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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111

석탄과 머스켓 - 1813년 프랑스의 병기창 지난 편에서, 전시에는 인구의 2.5% 정도를 병력으로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언급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군국주의 국가 프로이센 같은 경우 7년 전쟁 기간 중 인구의 6%에 달하는 병력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외국 용병들이긴 했습니다. 왜 인구 대비 더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지기 3년 전인 1786년, 프랑스의 무장병력은 고작 16만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8년 뒤인 1794년, 제1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지면서 유럽 전체와 싸워야 했던 프랑스 혁명정부는 무려 80만의 병력을 소집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프랑스 인구가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렇게 많은 병력이 필요하지 않았으.. 2022. 2. 21.
마리-루이즈여 전진하라 - 1813년의 새로운 군대 먼저, 나폴레옹이 어떻게 병력을 충원했는지 보시겠습니다. 나폴레옹이 바로 며칠 전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인들에게 떠들었듯이 그에게는 이미 30만의 새로운 군대를 편성할 계획이 다 서있었습니다. 그 중 10만은 오스트리아-프로이센에서 뽑아낼 생각이었으니 20만이라고 쳐도, 근 1년에 걸쳐 편성했던 50만 대군을 방금 다 말아먹고 돌아온 주제에 봄이 되기 전 3개월 안에 20만 대군을 새로 편성하겠다는 말은 과장이 심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계산 착오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그다지 큰 과장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에게는 혹시 땅에 뿌리면 병사들이 솟아난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용의 이빨 같은 거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나폴레옹에게는 용의 이빨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프랑스였지요. (땅에 뿌리면 병사들.. 2022. 2. 13.
원정 실패의 계산서 - 빈털터리 나폴레옹 12월 19일 조례부터 정무를 시작한 나폴레옹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고 의욕이 넘쳤습니다. 전례없는 패전에 불안해하던 그의 정부 각료들은 갑자기 황제가 파리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렸는데, 그런 관료들에게 나폴레옹 개인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러시아 원정을 떠나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비(非)프랑스인 장교들조차도 먼 발치에서나마 나폴레옹을 보고는 자기로 모르게 흥분되고 감화되어 열정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대부분의 왕정이 다 그렇긴 합니다만, 확실히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나폴레옹 개인의 개입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즉각 새로운 병력 모집과 부대 편성을 위한 지시를 부지런히 날리기 시작했.. 2022.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