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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왕국2

바이에른의 배신 (8) - 외젠의 결혼 (하) 아우스테를리츠의 대승의 결과로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몇몇 영토를 할양받아 덩치가 더 커질 뿐만 아니라, 공국에서 벗어나 이제 왕국으로 인정받기로 이야기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확정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참여하는 프레스부르크(Pressburg) 협약이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1805년 뮌헨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느 때보다 기쁜 날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 분위기는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심복인 뒤록(Duroc)이 의전을 갖추고 나타나 공식적으로 외젠과 아우구스타의 혼약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그날은 억지춘향으로 이 공식 사절을 접대해야 했으나, 바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막시밀리안은 병을 .. 2024. 9. 30.
쩌리들의 전쟁 (상편) - 사칠레(Sacile) 전투 여기서 잠시 시간을 약 2달 전으로 되돌려 1809년 4월 경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기억들 하시겠지만, 오스트리아군의 침공은 크게 3갈래였습니다. 카알 대공이 주력을 이끌고 바이에른을 침공하는 동안, 페르디난트 대공은 바르샤바 공국을 들이치고, 셋 중 가장 어렸던 요한 대공은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왕국을 향했지요. 이 삼형제의 능력치는 정확하게 나이 순이었습니다. 카알 대공은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오스트리아 최고의 명장이었고, 페르디난트 대공은 군사적 역량보다도 그 온후하고 공정한 성격을 기반으로 한 리더쉽으로 군의 신망을 얻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27세의 약관이었던 요한 대공이었습니다. (요한 대공이 17살이던 1799년 그려진 그의 초상화입니다.) 요한 대공은 이 두 형.. 2017.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