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2 06:30



제7장

만신창이가 된 리나운 호에 열대의 밤이 잦아들었을 때, 리나운 호는 바닷바람에 더해 무역풍이 보내온 대서양의 파도를 간신히 이물로 가를 정도로 느슨하게 돛을 펼친 채 육지로부터 떨어진 곳을 항진하고 있었다.  버클랜드는 그의 새 선임부관, 즉 부시와 함께 앉아 현 상황을 초조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미풍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선실은 마치 오븐처럼 무더웠다.  탁자 위의 해도를 비추기 위해 갑판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2개의 등불이 방 전체를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달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시는 제복 밑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목칼라(stock)가 그의 두꺼운 목을 옥죄었기 때문에 가끔씩 손가락 두개를 칼라에 넣어 잡아당기곤 했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무거운 제복을 벗어던지고 목칼라의 후크를 풀어버리면 아주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래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몸이 좀 불편한 것 정도는 이 험한 세상에서 불평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었다.  습관과 긍지가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 자넨 우리가 자메이카 방향으로 항진해야 한다고 보나 ?" 버클랜드가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부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결정의 책임은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해군 규정상 전적으로 버클랜드의 것이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그 책임을 나누려고 하는 것에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있나 ?"  버클랜드가 말했다.  "자네 의견은 무엇인가 ?"

부시는 혼블로워가 그에게 묘사해주었던 작전 계획이 기억났지만 그걸 즉각 내놓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 그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현실성 있는 계획인지도 확신이 없었다.   대신 그는 확답을 미루었다.

"자메이카로 향한다면 꼬리를 말아쥐고 후퇴하는 모양새가 될 겁니다, 함장님."

"그건 확실히 그렇지." 버클랜드는 어쩔 수 없다는 손짓을 하며 동의했다.  "함장님 문제도 있쟎나."

"예, 함장님 문제가 있지요" 부시가 말했다.   (역주 : 버클랜드는 임시 함장이고, 진짜 함장인 소여(Sawyer)는 정신착란을 일으켜 현재 연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리나운 호가 킹스턴(Kingston, 자메이카의 수도)의 제독에게 굉장한 승전 보고서를 가지고 간다면 과거 일에 대해서 아주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두들겨 맞은 몰골로 패배의 멍에를 쓴 채 절뚝이며 기어들어간다면, 왜 함장이 구속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버클랜드가 함장 대신 비밀 명령을 개봉했으며, 왜 버클랜드 본인이 사마나에 대한 공격 감행을 결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취조가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젊은 혼블로워도 같은 이야기를 내게 하더군." 버클랜드는 심통을 부리며 불평했다.  "그 친구 이야기를 안 듣는 건데 그랬어."

"그 친구에게 무엇을 물어보셨습니까, 함장님 ?" 부시가 물었다.

"음, 그 친구에게 뭘 딱히 물었다고 할 수는 없네." 버클랜드는 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냥 어느날 저녁에 선미갑판에서 함께 긴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그 친구가 그때 당직이었거든."

"저도 기억납니다, 함장님."  부시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우린 이야기를 했지.  그 지긋지긋한 건방진 애송이가 자네가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더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하지만 그러다가 안티구아(Antigua)로 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  혼블로워는 우리가 함장에 대한 조사를 받기 전에 뭔가 전과를 쟁취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더군.  그 친구 말로는 그게 내게는 기회가 된다는 거였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어.  굉장한 기회였지.  하지만 자네도 혼블로워가 떠들어대는 것을 듣다보면 내가 당장 내일 정식 함장으로 승진할 거라고 생각하게 될 걸세.  하지만 지금 이 꼴은 ?"

버클랜드의 몸짓을 보니 이제 그가 함장으로 승진할 기회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시는 버클랜드가 써야 할 보고서에 대해 생각했다.  9명 사망에 20명 부상.  리나운 호의 공격은 처참하게 좌절.  사마나 만은 스페인 사략선들에게 어느 때보다 안전한 피난처 역할을 계속.  그는 자신이 버클랜드의 자리에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똑같은 오명을 뒤집어 쓸 중대한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가 이젠 선임부관인데다, 다른 건 몰라도 소여(Sawyer) 함장에게서 지휘권을 박탈하는데 동의한 장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나중에 상관들의 눈에 어떤 쓸만한 점이라도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했다.

"젠장." 버클랜드가 한심한 자기 방어조로 이야기했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구.  그 수로에서는 누구라도 좌초될 수 있었어.  하필 키잡이가 전사한 것이 우리 잘못은 아니었쟎아.  그 십자포화 속에서는 누구도 그 만에 접근할 수가 없었어."

"혼블로워는 바다쪽으로의 상륙을 제안했었습니다.  스캇츠맨 만에서요, 함장님."  부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또 혼블로워의 제안인가 ?" 버클랜드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게 그 친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계획인 것 같습니다.  상륙해서 기습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공격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인지도 몰랐지만, 이제서야 부시의 머리 속에 시뻘겋게 달궈진 가열탄이 날아들 수 있는 상황으로 목조 전함을 몰고 들어간 것이 얼마나 바보짓이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

"글쎄요, 함장님 ?"

부시는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다면 두번 실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새끼양을 훔치고 교수형을 당하나 마찬가지였다.  부시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난관에 부딪혔다고 꽁무니를 빼는 것은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번 밀려났다고 얌전히 후퇴하는 것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려운 문제는 작전을 새로 짜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모든 것에 대해 버클랜드에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내친 김에 조심성을 걷어내버리고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버렸다.

"알겠네."  버클렌드가 말했다.  그네처럼 흔들리는 등불빛 때문에 그의 얼굴에 펼쳐지는 그늘이, 그의 내면의 고민을 얼굴에 더 잘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마음을 다잡고 결정을 내렸다.

"그 친구 뭐라고 할지 이야기를 들어보세."

"예, 함장님.  스미스가 현재 당직입니다.  혼블로워가 중간 당직이니, 아마 지금 막 잠자리에 들었을 겁니다."

버클랜드는 전함의 모든 사람들처럼 똑같이 지친 상태였다.  아니, 그 누구보다 더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의 상관들이 이렇게 초조하게 번민하며 밤을 새고 있는데 혼블로워가 그의 침상에 편히 몸을 뻗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버클랜드로 하여금 평소와는 달리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각 행동하도록 한 것 같았다.  

"그에게 전갈해서 오라고 하게."  그가 명령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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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암 2019.04.29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장 생활의 고뇌를 엿보는거 같아 흥미롭습니다.
    실무자때는 윗자리가 편해보였는데 중간 관리자가 되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 문화, 가치관이 변한 것도 한 이유지만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긴또깡 2019.05.30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 잘하시는듯 ㅎㅎ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