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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보로디노 전투 (12) - 허무한 결말

by nasica 2020. 10. 12.


나폴레옹이 근위대 투입을 주저하며 머뭇거리던 3시간은 러시아군에게는 정말 소중한 재정비 기회였습니다.  쿠투조프는 여전히 고르키 마을에서 참모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지만 바클레이는 러시아 방어선 우익에 포진되어 있던 병력을 대거 중앙과 좌익 쪽으로 옮겨 허물어진 방어선을 재구성했습니다.  특히 러시아군의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이 라에프스키 보루 앞에 정렬했으므로 그 쪽으로 강력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 뻔했으므로, 라에프스키 보루의 양 옆에도 보병들을 포진시켰고, 보루 뒤 800m 후방에는 보병과 포병으로 제2 방어선도 든든히 구축해놓았습니다.  콜랭쿠르가 목숨을 버려가며 점령한 라에프스키 보루는 그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입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카잔 성당 인근에 있는 바클레이의 동상입니다.  분명히 그는 여기에 서 있을 자격이 있습니다.)



라에프스키 보루를 점령하고 방어선을 돌파했다고 환호하던 프랑스 기병대는 이제 바클레이의 보병 방진을 뚫어야 했습니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프랑스 기병대의 말들은 몇 주 동안이나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질에 시달리던 상태라 더더욱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기병대는 말을 달려 이들에게 달려들었지만, 바클레이가 직접 지휘하는 러시아 보병들은 침착하게 머스켓 소총 사격을 퍼부으며 그렇쟎아도 손실이 컸던 프랑스 기병대에게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할 뿐이었습니다.  특히 보병 방진 모서리 부분마다 설치된 러시아 포병대는 접근하는 기병대에게 끔찍한 포도탄과 캐니스터탄을 퍼부었으므로, 결국 프랑스 기병대의 희생은 차곡차곡 늘어났습니다.  

보병 방진은 기병대에게는 무적이었지만 반대로 그런 밀집대형은 포병에게는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면 곧 프랑스 포병대가 전진 배치되어 러시아 보병 방진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 뻔했습니다.  바클레이는 그걸 기다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현장을 직접 지휘했던 바클레이는 언제나처럼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날 그는 마치 명예로운 죽음을 찾아 헤매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총사령관직은 쿠투조프에게 빼앗겼지만 여전히 제1군 사령관이었던 그는 이미 군중에서 온갖 욕은 다 먹고 있던 처지인지라, 차라리 전사함으로써 명예를 되찾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간 곧 몰려올 프랑스 포병들의 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해둔 예비 기병대에게 돌격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그런데 예비 기병대가 없었습니다 !  알고보니 이 날 하루종일 미친년 널뛰는 듯한 지휘를 보여준 쿠투조프가 그 예비 기병대의 직속 상관인 바클레이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제멋대로 다른 장소로 이동 배치했던 것입니다.  이런 코미디 와중에도 바클레이는 굴하지 않고 인근 지역의 기병대를 박박 긁어모아 기어코 반격에 나섰습니다.  곧 이 일대는 양측 기병대가 일으키는 흙먼지와 함성, 갑옷 위에 부딪히는 칼날 등의 소음으로 열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프랑스군은 다시 라에프스키 보루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라에프스키 보루 뒤편에서 충돌한 양측 기병대의 혈투 장면입니다.  전에 언급한 Roubaud의 파노라마화에서 따온 일부입니다.)



바클레이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러시아군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좌익 끝부분, 즉 우티차(Utitsa) 마을을 빈약한 병력으로 지키고 있던 투치코프에게도 우익에서 빼낸 자신의 병력을 지원 병력으로 투입해주었고, 덕분에 이 마을을 집요하게 공격하던 포니아토프스키의 폴란드 군단은 이 마을을 점령하는데 끝내 실패했습니다.

오후 4시 즈음 해서는 양측은 정말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의 공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양측의 포병대는 죽어라 불을 뿜어댔습니다.  러시아군은 방진을 짜고 자리를 지켰는데, 곧 나폴레옹이 투입한 근위 포병대를 포함한 프랑스 포병대가 나타나 그들을 두들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보병들은 픽픽 피떡이 되어 쓰러지면서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확실히 러시아군은 프로이센군이나 오스트리아군과는 달랐습니다.  저 정도로 두들겨 맞아 극심한 사상자가 발생하면 규율이 무너지고 집단 패주가 일어날 만도 한데, 러시아군 병사들은 거의 체념적인 복종심으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러시아군 포병대로 열심히 대포를 쏘아댔고, 프랑스군은 감히 전진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폴레옹의 궁정화가인 르죈(Lejeune)이 1822년에 그린 보로디노 전투입니다.  이런 그림들은 당연히 상상화이지만, 나폴레옹이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참전 당사자들을 자주 만나본 당대의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므로 당시의 복장이나 장비 등의 모습을 아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르죈의 그림을 확대한 것입니다.  정중앙 약간 왼쪽의 저 기병은 누가 봐도 나폴리 왕 뮈라지요?)

(역시 르죈 그림을 확대한 것입니다.  하단 중앙에서 하일라이트를 받고 있는 부상자와 그 옆의 흰머리의 장군은 누군지 모르겠네요.  부상자를 위로하는 듯한 저 흰머리 장군은 제가 보기에는 베시에르 같습니다만, 설명을 못 찾았습니다.)

 

(르죈의 이 보로디노 전투화는 특히 하단의 오른쪽 부분을 보면 폭발탄을 맞고 쓰러지는 기병의 모습이나 불붙은 폭발탄의 심지를 발로 비벼 끄려는 보병, 그 옆에서 놀라고 있는 사람 등 독특한 세부화가 많습니다.  저 놀라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상한 모자를 쓰고 초라한 농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나 민병대 같아 보입니다.)  

 



이때 러시아군 사정은 '전쟁론'의 저자이자 당시 러시아 제1군 참모진에 있었던 클라우제비츠의 표현에 따르면 그야말로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만 더 얹으면 당장 등이 부러질 정도로 짐을 많이 실은 노새 수준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흔히 coup de grace(자비의 일격)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한방 뿐이었습니다.  나폴레옹으로서는 이 피비린내 나는 소모전을 러시아 야전군의 궤멸로 몰아넣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고, 그의 근위대는 아직 팔팔 했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 투입되어 전우들을 돕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습니다.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까지 갔던 신참 근위대의 경우 좌우로 정렬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고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가 그를 눈치챈 나폴레옹에 의해 '동작 그만'을 당할 정도로 전투에 참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나폴레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나폴레옹은 셰바르디노 언덕에서 내려와 라에프스키 보루를 포함한 점령된 러시아 방어선으로 이동하여 러시아군의 상태를 직접 관찰했습니다.  그러나 화약연기와 먼지 구름으로 인해 뿌옇게 된 전장에서 러시아군이 대오를 갖추고 있는 것 외에는 망원경에 들어오는 정보가 별로 없었습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기로는 러시아군은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가 분명히 본 것은 셰바르디노 언덕에서 내려와 거기까지 가는 동안 보로디노의 평원에 즐비하게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와 부상병들 뿐이었습니다.  그건 여태까지 수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닌 나폴레옹으로서도 경악하기에 충분한 규모의 학살극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차마 최후의 안전장치인 근위대를 대대적으로 투입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후 6시 경이 되자 계속 구름이 짙어지던 하늘에서는 마침내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부상병과 시체, 피 뿐만 아니라 온갖 오물이 가득 했던 전장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적의 모습이 빗방울과 어둠 속에 묻히면서 러시아군은 슬금슬금 약 1km 후방으로 더 후퇴했고, 하루종일 기진맥진했던 양측의 포병대도 슬그머니 포격을 멈추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거의 3개월 전에 그랑다르메를 이끌고 네만 강을 넘으면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러시아군과 정면으로 한판 붙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것이 그렇게 고대하던 전투의 마무리였습니다.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en.wikipedia.org/wiki/Battle_of_Borodino

napoleonistyka.atspace.com/Borodino_battle.htm

www.visit-petersburg.ru/en/showplace/197017/

 

 

댓글23

  • Franken 2020.10.12 07:25

    ㅎㅎㅎ상황판단의 신이었던 나폴레옹은 어디로 가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배불뚝이가 된 나폴레옹이 되었군요.
    답글

  • 지오토 2020.10.12 08:28

    안타깝네요 ㅠㅠ 어떻게 온 러시아땅인데...

    답글

  • hms 2020.10.12 11:14

    힘껏 두들겨서 알렉상드르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했는데... 이도저도 아닌 싸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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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까님 2020.10.12 12:38

    아 안타깝네요
    용돈 조금 덜어서 카메라 달린 장난감 드론 하나 사주고싶습니다
    "나패륜 형 눈이 있으면 직접 보소"
    그렇게 해서 제가 무슨 득 볼 일도 없었겠지만 재미있는 강건너 불구경이 이렇게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는군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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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nhardt100 2020.10.12 23:15

    보로디노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도 양측의 화력전이었죠. 특히 500문에 가까운 야포가 쏟아부어대는 화력을 보여준 프랑스군과 이걸 몸으로 막아내면서 대포병 화력전을 그대로 보여준 러시아군 모두 진정한 맞수였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전에 몇번이나 적었지만 보로디노 전투에서 보여준 양측의 화력전은 이후 두 나라의 포병전력 중시의 한 근거가 됩니다. 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군, 2차 세계대전의 소련군 모두 포병 화력을 중심으로 최후 승리를 거둔 겁니다.

    냉전기 동구 바르샤바조약군의 진정한 펀치력은 바로 보로디노에서 시작한 러시아-소련 군사학의 정수인 포병화력과 이를 뒷받침할 편제였습니다. 서방 나토군이 같은 포병으로 대포병 화력전을 벌일 생각 자체를 버리게 하고 통합화력 혹은 전술핵으로 막아낸다는 발상밖에 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정도의 거대한 화력전의 시초였던 보로디노가 좀 더 잘 이야기되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답글

    • 푸른 2020.10.13 20:55

      reinhardt님, 혹시 "보로디노 전투에서 보여준 양측의 화력전은 이후 두 나라의 포병전력 중시의 한 근거가 됩니다" 라고 말하시는 문헌적 근거가 있을까요?

      제가 회고록이나 전기를 자주 읽는 편인데, 1차세계대전 즈음의 프랑스 장군들이나 정치인들이 보로디노전투를 언급한 사례나 보로디노전투에서 전투교리 발전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못읽어봐서요.. 부득불 이런게 없다면 교리상의 연관성으로 설명해주셔도 됩니다.

      한편 얄팍한 지식이지만 1차세계대전 당시 춘계 공세를 꺽고 힌데부르크 선을 돌파한 프랑스군의 포병 화력관제는 극도로 비효율적이었고 사단편제에서 독일이나 영국 원정군에 비해 포의 숫자가 적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 2차세계대전 소련의 경우 지리적 특징을 살린 공세종말점에서의 반격, 이에 따른 전방위압박과 기갑부대를 위시한 종심작전을 통해 역전, 끝내 항복을 받아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군, 2차 세계대전의 소련군 모두 포병 화력을 중심으로 최후 승리를 거둔 겁니다."라고 말하시는 것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 reinahrdt100 2020.10.14 23:43

      프랑스 포병의 위력은 그리보발의 포병개혁이 그 기초인데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건 나폴레옹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군은 포병화력 중심으로 군을 개편했고 이 덕분에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상대로 포병 전력의 우세를 바탕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문제는 프로이센 등의 북독일연방과의 전쟁이었는데 이 당시 프랑스군은 포병화력과 철도, 통신에서 완전히 밀려버리면서 그대로 패전합니다. 이걸 분석하여 나온 걸작이 1897년형 75mm 직사 야포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제17계획이 실패하면서 전군이 붕괴되기 직전인 마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꺼내든 건 엘랑 비탈로 대표되는 공세의지에 의한 강습돌격과 이를 뒷받침해줄 직사화력이었죠. 이 두가지로 어떻게든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해 내었고 뒤이은 베르됭 전투 역시 이 두가지로 독일군의 공세를 돈좌시키는데 성공합니다. 100일 공세 당시에도 프랑스군은 대규모 포병 화력으로 제2선급의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여 방어선을 정비한 후 정예병력 40개 사단을 동원하여 공세를 가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군이 독일군에 비해 열세였던 전력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은 단 하나, 바로 포병화력으로 적의 공세를 돈좌시킨다. 이게 안 되었으면 병력이 부족한 프랑스군이 패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지노선 역시 일종의 포병중시 사상이 참호전과 연결되어 나온 결과물입니다. 독일과의 국경선 전부를 전선으로 상정하고 그 전선에 대규모 화력을 퍼부을 수 있게 상정한 요새선이니까요.

    • reinahrdt100 2020.10.14 23:51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제정 러시아군 한동안은 기동전 중시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크림 전쟁에서 프랑스군의 포병전력에 호되게 당하면서 1877년 전쟁에서는 대규모 포병 전력을 동원해 터키군을 그대로 녹아내리게 만듭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은 의외로 러시아군이 <공간을 주더라도 주력, 특히 포병전력을 잃지 않는다.>라는 전선운용을 보여주었는데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 헝가리군을 상대로 기동전을 벌일 여지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포병 전력을 동원합니다. 이게 잘 먹힌 경우가 바로 브루실로프 공세입니다.

      독소전쟁에서 소련의 전투방식은 <전선에 전개된 독일군의 전력을 공세로써 소모시켜가면서 대규모 종심작전을 벌여 적을 붕괴시킨다.> 입니다. 여기서 종심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것이 바로 광정면에서 대규모 포병화력을 퍼부을 수 있게 해준 소련군 포병이었습니다. 트리안다필로프, 스베친 등이 원하던 전술운용은 사실 포병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웠으니까요.

      소련군이 대규모 포병을 동원하여 독일군을 전선에서 소모시켜나가지 않았다면 종심작전 자체의 성공 및 확대 가능성은 확실히 떨어졌을 겁니다.

    • 푸른 2020.10.15 12:57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두번째 질문의 경우 제 나름대로 찾아보니 대전 말 소련군의 기계화에 따른 포병 증강이나 거대한 강을 이용한 전함의 화포지원이 우수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경우 100일공세에서 제병합동전술을 대규모로 시행함으로써 방어선을 돌파했었네요. 물론 100일공세 당시 포병화력은 루덴도르프 공세 당시 독일군보다 못했으며 오히려 보병전력이 웃돌았더군요. 유럽의 짱깨라 불리는 이유가ㅋㅋㅋㅋ

      한편 첫번째 질문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신거 같습니다. 제가 질문드린것은 보르디노 전투라는 원인이 포병중시 사상에 어떤 결과를 주었는가에 대한 인과적 질문이지 보로디노 전투는 쏙 빼고 포병 중시라는 일련의 흐름을 질문드린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들어주신 근거가 오히려 보로디노 전투가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근거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부연하자면, 프랑스의 야포개발은 보불전쟁에 따른 쇄신책이었고 제정러시아의 포병 증강은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충격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의 포병 화력전이 영향을 끼쳤다기에는 보불전쟁과 크림전쟁 이전 상황과 이후의 변화가 아귀가 맞지않습니다. 라인하르트님의 주장마냥 보로디노 전투의 포병전이 프랑스와 러시아에 영향을 주었다면 프랑스의 야포개발은 보불전쟁 이전에, 러시아의 포병증강은 크림전쟁 이전에 이미 하고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셨어야죠;;;

      결국 님의 기존주장과 대치되는 "보로디노 전투의 포병전에서도 두 나라는 배운게 많지않다"라는 답을 해주신것 아닌가 싶습니다..

    • reinhardt100 2020.10.15 15:42

      제가 쓴 글 읽어보니 그런 결론이 나오네요. 죄송합니다.

      급하게 회계처리 할 게 있어 출장 가는 도중에 쓴 글이라 두서가 없었네요.

  • reinhardt100 2020.10.12 23:26

    보로디노 전투의 후반부는 라예프스키 보루가 프랑스군에게 떨어진 후 세모노프스카야를 중심으로 예비대를 전부 끌어다 모은 제2차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향해 양측 모두 10만에 가까운 백중세를 보인 상황입니다. 여기서 러시아군이 가지지 못한 충력력을 프랑스군은 가지고 있었죠. 바로 제국 근위대였죠.

    이게 생각외로 중요한데 러시아와의 주요 전투에서 서방권 군대는 항상 러시아군에는 없거나 부족한 최정예 병력의 충격력을 가지고 있었죠. 클루시노 전투의 폴란드 윙드 후사르, 폴타바 전투의 스웨덴 본토 출신 최정예사단, 보로디노 전투의 제국 근위대, 이후 쿠르스크 전투의 대독일사단 같은 충격력이죠. 여기서 만일 나폴레옹이 근위대를 투입했다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보로디노 전투에서 아마 러시아군 전열이 녹아내렸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러시아군을 궤멸시키는 건 솔직히 의문이 듭니다.

    우선, 제국근위대 같은 충격력이 어느 정도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양측의 대포병 화력전이 워낙 치열한데다가 일단 프랑스군보다 야포 수가 몇십문이라도 많으 러시아군이 포병화력으로 제국근위대의 강습돌격을 돈좌시켜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 하나 더 하자면 제국근위대를 도와줄 기병 전력이 바닥이 드러났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어쨌든 보로디노 전투는 의외로 아쉬움이 가득한 전투이기는 합니다.
    답글

    • 나삼 2020.10.13 00:36

      나폴레옹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러시아군은 전투가 끝날 때 까지 패주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 의지를 보여주었죠. 여기에 조커를 투입하다 자칫 보병방진과 근접 포격 당했다면 다음 작전이 불분명해 지기는 하니깐요,.

    • reinhardt100 2020.10.14 08:41

      근위대가 러시아군 전열을 붕괴시키지 못했다면 다음 작전이 문제가 아니라 본국에서 먼 러시아에서 그냥 골로 갈 가능성까지도 있었죠. 스웨덴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투입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 롬. 2020.10.15 20:43

      역사를 아는 전지적 시점의 후세대로서 저는 나폴레옹 토탈워라는 게임의 워털루 전투에서 맨 처음 위고몽 농장에 고참 근위대부터 때려 넣었죠... 그 뒤는 술술 잘 풀리더군요
      선임근위대를 써보면 아 나폴레옹이 왜그리 저들을 총애 했는지 알게 됩니다...
      플레이어가 프랑스 이외 나라로 플레이 할때 가장 짜증나는건 나폴레옹 지휘하의 선임근위대구요...

  • 로건 2020.10.13 09:48

    이렇게 전투가 끝나면 러시아군은 후퇴하면서 인력보충과 물자보급을 받을 수 있지만 프랑스군은 그렇지 않잖아요. 근위대 투입이라는 도박수를 걸어서라도 이겼어야하는 거 아닌가요?
    답글

  • 빛둥 2020.10.13 11:36

    '허무한 결말' 이후의 얘기, 정치적/외교적/군사적 파급효과에 대한 얘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답글

  • 샤르빌 2020.10.13 16:17 신고

    나폴레옹의 망설임, 쿠투조프의 트롤링이 겹친 대환장 파티였군요.. 나폴레옹이 근위대를 희생시키기 꺼려했던건 알겠지만 고참근위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근위대내 3티어급인 신참근위대도 투입하지 않았던건 좀 깝깝하긴 합니다..
    답글

    • 푸른 2020.10.13 20:57

      망설임과 트롤링의 대환장파티ㅋㅋㅋ 딱 맞는 말이네요

  • 가람이 2020.10.13 22:19

    군사과학의 상위개념만 따지는 사람들이 축성진지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죠.
    전쟁터는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고, 이 3차원에서 결정적인 승부가 갈립니다.
    나폴레옹 뿐 아니라 카이사르, 프리드리히 2세, 말버러, 오이겐 등등 수없는 군사천재들이
    이 3차원을 이용해 적을 격파하고 또 3차원 때문에 적에게 격파당했습니다.

    그래서 다부 원수가 보로디노에서 축성진지 공격을 피하고 남쪽 우회기동을 건의했던 거죠.
    분명하게, 프랑스 장교들의 전술적능력이 러시아 장교보다 우위에 있음을 생각해야 하고
    또한 분명하게, 러시아 병사들의 버티기가 프랑스 병사보다 우위에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축성진지에 병력을 꼬라박는 어리석음보다는 예상할 수 없는 우회기동에 판돈을 거는 게 낫습니다.

    알레시아에서 로마군이 축성진지 없이 켈트족의 대군세와 대결했다면?
    쿨리코보에서 모스크바가 축성진지없이 마마이칸의 몽고군과 대결했다면?
    폴타바에서 러시아군이 축성진지없이 칼 12세의 스웨덴군과 대결했다면?
    금화전투에서 조선군이 축성진지없이 후금군과 대결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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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nhardt100 2020.10.14 08:47

      야전축성이 굉장히 유용한 건 분명합니다. 서구에서는 피로스, 동양에서는 손무 이래로 계속해서 야전 축성을 통한 기동전의 공간을 한정짓게 하는 것을 중시했으니까요.

      나폴레옹의 경우, 일단 제대로 된 공성전을 한 경우는 만토바, 페스카라라 같은 북이탈리아, 아크레 정도인데 그 뒤로는 공성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기동전을 구사했으니까요. 문제는 보로디노에서 그 기동전을 구사할 수 있는 상태였냐? 그게 의문이었다는게 문제죠.

      말씀대로 야전축성이 된 상태에서 러시아군의 전열을 붕괴시키는 건 기동전보다 어렵습니다. 대신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간에 나폴레옹은 화력전으로 러시아군 전열 자체를 붕괴시킨다는 수단을 꺼내들었고 어느 정도는 유효하게 먹힌 것도 사실입니다. 포병출신이라는 자신의 강점을 잘 살린겁니다.

    • 가람이 2020.10.14 20:35

      나폴레옹의 장기는 유동적인 전선에서 신속하게 헤쳐모여서 각개격파하는 건데,
      전장에 유동성이 부족하면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공급해야 그 위력이 살아나죠.
      그런데,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더더욱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을 선택한다는 건
      나폴레옹이 본질적으로 가져야 하는 자기장점을 본질적으로 포기한 겁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애초에 러시아 원정에 제대로 열의도 없었죠.
      이 전쟁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준비한 건 다부와 포니아토프스키 인데
      이들에게 지휘권을 맡기고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정치나 하는 게 나았죠.
      정치와 전쟁에 동시에 잘 집중했던 메로빙거 시대 왕들이 새삼 대단하다 봅니다

  • ㅇㅇ 2020.10.17 02:18

    기회가 올때 그걸 쟁취하는건 힘들지만 이전에 봤던 나폴레옹은 기회를 자기것으로 만들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망설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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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춘선부장 2020.10.17 15:41

    오늘은 회피기동? 입체기동? 도 관람했으니 인터넷에서 본 인상깊은 댓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형 그런 사람 조심해 그사람들은 현실이나 객관적인 기반이 아니라 자기 감정이 팩트라고 생각하고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데 남들이 개소리라 생각하고 넘기는 그런 뻥을 본인들은 진짜라고 생각해... 그 사람들의 환상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전면에 했으면 형 진짜 칼맞았을 수도 있어... 그런 사람들은 찐 도라이라서 눈깔 뒤집히면 무슨짓을 할 지도 모를 시한폭탄같은 사람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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