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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

지하철과 민주주의

by nasica 2016. 12. 4.

요 몇 주 동안 주말 집회에 나갈 때마다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없었다면 아마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오며가며 만원 지하철에 거의 낑겨 가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하철이 있으니까 저도 집회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 지하철 직원 여러분들, 그리고 매주 주말마다 청소 때문에 고생하시는 서울 청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생각해보면 만약 서울시장이 여당 인물이라서 지하철 연장 운행도 안 해주고 청소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면 집회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집회 참여가 다 영광스럽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와이프는 추위에 약해서 1번 밖에 못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일종의 투표라고 생각해서, 항상 제 평소 소신대로 머릿수로 투표하는 셈 치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가령 원래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중반의 차티스트 운동 때도 계속 요구되던 것이, 재산 유무에 상관없이 성인 남성에게 1인 1표의 투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보통 선거권 외에도, 공장이나 농촌의 근로자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지 않고도 투표소까지 걸어갔다 올 수 있도록 투표일을 유급 휴일로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살이의 서민들이 말이나 마차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 걸어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투표소까지 다녀오려면 일을 쉬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휴일 요구는 (당연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 서민들은 투표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행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교통의 발달이 그런 사회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해결해 주었지요.






(1848년 런던 케닝턴 공유지에 모인 차티스트 집회입니다.  재산 유무에 상관없이 성인 1인에게 1표씩이라는 보통 선거권이 지금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도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 얻어낸 것입니다.  소중히 지키고 현명하게 사용합시다.)



육상에서 대량으로 인원을 수송하는 교통 수단에는 정말 기차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역사에서, 병력의 신속한 이동은 항상 승패를 좌우했습니다.  가령 로마 제국의 번영은 병력을 무작정 키우는 것보다는, 제국 내부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튼튼한 군용 도로를 구축하여 제한된 병력을 효율적으로 재빨리 이동시킬 수 있었던 것에 크게 의존했습니다.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은 작지만 지구력이 좋은 몽골마를 탄 기병들의 기동력이 만들어낸 것이고요.  (사실 징기스칸의 제국은 정복지의 여러 유목민족을 몽골 제국의 깃발 아래 통합할 수 있었던 정치적 역량에 힘입은 바가 더 큽니다만, 그건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는 철도가 아직 태동기였기 때문에 대량으로 병력을 수송할 방법이 정말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병사들은 걸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병사들의 빠른 행군이었습니다.  영국-오스트리아 등의 동맹군 병사들이 하루 16~20km 정도였던 것에 비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24km를 넘었습니다.  이 속도는 사실 놀라운 속도는 아니었고, 고대 로마군단의 이동 속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폴레옹 때나 케사르 때나 1800년의 세월 차이가 있었을 뿐 이동은 사람의 다리로 하는 거였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영국군이나 오스트리아 군은 왜 그리 느렸을까요 ?  문제는 보급 마차였습니다.  19세기 초반의 열악한 진흙투성이의 유럽 도로망 때문에, 보급 마차가 하루 16~20km 밖에 이동을 못했던 것입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의 경우 심지어 기병대가 보병대보다 더 진격 속도가 느렸던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로마군은 그 유명한 로마군의 포장 도로를 따라 이동했으므로, 소달구지가 끄는 보급 마차도 병사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식량과 숙영을 위한 텐트 등 보급을 과감히 생략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했지요.  






(1809년 바그람 전투를 앞두고 비박(bivouac, 영어 발음은 대략 비부액)하는 나폴레옹 산하 폴란드군입니다.  노숙을 뜻하는 이 bivouac이라는 단어는 스위스 및 알자스 지방에서 생긴 독일어 계통의 단어로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에서 영국 쪽으로 전해진 단어입니다.  산악인들 사이에서 비박, 비박하실 때의 그 비박이 바로 이 bivouac입니다.  친박 비박할 때의 그 비박이 아닙니다.) 



하지만, 로마 군단병이건 나폴레옹의 근위대이건, 하루 24km는 생각보다 다소 느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  저같은 대한민국 육군 훈련병도 논산에서 하루 32km를 걷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깔깔이로 부피만 채운 군장을 매고 하루 32km 걸었다고 나폴레옹 근위대보다도 우수한 병사라고 우쭐할 수는 없습니다.  하루 32km는 우습게 걸었던 사례가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도 많았습니다.


엘바 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프랑스 남해안의 골프-주앙(Golfe-Juan)에 상륙한 것이 1815년 3월 1일이었습니다. 이 첫날, 나폴레옹이 데리고 온 600명의 근위대 병사들은 무려 80km를 행군합니다.  (아마도 나폴레옹은 말에 탔겠지요.)  그리고 그레노블(Grenoble)시까지의 험준한 산길이 포함된 320km를 6일만에 주파합니다.  하루 50km가 넘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했던 것은 3월 19일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그의 병사들은 하루 평균 48km를 행군했습니다.  프랑스 근위대만 남자고 영국군에는 남자가 없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영국 남자도 한 행군 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습니다.  1809년 웰링턴 공작이 탈라베라 전투에서 악전고투할 때, 그를 돕기 위해 영국군 크로포드 장군이 3,000 명의 라이플 소총병을 이끌고 100km에 이르는 거리를 26시간 만에 주파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게 잘 걷는 병사들을 데리고, 왜 하루 24km 밖에 못 걸었을까요 ?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병사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24km를 걸은 뒤, 숙영할 곳에 도착하면 재주껏 짚단과 나무가지 등 재료를 모아 야영을 할 준비를 해야 했고, 또 주변 마을에서 어떻게든 식량을 긁어 모으고 땔나무를 모아 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런 노동까지 하려면 하루 24km도 힘들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병사들에게 더 먼 거리를 행군하게 하려면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교통 수단인 우마차 정도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병사들의 이동 속도에 대한 이런 고민은 열차의 발달과 함께 오히려 더 깊어졌습니다.  우리 쪽이 빨라진 만큼 저 쪽도 빨라졌으니, 나폴레옹 시절처럼 그저 병사들의 사기 관리 및 부대 운용 요령 정도가 아니라 수학적으로 체계적인 수송 계획이 이루어져야 적군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열차를 이용해서 연대 단위의 병력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었으므로, 계산 착오가 있다거나 열차의 기계적 장애가 발생하거나 해서 단지 반나절 정도의 오차만 발생해도, 전투 현장에서는 연대 단위의 병력이 상실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가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이나 잠수함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기였던 증기기관차입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군이나 독일군이나 모두 열차에 의한 병력 수송 계획에 정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가장 머리 좋은 장교들이 모두 병참부에 배정되어 정밀 과학같은 열차 계획표를 짜는데 열중했습니다.  이런 성향은 특히 독일군 쪽에 더 강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서쪽의 프랑스와 동쪽의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프랑스와 러시아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던 독일의 전략은 역시 철도를 120%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의 작전은 이랬습니다.


1) 러시아는 철도망이 개판이니, 전쟁이 발발해도 병력 동원이 느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2) 러시아가 꾸물거리는 동안 독일은 전군을 서부 전선에 집중하여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군 측면으로 침투, 파리를 점령한다.

3) 이렇게 프랑스를 조기에 끝장 낸 뒤 다시 병력을 재빨리 철도로 동부 전선으로 이동시킨 뒤, 러시아를 요리한다.






(슐리펜 백작이십니다.  이 분 주장대로 서부 전선 독일군 우익에서 병력을 빼내어 동부 전선으로 돌리지 않았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었을까요 ?)




여기서 유명해진 것이 바로 슐리펜(Schlieffen) 작전 계획이었습니다.  그 계획의 핵심은 슐리펜(Alfred von Schlieffen) 백작이 사망하면서도 중얼거렸다는 유명한 전설처럼, '우익을 더 강하게'였습니다.  즉, 프랑스군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말고, 중립국인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관통하여 프랑스의 취약한 좌익을 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했던 것이 바로 열차 계획표였지요.  그 열차 계획표야말로 당시 독일군 참모 본부의 온갖 역량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매우 정교한 결정체 같은 물건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전쟁 발발 이후 40일 간의 열차 계획표가 빼곡히 작성되어 있었으며,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르면 200만의 병력과 60만 마리의 말을 312시간 안에 수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병력은 걸어서라도 움직이지만, 저렇게 무거운 포탄과 대포, 탄약 등은 정말 철도가 아니면 답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철도에서 내린 다음부터인데... 이후는 정말 말이 죽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전쟁에서는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나 사람보다 말의 사망률이 더 높았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War Horse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영화에 그런 전쟁마의 비극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정교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지금은 폴란드 땅이 된 동프로이센은 프로이센 공작령이 있던 곳으로서, 그야말로 프로이센 왕국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슐리펜 계획에 따르면 전쟁 초반에 이 동프로이센 일부를 러시아에게 유린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독일 제국 호헨촐레른 왕조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결국 왕가의 요청으로 동부 전선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을 강구하라는 명령이 독일군 참모본부에 내려졌는데, 그 명령을 받은 참모 본부에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걸 반영해서 열차표를 다시 짜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되었던 독일군의 진격은 초기에는 맹렬했으나, 결국 초기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돈좌되고 맙니다.  물론 거기에는 프랑스군의 분전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알고 보면 벨기에가 점령당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벨기에 국내 철도망을 재빨리 파괴해버린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독일은 이렇게 파괴된 벨기에 철도망의 수리에 무려 2만6천의 인력을 동원하여 복구했으나, 점령 이후 1달이 지난 후에도 고작 15%의 철도망만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벨기에 철도망의 자폭은 독일의 보급 능력을 크게 저하시켰고, 그것이 결국 독일군 진격의 돈좌로 이어진 것입니다.






(1914년 독일군의 벨기에 점령 작전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이미 가솔린 엔진 차량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1914년 독일군의 진격을 파리 코 앞에서 멈추게 한 마른(Marne) 전투에서는 4천대의 파리 택시들까지 동원하여 증원 병력을 실어날랐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 택시들로 실어나른 병력은 고작 5천명으로서, 선전 효과 외에는 결정적인 도움은 안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은 어디까지나 기차와 군화발, 그리고 말의 힘으로 수행된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1914년, 파리를 구한, 또는 그랬다고 전해지는 택시 군단입니다.  당시 파리에는 약 1만대의 택시가 있었으나, 마른 전투 직전에는 약 3천대만이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택시 운전사 7천명이 모두 징집되어 전선으로... T T)




별 생각없이 쓰다보니 투표에서 나폴레옹으로, 다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왔네요.  탄핵 가결 여부에 따라 다음 주에도 집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번에 또 집회에 나간다면, 지하철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갖고 나가도록 합시다.  새로운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십니다.



Source : http://www.iwm.org.uk/history/transport-and-supply-during-the-first-world-war

http://www.smithsonianmag.com/history/fleet-taxis-did-not-really-save-paris-germans-during-world-war-i-180952140/

존 키건의 '제1차 세계대전사'

댓글18

  • 동아중공 2016.12.05 08:02

    예나 지금이나 기동력은 투사 능력과 비슷하거나 더 중요한 요소인데 무시 되는 경우가 많죠.
    뭐 더 근본적으로는 보급이 제일 중요하겠지만요.

    미군 뭐 별거 있습니까. 기동력과 보급이 좋고 해군력이 좋아서 제국과 같은 나라가 된거죠.

    한국군은 군 규모에 비해서 자체 보급력이 모자라고 기동을 보완해줄 공병 부대가 적은 편이라
    북한까지는 몰라도 타국과의 전쟁은 무리죠. 특히 한반도에서 벗어나면.... 아니 벗어나지 못하겠군요.

    복싱으로 치면 잠깐의 난타전은 가능해도 장시간 치고 받는건 무리죠.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지 않다는
    점도 있지만 보급 체계가 독자적이 못하니 미국이 빠져버리면 꽤 장기간 보급 체계 구축하는데
    고생이 많을 겁니다. 그외 여러 문제가 있지만 하여간 미군이 빠지면 그거 보완하는건 글쎄요....

    차후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한국군의 보급 체계는 손을 봐야 됩니다.
    근데 정치인에게 이런거 하라고 국민이 요구해야 되는데 대다수의 국민은 관심도 없고 한 줌도 안되는
    국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기동력이나 보급보다 투사 시스템에 관심이 집중이 되는 상황이라
    꿈도 희망도 없는 시절만 계속 될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초중고 교육 시스템에 세금, 재테크, 손자병법에 관한 커리큘럼은 꼭 교육해야 된다고
    봅니다. 정치자체를 교육하는건 솔직히 쉽지않고 너무 지난한 일이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부분을
    교육하기 시작하면 정치도 어느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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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이센군 2016.12.06 23:56

      국군은 한반도에서의 작전 수행에 올인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좁은 한반도에서는 보급까지 신경써서 장기전을 준비하기보다는 고화력으로 빠르게 밀어버리는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생각해요

  • 최홍락 2016.12.05 10:31

    결국 왕가의 요청으로 동부 전선을 좀 더 강화하는 안을 강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참모 본부에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걸 반영해서 열차표를 다시 짜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답한 것은 참 안타깝지만 한국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발생하는 내용이기도 하네요. 아래와 같은 칼럼에서 잘 드러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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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일 관계로 만난 외국인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한국의 조직문화란 이것이었다.

    "정해진 의사결정체계에 따라서 하나씩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저 위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최고결정권자가 툭 하고 튀어나와서 전부 뒤집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안을 '무조건 오늘 (나 퇴근 전까지)' 들고 오라고 생떼를 부린다."

    어떤 분은 이 문제 때문에 1년도 되지 않아서 퇴사를 결정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버리기도 했다. 그가 특히 가장 화를 냈던 건,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겨놨는데 사장이 갑툭튀해서 "야근을 해서라도 오늘 중으로 새로운 기안을 내놓아라"고 요구하곤 했다는 것. 이것 때문에 아이 보는 일에 스트레스를 어마어마하게 받다 보니 이러다간 회사 이전에 가정부터 무너지겠다 싶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비웃었다.

    "이제는 잘 서지도 않는(...) 늙은 dragon들이 정작 애 하나 키울 시간도 던져주지 않으면서, 바깥에서는 출산율이 낮다느니 어떻다느니 걱정을 한다고 들었다. 여기보다 문화 여건이 훨씬 나은 다른 나라들도 출산율 저하로 골머리를 썩는데, 이 따위로 하면서 출산율 따지면 그건 정말 bitch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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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p 2016.12.05 11:08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비박에서 빵터졌네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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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공 2016.12.05 19:42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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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암 2016.12.06 17:37

    스타크래프트를 통해서 기동과 보급의 중요성을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더랬죠 ㅎ
    서플라이디팟을 제때 안지어놔서 자원은 넘치는데 병력을 제때 못뽑는다거나..
    같은팀과 이동속도가 잘 안맞아서 상대방 본진에 같이 못들어가고 병력을 축차투입했다가 거덜나거나
    아님 중앙에 제때 못모여서 각개격파 당하거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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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이센군 2016.12.06 23:53

    역시, 철도가 전쟁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네요... 철도가 없었다면 1차대전에서의 대규모 총동원은 어려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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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상인 2016.12.07 22:10

    결국 전투병력이 화살촉과 창날이라면 기동력과 보급은 활과 창대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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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다 2016.12.08 18:49

    그 옛날 남북전쟁 게임할 때도 철로를 확보해야 했죠. 현대전 총력전은 기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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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는개 2016.12.08 20:03

    삼국지에서도 제갈양이 보급에 골머리를 앓다 목우유마 발명하는장면 나오죠
    허구헌날 보급로 유지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제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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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홍락 2016.12.14 15:59

      사람들이 제갈량을 많이 흠모한다지만 간손미 브라더스가 없었다면 유비와 촉나라는 보급을 넘어 나라의 기반도 세우지 못했을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것입니다.

  • 수비니우스 2016.12.14 12:03

    나시카님 새글 금단증상 오는것 같아요 빨리 새글을 읽어야 금단증상이 풀릴것 같아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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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앙 2016.12.15 11:16

    집회 현장에 생각보다 50대 이상인 분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역시 과거 민주화의 주역인 세대인가 싶었고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함께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며 역사적인 순간에 참여하게되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저는 서울 경기에서 성장했지만 TK출신인지라 주위 어른들이 아직 과거의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적어도 이분들이 돌아가셔야 세상이 바뀌겠구나 싶었는데 여러 우연적 사건들이 겹쳐 탄핵을 목격하니 세상일은 모를일이다 싶습니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은 다른 사건(한미FTA 반대)과 어떤 차이가 있어 성공하게 되었나 생각도 해봅니다.
    그동안 강요된 "애국" "법과 질서" "안보" 등의 단어에 너무 질려버렸습니다.
    이젠 비옥한 토양에서 나오는 단어들로 사람들의 황량해진 마음을 채워주가 바랍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 달 잘 보내시길 바라며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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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ath hand 2016.12.17 09:19

    1차 세계대전사! 재미있는 책이지요,저도 가지고 있습니다.존 키건이 확실히 글을 잘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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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애경 2016.12.23 08:28

    사정상 집회에는 참석 못하지만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일본)서도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요.
    솔직히...부끄럽습니다.
    답글

  • 김아무개 2017.07.29 03:54

    586운동권 꼰대가 과거 데모질 하던 추억 못잊어 시위 나간걸 자랑이랍시고 ㅋㅋ

    요즘 느그 이니 정치질 잘해서 참보기 좋으시겠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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