wellington, by August Ludolf Friedrich Schaumann

https://de.wikipedia.org/wiki/August_Friedrich_Ludolph_Schaumann

https://www.britannica.com/topic/logistics-military/Historical-development

https://en.wikipedia.org/wiki/Military_logistics

https://en.wikipedia.org/wiki/Bastion_fort

https://en.wikipedia.org/wiki/Glacis

https://en.wikipedia.org/wiki/Havilland_Le_Mesurier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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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ithel 2019.02.18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프가 텐트 노새 계산하던게 생각나네요.
    아참, 테메레르의 작가는 나오미 노빅입니다.

  2. TheK2017 2019.02.18 0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하편이네요. 지금 버스에서 내려야 해서 쟁여놓았다 봐야겠네요. ^ㅇ^*

  3. 카를대공 2019.02.1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이 없다,산지,건조한 기후
    이거 남 얘기 같지가 않군요.

    대대로 한반도의 기후나 지형이 풍요로운 땅과는 거리가 멀었죠.
    알면 알수록 왜 옆나라들에 치이고 살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 Spitfire 2019.02.26 1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반도가 곡창지대에 비하면 살기가 어려웠겠지만 주변국가들에 비해 풍요롭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국가들이 자주 침입을 한 것이지요. 도둑은 부잣집을 털지, 거지를 털지 않습니다.ㅎㅎ

  4. TheK2017 2019.02.18 1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 영국이 승리한 이유가.
    역시 전쟁에선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끔 알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ㅇ^*

  5. 인간늑대 2019.02.18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6. 지나가다 2019.02.18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은 항상 전투의 화려함에 주목하지만 그 뒤에서 스폿 라이트도 받지 못하고 개고생 하면서 물자를 날라주는 보급부대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지요.
    사실 어느 회사에서 근무하던지간에 영업과 같은 일선부서 직원들이 평가나 급여 및 상여에서 항상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면 지원부서는 돈한푼 못벌고 쓰기만 한다며 갈굼당하기 일쑤인 것 같습니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고, 유사시를 대비해서 지원부서도 항상 적정한 유지및 관리가 들어가야 될텐데 말이죠...쩝.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7. 인퀴지터 2019.02.18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나 한심한 책이라 나폴레옹 매니아께서 거론할줄 예상도 못했습니다. 테메레르는.

  8. 유애경 2019.02.18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식량을 바닥내고 지나가는 프랑스군 에게서 , 머문자리를 초토화 시키고 지나가는 메뚜기떼를 연상하게 되네요.


  9. reinhardt100 2019.02.19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저번에 한 번 언급했지만 20만 대군을 일거에 쏟아부어서 전선을 정리했어야 했다는 제 개인의 의견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복수의 보급선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프랑스 제국 단독으로 하기는 어려울거고 라인동맹이나 이탈리아 왕국 등의 실질적인 속국의 여력을 모두 동원해야 가능하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20만 대군을 영국군과의 전장에 투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만한 보급선 경비 병력이 또 필요하다는 것인데 사실 나시카님 말씀대로 이 정도 병력을 이베리아반도에 쏟아붓는 것은 다른 속국들을 방기하다 시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박인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할 건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승산이 없는건 아니고 하나의 문제만 해결되면 절반 이상의 확률로 전쟁 전체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베리아 전쟁을 승산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분리독립주의가 강했던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카탈루냐등을 전방 보급을 위한 배후지역으로 확보한 후 이 지역들에서 출발하는 간선도로망을 모두 확보합니다. 이후, 카탈루냐에서는 아라곤 및 발렌시아, 바스크-아스투리아스-갈리시아 전역을 석권한 후 카탈루냐-타라코나 및 사라고사-발렌시아 축선에서는 무르시아-카르타헤나를 공략 후, 지브롤터를 고립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카디스 혹은 리스본까지 지중해 연안 및 주변 내륙 전역을 점령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북부에서 출발하는 프랑스군은 부르고스-바야돌리드-살라망카까지 1차적으로 공략한 후, 마드리드를 고립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후, 메리다를 공략, 메리다-바다호스-리스본 공략을 순차적으로 이어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점령하는 방식으로 갔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작전에서 전체 총병력은 프랑스군 공격군으로 24만 이상, 보급선 경비병력 최소 12만이며 이외 동맹군인 이탈리아왕국군, 라인동맹군, 스위스군 등을 합쳐 최소 10만 이상을 투입하며 작전 기간은 총3년, 동원 각종 야포 및 공성포 총 2천 문, 각 부대별 상비 비상식량을 최소 한 달분(러시아원정기 나폴레옹이 준비한 비상식량분 기준) 등의 보급역량을 갖추고 임한다는 가정하에 생각해본 겁니다.

  10. Spitfire 2019.02.19 1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베리아 반도의 척박하고 험준함을 들으니 일생의 목표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고 싶어지네요~ 저길 걸었던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은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지 궁금합니다.ㅎㅎ

  11. 웃자웃어 2019.02.19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급의 중요성이 입증되는 글이군요.

  12. 리틀락 2019.03.08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은 경제력으로 하는거군요. 그렇게 무역을 중시했던 영국이 브렉시트 하는걸 보면 웃음이 납니다 ㅋㅋㅋ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자들이 경제관념은 바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