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번 언급드렸다시피, 기독교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매주 교회에도 나가지만 그다지 믿음이 깊지 않은 반쪽짜리 신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앙심을 가진 분들을 이해도 하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고 느끼고 세상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만, 과연 그 신의 이름이 여호와이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인지에 대한 결정적인 확신이 없어요.  그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해야 이번에 쓰는 글에 대해 오해가 없겠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성경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물론 정식 신학 공부를 하신 신부님들이나 목사님에 비하면 어림도 없겠습니다만, 믿음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개신교 신자보다는 성경을 더 많이 읽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경을 읽을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령 한가지 예만 들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부터의 내용은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형에 처해진 두 강도의 이야기입니다.  둘다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한 악당인데, 그 중 하나는 죽어가는 순간에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deathbed conversion'인데, 그래서 불신자들은 '마지막 죽는 순간에만 참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이전에는 아무리 악당으로 살아도 천국행 티켓 걱정은 없다' 라고 빈정대기도 하지요.  아무튼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같은 장면을 그린 마태복음 27장 38절부터의 부분을 보면 골고다 언덕에 매달리신 예수님 양편에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강도가 예수님을 함께 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히 두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합니다.  왜 같은 성서에 서로가 모순되는 사실이 적혀 있을까요 ?  (참고로 이런 점에 대해 여쭈어 보면, 대부분의 열혈 신자들은 '너의 믿음이 약해서 그렇다' 라고 답합니다.  감히 목사님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일단 무릎 꿇고 기도부터 하자고 하실 것이 겁나서 그랬어요.)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신앙심이 전혀 없을 때 제가 받은 느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초기에 그냥 사실 그대로 쓰였는데, 누가복음은 더 뒤에 쓰여져 이런저런 픽션(?)이 많이 들어간 모양이다' 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결론을 얻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제 주변의 일부 열혈 개신교 신자분들은 이런 제 나름대로의 해석에 펄쩍 뛰십니다.  성서는 사람이 제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에 따라 쓰여진 것이므로 어느 글자 하나도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느 정도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게 된 지금도, 저는 그런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반쪽짜리 신자인가 봐요.  그래도 지금의 저는, 모세가 홍해를 둘로 갈랐다는 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또 골고다 언덕의 강도 중 한 명이 예수님을 찬양했건 욕했건 그런 역사적 사실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어느 독실한 신학생이 유럽 어디론가 신학 유학을 가서 겪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차 목사가 될 독실한 신학생들로 가득찬 그 강의실에서 신학 교수님이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 손들어봐라' 라고 하니 유럽 출신 백인 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안드는데, 자기만 손을 들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신학 교수님이 웃으며 '너는 정말 그게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또 만약에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너의 신앙심이 흔들리느냐?' 라고 묻더랍니다.  저도 뭐라고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그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꼭 이렇게 해야만 신앙심이 생깁니까 ?)




하지만 아직도 깊게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점이 있습니다.  짧고 굵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진보인데 왜 목사님들은 보수인가 ?"


너무 짧게 써서 질문 자체가 무척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  가령 진보와 보수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모든 목사님들이 보수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다 등등 문제가 많은 질문이지요.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을 묻는 것인지 다들 이해하실 질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예수님 말씀인지 마르크스의 말인지 헷갈리는데...    

"각자의 능력에 따라 걷어" 사도행전 11장 29절  

"각자의 필요에 따라 나눈다" 사도행전 4장 35절)




예수님은 부자나 재물을 적대시하지는 않으셨지만, 분명히 부자와 권력자보다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굳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라는 유명한 구절이 아니더라도, 공관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언행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가난한 자들과 창녀들, 그리고 현재로 따지면 일본군 헌병 보조에 해당하는 민족적 배신자인 세리들처럼 점잖은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돕지 않는 것은 주님을 외면하는 행위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게다가 기존 기득권층인 유대 제사장의 이익에 어긋나는 언행을 많이 하신 결과,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는 끔찍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 예수님의 행보를 다분히 진보적이라고, 더 나쁘게 왜곡하면 빨갱이스럽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바에 따르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간지가 벌써 만 20년입니다) 적어도 한국 개신교 목사님들은 상당수가 보수 우익이십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몇가지 사례들을 나열하자면... 그건 교회 목사님들의 너무 안 좋은 면을 내비치는 것 같아 관두겠습니다.  


저는 대형 교회 두 곳을 다녀 보았고, 지금은 작은 동네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만, 그런 경향은 대형이나 작은 교회나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형 교회에서는 좀더 재물 이야기를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심지어 예배 시작할 때 장로님이 앞에 나와 기도를 올리시면서 "불신자들이 저희를 비웃지 않도록 저희에게 재물을 내려주소서" 라고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경우까지 보았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입니다.)  특히 십일조를 강조하셨는데, 정말 여러번 반복하신 설교 내용이 미국의 록펠러나 포드 같은 재벌들이 십일조를 꾸준히 낸 덕분에 그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큰 부자가 나와서 우리 교회를 크게 흥하게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좋은 축복 내용입니다만, 저는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한국 전통의 구복 신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이 소싯적 가난할 때부터 십일조를 낸 덕분에 당시 뉴욕타임즈가 "the most cruel, impudent, pitiless, and grasping monopoly that ever fastened upon a country" 이라고 평가한 Standard Oil 사를 창립한 록펠러이십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만 이 분에 대해 듣는다면 세상에 이렇게 착하신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행했던 그 모든 악... 에이 아닙니다.)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었습니다만,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성경 구절은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저는 전에 어느 분의 장례 미사에 갔다가, 신부님이 읽어주시는 이 글귀를 듣고... 감동도 좀 먹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지옥에 갈 죄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지요.  세상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가족의 행복과 안녕이 더 급하고 더 귀하기 때문에 기부도 많이 안 하는 편이거든요.  아마 그때부터였나... 저는 복지를 위한 중과세에 적극 찬성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지를 구현하여 세상에 굶주린 사람이 없게 되면, 저의 가련한 영혼의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45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굶주리고 병들고 옥에 갇힌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자 동네에 살아서 직접 마주칠 일이 없더라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 매일 그런 사연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최소한 목사님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말씀하시는 것을 정말 들은 적이 없어요.  그에 비해 록펠러 이야기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심지어 '일반 신도 수백명보다, 그렇게 거액의 십일조를 낼 수 있는 신도 한 명을 얻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라는 말씀을 하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거짓말 같은데, 정말입니다.)  정말 개신교는 자본주의에 맞게 진화한 것 같았습니다.  하긴, 신년맞이 예배에서 목사님이 엄숙하게 '올해의 목표, 1. 교육관 건립  2....' 하는 식으로 그 해의 목표를 정해주시는 교회였으니, 제가 '대체 여기가 교회냐 회사냐 ? 잘하면 올해의 목표 헌금액까지 정해져 나오겠네'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리도 아니었지요.  (참고로 그 교회는 결국 교회 본당만큼 커다란 교육관을 세웠습니다.  할렐루야 !)


저는 한국 교회의 이러한 변질이 꼭 한국 개신교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계도 변질되고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고, 카톨릭도 내부에는 많은 부패와 부조리가 있겠지요.  생각해보면 모든 종교는 시작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창시되었으나, 종교 권력으로 성장하면서 결국은 부와 권력 편에 서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직접 보고 느낀 한국 교회의 모습은 정말 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것이 결국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교회도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결국 무슨 일이든 벌이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예산에는 당연히 권력이 따라 붙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카톨릭이 그나마 그런 경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이미 카톨릭은 전세계적으로 탄탄한 조직과 재원이 마련되어 있고 개인적인 가정이 없으므로, 그런 돈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 유대교는 아무데서나 하나님께 제사를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루살렘 지성소 바로 밖에 있는 지정 장소에서, 대제사장의 집전 하에서만 제물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교리는 대제사장 계급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바쳐지는 제물로 인한 경제적 이익, 특히 성전에 봉헌되기 위해서 반드시 로마 화폐인 데나리온을 성전세 지불용 화폐인 셰켈로 환전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점적 환전 이익이 막대했거든요.  그 부분을 읽으니, 다들 아실만 한 어느 유명 복음 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집에서 읽은 문답이 기억났습니다.  




(이것이 성전세 납부용으로 사용된, 예루살렘에서 주조된 화폐 shekel 은화입니다.  이 은화는 반 (half) 셰켈짜리입니다.  당시 성전세는 당시 성인 남자 일인당 반 셰켈로 정해져 있었으므로, 좋든 싫든 일반적인 화폐 데나리온을 반드시 반 셰켈 또는 셰켈로 환전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상당한 차익이 대제사장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 문답에서, 어느 신자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은데,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대신 직접 그 사람들 또는 단체에 기부를 하면 안될까요 ?' 하고 물으니, 그 교회의 단호한 답변은 이랬습니다.  '안된다.  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돕겠다는 것은 개인의 오만이다.  반드시 교회에 바쳐라.'


성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지성소에 쳐진 장막이 찢어졌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해야 한다는 제약이 사라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를 통하지 않고 빈민을 돕는 것이 '개인의 오만'이니 허락할 수 없다는 모습에서, 저는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비난하시던 유대교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혁명을 추구하셨지만, 성전에서 대제사장의 돈벌이판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희생 제물용으로 판매되던 가축들을 쫓아내고 환전상의 가판대를 힘으로 뒤엎으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수님이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신 것은 권력을 이용하여 성전에서 경제적 독점권을 취하던 이들을 내쫓을 때 뿐이었습니다.)




저는 성서를 글귀 한글자한글자에 교조주의적인 맹신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전에 다녔던 대형 교회에서는 어느 복음서의 시작 부분이 '너희가 강녕하기를 바라노라' 라는 당시의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것을, '봐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돈 많이 벌고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신다' 라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해석하시더군요.  특히 말라기에 나오는 십일조를 바치면 그 백배천배의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될 거라는 부분은 글귀 하나하나를 정말 너무나 애용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천국에 가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부분은 그렇게 글귀만 보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딱 선을 그으시지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와 카톨릭이 정면 충돌하는 부분이 제사 부분입니다.  개신교는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라는 십계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금지하는 것에 비해 카톨릭에서는 제사 행위 자체를 우상에 대한 숭배가 아니라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판단하여 허락하지요.  참고로 저는 제사 폐지론자입니다만, 제사가 우상 숭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 등의 분들에게 초능력이 있어서 간절히 모시면 우리 소원을 들어준다든지, 반대로 제삿상이 부실하면 화를 내고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  교회에서도 우상의 정의를 '주님보다 더 소중히 모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대의 한국 교회들 중 많은 수가 주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정말로 주님을 따른다면 성경 내내 여러차례 반복되는 아래의 말씀들을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서 58:7

너희는 굶주린 자에게 너희 음식을 나눠 주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사람을 너희 집으로 맞아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도움이 필요한 너희 친척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어라.


누가복음 18:22

예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요한일서 3:17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난한 형제를 보고도 도와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주님의 뜻이 이 사회에서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는 길은 사회 복지 확대입니다.  결국 사회 복지 확대 재원을 위해서는 부유층에게 어느 정도 증세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것 때문에 부유층에서는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고 부유층과 밀착한 언론에서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끌어들여 진보 정권을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주님을 따른다는 개신교 목사님들이 극우파스러운 언행을 하시는지 정말 의아합니다.  도대체 (일부) 한국 개신교 목사님들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길래 '남이야 어떻게 되건말건 많은 돈을 모아서 대를 이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주님의 은총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믿게 된 것일까요 ?  개탄스럽습니다.  



* 예전에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 약간 고쳐서 다시 올린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엔 주로 과거 글을 옮겨 옵니다.


** 물론 훌륭한 목사님들과 훌륭한 성도님들 많습니다.  개신교 전체를 매도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반쪽짜리이긴 하지만) 저도 개신교 신자입니다.


*** 댓글 중에 '예수님께서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진보 성향인가 보수 성향인가' 라고 물으신 분이 있었고, 바로 그 밑에 다른 분이 '그건 예수님 말씀이 아니라 바울의 말씀이다' 라고 댓글을 다셨네요.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6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여러분은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과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7 여러분은 우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제멋대로 살지 않았으며

8 아무에게도 공밥을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 수고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9 우리가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을 권리가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몸소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10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며 권합니다. 조용히 일하며 자기 생활비를 벌어서 살도록 하십시오.


이건 당시 텟살로니카 교회에서 공연히 사건만 일으키고 신도들에게 경제적 부담만 줄 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원래 바리새인으로서, 바리새인들은 율법학자로서 살더라도 종교 활동을 본업으로 해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벌어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율법학자가 되기 전에 텐트 제조 기술을 배웠고 실제로 사역 활동 중에도 노동을 해서 스스로의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8:3   바울은 그들의 직업이 자기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머물면서 일하였다.


결론적으로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라는 말씀은 노동을 하지 않는 전업 종교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일을 하지 않고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전적으로 사역만 했는데... 제가 알기로는 베드로와 바울의 관계가 썩 매끄러웠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은 저 말씀을 '노동을 하지 않는 자본가들'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는 모양입니다.  확실히, 자본주의적인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1936 CONSTITUTION OF THE USSR


ARTICLE 12. In the U.S.S.R. work is a duty and a matter of honor for every able-bodied citizen,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He who does not work, neither shall he eat."

The principle applied in the U.S.S.R. is that of socialism: "From each according to his ability, to each according to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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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레미 2018.12.06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사님들, 특히 미국 개신교 문화가 그대로 넘어온 한국의 개신교 개척교회들은 벤처기업이거든요. 결국 목사들의 사고방식은 기업가들의 사고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기업가니까 우익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벤처기업이 개신교 교회의 실상이지요.

  3. 유애경 2018.12.06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교회나 가르침(?)은 다 비슷한것 같네요. 록펠러는 십분의 9를 십일조로 바치는 역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물질축복을 받아서 거부가 된것이다라는 사례(?)는 신도들에게 헌금을 독려하는 좋은 본보기로서 자주 활용되곤 하죠.
    진실된 주의 종들도 많지만 거듭나야할 목회자들도 엄청 많은것 같습니다.


  4. 프로이덴슈타트 2018.12.06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개혁의 교부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재미있는 글이 많죠.소소한 일상생활부터 심지어 당시 유럽 안보를 위협하던 오스만 터키 제국에 대한 글까지 다양합니다.종교개혁자들도 사람인지라 제네바 등의 지역에서 강경한 신정정치를 시행하는 등 과오도 많지만 대체로 위인들인 것 같습니다.그분들이 남긴 글을 읽어보시는건 어떨까요?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도 현대 한국교회 못지않게 변질되어 있었거든요.

  5. 리틀락 2018.12.06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판을 허용하지않는 목사의 절대권력이 타락의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리없을것 같네요. 카톨릭도 온갖 삽질을 다하고 현재 시스템으로 정착한거 보면 말이죠. 나폴레옹 전쟁도 샤프 시리즈도 재밌지만 이런 진지한 글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올 한해 감사했고 내년에도 좋은글 기대하겠습니다~

  6. ㅇㅇ 2018.12.06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수님은 좌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니들이 가진걸 나누라고 했지,
    남들이 가진것까지 강제로 나누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말로 전 유대인에게 돈을 거둬서 한달에 1데나리온씩 지급하자거나,
    보편적 무상할례를 주장했다면, 뭐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 진보구나 했겠지만,

    좌파우파로 딱 나눠질수가 없고, 그럴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개신교는 점점 비즈니스로 변해가고.
    사람들 구복해주고 돈받고 고민들어주고 위로하고 돈받고 찾아가서 기도해주고 돈받고 그걸로 바벨탑을 정성들여서 쌓으면서
    돈이 필요할때마다 성경에서 필요한 구절 때려붙여가며,
    믿음을 인질로 사람들을 현혹시키죠.

    목사들도 먹고 살아야 되는건 맞지만, 일부는 도를 훨~씬 넘었죠,
    그러면 또 어디서 성경구절 들이밀테지, 더러운 놈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지금은 저렇게 방방 날뛰지만
    어차피 그들도 사람이라 죽을테니 지들이라고 뭐 별수 있겠어요..

  7. ㅇㅇ 2018.12.07 0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 그거 사교클럽 아닙니까?
    사교클럽장들이 어느 성향이든 뭐 이상한 일이겠습니까

  8. 아즈라엘 2018.12.07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의 목사라는 사람들을 보면 복음과 돈만 외쳐대는 양복입은 무당의 모습이더군요
    전통의 기복신앙이 무너진 공백을 돈과 권력으로 치고 들어온 개신교를 보면서 종교자체가 꺼려지네요

  9. 지나가다가 2018.12.07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회를 통해서 기부를 하고 사회복지나 자선단체를 통해서 하지 말라고 하는건 개인의 오만을 경계해서가 아니라...

    기독교에서 자선을 베푸는 이유는 그 자선의 궁극적인 목적이 불쌍한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옷 입혀주고 잘 살게 해주고....하는데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자선을 통한 사랑의 실현,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베푸는 사랑의 실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 앞에 나아와 영의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지요. 자선단체는 이 세상에서의 괴로움을 덜어 줄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도움받은 사람을 영의 구원으로 이끌게 하지는 못하니까요.

  10. ㅇㅇ 2018.12.07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전하지 못한 교회 공동체가 한국에 많은 것은 사실이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원래가 비판하기 위한 글이니 비판받아야 할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씁쓸하네요.

    (제가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글의 다른 내용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 주인장께서 반쪽짜리 개신교 신자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십년 간 교회에 나가셨는데도 여전히 인격적인 주님이 계시다는 확신도 없고, 구원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지신도 없다면, 여전히 교회에 나가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애독자 2018.12.07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쓴이가 강남좌파인 것과 같은 모순이죠

    • 유애경 2018.12.14 0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회에 나간다고 해도 비판할건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시카님은 예수님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교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계시는건데 개인의 신앙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11. 애독자 2018.12.07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타리무님 말씀이 틀린 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주장에 대한 논박보다 인신공격으로 흐르는 지 모르겠군요 저도 주인장이 인터넷에서 얻은 얉팍한 지식으로 본인 정치적 주장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거에 질렸습니다

    • 아즈라엘 2018.12.08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 오래 전부터 보신분들은 썩은무가 어떤 패악질을 저지르고 어떤 난동을 부리는지 잘 아실겁니다. 모르는거 보니 여기 처음 오신듯 하네요

    • 애독자 2018.12.08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닉네임에서 짐작하듯 이 블로그 12년쨉니다 나시카님 디씨에서 광고하실 때부터 봤어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12년째라는 분이 썩은무가 왜 까이는지 모르시다니 놀랍군요
      몆년안된 저도 썩은무가 까이는 이유를 아는데 말입니다

    • 유애경 2018.12.14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독자님께서 12년전부터 나시카님의 애독자 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엄청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 군요!
      그래도 이런글에 강남좌빨 이라느니 하는 표현은 좀 아닌것 같아요!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하는 성경말씀을 인용하고 계신데 왜 거기에 불필요한 시비조의 단어로 딴죽을 거시는지...?


  12. 뱀장수 2018.12.07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사람들이야 대한민국 gdp의 10%가 십일조로 나가는게 이상적이라 여기는 인간들이니 신경쓰시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요. 넷상에서 고뇌해 보셔봤자 뻘댓글만 달리는데 알만하지 않습니까

  13. 정암 2018.12.07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참... 사랑을 강조한다는 기독교가 정작 이웃에 대한 사랑에 무심하고 자꾸 상업화되어
    간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글의 본질인데
    본질은 제껴두고 신학이니 반쪽이니 뭐니 하며 교조주의적이고 지엽적인거에 집착들 하시네요..
    진짜 공학,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성경 안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있다는걸 몰라서 그러시나요?
    종교의 본질이, 특히 기독교의 본질은 사랑인데
    불우이웃 돕자는 말에도 좌파 운운하며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작태란...
    기독교 교리의 기본이 신이 전지전능하다는걸 기본으로 깐다는데 뭐가 전지전능합니까?
    이런 배신자 Nasica님 하나 처단 못하면서... 그럼 또 그러겠죠.. 신은 직접 행하지 않는다고 ㅋㅋ
    아주들 웃기세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구상에 비브라늄 재고는 모조리 썩은무 얼굴에 발랐다면서요???
      방어력 최고!!!

  14. 정암 2018.12.07 1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독자/ 인신공격적인 답글을 먼저 쓴게 누군지 몰라서 그러시는지요
    알타리무 답글 함 보세요
    얼마나 짜증내고 혼내는 투인지..
    공부 좀 하셨다는 분이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진 못하고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니
    내용은 둘째치고 보는 사람이 다 짜증납니다

  15. 0_- 2018.12.08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희한한 군상들 참 많습니다...
    남들보다 1-2시간 덜 자며 블로그 기사 쓰고 애드센스 달며 부자 되는 노오력 하는 사람에게 우르르 붙어서 댓글로 반대나 끄적이며 무슨 자신이 정의인 양 착각하고 앉았네요? 블로거가 십몇년 들여가며 디씨에 블로그 홍보하고, 국내 정식발매 되지 않은 소설들 발췌 번역하며 본인이 일하시며 겪은 이야기, 한국과 외국의 이야기, 전쟁사와 엮어서 이야기 만들고 팬 숫자 늘려서 블로그 뷰 늘리는 동안, 댓글 싸는 군상들은 그 노오력의 반의 반이라도 들였습니까?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대목 발췌해서 확대재생산 해대고. 본인은 독자 콘텐츠를 도저히 만들 수 없으니 여기서 기생해서 댓글 싸면서 본인 불만 토로하는 것들이 무슨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인양 착각하고, 게다가 우르르 몰려서 자기네들끼리 서로서로 추켜세우며 블로그 주인 못났다 행태 하네요. 그거야말로 자기네들 혐오하는 좌파들 행동 아닙니까? ^^

    군상들, 이제 답은 나왔네요.
    1. 남들 베낀 것 아닌 독자 블로그 콘텐츠를 만든다. (수년 소요 예상)
    2. 디씨에 홍보한다. (수년 소요 예상)
    3. 블로그를 확장해간다 (싸이월드-다음-티스토리, 십수년 소요 예상)

    자영업 죽는다 죽는다 그 난리를 쳐 대면서 그렇게 블로그 자영업해 온 사람 상대로, 좌파 노조 모리배 마냥 몰려서 불만만 써 대지말고 그놈의 '투자'를 해 보던가요? ^^

    • 애독자 2018.12.0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블로그 사업하려고 만든거였습니까?

    • 0_- 2018.12.08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은 농담이란걸 모르나요.
      남의 블로그에 뭐 이리 득달같이 달려드는 심리를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그리 불만이면 포스팅 노력 반의 반도 안되는 댓글로 이러지 말고 본인들도 블로그 글을 쓰던가요. 뭐 댓글 써대는 필력들 보면 글 쓰다가 본인의 지리멸렬한 글에 질릴테니 여기서 댓글달며 자기들 잘난줄 알고 떠들고 있는 거겠죠.

    • 애독자 2018.12.08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머감각이 탁월하시네요

    • 나삼 2018.12.09 0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본인이 일하시며 겪은 이야기, 한국과 외국의 이야기, 전쟁사와 엮어서 이야기 만 있습니까? 역사이야기 외에는 거의 본인이 열광적으로 지지하시는 정파쪽 이론 설파에 상대편 정파 비난글은 안보이시나요/

    • 아즈라엘 2018.12.0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삼씨는 숙제나 하고 와서 떠드세요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움?

    • 0_- 2018.12.12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시기 저시기 안보이냐는 인생들은 먼저 제 눈의 들보나 빼시길. 글로 영향력 행사 하고 싶으면 본인들 말마따나 '좌파'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며 분탕질 불평질이나 하지말고 시간투자 해서 본인 블로그 구축하고 거기서나 영향력이나 행사하시는게 백배는 생산적입니다.

      대다수 댓글 다는 사람들 하는거 보면 블로그에 새 글이 뜰때마다 나타나서 오늘 똥은 참 푸짐하네요 거의 이런 수준인데, 그러면 당신네들은 똥찾아 오는 똥파리 수준밖에 안된다는 소리를 스스로 한다는 거 알고 있나요?

  16. 2018.12.08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7. 그냥저냥22 2019.01.16 0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와 생각이 동일하시네요. 사실 스파르타와 관련된 글을 읽다가 들어와서 이 글도 보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성경과 관련된 나아가 당시의 상황과 역사에 관련된 글 도 읽게되면 좋겠네요. 여러분들께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엄청나게 긴 글을 쓰시며 반박하고 조롱하고 있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시카님에 동의하는 저와 같은 신자도 많을 겁니다. 힘내세요 ^^

  18. 정경 2019.01.19 0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시카님 역사적 지식도 아주 해박하신데, 위에 다른 분 말씀처럼 앞으로 성경의 관점과 역사적 사실의 상황에 대해서도 여러 글들을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매주 교회에 나가는 모태 기독교인으로서, 앞서 댓글 달아주신 몇몇 몰상식한 분들대신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요. 기본적인 문장 구조나 논리도 신경 안 쓰는 주장을 하면서 인신 공격만 하시는 분들은 그냥 무시가 답입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자기가 어떤 분야에선 해박하다고 생각 (예: 신학) 하지만 대부분 절대적으로 부족한 독서량으로 인해 다른 분야의 상식이나 지식은 많이 부족한 분들이세요. 단편화되고 가공된 정보만 획득하시는 경우가 많고요. 개인적으로 평준화 교육 과정을 지지합니다만, 사실 그런 교육 방식은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죠.

  19. Cyan 2019.05.31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학생이신데 아닌척하고 쓰신것 같네요... ㅋㅋ
    저는 장로교(통합)의 신학대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공부 중인 약간 삐딱한...? 신학생입니다.
    저도 나시카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 사회의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이야기하셨죠.
    위에서도 이야기하신 마태복음25장에서 40절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나시카님의 궁금증, 우리나리 기독교가 정치적 보수 성향을 띄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입니다.
    1919년 까지는 한국의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진보였습니다. 그리고 항일과 개화, 모두 기독교계가 이끌었죠.
    19년부터 45년도까지 기독교는 농촌 계몽운동, 민족 자본 확충운동들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 기독교인인 지주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기독교계에서 학교들을 많이 세우고 지식인들을 양성하면서 관리계층과 상류층으로 진출하는 시독교인들이 많아집니다. (민족대표 33인중 절반이상이 기독교인) 그리고 해방 후 이념갈등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갖게 되고, 공산주의 이념 아래에서 친일파 문제와 토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버리죠.이때, 지주이면서 친일을 했던 기독교인들이 쌍으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땅, 재산, 고향 그리고 교회를 잃게 되었기 때문에 남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악마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죠.
    여기에 육이오 전쟁, 냉전, 이승만의 국시인 반공이 겹치면서 증오가 더욱 깊어집니다.
    또한 박정희까지 반공을 국시로 삼으면서, 북에서 내려온 이들은 이북 출신 자체가 출세의 한계가 됩니다.
    이들에게는 남한이 유일한 영토였고, 북이 통일을 할 경우에 바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친미와 반공을 무조건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뭐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 정치 성향을 자기 정체성으로 형성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다??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를 한다?? 이런 말들은 그들이 증오하는 빨갱이들의 이야기인거죠.

    정치적 성향이랑 돈을 좋아하는건 뭐... 같지는 않습니다만 여튼 한국 기독교가 보수적이게 된 이유는 이정도로 설명이 되리라 봅니다.

    그밖에 글에서 지적된 한국 교회의 또다른 문제들인 성서무오에 기반한 문자주의적 해석...같은 이야기들을 하려면 더 길어질거 같네요 ㅎㅎ 요즘에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늘어나고 잇어요~
    아직 배울게 많은 학생이라 부족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면 물어봐주세요!!

  20. 멀리서 2019.06.03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에서 산지 20년이 되어갑니다. 휴가때 한국에 들어가서 지방에 잠시 다녀올 일이 있는데, 가는 동네에 방문해볼 교회를 찾다가 우연히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유럽의 주류 개신교 교회(보통 역사적으로 혹은 지금까지 국가 교회인 개신교회를 생각하시면 됩니다)에서 나누어지는 아주 평범한 생각중의 하나가 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문자주의 성경해석을 배척하고, 개교회 중심주의가 아니라 지역 혹은 나라 단위로 서로 연대하여 조직하고 생활하고, 정치, 사회 현안들에 목소리를 내며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들... 유럽에서 개신교회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들이, 한국에 가면 '아주 진보적인', '아주 독특한'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참고로, "유럽 교회들 다 망했다"는 이야기가 한국에 떠도는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자주의, 근본주의, 구복신앙, 개교회 중심주의 식의 교회가 유럽에서 잘 안보이니까요.
    외롭다 생각하지 마시길,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