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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3.25 혈전 - 탈라베라 전투 (제5편) (12)
  2. 2017.08.27 바그람 전투 (제12편) - 불과 쇠 (11)
  3. 2017.08.22 나폴레옹 당시의 포병 (14)

조제프와 함께 작전 회의 중이던 프랑스 장군들에게 전해진 소식 중 하나는 주르당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술트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술트가 보내온 장계의 내용은 그의 남쪽으로의 행군 현황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진척이 주르당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소식은 조제프와 주르당이 떠나온 마드리드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내용은 술트의 소식보다 더 나빴습니다.  세바스티아니 장군의 제4 군단과 대치하던 베네가스 장군의 스페인 라 만차(La Mancha) 군이 마드리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원래 베네가스의 임무는 세바스티아니가 탈라베라에서 빅토르와 합류하지 못하도록 세바스티아니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임무에 보기 좋게 실패한 베네가스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자신과 마드리드 사이에 프랑스군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 쪽 방향으로 슬금슬금 움직였던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난처해진 것은 조제프와 주르당이었습니다.  그들, 정확하게는 주르당이 주장했던 것이 '며칠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만 있어도 술트가 북쪽에 나타나면 영국군은 무너지게 되어있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며칠이 아니라 10일 가까이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뭐 한가한 상황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텅 비워두고 온 마드리드가 스페인 라 만차 군에게 위협받는 상황까지 겹치자, 술트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지요.  특히 빅토르나 세바스티아니가 굳이 부른 것도 아니었는데, 스페인 국왕과 그의 군사 고문의 위엄을 세우겠다며 마드리드 수비대까지 다 끌고 탈라베라로 달려온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이 위기는 바로 조제프와 주르당 본인들이 만든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라 만차 La Mancha는 마드리드 바로 남쪽 지방으로서, 원래 라 만차라는 이름은 메마른 땅이라는 뜻의 아랍어 알 만샤 Al-mansha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라 만차는 나름대로 비옥한 축에 속하는 지역이라,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곡식을 제분하기 위한 풍차가 꽤 많았습니다.  라 만차의 사나이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격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제프와 주르당은 빅토르가 주장하는 대로 공격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빅토르는 여전히 자신이 공을 독차지 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프랑스군의 공격은 크게 4갈래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3개 공격을 빅토르의 3개 사단이 각각 맡았고, 나머지 1개만 세바스티아니의 사단들이 맡았습니다.  어제 밤과 오늘 새벽에 영국군을 공격했다가 큰 피해를 입었던 루팽 사단이 메데진 언덕과 세구리야 산맥 사이의 계곡을 공격하기로 했고, 빌라트(Eugene-Casimir Villatte) 사단이 그 왼쪽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라피스(Pierre Belon Lapisse) 사단이 그 왼쪽, 그러니까 메데진 언덕 남쪽 사면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이렇게 메데진 언덕의 동쪽 경사면을 그대로 들이치는 것이 아니라, 이 언덕의 북쪽과 남쪽의 양갈래로 공격해들어가 남북 양쪽 사면을 협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세바스티아니 휘하에 있던 사단들은 영국군과 스페인군의 방어선이 맞닿는 연결부를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세바스티아니의 공격은 빅토르가 요청했던 유인 공격에 불과했습니다.  즉, 세바스티아니의 사단들이 먼저 영국군 방어선 남쪽을 공격하여 소란을 일으켜주면, 빅토르의 사단들이 메데진 언덕을 집중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이 큰 그림이었습니다.


요약하면, 빅토르가 하자고 하는 작전 그대로 하게 된 것입니다.  조제프와 주르당이 이끄는 병력은 무엇을 하냐고요 ?  어떤 공격에서든 전병력을 일거에 쏟아붓는 일은 없습니다.  조제프와 주르당의 기병대 및 마드리드 수비대는 예비대로 남겨 두었다가 상황에 따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7월 28일 오후 프랑스군의 제3차 공격의 초기 전개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번에는 프랑스군도 긴 횡대로 전열을 짜고 공격했는데, 올리브 밭 한가운데를 뚫고 나가야 했던 레발 사단에게 긴 횡대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공격은 오후 2시반 경에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세바스티아니 휘하에 있던 레발(Jean Francois Leval) 장군의 사단이었습니다.  그의 사단은 독일군과 네덜란드군으로 이루어진 약 4500 규모의 부대였는데, 이들의 공격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사실 의도된 바가 아니라 일종의 작은 사고였습니다.  원래 그의 공격 순서는 두번째였는데, 웰슬리가 판단한 것처럼 꽤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인 올리브 밭을 통과하느라 그의 사단은 다른 프랑스 사단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먼저 개활지로 나와 버렸던 것입니다.  개활지 앞에는 영국군 방어선과 스페인군 방어선이 합류하는 지점이 있었고, 거기에는 영국군이 구축해놓은 포병대 보루가 있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더 이상 공격을 늦출 수 없었던 레발 장군은 곧장 공격에 들어갔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올리브 밭을 통과하느라 대오도 헝클어져 있었고 특히 영국군 포병대 보루 정면으로 쳐들어간 것이 주요 패인이었습니다.  레발 사단의 우익은 영국군을, 좌익은 스페인군을 공격했는데, 우익과 중앙이 영국군에게 격파 당해 후퇴하자, 스페인군을 상대하던 좌익도 측면 노출을 우려하여 후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레발 사단은 약 700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우익에서 레발 사단의 공격이 시작되자 중앙을 맡은 세바스티아니와 라피스의 공격도 시작되었습니다.  약 1만5천 규모의 프랑스군 2개 사단은 제1파와 제2파로 나뉘어 간격을 두고 공격해들어갔습니다.  이들을 상대한 것은 약 6천 규모의 영국군 셔브룩(Sherbrooke) 장군의 사단이었습니다.  영국군은 특유의 침착성을 발휘하여 프랑스군 제1파가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다 45m 지점까지 다가오자 무자비한 일제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파도는 지근거리에서 쏟아진 6천발의 총알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진격이 멈칫하자 셔브룩 사단은 총검 돌격을 감행했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의 총검 맛 보기를 사양하고 뒤돌아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역시 영국군도 아직 실전 경험이 적어서 그랬는지, 그만 침착함을 잊고 도망치는 프랑스군을 대오도 갖추지 않고 무질서하게 추격하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총 8개 대대 중 6개 대대가 이렇게 신이 나서 추격에 참여했다가 그만 뒤를 이어 다가오던 프랑스군 제2파와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영국군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영국군 방어선 중앙부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때가 이날 전투에서 영국군의 최대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영국군에 위기가 닥치자 아까 후퇴했던 레발 사단도 다시 중앙부로 진격해왔습니다.




(전투가 한창 뜨거워질 때의 모습입니다.  영국군 중앙부 셔브룩 장군 휘하 일부 여단들이 전선을 유지하지 않고 무질서하게 앞으로 나가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진한 여단 지휘관들의 이름이 로우 Low와 렝워쓰 Lengwerth라고 되어 있는데, 저 분들의 이름은 사실 뢰브(Sigismund von Löw)와 랑베르트(Ernst von Langwerth)입니다.  저렇게 전진한 여단들은 하노버 출신들로 이루어진 KGL 여단들이고 그 지휘관들도 독일인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랑베르트 장군의 제3 여단은 큰 피해를 입어 사상자가 거의 절반에 달했고, 랑베르트 장군도 전사했습니다.)




예비대로 있던 매켄지(Alexander Randoll Mackenzie) 사단이 재빨리 세바스티아니 사단을 막아섰으나, 라피스 사단을 막아설 예비대는 아예 없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웰슬리는 메데진 언덕을 지키던 연대 하나를 내려보내 간신히 구멍을 메웠습니다.  이 사이 셔브룩 사단이 후퇴 및 재정비에 나섰고, 다시 방어에 투입되면서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300명의 매켄지 사단이 8000명 규모의 세바스티아니 사단을 막으려니 영국군도 피해가 컸습니다.  매켄지 장군 자신이 전사했고, 그 사단도 전체의 1/4이 넘는 630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래도 영국군의 머스켓 사격 속도는 확실히 프랑스군보다 우세했습니다.  세바스티아니 사단도 피해가 막심하여 무려 2천이 넘는 사상자를 남기고 결국 후퇴해야 했던 것입니다.  라피스 사단도 상황이 비슷했습니다.  이들은 영국군과 평행선으로 나란히 늘어서 정지 상태에서 총격전을 벌였는데, 서로 비슷한 사상자를 낸 뒤 후퇴한 쪽은 라피스 사단 측이었습니다.  라피스 장군이 선두에서 지휘하다 총격을 받고 전사한데다, 측면에 있던 세바스티아니 사단이 후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이나 약 1600명씩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웰슬리가 필사적으로 구멍을 틀어막는 모습입니다.  그림에서 메데진 언덕을 지키던 스튜워트(Richard Stewart) 장군의 부대가 헐레벌떡 내려가 라피스 사단을 막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덕분에, 메데진 언덕 북쪽의 계곡으로 들어오는 빌라트와 루팽의 프랑스군을 막을 부대가 부족해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밥상에 숟가락을 슬며시 올려놓으려던 중앙부의 레발 사단은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습니다.  결국 이들은 경멸해마지 않던 스페인군 기병대의 추격을 받으며 걸음을 날살려라 도망치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조제프와 주르당도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이들은 약 5천 병력을 예비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이 상황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훗날 이들은 나폴레옹으로부터 '명색이 총사령관이라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예비대를 가지고 뭘 하고 있었나'라는 질책을 들어야 했습니다.


프랑스 좌익과 중앙에서의 공격이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자, 원래의 주공이었던 전선 북쪽 끝 빌라트와 루팽 사단의 공격은 매우 어정쩡해졌습니다.  원래는 메데진 언덕을 남북 양쪽에서 둘러싸며 공격하기로 했었는데, 남쪽에서 그렇게 해줄 라피스 사단이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일단 메데진 언덕과 그 북쪽 세구리야 산맥 사이의 계곡으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언덕 위에서 전황을 관측하던 웰슬리는 프랑스군이 자신의 방어선을 북쪽에서 우회하려는 것을 쉽게 알아챘습니다.  기병대 외에는 이 계곡에 투입할 병력이 부족했던 웰슬리는 쿠에스타 장군에게 급히 지원을 요청했고, 프랑스군의 공격선상에서 벗어나 있던 스페인군은 그에 적극적으로 응해 기병대와 보병대를 급파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빌라트와 루팽 사단이 계곡 속으로 진입했을 때는 스페인 보병만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을 뿐 영국-스페인 기병대는 시퍼런 기병도를 뽑아들고 프랑스군을 요격할 준비를 갖춘 상태였습니다.  




(프랑스군의 밀집 보병 방진입니다.  기병대의 공격에 대해서는 견고했겠지만, 대신 포병대의 묵직한 대포알에는 세상 취약했습니다.  때문에 아군 기병이나 포병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적군의 기병과 포병의 합동 공격에 걸리면 끝장이었지요.  그림 출처 : https://boardgamegeek.com/thread/1437964/beautiful-world-napoleonics)




프랑스군은 좁은 계곡 속에서 마주친 기병대에 맞서 방진(square)를 짜야 했는데, 이건 역으로 프랑스군이 사지 속으로 제발로 들어온 형국을 만들어버렸습니다.  보병 방진을 기병대에 대해서는 매우 튼튼한 방어진 역할을 할 수 있었으나, 약점이 2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방진 특성상 이동이 아무래도 어렵다는 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런 밀집 보병 대오는 포병대의 포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메데진 언덕 꼭대기에는 영국군 포병대가 있었고, 이들은 계곡 아래 프랑스군이 방진을 짜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대포알을 날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빌라트와 루팽의 프랑스 사단들은 이 좁은 계곡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대포밥이 될 신세였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나 바세쿠르트(L. A. Bassecourt)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 보병 사단이 이 계곡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독안에 든 쥐 신세로 죽는 일만 남았던 프랑스군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는 사건이 연이어 터집니다.





Source : http://lamejortierradecastilla.com/la-batalla-de-talavera-y-2-la-sangre-corre-en-la-portina/

https://www.bbc.co.uk/radio4/wellington/talavera_pop.shtml

https://en.wikipedia.org/wiki/Jean-Baptiste_Jourdan

http://www.worcestershireregiment.com/wr.php?main=inc/h_talavera

http://www.napoleon-series.org/military/battles/1809/Peninsula/talavera/c_talaveraoob.htm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talavera.htm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campaign_talavera.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Tal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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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맛농약 2018.03.25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빠이길 바래봅니다. ㅎㅎ

  2. 베타니 2018.03.26 0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전투상황도가 있으니 확실히 입체적인 이해가 되네요.

  3. 무장공비 2018.03.27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잘보고 있습니다. 나시카님.

    [원래 라 만차라는 이름은 메마른 땅이라는 뜻의 아랍어 알 만샤 Al-mansha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라 만차는 나름대로 비옥한 축에 속하는 지역이라]

    뱀발을 하나 붙이자면 위 얘기는 무어인들이 포르투갈쪽으로 진출하지 않은건 그쪽 지형과 기후가 습한곳이라 별로 공략할 메리트가 없었다는 얘기와 통하는 얘기가 아닐까하네요. 습하고 눅눅한 기후에 짜증나던 무어인들에게는 아마 반가운 종류의 '메마른 땅'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역시 티비 드라마 뺨치는 끊기십니다... 빨리 뒷얘기 올려주세욧!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4. 몽생 2018.03.27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방진을 취한 프랑스 병사라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 다음 회로 넘어가네요^^;;
    아쉬운 마음 달래기위해 이번 회 다시 한 번 더 읽어야겠습니다.

  5. 푸른 2018.03.27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뭇 드라마 작가보다 훌륭한 묘사에 끊기 신공 ㄷㄷ 늘 잘보고 갑니다~

  6. 카를대공 2018.03.27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절단신공이 극에 달한 느낌입니다 ㅎㅎ

    제가 좋아하는 미드들이 결정적일 때 끊기는 그 느낌이네요.

  7. ㄹㄷㅈ 2018.03.28 1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혹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카테고리를 만드실 생각 없나요? 묻고 싶은 것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냥 글에 달기가 좀 그렇군요.

  8. Eugen 2018.03.30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asica님 Sharpe시리즈의 순서가 어떻게 되고 구매는 어디서 하는지 아시나요. 요즘 나폴레옹 전쟁에 관심이 생겨서요.

    • nasica 2018.03.31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존에서 구매하시는 것이 가장 낫지 않겠습니까 ? 스마트폰에 킨들을 설치해서 그걸 보시는 것이 가장 편리합니다. Sharpe’s tiger 부터 Sharpe’s devil 까지의 순서는 https://en.m.wikipedia.org/wiki/Sharpe_(novel_series) 에 표로 나와 있습니다.

베시에르, 아니 낭수티가 지휘하는 프랑스군 기병집단으로 하여금 포병과 보병, 기병이 고슴도치처럼 대비를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군 진영으로 돌격하도록 나폴레옹이 명령한 것은 기병대의 위력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 목적 뿐이었지요.  전쟁터에서 시간이란 수천명의 병사들을 희생시키더라도 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했던 것일까요 ?  어차피 마세나의 군단을 남쪽 에슬링으로 떠나 보내고나면 당장 무너져내리는 아더클라 방면 전선을 막아줄 병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주변에 병력이 있긴 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이 최후의 비상 수단으로 아끼고 아끼던 근위대가 있었지요.  그러나 나폴레옹 같은 대인배에게 있어서, 당시의 상황은 근위대를 끌어다 쓸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간만 조금 더 끌면 다부가 이끄는 프랑스군의 라이트 훅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투라고 그는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병대는 충분히 긴 시간을 버텨줄 만한 병종이 아니었고, 나폴레옹은 시작하기 전부터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기병대를 냅다 집어던진 것은 시간을 끌어줄 어퍼컷을 날리기 전에 날린 잽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어퍼컷으로 날릴 것으로 나폴레옹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


여기서 나폴레옹은 당대에 보지 못한 기발한 전술을 펼칩니다.  제대로 된 군단 대신, 강력한 포병 화력을 동원하여 눈 앞의 오스트리아군을 제압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포병 출신이기 때문에 해낸 생각이기도 했고, 프랑스 포병대의 실력을 믿고 잘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이는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이 빛났기 때문에 가능한 도박이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포병만으로 적의 대군을 막아낼 수 있다면 왜 전에 다른 곳에서는 그런 전술을 펼치지 않았겠습니까 ?  그 짧은 시간, 그 험악한 위기 속에서도 나폴레옹은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지형과 오스트리아군의 포진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대는 약간의 높낮이로 인해 시야로부터 가려지는 움푹한 지대도 없는 정말 완전한 평야 지대여서 적이 항상 포병의 사선에 노출되어 있었고 지면도 탄탄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포병대의 주력 탄종인 구형탄(roundshot)은 직격으로 말과 사람을 으스러뜨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먼저 얕은 각도로 대지 위에 한번 떨어진 뒤 퉁퉁 튕겨 날아가며 그 비행 경로 상에 있는 모든 것을 부러뜨리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친구인 란 원수도 이런 포탄에 목숨을 잃었지요.  즉, 오스트리아군이 진격해오고 있는 아더클라 남쪽 평원은 포병의 살상 효과를 100%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점을 파악한 나폴레옹은 이 지역을 포병으로 제압하기로 합니다.





(프랑스 근위 포병대의 12-파운드 포 및 그 포병들입니다.  다만 바그람 전투 현장에서 동원된 것은 주로 6-파운드 및 8-파운드 포대였고, 일부 있던 12-파운드 포병들은 프랑스 근위대가 아니라 브레더 장군 휘하의 바이에른군 소속 포병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포병은 나름 엘리트 부대로서, 급료도 보병보다 약간 더 높았고 심지어 기병보다도 다소 높았습니다.  오스트리아군에서조차, 보병은 징집했지만 포병은 모두 자원병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보병의 복무 연한이 6년인 것에 비해 포병은 14년이었습니다.  그만큼 숙련도가 중요한 당대 최첨단 병과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황실 근위대의 대포 60문 전체와 외젠이 끌고 온 이탈리아 방면군의 대포 38문, 그리고 브레더(Karl Philipp von Wrede) 장군의 바이에른군에 소속된 24문의 대포를 차출하여 임시로 대(大) 포병단(la grande batterie)을 급조할 것을 명했고, 그 지휘관으로는 이탈리아 방면군 소속이던 로리스통(Jacques Alexandre Bernard Law, marquis de Lauriston) 장군을 선발했습니다.  로리스통 장군은 1800년부터 나폴레옹 밑에서 복무한 전형적인 포병 전문 지휘관이었는데,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프랑스 포병을 책임지던 수석 포병 지휘관 송기(Nicolas-Marie Songis des Courbons) 장군이 최근 1달 사이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프랑스로 귀국했기 때문에 당시 현장에서는 포병 병과로는 가장 믿을 만한 지휘관이었습니다.




(로리스통 장군입니다.  이 분의 본명은 Jacques Alexandre Bernard Law로서, 로리스통이라는 이름은 뒤에 붙여진 marquis de Lauriston, 즉 로리스통 후작이라는 작위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프랑스인의 성씨가 로 Law 라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  이 분도 막도날처럼 스코틀랜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랑스에 자리를 잡은 Law라는 성씨라... 어디서 들은 기억 안 나십니까 ?  예, 맞습니다.  프랑스 중앙은행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Banque Générale를 세우고 종이 돈을 대량으로 찍어냈다가 결국 미시시피 주식회사 거품을 일으켜 프랑스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 넣은 바 있는 존 로 John Law 바로 그 사람의 조카입니다.  로리스통은 프랑스령 인도 퐁디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거기 총독이었거든요.)




낭수티의 프랑스 기병대가 너덜너덜해진 채 퇴각하자, 콜로브라트의 오스트리아 제3 군단과 리히텐슈타인 대공의 오스트리아 예비 군단이 그 뒤를 쫓아 서서히 진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앞을 가로 막은 것은 프랑스 기마 포병대의 대포 몇 문 뿐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저항은 충분히 예상했던 오스트리아군은 자신있게 계속 전진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펑 펑 몇 방씩 쏟아지는 대포알을 견디며 나아가는 오스트리아군이 보는 가운데, 프랑스 포병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덜커덩 거리는 포가와 탄약차를 끌고 온 프랑스 포병들은 띄엄띄엄,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도착하여 1열 횡대로 전개했는데, 오스트리아군이 '어어 저것들 봐라' 하는 사이에 어느 덧 122문의 대포들이 방열을 마쳤습니다.  무려 2km에 걸친 일렬 횡대였지만 대포의 수가 너무 많다보니, 그러다보니 불과 16m 당 1문씩, 오스트리아군의 전면을 전혀 빈틈없이 대포로 빽빽히 도배질을 한 셈이었습니다.  


이렇게 방열을 마친 프랑스 포병들이 옆 포대와 경쟁이라도 하듯 포격을 시작하자 오스트리아군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전진을 위해 빽빽한 밀집 대형으로 행군 중인 상태였으므로 이런 포격은 한발 한발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퉁퉁 튕겨 날아드는 대포알 한발에 20명이 허리가 잘리고 정강이가 꺾여 한꺼번에 쓰러졌습니다.  프랑스 포병들은 오스트리아군 선두로부터 약 300m ~ 500m 떨어진 곳에 방열을 하고 포격을 시작했는데, 오와 열을 맞춰 행군해야 하는 전투 현장에서 이 정도의 거리는 약 6~8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포병들이 쓰던 6파운드 또는 8파운드 포는 숙련된 포병들의 경우 1분에 1발 꼴로 사격이 가능했으므로, 오스트리아군이 머스켓 소총 사거리까지 접근하기 전에 대략 6~8발의 사격이 가능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이 쏘았습니다.  전면에 16m 간격으로 늘어선 대포들이 이렇게 토해내는 쇳덩어리의 공포로 인해 오스트리아군 보병들이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고, 또 신이 난 프랑스 포병들의 재장전 속도가 평소보다 더 빨랐던 것입니다.  프랑스 포병들은 오히려 대포를 조금씩 전진시키며 포격을 가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머스켓 소총 사거리 근처까지 접근하자 프랑스 포병들은 한방에 수십명을 피떡으로 만들 수 있는 산탄(canister)을 쏘기 시작했고, 그 앞에 있던 오스트리아군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이건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산탄, 즉 canister shot입니다.  통조림을 가리키는 영어 can은 저런 금속제 용기인 canister의 줄임말입니다.)




오스트리아군도 포병을 동원하여 대(對) 포병 포격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포병대가 워낙 수적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군의 포병대는 빠른 속도로 무력화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 포병대도 결국 꽤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무리 산탄을 쏜다고 해도 눈 앞의 오스트리아 보병들을 100% 모두 쓰러뜨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적병들이 쏘아대는 머스켓 총탄에 많은 포병들이 쓰러졌고, 거기에 더해 저 멀리 1km가 넘는 바그람 언덕 위에 설치된 12파운드짜리 오스트리아군의 중포들에서 날아오는 포탄들이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 포병대는 무려 476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하나의 대포에 대략 20명의 포병이 딸려 있었으니 전체로 볼 때 거의 20%의 사상율이었습니다.  당시 포병들은 현대전과는 달리 거의 보병들처럼 최전선에서 싸웠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포병치고는 예외적으로 높은 사상율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근위 포병대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보고를 받자 그의 근위대 보병들에게 쓰러진 포병 전우들의 자리를 메워줄 자원병을 뽑겠다고 즉석에서 외쳤는데, 필요한 보충병의 2배가 넘는 근위대 병사들이 자원했다고 합니다.   결국 프랑스 포병대는 치열한 포격을 계속 해나갈 수 있었고, 각 대포당 평균 200발 정도를 발사할 정도로 뜨거운 포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불과 쇠의 폭풍 앞에서 오스트리아 제3 군단의 진격은 완전히 와해되었고, 콜로브라트나 리히텐슈타인도 일단 후퇴를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거미새끼처럼 흩어져 아더클라 마을 건물 속으로 숨어들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벨가르드 장군이 3개 포대 18문의 대포를 내세워 반격을 해보았으나, 이 역시 곧 꼬리를 말아쥐고 마을 건물 뒤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이 웅대한 포병 작전은 그 우렁찬 포성을 바그람 주변의 전장은 물론 비엔나까지 퍼지게 했습니다.  당시 우익인 다부 쪽을 지원하고 있던 이탈리아 방면군 소속 포병 노엘 대위(Jean Nicolas Auguste Noel)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시엔 전황을 알 수 없었으나 좌익 쪽에서 엄청난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전투의 운명이 그 쪽 방면에서 결정되는 것이 확실했고, 황제께서도 그 쪽에 계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노엘 대위가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는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전투의 운명은 바그람 주변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있던 우익, 즉 마르크그라프노이지들 방면에서 결정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2015년 텍사스 오스틴에 몇 개월 출장가 있을 때 그쪽 헌책방에서 산 책입니다.  그때 사온 책 아직 거의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반성합니다.)




Source : The Reign of Napoleon Bonaparte by Robert Asprey

With Napoleon's Guns by Jean-Nicolas-Auguste Noe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wagr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Wagram

http://www.napolun.com/mirror/napoleonistyka.atspace.com/Battle_of_Wagram_1809.htm#battleofwagram94

http://www.histoire-empire.fr/articles/item/grande-batterie-wagr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Grande_Arm%C3%A9e#Foot_arti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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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GOO 2017.08.27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싸 1등 몇년간 꾸진히 보고 있는 애독자입니다
    1등할 날만 기다렸습니다

  2. pangpang 2017.08.27 2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대인들이 흔히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 바그람 전투를 '나폴레옹 천재성 쇠퇴의 시작점'으로 보는 근거 중 하나가, 수많은 사상자를 낸 엄청난 포격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니 의외로 이런 점들이 있었군요.
    그리고 근위대 보병들이 포병들의 빈 자리를 메울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근위대 보병들이 포병 훈련도 좀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높은 숙련도가 요구되는 포병대의 빈자리를 메우다니..

  3. GGOO 2017.08.27 2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항상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혹시 책이나 E북으로 출판하신다면 구매해서 소장 하겠습니다.
    그리고 궁금한게 있었는데 나폴레옹 당시 보병들은 방탄복? 흉갑기병 처럼 철판 갑옷등을 왜 입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총이 개발되면서 갑옷이 도태됐지만, 번쩍번쩍하는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특히 근위대)가 갑옷을 입고 전진해온다면 엄청난 위압갑이 들텐데 나폴레옹 근위대처럼 소수 자원이고 최후의 순간까지 아껴논 자원들은 마차로 물자를 이동하더라도 가치가 있었을것 같은데 이러한 사례는 없는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nasica 2017.08.27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병들에게까지 흉갑을 입히기는 곤란한 것이 (1) 비싸고 (2) 무겁고 (3)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말을 타고 칼싸움을 했던 기병들에게는 2,3번 항목은 해당이 안 되었지요.

  4. GGOO 2017.08.28 0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ㅎㅎ 그렇다면 그 당시 보병들 특히 마지막 순간에 적 전열을 파괴하는 근위대 등은 정말 강심장이었을것 같습니다. 보호장구 없이 모직옷만 입고 총알을 뚫고 총검을 상대해야 하다니.. 으 생각만 해도 후덜덜 합니다.

    제가 나시카님의 블로그를 처음 봤을때가 23살이었는데 벌써 30이 넘었네요ㅎㅎ 항상 건승하십시요~~

  5. 오오 2017.08.28 0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 기병이 패퇴했더라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을 테니까 오스트리아가 냅다 기병으로 포병을 공격하지도 못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6. 수비니우스 2017.08.28 0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은 근위 포병대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보고를 받자 그의 근위대 보병들에게 쓰러진 포병 전우들의 자리를 메워줄 자원병을 뽑겠다고 즉석에서 외쳤는데, 필요한 보충병의 2배가 넘는 근위대 병사들이 자원했다고 합니다."
    우와... 이 부분이 제일 인상 깊네요

  7. 과객 2017.08.29 1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저 시대 보병들은 무슨 심정으로 전열에 서서 전진을 했을까요. 옆에서 야구공만 날아와도 움츠러드는게 사람인데 바로 옆에서 수십명씩 피떡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계속 나아간다는게.. 그래도 후퇴하면 처형당하니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갔을 그들을 생각하니 처연합니다. 전쟁이란 다 그런거겠지만요..

  8. 유애경 2017.08.2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표지의 나폴레옹 뭔가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네요^ ^.

  9. 잡지식 98 2017.08.29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포스팅에서 포병을 다루신건 주인장님의 큰그림이셨군요

  10. 석공 2017.09.03 2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폴레옹 당시의 포병

나폴레옹의 시대 2017. 8. 22. 22:19 Posted by nasica

나폴레옹이 포병 전술의 귀재라고들 합니다만, 사실 제가 아는 한에서는 나폴레옹이라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색다른 포병 전술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프랑스만 뛰어난 성능의 대포를 쓴 것도 아니었고, 나폴레옹이 뭔가 특별한 포병 전술을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폴레옹의 포병들은 집중된 포병대의 기동성 있는 운용을 꽤 중요시했습니다.  많은 대포를 집중시킨 포병단을 신속히 이동시키고 집중적인 화력을 퍼부어 적을 뒤흔들어놓고, 그래서 생긴 틈으로 또 다시 신속하게 이동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진 전투가 2개의 포병단이 번갈아 가며 러시아군을 향해 돌격한 프리틀란트 전투입니다.  그러나 이건 나폴레옹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세나르몽 (Alexandre-Antoine Hureau de Sénarmont) 장군이 단독으로 벌인 작전이었고, 정작 적군에게 단독으로 돌격하는 포병들을 지켜보던 나폴레옹은 '저것들이 지금 러시아군에게 투항하는건가?'라며 놀랐다고 합니다.

 

나폴레옹만이 기동력있는 포병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시가 소위 말하는 '기동 포병'이 본격화되는 시기였던 것은 맞습니다.  그 이전 시대의 포병은, 워낙 대포가 크고 무겁다보니, 전투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꼼짝 안하고 그냥 쏘아대는, 앉은뱅이였습니다.  당시 대포가 그렇게 크고 무거웠던 것은 기술의 한계였습니다.  먼저 대포 포강을 주조 방식으로 만들다보니, 포 구경도 완벽하게 조정할 수가 없었고, 또 포탄의 구경도 그냥 되는 대로 포구 속에 들어가기만 주워다 쓰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유극(포강과 포탄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 많은 양의 화약 폭발 가스가 새나갔기 때문에, 대포의 사정거리도 짧았고, 또 그만큼 더 많은 화약을 장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혹시라도 대포가 폭발할까봐, 대포 약실의 두께도 훨씬 더 두꺼워야 했었지요.  결국 이런 대형 대포는 주로 요새 공격에나 쓸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기술이 발달하여 포강을 정밀하게 깎아내는 방식으로 만들게 되면서, 훨씬 정밀하게 포 구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포탄도 표준화되면서 유극도 예전보다 줄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포의 경량화가 가능해졌고, 비로소 보병의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이는 기동 포병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폴레옹 이전에, 18세기 중반 프랑스의 그리보발 장군이 이런 기동 포병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렇게 경량화된 야포의 대표적인 것은, 영국군에서는 보통 galloper라고 불리웠던, 말이 이끄는 8파운드 짜리 대포알을 쏘는 경포였습니다.  Bernard Cornwell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Sharpe 시리즈라고 불리는 소설 시리즈가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 육군 장교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숀빈 (반지의 제왕에서의 보로미르) 주연으로 BBC에서 드라마화되어 우리나라 유선 방송에서도 방영된 바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출판되지 않았고요.  이 소설 중 하나에서 이 galloper 경포의 운용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5년 벨기에) -----------------------------------------------

 

존 로젠데일 경은 혼란스러웠다. 원래 장교들이 자신감넘치는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고, 병사들은 그 명령에 따라야 했고, 그러면 적군은 당연히 그 행동에 따라 격퇴되는 것이 전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후퇴의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사들은 이 혼란 속에서도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경포병 한부대가 대포를 말에서 떼어내고 사격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포병들은 뭘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도 아주 경쾌하고도 익숙하게 해냈다. 사격을 하고는 다시 대포를 말에 붙들어매고 다시 미친듯한 질주를 하며 빗속을 뚫고 나갔다.

 

한번은, 거의 홍수에 가깝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누군가 자기를 향해 '빌어먹을 엉덩이를 당장 치우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말을 길 옆으로 비켰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말한 사람은 겨우 일개 하사관이었다. 1초 뒤에 말이 끄는 경포가 진흙탕을 튀기며 로젠데일 경이 서있던 자리에 정차했다.  10초 뒤에 포병들은 포를 발사했는데, 로젠데일 경은 그 포 소리가 하도 크고, 뒤로 튕겨져 나오는 포신의 동작이 너무 심해서 깜짝 놀랐다. 로젠데일 경이 여태까지 본 포격은 하이드 파크에서 행해지는 예식 사열이 전부였는데, 거기서는 반짝이는 대포들이 그저 펑하고 알맞은 소리를 내었고, 포신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었다. 물론 그 포에는 대포알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더럽고 진흙투성이에 검게 그을린 무기는 폭음과 불꽃을 토해내며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 대포의 바퀴는 진흙바닥에서 껑충 튀어올랐고, 포가는 마치 쟁기처럼 바닥에 깊은 두렁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몇톤이나 되는 금속과 목재가 바닥에 콰당하고 떨어지자, 진흙으로 뒤덮인 포병들이 스폰지와 밀대로 이 연기나는 짐승에 재장전을 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발포의 격렬함에 비해 대포가 입히는 손상은 너무 약소해보였다. 로젠데일 경은 대포알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저 진흙이 한무더기 튀어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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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위력이 형편없었을까요 ?  BBC에서 영화화된 Sharpe 시리즈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다룬 드라마를 보면, 대포알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으례 큰 폭발이 일어나면서 주변의 적병들이 팝콘 튀듯 튕겨져 나가곤 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대개 그런 장면은 잘못된 고증으로 그런 것입니다만, 꼭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당시 육군에서 사용되던 포탄은 크게 나누어 3가지였습니다. 

 

1. Roundshot 

 

이건 글자 그대로, 둥근 쇳덩어리였고, 성벽을 부수거나, 먼거리에 있는 적의 밀집 대형을 공격할 때 사용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대포'알'이었습니다. 요즘 탄환을 셀 때, 영어로 round라고 표현을 하는데, (가령 6발이다 하면 six rounds) 바로 이 roundshot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2. Canister

 

우리말로는 산탄 정도가 됩니다.  적의 보병대가 포병대 가까운 곳까지 전진해오면, roundshot 대신 이 canister를 발사했습니다.  이 캐니스터라는 것은 얇은 깡통안에 쇳조각, 머스켓 총알, 잔돌조각 등을 잔뜩 채워놓은 것인데, 발사하면 그때의 충격으로 포구에서부터 깡통이 찢어져서 거대한 산탄총 역할을 했습니다. 

종종, double shot 이라는 것을 쓰기도 했습니다.  즉, 화약포는 하나만 집어넣되, 먼저 roundshot을 집어넣고 그 위에 canister를 또 장전하는 것입니다.  적이 아주 근접했을 때는, 비록 사정거리는 좀 떨어지더라도, 꽤 위력적이었겠네요.

 


 

 

3. Shell

 

이건 속에 화약이 들어있는 폭발탄입니다. 이때는 아직 충격신관이 없었으므로, 땅에 떨어질 때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불붙인 도화선의 길이에 따라 폭발 시간이 정해졌습니다.  대개는 도화선 길이를 잘 잘라서, 적군의 바로 머리 위에서 폭발하도록 조절했습니다만, 그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짧게 자르면 허공에서 터져 버렸고,  너무 길게 자르면 흙에 파묻히면서 도화선의 불이 꺼져 폭발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오는 날에는 불발탄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 포탄은 주로 박격포나 곡사포 등 포물선을 크게 그리는 대포에서 사용되었으므로, 그리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곡사포라고 해도, 이 shell이라는 폭발탄은 절대 아군 보병 머리 위를 날아지나가도록 쏘지는 않았습니다.  폭발탄이 의도한 것보다 먼저 점화되어 아군 머리 위를 날아가는 동안 폭발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포병들은 아군 보병 저 멀리 뒤쪽에서 쏘기 보다는, 오히려 보병들 앞쪽 또는 어깨를 나란히 한 옆쪽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들 외에도, 몇가지 별종 포탄들이 있었습니다.

 

Grapeshot 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말로는 포도탄이라고 합니다.  이건 캐니스터와 비슷한 포탄인데, 주로 해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을 걷는 보병들을 노리는 캐니스터와는 달리, 포도탄은 두꺼운 목재로 된 뱃전(gunwale)이나 해먹을 말아 만든 일종의 모래주머니 뒤에 숨은 적의 수병 및 해병들을 살상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런 엄폐물을 뚫기 위해 좀더 알이 굵었습니다.



 

또, 당시 영국군만이 가지고 있던 비밀 무기, shrapnel도 있습니다.  아마 shrapnel하면, 영어로 파편이라는 뜻의 보통 명사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그 shrapnel이라는 단어는, 영국군 포병 장교였던 Shrapnel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당시 폭발탄인 shell은, 속에 흑색 화약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폭발력도 뭐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았고, 또 파편도 몇개 생기지 않았습니다.  또, 캐니스터 탄은 최대 200~300m 정도의 사정거리를 가질 뿐이었고요.  Shrapnel이라는 포병 장교는, 자기 돈을 쏟아 부어가며 shell 탄과 캐니스터 탄의 결합을 연구해서 파편 폭발탄을 만들어냈습니다.  즉, 일반 shell 탄 속에 머스켓 총탄을 잔뜩 쟁여 넣어, 1km 이상되는 먼 거리를 날아가서 캐니스터 탄이 폭발하는, 사거리와 파편 효과를 다 가진 신형탄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이때가 대략 1784년 정도였는데요, 정작 이것이 영국 육군에 정식으로 채택된 것은 1803년, Shrapnel이 육군 중장으로 승진한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실전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08년, 영국군이 스페인에서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일 때였습니다.  웰링턴 공작도 이 포탄의 위력에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래 구조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비격진천뢰와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비격진천뢰보다 약 200년 정도 늦은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나라의 앞선 기술력에 자부심을 가지시길 바라며, 또 동시에 그런 앞선 기술을 계승 발전 시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합시다.   아무튼 Shrapnel은 이 발명으로 자기 가문의 이름이 영어 사전 보통 명사로 실리는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대포의 종류도 나름대로 다양했는데, 해군에서는 더 다양했습니다만 육군에서 사용되던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3가지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1. Cannon

 

그냥 대포입니다. roundshot과 canister를 쏠 수 있습니다. 주로 우리가 영화에서 많이 보는 것들이 이 종류입니다. 

 

 



 

 

2. Howitzer

 

곡사포입니다. 생김새가 cannon과는 좀 틀린데, cannon보다 좀 짧고, 포구는 크게 위를 향합니다. 구경이 꽤 큽니다. 주로 shell을 쏘았습니다.  공성전을 벌이거나 적의 밀집 대형에 shell을 정확히 집어던질 때 사용했습니다.

 


 

3. Mortar

 

박격포입니다.   역할은 howitzer와 비슷하여, 주로 shell을 쏘았습니다.  다만 생김새가 더 짧고 굵었습니다.  또, Mortar가 훨씬 더 높은 포물선을 그리기 때문에, 포탄이 떨어질 때는 거의 직각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적의 참호나 요새를 공격할 때 아주 효율적이었다고 합니다.  Howitzer는 주로 야전에서 보병을 공격하기 위한 대포였던 것에 비해, mortar는 주된 용도가 공성전을 위한 포격이었습니다.  따라서, 아예 바퀴도 없이, 땅을 파고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포격을 했습니다.  요즘의 박격포처럼 사람이 짊어지고 이동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요. 

 

사실 당시 병사들도 이 howitzer와 mortar를 잘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Sharpe 시리즈 중에서, "Sharpe's havoc" 편을 보면, 언덕 정상의 작은 망루에 농성 중인 샤프의 소대를 공격하기 위해 프랑스군이 대포를 불러옵니다.  이때 샤프는 그 모습을 보고, 저것이 howitzer면 자기들이 살 가능성이 있고, 만약 mortar면 우린 다 죽었다라고 걱정합니다.  밑에서도, 프랑스군 대령이 howitzer가 왔으니 이제 니들은 죽었다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포를 끌고온 젊은 프랑스군 포병 장교는 "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령께서 원하신 건 mortar지만, 이건 howitzer입니다."라고 말하여 대령을 헷갈리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대포를 운용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장비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영국군의 경우, 보통 하나의 포대 (battery)는 6문의 대포로 구성되었는데, 이 6문의 대포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무려 172명의 병사와 164마리의 말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6문의 대포를 이용해서 1분 동안 발사할 수 있는 포탄의 수는 빨라야 겨우 12발, 즉 이미 장전되어 있던 것을 한발 쏜 뒤 1분간 재장전하여 다시 쏘는 정도였습니다.  영국군이 콘그리브스 대령의 제의에 따라 로켓 포대를 개발한 것도, 로켓 포대는 발사 가능한 화력에 비해 사람과 말의 필요숫자가 훨씬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콘그리브스 로켓은 결국 명중률이 너무 낮아서 많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당시 대포는 발사 속도가 떨어지고, 또 많은 인원을 필요로 했을까요 ?  뭐 인원이 많은 것은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 무거운 대포와 포탄, 화약을 끌고 신속하게 움직이려면 많은 수의 말과 포가, 마차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 대포와 말, 포가, 마차를 운용하려면 사람 숫자가 많아집니다.  그 외에도, 당시 대포의 장전 및 발사 절차가 요즘보다는 많이 불편했습니다.



1.  원위치로 밀기 (Re-positioning)

 

당시 대포는 완충장치가 전혀 없었으므로, 한번 발사하고 나면 그때마다 포가가 뒤로 심하게 튕겨지듯 밀려나옵니다.  이걸 포병들이 달라붙어 원위치로 굴려가야 했습니다.  평상시에도 힘든 일이었지만, 특히나 비가 온 뒤 질퍽해진 진흙 바닥에서 이렇게 포를 굴리려면 정말 힘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2. 청소하기 (Swabbing)

 

전에 장전된 포탄을 발사하고 나면, 먼저 물에 적신 양털뭉치 등이 달린 장전봉(rammer)으로, 대포 포구로부터 약실 저 안쪽까지 한번 꾹 밀어줍니다.  전에 쏘았던 화약에 의해 대포가 뜨거워져 있고, 또 아직 폭발하지 않은 잔존 화약에 불씨가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걸 식혀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물에 적신 장전봉으로 포강 내를 냉각시켜주지 않으면 다음번 화약을 밀어넣을 때 그 화약이 뜻하지 않게 폭발해버리는 수가 있었습니다.  이를 cook-off 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만약 한창 전투 중에 대포 옆에 놓인 나무 물통이 엎어지기라도 한다면, 누가 다시 물을 채워올 때까지 그 대포는 발사를 못할 정도로 저 나무 물통은 중요한 대포의 부품이었습니다.  




당시 보병들의 개인 화기였던 머스켓 소총도 당시 대포와 비슷한 구조였는데, 머스켓을 장전할 때는 물로 적신 장전봉을 쓰지 않았습니다.  머스켓 소총에서는 cook-off 현상이 없었을까요 ?  대개 없었는데, 이유는 머스켓 소총이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로 연속 사격을 할 경우가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가끔은 정말 그렇게 머스켓 소총이 뜨거워져 재장전을 못할 정도로 열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했냐고요 ?  당시 병사들의 수기를 보면 소변으로 식혔다고 합니다.  당시 병사들은 개인 수통을 휴대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거든요.


다시 대포 이야기로 돌아와, 이렇게 장전봉으로 포강 내를 식혀줄 때, 포수는 반드시 가죽 골무를 댄 엄지손가락으로, 점화구(touchhole)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포신 속에 남아있는 화약이, 아직 뜨거운 포신 속에서, 장전봉이 밀어내는 공기에 의해 점화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폭발이 일어나면, 장전봉을 밀던 포병이 다치는 것은 물론, 청동으로 된 점화구를 손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청동제 점화구는 수명이 짧아서, 이 부분만 자주 교체해주어야 했습니다. 



 

이 점화구는 당시 대포 중에서는 정말 핵심 부품이었습니다.  당시의 기병대는 안장 가방에 작은 망치와 구리로 된 못을 휴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는 바로 적의 대포를 노린 것이었습니다.  즉, 기병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전방에 노출된 적의 포병대를 유린한 경우, 적의 예비 병력이 몰려오기 전에 지친 말을 끌고 퇴각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즉, 적의 대포를 못쓰게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어떻게 ?  당시 대포는 워낙 구조가 간단하다보니, 망가뜨리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이때 망치와 못이 필요합니다.  즉, 구리로 만든 무른 못을 점화구에 틀어막고 망치질을 해서 못이 점화구를 꽉 틀어막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리벳질을 해놓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렇게 점화구가 막힌 대포는, 정말 환장할 정도로 쓸 모가 없었습니다.  여러가지 공구를 써서 그 무른 구리못을 뽑아내기 전에는요.  최소한 그날 반나절 그 대포는 전장에서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3. 장전 (Loading)

 

그러고나면, 미리 캔버스 천으로 된 주머니에 정량을 담아둔 화약을 장전봉으로 밀어넣습니다.  이어서 지푸라기같은 섬유질로 된 마개(wadding)를 역시 밀대로 집어넣고, 그 다음에 포탄을 밀어넣습니다.  이 wadding은, 당시 포탄은 대포 구경과 딱 일치하지 않았으므로 그 사이에 약간의 틈(유극)이 생기기 마련이었는데,  화약의 폭발가스가 그 틈을 통해 헛되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개 이 wadding은 불이 붙은 채 포 전방 얼마 안되는 거리에 떨어졌으므로, 앞에 마른 잔디가 있는 경우 작은 들불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4. 점화용 뇌관 장착 (Priming)

 

이어서, 스파이크라는 길고 날카로운 송곳같은 것을 점화구 속으로 찔러넣어서, 약실에 들어간 화약포에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속에 화약을 채운 갈대줄기를 점화구에 박아넣어서, 아까 스파이크로 낸 화약주머니의 구멍까지 닿게 합니다.

 

 

5. 발사 (Fire !)

 

이제 포수가 가진 slow match(천천히 타는 도화선)로 이 갈대줄기로 된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됩니다.  물론 그 전에 조준을 해야지요.  조준은 대포와 포가 사이에 달린 나사못을 조절하여 했습니다.  



(위 사진에서는 점화구로 일부 역류하는 화약 불꽃도 보이네요.  관광객들 모아놓고 한번 제대로 고증해서 사격 시범을 보이는 모양인데요.) 


 

이렇게 힘들게 쏘았는데, 저 위에 Sharpe 소설 속의 인물인 로젠데일 경이 본 것처럼 맥없이 진흙만 한무더기 튕기고 끝나면 정말 허무할 겁니다.  당시의 roundshot, 즉 폭발하지도 않는 쇳덩어리 포탄이 무슨 위력일까 싶지만, 당시의 전투 대형인 밀집 보병대에는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마치 볼링 레인에 오밀조밀 몰려있는 볼링핀을 볼링공으로 쳐내는 것 같은 것이지요.  실제로 당시 대포알들은 볼링공처럼 병사들을 쓰러뜨렸습니다.  즉, 공중을 날아가며 병사들을 두동강 내놓는 것이 아니라, 땅에 부딪혀 퉁퉁 튕겨나가며 사람을 잡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사실 그럴 것이, 저 멀리 1km 떨어진 1.7m 짜리 표적을 노 바운드로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그래서 특히 부드러운 진흙이 많은 전쟁터는 포병대가 활동하기에는 영 좋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포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적병들을 오밀조밀하게 밀집시켜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국군처럼 2열 횡대로 진격해오는 적병들에게는, 이런 대포 공격이 큰 피해를 입힐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맞춰도, 고작 2명을 잡을 뿐이니까요.  적군은 당연히 적 포병 앞에서는 횡대로 전개할 겁니다.  적군이 횡대로 전개하려고 하면, 그걸 강제로라도 뭉쳐놓고 나서 대포알로 요절을 내야 합니다. 

 

이렇게 산개한 적 보병들을 볼링핀처럼 모아놓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기병이었습니다.  머스켓 소총을 들고 산개한 보병들은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바람처럼 달려드는 기병들의 밥이었습니다.  당시처럼 분당 발사 속도 3발에, 사정거리도 짧은 머스켓 소총을 든 병사들이 기병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격형의 밀집 방진으로 뭉치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뭉치면, 그때 포병들이 볼링공을 들고 레인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병과 보병과 포병은 서로 유기적으로 도와야 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종말을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 과정을 보면, 전날 내린 폭우로 인해 땅이 질척거려서 프랑스 포병의 활동이 제약되었고, 네이 원수의 판단 착오로 포병의 지원도 없이 기병 단독의 돌격이 이루어지는 등, 기/보/포병이 다 따로 놀았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나폴레옹의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천하의 나폴레옹도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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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객몽 2017.08.23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나 첫코라니...
    늘 좋은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감사~

  2. 최홍락 2017.08.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릭 두르슈미트의 저서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를 보면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의 포병 진지를 제압한 프랑스군이 망치와 못을 가진 병사들이 모두 전사해버려 못이 어딨냐고 외치고 돌아다녔으나 결국 영국군에 의해 다시 밀려나 미처 제거하지 못한 그 대포에 의해 프랑스군이 피해를 입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얘기와 비슷한 사례네요.

    • nasica 2017.08.23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털루에서 영국 기병대도 그렇게 망치와
      구리못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애써 점령한 적 포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돌아와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 ㅇㅇ 2017.08.23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사시 포가가 펄쩍 튕겨나오는거나 폭발을 막기위해 점화구를 손가락으로 막아야되는등 살벌한 과정을 보니 저당시 포병들의 사고가 많았을것 같습니다

  4. pangpang 2017.08.25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시에르의 운명이...

  5. 카를대공 2017.08.25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읽다보니 과거 포에 대한 것 뿐 아니라
    포 자체에 대한 디테일도 많이 아시는거 같은데 혹시 나시카님 포병 나오셨나요?


    전 알보병 출신이라 같은 군대 이야기라도 기계류 얘기 나오면 다른 세상 얘기 같더군요 ㅎㅎ

  6. 정세훈 2017.08.26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숀빈하면 에다드 스타크가 생각납니다.
    나시카님도 왕좌의 게임 보셨는지요?
    좋은글 늘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 nasica 2017.08.26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 보다가 최근 우연히 보니 좀비가 나오길래 열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밤에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용 좀비라니 !

  7. 석공 2017.08.31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8. IserveGodofJew 2017.09.16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종과 대포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는 어디였습니까?

  9. ㅇㅇㅇ 2017.09.23 19: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멋진 글에 사소한 트집을 잡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소위 말하는 이 표현은 같은 뜻을 반복해서 쓰는 겁니다. 소위의 뜻이 ~~에서 말하는 바. 거든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이 표현은 ~~에서 말하는 바를 말하는,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립니다. 좌우간...글 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포병은 멋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