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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보로디노 전투 (9) - 우연 또는 필연

by nasica 2020. 9. 21.


오전 11시 정도에 고리키 마을 동쪽으로 사령부를 더 후퇴시킨 쿠투조프는 무척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건 결코 모든 전황을 통제하고 있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철저한 나태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러시아군 참모 장교 하나는 당시 쿠투조프의 모습에 대해 '러시아 최고 가문들 출신의 우아하게 차려 입은 장교들과 함께 여유롭게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라며 비난했습니다.  그런 목가적인 신사분들에게 보기 흉하게 피를 철철 흘리는 프랑스군 보나미 장군이 끌려오자, 쿠투조프는 완벽하고 우아한 프랑스어로 접견하며 치료를 받고 쉬라고 권한 뒤, 마치 이미 승리하기라도 한 듯이 휘하 참모 장교들과 계속 노닥거렸습니다.

쿠투조프의 소풍 분위기를 해친 것은 피투성이 보나미 장군이 아니었습니다.  보나미가 부축을 받으며 물러가자마자 참모 톨 장군이 플라토프(Platov) 장군의 요청을 전달했는데, 그게 쿠투조프의 신경을 거슬렀습니다.  플라토프와 우바로프(Uvarov)는 각각 카자흐 비정규 기병 5500과 정규 기병 2500을 거느린 채 프랑스군이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는 러시아군 우익 끝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러시아군 좌익과 중앙에서 어느 정도의 참극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식이 계속 들어왔는데, 자신들은 그냥 한가롭게 하품이나 하고 있는 것이 너무 한심했던 나머지 플라토프가 적극적으로 공격을 제안했던 것입니다.  플라토프의 요청은 그와 우바로프의 8천 기병이 콜로차 강을 건너 프랑스군 좌익을 우회하여 프랑스군의 뒤를 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쿠투조프는 플라토프의 제안에서 그 내용보다는 마치 자신의 지휘에 의문을 표하는 듯한 그 시건방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만, 여태까지 하던 대로 그냥 '좋아, 그대로 하게'라며 별 생각 없이 허락을 했습니다.  플라토프와 우바로프의 기병들은 신이 나서 말을 달렸습니다.


(우바로프(Fedor Petrovich Uvarov)입니다.  그는 나폴레옹과 동갑이었는데, 그의 가문 덕분에 그는 불과 29세의 나이에 이미 육군 중장까지 승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짜르 파벨 1세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벨 1세의 암살에 참여했던 일당 중 하나였습니다.)

 

(카자흐 기병들입니다.  이들은 러시아군에게 경기병을 공급하는 댓가로 돈 강 유역에서 반유목 생활을 하며 반(半)자치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정규 기병대와는 달리 이들은 밀집 보병대에 대해 돌격을 한다든지 하는 전술 훈련은 전혀 받지 않았으며 주임무는 정찰과 추격, 보급마차 습격 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군사적 가치는 거의 민병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패퇴할 때 그 뒤를 추격하는데는 정말 딱 적격이었지요.)




프랑스군 좌익에는 디코이 역할을 하던 외젠의 제4 군단 정말 하나 뿐이었고, 그나마 예상보다 가열차게 진행된 견제 공격 때문에 여력이 별로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러시아 기병대가 텅빈 좌익 뒤편에 나타나자 외젠의 사단들은 패닉을 일으키며 허둥지둥 콜로차 강을 다시 건너 후퇴했습니다.  

정작 이 8천의 라이더들은 별 전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랑다르메가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때에 비해 아무리 질적 저하가 심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고참병들과 숙련된 장교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대부분이 작은 말을 탄 비정규 카자흐 기병들은 대규모 보병 부대에 돌격할 각오도 규율도 솜씨도 없었습니다.  외젠의 사단들이 곧 진정하고 기병들의 습격에 대비하여 보병 방진을 짜자 러시아 기병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했고, 프랑스군 보병 방진에 포함된 대포들이 포도탄을 몇 방 발사하자 벌에 쏘인 듯 우르르 후퇴하여 다시 콜로차 강을 건너가 버렸습니다.  이들의 뒤를 긴급 투입된 프랑스 용기병들이 추격했습니다.  러시아군으로서는 매우 보기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공연히 기병대를 위험에 노출시켜 무의미한 사상자만 냈고, 숫자도 많지 않은 프랑스 용기병들에게 쫓겨 허겁지겁 퇴각하는 추태를 보여 전체 러시아군의 사기만 떨어뜨렸으니까요.  쿠투조프는 풀이 죽은 채 나타난 플라토프와 우바로프에게 비아냥이 잔뜩 섞인 냉소적인 축하 인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8천의 기병대가 일으키는 먼지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2만의 병사들이 당황해서 아우성치는 소리는 셰바르디노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전황을 살피던 나폴레옹의 눈에도 들어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아끼고 아끼던 근위대 투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군이 오히려 아군의 좌익을 우회하여 빈틈을 공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그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지휘관이 당연히 챙겨야 할 항목 중 하나였고, 나폴레옹도 물론 챙겨두었습니다.  그게 바로 근위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위대를 네와 다부가 요청하는 대로 러시아군 좌익에 몰빵 투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꽤 중대한 모험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5년만 더 젊었다면, 아니 그냥 그 날 컨디션만 좋았다면 좀더 과감한 결정을 내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미 지킬 것이 많은 40대 중반 아저씨가 되어 있었고 몸도 무척 안 좋은 날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랑다르메 좌익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에 겁을 먹고 근위대 투입을 중단시키고 '좀 더 상황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셰바르디노 언덕에서 전황을 살피는 나폴레옹입니다.  차라리 이때 셰바르디노 언덕이 프랑스군 수중에 있지 않았다면 전황이 나폴레옹에게 더 유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는 것이 병,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여기에 어울립니다.)



이 결정이 보로디노 전투의 승패를 판가름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은 전혀 몰랐겠지만, 플라토프와 우바로프의 즉흥적인 돌격이 이 큰 결정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랬을까요 ?  나폴레옹이 근위대를 투입하지 못한 이유가 단지 이 8천의 기병들 때문이었을까요 ?   물론 아닙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1812년 원정은 처음부터 온갖 기술적 문제를 안고 시작한 것이었고, 그런 문제들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차곡차곡 통행세를 걷어갔습니다.  그 때문에 나폴레옹은 쿠투조프에 비해 압도적인 병력을 가지지도 못했고, 남아있는 병력들은 굶주린 채 이질과 설사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때문에 예전 같으면 지원군 없이도 간단히 박살을 내놓았을 부실한 러시아군 좌익을 다부와 네 등의 4개 군단으로도 완전히 격파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특히 러시아 기병대의 우회 공격에 나폴레옹이 크게 흔들렸던 이유는, 그랑다르메 중에서도 특정 부대가 가장 비싼 통행세를 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병대였습니다.  

당시 그랑다르메의 병사들도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특히 말들은 정말 길가에서 픽픽 죽어 넘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그랑다르메의 기병대는 숫자도 크게 줄었지만 살아남은 말들도 제대로 돌격을 감행하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만약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언제나처럼 뮈라의 예비 기병군단이 양익에 버티고 있다가 그런 기습에 간단히 대응했을 것입니다. 

잠깐, 뮈라의 기병 예비군단은 보로디노에도 있었습니다.  뮈라 휘하에는 낭수티(Nansouty)의 제1 기병군단, 몽브렁(Montbrun)의 제2 기병군단, 그리고 라 투르 모부르(La Tour Maubourg)의 제4 기병군단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전 내내 바그라티온의 철각보 현장에 투입되어 다부와 네 등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몽브렁은 라에프스키 보루의 공격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보루나 철각보 등의 방어물이 얽혀 있는 좁은 지역에서 기병대는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았고 이들의 오전은 피곤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오후는 상당히 잔혹했습니다.


(오전의 프랑스 기병대 현황입니다.  몽브렁은 라에프스키 보루 앞에, 낭수티와 라 투르 모부르는 바그라티온 철각보 앞에 배치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가운데에 사선 하나가 그어진 사각형이 기병 군단을 뜻합니다.)


(라 투르 모부르(Marie-Victor Nicolas de Faÿ, marquis de La Tour-Maubourg)입니다.  혁명 이전부터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그는 한때 망명 귀족으로 벨기에에 피신해있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 휘하로 들어간 것은 이집트 원정이 처음이었고, 그나마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클레베르의 부관으로서였습니다.  그는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한쪽 다리를 잃었는데, 그의 부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시종(valet)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왜 우는 거야 ?  이제 장화는 한짝만 닦으면 되는데 말이야."  그는 백일천하 때 현명하게도 부르봉 왕가 편에 섰기 때문에 나중에 후작의 지위까지 올라갑니다.)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en.wikipedia.org/wiki/Battle_of_Borodino

en.wikipedia.org/wiki/Victor_de_Fay_de_La_Tour-Maubourg

rusgenerals.oooprog.ru/index.php?id=uvarov

www.planetfigure.com/threads/cossack-uniformsa-napoleonic-wars.193890/

 

 

 

 

댓글22

  • ㅇㅇ 2020.09.21 06:51

    지킬 것 많은 뚱보 중년 40대 아저씨라니...툴롱의 재기는 어디에 갔단 말입니까...
    답글

  • 푸른 2020.09.21 09:46

    이번화는 전투만 개별로 뚝 떼서 왈가왈부하는게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보여주네요. 특히 보로디노 전투는 러시아 원정 직전 상황과 준비, 실행 전반에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답글

  • pms6710 2020.09.21 10:49

    지킬 것이 많은 뚱보 40대... 나폴레옹도 결국 사람이었네요...
    항상 글 잘보고 있습니다!
    답글

  • 흠흠 2020.09.21 11:07

    군대를 정상적인 상태로 그 자리까지 데려다 놓는 것이 훌륭한 장군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전투 자체는 운의 요소가 너무 크고, 사람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초기에나 몇 번 대승을 거두겠지, 언제까지 평원에 군대 늘어놓고 회전만 주구장창 하는데 한쪽만 이기겠습니까.

    항우, 한니발, 나폴레옹, 롬멜처럼 본인이 대단한 장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투로 적의 주력을 박살내서 모든 상황을 해결하겠답시고 보급을 등한시하고 정치상황을 외면하는 장군들 중에 최후가 좋은 케이스를 별로 못 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그 좋아하는 회전으로 다 말아먹더라고요.

    저런 저돌적이고 두뇌 회전 빠른 장군들 카운터 치기 딱 좋은 장군들이 기본에 철저하고 태산처럼 신중하고 방어적이면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때 까지 힘을 모으며 기다리다가 번개처럼 역공에 나서는 장군들인데, 파비우스, 웰링턴, 몽고메리처럼 영국에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전술적으로 적장의 꼼수나 페이크 모션에 걸려들지 않을 정도의 똘똘함은 갖추어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정상적인 상태의 프랑스군이었다면 보로디노의 러시아군을 쉽게 격파했을 것이다같은 가정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저 시기의 러시아, 오스트리아 군이라면 아우스터리츠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이 몰려와도 아슬린-아스페른, 바그람, 보로디노 재탕이라고 보거든요.
    답글

    • 빛둥 2020.09.21 12:13

      역사에 적혀있는 최초의 정복자인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도, 수많은 전투에서 이겨서 대제국을 만들 정도로 유능한 장군이었지만, 계속 전쟁을 계속하다보니, 결국 최후에는 마사게타이족이라는 유목민에 패해서 죽었죠.

      전투, 전쟁으로 흥한 자는, 지금까지 자기가 흥한 방법을 계속 고수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성공하는 것은 어렵고, 상대방은 갈수록 강해집니다.

    • 가람이 2020.09.22 10:46

      영국 장군들이 특별히 똘똘한 게 아니라 그 배경상황의 차이입니다.
      영국은 이미 스페인왕위계승전쟁과 7년전쟁으로 해상우위를 장악했죠.
      따라서 느긋하게 원하는 시간,장소에 원하는 병력,물자를 전개하는 걸로 족하죠.
      만약에 웰링턴이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회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요.

    • 가람이 2020.09.22 10:59

      마찬가지로 러시아군도 배경상황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와는 많이 다릅니다.
      수보로프 장군이 독일,프랑스식 군사훈련에 절대 반대한 건 다 이유가 있죠
      하부구조에서 영국, 러시아는 독일,프랑스와 다르고 사람도 거기에 맞추게 됩니다.
      단순히 전사기록만으로 사람평가하는 건 단편적인 판정입니다.

    • 흠흠 2020.09.22 11:36

      웰링턴이 만악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나폴레옹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애초에 보로디노나 라이프치히 전투 같은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뜻입니다. 따지고보면 프랑스 군대가 회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죠.

      비슷한 병력과 비슷한 물량으로 회전을 벌여서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하겠다는 것은, 상대방이 크게 실수를 했거나, 상대방의 수준이 월등히 떨어지거나, 아직 상대방이 적응을 못 했을 때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우스터리츠의 나폴레옹과 그랑다르메가 몰려와도 아일라우, 바그람 재탕입니다. 상대가 웰링턴 같은 인간이라서 꼼수나 화려한 기동이 안 통하는데, 마렝고의 나폴레옹이 뛰어온들 전쟁터에 양측이 시체 산 만들고 이래도 버틸래? 싸움 외에 할 게 뭐가 있습니까.

      4차 대불동맹 이후로는 그 사실을 깨닫을 법 한데, 나폴레옹과 원수들은 아직도 Great Victory 한 번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전술적인 해결책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전쟁의 결과는 언제나 불분명 하지만 그 참상은 확실하다던 카를 대공이 훨씬 식견이 넓어 보입니다.

      웰링턴을 보면 마세나의 침략에 대비해서 미리 토레스-베드하스 방어선을 구축하고, 병력상 싸워볼만 한데도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런 미련없이 군을 철수하는 등, 전술적인 해결책 보다는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려 하고, 반드시 이길 수 있을 때에만 군을 움직여서 프랑스군을 박살내는 등, 프랑스 장군들과는 반대로 대단히 전략적인 측면에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그 회전 잘한다는 기라성 같은 원수들 다 깨졌습니다.

    • 가람이 2020.09.22 16:25

      배경상황이란 , 역사적인 추세, 정치적인 구도까지도 다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제 아무리 천재라도 복잡하게 얽힌 배경상황을 바꾸는 도리는 없어요.
      개인능력만 가지고 회전을 피할 수 있다는 건 그 시대 공부가 덜 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 나시카연재물조차도 역사적, 정략적인 사정같은 건 많이 소홀한 편이죠.


      스페인왕위계승전쟁에서 말버러공작, 사보이공작의 기동전이 개인능력에만 의존한 게 아니에요.
      부플레르, 빌라르, 베르윅, 방돔이 바보라서 이들의 공세를 허용한 거 아닙니다.
      나시카 연재글 쭉 보아 왔으면 배경상황이 만드는 불가항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이해하실 텐데요.
      그 불가항력까지 다 기술하고도 개인차원해결방안을 말할 수 있다면 공부가 많이 된 겁니다.

    • 흠흠 2020.09.22 18:41

      프랑스가 스페인 쳐들어간 것이 불가항력은 아니고, 프랑스가 러시아에 쳐들어간 것도 불가항력은 아니죠.

      나폴레옹 밑의 장군들이야 내가 시작한 전쟁도 아닌데, 결국에는 패망하는 상황에 쳐하게 되어 억울하다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 스페인 등에서 이들의 추태를 보면 별로 억울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 나폴레옹이 억울할 것은 없죠.

      요는 총사령관에게는 전술적인 식견보다는 전략적인 식견이 더 중요한데, 나폴레옹의 전략적인 식견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고, 저 시기 쯤 되면 경쟁자들에 비해 전술적인 능력도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 가람이 2020.09.22 20:03

      프랑스가 스페인과 러시아를 쳐들어간 것이 왜 불가항력이 아닌가요?
      겉보기에는 나폴레옹의 어처구니 없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작된 거 같아도
      프랑스는 원래 전통적으로 대륙과 해양판세 문제로 스페인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스페인을 강온양면으로 한몸이 되게 하려고 끈질기게 애를 썼죠.

      애초에 루이14세가 라이프치히의 말대로 해양력에 국운을 걸었다면,
      이 역사적인 추세를 바꿀 수 있었지만 무려 19세기까지 온 시점에서는 너무 늦었죠.
      인물의 판단은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추세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만 드러난 인물의 언행으로 개인잘못으로 모는 건 쉽지만 맥락에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죠.

      나폴레옹전쟁의 구도는 그 이전 전쟁의 답습일 뿐이고, 나폴레옹은 그 흐름을 따랐을 뿐입니다.
      여기까지 그 불가항력을 이해했다면 그 불가항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했는가를 생각할 수 있겠죠.
      내 당대에 빛을 보지 못해도 수백년이 걸리는 초석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내 당대에 당장 빛을 볼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갈리게 되는 겁니다.

      이미 대영제국은 수백년에 걸쳐서 그 초석을 쌓아놨고, 이제 막 그게 빛을 보기 시작했죠.
      프랑스가 해양력을 키울 능력이 없어서 저렇게 된 거 아니에요.
      영국인들도 프랑스인들의 해양에 대한 잠재능력을 여러 문헌에서 인정하고 있지요.
      그러나 한 번 잘 못 끼운 단추를 고쳐 끼우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알기 쉽게 설명해 볼까요?

      지금 제가 딱 업계에서 영국같은 포지션이거든요?
      저는 제가 원하는 시간,공간에서 경쟁자들을 두들겨 팹니다.
      그런데, 경쟁자들은 저에 대항해서 제대로 대응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제 경쟁자들 모두 저보다 똑똑하고 유능합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부터 역사공부를 해서 나중에 업계에서 영국포지션을 잡아야 겠다고 미리 계획을 짰습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다른 경쟁자들하고 전혀 다른 진입점으로 진입했어요.
      실전경험, 잔뼈에서 경쟁자들은 저의 수십배 능력자들이죠.
      그러나 그들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싸우지 못하는 반면 저는 가능한 겁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는지?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싸울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건 현대인의 경쟁구도도 똑같아요.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싸우고 싶을 때 싸울 수 있다는 그 포지션 잡기만으로 이미 승부가 난 겁니다.

      프랑스도 얼마든지 그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지만 선대에 그 포지션을 포기한 거에요.
      그 결과로서 스페인을 한 몸으로 가져야 되는 상황으로 자꾸만 "역사적으로"내 몰리게 된 겁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죠. 애초에 프랑스가 해양력을 장악했다면 러시아침공 자체가 필요없어요.
      "선대의 잘못으로 생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고 싸우느냐, 그 기울기를 고쳐 놓느냐의 문제입니다.

      루이 16세 때 그 기울기를 고치려고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렇게 만든 해양력은 미국독립시키는 일에 엉뚱하게 쓰이면서 소모되고 혁명나면서 그나마 풍지박산나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독자적인 생각에 따라서 행동한 거 같아도 사실은 역사추이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나폴레옹이 무모하게 공격한 거 같아도 그 성격을 살펴보면 예방전쟁성격이 강합니다.

      나폴레옹 이전 사람들이 "그 예방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든 선대의 잘못"을
      고치려고 하다가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실패한 게 이미 여러번입니다.
      그러면, 그걸 지적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고치는 가"를 논하든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어떻게든 싸워 이기는 방법은 뭔가?"를 논하는 데까지 가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겁니다.

      제가 위에서도 이야기 했죠.
      제가 속한 업계에서 이미 영국의 포지션을 잡고 이득을 보고 있다구요.
      역사공부는 현실을 위해서 목숨걸고 하는 겁니다.
      그냥 단순한 취미활동으로 설렁설렁 하면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 흠흠 2020.09.22 21:17

      주위를 전부 적으로 돌리면 결국 망하는거죠. 여기에 불가항력이 어딨고 반드시 해야 하는 전쟁이 어딨어요. 온 유럽 국가가 나 죽이겠다고 몰려올 때는 내가 어떻게 살았나 반성을 해야죠.

    • 가람이 2020.09.22 22:01

      주위를 적으로 돌리게 된 거 자체가 선대에 만들어진 판세라고 이야기 했죠?
      대륙봉쇄는 이미 영국에 의해서 루이 14세 초기부터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한 결과의 연장선상에 나폴레옹 전쟁도 있는 거에요.
      맨날 지상전위주 역사만 보지 말고 해양중심 역사도 공부하세요.

      흠흠 님 같은 분들이 꼭 보면 현실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은 적에게 대륙봉쇄 당한 뒤에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발버둥 치면
      주위 사람들이 " 쟤 왜 저러냐? " 하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으면서도
      왜 자기가 그 상황에 놓였는지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 되지요.

      이건 흠흠님이 한 번이라도 영국포지션을 취해서 살아 본 적이 있어야 이해하는 내용이긴 합니다.
      영국포지션이란, (1) 적당한 크기의 본토 " 기반자금력 " (2) 독점하는 식민지 "장외기술" (3) 해양력에 해당되는 외부보급선 .. 이 3가지가 다 있어야 되는데,
      현실에서 이런 포지션을 가진 경우가 잘 없죠. 그래서 인생이 다들 피곤한 거구요.

      영국포지션을 잡고 대륙봉쇄를 하면 일방적으로 적을 약오르게 패면서도
      일부 적들은 내 동맹이 될 수 밖에 없도록 "평화적으로" 강요할 수 있고,
      일부 적들은 그래도 덤비다가 막대한 내상을 입도록 강요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오스트리아,프로이센 이런 애들이 영국의 착한 인품에 동맹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얼치기 역사공부 그만 하시고, 제대로 역사공부해서 현실부터 타개하세요.

    • 흠흠 2020.09.23 10:11

      그럼 뭐 불가항력이니까 프랑스는 앞으로도 계속 온 유럽과 전쟁하다가 계속 망해야 정상인가요? 온 유럽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얄미운 영국 굴복 시키는 게 더 중요해요?

      영국이 유리한 포지션 잡은거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얄밉다고 해도 그게 현실인 겁니다. 영국을 굴복시킬 역량이 안 되면 영국의 해상 패권을 인정하고, 유럽에서 전쟁은 적당히 하면서 지역의 강자로 사는 것도 방법이구요.

      역량도 안 되면서 영국 망하는 꼴 보겠다고 스페인부터 러시아까지 온 유럽 다 들쑤시며, 형제들한테 왕국 하나씩 뿌리고, 프랑스 국민 300만명 땅에 묻고, 본인 인생도 망하게 만드는 것이 불가항력이고 필연적인 선택이에요?

      현실에서 유리한 포지션을 잡은 경쟁자에게 대륙봉쇄 당하면, 누구나 다 나폴레옹처럼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채 끌어 투기하다가 집도 날리고 가족도 날리고 본인 인생도 날린답니까?

    • 카를대공 2020.09.25 15:54

      저는 흠흠님과 가람님 말씀에 다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흠흠님께서 먼저 이겨야 할 상황을 갖춰놓고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하신건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던거만 하면 결국 패배한다는 말씀도 맞고요.

      다만 가람님 말씀대로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그 제반조건은 개인이 바꾸는데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흠흠님이 처음에 작전술적인 면에서 말씀 하시다 나중엔 전략적인 면으로(전쟁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포인트를 바꾸셔서 두분의 의견이 충돌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두 분다 좋은 말씀 해주셨다고 생각해요.

    • 카를대공 2020.09.25 15:56

      그리고 한니발은 항우,나폴레옹과 같이 엮이기엔 억울하다고 봅니다.
      한니발은 항우,나폴레옹과 다르게 한 번도 그 정도 전력적 우위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카르타고 국력 자체가 로마에 상대가 안 됐던데다 한니발이 전략안이 없는게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로마가 훨씬 끈끈한게 문제였지요.

      거기다 한니발을 제외한 카르타고 모든 장수들이 연전연패 해버리니 방법이 없었죠.


      롬멜은 애초에 좀 다른 케이스고,한니발은 말씀하신 장수들 중에 가장 억울한 경우라고 봅니다ㅎㅎ

    • 가람이 2020.09.27 15:53

      카를대공 //
      제가 말하는 요지를 잘 못 이해하신 듯.
      제 논점을 이미 제가 정리까지 다 내 놨습니다만.
      (1)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고치는가?"
      (2)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어떻게든 싸워 이기는 방법은 뭔가?"
      => 이 2가지로 귀결된다고 말했죠. 요체는 issue 분류의 문제입니다.

      (1) 우선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고치는가? " 인데.

      프랑스는 이미 루이 15세 말기에서 루이 16세 초기에 걸쳐서 막강한 해군력을 다시 육성하는 데 성공해서
      비록 경험과 기백은 모자라도 훈련도, 장비에서 영국과 맞먹는 해군을 보유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해군은 미국독립전쟁에서 영국군의 증원군을 방해하는 데 성공했죠.
      또한 프랑스의 맹장 쉬프랑이 지휘하는 프랑스함대가 인도남부에서 영국해군을 상대로 선전했습니다.

      즉슨, 시간과 물자를 좀 들여서 신경쓰면 프랑스의 우수한 군사과학역량을 가지고서
      충분히 영국의 축적된 경험치를 따라잡고 이길 수 있다는 게 실제로 증명된 겁니다.
      프랑스해군의 잘못된 군사독트린을 수정하고 지속적인 지원과 예하재량권 확보가 주어지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충분히 고칠 수 있는데, 요체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니까 기다려 줘야 했다는 겁니다.

      (2) 그리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싸워서 이기는 방법은 뭔가?"인데.

      이것은 제가 위에서 프랑스의 골치아픈 정치구도에서 발생한다고 이야기 했죠.
      나폴레옹이 패배한 근본원인은 군사적 실패에 있는 게 아니라 정치적 실패에 있습니다.
      족벌체제로 개판치고, 정치논리를 군사논리보다 우선시한 결과이지,
      군사 그 자체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어서 패배한 게 아닙니다.

      나폴레옹 휘하 원수중에서 진짜 실력에 맞게 원수가 된 사람이 과연 몇명인가요?
      마세나, 란, 다부, 베르티에, 베시에르 이런 애들 빼면 솔직히 다 원수직 박탈 대상 아닌가요?
      오히려 그들 밑에 있는 사단장들 중에 원수자격이 있는 사람이 넘치는데, 정치논리에 깔려 있는 거죠.
      미군이 4대군사(인사,보급,정보,작전) 중에 인사를 가장 우선시 하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워털루 전투때에도 다부가 자신을 전쟁장관으로 앉히려는 나폴레옹에게 항의하면서
      "나를 데려가면 반드시 이기지만,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질 수 있다"고 호소했는데,
      결국 다부를 데려가지 않고 네, 그루쉬, 제롬같은 애들 데리고 병든몸으로 싸우다가 박살났죠?
      마르몽,뮈라 같은 기회주의자놈들을 중용한 정치적인 잘못이 다부를 후방에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만든 겁니다.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서 꼭 설명해야 되는지 ?
      지금 프랑스에 가면 나폴레옹 전쟁때 각 인물이 남겨놓은 기록이 차고 넘칩니다.
      그런 기록의 일부만 들여다 봐도 " 개인적인 감정" 등의 정치적인 이유가 군사적 실패의 핵심임을 알 수 있죠.
      해양력이 없으면 없는대로 정치논리를 자제하고 인사만 공정하게 했어도 충분히 나폴레옹 노년까지 싸우는 거 가능합니다.

  • 샤르빌 2020.09.21 13:30 신고

    나폴레옹 토탈워등 토탈워 시리즈 게임을 할때도 병력이 이동중에 소모성 피해가 있고없고의 차이가 무시무시하게 컷었죠..
    답글

  • reinhardt100 2020.09.21 14:14

    기병에는 방진이나 같은 기병으로 맞서야 하다보니 나폴레옹 입장에서 근위대를 투입시킨다는 것은 고민할 만합니다. 하지만 스몰렌스크에서 러시아군 주력을 포착했으면서도 궤멸시키는데 실패한 이상 여기서라도 근위대를 아끼지 말았어야 합니다. 이건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빛둥님께서 쓰셨듯이 자기가 흥한 방법을 계속 고수하다보니 나폴레옹도 점차 상대적으로 약해지긴 하네요.
    답글

  • 유애경 2020.09.21 14:32

    그 와중에 라 투르 모부르의 유머감각(?)이... ^_^.
    본인도 힘들었을텐데 상대방을 위한 배려심 이었을까 아니면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주인공일까...
    답글

  • 카자크 2020.09.21 20:36

    다 잘 봤습니다.
    다만 카자흐(=카자흐스탄)가 아니라 카자크(=코사크)입죠 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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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까님 2020.09.24 11:43

    나폴레옹 본인도 그랑다르메도 한계를 넘어서버린 상태로 보로디노에서 부서져내리는군요 ㅠㅠ
    겉보기엔 그럴싸 해도 골다공증 걸린 코끼리 같은 상태로 전투에 돌입했으니...
    안타깝습니다
    우주같은 영토를 판돈으로 걸고 종심방어를 펼치는 작전은 사실 현대 미군이라 해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