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오후 1시 조금 지나서, 루이 보나파르트가 로게(Roguet) 장군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약 15분 뒤에, 마들렌(Madeleine)부터 뻗은 전체 길이를 따라 온 거리가 갑자기 기병대와 보병대로 뒤덮였다.  코트(Cotte), 부르공(Bourgon), 캉로베르(Canrobert), 뒬락(Dulac), 그리고 레벨(Reibell)의 5개 여단으로 이루어진 카를레(Carrelet)의 사단 거의 전부, 총 16,410명의 병력이 페 가(Rue de la Paix)에서 포부르 푸아소니에르(Faubourg Poissonniere)에 걸친 사다리꼴로 포진했다.  각 여단은 포병대도 갖추고 있었다.  푸아소니에르 대로에만도 11문의 대포가 목격되었다.  그것들 중 2문의 대포는 포구를 몽마르트르 가(Rue Montmartre)와 포부르 몽마르트르(Faubourg Montmartre)를 각각 조준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두 곳에는 바리케이드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길 가의 보도와 건물 창문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구경꾼들은 이 대포들과 군도, 총검들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19세기 후반 파리 포부르-푸아소니에르 거리입니다.  사진 출처는 http://www.de-nicher.com/2015/07/quartier-poissonniere-arrondissement )




"병사들은 웃고 떠들고 있었어요." 한 목격자의 증언이다.  다른 목격자는 이렇게 말한다.  "군인들의 행동이 이상했어요.  그들 대부분이 개머리판을 땅에 댄 머스켓 소총에 기대어 서있었고, 마치 피로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것처럼 보였다니까요."  병사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던 나이든 퇴역 장교였던 L모 장군은 당시 카페 프라스카티(Cafe Frascati) 앞을 지나가며 말했다.  "저 친구들 술에 취했네."


곧 어떤 일이 생길 지에 대한 징후가 몇몇 있었다.


한번은 시민들이 군부대에게 "공화국 만세! (Vive la Republique!)" "루이 보나파르트를 타도하라! (à bas Louis Bonaparte!)"를 외치고 있을 때, 장교들 중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고 한다.  "이제 저것들 곧 돼지고기(charcuterie) 신세가 될 거야."


보병 대대 하나는 리셜리외 가(Rue Richelieu)로부터 행진해 나왔다.  이 부대가 카페 카디날(Cafe Cardinal) 앞을 지나갈 때 이들에게 시민들이 일제히 "공화국 만세!"를 외쳤다.  보수파 신문의 편집인이었던 한 작가가 마침 이 장소에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덧붙여 외쳤다.  "술루크를 타도하라!"  이 부대를 지휘하던 참모 장교는 그 언론인을 노리고 군도를 내리쳤는데, 이 언론인은 다행히 잽싸게 고개를 숙여 피했고, 장교의 검은 거리의 작은 가로수 가지를 두동강 내버렸다.






(파리의 위성 사진입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거리가 Rue Taitbout 입니다.  그 왼쪽 아래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바로 유명한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입니다.   1851년 당시에는 저 건물이 없었지요.  루이 나폴레옹이 이 피비린내 나는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뒤에 만든 건물이거든요.) 




로슈포르 대령이 지휘하는 창기병 제1 연대는 테부 가(Rue Taitbout)와 교차하는 지점까지 도달했는데, 이 거리에는 많은 시민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들은 이 구역에 사는 주민들, 상인들, 예술인들과 언론인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의 손을 쥔 젊은 엄마들도 몇몇 있었다.  이 기병 연대가 지나갈 때,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헌법 만세 ! (Vive la Constitution!)", "법치 만세 ! (Vive la Loi!)", "공화국 만세 !"  


로슈포르 대령은 약 1달 전인 1851년 10월 31일, 파리 사관학교(Ecole Militaire)에서 제1 기병 연대가 제7 기병 연대에게 베푼 만찬회를 주관했고, 또 그 자리에서 '이 국가의 수장이시자 우리가 수호하는 질서의 현신이신 루이 나폴레옹 왕자께'라며 건배사를 외쳤던 인물이었다.  이 로슈포르 대령은 시민들이 외치는 그 완벽하게 적법한 구호를 듣자마자, 보도의 벤치 사이로 말을 몰아 시민들의 무리에 뛰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휘하 창기병들도 돌격했다.  그들은 남자, 여자, 아이들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찔러 쓰러뜨렸다. 쿠데타 옹호자 하나는 이렇게 증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파리 시내의 Ecole Militaire입니다.  유명 졸업생으로는 나폴레옹 1세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이런저런 국방 관련 기관들이 입주해있다고 합니다.)




약 2시 경에는, 2문의 곡사포가 본느 누벨(Bonne Nouvelle) 초소에 있는 작은 전초 바리케이드에서 약 45m 떨어진 푸아소니에르 대로(Boulevard Poissonniere)의 끝자락을 향해 조준되었다.  이 대포들을 방열시킬 때,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포병 2명이 탄약차의 연결대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서민층 사람들 중 하나가 외쳤다.  "저것 봐, 쟤들 완전히 취했네 !"


이 끔찍한 드라마를 분 단위로 회상하자면, 2시 반 경에 그 바리케이드 앞에 마치 장난으로 하듯 별 위력없는 포격이 한 방 발사되었다.  장교들은 전투를 벌일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곧 알게 된다. 


조준이 형편 없었던 첫번째 대포알은 바리케이드 위로 스쳐 날아가 (더 멀리 떨어진) 샤토 도(Chateau d'Eau, 물의 성이라는 뜻)의 샘에서 물을 긷던 어린 아이를 죽였다.  






(서민들을 위한 샘이 있던 '물의 성'이라는 뜻의 Chateau d'Eau입니다.  사진 출처는 http://www.gettyimages.com/detail/news-photo/paris-the-chateau-deau-place-and-the-douane-street-about-news-photo/56209145#paris-the-chateau-deau-place-and-the-douane-street-about-1840-picture-id56209145 )




가게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대부분의 창문들도 그러했다.  하지만 상티에 가(Rue du Sentier)의 모퉁이에 있는 가옥의 2층 창문 하나는 열려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구경꾼들은 주로 거리의 남쪽면에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군중들이었다.  바리케이드에 대한 대단치 않은 공격과 방어를 그저 일종의 작은 싸움 구경으로 생각한 남자, 여자, 어린애와 노인들이었다.  


이 바리케이드는 처음에는 구경거리였으나 나중에는 변명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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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로이센군 2016.12.03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저 시대엔 시민봉기 진압을 위해 시내에서도 포를 쐈군요...

    • 장웅진 2016.12.03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시카 님께서 전에 쓰신 글 중에 이 글 속 악당의 백부가 대포로 시민들을 잡은 이야기가 나오죠. 물론 그 양반은 딱 한 번인가 쐈지만...

      우째 아버지와 딸, 백부와 조카...

    • 야채 2016.12.04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웅진/ 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포격을 했을 때는 말이 시민봉기지 사실상 왕당파 반란군과 혁명 정부 사이의 전쟁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nasica 님의 앞선 글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왕당파측에 국민방위군 병력이 무려 3만명 정도나 가담했고, 이는 정부측 방어병력인 5천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였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사용한 그 대포는 왕당파 쪽에서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단지 나폴레옹이 그 대포를 기민하게 먼저 확보했을 뿐입니다.

    • spo 2016.12.07 1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야채님 분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1795년과 1851년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요.

  2. 블랑 2016.12.04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이가 저렇게 군부를 쥐게 된 배경은 뭔가요?

    아무래도 삼촌 잘 둔 덕인가요?

  3. apils 2016.12.09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런 인간이 보불전쟁으로 대국 프랑스의 명예를 말아먹고 백부 시절 용병국가나 다름없던 프로이센 손에 질질 끌려다녔으니.... 쿠데타과 자국민 학살을 일삼는 집단은 역시 저모양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