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apoleon7

쥐노, 러시아군을 구해내다 - 스몰렌스크 전투 (6) 바클레이는 8월 17~18일에 벌어진 스몰렌스크 전투 동안 프랑스군이 강 북안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것에 집중하며 탈출로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스몰렌스크에서 전투가 벌어진 이유는 스몰렌스크를 통과하는 민스크-모스크바 간의 군사도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고민할 것 없이 그냥 그 군사도로를 따라 모스크바 방향으로 탈출하면 그만이었지요.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스몰렌스크에서 출발하는 모스크바로 향하는 군사도로는 초반 4~5km가 드네프르 강변을 따라 나있었던 것입니다. 스몰렌스크를 폭격하던 프랑스군 포병대가 이 길을 따라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1~2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지도상에 노란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발루티노(Valutino, Валути.. 2020. 4. 27.
화염 속의 얼음 - 스몰렌스크 전투 (5) 웅장한 성벽을 둘러싸고 벌어진 스몰렌스크 전투는 낮에도 장관이었으나 밤이 되자 더욱 장엄한, 어떻게 보면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낮부터 박격포를 이용하여 좁은 스몰렌스크 시내에 계속 폭발탄을 쏘아넣고 있었습니다. 스몰렌스크 시내의 건물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진 것들이라서, 이 포격은 곳곳에서 화재를 일으켰고 밤이 되자 온 시내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성 밖에서 포병들을 지휘하던 프랑스군 불라르(Boulart) 대령의 시선에는, 시커먼 성벽 위에서 불바다를 배경으로 총을 들고 움직이는 러시아군 병사들의 모습이 지옥불을 속에서 움직이는 꼬마 악마들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군의 팡텡 데 조두와르(Fantin des Odoards) 대위는 '단테도 지옥에 대한 묘사를 할 때 이 광경에서.. 2020. 4. 20.
전염병 때문에 나폴레옹의 명령을 거역한 어떤 함장 이야기 아마 이 유튜브 영상을 지난 주에 많이들 보셨을 것입니다. https://youtu.be/ayaLwHW-244 이건 승조원들을 코로나-19로부터 구하기 위해 함내의 상황을 언론에 알렸다가 결국 승조원을 구한 대신 보직 해임 당한 크로지어(Crozier) 함장이 미항공모함 USS Theodore Roosevelt 호를 떠날 때의 모습입니다. 승조원들이 모여 박수를 치며 'Captain Crozier'를 외치는데, 아마 우리나라 장군님들은 이 짧은 비디오 클립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실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함장이 떠나는데 정복을 갖춰입은 엄숙한 의장은 커녕 온갖 사제 티셔츠 쪼가리를 난잡하게 입은 승조원들이 오와 열을 갖추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모여서 마치 축구 경기 응원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구호를 외치고 .. 2020. 4. 6.
엇갈린 발걸음 - 스몰렌스크 전투 (2) 바클레이가 7일 밤 바그라티온과 플라토프에게 보낸 명령서는 2가지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독일인 특유의 무뚝뚝함 때문인지 원래 바그라티온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이었는지, 바그라티온은 그냥 '우회전하여 전진'이라는 퉁명스러운 명령만 들어있었을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바그라티온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고, 일단 명령에 따르기는 따랐지만 마음 속으로는 바클레이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점점 커졌습니다. 둘째, 그나마 플라토프에게는 아예 명령서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당시 전장에서는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무선 통신도 없고 GPS도 없고 항공 정찰도 없으니 아군끼리도 넓은 지역에서는 상호 교신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담이지만 1815년 워털루 전.. 2020. 3. 23.
울며 겨자 먹기 - 스몰렌스크 전투 (1) 7월 27일 밤 비텝스크에서 철수한 바클레이의 러시아 제1군은 약 130km 떨어진 스몰렌스크에 8월 1일에 도착했습니다. 하루 약 32km씩 행군한 셈인데, 당시 군대의 하루 평균 행군 거리가 20km이던 것을 생각하면 꽤 강행군이었습니다. 스몰렌스크는 당시 인구 1만5천 정도의 작은 도시였는데, 무엇보다 튼튼한 벽돌로 쌓은 성벽과 총탑으로 무장된 요새 도시였습니다. 게다가 폭이 거의 100m에 달하고 꽤 깊은 드네프르(Dnieper) 강을 북쪽에 끼고 있어서 방어에 크게 유리했습니다. 드네르프 강은 러시아에서 시작하여 우크라이나를 거쳐 남쪽의 흑해로 흘러들어가는 큰 강인데, 스몰렌스크에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고, 스몰렌스크는 강의 좌안, 즉 남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이 있는 비텝스크는 스.. 2020. 3. 19.
1812년 전쟁의 시작 - 네만 강을 넘다 6월 23일 아침, 나폴레옹은 미리 준비해둔 감동스러운 연설을 통해 '제2차 폴란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지난 50년 간 러시아가 유럽에 보여주었던 오만한 영향력을 분쇄할 것이라고 병사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병사들은 'Vive l'Empeurer !'를 외치며 호응했고, 나폴레옹을 속으로 싫어하던 장교들과 병사들마저도 그 광경에는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부터 나폴레옹은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네만 강가를 달리며 적절한 도하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내 밤 10시에 제13 경보병 연대가 보트를 이용하여 어둠 속에 조용히 강을 도하했습니다. 네만 강 동쪽 강변을 장악한 이들의 엄호 속에서 에블레(Jean Baptiste Eblé) 장군의 공병대가 3가닥의 부교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2019. 11. 25.
1812년 그랑다르메(Grande Armée)의 내부 상황 (마지막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징집된 병사들의 사기는 폴란드 내로 진입하기 전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새로 징집된 어린 병사들은 나폴레옹이 장려한 새로운 공립학교 제도 하에서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제도적으로 교육받고 성장한 아이들이다보니 더욱 그랬습니다. 병사들은 실질적인 혜택(?)도 꽤 쏠쏠히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원정이 이어질 때마다 프랑스 국민들은 남편과 아들들이 (금지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점령지에서 노략질해온 돈과 귀중품을 가져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아 싸움터에서 횡재를 올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으로 난리가 난 적국의 마을과 도시에서는 꽤 값이 나가는 물품을 헐값에 사들인 뒤에 관세도 물지 않고 고향 마을로 가져와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 2019.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