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블로워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도 서둘러 끼워입은 티가 나는 모습으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재빨리 선실에 나타났다.  들어서면서 그는 초조한 듯이 선실을 둘러 보았는데, 왜 상관들이 있는 이 선실로 소환이 되었는지에 대해 불안해하며 마음 고생을 한 것이 분명했고, 그 불안함은 사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들은 이 작전 계획이란 게 대체 뭔가 ?" 버클랜드가 물었다.  "듣자하니 요새를 습격하는 것에 대해 뭔가 제안할 것이 있다더군, 미스터 혼블로워."

혼블로워는 즉각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논점에 대해 정리하고 이 새로운 상황에 비추어 그의 최초 작전 계획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부시는 리나운 호의 공격 시도가 실패하는 바람에 기습이라는 초기 이점을 잃은 상황에서 그의 작전 계획에 대해서 말하라고 요청받는 것은 혼블로워에게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시가 보아하니 혼블로워는 그의 생각을 재정리하고 있었다. 

"저는 상륙 작전이 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함장님."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스페인놈들(Dons : 스페인 사람들을 비하하는 명칭)이 인근에 전열함이 와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젠 가능성이 없다라는 이야기인가 ?"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실망이 뒤섞인 듯 했다.  안도는 그가 더 이상 뭔가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것이었고, 실망은 성공을 거둘 뭔가 쉬운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것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혼블로워는 이제 충분히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과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에 그게 보였다.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긴 합니다, 함장님.  즉각 실행하기만 한다면요."

"당장 ?"  지금은 한밤중이었고 수병들은 지친 싱태였다.  버클랜드의 목소리에는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제안에 대한 놀람이 드러났다.  "오늘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

"오늘밤이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스페인놈들이 우리가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  표현 죄송합니다, 함장님.  하지만 최소한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그들이 본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석양 무렵에 사마나 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지요.  걔들은 아주 기분이 좋았을 겁니다.  얼마나 그럴지 잘 아실 겁니다, 함장님.  그러니 육지쪽 다른 방면으로부터 새벽에 공격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겁니다."

부시에게는 그럴 듯 하게 들렸다.  그는 그에 동조하는 작은 소리를 냈는데, 그게 이 토의에서 그가 기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모험이었다.

"이 공격을 자네라면 어떻게 조직하겠나, 미스터 혼블로워 ?"  버클랜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이제 그의 생각을 완전히 정리해놓고 있었다.  얼굴에 지친 표정이 사라지더니 이젠 열정이 빛나고 있었다.

"스캇츠맨 만을 향하기에 바람이 좋습니다.  아마 2시간 안에, 그러니까 자정 이전에 그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도착할 때 즈음이면 상륙조를 짜서 준비시켜 놓을 시간이 충분합니다.  수병 100명과 해병들을 동원하면 됩니다.  거기에 상륙하기 좋은 해변이 있더군요.  어제 보았지요.  거기 내륙은 습지투성이일 겁니다.  반도의 언덕이 다시 시작되는 곳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습지의 반도쪽 측면에 상륙할 수 있습니다.  어제 그 지점을 봐놨습니다, 함장님."

"그래서 ?"

혼블로워는 거기까지 이야기해줘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더 나아갈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흠칫 깨달았다.

"상륙조는 능선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함장님.  길을 잃거나 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 쪽은 바다고 다른 쪽은 사마나 만이니까요.  그들은 능선을 따라서 전진하면 됩니다.  그러면 새벽에 요새를 습격할 수 있습니다.  습지와 절벽이 있으니 스페인놈들은 그 쪽으로는 경계를 소홀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함장님."

"자네 말에 따르면 굉장히 쉽게 들리는군, 미스터 혼블로워.  하지만 180명이라고 ? (PS2 참조 : 역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함장님."

"뭐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

"그 요새에서 우리에게 발포한 대포는 모두 6문이었습니다.  최대로 따져 봐도 그 요새의 인원수는 아마 90명, 아마 60명이 더 맞을 겁니다.  탄약조와 가열로에서 일하는 인원을 다 합해도 150명 정도일 겁니다.  어쩌면 100명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들 병력 전부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

"스페인놈들은 섬의 그 쪽으로부터는 우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흑인 반란노예들과 어쩌면 프랑스군, 그리고 자메이카의 영국군에 대해 방비하고 있지요.  흑인들이 습지를 지나 그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습니다.  위험이 도사라는 쪽은 사마나 만의 남쪽입니다.  스페인놈들은 머스켓 소총을 쥘 수 있는 인원은 모조리 그 쪽에 배치했을 겁니다.  그 쪽이 도시가 있는 쪽이고 그 쪽이 이 투쌩(Toussaint : 아이티의 노예 반란 지도자.  PS1 참조)인지 뭔지 하는 친구가 으르렁 대고 있는 쪽입니다, 함장님."

이 긴 말의 마지막 단어는 뒤늦게나마 운 좋게 생각해낸 덕분에 나온 것이었다.  분명히 혼블로워는 뻔한 내용을 상관에게 너무 설교하듯 지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부시는 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온 흑인들과 프랑스군 이야기에 버클랜드가 불편해서 몸을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시는 볼 자격이 없었던 그 비밀 명령서에는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아이티 동부입니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관련된 무언가 과감한 지시 사항들이 담겨있음이 틀림없었다.  산토 도밍고에서는 반란 노예들과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이 서로 패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형식적으로나마 동맹 관계인데도 그 지경이었다.

"우리는 이 일에서 흑인들과 프랑스군은 일단 빼지."  버클랜드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부시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예, 함장님.  하지만 스페인놈들은 안 그럴 겁니다."  혼블로워는 별로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그들은 우리보다는 흑인들을 더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넨 이 공격이 성공할 것 같다는 거지 ?"  버클랜드는 화제를 바꾸려 애를 쓰며 말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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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투쌩과 아이티(생 도밍그 = 산토 도밍고) 노예 반란 사건에 대해서는 아래 link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nasica1.tistory.com/84

(전형적인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HMS Bellerophon 입니다.  2열의 포갑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PS.2  혼블로워가 '수병 100명과 해병들'이라고 말하니까 버클랜드가 '180명?'이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74문짜리 3등급 전열함인 리나운 호의 해병 숫자는 총 80명 정도로 보입니다.  실제로 당시 74문짜리 전열함의 총 승조원 숫자는 대략 500~650명 정도인데, 전열함에 탑승하는 해병의 숫자는 대략 포 1문당 1명 플러스 장교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략 74문짜리 전열함에는 80여명이 탑승하는 것이 맞습니다.

Source : http://www.britishmedals.us/collections/GA/brad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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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4.29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편부터 다 봤는데 전투부터 분위기 까지 묘사력이 장난 아니네요 ㄷㄷ 번역 감사드립니다. 너무 재밌어요
    혼블로워의 작전이 성공할지 기대됩니다

  2. 2/28일 입대 2019.04.29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 여전히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해병의 임무가 수병들의 통제에 있는데 인원수 기준이 수병 몇 명 당 해병 몇 명이 아니라 포 한 문당 한 명이라는게 신기하네요.

    • eithel 2019.04.29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저 시대에서는 포 수=함의 전투력=함의 크기=승조원 수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를 칭할 때 몇톤급, 몇명급이라고 하지 않고 74문짜리 전열함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제7장

만신창이가 된 리나운 호에 열대의 밤이 잦아들었을 때, 리나운 호는 바닷바람에 더해 무역풍이 보내온 대서양의 파도를 간신히 이물로 가를 정도로 느슨하게 돛을 펼친 채 육지로부터 떨어진 곳을 항진하고 있었다.  버클랜드는 그의 새 선임부관, 즉 부시와 함께 앉아 현 상황을 초조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미풍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선실은 마치 오븐처럼 무더웠다.  탁자 위의 해도를 비추기 위해 갑판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2개의 등불이 방 전체를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달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시는 제복 밑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목칼라(stock)가 그의 두꺼운 목을 옥죄었기 때문에 가끔씩 손가락 두개를 칼라에 넣어 잡아당기곤 했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무거운 제복을 벗어던지고 목칼라의 후크를 풀어버리면 아주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몸이 좀 불편한 것 정도는 이 험한 세상에서 불평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습관과 긍지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 자넨 우리가 자메이카 방향으로 항진해야 한다고 보나 ?" 버클랜드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결정의 책임은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해군 규정상 전적으로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그 책임을 나누려고 하는 것에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있나 ?"  버클랜드가 말했다.  "자네 의견은 무엇인가 ?"

부시는 혼블로워가 그에게 묘사해주었던 작전 계획이 기억났지만 그걸 즉각 내놓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현실성 있는 계획인지도 확신이 없었다.   대신 그는 확답을 미루었다.

"자메이카로 향한다면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모양새가 될 겁니다, 함장님."

"그건 확실히 그렇지." 버클랜드는 어쩔 수 없다는 손짓을 하며 동의했다.  "함장님 문제도 있쟎나."

"예, 함장님 문제가 있지요" 부시가 말했다.   (역주 : 버클랜드는 임시 함장이고, 진짜 함장인 소여(Sawyer)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현재 연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리나운 호가 킹스턴(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의 제독에게 굉장한 승전 보고서를 가지고 간다면 과거 일에 대해서 아주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두들겨 맞은 몰골로 패배의 멍에를 쓴 채 절뚝이며 기어들어간다면, 왜 함장이 구속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버클랜드가 함장 대신 비밀 명령을 개봉했으며, 왜 버클랜드 본인이 사마나에 대한 공격 감행을 결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취조가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젊은 혼블로워도 같은 이야기를 내게 하더군." 버클랜드는 심통을 부리며 불평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안 듣는 건데 그랬어."

"그 친구에게 무엇을 물어보셨습니까, 함장님 ?" 부시가 물었다.

"음, 그 친구에게 뭘 딱히 물었다고 할 수는 없네." 버클랜드는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어느날 저녁에 선미갑판에서 함께 긴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그 친구가 그때 당직이었거든."

"저도 기억납니다, 함장님."  부시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우린 이야기를 했지.  그 지긋지긋한 건방진 애송이가 자네가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더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그러다가 안티구아(Antigua)로 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  혼블로워는 우리가 함장에 대한 조사를 받기 전에 뭔가 전과를 쟁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 친구 말로는 그게 내게는 기회가 된다는 거였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어.  굉장한 기회였지.  하지만 자네도 혼블로워가 떠들어대는 것을 듣다보면 내가 당장 내일 정식 함장으로 승진할 거라고 생각하게 될 걸세.  하지만 지금 이 꼴은 ?"

버클랜드의 몸짓을 보니 이제 그가 함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써야 할 보고서에 대해 생각했다.  9명 사망에 20명 부상.  리나운 호의 공격은 처참하게 좌절.  사마나 만은 스페인 사략선들에게 어느 때보다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계속.  그는 자신이 버클랜드의 자리에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똑같은 오명을 뒤집어 쓸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젠 선임부관인데다, 다른 건 몰라도 소여(Sawyer) 함장에게서 지휘권을 박탈하는데 동의한 장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나중에 상관들의 눈에 어떤 쓸만한 점이라도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했다.

"젠장." 버클랜드가 한심한 자기 방어조로 이야기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구.  그 수로에서는 누구라도 좌초될 수 있었어.  하필 키잡이가 전사한 것이 우리 잘못은 아니었쟎아.  그 십자포화 속에서는 누구도 그 만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

"혼블로워는 바다쪽으로의 상륙을 제안했었습니다.  스캇츠맨 만에서요, 함장님."  부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또 혼블로워의 제안인가 ?" 버클랜드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게 그 친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계획인 것 같습니다.  상륙해서 기습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공격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인지도 몰랐지만, 이제서야 부시의 머리 속에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이 날아들 수 있는 상황으로 목조 전함을 몰고 들어간 것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

"글쎄요, 함장님 ?"

부시는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면 두번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새끼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마찬가지였다.  부시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난관에 부딪혔다고 꽁무니를 빼는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번 밀려났다고 얌전히 후퇴하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려운 문제는 작전을 새로 짜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모든 것에 대해 버클랜드에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내친 김에 조심성을 걷어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버렸다.

"알겠네."  버클렌드가 말했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등불빛 때문에 그의 얼굴에 펼쳐지는 그늘이, 그의 내면의 고민을 얼굴에 더 잘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마음을 다잡고 결정을 내렸다.

"그 친구 뭐라고 할지 이야기를 들어보세."

"예, 함장님.  스미스가 현재 당직입니다.  혼블로워가 중간 당직이니, 아마 지금 막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버클랜드는 전함의 모든 사람들처럼 똑같이 지친 상태였다.  아니, 그 누구보다 더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의 상관들이 이렇게 초조하게 번민하며 밤을 새고 있는데 혼블로워가 그의 침상에 편히 몸을 뻗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버클랜드로 하여금 평소와는 달리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각 행동하도록 한 것 같았다.  

"그에게 전갈해서 오라고 하게."  그가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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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암 2019.04.29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 생활의 고뇌를 엿보는거 같아 흥미롭습니다.
    실무자때는 윗자리가 편해보였는데 중간 관리자가 되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 문화, 가치관이 변한 것도 한 이유지만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긴또깡 2019.05.30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 잘하시는듯 ㅎㅎ 재미있네요




더 이상 육풍이 불 때도 아니라고 부시는 생각했다.  버클랜드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언덕 위의 요새에서 날아온 포탄 하나가 주돛대 삭구 고정판(the main chains)에 우지끈하고 박히면서 나무 파편이 비처럼 뿌려졌다.  화재 진압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버클랜드는 뼈아픈 결정을 내렸다.

"스프링 닻줄을 잡아당기게."  그는 명령을 내렸다. "바다를 향하도록 함수를 돌리게."

"예, 함장님."

후퇴 ?  패배.  그 명령이 뜻하는 바가 바로 그거였다.  하지만 패배라는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그 명령을 내린 뒤에도 당장 전함이 처한 위험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았다.  부시는 돌아서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  캡스턴 돌리는 거 중지 !"

톱니멈춤쇠의 철컹거리는 소리가 멎었고 리나운 호는 만 내의 물결치는 진흙투성이 바닷물 위에서 물결을 따라 자유롭게 떠다녔다.  후퇴를 위해서 리나운 호는 그 좁은 공간에서 180도 선회를 한 뒤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좁은 수를 비집고 나와야 했다.  다행히도 그를 위한 준비는 이미 되어 있었다.  닻과 닻줄 구멍 사이에 느슨하게 놓여있던 이물 닻줄을 잡아당기면 전함을 회전시킬 수 있었다. 

"고물 닻줄의 메신저 밧줄을 벗겨내라 !"

명령들은 신속하고 능숙하게 처리되었다.  사실 늘상 하는 뱃사람 일이었에 불과했다.  다만 이 일들을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을 뒤집어 써가며 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이긴 했다.  아직 보트들은 수병들을 잔뜩 태운 채 떠있었는데, 이건 만약 아슬아슬하게 부는 미풍이 그쳐버릴 경우 만신창이가 된 전함을 요새 포대의 사정거리 밖으로 끌고 나가기 위함이었다.  이물 닻줄에 캡스턴이 연결되어 당겨지기 시작하자 리나운 호의 이물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비록 바람은 더위먹어 지친 듯 죽어가고 있었지만 전함의 움직임은 분명히 느껴졌다.  하지만 패배의 충격과 저 빌어먹을 요새 포대에 대해 생각을 하자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캡스턴의 힘으로 전함을 닻 쪽으로 끌고 가는 중에도, 이 전함을 그냥 놀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부시에게 퍼뜩 들었다.  그는 다시 버클랜드에게 경례를 했다.

"만 아래 쪽으로 전함을 끌고 갈까요, 함장님 ?"  (Shall I warp her down the bay, sir?  PS1 참조 : 역주)

버클랜드는 나침함(binnacle) 옆에서 요새 쪽을 멍하니 쳐다보며 서있었다.  이건 신체적인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다만 패배의 충격과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이 이 사내에게서 논리적인 생각을 할 능력을 잠시 동안 빼앗은 것이었다.  하지만 부시의 질문이 다시 그를 현상황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래."  버클랜드가 말했고, 부시는 뭔가 쓸모 있는 할 일이 생겼고 또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섰다.



(원래 cockbill 이라는 단어는 돛 가로활대를 저렇게 비스듬히 매달아두는 것을 말합니다.  저건 하역의 편의 또는 배 전체가 조문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닻에 대해서도 cockbill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닻걸이(cathead)에 닻이 매달리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닻을 던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닻 하나를 이물 좌현에 던질 준비를 하고(be cockbilled) 닻줄도 하나 더 꺼내와야 했다.  로버츠가 전사한 이후 보트들의 지휘를 맡게 된 제임스에게 소리를 쳐서 새로운 진행 상황에 대해 말해주고 이물 아래 편으로 부른 뒤에 닻을 론치 보트에 내려 보내도록 했다.  이게 전체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었다.  이 작업을 마치고는 론치 보트의 선원들이 앞으로 노를 저어갔다.  보트는 뒤에 매달린 거북스러운 닻의 무게 때문에 뒤집힐 듯 기울어 있었고 닻줄이 보트 고물 쪽에서 계속 풀려나가고 있었다.  캡스턴이 단조롭게 돌아가면서 리나운 호는 첫번째 닻에 의지해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고, 그 닻줄이 거의 수직이 될 정도로 접근하자, 이제는 저 앞 멀리에 나가 있는 론치 보트의 제임스에게 신호 깃발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신호를 보내 그의 보트가 가져간 닻을 던지도록 했다.  이어서 그의 보트는 스트림 닻(stream anchor)을 건져내기 위해 되돌아와야 했다.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어진 고물 닻줄은 묶었던 것을 풀어내고 배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야 했다.  캡스턴의 노동력은 결국 하나의 닻줄에서 또 다른 닻줄로 옮겨가야 했던 것이다.  두 척의 커터 보트들에게는 밧줄이 주어져서, 그것으로 저 거대한 전함을 끌어당겨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도록 하는 일에 비록 미약하지만 이런 위급상황에서는 귀중한 힘을 보태도록 했다.

하갑판에서는 혼블로워가 고물 쪽으로 끌고갔던 함포들을 다시 이물 쪽으로 끌어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목판 위로 포가가 우르르 구르며 삐걱거리는 소리는 단조롭게 철컹거리는 캡스턴 소리 위로 전함 전체에서 잘 들렸다.  머리 위에서는 무자비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함체의 목판 사이를 메웠던 역청(pitch)이 그 열기에 녹아 흐물흐물해졌다.  그러는 동안 잔잔히 번들거리는 바다를 가로질러, 가열탄 사정거리 밖으로 전함은 조금씩 조금씩 기다시피 하여 만을 빠져나갔다.  사마나(Samana) 만 아래 쪽에서 마침내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게 되자 수병들은 잠깐 일을 멈추고 미지근하고 냄새나는 물을 고작 반 파인트씩만 마신 뒤, 다시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전사자를 수장하고, 부서진 것을 수리하고, 패배의 실감을 소화하는 것 등을 말이다.  어쩌면, 비록 미치고 아무 힘도 없는 상태였으나 여전히 함장의 악의에 찬 영향력이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하기도 했을 것이다.

 

 

 

PS1.  Warp down 한다는 것은 윗 그림에서 닻줄을 당겨서, (바람이 없거나 역풍인 상황에서도) 닻에 의지하여 배를 이동시키는 방법입니다.   

 

PS2.  원래 여기까지가 7장의 끝입니다.  그런데 정작 여기까지는 8장을 위한 배경 설명이고, 가장 흥미진진하고 또 혼블로워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부분은 8장입니다.   8장 중간 정도까지는 번역하겠습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Warping_(sailing)
http://www.pbenyon.plus.com/B_S_M/Fitting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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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wl이란 그림 왼쪽 상단의 톱니멈춤쇠를 뜻합니다.)




수병들이 몸무게를 실어 캡스턴 손잡이를 밀자 캡스턴이 돌기 시작했고, 캡스턴이 느슨한 닻줄을 감아 올리면서 톱니멈춤쇠(pawl, 무거운 것을 감아올릴 때 역회전을 막기 위한 멈춤쇠 : 역주)가 재빨리 철컹철컹 소리를 냈다.  연결 밧줄(nippers)을 들고 메신저 밧줄(messenger : PS1 참조 : 역주) 옆에 선 소년들은 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러더니 캡스턴이 도는 속도가 줄어들면서 톱니멈춤쇠가 철컹거리는 소리의 간격이 길어졌다.  철컹-철컹-철컹 더 천천히.  이제 장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닻줄이 팽팽해지면서 멈춤목(bitts : 닻줄이 갑자기 풀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닻줄을 감고 풀 때 닻줄이 거치는 튼튼한 말뚝 같은 구조물)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철컹-철컹.  그건 새 닻줄이었으므로 신축성이 있어 약간 늘어날 수도 있었다.  다음 순간 대포알이 날아드는 휭 소리가 났다.  큰 전함 전체의 온갖 곳을 내버려두고 왜 하필 이곳에 대포알이 날아든단 말인가 ?  나무 파편이 날아다니고 수병들이 쓰러졌다.  대포알은 수병들이 잔뜩 모인 한 가운데를 휩쓸고 지나갔다.  햇빛 아래 선명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피가 낭자한 난장판 속에서 혼란에 빠진 수병들이 비틀비틀 물러나는 것은 이해가 갈 만한 일이긴 했다.



(Bitts 입니다.  저는 그냥 멈춤목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각자 위치를 지켜라 !"  스미스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 보이들 !  저 부상병들을 옮겨.  캡스턴 바를 새로 가져와 !  똑바로 해 !"


이런 무시무시한 난장판을 일으킨 대포알은 인간의 뼈와 살에 위력을 다 잃지는 않았다.  대포알은 더 날아가 함포의 포가 옆구리를 박살내고는 배의 측면에 박혔다.  그렇다고 인간의 피로 그 시뻘건 열기가 식은 것도 아니었다.  대포알이 박힌 곳에서 즉각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부시는 손수 물통을 들고는 시뻘건 대포알에 물을 끼얹었다.  연기와 증기가 섞였고 대포알에 끼얹어진 물이 쉭쉭 소리를 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24파운드 짜리 대포알을 물통 하나의 물로 식힐 수는 없었지만, 곧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화재 진압조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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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론 관광객들이 재미로 capstan을 돌리고 있는 장면입니다.)




PS1.  원래 이 부분의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짧고 평이한 단어들로만 조합된 문장입니다.


"The boys with the nippers at the messenger had to hurry to keep pace."


아마 이 문장만 접하신 모든 분들은 이걸 이렇게 해석하시게 될 것입니다.


"손에 뻰치를 들고 사환 옆에 서있던 소년들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이 본문에서처럼 수병들이 캡스턴을 돌려서 닻줄을 감아들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실제로도 이런 식의 해석은 틀린 해석이 됩니다.


이 문장을 제대로 해석하시려면 어떤 단어들은 영어사전을 펼칠 때 간혹 나오는 "해사(海事)"라는 항목, 즉 해양/항해 관련 용어로 사용될 때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위에서 말하는 nipper나 messenger나, 모두 밧줄의 일종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messenger라는 것은 캡스턴에 직접 감기는 좀 더 굵은 밧줄이고, nipper라는 것은 닻줄, 즉 cable을 잠깐 messenger에 묶어 고정시켜주는 짧고 얇은 밧줄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시려면 아래 그림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 생각하실 때 캡스턴이라는 것이 커다란 실패 같은 것이니, 그걸 돌리면 굵고 둥근 캡스턴 기둥 둘레에 닻줄이 감기면서 닻이 들어올려지는 것이라고 상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원래 닻줄은 엄청나게 굵고 긴 물건입니다.  캡스턴 둘레에 몇 바퀴 겹쳐 감는다고 다 감길 정도의 길이가 아니지요.  캡스턴은 어디까지나 닻줄을 감아들이는 회전력을 제공할 뿐, 직접 그 둘레에 닻줄을 감지 않습니다.  캡스턴에 직접 감긴 것은 긴 루프로 된 메신저(messenger)라는 이름의 굵은 밧줄입니다.  캡스턴의 회전에 따라 이 메신저라는 이름의 긴 고리 형태의 밧줄이 따라 돌면서 진짜 닻줄을 끌어올립니다.  메신저가 돌면서 닻줄을 끌어올리려면 메신저에 닻줄을 고정시킬 무언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니퍼(nipper)라는 이름의 짧은 줄입니다.  잽싼 소년들이 니퍼라는 비교적 가는 줄을 들고 있다가 메신저가 회전하며 닻줄을 끌어올리면, 새로 끌어올려진 닻줄과 그에 맞닿은 메신저를 재빨리 니퍼로 단단히 묶어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메신저와 묶여 고정된 닻줄은 메신저에게 질질 끌려가다가 닻줄을 보관하는 맨 바닥 선창, 즉 cable tier로 통하는 햇치 통로(hatchway)에 도달하면 또 다시 재빨리 니퍼를 끊어 메신저와 분리됩니다.  그러니까 닻줄이 메신저와 니퍼로 묶여있는 시간은 닻줄이 닻줄 구멍(hawse hole)을 통해 들어왔다가 햇치 통로로 내려가기 바로 직전까지인 수m~십여m에 불과했습니다.  아마도 니퍼는 이렇게 재빨리 절단되어야 했기 때문에 니퍼(nipper, 절단기라는 뜻)라고 불렸나 봅니다.  


소설 본문에서 수병들이 캡스턴을 힘차고 빠르게 돌려서 닻줄이 감기는 속도가 빨랐으니, 닻줄과 메신저를 니퍼로 묶었다가 다시 끊어내야 하는 속도도 덩달아 빨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들이 바삐 움직여야 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닻줄을 감는 작업을 할 때 가장 힘들고 고된 작업을 하는 사람은 니퍼를 손에 든 소년들도 아니었고, 캡스턴 바에 매달려 캡스턴을 열심히 돌리는 중노동을 하는 수병들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배의 맨 바닥 선창에서 닻줄을 가지런히 정리해야 했던 또 다른 일단의 수병들이었지요.  그들은 불빛도 거의 없는 깜깜한데다 쥐떼까지 득실거리는 cable tier에서 바닷물에 흠뻑 젖은 무겁고 굵은 닻줄을 그야말로 근육의 힘으로 움직여 정리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 cable tier라는 곳은 선창 중에서도 가장 냄새나고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보통 닻을 던지는 곳은 항구였는데, 항구의 물 밑 바닥은 온갖 오물, 그러니까 주로 인간의 배설물로 인해 매우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푹 절여진 채로 있다가 끌어올려진 닻줄에는 역시 온갖 오물이 잔뜩 묻은 채였고, 이런 닻줄은 제대로 씻을 기회도 없이 그대로 cable tier에 보관되었습니다.  거기서 뚝뚝 떨어진 오물 섞인 바닷물은 그대로 흘러내려 선창에 고였고, 그것이 그대로 bilge water, 즉 선창 오물이 되어 온 배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Source : The Sailor's Word-Book: An Alphabetical Digest of Nautical Terms by William Henry Smyth

The history of a ship, from her cradle to her grave by Ben (grandpa, pseud.)

https://en.wikipedia.org/wiki/Capstan_(nautical)

http://nautarch.tamu.edu/model/report2/

https://www.tandfonline.com/doi/pdf/10.1080/00253359.2013.76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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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H... 2019.03.25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

  2. Jesuita 2019.03.25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을 할 때 배경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기본을 다시 절감하게 됩니다. 해양관련 서적은 엄두가 안나네요.
    잘보고 있습니다. 혼블로워의 각성이 언제쯤 이루어질지 기대가 됩니다.

  3. ㅇㅇ 2019.03.25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본, '포도탄(포도 찌꺼기로 만든 포탄)'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오역이 생각나는 글이네요ㅎㅎ
    나시카님 지식에는 항상 감탄만 나옵니다

  4. 푸른 2019.03.25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의 중요성을 세삼 느끼고 가네요ㅋㅋ

  5. 수비니우스 2019.03.25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보통 닻을 던지는 곳은 항구였는데, 항구의 물 밑 바닥은 온갖 오물, 그러니까 주로 인간의 배설물로 인해 매우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푹 절여진 채로 있다가 끌어올려진 닻줄에는 역시 온갖 오물이 잔뜩 묻은 채였고, 이런 닻줄은 제대로 씻을 기회도 없이 그대로 cable tier에 보관되었습니다. 거기서 뚝뚝 떨어진 오물 섞인 바닷물은 그대로 흘러내려 선창에 고였고, 그것이 그대로 bilge water, 즉 선창 오물이 되어 온 배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

    ㅓㅜㅑ.... 그러고보니 그렇네요... 할말을 잃었습니다.

  6. 지나가던 2019.03.28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닻을 올릴려면 먼저 메신저와 닻줄을 니퍼로 연결한 뒤 캡스톤을 돌리면서 메신저왼 닻줄이 만나고 떨어지는 곳에서 니퍼를 계속 풀고 묶고를 반복한건가요?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겠네요

  7. TheK의 추천영화 2019.03.28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나이 어린, 계급 낮은 수병들 고생 많았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꾹!~이요.

  8. Franken 2019.03.28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밑의 단락 읽어보니... 이 당시 해군 선원을 왜 기피했는지 정말 알겠네요.

저로 하여금 이 블로그를 연재하게 만든 것은 세 권(..은 아니고 세 세트)의 소설입니다.  모두 영국 소설이고, 제 블로그에 자주 출입하시는 분들은 이미 다들 아시는, Sharpe, Hornblower, 그리고 Aubrey-Maturin 시리즈입니다.  이 세 종류의 소설은 모두 영국인이 쓴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있지요.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20대 정도의 하급 장교(Sharpe의 경우는 일병 계급부터 시작합니다)에서 시작하여, 노년에 제독(역시 출신 성분이 미천한 Sharpe의 경우는 신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중령에서 스톱)까지 이르게 되지요.  이 장편 시리즈물의 주인공들이 도중에 포로가 되기도 하고, 함정에 빠져 계급을 박탈당하기도 하는 등 갖은 난관을 겪다가, 결국 이겨내고 승진을 거듭하여 젊은 시절 꿈꾸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계급만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천박한 앵글로색슨들은 '돈과 명예'를 다 가지려는 경향이 있지요.  아무리 주인공이 높은 직위에 오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고 해도, 가난하다고 하면 독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주인공들은 결국 경제적으로도 다들 어느 정도 한몫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고상한 배달민족의 후예인데도, 그런 속물주의에 묘하게 끌립니다.  독자로서의 '저'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의 저도 명예나 지위, 성취감 같은 것들보다 '돈'이 제일 소중한 것도 사실이고요.  


오늘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하는 두가지, 즉 먹을 것과 돈 중 후자에 대한 것입니다.  저 3 종류 소설 주인공들의 재테크 관련 장면 몇가지를 모아보았습니다.


먼저, Sharpe입니다. 런던 고아원 출신의 비천한 신분인 리처드 샤프는 사병으로서 인도에서 복무하다가, 영국의 마이소르 왕국 침공 때 티푸 술탄을 살해하고 그의 몸에서 각종 보석류를 훔쳐서 떼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귀족 유부녀와의 비극적인 동거 생활 끝에 전재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 장교로 복무하지요.  그러다 스페인에서 철수하는 프랑스군 짐마차를 비토리아 전투에서 약탈하면서 다시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역시 비극적인 결혼 생활이 파탄나면서 땡전 한푼 건지지 못하고 다시 빈털터리가 됩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에서 아름답고 착한 과부를 만나, 그녀의 수익도 안 나는 농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가 시작되고, 이 덕분에 우리는 샤프가 평소에 얼마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지 엿볼 수 있게 됩니다.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nrwell (배경 : 1815년 벨기에) -----------------------------------


(샤프는 네덜란드 왕자의 사령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네덜란드 왕자의 정부(情婦)인 폴레뜨와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샤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루실에게 무척 힘든 상황이야.  내가 자기 동포들인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


"그럼 왜 싸우나요 ?"  폴레뜨는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내 무보직 보수(half-pay) 때문이지.  내가 군에 합류하는 걸 거부했다면, 군은 내 연금을 끊어버렸을텐데, 현재로서는 그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수입원이거든.  그래서 왕자가 날 소환했을 때, 난 그에 응해야 했지."


"하지만 오기 싫었단 말인가요 ?"  폴레뜨는 약삭빠르게 물었다.


"꼭 오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건 사실이었다.  비록 그날 아침에, 그는 프랑스군을 정찰하면서 자기가 이런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며칠 동안은 루실의 불행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다시 병정 노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령님은 그저 돈을 위해 싸우시는군요."  폴레뜨는 마치 그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는 듯, 지겹다는 투로 말했다.  "왕자님은 댁이 중령 노릇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주시나요 ?"


"일당이 1파운드 하고도 3실링 10펜스지."  그것이 샤프가 기병 연대의 명예 중령 계급에 대한 보수였는데, 이 금액은 샤프가 일생 동안 번 것 중 최고의 일당이었다.  이 금액 중 절반은 장교 식당의 식대와 사령부의 하인들 급료로 공제되버렸지만, 그래도 샤프는 아주 부자처럼 느꼈다.  어쨌든 그가 무보직 중위로서 받던 2실링 9펜스의 일당보다는 훨씬 괜찮은 보수였다.  원래 그가 군을 떠날 때의 계급은 소령이었지만, 기마 근위대(Horse Guards)의 서기들은 그의 소령 계급은 그저 명예 계급일 뿐 연대 계급이 아니므로, 그는 중위의 연금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 전쟁은 샤프에게 있어서 뜻밖의 횡재였고, 사실 그건 영불 양군의 수많은 무보직 장교들에게 다 해당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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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가 평상시 중위의 무보직 보수로 받던 2실링 9펜스를 요즘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만5천원 정도됩니다.  그야말로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순으로 가장 마지막 편이라고 할 수 있는 Sharpe's Ransom 편을 읽어보면, 프랑스에서 농부로 정착한 샤프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농장에서 수익이 나건 말건 그래도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연금(half-pay)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해서, 좀더 고전적인 작품인 Hornblower 시리즈의 혼블로워는, 비록 가난한 30대를 보냈지만 중년에 이르러 금전운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적의 집중 공격에 배와 선원들을 잃고 항복하여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교묘하게 탈출한 것이 뜻밖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어 인기가 급등한 것이 계기가 되지요.





(Hornblower 시리즈 중 'Happy Return' 편은 1951년 그레고리 펙 주연의 Captain Horatio Hornblower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Flying Colours by C. S. Forester (배경 : 1811년 영국) -------------------


(혼블로워가 탈출 후 섭정공에게서 직접 Bath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들 때, 목에 걸었던 커다란 별 장식이 그의 가슴에 쿵하고 와 닿았다.


"축하하네, 대령." 섭정공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해군이고, 해군에는 대령(Colonel)이라는 계급이 없습니다: 역주)


혼블로워는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보고, 혼블로워는 섭정공이 그의 계급에 대해 단순히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하 ?" 그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마치 뭘 묻듯이 말했다.


공작이 설명해주었다. "전하께서는 자네를 해병 대령(Colonel of Marines)으로 임명하시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네."


해병 대령은 매년 연봉으로 1200 파운드를 받게 되는데, 그에 따른 의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즉, 그 계급은 뭔가 공을 세운 함장들에게 상으로서 주어지는 신분으로서, 그 효력은 그가 제독으로 승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미 그에게는 나포 포상금으로 6천 파운드가 있었다.  이제 보직을 못 받는 상황이 되더라도, 최소한 함장의 무보직 급여(half-pay)에 덧붙여 1년에 1200 파운드의 수입이 있게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 인생 최초로, 금전적인 안정을 얻게 된 셈이었다.  이제 그는 리본과 별 장식으로 된 작위도 받았다.  그는 사실 그가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룬 것이었다.


"이 불쌍한 친구는 정신이 아찔한가 보구만."  섭정공은 기뻐하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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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서 샤프가 받는 중위의 무보직 보수를 1년 내내 받는다고 해도 불과 50파운드 정도인데, 혼블로워는 매년 1200 파운드(현재 원화로 약 3억원)를 받게 되네요.  저 정도면 정말 직장 생활 할만 하겠네요.


하지만 혼블로워의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니까, 모두가 이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Aubrey-Maturin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는 30대의 젊은 시절부터 해군의 특성을 살려 나포 포상금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읍니다.  살제로 한 개인이 이렇게 많은 나포 포상금을 얻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잭 오브리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어떻게 굴렸을까요 ?  은행 ?  채권 ?  주식 투자 ?  부동산 ?  한마디로 말하면 시작은 부동산, 즉 살 집과 주변 텃밭 같은 것을 사들였고, 이어서 말들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차고에 포르쉐와 아우디를 들여놓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시절에는 은행이나 주식 시장이 없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란은행, 즉 Bank of England는 1694년에 영국 해군의 확장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설립된 바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잡다한 은행들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주식시장도 성행했습니다.  18세기의 유명한 '남해 거품 사건'이 이미 18세기에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잭 오브리는 그런 금융 재테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잭 오브리는 생애 최악의 항해를 하게 되지요.)




Desolation Island  by Patrick O'Brian (배경: 1811년 영국) ------------------------------------


한 반 마일 쯤 걷고 난 뒤, 잭이 말했다.  "난 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무엇보다도 그는 씨티(The City, 런던 내 당시 유명한 금융사들이 몰려 있던 구역을 일컫는 이름)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네.  그는 펀드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있고, 또 한번은 내게 은행주에 좀 투자를 하면 그 달이 지나기 전에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기도 했지.  그리고 정말로, 미스터 퍼시벌이 성명을 발표했고, 덕택에 몇몇 사람들은 수천 파운드의 순이익을 올렸어.  하지만 난 그처럼 단순한 사람은 아니라네, 스티븐.   주식이나 유가증권은 도박이야.  그리고 난 내가 잘 이해하는 것들에만 집중한다네.  배나 말 같은 것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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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금융 재테크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돈을 적극적으로 불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돈을 날릴 걱정은 없지요.  원래 돈이 많을 수록 돈을 불리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지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아지지 않습니까 ?  하지만 불행하게도 잭 오브리는 그런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나중에 일종의 사기꾼 벤처 사업가에게 거액을 투자하여 그야말로 모조리 말아먹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느라 육지 사정에 어두운 뱃사람들, 특히 나포 포상금으로 부자가 된 함장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육지 상어(land shark)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잭 오브리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손실을 만회하려는 초조감에, 더 큰 불행을 겪게 됩니다.  잭 오브리의 실존 모델인 코크레인 경이 겪은 실제 사건인 1814년 런던 주식시장 조작 사건에 휘말려, 잭 오브리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바다에서 한몫을 잡아 재기하지요. 


하지만 이제 비싼 수업료를 내고 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운 잭 오브리는 무척 조심스러운 투자자가 됩니다.  주식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안전자산인 국공채 정도만 손을 대지요.





The Thirteen Gun Salute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태평양 HMS Dianne 함상) ------------


하지만 선원들 중 대부분은, 특히 2배 및 2.5배 배당을 받는 선원들은 오브리 함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오브리 함장은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매우 훌륭한 조언을 주는 편이었다.  그가 주창하는 것은 근검절약과 조심스러운 투자 그리고 기대 수익률을 작게 가져가는 것이었고, 5% 해군 채권이 그가 괜찮다고 인정하는 최대 한도였다. 


뱃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브리 함장이 비록 '행운의 잭 오브리'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나포 실적이 좋아서, 가장 최근의 깜짝 놀랄 정도의 나포물 전에도, 최소한 3번 정도 큰 돈을 벌었지만, 일단 뭍에 오르면 운이 영 좋지 않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때 그는 경주마들을 마굿간에 채워두고 브룩스(Brook's) 클럽에서 눈에 띄는 생활을 하는 등 호사를 누렸었다.  또 한때는 남의 말에 잘 넘어가는 팔랑귀여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벤처 사업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는 그의 투자는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금전적 조언을 주는데 있어 그보다 더 적임자는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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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위에서 말한 5% 해군 채권 (Navy five per cent)라는 것은 대체 어떤 물건이었을까요 ?  Consol이라고 불렸던 정부 통합 국채(Consolidated Annuities)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증권 편에서 소개드린 바 있었습니다.  이건 당시 다양한 금리로 나오던 정부의 채권을 대략 3% 정도의 이율로 통합하여 발행하던 것이지요.  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 즉 1751년부터 1920년대까지 존재하던 채권이라서, 혼블로워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학 작품에서도 다루어지던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5% 해군 채권이라는 것은 상당히 단기간, 즉 1810년부터 1821년 사이에만 발행되었던 것입니다.  





(그 유명한 Navy Five per cent 채권입니다.  1천 파운드에 대한 이자로 5실링을 헤스터 부인에게 지불한다는 증서인데, 왜 5% 이자에 고작 5실링만 주는지는 이해가 안되는데요 ??  매주 지급되는 이자라고 해도 1파운드 정도씩은 이자로 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  아시는 분은 댓글 좀 굽신굽신)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전비 마련 때문에, 영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본위제의 기본 규칙, 즉 영란은행에서 발행된 지폐를 영란은행에 가져가면 그 액면가만큼의 금으로 태환해준다는 것도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  이 불태환 조치는 1797년부터 1821년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유럽의 진짜 금본위제는 이 이후라고들 하지요.)  이 일시적인 비상 조치가 끝난 시기와, 5% 해군 채권 발행이 종료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보면,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도 경제가 제 궤도에 오르는데는 약 6년 정도가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영국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빚을 잘 갚았기 떄문에 전쟁 중에도 세금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도 전쟁에 돈을 댈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도 채권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특히 혁명 때는 아시냐(Assignat) 지폐로 파멸적인 사고를 친 바 있었으므로 국민들이 국채 따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폴레옹은 오로지 세금과 전쟁 배상금만으로 전시 금융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도 따로 다룰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당시 영국 수상인 윌리엄 피트가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것에 대해 당시 나왔던 풍자 만화입니다.  이 만화에서 처음으로 나온 "Old Lady of Threadneedle Street"라는 영란은행에 대한 별명은 지금까지도 통용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영국 정부의 이런 재정난의 주범은 바로 영국의 로열 네이비, 해군이었습니다.  육군도 돈을 많이 먹는 괴물이지만,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그러므로 전쟁 수행 능력이 바로 해군에 집중되어 있던 영국은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금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영국 정부는,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폐를 찍어댈 수도 없었으므로, 궁여치책으로 해군 장교 및 공무원, 해군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에게 지폐 대신 연 금리 5% 짜리 채권으로 급료와 물품 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받는 사람들로서도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표적 안전 투자처였던 Consol의 금리가 (이 역시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일시적으로 4~5%로 뛴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만) 3%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영국 정부나 다름없는 영국 해군에서 발행한 5% 채권이라면 아주 짭짤한 이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던 일반인들도 이 채권을 사기 시작했고, 이것이 당시에 아주 인기있는 재태크 수단이 되었습니다.   가령 세계일주로 유명한 영국 쿡 선장의 부하였던 윌리엄 베일리(William Bayly)라는 사람도 유서에서 자기 유산의 일부를 5% 해군 채권(Navy five per cent)으로 남긴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 일년에 어느 정도 수입이 있으면 대략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또, 당시 중산층이라고 하면 생업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계급을 뜻했는데, 이런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대략 어느 정도의 목돈이 있어야 했을까요 ?





(저 책 표지의 광고 카피가 명작이군요.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이 정말 부럽소.  굉장한 재미가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오 !')




The Ionian Mission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HMS Surprise 함상) ------------


(선상에서 장교들 간에 시 낭송 경쟁이 벌어집니다.  드라이버 중위가 여자의 지참금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시를 낭송합니다.)


"...

과도한 부를 갈망하지 말라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증명된 것은

품위있는 충족함과 사랑이니까"


"정말 훌륭하군 !" 사무장이 그의 투표 용지를 적으며 외쳤다.  "하지만 중위님이 인식하는 품위있는 충족함이란 대략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  그러니까, 그저 월급 뿐인 사람에게 말입니다 ?"


드라이버 중위는 웃고 숨을 고르더니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 여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이 1년 이자 수익이 200 파운드 정도 나올 정도의 금액 정도면 족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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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위와 같이, 약 200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5천만원이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 시골의 대표적인 신사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국교회 신부의 연 수입이 저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라면 중산층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군요.  5% 해군 채권은 드물게 괜찮은 투자처였으니 예외로 치고, 당시의 대표적인 안전 투자처인 Consol의 금리가 3%였으니까, 연 200 파운드가 나오려면 대략 6700 파운드의 원금이 있어야 했습니다.  현재 원화로는 대략 16억원 정도네요.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는 당시 영국 국채 금리보다 더 낮은 2.4% 정도입니다만, 당시 영국은 물가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플레, 특히 부동산 인플레가 만만치 않아 국채 금리로만 먹고 산다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10년 국채 금리 수익률 추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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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8.2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ㅎㅎ 다음블로그에서 정주행을 한번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나씩 리뉴얼되어 올라오는 글 읽는것도 재밌네요.

  2. 뱀장수 2018.08.23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는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부디 이 글에는 이상한 댓글들이 안달렸으면 좋겠네요

  3. reinhardt100 2018.08.25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부통합국채'와 '5% 해군 채권'의 성격은 꽤 다릅니다. 전자는 일종의 현대의 'mortgage'개념의 시초지만 후자는 '군용수표, 일종의 군표' 개념이었으니까요.

    유독 당시 영국에서 '부동산저당증권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닌 mortgage개념'이 발달한 이유가 영국의 화폐발권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정량의 지급준비용 정금만 있으면 아무 민간은행이라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지급준비용 정금과 연계하여 지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장은 이렇게 해서 통화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지만 태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거였죠. 이 때문에 영국정부는 각 민간은행과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발행한 지폐(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종의 법정화폐로써보다는 태환권리를 표창한 유가증권의 일종), 채권, 담보물권증서, 수표, 외국채등에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것들을 매입 혹은 저당권을 설정한 후,'정부보증을 통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통합국채로써 대금을 지급해줍니다. 이를 수령한 거래 객체들은 런던의 시티 같은데서 이를 거래하였고, 이 덕분에 금융시장의 안정 유지에도 한 몫 했습니다. 흔히, 순수자본주의 시절에는 국가가 자유방임적 자세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금융분야에서는 이런 개입주의적 자세를 자주 취했습니다. 결코 약육강식 적자생존식의 막장은 아니었죠. 복지체계가 미흡해서 크게 문제가 된 겁니다.

    '5% 해군 채권'의 경우, 일종의 군용수표적 성격이 강했고, 사실상 이는 수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채권'의 형식을 빌어서 발행한 '실질적인 유가증권의 일종으로써의 수표'라고 봐야 합니다. 이게 왜 수표냐면 당시에도 채권발행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준거법률에 의해서 발행해야 하는데 정부통합국채와 이 5% 해군 채권은 준거법률이 전혀 달랐습니다. 후자는 해군관계법령에 의해 발행했으니까요. 즉, 물자구매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종의 가상계좌를 만들어 놓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유가증권을 발행, 거래 객체에게 유포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유가증권을 모집하여 영란은행이나 다른 민간금융기관에서 대금을 상환받을 수 있게 하고 유가증권자체는 소각처리했습니다. 채권은 원금상환을 하지 않아도 이자지급을 하면 계속 거래 가능했지만, 이 5% 해군 채권이란 물건은 일정 거래기간 내에 반드시 유가증권을 모집하는 해군측에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표로써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군표가 가장 많이 활용된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일본이 가장 많이 활용했습니다. 전시재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지급준비용 정금이 필요했지만 이를 보유하지 못했던 일본은 각 점령지별로 초기에는 조선은행권, 만주국은행권, 대만은행권, 남양청의 남양개발금고권 등의 식민지 은행권을 살포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현지화폐단위에 근거한 군표를 살포해서 점령지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답이 안 나와서 아예 화북교통은행권, 중앙연합준비은행권, 몽강은행권등 중앙은행을 발족시켜서 현지 화폐를 직접 발권 및 유포시켜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걸 본 서구 연합국과 중화민국이 빡이 칠 대로 쳐서 전후 처리에서 가장 중시한 것 중 하나가 '안정적인 국제금융 및 결제 시스템의 확립'이었고 이 때문에 IMF가 발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비를 군표로 지불하는 것을 꽤나 엄격히 제한시켰고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 시기부터는 막 개념이 도입된 신용카드에 의해 지불하도록 권장했습니다. VISA카드가 사실상 세계 공통이 된 게 이 시기 미군의 전비조달을 위해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4. eithel 2018.08.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저 5 schillings는 이자로 5실링을 지급한다는게 아니라 5실링 주화로 1천파운드를 납입했다는 의미같네요. 다른 네이비 파이브 퍼 센트들을 보니 금이나 주화로 납부한걸 기입해뒀더라구요.

  5. ㅁㄴㅇㄹ 2018.08.3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걸 보니 당시 청나라 공행 총수?가 영국을 믿고 계속 영국 채권에 투자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6. 청명 2019.05.01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여 년 전부뎌 가끔 봤는데 ᆢ여름에 프랑스
    여행가느라 처음부터 훑어 보는 중입니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어제 김정은의 방명록에서 숫자 7을 쓴 방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7을 쓸 때 가로 획을 긋지 않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대부분 긋는다고 합니다.  이는 1이라는 숫자 윗머리에 serif를 넣느냐 안 넣느냐의 차이 때문에 1과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또 같은 영미권이라도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긋는 쪽이 더 많다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은 어느 나라냐의 구분없이 섞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페친께서는 미해군에서도 7에 가로획을 긋도록 교육받는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래도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저렇게 쓰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지요.  아무튼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더니 저런 글씨체를 배워온 모양입니다.  부디 저것 말고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핵폭탄보다는 철도가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배워왔기를 빕니다.  




저는 김정은 글씨를 보자마자 전에 읽었던 아래 소설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로 저 7자를 쓰는 방식 때문에 영국 항구에 침투한 프랑스 해군의 존재를 간파하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인 혼블로워 함장은 거의 셜록 홈즈 수준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은 스스로 '7이라는 숫자에 그어진 가로획 하나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스스로 망설이긴 합니다.  그 부분만 짧게 보시지요.  



Hornblower and the Atropos by C.S. Forester  (배경 : 1806년 영국 다운즈(Downs) 군항 내 영국 소형 슬룹함 아트로포스(HMS Atropos) 함상)


혼블로워는 존스 부관이 함내 재정비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돌아 섰다.  그는 추위로 굳어버린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갑판을 좀 걷기 시작했다.  그의 회중시계가 아직 손에 쥐여 있는 것은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그저 깜빡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슬룹(sloop) 함의 옆을 걷다가 멈추고 검은 바다 위를 쳐다 보았다.  배 옆으로 떠내려가는 뭔가가 있었다.  뭔가 길고 검은 물체였다.  혼블로워가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물체는 배의 주돛대 고정판(main chains) 밑 부분에 한쪽 끝을 퉁하고 부딪혔고, 그가 보는 동안 조수의 흐름에 따라 엄숙하게 빙그르 돌아 그가 서있는 곳으로 떠내려 왔다.  그건 노였다.  궁금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선박들로 가득찬 기항지에 노 하나가 떠다니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


"이봐, 조타수 !" 혼블로워가 외쳤다.  "밧줄을 들고 뒷돛대 고정판(mizen chains)으로 내려가서 저 노를 건져와 !"  (역주 : quartermaster는 조타수로서 원래 키를 맡습니다만, 기항지에서는 현문(gangway, 앞갑판과 뒷갑판 사이의 연결통로)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해양 분야에 대한 C.S. Forester의 웅대한 지식에 의문을 갖지 마셔야 합니다.)





(Main chains에 수심 측정원이 올라탄 모습입니다.  Main chains는 쇠사슬뭉치가 아니라 shroud, 즉 주돛대(main mast)를 뱃전에 묶는 밧줄들인 지삭(支索)을 고정시키는 판을 말합니다.  뒷돛대가 mizen mast니까 뒷돛대를 묶는 지삭을 위한 고정판은 mizen chains입니다.)




그건 그냥 노였다.  조타수가 들고 있는 노를 그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노 허리의 가죽 멈치(leather button)은 꽤 닳은 상태였다.  절대 새 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죽이 완전히 물에 푹 젖은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아, 바닷물 속에 며칠 동안 있었다기 보다는 분명히 그냥 몇 분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노 자루(loom)에는 27이라는 번호가 달군 쇠로 낙인 찍혀 있었는데, 그 부분이 혼블로워로 하여금 더 자세히 검사해보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7이라는 숫자에 가로획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들은 7자를 쓸 때 가로획을 긋지 않았다.  유럽 대륙 사람들은 모두들 그었다.  바다에는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러시아인, 프로이센인 등이 있었고, 영국의 동맹국이거나 중립국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인이나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의 적국이었고 7을 그런 식으로 썼다.





(앵글로색슨은 기본적으로 해양전투민족이라 어휘에도 해양 관련 단어가 복잡하게 많습니다.  가령 button이나 loom에 대해 한영 사전에는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button 대신 collar라는 단어를 썼는데, button이나 collar는 노 중간에 두툼하게 묶어놓는 것으로서, 노가 뱃전의 노걸이를 넘어 빠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멈치라는 단어를 그냥 제 맘대로 만들어 썼습니다.)




게다가 뭔가 총소리 같은 것이 분명히 들린 것 같았다.  떠다니는 노 한 자루와 머스켓 총성 한 방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만약 뭔가 인과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  혼블로워는 아직도 회중시계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총성은 - 만약 그게 정말 총성이었다면 - 그가 '쉬어' 명령을 내리기 직전, 그러니까 7~8분 전에 들렸다.  조수는 약 2노트 (1노트는 1.85 km/h)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만약 그 총성으로 인해 노가 바다에 떨어진 것이라면 그 총격은 조수 흐름 상류 쪽 1/4 마일 (1마일은 1.6km) 거리에서 일어난 것이었고, 그건 배에서 쓰는 단위로 두 케이블 길이에 불과했다.  아직도 노를 들고 있던 조타수는 뭐 때문에 저러시나 하는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 보았고, 연습 중이던 수병들을 대기 상태로 둔 채 존스 부관이 옆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블로워는 이 사소한 해프닝에 대해 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국왕의 장교였고, 바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는 자기 자신과 내적 토론을 하며 주저했다.  안개가 끔찍하게 짙었다.  조사를 위해 보트를 보낸다면 아마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혼블로워 자신은 안개가 가득한 항구에서 보트로 길을 찾아가는 경험이 많았다.  그러니 자신이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안개 속에서 길을 찾다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부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꾸물거리며 돌아오지 않는 보트를 함상에서 기다리며 안절부절하는 것보다는 그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았다.


"미스터 존스," 그는 말했다. "내 긱(gig) 보트를 내리게."  (역주 : 군함에 실린 작은 보트를 gig이라고 부릅니다.)


"예, 함장님."  존스의 대답 속에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혼블로워는 나침반대(binnacle)로 걸어가 선수 방향을 주의깊게 읽었다.  그렇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방향을 읽은 것은 그의 안전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권위가 길을 제대로 찾는 것에 달려 있기 떄문이었다.  북동동 방향이었다.  배는 조수 방향으로 함수를 향한 채 닻을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노가 그 쪽 방향에서 떠내려 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긱 보트에 좋은 나침반을 실어주게, 미스터 존스."

"예, 함장님."


혼블로워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안개 속 어딘가에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건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모양새였다.  (역주 : strain at a gnat and swallow a camel, 마태복음 23장 24절)  만약 그가 들은 것이 정말 머스켓 총성이었다면 적대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최소한 병력 파견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긱 보트 승조원에게 권총과 검(cutlass)을 지급하게, 미스터 존스."

"예, 함장님." 존스는 이제 뭐가 더 놀랍겠냐는 듯 대답했다.


혼블로워는 보트로 내려가기 위해 돌아섰다.


"이제부터 시간을 잴 걸세, 미스터 존스.  저 탑세일(역주 : tops'l. 돛대 맨 꼭대기에 펼쳐지는 돛) 가로대를 지금부터 30분 안에 걷어들이도록 하게.  그 전에 돌아올테니까 말일세."

"예, 함장님."



(수병용 군도인 cutlas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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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슬링 2018.04.28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차이가 있었군요...

  2. eithel 2018.04.28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본에는 아에 저 숫자 7 얘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원서로 다시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3. reinhardt100 2018.04.2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미국은 모르지만 영국만 하더라도 브렉시트 이전까지는 유럽경제공동체-유럽공동체-유럽연합에 계속 소속되어 있다보니 공문서에 7을 더 이상 안 긋고 쓰기에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연합의 공문서나 각종 서류들은 모두 프랑스 기준을 따라야 하니까요. 브렉시트와 상관없이 이거는 이제 쓰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4. Spitfire 2018.04.29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브라질 출장 갔을 때 영어가 안통해서 사설통역을 구했는데, 영수증의 7을 저렇게 적어줘서 회계팀에서 여비처리 안해줄 뻔한 기억이 나네요..
    한편 서양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쓴 7이 신기한가 봅니다. ㄷ을 90도로 꺾어 세워놓은 모습으로 보인다네요~

  5. 카를대공 2018.04.29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남북 정상회담을 KBS 방송을 통해 보고 있었는데 패널분이 저 얘기를 직접 언급하시더군요.

    그러고서 뒤에는 짤막하게 본인도 유럽 유학을 해서 안다는 멘트를 붙이면서요.

    누구나 명예욕은 있나 봅니다 ㅎㅎ

  6. 베타니 2018.04.3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혼블로워 이야기가 저기서 딱 끝나버리다니!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드라마 끊는 것보다 더 궁금하게 끊으셨습니다 nasica님

  7. 빈배 2018.04.30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미국에 있을 때 안 그었더니 1로 보더군요. 그담부턴 그냥 맘 편히 긋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