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신문에서 읽었는데, 중국의 CCTV에는 중국 각지의 소수 민족을 찾아다니며 각 민족 고유의 풍습과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꼭 나오는 장면이, 그 소수 민족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이 꼭 나온다고 하네요.  그 글을 쓴 필자는, 그것이 소수 민족이 흥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들에게, '소수 민족들은 대개 음주가무에 빠져 지내는 열등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단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정말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도 드뭅니다.  사실 제가 볼 때는 조금 상황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즐깁니다.  우리 스스로가 못느낄 뿐이지, 우리나라는 음주 문제가 사실 심각한 나라입니다.  제가 카투사 시절에 (당연히 미군들하고 사이가 안좋았지요 !)  미군애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1인당 소주 소비량이 1주일에 1병이던가 2병이던가라면서, 한국인들은 모두 알콜중독자라고 씨부렁거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실 갓난아기까지 포함한 평균 수치가 정말 그렇다면 큰일이다 싶었는데, 찾아보니까 정말 한 1.8병 정도였습니다.  그것에 추가로 맥주도 한 2.3병 정도 소비하더군요.  대체 이 술을 다 누가 마시는 겁니까 ?   

 

(우리나라는 오른쪽 하단 부분에 있습니다.  순수 알콜의 섭취량인데, 우리나라는 딱 아일랜드와 동일하군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단연 탑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어떤가 하고 찾아보니까, 우리나라의 1인당 술 소비량은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탑이고 세계적으로도 많은 편에 속합니다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고 그냥 유럽 중간 정도 갑니다.  다만 유럽인들보다 우리가 체구가 좀 작은 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 취하도록 마시는 편이라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특히 유럽인들은 식사 때마다 맥주나 와인 1~2잔을 항상 곁들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알콜 섭취량이 많은 것이지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음주 문화가 다소 폭음 쪽으로 잘못 형성되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따지고 보면, 낮에는 멀쩡하게 직장에서 일 잘하고 집에서는 평범한 가장인 사람이, 밤에 만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자는 것이 별로 크게 이상하지 않게 여겨지는 나라가... 적어도 OECD 국가 중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폭력 행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이 오기 전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셔두는 것이 변호사를 부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법적 대응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음주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과 사법부 검찰 등에 계신 분들이 술을 좋아하셔서 그런 것일까요 ?  저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서양인들은 술의 맛과 향을 즐기려고 마시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하지요.  제 생각에는, 경제 수준과도 상관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나라 유치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래 연습을 많이 시키는 것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미술 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분석해놓은 것이 약간 뜨아하면서도 그럴싸 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만, 노래 교육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것에 비해, 미술은 소모성 재료가 많이 들어가므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국민 소득이 낮은 국가일 수록 미술 교육보다는 노래 연습을 많이 시킨다고 하네요.  동의하십니까 ?  아무튼, 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척박한 사회 환경에서 가장 저비용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술, 그것도 소주이기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뭐 스포츠를 하려고 해도 돈이 많이 들고, 미국 애들처럼 집에서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보려고 해도 차고와 각종 연장, 넓은 공간이 필요하쟎아요.  그러다보니 할 게 술마시는 것 외에는 별로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정은, 지금은 그렇게까지 마셔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18~19세기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온 나라가  술에 쩔어 살았습니다.  물론 사회 최고위층 인사들이야 주정뱅이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소위 상류계층인 군 장교들만 하더라도, 주정뱅이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 사병은 하루에 1파인트 (0.56리터)의 포도주나 1/3 파인트의 럼주를 배급받게 되어있다고 했었습니다.  우습게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단순히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비토리아(Vittoria)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웰링턴 공작은 부하 병사들의 약탈 행위에 화가 났을 때, 공개적으로 자기 병사들을 '술이나 퍼마시러 입대한 땅거지 색히들'이라고 욕을 해댔다고 하지요.  


 

(1813년의 비토리아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스페인에서 프랑스군은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스페인에서 약탈한 온갖 귀중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철수하던 프랑스군을 영국군이 따라잡아 공격한 이 전투는 특히 나폴레옹 전쟁 중의 전투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노획물이 발생한 것으로 유명한데, 웰링턴이 화가 났던 이유는 그런 값진 노획물 중 상당수가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해군 이야기를 그린 Hornblower 시리즈에서도, "Flying Colors" 편을 보면, Hornblower 함장은 긴 항해 끝에 식수가 다 떨어져 가지만, 혼블로워 함장은 물보다도 럼주가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더 걱정합니다.  수병들은 럼주만 계속 배급이 되면, 식수가 다 떨어져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단, 맥주는 술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챨스 디킨즈의 "Great Expectations"라는 작품을 보더라도, 12살 정도의 어린 주인공에게 식사꺼리가 제공되는데, 물 대신 독한 ale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워낙 식수 사정이 안좋아서, 영국인들은 대개 물은 잘 마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런던의 주 식수원은 템즈 강이었는데, 여기서 물을 길어오면, 인간의 분뇨는 약과이고, 온갖 독성 물질과 가축의 분뇨 등이 다 나왔다고 합니다. 중산층은 샘에서 길어온 물을 사 마셨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 강물을 식수로 썼습니다.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보더라도, 템즈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한 남자가, 빠져죽지는 않았지만 그때 마시게 된 템즈강 물로인해 장티푸스에 걸려 죽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1900년이었는데요 !   그래서 대신 맥주를 마셨고, 차가 널리 보급된 이후로는, 차를 마셨습니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단어가 "영국인이 차와 흰빵을 먹는 동안, 아일랜드인은 물과 감자를 먹었다" 라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이야기가 겉돌았는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영국군에게 주어지는 술은 거의 100% 럼주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포도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OTL) 그러므로 제일 값싼 술은 gin 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밀로 만드는 증류주인 진 이라는 술은, 그야말로 최하층 빈민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챨스 디킨즈도 "진을 마시는 것은 영국의 큰 해악이다."라고 썼겠습니까 ?  1730~1740년대에 발전한 진 문화는, 거의 현대 미국 도시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마약 문제와도 맞먹었을 정도였습다.  진이 하류층에서 크게 유행하고, 또 사회악으로 번진 이유는, 너무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습니다.  "1페니면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죽을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통계치가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1740년대에 런던 인구가 마시는 진의 평균치가 1주일에 2파인트(1.12 리터)였습니다. 남자, 여자, 갓난아기 다 합해서요. 이 정도면 요즘 우리나라의 소주 소비량은 저리 가라지요 ?   당시 런던 시내 8가구마다 1곳씩 진을 파는 술집이 있었고, 시내 곳곳마다 진에 취해 쓰러진 사람들이 즐비했답니다.  정부에서도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하여 진 금지법을 1743년에 제정하려고 했는데, 폭동이 일어나서 결국 실패했다고 합니다.  극작가인 헨리 필딩은 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진이야말로, 대도시 인구 수십만명을 해치는 해악이다. 이 독한 술에 접한 사람들은, 지독한 주정뱅이가 되어, 이 술을 다시 사기 위한 돈조차 제대로 벌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모든 수치심과 공포심도 없애버려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와 뻔뻔스러움을 낳게 한다."

 

 

(윌리엄 호가쓰(William Horgath)의 유명한 1751년 그림입니다.  'Beer Street & Gin Lane'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음주에 찌든 영국 하층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는 군대에도 진을 공급하는 것이 적당했겠지만, 정부는 이 지긋지긋한 술을 도저히 군대에 공급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다행히, 당시 영국은 카리브해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활발하게 경영하고 있었으므로,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드는 증류주인 럼주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했습니다.  그래서, 육군이나 해군이나, 대부분 럼주를 공식 주류로 공급했습니다. 

 



럼주는 도수가 최고 75도까지 갑니다. (저는 한때 이게 알코올 농도를 말하는 것인줄 알았습니다만 그런 건 아니더군요.)  엄청난 독주지요.  당시 공급되었던 럼주가 이렇게까지 정제된 것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아뭏든 너무 독주였으므로, 당시 해군 제독이던 에드워드 버논(Edward Vernon, 별명 Old Grog)은 수병들에게 배급하는 럼주에 물을 절반 섞어서 주도록 했습니다.  이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그록(grog)입니다.  권투에서 말하는 그로기(groggy) 상태라는 단어도, 바로 이 그록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영국 해군 내에서 럼주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국 해군에도, 육군과 마찬가지로 채찍질 체벌이 있었습니다만, 이와 비슷한 레벨의 체벌은 바로 'grog 배급 중단'이었습니다.  육군은 육군이라는 특성상, 어떻게든 술을 손에 넣을 방법이 꽤 많았습니다만, 해군에서는 배라는 특성상, 배급되는 것 외에는 술을 구할 방법이 진짜 없었거든요.

 

(그록의 창시자이신 Edward Vernon 제독이십니다.  그는 평상시 그로그램(grogram)이라는 천으로 만들어진 코트를 자주 입어 '늙은 그록(Old Grog)'이라는 별명으로 수병들 사이에서 불렸는데, 그로 인해 럼반-물반의 희석 럼주 이름도 그록으로 굳어버렸습니다.) 



럼주는 Hornblower의 입을 빌리면, 그야말로 영국 육해군의 "Life Blood"였습니다. 어떤 인도 세포이 병사의 회고에 따르면, 영국군은 틀림없이 럼주 속에 뭔가 마법약을 집어넣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럼주만 마시면 영국군은 매우 사나와져서 두려움을 모르고 싸웠고, 또 심한 부상을 입고 다 죽어가는 병사도 럼주를 조금 마시면 금방 되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마법약'을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병사들이 너무 흥분해서 제풀에 죽어버린다고도 '아주 잘' 관찰했더군요.

1780년에 런던에서, 로마 교황에 반대하는 군중이 가톨릭 수도원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든 폭동이라는 이 사건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가톨릭 수도원 부속 진 증류장 습격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군중들은 수도원보다는 이 진 증류장을 노리고 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폭도들은 재빨리 이 증류장의 문을 부수고, 그 중에서 더욱 생각없는 일부 인간이 불을 질렀는데, 이 불길 속을 목숨을 무릅쓰고 뛰어들어갔다고 합니다.  손에는 양동이와 주전자, 심지어 말구유를 들고서요. 곧 뜨거워진 증류기가 터지면서, 진 원액이 길바닥에 쏟아져 나와 하수 도랑으로 흘러들었는데, 군중들은 술에 만취하여 쓰러질 때까지, 이를 땅에 엎드려서 입을 대고 마셨습니다. 나중에 민병대가 출동해서 상황을 정리했는데, 이때 만취해서 쓰러진 사람들 중 4명의 여자를 포함해서 총 20명의 사람들이 과음으로 즉사했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막장 인정입니까 ?

 

 

(제 글에서 인용된 영국의 당시 음주 행태 사례는 Mark Adkin이라는 현역 영국군 소령이 지은 'Sharpe Companion'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Sharpe 시리즈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해설서입니다.)

 

# 목요일에 올리는 과거 재탕글이었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손님 2019.08.29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1등이라니ㅠ 영광입니다~^^

  2. 수비니우스 2019.08.29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하면 정조대왕입죠. 정조대왕께서 정약용에게 보드카를 맥주잔에 부어주고 원샷하라고 시켜서 정약용이 속으로 으악 난 죽었다 했는데 마시고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자식들에게 편지로 쓴바 있습니다. 물론 보드카와 맥주잔은 비유로 붓담는 커다란 필통에 40~50도 하는 삼중소주를 부어줬다고 하네요. 이렇게 술을 좋아하던 뎡됴대왕은 담배 또한 온몸의 기운을 뚫어준다고 예찬하실 정도였으니 50이 못되어 죽은게 절대 이상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쌀통에 담아서 보내버렸으니 술담배에 쩔어살수밖에 없긴 했지만요...

  3. ㅇㅇ 2019.08.29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20명이나 과음으로 즉사했다니 정말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ㄷㄷ

  4. 2/28일 입대 2019.08.29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하니까 저희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마리화나인가 위드인가가 합법인 나라여서 그런 얘기를 자주 했지요. 스위스, 미국, 프랑스 다 국적이 다른데 입을모아 말하더군요.
    한국에서 금지하는 약들은 문제를 안 일으키는데(그들 주장으로는 저걸 피면 그냥 주저앉아서 공상에 빠진답디다.담배보다 건강하다고ㅎㅎ), 그렇게 문제가 많은 술은 왜 무제한 허용이냐구요. (9시 지나면 아예 술을 못 산다던데요).
    음주감경 판결을 얘기할때마다 아주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더군요.

    • nasica 2019.08.29 1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 ? 그 외국학생들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

    • reinhardt100 2019.08.30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외로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아편문제에 워낙 민감하다보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일본제국이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군수품 중 하나가 아편이었는데 일단 화북 등 중국에서 쓰는건 좋은데 이게 내지로 들어오면 골 때리는 겁니다. 아편중독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이걸 막으려면 조선반도, 관동주부터 철저히 단속한다는 것은 상식이었죠. 이 때문에 총독부는 아편 등 마약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하게 나가게 되었고 이게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 카를대공 2019.08.31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저 말이 마리화나 합법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고 술보다 사회적 해악이 덜한데 왜 막냐는거죠.

  5. ㄹㄹ 2019.08.29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주의 진짜 문제는 18세기 영국해군이 마시던 럼보다 더 저질 알콜로 만든 쓰레기 술이라는데 있습니다. 100퍼센트 주정에 물타서 만든거고 이 더러운 맛을 숨기려고 아스파탐이라는 감미료를 섞었는데 이게 해독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죠. 위정자들은 값싼 소주로 인한 사회적 해악을 알면서도 못본체 하는데에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거 보면 이 나라는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카를대공 2019.08.31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소주 맛있게 드시는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근본이 질 나쁜 술인거 부정할 수는 없죠.
      똑똑한 엘리트 계층들이 이걸 모를리가 없는데 사실상 장기간 방치중인 대한민국의 병폐입니다.

  6. 수비니우스 2019.08.29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술을 잘 못하고 기껏해야 가끔 혼자 1리터 한병에 2280원하는 값싼 벨기에 밀맥주를 마시는 정도인데,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거다"라며 소주 아니면 안된다는 사람들 보면 정말 보기 안좋더군요.

  7. reinhardt100 2019.08.30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밀로 된 진이 미친듯이 공급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으로 동유럽, 특히 폴란드-리투이나아연방의 재판농노제 강화 및 경제와도 연결됩니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연방은 네덜란드, 잉글랜드, 베네치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잉여곡물 수출로 어느 정도 경제가 돌아갔지만 17세기 중반 대홍수 때문에 국가 경제가 제대로 박살나버립니다. 가뜩이나 재판농노제가 판치던 농촌에 불을 질러버린 겁니다. 마그나트건 슐라흐타건 간에 영지가 있던 7천명의 귀족들이 300만 농노를 효율적으로 쥐어짜야 하는데 기존의 곡물 수출로는 한계가 보이다보니 호밀 등을 원료로 하는 진을 대규모로 주조하여 수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만이면 다행인데 이 인간들이 더 벌자고 각 영지별로 1년에 1인당 몇십리터씩 강제구매 후 작업용 반주로 사용하게 하는 방법까지 동원하다보니 개판이 벌어집니다. 농노들이 술 먹고 일하니 당연히 효율이 떨어지는 겁니다.

    주류문제, 이 문제는 국가재정과도 직결 되어 있죠. 역사도 꽤 오래됩니다.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주요 수입 중 하나가 조선반도 철도운영수입과 주류세였던 건데 지나사변 이후 군사비 증액을 감당하려고 대규모 전시국공채 발행 및 주세율 증강을 감행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내지와 동시에 양조장 면허제까지 도입시켜버린건데 이 때문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죠. 그나마 일본은 나았습니다. 적어도 강제주류소비제만큼은 도입하진 않았거든요.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이 짓까지 해서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었죠. 한 때 인도지나 연방 연간 세수의 1/4을 주세가 차지할 정도로 개판이 났었습니다.

    해방이후 정부가 가장 확실하게 뽑을 수 있는 세원이 바로 토지세와 주세다 보니 주류에 대해서는 정말 관대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쓰게 만들어야 정부수입이 늘어나니까요. 게다가 윗분들이 쓰신대로 물자 아끼려다보니 소주가 장려되는 것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술독에 전국민이 빠져사는 사태가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8. 샤르빌 2019.08.31 0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도 이젠 맥주 정도는 약간 술 취급 안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소주는 품질도 너무 저질인데 그걸 죽을때까지 마시니 사람들 위장이고 간이고 남아날리가..

  9. 카를대공 2019.08.31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거 혹시 예전 블로그에 쓰셨던 글 아닌가요?
    중간에 프랑스 얘기를 보니 기억나네요.

    당시에 쓰셨던 기준으론 확실히 맞는 말씀이지만 최근 3년?정도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1인당 소득이 많이 올라서 꼭 옳은 얘기는 아닌거 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수도권 정도면 세계적으로도 즐길거리 놀거리가 무척 많은 문화권이라서요.

  10. 카를대공 2019.08.31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의 폭음,만취 문화는 근본적인 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는 문제임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저도 술 남들 정도는 마시고 술자리도 좋아하지만 술의 폐해는 부정할 수가 없네요.

    담배의 폐해는 끊임없이 강조되는데 술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하죠.

    제가 볼 때 담배보다 개개인 삶을 좀먹고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를 악화시키는게 술입니다.

  11. 바다에산다 2019.09.07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난 글 항상 잘 보고 갑니다.
    음주가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해군에게는 멀미 치료약으로써도 기능했으리라 봅니다.
    해군 시절 원/상사 침실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소주 페트병들이 생각이 납니다.
    담배와 술이 전통적인 멀미 특효약이라고 하네요

  12. 라흐마니노프 2019.09.0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럼의 최대 도수가 75라고 하셨고, 이게 알코올 농도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무섭게도 절반은 원래 알고계시던게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와전된건지 그렇게 하기로 정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수가 농도 백분위인거 처럼 쓰이고 있지만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도수(proof)는 대략 1도=0.5%입니다. 표기도 그 각도 단위에 쓰는 작은 동그라미(모바일이라 직접 적기 어렵네요)죠. 지금 유통되는 럼 중에 제일 독한게 바카디 151도(75.5%)인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식으로 75도가 대충 맞습니다. 당연히 그냥 마시라고 만든게 아니라 칵테일이나 불쇼, 객기부리기용으로 의도적으로 독하게 만든 종류구요, 전통적인 럼은 진이나 위스키 같은 다른 증류주처럼 40%내외에 많이 높으면 50%조금 넘는 정도에요. 제가 알기론 그로그 비율이 절반(대충 우리 희석식 소주 수준)까지는 아니고 물4 럼1 정도(와인 맥주 막걸리 수준)라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배마다 달랐으려나...

  13. 무명씨13 2019.09.1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가볍게 맥주 1~2 잔 마시는 것으로 끝내는 문화가 더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14. 영국나치처칠 2019.10.24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명의 물인 아쿠아비트는 감자로 만든 술이고
    수술한 환자들이 상처를 아물기 위해 먹는 음식은 감자의 형제?인 토란이라네요

  15. Corsair F4U 2019.12.01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글에서는 진에 물을 탄 것을 그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 글에는 럼에 물을 탄 것이 그록이라고 되어있네요 제 기억이 잘못 된건가요? 아니면 내용이 바뀐 건가요?^^

    검색해보니 럼에서 나온 것이 그록이 맞긴한데..... 기억의 조작이 있었던걸까요 ㅋㅋ


이제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지자, 유럽 각국은 이 세기의 대결을 놓고 어느 편에 붙을 것인지 판단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힘센 제국들끼리 싸움질을 하는데 굳이 다른 나라들이 꼭 끼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더 낫다는 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건 편하게 후방에서 입으로 떠들 때나 통하는 거부감입니다.  당장 바로 옆의 전우들이 내장을 쏟아내며 고꾸라지고 나도 바로 다음 순간 언제든지 팔다리가 끊어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특히 그런 희생자가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나 딸, 손자일 경우에는  누구나 어떻게든 당장 휴전 조약을 바라는 법입니다.  물론, 1812년 당시 유럽 각국에서 어느 쪽에 붙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자기나 자기의 아들이 적의 대포알에 노출될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건 현대에서도 대부분 마찬가지네요.

 

애초에 나폴레옹 덕분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주도권 하에서 벗어나 땅도 넓히고 왕국이 될 수 있었던 라인연방(Confédération du Rhin, 독일어로는 Rheinbund) 소속의 독일 소국들은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들 국가 소속의 독일 시민들은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의 대결, 좀더 근본적으로 보면 프랑스의 부르조아 계급과 영국의 부르조아 계급간의 투쟁에 끼어들어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지배하던 왕과 대공(Fürsten, 영어로는 Prince)들 중 상당수는 나폴레옹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러시아 원정에 협조했습니다.  먼저 나폴레옹이 미개한 독일인들에게 프랑스식 입헌 군주국의 모델을 보여주겠다며 만든 베스트팔렌(Westphalen) 왕국의 국왕은 나폴레옹의 막내동생 제롬(Jerome)이었습니다.  또 베르크(Berg) 공국의 지배자는 나폴레옹의 매제이자 나폴리 왕국 국왕인 뮈라(Murat)였고요.  이런 친인척들 외에도 나폴레옹에게 진정으로 협조적인 독일 소국왕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바이에른, 뷔르템베르크, 바덴, 헤세 등의 국왕들과 대공들은 어쩔 수 없이 나폴레옹에게 굴복한 군주들이 아니라, 스스로 프랑스 계몽주의가 근대화를 위한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나폴레옹과의 협력을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믿음의 배경에는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Grande Armee)가 가진 무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1812년 당시 라인연방의 소속 국가들입니다.  라인연방의 주요국가는 지도에서의 영토 크기로만 보면 베스트팔렌과 작센, 그리고 바이에른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온나라가 친프랑스-친나폴레옹 정서를 가진 진짜 동맹국은 바이에른과 바덴, 뷔르템베르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두 남부 독일의 카톨릭 국가들이군요.)

 



영국의 경우는 뭐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당연히 러시아와 함께 반프랑스 전선의 최선봉에 나설 의지가 충만했습니다.  원래 영국은 자신은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입만 털면서 지갑이나 여는 것으로 전쟁을 대신했기 때문에 프로이센이나 오스트리아로부터 원망과 조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812년 당시에는 영국도 꽤 당당하게 자신도 피를 흘리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 전선에 당시 영국으로서는 꽤 큰 야전군인 3만 정도의 병력을 파견하여 그야말로 혈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만이라고 하면 프랑스 그랑다르메(Grande Armee)로서는 고작 1개 군단에 해당하는 소규모 병력이었겠지만, 인구가 많지 않고 육군이 미약했던 영국으로서는 동원 가능한 전체 야전군을 다 동원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국은 이 소중한 병력을 아끼느라 당장 온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있던 스페인 현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얌체처럼 몸을 사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1814년 전쟁이 끝난 뒤에 집계를 해보면 영국군의 사망자는 총 3만5천이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스페인-포르투갈 전장은 부족했던 영국 육군의 인원과 물자를 끊임없이 소모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그 중에서 2만5천은 전투가 아닌 각종 질병으로 사망했습니다만 이건 당시 위생 상황으로서는 정상적인 수치로서 다른 전장 다른 나라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12년 바다호스 요새 포위전입니다.  이 전투에서 4천5백의 프랑스군이 지키는 바다호스 요새를 2만7천의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이 3주간 포위 공격 끝에 함락시켰습니다.  프랑스군은 1천5백의 사상자를 냈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포로로 잡혔는데, 영국-포르투갈 연합군도 거의 5천의 사상자를 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함락 후에 영국군은 바다호스 시내를 잔혹하게 약탈하여, 최소 2백명에서 최대 4천명의 스페인 민간인 사상자를 냈습니다.  스페인이 영국의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1812년은 영국군이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고 비난하던 스페인 사람들이 입을 다물 정도로 영국군도 공세적으로 나온 첫 해였습니다.  이 해 1월, 웰링턴은 드디어 군수품 창고 및 물자 집적 등을 끝내고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의 진군을 개시했던 것입니다.  프랑스군이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쳐들어갈 통로가 뻔했던 것처럼, 역방향의 침공도 루트가 뻔했습니다.  웰링턴의 영국-포르투갈 연합군도 1810년 프랑스의 포르투갈 침공 때 마세나가 밟았던 경로를 정확하게 역순으로 밟아야 했습니다.  1812년 1월 시우다드 로드리고(Ciudad Rodrigo) 요새부터 함락시킨 웰링턴은 이어서 4월에는 바다호스(Badajoz)를 엄청난 혈투 끝에 함락시켰습니다.  이 두 요새를 함락시킴으로써 이제 스페인으로의 진격로가 활짝 열린 셈이 된 것이지요.

이때 놀랍게도 나폴레옹으로부터 영국 측에게 평화 협상을 하자는 제안이 날아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영국과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공언하던 나폴레옹으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입장 변화를 취한 것이었는데, 그만큼 당시 나폴레옹은 러시아 침공을 앞두고 후방 정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원래 러시아 침공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이 영국과의 전쟁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어떻게 보면 본말이 전도된 셈이었지요.  어쨌거나 나폴레옹의 평화 협상 조건은 영국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미 영국군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던 포르투갈 왕국을 원래의 왕가인 브라간사(Braganza) 왕정에게 반환하는 대신 스페인은 조제프를 국왕으로 하는 보나파르트 왕가 소유임을 인정해달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거든요.  그 외에 시실리 섬은 부르봉 왕가 출신의 사르데냐 국왕 페르디낭이 계속 보유하되, 나폴리 왕국의 소유권은 현행대로 나폴레옹의 매제 뮈라(Murat)가 계속 유지하게 해달라는 것이 딸려 있었습니다.  혹시 웰링턴이 시우다드 로드리고와 바다호스를 함락시키기 전에 이런 조건의 평화 협정을 제안했다면 영국이 받아들였을까요 ?  아마 영국은 그래도 거부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이제 스페인으로의 침공길이 활짝 열린 마당에 그런 조건을 수용할 이유가 없었지요.  영국은 단칼에 나폴레옹의 평화 제의를 거부하고 스페인으로의 침공 작전을 계속 했습니다.  웰링턴은 7월에 살라망카(Salamanca) 전투에서 마르몽(Marmont)의 프랑스군을 격파했고, 8월에 조제프는 수도 마드리드를 내주고 피난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살라망카 전투에서 프랑스 보병들을 공격하는 영국군의 모습입니다.   한창 이기고 있는데 휴전하자고 하면 통할 리가 없지요.) 

 



초지일관 당당했던 영국과는 달리, 프로이센의 입장은 좀 딱했습니다.  나폴레옹으로부터 처음부터 푸대접을 당하던 프로이센은 당연히 처음에는 러시아 측에 붙으려 했습니다.  심지어 전운이 감돌던 1811년에는 국왕 빌헬름이 러시아 자르 알렉산드르에게 밀사를 보내 10만의 프로이센군을 보태줄테니 선제 공격에 나서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러시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드르는 막강 프랑스군과 같은 조건으로 정면 충돌해서는 승산이 전혀 없다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프로이센의 선제 공격 요청을 거절하고, 프랑스군을 러시아 국내로 깊숙이 끌어들여 방어전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건 프로이센처럼 조그마한 나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략이었지요.  러시아가 저렇게 후퇴 일변도의 희한한 전략을 택한다는 것은, 프로이센으로서는 전국이 프랑스군에게 일방적으로 유린당하게 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게다가 1812년 들어 오스트리아까지 프랑스군에 가담하기로 결정을 내리자, 이제 대세는 기울었다는 체념으로 뒤늦게 프랑스측에 가담하기로 합니다.  사실 이미 때늦은 결정이었습니다.  훨씬 더 일찍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했어도 프로이센에 대한 대접은 신통치 않았을텐데, 이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난 뒤에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가담한 프로이센에 대해 나폴레옹이 보내는 시선은 싸늘했습니다.  결국 프로이센은 2만의 야전군을 러시아 침공에 동원해야 했고, 그 외에도 4만2천의 추가 병력을 후방 수비 임무를 위해 프랑스군에 제공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자국 영토를 프랑스군 및 그 동맹군이 자유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 행군길에 프랑스군이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는 물자는 프로이센 국민들로부터 징발하여 충당했는데, 그 비용은 1806년 패전 당시 부과되었다가 아직 갚지 못하고 있던 전쟁 배상금을 상각해주는 형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공짜로 다 털렸다는 말이지요.

 

...To be continued...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Peninsular_War#Allied_campaign_in_Spain
https://en.wikipedia.org/wiki/Confederation_of_the_Rhin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백군파 2019.07.08 0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유약한 데가 있어서 그런지 화평을 거부한 영국인들이 이해가 잘 안 가네요.대륙 봉쇄령으로 피폐한 경제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만큼 돈과 물자,인력을 막대하게 잡아먹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계속 작전을 벌이느니 교전만이라도 중단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은데요.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 수비니우스 2019.07.08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주주의가 많이 정착된 지금조차 자긴 앞서겠다고 절대 말하지 않고 후방에 있을 예정이면서 북진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은걸 보면, 돈많은 사람만 선거권이 주어지던 당시에는 화평을 주장하면 남자답지 못하고 공동체를 해치려 든다고 취급당했을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나폴레옹 및 프랑스혁명과는 이전 체제들은 공존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 지나가던 2019.07.08 0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영국 부르주아와 프랑스 부르주아간의 경쟁도 있지만 영국이 스페인에서 손 때면 지브롤터를 시작으로 지중해쪽이 위험해지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 ??? 2019.07.08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계산기 두들겨 보면 프랑스가 전시경제에 약탈로 지탱되는 생산성 없는 ♬♩♪들이고 곧 병력에 국력 고갈로 이대로 놔두기만 해도 끝날 놈들이니 이 승산이 차고 넘치는 판도가 가속되도록 벡터를 가중시겼다고 이해하십쇼 ^^

  2. 붉은혁명 2019.07.08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재인은 미중간 패권경쟁에서 중국이 차세대 헤게모니를 쥐도록 협조해 우리민족끼리 남북통일을 이룩하며 미제국주의의 하수인 ♪♪♪♫를 배격하고 모두가 균등한 절대평등 유토피아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중화의 더 큰 역할을 바라야 한다는 입장같던데 나폴레옹 전쟁의 역사적 상황은 어떤교훈을 남기는지 고견을 여쭐수 있겠는지요

    • 0_- 2019.07.08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타리무 쿨타임 끝나셨능가
      시사인 만화 평론에서나 놀다가 거기서도 까여서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그런거에요?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4894

    • ??? 2019.07.08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잠깐만, 위엣분, 시사인 만화면 그 김선웅인가 하는 고릿적에 이글루스 하던 애가 그리는거 맞죠? 걔는 손으로 그리는 만화랑 입으로 떠드는 말이 다른 이중인격자에다 전형적인 중빠 국까 북뽕 반미 민족주의잔데 그런 저질 저질 만화 보세요?

    • 루나미아 2019.07.08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얼마나 중국과 공산주의를 사랑하시면 서방세계에 속한 우리나라가 중국의 패권에 협조하길 바라는 건가요?

    • 수비니우스 2019.07.08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타리무님이 저번에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잘만들었다고 추천하던데

    • 푸른 2019.07.09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알타리무님 덕에 웃고갑니다. 한편 시사인 링크 남겨주신분께도 감사드립니다

    • 웃자웃어 2019.07.09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에 문재인이 댁이 그렇게 말하는 친중이면 벌써 일대일로에 참여했겠죠.

    • 수비니우스 2019.07.09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국의 지성인 여러분!

      지난날의 우리 헌정사를 더듬어 볼 때 여러분들은 오늘날의 야당인사들이 얼마나 많은 지성인들의 건설적인 발언을 '매카시즘'적인 수법으로 탄압해 왔는가를 똑똑히 알고 계실것입니다. '참다운 반공'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참다운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지반인 전근대적인 유제가 위협을 당하면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상투적인 술어로 상대 세력을 학살시켰던 것이 한국적 '매카시즘'의 아류들이 저질러 온 행적이었습니다.

      전국의 지성인 여러분!

      무슨 일이 있던지 우리는 차제에 한국적 '매카시즘'의 신봉자를 우리사회에서 일소시키기 위해 분연히 궐기하여 과감히 투쟁합시다.

      1963년 10월 5일 동아일보 1면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 기호 3번 박정희

  3. Spitfire 2019.07.09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더 낫다'라는 말은 비겁한 자들이 하는 말이지요. 거부감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냥 초짜나 약자들이 하는 말일 뿐이지요...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라는 말을 한다고 정말 피터지게 싸우자는 뜻은 아닙니다. 특히나 협상의 기본을 아는 사람이라면 후자가 실리를 얻는데 더 유리하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례는 너무 많아서 굳이 나열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리고 전쟁이 지도자나 고위급들의 생각없는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전쟁선포야 외교나 정치가 담당하는 것이지만, 실제 전쟁 수행은 국민들의 지지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2차대전때까지만 해도 자원입대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지요. 그때라고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자원했을까요? 전쟁나면 사람 죽고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는데도 전쟁을 하는 것은, 그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싸워서라도 지키고 견지해야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쟁나서 사람 죽는데만 초점을 맞출거면, 까짓거 군대도 없애고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적화통일이 되어도 그냥 좋은게 좋다고 가만히 있으면 되지요.

    반대로 국민이 반대를 하면,1917년의 러시아, 1918년의 독일, 1970년대의 미국처럼 진행하던 전쟁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세도 아니고 현대사회에서 국민의 의사와 결정권이 갖는 의미와 힘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 최홍락 2019.07.09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장 나쁜 평화가 가장 좋은 전쟁보다 더 낫다'라는 말은 비겁한 자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라는 말을 한다고 정말 피터지게 싸우자는 뜻은 아니겠지만 그건 북한과 같은 정부가 아닌 정상적인 정부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될 때까지 해서는 안되는 소리같고요. 왜냐하면 그러한 엄포 자체로 긴장을 상승시키면, 그리고 그 긴장이 계산된 범위를 넘어가버리면 그 때는 유리한 위치는 고사하고 통제가 안되는 상황, 즉 선을 넘어가버릴 수 있겠죠. 존 허즈가 얘기하는 안보 딜레마 이론처럼 말이지요.

      일단 전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싸워서라도 지켜야할 상황이 된다면 사람들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현대 국가는 전시 동원체제를 발동하게 되고요. 전쟁이 시작되면 초반에는 의지가 드높은 사람이라도 2년, 3년 길어지면 전쟁에 염증을 느끼게 되지요. 국민이 반대를 해서 정부를 멈출 수 있는 상황은 전쟁이 장기화되서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정도로 누적된 이후이겠지요. 베트남 전쟁같은 경우는 반전여론이 소수였다가 대학생까지 징병대상이 되니까 반전운동이 확대된 것처럼 여론주도층이 피해를 입는 수준까지 가야 반전 여론이 커진다는 것도 공정하지 못한 현실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가 내부적으로 안보시스템을 만들고 외부적으로는 다자간 안보체계를 구축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진짜 전쟁을 준비하려면 대응 시스템부터 조용히 구축하는게 정부의 역할일 수 밖에 없고요.

    • 웃자웃어 2019.07.09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진을 하게 되면 중국군이 움직일테고 미군도 움직일텐데 중국-미국과의 대전쟁에서 탱커역할을 맡게 되면 대한민국이 무사할까요?
      좀 대국적으로 생각하시죠.
      중국군의 수준은 더이상 비속어를 써가면서 무시할 수준이 아닙니다. 미군이 올동안 버티는 전투만으로도 대한민국 국군은 회복불가수준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을겁니다.

    • 백군파 2019.07.09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웃자웃어/소총도 없어서 3명이 소총 한 정을 같이 쓰던 시절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긴 했죠.겉으로만 번지르르하다고 실속이 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사실은 우리도 그런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니..

    • Spitfire 2019.07.10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당연히 정상상황에 정상정부에게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는 일은 없겠지요. 단지 제글의 목적이 Nasica님이 좋은 글에 항상 논란이 될만한 사견을 하나둘 넣으시는 것에 대한 반박이고, 현재 우리나라 정부의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의 실패를 비판하기 위함이다보니, 제 글이 마치 전쟁광이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무력을 앞세운 평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전쟁선포를 하거나 북진할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한국군의 전시작전계획 자체가 방어 후 반격이거든요. 그러니 '순수한' 분들에게는 '전쟁도 불사한다'라는 말이 매우 호전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냥 '최고수준의 협박' 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여러 선택의 여지를 남기고 상대방의 선택권을 없애는 것이 협상의 기본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의 '나쁜평화론'에 반응하기 보다는 미국의 스텔스기나 항공모함의 접근에 더 경기를 일으키지요. 협상을 하려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모두 써야하는데,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의 패를 까버리면 그냥 질질 끌려다니는 수 밖에 없습니다. 평화를 어떻게 '영속적'으로 지키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나쁜 평화'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일시적인 행복감과 안정감을 줄 뿐이지요.

      전쟁의 결정과 부담에 대해서는 정부나 의사결정자가 점점 국민의 눈치를 보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20세기 이후로는 전쟁선포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론 자체가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차대전 시작 전에 이미 프랑스와 독일은 철천지원수였고, 독일의 팽창에 기존 열강의 경계심은 극에 달했지요. 이게 프로파간다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쟁을 직접 수행하는 밑바닥 서민들의 반전 여론이 강하다면 정부가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마치 1차대전 당시 프랑스가 동맹인 영국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면, 프랑스 국민들의 적극적인 전쟁참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듯이 말이죠. 명분없는 전쟁에는 아무리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해도 도망가거나 저항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다행인건 현대의 전쟁은 직접 무력을 사용하기보다는 경제전쟁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비용도 싸게 먹히고 효과도 만점이니 굳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군대를 없애고 무기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대책은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최후의 최악'을 막는 수단이 허접하다면 그건 뭔가 계획 자체가 글러먹은 것일테니까요. 그래서 강한 국방력은 안보시스템의 주요한 축이 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자간 안보체계도 가능하고, 대응시스템도 구축이 가능해질겁니다. 아무것도 안들고 남들에게 도와달라 할 수는 없으니까요.

    • 최홍락 2019.07.10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전쟁도 불사한다'라는 말이 실제로는 그냥 '최고수준의 협박'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대방도 인지할 때는 그 다음에 쓸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 얘기겠지요.

      가령 진짜 전쟁으로 가는 Action을 취한다는 것을 10으로 두고, 평화 상태를 0으로 봤을 때 10이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인지, 그리고 0과 10 사이에 단계 단계를 어떻게 상정할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입으로 강경책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것이 북한 문제든, 일본 문제든 상관없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5밖에 안된다는 것을 망각하거나 (정작 10이라는 수단을 쓰려면 외부의 힘을 빌려쓸 수 밖에 없는데도...) 10이라는 수단을 자력으로 쓰기 위해 어떤 Action을 취해야 하는지, 하다못해 6,7,8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그게 System으로 구축이 되어야 하는데, 냉정하게 그런 것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거죠.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파월 독트린을 복사해서 갖다붙이기만 해도 외교나 위기 관리에 있어서 이정표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핵심적인 국익의 위협 여부, 비군사적 조치들이 충분히 시도되었는지 여부, 목표의 구체화 정도, 결과에 대한 고려, 위험과 비용에 대한 정확한 분석, 무분별한 연장을 막기 위한 출구 전략, 국민들의 지지, 국제적인 지지)

      1차세계대전 때도 카이저가 한번 동원령을 내렸다가 영국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징병을 철회할 경우 국가기간 수송망을 중지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도저히 상황을 통제할 수 없어 전쟁까지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만큼 강경한 발언과 강경책은 가능한 억제하고 신뢰받는 외교, 폭넓은 대안을 기초로 한 위기 관리에 더 중점을 둬야한다는 거죠. 한번 세게 나가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으니까...

      유화책이랑 군대를 없애고 무기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이 따로 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한번도 침략당하지도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았던 카빌라 성과 같이 군사력이나 억제력의 극대화를 통해 상대가 전쟁을 일으킬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나 싶습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 라는 얘기로 정리하면 될듯요.

    • Spitfire 2019.07.10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원론적으로는 다 맞는 말씀이고, 어쩌면 저랑 같은 이야기를 다른 표현으로 말씀하시는 느낌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는 '나쁜 평화'를 보충설명하는게 아니라 그냥 '좋은 평화'에 대한 이야기인거 같네요. 저렇게만 된다면 누가 평화를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현 정부가 '좋은 평화'를 위해서 시스템을 짜려고 무슨 노력을 한건지, 최소한 큰 몽둥이를 들어보려고 시도라도 한건지 저는 여전히 궁금할 뿐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통미봉남이고, 우리 머리 위엔 핵폭탄이 새로 생겼으니까요.

    • 수비니우스 2019.07.11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Spitfire께 달은 대댓글 모두 삭제했습니다.

  4. 백군파 2019.07.09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폭력과 협박을 이겨낸 수많은 반공포로들의 사례를 보면 인민군이라고 해서 전부 다 공산주의에 찬성하고 국군과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인간 말종들이었다기보다는 김일성 한 사람의 야욕에 강제로 동원된 불쌍한 이북의 동포들도 많이 섞여있었던 것 같은데요..적이 쳐들어오면 국가와 자유,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데는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만은,휴전선 이남의 국민 한 사람이 죽으면 이북의 국민 백명이 죽어야한다는데는 동의할 수가 없네요.1-4 후퇴때 남한으로 물밀듯이 내려온 피난민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입니까? 북한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 주민들입니다.적이 점령한 영토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죄밖에는 없다구요.그들도 우리 국민입니다.
    그나저나 글은 불러전쟁에 대한 글인데 댓글은 이념 논쟁으로 뜨겁네요.

    • 수비니우스 2019.07.09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거없는 매카시즘으로 언제든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거든요. 마치 일본 넷우익처럼 말이죠.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자세로 언제든 북진할 준비를 해둬야 협상에서 실리를 얻기 쉽습니다. 이북 사람들은 안타깝습니다만, 북괴 정권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우리가 그들까지 포용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저들이 쳐들어오면 방어하는데에 급급할게 아니라 조그만 도발에도 언제든 북쪽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건 '가장 나쁜 평화'이죠.
      전 개성공단을 훨씬 큰 규모로 확대해서 북한 사람들이 남쪽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체득하게 만들어서 북한 체제가 붕괴되게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초코파이와 라면 같이 우리에게는 저렴하지만 저들에게는 비싼 물품을 마구 풀어주고요. 물론 북괴 정권에게 개성공단을 몇배 키우자고 하면 위험성을 알고 거부하겠죠.

    • 00 2019.07.09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짝에 붉은혁명이란 닉네임이 쓴 내용은 아무리 봐도 문재인이 친중종북공산주의자에 이념에 매몰돼 나라를 파멸로 몰아간단 조롱같은데 알타리무가 누구길래 저러는지 의문이긴 합니다, 유명한 ㅄ 아니면 트롤로 짐작됩니다만

      하기야 문재인과 친노세력이 정말 주제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다 오로지 한국을 이렇게 부흥시킨 대기업집단을 우선순위마저 뒤지는 재벌개혁을 한답시고 좌파사상으로 파멸로 몰아가 이괄의 북방군을 허공으로 날려버린 상황을 재현한 뒤에 자초한 병자호란에 직면한 조선처럼 일본놈들과의 감당안되는 경제전을 스스로 불사하는 행위를 보면 정말 최순실이 훨씬 더 능력있는 통치자였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7월입죠 :-)

    • 웃자웃아 2019.07.09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재인이 좌파사상으로 파멸로 몰고있다고 하는데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신 자유주의입니다. 국민들을 쥐어짜서 기업에 퍼주는 형태로 국가개입을 하는거지요. 이런 정책이 어떻게 좌파랍니까?

    • 최홍락 2019.07.0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신자유주의 얘기가 나와서말인데 한국은 경제정책에 있어서 신자유주의가 제대로 적용된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누가 정부를 잡았던간에 국가의 개입이 과도할 정도로 강했던건 아니었는지ᆢ

      그리고 최근 몇년간 대기업중에서 한꺼번에 날아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연쇄부도가 났었던가요? 그게 의문이네요.

    • 수비니우스 2019.07.09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년에 댓글중에 올해 하반기에 조선쪽에 대규모 부도가 날거라고 했던것 같은데 이제 얼마 안남았군요...

    • 최홍락 2019.07.0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비니우스/ 원래 산업 예측이라는게 정말 힘들어요. 눈에 보이는 확정된 회계지표도 다음 분기에 뒤집히는 경우도 허다하다보니ᆢ 그리고 외부 변수는 통제안되는게 많아서ᆢ

    • 00 2019.07.09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비니우스는 딱 보니 정권비판 및 사태책임론을 적나라하게 논한게 듣기 싫다고 비등점 낮게 행동하는게 뭐 말 한대서 알아들을것 같지 않지만 웃자웃어님.

      말씀 잘했습니다, 어브노말의 뉴노멀화가 일상화된 2010년대 초에 그런건 반론이라기엔 힘들지 않겠어요? 알면서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는 것 같지만 독자배려차원에서 논하자면 초엘리티즘 마크롱, 극포퓰리즘 트럼프도 각각 정책실현상 대안우파, 신좌파와의 결합으로 비정통노선을 걷되 본질이 둘다 우파색인건 선명합니다.(박정희 의 극우성향을 변호한다고 아마추어 학자나 지지자들 중 수출중심성장이 국가주도형인 고로 계획경제고 다시말해 좌익경제이념이라며 줏어섬기는 경우를 본다면 이런 정책결합이 반론으로 제공되는건 공허해서 피로감이 오죠) 이 선명하다는 것의 적용이 문재인의 색에 된다면 문재인은 빨간색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친노잔당 파벌에서 어떻게 문재인같은 극좌인물이 나왔는지 노무현의 파멸을 보면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안간다고 합니다. 97년 아시아 재정위기 이후로 한국이 신자유주의가 아닌적이 없다고 하신 말이 틀리지 않단 말입니다. 한미FTA추진주체가 노무현이란건 말할 필요가 없고 노무현은 친북+반미란 본인의 특색을 제외하곤 경제대통령이었단건 더 중요한 특기사항입니다.

      노무현은 파랗디 파란 경제적 극우주우의자였던건 접근을 해도 피상적이거나 지적이 덜됩니다, 수비니우스는 비꼰답시고 시위를 때려잡네 어쩌네 거론을 했겠지만 노무현 임기를 몇 안되는 서구권 한국 현대사 서적에서, 미국도 아니고 유럽에서 평가하길 폭력과 시위로 얼룩져있었고 사회는 경찰국가화했으며 인권은 유린됐다고 대개들 평가를 해요, 전경폭력으로 죽인 농민만 둘이고 죽은 노동자가 하나에 평택 대추리 사태는 518 이후로 자국내에 경찰력도 아니라 군사력을 투사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노무현은 극우주의잡니다. 일베가 노무현에 그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노무현의 정치외교를 제외한 모든 본성이 자기들과 일치한단걸 알기 때문이라는 판단은 그냥 헛된 망상이 아니고, 웃기지 않어요?

      때문에 노무현은 주요 지지세력인 좌파, 주사파들...박근혜 탄핵헌재에서 해산한 민노당같은 용공세력은 논할 가치도 없고 당시 친노세력에게도 고립되어 지지율 20프로 미만으로 가드칠 방어벽도 없이 비참하게 자살하고 말았고 말입니다.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문재인의 현실괴리적 극좌행보 및 대미,대북관을 제외하곤 스스로의 선배와도 판이하게 다른 경제관은 이변이긴 합니다. 극좌파인게 이변이죠. 뭐 물론 노무현이 등신불이 돼서 죽도록 방치하고 박정희를 방불케하는 신격화화 인신숭배를 가속한 친노세력에게는 문재인은 민족의 메시아로 보일듯 합니다.

    • nasica 2019.07.13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00님, 반말이나 욕설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삭제합니다.

  5. 백군파 2019.07.09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러일전쟁에도 관심이 많은데,중간과정이나 뒷배경 다 떼어놓고 단순하게 결과만 놓고 보면 서유럽 전체를 재패한 나폴레옹의 프랑스를 이긴 러시아 제국이 90년쯤 뒤에 동양의 농업 국가였던 일본에게 패배한게 참 기이하네요.결과만 놓고 보면요.'노랗고 키 작은 동양인'들에게 수모를 당한 직후 1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가 독일제국과 동맹국들에 의해 패망 직전까지 몰리고 시민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겪기도 한 거 보면 니콜라이 2세의 문제려나요.붉은 군대가 가는 곳마다 생사람 많이 잡긴 했지만 왜인들은 잘 잡았죠.

    • 00 2019.07.09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산주의는 파멸의 지름길이지만 그래도 당시 동유럽 인민들의 사회,문화,인종적 수준이 속된 말로 문명경쟁에서 뒤진 아시아 황둥이들보단 높았단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레이시즘적 발언이긴 하되

    • 수비니우스 2019.07.09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19세기 초에 러시아가 프랑스를 꺽었던건 종심 깊은 국토 덕분이었고 20세기 초 일본과 싸울땐 그걸 살릴수 없었으니까 진거죠. 사실 몇번 전투에서 털리고도 버틸만 했으나 기초경제의 부실함으로 인해 피의 일요일 사건 등이 일어나는 바람에 경제력 파탄 직전으로 버틸 수 없던 일본이 이긴걸로 쳐준거라... 뭐 00님과 저같은 황둥이들보단 문명경쟁에서 앞서는 흰둥이들의 전문가적 시각을 찾아보시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최홍락 2019.07.09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폴레옹 전쟁과 러일전쟁의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대차게 두들겨 맞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상대방 역시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 공통적이긴 한데, 전자의 경우 러시아와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도와줄 우군이 많았다는 점, 후자의 경우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점이 큰 차이가 아니었나 싶네요.

    • 수비니우스 2019.07.09 16:1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고보니 나폴레옹 전쟁땐 영국이 러시아를 도와줬는데 러일전쟁 땐 영국이 러시아를 조지려고 그레이트 게임을 수십년째 하고 일본한테 돈빌려주고 있었죠. 영국의 돈이란...

    • 백군파 2019.07.09 1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비니우스/어이쿠,저 역시 저열한 황둥이에 불과한데 어딜 감히 백인 나으리들에게 말을 걸겠습니까.ㅎ

    • 최홍락 2019.07.09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황인종은 눈이 째져서 조종능력이 후달린다던가 미군은 나약해서 돌격하기만 하면 도망간다고 했던 주장들이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겁니다.

    • 백군파 2019.07.09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딴소리지만 일부 백인들은 물론이고 일부 황인들까지 못 살고 어설프다고 멸시하는 흑인들조차 전투,특히 백병전에서는 아주 우수하더군요. 미군 내 흑인 병사들은 우수하다고 인정한 한국전쟁기 중공군의 보고서를 인터넷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인종차별 나빠요.

    • 최홍락 2019.07.09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종차별에 반말까지...가지가지 하네요.ㅉ

    • 기리스 2019.07.13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초 러시아가 전투에서 허구언날 깨지다 보니 항복하고 졌다기보다는, 러시아가 막판에 시베리아 철도로 육군을 수백만 단위로 끌고와 배에 욱여넣어 중간에 몇 명 죽든 말든 일본 본토에 상륙시켜 밀어버리겠다는 계획을 실행하려 들자, 일본 밀어주던 미영이 그쯤 하시죠 하고 중재 들어가 어떻게든 끝낸 거죠.

      덕분에 일본은 명목상 승리자로 조선에 대한 이권을 러시아로부터 넘겨받는 등 이득을 취하긴 했으나, 배상금을 한 푼도 못 받아 경제가 개판이 되는 바람에 국민들이 빡돌아 2차대전까지 가는 후유증 제대로 겪게 되죠.

  6. reinhardt100 2019.07.09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에 글 쓴 기억 해보니 이렇게 나폴레옹 전쟁사에 댓글이 많이 달렸었나? 싶네요.

    무슨 이유로 댓글이 달렸는지 나중에 봐야겠습니다.

  7. 하이텔슈리 2019.07.09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갑자기 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봐도 분탕질하는 인간들이 왜이리 몰려든건지...

    • 경제가문제다 2019.07.09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 일전에 새신부 어쩌고 PC관련글 나간 뒤부터요, 알음알음 알던 블로근데 마커 붙고 좌표가 생겼을걸요

  8. 경제가문제다 2019.07.09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롤러라 하더라도 위에 한일갈등 이야기가 어쨌든 이미 언급되고 영불간 통상경제전을 포함한 총력전 이야기도 기왕 나왔으니 이야길 피하지 말자면 이번 한일경제전에서 문재인 정부는 균일하게 정면대결을 상정하고 있던것 같던데요, 문재인 정권이 외교적으로는 아주 균일합니다. 위에 트롤들이 말했다지만 친중, 친북, 반일, 그리고 무소불위의 현 미국을 상대로 감히 적성국 말고는 내지도 못하는 다른소리를 계속 내는 한국은 몰라도 현재 정부가 미국에겐 잠재 반미로 구분되리라는건 가능성 차원이 아닙니다. 한미관계 파탄이 그래서 났느냐는 질문을 반론으로 위에서 몇분이 하던데 낙관론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과격언사들이 오가면서 화해치유재단이나 최무당 아이갸기 나오던데 한참 잘못짚었어요. 이건 맞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거 든요? 틀리면 틀리지 무슨 말인가 싶겠죠, 그리고 틀렸다면 싸워서 고쳐야하고 대일적대도 가능하고 하고. 헌데 맞다 틀리다 개념 자체가 안 생겨요. 차마 직면할 자신이 없어서 국력경쟁 전방참모 기업총수들 제외하곤 전부 쉬쉬하고 있지만 암튼;;
    누가 싸움에서 지기를 바랄까요, 이 한일갈등은 승패가 없습니다. 패자뿐인 싸움이란 말이 아니고 승,패 개념이 생기지 않아요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되고 일본정재계는 지금 한국같은거 쳐다도 안보거든요. 중국이 일본은 12년래로 눈에도 관심도 안주는 것처럼.

    최전성기던 이명박 정권 당시 이후로 한국은 피크에서 쇠락일로에 일본은 2020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10년전 금융위기로 소니 파나소닉 등 나라의 기둥뿌리가 입었던 피해는 하나도 남김없이 회복하거나 더 강고해진데다 30년 동안 이만큼 강력하던 적이 없는데, 한국의 적성국가로 일본은 일본하고 중국의 대결이 성립이 안되는 거랑 같대도 과장이 아닙니다

    순시리가 맞냐 틀리냐? 논의의 실익이 없다니까요, 나폴레옹은 포위해오는데 프로이센 참모들이 회의만 9시간 하던거랑 같은 행동으로 보이지 않나요?

    병자호란이요....? 지금 한국 정부는 나폴레옹한테 최후통첩부터 던지고 대사관 계단에 칼갈아대던 프로이센입니다, 나폴레옹이 저런 바보일줄 몰랐다면서 실실 웃은것처럼 일본정부는 한국 비웃고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해요. 그리고 나폴레옹에 찌발린 당시 프로이센과 주력산업이라곤 모조리 가사상태고 한국 전투력은 비교도 못하고 말입니다

    국내 선거용으로 아베가 이용한 도발이라고 위에 한분이 그러는데 한국정부가 강경론으로 나가면서도 협상에 나서라는 저자세를 보이는건 화강양면전술이 아니라 자기들도 아베랑 마찬가지라 그런거라는 자기성찰은 안 할 수가 없어요,

    하노버 문제로 참지 못하고 프리드리히 당시의 환상에 젖어서 최후통첩부터 날리며 대사관 계단에 칼 가는등 있는대로 쇼는 다 하다 프로이센은 군대라도 있었지 한국은 일본 상대로 정말 끝까지 가보자고 할수 있는건 하나도 없이 딱 2개 있습니다. 천조국님 바짓가랑이 잡고 살려달라고 빌든가 아니면 중국에 앞으로 미국을 등지고 영혼을 팔게 살려달라고 빌든가.;;;

    미국을 상대로 웅대한 군사력 외교능력, 잠재력을 바탕으로 고난의 행군을 하는 중국, 이란같이 한국은 저 자리에 일본을 대입해도 비슷한 상황은 커녕 몇달만에 옥쇄하고 백기투항하거나 그냥 백기투항하는거 말곤 돌려볼 시뮬레이션이 없을겁니다. 이 외교정책의 핵을 지키는 일부를 제외하고 모르는 각료가 정부에 없지 않을텐데도 이네들도 그걸 못하는 이유는 통첩부터 꺼내고 먼저 돌계단에 칼을 갈아대던 인간들이 자기들이란걸 알고 있고. 국민들도 알고 있고, 몰라도 내년 총선이 내년이니 강경론을 거뒤들일 수가 없단건 한심하면서도 이해가 됩니다.. 예 내년이 총선인건 이 나라도 그렇다고요. 문제는 총선이 아니라 개박살이 나고나서 불어닥칠 정권심판론이나 패전책임을 지고 날아갈 정권도, 그리고 그것보다도 한국이 경제전 다음에 재기할 여력이라는걸 모르지도 않겠지만 저러는 거예요,

    오늘 살아야 다음에 다시 싸운다는 진실을 마주할 담대함을 뒷받침하려면. 프로이센이 나라는 붕괴하고 왕제는 전사하고 왕비는 애걸하다 죽고 포로들은 쇠고랑차고 시내행군하던 그런 개굴욕에 버금갈 치욕을 생각해봐도 좋을텐데. 지금 위정자들은 맨발벗고 달려가 읍소하는 역할은 재벌총수들로 충분타면서 자위하고 의병이니 뭐니 하면서 무슨 국가총동원령을 연상되게 만드는 국내단결을 선동하고 자기들이 도게자해서 밡을 핥으라고 아베가 요구해도 손에 가진걸 지키려면 그래야 한다는 처지인걸 알까요. 그 처지가 한국인걸

    저 재벌 총수들이라도 수치를 모르고 치욕을 모를까요, 아무리 적폐라고 욕을 먹어도 지금만큼은 샤른호스트나 탈레랑처럼 보입니다 정부관리들에 비하면. 그런 의미에서 타국 정상들한테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핥고 빨아달래도 들어주는 내시상 아베는 정말 자기를 돌보지 않는 책임있는 정치인입니다

    • 수비니우스 2019.07.09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제가문제다님은 현정부 남은3년 이내에 한미관계가 파탄날거라고 보시나요?? 이 한일갈등은 승패가 없는게 아니라 한국의 패배로 귀결될거라는거 아닌가요??

    • 경제가문제다 2019.07.09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미 예전과 다릅니다, 그렇죠?

      한국 뿐만이 아니라 미국 자신이 먼저 변해서 전세계 적성국과 우방국을 상대로. 다만 보통의 우방과 차별화된다면 열전하고 냉전을 오가면서 세계 패권을 두고 한국전쟁상 자기가 직접 관여한 혈맹이라는 타이틀인데,

      국제관계에 영원한 우방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질문받으면 뭐라고 답할것 같으십니까, 안물어봐도 알것 같은데요

      이미 나있을거 같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더 현명할거란 생각은 안하세요?

      그리고 승패는 싸움이 있어야 납니다, 한국은 싸움이란 말을 거론하기도 민망합니다

    • 백군파 2019.07.09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경제가문제다/중국에 구원을 요청해도 들어주긴 할까요? 미래라면 모를까 현재 중국에 과연 그럴 역량이 있는지는 의문이네요.있다 하더라도 그 힘을 우리를 위해 써줄지도 의문입니다.일본이 첫 카드로 내민 안 팔겠다는 물건이 일본 혼자서 90%를 생산하는 것들인데,후발주자인 중국에서 과연 충분히 구할수 있으려나요.

    • 경제가문제다 2019.07.09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군파/역설화법이죠. 알면서 왜 물으십니까, 미국의 중재 말고 답은 무조건 항복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절을 받아야 할 입장이 굴욕적으로 항복할 상황까지 누가 사태를 비화시켰냐면 연달아 비화될 책임론이 불가피하고 심판론이 뒤따르면 정치적으로 구상하던 백년 대계가 무너질거란 생각에서 저러고 머뭇거리고 있다면 이 정부는 이적이나 매국은 다양한 형태가 있단걸 남들이 강제로라도 깨우쳐줄 필요가 있고요

      그냥 과격하게 말해볼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민족의 생존자산을 정권을 잡은 지금 이 시기 자기가 아니면 안된단 독재자의 전형적 마인드로 미래세대로부터선 수권도 받지 않은 권리로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민족이 백년 천년 먹을 양식을 파괴하고 있죠,

      국가를 대개조하겠다는 욕망은 마크롱과 같지만 20% 지지율로 온 나라를 상대로 싸우는 그런 역량과 정치력도 찾아볼 수 없고요, 그런 프랑스 대통령은 범국민적 반대를 맞아서 당신들이 옳다고 자기를 굽히면서도 대토론으로 정책추진의 동의를 얻으려는 절차적 시늉을 했지만 추진의 자기독선만큼 굽힐수 없는 최우선 순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체면하고 자존심입니다. 대통령과 그 선민의식에 흠뻑젖기만 했지 2년간 보여주기론 별 능력도 없는 이너써클은 미국이란 사상최강대국의 아량을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를 월장한 자기들의 민족판타지로 탕진하다 그 응석을 안받아주는 적성국의 공격에 무대책으로 당하고 있죠, 한심하다 못해서 꼴사납고 세상에 이런 무책임한 종자들이 게 있어서는 안된단 생각까지 듭니다.

      의도 자체가 의문스럽고 과격한 표현은 저기 위 댓글들에서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비난하는 그 내용은 그다지 틀린게 없어요

    • 수비니우스 2019.07.09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알겠습니다.

  9. reinhardt100 2019.07.09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간해서는 나폴레옹 전쟁란에는 이런 글 쓰는거 자제했습니다만 개전과 동시에 이미 승패가 결정난 전쟁 아닙니까? 이 지경까지 간 것만으로도 이미 패전 확정인데 말입니다.

    솔직히 프로젝트들하면서 숫자들과 연일 격투를 벌이고 있지만 절망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길 수가 없는 경제전을 벌였다는 겁니다. 국산화가 애들 장난으로 보이는지? 기술격차? 정책금융가능 자금 수준? 볼 때마다 아무리 봐도 절망 그 자체더군요.

    제가 예전에 한미간의 경제전에 관해서 댓글 단 기억이 나는데 그때도 백전백패라고 했지만 이것도 똑같은 결론이 나더군요. 무슨짓을 해도 계전가능기간은 4주. 그 이상가면 후유증은 심각하다는 겁니다.

    • ourfuture 2019.07.10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게 차라리 전화 위복의 기회가 최서 친일독재잔당이 대거 말소된 것과 같이 한국 민주세력 내에서 항상 암덩어리 처럼 작용했던 친북 민족주의 공산주의자들이 조금이라도 정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독재잔당이 드디어 사라지자 이집트 혁명을 변질시킨 이슬람 원리주의자같이 한국에선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은 종북주의자랑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찬탈했어요

    • reinhardt100 2019.07.10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내년 선거 중요할 겁니다. 여기서도 정신 못 차리면 진짜 희망 없습니다. 어쨌건 정권 교체는 반쯤 기정사실로 되는 듯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미 어떻게 패전할지는 답이 나왔지만 경제전 이후 무조건 항복의 조건이 어떨지 솔직히 겁날 지경입니다. 양국간 격차를 완벽히 벌려버릴 수 있거든요.

      빗나간 이야기지만 이번에 패전 후 일본은 반드시 요구할 것이 있습니다. 일본군 부활과 더불어 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화 인정, 일본의 안보리상임이사국 진출 동의.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요구할 것입니다.

    • reinhardt100 2019.07.11 1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구벌레) 교육을 건드렸습니다. 이건 북핵보다 정권안보차원에서 더 무서운 건데 대놓고 자사고 조진 겁니다.

      학부모들 입장에서 결코 좋아할 게 아닙니다. 자사고 조지면 외고가 우세해지는데 문제는 진보로 분류되는 교육감 자제분 일부가 외고 출신이라 누가봐도 표적으로 자사고 조진거라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사심으로 교육, 그것도 수능날 군용기 운용까지 통제하는 나라에서 그걸 건드렸으니 정권이 남아나겠습니까? 노무현 시절에 교육 건드렸다가 정권 뒤집혔죠.

  10. 데카르트 2019.07.09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격론으로 말하자면 트롤러에겐 말할 자격이 없지만 수비니우스님은 확실히 세번째 트롤럽니다. 여기서도 그렇고 저기 장세도의 택시썰에서도 그렇고...항상 보면 복어병처럼 예민한 신경, 자동반사적 공격이 습관이 돼 있거든요, 기분나빠도 한번 들어보십쇼. 저기 장세동썰에서 나타난 모습을 보면 이런 자기만족말곤 아무것도 얻을게 없는 블로그 댓글에 자기확신으로 똘똘 차 있는듯한 모습에 비추면 모를수도 있을것 같고, 항상 반응이나 대응책이 그러한걸 보면 그런게 뛰어난 행동이라고 착각하고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루리웹이나 옛날의 엔하위키에서나 통할 말의 기술입니다. 두 사이트는 차일디쉬한 찌질이들하고 말따먹는 궤변론자의 사랑방으로 여겨지고있고 여겨졌죠, 나무 위킨가는 이미 통베나 야갤이 돼버렸던데 이야기를 말자고요

    하지만 여긴 처자식 있는 어른의 개인 블로그입니다. 게시판이 아닙니다, 트롤이 나타났다고 트롤이 뭔가의 정치적 논제를 꺼낸다고 참지 못하고 기어코 트롤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을 자기가 한다는 의식은 들지 않는지? 확증편향적인 부류하고만 어울려서 지적을 안듣는건 아닐거라고 봅니다만 다른데선 그래도 여기서는 정말 유치한 태돕니다. 그냥 무시를 하세요. 어째서 일부 트롤러가 나타났거나 정치논쟁으로 기싸움하면서 남의 블로그에 좌판을 깝니까. 위에 00이란 분탕이 쓴 비등점처럼 쉽게 끓는 사람은 저렴해 보입니다, 그러면 언어의 설득력도 떨어지겠죠. 항상 신경을 건드리는 내용을 보면 매번 자동반사로 대꾸합니다, 수비니스트 님은요, 남의 블로그에서, 매번 그래도 질릴텐데 무시하고 군기반장은 그만해보는게 어떻겠습니까

    • 수비니우스 2019.07.09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한동안 여기서 댓글 안달았었죠. 1년 가까이 안달았던것 같은데... 뭐 저도 트롤러라고 하니 조용히 있겠습니다.

  11. 데카르트 2019.07.09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군님, 최홍락님 대응이 제일 좋군요

  12. 중산 2019.07.10 0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글 연재를 보러 왔으면 글만 조용히 구독하고 갑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로 가기를 누르면 될 일을 왜 분탕을 치지 못해 안달인겁니까?

    • reinhardt100 2019.07.10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즐겁게 글을 보려고 해도 예의를 안지키면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이 있다보면 법봉을 들고 싶을 때가 있죠.

      저도 저번에 여기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들어봤는데 막말로 진짜 면대면으로 만나면 고개도 못들 인간들이 어디서 버릇없이 함부로 말하는게 아주 기분 더럽더군요. 진짜 법 무서운줄 모르고 명예훼손으로 형사사건으로 입건되서 걸려봐야 정신차릴 분들 여기 몇분 있습니다.

      이번기회에 잘 되었습니다. 명예훼손 걸릴 문장 다시는 못 쓰게 해야 합니다.

    • 수비니우스 2019.07.10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reinhardt100님 동감합니다.

  13. 수비니우스 2019.07.10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롤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을 해서 많은 분께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단순 공감 외의 대댓글은 달지 않겠습니다. 괜한 내용 써서 나시카님께 죄송하고 마지막으로 나시카님께 00님이 저에게 반말을 한 댓글을 삭제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최홍락 2019.07.10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구벌레 / 짐머만 전보 사건이나 진주만 공격 전까지 미국이 먼저 전쟁 못해서 안달난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만...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있을때 전시에 전방에 나와야할 일이 있었나요?

    • 최홍락 2019.07.10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대로 서지못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게 님이 보시기에는 웃기신가 봅니다.

      군통수권자는 전방이 아니라 후방에서 군수계획, 동원계획, 출구전략 등 전체 시스템을 조율하는 것이 전략에 더 부합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을 바로 박밍아웃이라고 받아치는걸 보니

      헬반도 내지는 2등 시민 운운하시는걸 보니 참 답이 안나옵니다.

    • 최홍락 2019.07.10 1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심같은건 없고 굳이 누구처럼 사라지겠다고한 적도 없고 그쪽이 신경쓸 일도 아닌 듯 하네요. 그리고 갖잖다가 아니라 같잖다라고 써야겠고요ㅋ

    • 최홍락 2019.07.10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쪽의 그만하렵니다도 도망가렵니다로 알고 저도 그만하렵니다.ㅋ

    • 기리스 2019.07.17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심같은건 없고 굳이 누구처럼 사라지겠다고한 적도 없고 그쪽이 신경쓸 일도 아닌 듯 하네요. 그리고 갖잖다가 아니라 같잖다라고 써야겠고요ㅋ

      남에게 문법 지적하시기 전에 자신의 기초적인 띄어쓰기 오류부터 수정하시는 게 좋겠군요....

  14. 데카르트 2019.07.10 2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념성이지만 아이러니한 이야기 하나 해봅시다,
    묵은 농담인데 한국은 지도자를 수입해와야 한다는 그 생각이 지금 듭니다.

    한국의 식자, 식자중에서도 톱티어 식자들은 일본한테서 사과나 뉘우침을 받아내려는 역사적 결의를 한국 국민이 포기해야한다고 합니다. 조선놈들은 조선이 힘없고 하찮은줄 알아야 하고 일본놈들은 까마득하며 가망이 없다는 겁니다.
    일본놈들은 그 족속 대다수마저도 한국의 태도변화가 없으니 협상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다수인 고로 일본의 비타협은 국민적 지지까지 받고 그 힘센 왜놈들은 세계에 친구마저 많다는 그런 논린데.....

    나시카님 블로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폴레옹 칼럼인데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왕으로 채용되는 파틉니다
    https://nasica1.tistory.com/180?category=70628

    어째서 외국에서 지도자를 수입해와야 되느냐는 농담을 언급한 이유가 이렇습니다.ㅎㅎ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국민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 즉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임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북구의 ♪♩♬♬ 스웨덴 사람들이 국제 사정을 몰라서 가진 소원일 뿐,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사람들의 소망을 처리하는데 있어, 자신이 그저 지시받은 목표를 무조건 수행해내는 단순무식한 장군이 아니라 목표 설정 자체부터 재검토하는 진정한 국가 지도자급 인물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증명해보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는 떠오르는 강대국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나폴레옹의 힘을 빌어 일시적으로 되찾아온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 결국 반드시 러시아와 끝없는 전쟁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

    나시카님의 칼럼 중 이 부분을 누군가는 마치 지금 한국 상황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고 할 겁니다
    나폴레옹의 힘을 빌었어서 핀란드를 되찾아온다? 저건 마치 오바마가 화해치유재단을 중재한 그 사태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일본은 하등 불리한 협상을 할 필요가, 그러니까 현재처럼 다까끼 마사오때 다 끝났다며 쌩까도 하나도 손해볼게 없는데 미국의 강요로 이뤄진 당시 사태에 아주 분노했다 합니다

    전 궁금합니다, 나시카님은 이 한일분쟁에 있어서 저 베르나도트의 판단에 바친게 정확히 꿰뚫어봤단 찬사였던 것처럼 지금의 한일국면에서도 상기 소개한 국내의 시선. 약소국인 한국국민의 사상이 변해야 한단 그 주장과 같이 여기서도 베르나도트의 판단을 옳다고 여기시는지 말입니다

    한국 국민의 반일성향은 위험한 욕망인가요? 베르나도트의 저런 정확한 판단처럼?
    한국 지도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요 베르나도트의 저 판단이 정확하다면 그냥 오바마의 딜을 받았어야 한단 말인데..
    모르겠습니다 전, 한국은 당시 스웨덴보다는 아직 등따습고 배부르니까 고민할 여유가 있다고 말해버리면 끝이지만 말입니다 머

    • 데카르트 2019.07.10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심지어 베르나도트처럼 협상을 강제했던 검은 히틀러 오바마는 외국인이기까지 하군요!

  15. 2/28일 입대 2019.07.11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조리있고 재미있는 글 늘 감사드립니다.

  16. 일반시민 2019.07.11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재인은 어제 대기업 경영자들을 불러다가 장기전을 대비해라고 했답니다,
    맙소사

    아, 원숭이들이 대북제제위반을 규제명분으로 삼은덴 막다른 길로 가지 말라고 그랬다네요

    뭔가 자기의 마음 속 민감한 부분을 아베가 건드린것 같습니다 항상 문재인은 북한에 민감했지요

  17. 일반시민 2019.07.11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BSCNBC에 오늘 패널로 출연한 국제통상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디다,
    한미일 동맹 삼각공조는 이미 워싱턴이 선택해서 변했고 오사카 G20에서 식민번국 제후 아베는 트럼프 태황제의 윤허를 받고 이번 대한국 공격을 시작한 거라고, 최소 터치는 안하겠단 허락을 받고 한다는 겁니다

    이제 문재인은 과연 뭘 할수 있을까요?

    아베한테 신속히 표정바꾸고 절이라도 할까요?
    아니면 나라가 거덜난 다음에 끌려가서 몸값내고 나올까요?
    그리고 아마 대한민국 굴욕의 날이라면서 비극의 영웅으로 둔갑하고 선동고무전에 써먹을까요? 다음 대선을 위해서?

  18. zizone 2019.07.13 14: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뭐야 이게 댓글들이 나폴레옹 얘기가 아니라 정치얘기 한가득이네...;;;;

  19. 돌격대장 2019.07.14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글을보게워된지 6개월 정도 되었지만
    이제서야 덧글을 끄적여봅니다.
    나폴레옹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인지 관련서적들이 구하기가 어렵더군요
    ㅜㅜ 책이 있어도 제가 좋아하는 전투나
    전쟁부분이 그냥 지명 병력수 결과만
    나열하는 느낌이라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죠.또 나폴레옹이 천재라고 하면서
    그같은 천재가 왜 극악의 땅인 스페
    침공했는지 그 경위를 알려주지않았는데
    나시카님의 글을보고나서야 비로
    알게 됬지요.이런 유익한글들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리고 혹시 러시아 원정이 끝난
    이후엔 포니아토프스키 특집을
    부탁 드려도될까요 개인적으로 장
    란 원수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라
    생각되서요.이만 줄이겠습니다.ㅎ

  20. 한슬 2019.07.19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글은 역사글로 봐여지 왜 자꾸 문재인 얘기가 나오나요?

    • 육식동물 2019.07.20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 소유주께서 평소에 정치지론을 많이 펴시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정치관련글이 댓글로 작성돼도 그걸 수용하시는 원인이 거기 있을 것이고 높은 확률로

      본인이 나폴레옹 역사글에도 가치관 피력 및 역사평가를 함유하시고 이 블로그의 나머지 글은 거진 그런 글이니..

    • 기리스 2019.07.20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글에 정치성 코멘트가 팍팍 들어가는데 왜 자꾸 역사글로 봐야지 같은 얘기가 나오나요?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드르는 독일 출신 할머니와 독일 출신 어머니를 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 할머니는 처녀적 이름이 안할트-제릅스트(Anhalt-Zerbst) 출신의 소피(Sophie)로서 나중에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 대제로 알려진 러시아의 여황입니다.  알렉산드르의 어머니는 뷔르템베르크 출신의 공주였지요.  다른 유럽 왕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는 이렇게 계속 외국 특히 독일 출신의 공주들을 왕비로 맞아들이다보니 러시아 왕가는 일반 러시아 국민들은 물론 러시아 귀족들에 비해서도 서구의 발전된 문물과 사상에 대해 좀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춥고 먼 동쪽 구석의 러시아를 서구화시키는 노력은 대개 국왕을 중심으로 위로부터의 혁신이 위주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귀족들과 국민들은 그런 서구 사상의 침투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반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 전통은 알렉산드르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위스 출신의 공화주의자인 라 아르프(Frédéric-César de La Harpe)를 가정교사로 하여 루소 등의 프랑스 계몽사상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당연히 그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유럽 어느 나라보다 더 지독한 전제 군주 집안에 태어난 왕자로서 계몽사상에 젖어든 어린 손자 알렉산드르를 보고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꼬마는 자기 모순의 매듭덩어리 같구먼."


(라 아르프입니다.  그는 30대를 러시아에서 알렉산드르의 가정교사로 보낸 뒤, 베른의 귀족 정권에 시달리던 고향 스위스 보(Vaud) 지방을 해방시키고 더 나아가 스위스에 헬베티카 공화국(République Helvétique)을 만들었습니다.  혁명의 폭풍 속에서 그는 추방을 당하는 등 시련을 겪었으나, 나폴레옹이 패망한 이후 그는 옛제자 알렉산드르의 도움으로 그의 고향 보 지방의 권익을 지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물려받은 전제 군주 짜르의 왕좌는 결코 절대 권력이 보장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그의 할아버지 표트르 3세(Pyotr III )는 그의 홀대에 불만을 품은 근위부대의 반란으로 황비인 예카테리나에게 황위를 빼앗기고 결국 암살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파벨 1세(Pavel I) 또한 귀족 출신의 해직 장교들에 의해 아주 간단히 암살되었습니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이어 암살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표트르 3세나 파벨 1세나 모두 농노들의 처지를 향상시키고 귀족들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공통적인 개혁 조치를 취한 바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먼 동구의 대국으로서 소수의 전근대적인 귀족들이 노예 상태의 국민들을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가령 표트르 3세의 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귀족들은 자기 농노를 죽여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나름대로의 그런 전통과 특성을 무시하고 귀족들의 이익을 해친다면, 아무리 동로마 제국 황제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주장하는 짜르라고 해도 야밤에 한낱 개처럼 살해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르의 평민 출신 고문 스페란스키입니다.  그는 알렉산드르를 따라 에르푸르트 회담장까지 가서 직접 나폴레옹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귀족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그는 결국 친프랑스파이자 불온사상을 가진 자로 낙인찍혀 1812년 초에 고문직에서 해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시베리아에 유배를 간 것은 아니고, 핀란드 대학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록 알렉산드르가 서구 계몽사상으로 훈련된 개혁적 군주라고 해도 실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시골 마을 신부의 아들인 스페란스키(Mikhail Speransky)를 고문으로 등용하여 당시 계몽사상가들이 꿈꾸던 입헌 군주국으로 러시아를 탈바꿈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는 짜르가 스스로의 권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또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처럼 선진 교육을 받은 귀족 및 시민들이 많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당시 그 넓은 러시아에 딱 3개 있던 대학 수를 6개로 늘리는 등 교육 제도 개선에도 힘을 많이 썼습니다.  물론 개혁은 쉽지 않았고 알렉산드르도 주변 왕족 및 귀족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런 개혁에 대한 열의는 점점 옅어져 갔습니다.  가령 스페란스키가 제시했던 의회, 즉 러시아어로 두마(дума, '생각'이라는 뜻)로 불리는 기구는 거의 1백년이 지난 뒤 노일전쟁의 패전 결과로 발생한 1905년 러시아 혁명을 겪고서야 간신히 설립될 지경이었습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은 러일 전쟁 패배의 여파로 들끓던 사회적 불만이 '피의 일요일' 사건이 계기가 되어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포템킨 호의 반란 사건도 이때의 사건입니다.)

 



그렇게 서구 사회에 긍정적이었던 그는 처음에는 프랑스 시민 계급을 대표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에 대해 흠모하는 마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나폴레옹의 앙기앵 공작 납치 사법 살인이라는 비도덕적 범죄 행위를 보고는 기대만큼 큰 실망을 하여 반-나폴레옹파로 급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제3차 대불동맹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하여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나폴레옹의 손에 참담한 패배의 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렉산드르는 젊은 낭만파 몽상가였던 모양입니다.  그는 1807년 틸지트 회담에서 나폴레옹이라는 대인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는 나폴레옹의 매력에 젖어든 정도가 아니라 그 속에 첨벙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역시 낭만파 몽상가이자 지략가였던 나폴레옹이 제시한 프랑스와 러시아가 힘을 합해 유럽을 양분하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인도까지 점령하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도 전율했습니다.  그 결과, 분명히 바로 직전까지 영국의 금융 지원을 받으며 피튀기게 싸우던 적수인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하게도 여태까지의 돈 줄이자 중요 경제 파트너였던 영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틸지트 회담에서 알렉산드르는 무엇보다 남쪽의 숙적 오스만 투르크가 차지했던 발칸 반도 등지를 빼앗기를 원했지만, 실질적으로 러시아가 얻은 것은 핀란드 정도였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오스만 투르크는 영국의 근동 지방 전략에 저항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동맹이었고 또 나폴레옹이 구워삶아야 하는 다른 강국인 오스트리아도 오스만 투르크의 땅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에 비해 영국과 척을 진 대가는 컸습니다.  러시아는 토지 귀족의 나라였고, 토지 귀족의 돈벌이는 자신의 장원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영국에 수출하고 대신 영국제 공산품을 수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호기 있게 맺은 틸지트 조약은 러시아 토지 귀족의 이익에 크게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곧장 여기저기서 볼멘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물론 불만 세력들은 모양새 없게 '돈벌이가 안된다'라는 것을 나폴레옹과의 동맹 반대 이유로 대지는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나폴레옹은 신이 내려주신 왕위를 뺴앗은 찬탈자이고 불온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야만인이므로, 동로마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로마노프 왕조는 그 코르시카놈과 동맹을 맺을 것이 아니라 정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짜르 알렉산드르의 모후인 마리아 페오도로브나(Maria Feodorovna)까지 나서서 나폴레옹이 소집한 에르푸르트 회담에 출석하지 말라고 종용할 지경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는 자신을 둘러싼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야밤에 칼로 찔러 죽인 자들이 가득찬 왕궁에서 그들의 불만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옳은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알렉산드르도 나폴레옹이 결코 자신과 유럽을 공유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르는 어디까지나 전제 왕정의 군주였지, 결코 낭만적인 친구들로 둘러싸인 젊은 독일 대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 기반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 계기가 된 것은 나폴레옹이 바르샤바 공국을 독립 폴란드 왕국으로 부활시키려고 한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건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 오스만 투르크의 분할에 있어서 오스트리아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메테르니히가 빚어낸 가짜 뉴스였습니다.  


이유야 어쨌건, 1810년 12월 31일 발표된 짜르의 칙령은 프랑스산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고, 반대로 영국 상품에 대해서는 입항 허가를 내주는 내용이었고, 이를 계기로 나폴레옹와 알렉산드르 사이의 전쟁은 거의 기정 사실화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벌어질 전쟁은 유럽 산업화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영국 시민 계급과 프랑스 시민 계급의 싸움이었습니다.  이미 산업 혁명이 시작된데다 강력한 로열 네이비를 보유한 영국과 싸울 방법이 궁했던 프랑스가 꺼내든 대륙 봉쇄령이라는 무역 전쟁은 결국 동방의 대국 러시아를 싸움판에 끌어들였고, 결국 영국 대신 러시아가 프랑스를 상대로 대리전을 치르게 된 것이었지요.  

자신의 전쟁에 제3자를 끌어들인 것은 영국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도 혼자서 러시아와 싸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가 굴복시킨 독일과 이탈리아 등지의 위성국가들에게 병력과 물자, 자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유럽 거의 전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거대한 전쟁에 휩쓸려야 했습니다.  과연 이 전쟁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요 ?  물론 대부분은 황제가 또 전쟁을 한다면서 불만이었습니다만, 지식인들 대부분은 이 전쟁을 계기로 유럽의 근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비록 나폴레옹의 점령군 뒤에는 예외없이 무자비한 병참장교와 세관원들이 따라와 점령지의 고혈을 짜내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만, 나폴레옹의 정복지에는 프랑스 대혁명 정신을 계승한 헌법과 나폴레옹 법전도 항상 따라오기 마련이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군이 이례적으로 잔혹하게 난동을 부렸던 스페인에서조차, 지식인들은 나폴레옹이 세운 허수아비 왕 조제프의 정권이 기존 부르봉 왕정보다 스페인을 훨씬 더 근대화시켰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최소한 헌법이 제정되었고, 중세시절부터 계속 내려오던 고문으로 악명 높은 스페인 종교재판도 폐지되었으니까요.  나중에 나폴레옹이 패망한 뒤 스페인 종교재판은 다시 부활했다가 1834년에야 간신히 폐지되었습니다.  괴테 등 당대의 지성인들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일주의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나폴레옹이 동방으로 끌고 갈 그랑다르메(Grande Armee)의 전진과 함께, 신분제 폐지와 천부인권 등의 계몽사상이 저 동방까지 전달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종교재판 = 이단심문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와 나무가지, 그리고 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Yo, Say Love"를 선창하시는데 이들은 떼창으로 "No Mercy"를 외쳤군요.)

 



이제 유럽은 누가 영국과 러시아 편에 설 것이고 누가 프랑스 편에 설 것인지, 과연 중립이란 것이 가능할지 외교적인 머리를 굴려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I_of_Russia
https://en.wikipedia.org/wiki/Mikhail_Speransky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0_- 2019.07.01 0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주일의 시작을 새 글과 함께! 매번 포스팅이 월요일 6시 30분이네요.
    주말동안 글 정리 해 놓으시고 월요일 새벽 포스팅 예약 걸어놓으시는 건가 보군요?
    잘 보고 갑니다 :)

  2. 보니666 2019.07.01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항상 좋은글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을 여쭤보고 싶은데, 나시카님께서 보시기에는 결국 나폴레옹의 패망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지난 글에서 1810년의 나폴레옹은 더이상 전쟁을 개인적으로 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1. 그렇다면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끝까지 회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는 대륙봉쇄령 포기와 영국정복을 완전 포기한다는 뜻이고...유럽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를 만만하게 여기고 부르봉 왕가의 복귀를 위해 다시 침략했을 것 같고...그렇게 되어도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만약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서 승리하여 러시아까지 대륙봉쇄령에 강제로 다시 참여시키는 데 성공했더라도...결국에는, 언젠가는, 코르시카 촌놈 출신이자 전쟁의 승리로 권력을 유지했던 황제인 나폴레옹은...전쟁으로 패망할 운명이었는가요?

    3. 결국 전쟁의 승리로 벼락출세한 식민지 코르시카 출신인 나폴레옹이 새로운 왕조를 창시하고 제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며 죽는...해피엔딩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인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나시카님의 생각이 정말 궁금합니다. 고견 부탁드려요~^^

    • nasica 2019.07.01 1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1. 그렇다면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끝까지 회피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 러시아와 전쟁 회피는 결국 대륙봉쇄령의 붕괴로 이어졌겠습니다만, 그래도 나폴레옹 정권은 유지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자신은 없습니다.


      2. 만약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서 승리하여 러시아까지 대륙봉쇄령에 강제로 다시 참여시키는 데 성공했더라도...결국에는, 언젠가는, 코르시카 촌놈 출신이자 전쟁의 승리로 권력을 유지했던 황제인 나폴레옹은...전쟁으로 패망할 운명이었는가요?

      --> 러시아가 굴복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대륙봉쇄령으로 인한 경제적인 불만은 터져나왔을 것이고, 그때문에 전쟁이 반복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총칼은 절대 황금을 이기지 못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3. 결국 전쟁의 승리로 벼락출세한 식민지 코르시카 출신인 나폴레옹이 새로운 왕조를 창시하고 제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며 죽는...해피엔딩은 애당초 불가능한 이야기인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 저는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요 ? 고매한 왕가의 선조도 따지고 보면 힘깨나 쓰는 조폭단 두목일 뿐입니다.

  3. 푸른 2019.07.01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종일관 진지한 글이다가, 마지막에 "yo, say love"하는 예수님과 "No nercy~"하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드시네요ㅋㅋ 그 장면을 상상할수록 웃음이 나오네요ㅋㅋㅋ

  4. 최홍락 2019.07.01 1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 서구 사상에 관용적인 왕과 그렇지 못한 귀족들의 구도로 보기에는 당시 18세기 러시아 상류사회의 언어가 프랑스어었다는 사실과는 배치가 되는 듯 합니다. 표트르1세의 친서구정책도 한몫했지만 그래서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1635년 언어 표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프랑스 아카데미를 창설한 이래 프랑스어는 통일된 표준이라는 개념이 발생한 첫 언어라는 인식이 러시아 상류사회에 널리 퍼졌거든요. 프랑스어가 서서히 라틴어를 몰아내고 외교가에서 널리 쓰인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고요. 프랑스 대혁명 직후 프랑스를 탈출한 프랑스 귀족을 불러 과외교사로 삼는 러시아 귀족들 덕분에 프랑스 망명귀족들의 인기가 치솟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나마 러시아의 것을 지키고 러시아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나폴레옹 전쟁 때가 되서야 가능해진 일이라고 합니다. 일반 민중들이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귀족들을 백안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할정도로 말이지요.

    2. 러시아의 황제와 귀족 간의 대립은 미국의 남북전쟁의 배경과 유사하게 경제적인 갈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들어 영국과 러시아 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래 러시아의 대외교역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영국의 해군력을 뒷받침하는 아마, 철광석, 석탄 그리고 러시아의 농노들이 생산하는 밀이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이었으며, 영국은 면직물을 포함한 귀족들의 사치품을 수출했죠. 문제는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러시아의 제조업자들이 성장하면서 이러한 불공정무역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앨리자베타 여제부터 알렉산드르 2세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황실은 농노제를 없애고 농노들을 공장의 노동자로 변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지요. 그리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관세율을 높이고 영국에 치중한 무역루트를 다변화시키려고도 하고요. 물론 농토를 가진 지주 계층들은 반발하게 되는데, 이들은 기존 제도의 유지, 자유무역의 고수를 주장하게 되고요. 마치 남북 전쟁 전의 북부와 남부처럼 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미국은 북부가 전쟁을 통해 남부를 제압한 반면, 러시아는 황제(파벨1세의 죽음에는 그의 교역 다변화 정책이라는 배경도 존재합니다.)가 암살되는 등 저항이 상당히 거셌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제품의 수요처로서 영국을 대신할 수 있었다면 대륙봉쇄령이 의외로 오래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고 이는 러시아 왕실과 귀족 모두 프랑스에 적대적으로 변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스페란스키가 평민 출신의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황제의 최측근인 것과는 별개로 그의 정책이 러시아에 미친 영향은 그다지ᆢ 앞에서 언급한 교역 다변화 정책의 일환으로 1811년 중립국 무역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미국과의 교역 확대를 시도했으나 이는 결론적으로 미국을 통해 우회하여 영국과의 무역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되어 나폴레옹의 진노를 사서 러시아 원정을 촉발하게 되지요. 그가 친프랑스파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외교 상태를 가져온 정책의 책임을 물을 사람이 필요했던 상황이 스페란스키의 고문 해촉이 된 것이고요.

    스페란스키는 나중에 니콜라이1세 (알렉산드르1세의 동생으로 형 다음 왕위를 계승합니다.)에 의해 재기용되는데 이때 러시아의 법전을 재정비하게 됩니다. 이는 일정한 규범 없이 수행 되어온 국가 통치 질서에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제공함으로써, 법에 의한 국정 운영을 가능케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광무개혁의 러시아 버전. 즉, 그 질서의 목포가 전제정 및 기존 봉건질서를 강화한 것이라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근대적인 기술 투자, 교육제도, 화페 통일 등이 이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강화되 러시아의 군사력은 유럽의 헌병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유럽에서 불거진 각종 혁명을 진압하는데 쓰이고 맙니다.

  5. 궁금한 사람 2019.07.01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혹시 알렉산드르의 아버지 파벨 1세의 사망원인은 뭔가요?

    어디서는 목이 졸려 죽었다
    어디서는 칼에 찔려 죽었다
    어디서는 금속상자에 맞아죽었다 하는 데 정확한 사인을 명시한 곳은 없네요

    죽은 건 확실한 거 같은데..

  6. 백군파 2019.07.01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의 통치에 긍정적인 점이 많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스페인 지식인들까지 거기에 동의할줄은 상상도 못했네요.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 군대에 쓴맛을 본 이후 프랑스식으로 군제개혁을 해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것처럼,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의 침공 전에 정편과 개편을 통한 근대화를 추진한 적이 없나요?

    • 수비니우스 2019.07.01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이부분 관해서 아는게 없는데 추측으로는 웬지 없었을것 같네요. 오스트리아하고 프로이센이 본진을 몇번 탈탈 털리고서야 프랑스식으로 개혁했던걸 생각하면, 러시아 원정 전에는 본진이 당한 적은 없고 원정 때 모스크바는 함락됐지만 이후에 승리를 거듭했으니까 원정 전후로 딱히 개혁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을것 같습니다. 러시아 근대화 추진이 크림전쟁때 털린 뒤지 않나요?? 언제 들어도 좋은 나시카님의 자세한 설명이 기다려집니다.

    • 최홍락 2019.07.01 21: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스페란스키의 개혁이 반쪽짜리라고 평한 것과 연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요. 인적 자원 측면에 있어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귀족과 관리의 자녀들로 제한됐고 법률학교와 기술전문학교 등 중등교육기관은 꽤 늘었으나, 초등학교가 없었던 관계로 농민 내지 농노의 자녀들이 부모와 마찬가지로 문맹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군대나 산업이나 전술 내지 기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실력있는 하사관이나 초급장교들이 충분한 숫자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됬던거죠. 시위 진압이나 약탈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동시대의 서구 국가의 정규군과 상대하는건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네요. 여기에 기술력이 뒷받침이 안되다보니 크림전쟁에서 오스만투르크도 도입했던 강선식 야포 대신 청동제 활강포를 쓸 정도였던 것도 한몫을 했고ᆢ

    • nasica 2019.07.02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딱히 뚜렷한 것은 없었다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1810~1812년 사이 드 톨리(de Tolly)와 볼콘스키(Volkonskii) 등의 주도 하에 프랑스식 편제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만, 나폴레옹의 군단 편제처럼 획기적인 것은 없었습니다.

    • 최홍락 2019.07.04 0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볼콘스키 공작이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볼콘스키의 모티브가 된 농민공작 세르게이 볼콘스키가 맞는지요?

    • nasica 2019.07.04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 말씀하시는 세르게이 볼콘스키는 당시 계급이 아직 대위인가 그래서 아닐 것이고, 이 양반이 그 양반일 겁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Pyotr_Mikhailovich_Volkonsky

  7. 웃자웃어 2019.07.02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그런데 나폴레옹이 아일라우 전투를 통해 광활한 동유럽에서는 자신의 전술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는데도 쳐들어간 이유가 뭐죠?

    • nasica 2019.07.02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그때 경험을 되살려 엄청난 군수품을 준비하고 치중대를 편성했습니다. 문제는 그 당시 기술로는 그런 대군에게 장기간 군수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지요. 특히 한가지, 꼭 필요하지만 전혀 준비할 수가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다다음번에 본편으로 다루겠습니다.

  8. 중산 2019.07.02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밌게 구독하고있습니다. 나시카님 혹시 괜찮다면 나시카님의 글을 퍼가도 될까요? 출저는 꼭 명시해 놓겠습니다

  9. 웃자웃어 2019.07.14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러시아가 절대왕정체제의 전제군주정 이라곤 해도 귀족 여러명 족치는건 가능해도 귀족집단 전체를 족치는건 불가능하단겁니까?

    • nasica 2019.07.14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그게 그때그때 달랐겠지요. 확실한 것은 알렉산드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귀족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전쟁에는 돈이 아주 많이 들어갑니다.  흔히 미국이 30년대의 대공황에서 빠져나온 것이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왜 불황이 생길 때마다 네바다 사막이든 태평양 한가운데든 가상 표적을 세우고 거기에 병력과 함대를 동원해서 맹폭격을 가하지 않겠습니까 ?  결국 그렇게 전쟁하느라 쓴 돈은 누군가 갚아야 하는 법이고, 미국도 전후 20년 정도 최고 세율 90% 정도의 엄청난 소득세를 부과하여 그 비용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1913-2008 기간 중 미국 소득세 최고 세율의 역사입니다.)




나폴레옹 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모두 누군가는, 정확하게는 결국 국민 전체가 전쟁 비용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매우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한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영국은 빚을 더 냈고, 프랑스는 세금을 더 걷었다"



그냥 이렇게만 놓고 보면 프랑스 측이 훨씬 더 건실한 재정 정책을 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프랑스도 국채를 발행하여 전쟁 비용을 처리하고 싶었으나 신용불량의 전력 때문에 할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세금만으로 전쟁을 치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쟁에는 돈이 과다하게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모조리 세금으로 충당하려면 국민들에 대한 세금 부담이 너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충성스러운 국민들이라고 해도 세금을 4~5배로 올려버리면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거든요.  자동차가 꼭 필요하긴 한데 당장 그럴 돈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  보통 카드 할부로 구입합니다.  말이 좋아서 할부지 사실은 카드사에게 비싼 이자를 내고 빚을 지는 것이지요.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전선의 부대들과 바다 위의 함대들, 그리고 동맹국들이 돈을 달라고 아우성칠 때는 그렇게 빚을 내야 합니다.  


대대로 유럽의 모든 정부들은 전쟁을 위해 빚을 냈습니다.  실제로 유럽에서 처음 설립된 중앙은행인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Riksbank)도 러시아와의 전쟁에 들어가는 군자금을 빌리기 위해 만들어진 은행이었고, 나폴레옹 전쟁 기간 전후에 세워진 여러 유럽 국가들의 중앙은행들도 모두 전쟁 자금을 충당하거나 그로 인해 생긴 빚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중앙은행인 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도 독립전쟁으로 인한 빚을 처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지요.  이렇게 중앙은행이라는 것의 기원은,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전쟁 자금을 안정적으로 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각국 중앙은행의 설립과 연관된 전쟁들입니다.)




영국은 이미 100년도 전인 17세기 말에 영란은행(Bank of England)를 설립하여 전쟁 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전쟁 금융에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국채 발행이 잘 되었던 것은 금융 관료들의 유능함보다는 기본적으로 영국 정부가 꼬박꼬박 채권 상환을 잘 하여 신용을 쌓아왔던데다, 결정적으로 왕실이 아닌 의회가 국채 발행과 상환을 책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정이야 언제 무슨 정변이 나서 뒤집어질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토지와 무역회사 등 주요 자산을 소유하고 있던 대주주들로 구성된 의회는 글자 그대로 주식회사 영국 그 자체였거든요.  따라서 의회가 책임지고 상환하겠다는 채권은 전쟁치고는 꽤 낮은 이자로도 잘 팔렸습니다.  덕분에 영국은 7년 전쟁의 경우 전체 전비의 51%를, 그리고 패전으로 끝난 미국 독립전쟁의 경우 81%를 국채 발행으로 메꿀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국민들의 세금 부담은 전시에도 급증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국 국채의 신용도가 괜찮았던 것은 영국 재무부에게 결정적인 여유를 주었습니다.  잠정적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여 금본위제에서 벗어남으로써, 채권 뿐만 아니라 지폐도 추가로 찍어내어 자금조달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즉, 일정 수준의 인플레를 유발시킴으로써 기존 국채 가치를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이걸 인플레 세금(inflation tax)라고 합니다.  국민에게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통화 팽창을 통해 지폐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Lieutenant Hornblower by C.S. Forester (배경: 1803년 영국) --------------------


(아미앵 조약으로 영국과 프랑스 간에 짧은 평화가 있던 시기에, 무일푼이던 혼블로워 중위는 보직 해임 상태가 되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집니다.  결국 혼블로워는 고급 장교들이 드나드는 클럽에서 4명이서 하는 카드 게임 때 부족한 머리 숫자를 채워주는, 일종의 타짜 노릇을 해서 먹고 삽니다.)


그는 혼블로워가 가슴 안주머니로 지폐를 쑤셔 넣는 것을 보았다.


패리 제독이 말했다. "예전 화폐를 다시 부활시킨다면 더 좋지 않겠소 ?  정부가 이런 지저분한 지폐를 없애고 예전의 멋진 기니 금화로 되돌아간다면 말이오."


"그거 정말 좋겠군요." 대령이 말했다.


램버트가 말했다.  "그 놈의 육지 상어(순진한 뱃사람들을 속이는 사기꾼들)들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배들은 모조리 상대한다오.  1기니당 23실링 6펜스를 주니, 틀림없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받을 수 있을거요."  (원래 1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합니다: 역주)


패리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에 탁자에 내려놓았다.


"보니(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비칭:역주)는 옛날 프랑스 화폐를 부활시켰소.  보시오." 그는 말했다.  "이 금화를 나폴레옹라고 부른다오. 그 친구가 이제 종신 제1통령이니 말이오.  이 금화 한닢에 20 프랑이라오.  예전에는 우린 이걸 루이 금화(louis d'or)라고 불렀지요."


"나폴레옹, 제1통령," 대령은 호기심을 가지고 금화를 보며 읽고는, 뒷면을 돌려 읽었다. "프랑스 공화국."


------------------------------





(진정한 남자라면 모양 빠지게 지폐 같은 것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의 얼굴이 새겨진 40 프랑짜리 금화 정도는 누구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 아니겠습니까 ?  무게 12.91g, 순도 90%입니다.  그러나 이런 남자의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빚으로는 소도 잡아먹는다고 하지만, 모든 빚은 결국 누군가가 갚아야 하는 법입니다.  카드 할부로 자동차를 산 경우에 몇 년에 걸쳐 월급 절약하여 계속 갚아나가야 하는 것과 똑같이, 국가도 세금을 좀 더 걷든가 나라 살림을 좀 줄이든가 해서 국채를 결국 갚아야 합니다.  영국 정부는 감채기금(sinking fund, 장기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별도로 적립해두는 기금)을 설립하여, 전쟁이 끝난 뒤에 세수 잉여분을 여기에 적립함으로써 국채를 꾸준히 상환했습니다.  


영국도 마냥 빚만 낸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세금도 더 걷었습니다.  당시 영국 수상이던 소(小) 피트(William Pitt the Younger)는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근대 역사상 처음으로 소득세(income tax)를 도입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세금이란 사람 머릿수에 따라 내는 인두세와 토지 등의 재산에 따라 내는 재산세, 그리고 관세와 부가세, 소비세 등의 형태였거든요.  사람이 일을 해서 번 소득 자체에 대해 세금을 낸다는 것은 근대 유럽 사회에 없던 개념이었습니다.  소 피트가 도입한 소득세는 누진세(progressive tax)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 합니다.  즉 소득이 더 많을 수록 더 높은 세율의 세금이 부과되는, 꽤 현대적인 개념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60파운드 이하의 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이 면제되었고, 60 파운드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0.83%부터 시작하여, 200 파운드가 넘는 소득에 대해서는 최대 10%까지 세율이 올라갔습니다.   이는 나폴레옹이 국민들에게 부과했던 세금은 모두 단일 세율의 재산세와 소비세 등이었다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진보적인 조세 정책이었습니다.  




(피트 수상의 소득세에 대한 당시의 풍자 만화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 좋아하는 국민은 없지요.)




한편, 프랑스에서는 상황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의회가 권력을 가지고 있고 이미 산업 혁명을 시작했던 영국과는 국가 권력 구조와 산업 구조 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달랐으니까요.  부르봉 왕정 시절, 아직 중앙은행도 없던 프랑스는 그냥 정부가 민간에게 직접 국채를 판매하는 형태로 7년 전쟁과 미국 독립전쟁을 치렀습니다.  국가 자산 중 상당 부분을 귀족과 교회가 쥐고 있었는데 정작 그들은 면세 혜택을 받았으니 그때 쌓였던 빚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세금을 늘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설프게 삼부회를 소집했다가 터진 것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선 국민공회는 몰수한 귀족과 교회의 토지 자산을 담보로 1789년 12월 5% 이자의 공채를 발행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아시냐(Assignat) 지폐가 됩니다.  즉, 처음에는 채권이었으나, 나중에는 0% 금리의 지폐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보통 돈은 태환지폐라고 해서, 금과 바꿀 수 있는 증서같은 것이었는데, 금이 없으니 금 대신 토지와 바꿀 수 있는 증서를 발행한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의 대표적인 실패작 아시냐 지폐입니다.)




아시냐라는 저 프랑스어 스펠링을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저건 정부가 강제로 지정한(assigned) 돈으로서, 태생부터가 자연스러운 돈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이미 파탄난 경제로 인해 돈이 궁해진 국민회의는 이듬해인 1790년부터는 애당초 몰수된 토지의 총가치를 훨씬 넘어서는 아시냐 지폐를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하이퍼 인플레였습니다.  특히 정부가 인플레를 잡는답시고 생필품 가격 상한제를 강제하자, 생필품이 시장에서 싹 사라지고 암시장에서만 거래되는 등, 역효과에 역효과만 불러일으켰고, 결국 수차례의 폭동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시냐 지폐는 가뜩이나 혁명으로 어수선한 프랑스 사회를 경제적으로 다시 한번 뒤흔들어놓고 7년만에 불명예스럽게 퇴장합니다.  퇴장할 때 정부는 이 지폐를 액면가의 3.33%에 해당하는 토지와 교환해줍니다.  투자 손실율 96.67%...  더군다나 투자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프랑스는 1720년대에도, 존 로 (John Law)라는 스코틀랜드인이 일으킨, 미국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미시시피 사(社)라는 대규모 투자 거품 사건으로 인해서 지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있었습니다.  미시시피 거품 사건은, 한줄로 요약하면 존 로가 미국 땅을 담보로 프랑스에 지폐 발권력이 있는 금융회사를 차렸다가 거품으로 끝난 것입니다.  이때 프랑스인들은 지폐는 종이 쪼가리일 뿐 결코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었지요.  이 아시냐 지폐 사건은 프랑스에서의 지폐의 위치에 대해, '관 뚜껑에 못질을 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국채와 지폐에 대한 국민들의 신용이 이렇게 바닥을 친 상태인지라, 총재정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으로서는 부르봉 왕가나 국민공회처럼 채권이나 지폐를 찍어 재정난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 영토였던 루이지애나(이름 자체가 프랑스 왕 '루이의 땅'이지요)를 미국 정부에게 매각하여 돈을 마련하기도 하고,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지는 프랑스 중앙은행(Banque de France)을 설립하는 등 시장의 통화와 정부 재정을 안정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본적으로는 금은 복본위제(bimetallic standard)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내 통치 기간 중에는 절대 새로운 지폐를 추가로 발행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한 나폴레옹의 발언으로 대표됩니다.  실제로 1800년 나폴레옹의 통령 정부는 기존 정권에서 발행했던 채권에 대해 (이미 기존 채권의 가치를 크게 절하시킨 뒤이기는 했지만) 이자를, 그것도 금화나 은화로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함께 나폴레옹은 영국처럼 감채기금을 마련하여 장기 국채의 상환을 위한 안정성을 갖추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영국처럼 프랑스도 국가 신용을 끌어올려, 전쟁 비용을 빚으로 충당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Bimetallic standard를 보통 복본위제라고 합니다.  금본위제와는 달리 복본위제에서는 은도 지폐의 교환 대상이 되는데, 다만 금과 은의 교환비를 정부가 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유럽은 금의 많이 나는 대륙이 아니라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은본위제를 사용했었지요.)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할 정도로 신용을 끌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무너지기는 쉬워도 쌓기는 어려운 것이 바로 신용이거든요.  결국 나폴레옹은 전쟁 비용을 세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결코 전제군주가 아니었고 국민들의 지지에 권력의 근거를 둔 황제였습니다.  전비 충당을 위해 세금을 지나치게 올렸다가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그래서 세수 확대를 위해 길거리에서 채소와 생선을 파는 가판대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자는 제안이 나오자,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광장은 물처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소금과 와인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  서민들의 가판대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보다는, 곡물 시장을 중흥시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더 파리에 어울리는 조치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폴레옹은 영국과는 달리 돈을 구할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전쟁은 스스로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바로 전쟁 배상금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부터, 전쟁에서 승리할 때마다 패전국에게 무거운 전쟁 배상금을 뜯어냈습니다.  1807년 프로이센을 격파한 뒤에는 무려 1억2천만 프랑을 배상금으로 요구하여 프로이센을 나락으로 빠드렸고, 1809년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뒤에는 그나마 좀 양보하여 8천5백만 프랑의 배상금을 뜯어냈습니다.  나폴레옹과 같은 군사 천재에게는 매우 수지맞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처음으로 좌절을 안겨준 것은 바로 스페인이었습니다.  분명히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모두 무찌르고 거의 모든 영토를 정복했지만, 대체 이것들이 항복을 하지 않으니 배상금을 뜯어낼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스페인에서의 전쟁에 막대한 돈을 퍼부었는데도 그 비용을 충당할 방법이 없다보니 나폴레옹으로서는 무척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또다른 돈줄은 이탈리아와 폴란드, 네덜란드와 독일 소공국 등 위성국가들로부터의 세금이었습니다.  이들은 동네 양아치에게 보호비조로 돈을 바치는 것처럼 나폴레옹에게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과중한 배상금과 세금으로 인해 나폴레옹은 유럽 전체에게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늘어난 전쟁 비용으로 프랑스 국민들까지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게 되어 지지율이 떨어졌으니까요.  결국 1815년 워털루 전투 이후 최종적으로 맺은 파리 조약에서, 프랑스는 무려 7억 프랑의 배상금을 연합국에게 물어내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이러니컬한 부분은 그 배상금은 연리 5%의 프랑스 국채로 지불했다는 것이었지요.  나폴레옹이 연전연승할 때는 못하던 것을, 패배 후에는 해낸(?) 것입니다.  






Source :  British and French finance during the Napoleonic wars by Michael D. Bordo & Eugene N. White 

https://www.businessinsider.com/history-of-tax-rates

https://en.wikipedia.org/wiki/Progressive_tax

https://fr.wikipedia.org/wiki/Aspects_%C3%A9conomiques_et_logistiques_des_guerres_napol%C3%A9oniennes

https://en.wikipedia.org/wiki/Treaty_of_Paris_(181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eltro 2019.01.14 0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2. 푸른 2019.01.14 1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이 특히 더 재밌는 글이네요ㅋㅋ

  3. 아즈라엘 2019.01.14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은 국채를 팔아서 전쟁비용을 충당했죠
    퍼스트어벤저스 보면 캡틴이 국채팔려고 쇼하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죠

    • reinhardt100 2019.01.14 2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다고 보는게 좀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총 전비가 3240억 달러였는데 이 중 전시 국공채로 발행하여 충당한 비용이 약 2천억 달러 조금 넘습니다. 나머지는? 그대로 세금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나마 미국은 나았죠. 영국만 해도 국공채 발행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고 결국에는 미국의 무기대여법으로 겨우 전쟁을 치르는 판이었고 독일은 전유럽을 쥐어짜서 전쟁을 수행했죠. 일본은 그럴 여건도 안되어서 점령지 각지의 중앙은행의 조폐기 돌린 것과 군표 발행으로 전쟁을 수행하다가 그대로 인플레로 전시경제가 개판났었으니까요.

    • 최홍락 2019.01.15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은 러일전쟁때부터 시작하여 태평양전쟁까지 카드빚 돌려막기식으로 전쟁을 벌려놔서 그 분야에 있어서 끝판왕인지도요. 러일전쟁때 채무를 80년대 되서야 다 상환했다고 하니까요.

      태평양 전쟁때 빚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죠.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의 부채 항목에 구 임시군사비 차입금이라는 명목으로 잡혀있는 금액이 414억엔 정도라는군요. (45년 기준 일본 국가예산이 214억엔.)

      이 방법이 재미있는게 위장거래와 분식회계를 통한 부채라는거죠. 우선 베이징을 중심으로 괴뢰정부인 중화민국임시정부를 수립, 중국연합준비은행권(연은권)을 발행하도록하고 조선은행 베이징지점이 중국연합준비은행과 각각 상대측 은행에 예금계좌를 개설합니다. 관동군이 군사비를 요구해오면, 조선은행 베이징지점은 보유중인 연은 명의의 일본 엔화 예금계좌에 해당 금액을 지출한 것으로 기재하고 이 예금계좌에는 앞에서 얘기한 임시군사비특별회계에서 지출한 엔화 자금이 입금된 것으로 기록하죠. 이를 담보로 중국연합준비은행은 조선은행 베이징지점 명의의 연은권 예금계좌에 같은 금액을 지출한 것으로 적은 후 이에 상당하는 연은권을 찍어 군사비로 내주는 방식이죠.

      그러나 당초 이 임시군사비특별회계에서 지출한 엔화 자금은 실제로는 중국으로 송금되지 않은 채 조선은행과 연은의 예금계좌에 금액만 기재될 뿐인 가짜 예금이었습니다. 연은권의 발권 담보가 된 엔화 자금은 모두 조선은행 도쿄지점에 고스란히 남았다가 일본 국채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서 다시 일본은행의 국고로 되돌아갔다. 그러니까, 일본군의 군사비 지출인데도 일본 엔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조선은행을 앞세워 무제한으로 현지통화를 발행해 군자금을 충당한 거죠. 414억엔은 그야말로 액면가치일텐데 이를 당시 기준으로 환산했으면 꽤 큰 금액이고요.

    • reinhardt100 2019.01.17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도 일본은 연은권, 남발권, 대은권, 조은권, 일은권, 몽강권,만은국폐 간의 대차거래를 패전 직전에 금으로 청산했다는 겁니다. 단, 제대로 깡(?)을 쳐서 발행고로 최소 당시 금액으로 수백억엔 어치를 단 십수톤의 금으로 했다는게 문제죠.

      특히 조선은행권이 심각했는데 총독부나 조선은행 간부들이 이걸 청산할 때 그냥 금으로라도 변제를 했어야 했는데 이건 제대로 하지도 않고 그냥 발행준비금이었던 일본국채를 더 매입하는 방식으로 조폐기 돌려서 증발하는 바람에 전후 인플레이션이 미친듯이 나타났죠.

  4. 웃자웃어 2019.01.14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나폴레옹의 군대가 외국에서 징발한 물자들의 액수로만 따지면 7억프랑은 가볍게 뛰어넘지 않나요? 배상금 액수가 꽤 관대하네요.

    • reinhardt100 2019.01.14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기 직전 프랑스의 이탈리아방면군이 베네치아의 본토 속주에서 징발할 수 있다고 예측한 금액이 매달 평균 100만 프랑 이상이었다고 하고 실제로 캄포포르미오 조약 이후 구 베네치아 공화국령에서 뽑아낸 금액이 정화만 최소 1천만 프랑 단위였다고 합니다.

      7억 프랑으로 집계된 것들 중 일부는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미술품류 등을 반환하는 것이었던데다가 혁명 이전에 프랑스 영토였던 알자스의 란다우같은 도시들의 할양까지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정화로 지불할 부분은 꽤 줄어듭니다. 결정적으로 왜 국채로 받았냐면 각국이 프랑스 정치권에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을 노리고 국채로 수령한 것도 있습니다. 복고된 부르봉 왕정도 이걸 인지하고 있어서 서둘러서 배상금을 변제하죠. 다만, 상당수 배상금으로 지급된 국채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반출되지는 않고 그대로 파리와 리옹의 금융시장에서 거래됩니다.

  5. 웃자웃어 2019.01.14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저는 세금과 배상금 말고도 무지비한 징발또한 유럽에서 미움을 받은 원인이라고 봅니다.

  6. 웃자웃어 2019.01.14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꿔말하자면 위의 내용은 프랑스가 국채발행을 하고싶어도 하지 못해 세금을 올렸단 거군요.

  7. 달콤아빠 2019.01.15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재미있게 잘읽고 공감드리고 갑니다.

  8. 펱로스 2019.01.15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한테는 이 부분이 제일 무시무시하네요.

    '국민에게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통화 팽창을 통해 지폐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

    국가가 국민 상대로 할수있는 장난질이 많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완전 조삼모사 네요.

    • raa 2019.01.16 0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몇년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도 고환율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대놓고 하고 있었죠. 약간 다른 건 국민들의 돈을 대기업들에게 퍼주는 방향이었다는거..

  9. 수비니우스 2019.01.15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전쟁하느라 쓴 돈은 누군가 갚아야 하는 법 "
    저는 이 부분이 제일 인상 깊네요. 쉽게 외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10. TheK의 추천영화 2019.01.16 10: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선생님의 명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ㅇ^*

  11. Eugen 2019.01.16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건 다 좋은데 미국이 왜 전쟁으로 경기부양을 하지 않느냐에 대해선 제가 할 말이 있는데요. 전쟁이란게 생산이 아닌 순수한 소비이기 때문에 전쟁해봤자 정치적,지리적,군사적,외교적 이득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하지 않는게 더 낫습니다. 만약에 전쟁해서 불황을 탈출하고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면 2008년 경제위기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을 철수하려했을까요?그리고 왜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철군을 하려는 것인가 생각해봐요.

    • Eugen 2019.01.16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사람과 달리 저는 전쟁이 비인도적이라서 하지 말아야한다는 사람이 아니고 전쟁을 하면 손해라고 생각해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병사한명 만드는데 10개월의 임신기간 20년의 양육기간이 있고 사람 한 명 초중고 대학교육을 마치면 1억 이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귀한 교육받은 병사가 전쟁때문에 불구가 되거나 죽으면 엄청난 손해가 아닐까요?

  12. Eugen 2019.01.16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으로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다면 세계대전은 몇번이고 더 낫겠죠.

  13. Eugen 2019.01.16 1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정부부채규모로 볼때 뉴딜로 인한 정부지출액수보다 2차대전으로 발생한 지출이 5배는 더 많다고 본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뉴딜해서 대공황을 탈출했는지 세계대전때문인지는(세계대전 중 생산을 아예 안한건아니니까) 쉽게 생각가능할 만한 주제가 아닌 것같습니다.

  14. 석총 2019.01.23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영국은 과두정에 가까운 체제였죠

Sharpe's Trafalgar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5년 인도양 무역선 상) -----------------------------


아침식사는 매일 오전 8시였다. 3등실의 승객들은 종종 그룹으로 나뉘어, 각 그룹 내에서 당번을 정해 앞갑판(forecastle) 쪽에 있는 주방으로부터 버구(burgoo) 한단지를 가져왔다. 버구라는 것은 오트밀 죽에 밤새 주방 난로에서 고기를 삶을 때 나온 쇠고기 기름 조각을 섞은 것이었다. 점심은 정오에 있었는데, 이 때의 메뉴도 역시 버구였다. 다만 점심 때의 버구에는 좀 탄데다 덩어리진 오트밀에 좀더 큰 고기 조각 또는 질긴 말린 생선 조각이 섞여 나왔다. 일요일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과 돌처럼 딱딱한 건빵이 나왔는데, 건빵은 바구미 투성이어서 탁탁 두들겨 벌레를 빼내야 했다.


비스킷은 끊임없이 씹어야 했는데, 마치 벽돌을 으깨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건빵을 두들길 때 빠져나오지 못한 벌레가 이따금씩 씹혀서 색다른 맛을 내기도 했다. 차는 오후 4시에 제공되었으나, 이는 배 고물 쪽의 1등실 승객들에게만 제공되었고, 3등실 승객들은 저녁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메뉴도 그저 말린 생선에 비스킷, 그리고 벌레 구멍이 숭숭 뚫린 딱딱한 치즈였다.




The Happy Return by C. S. Forester  (배경 : 1808년, 영국 프리깃함 HMS Lydia 함상) -------------------------------


혼블로워 함장이 갑판 아래로 내려가니, 급사인 폴휠이 아침식사를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와 버구입니다, 함장님."  폴휠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식탁에 앉았다.  지난 7개월 간 항해를 하다보니, 사품이라고 할만 한 식량은 다 바닥이 난 상태였다.  커피는 까맣게 태운 빵을 우려낸 물에 불과했고, 그 맛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달고 뜨겁다는 것 뿐이었다.  버구라는 것은 해군용 비스킷을 으깬 것과 잘게 썬 염장 쇠고기를 섞어 만든, 맛있기는 하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모양새의 잡탕죽 같은 것이었다. 


혼블로워는 멍한 마음므로 아무 생각없이 식사를 했다.  왼손으로는 해군용 비스킷을 테이블에 계속 두들겼는데, 그래야 그가 버구를 다 먹을 때 즈음해서는 비스킷 속에 든 바구미들이 다 밖으로 기어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라는 책이 여전히 아마존에서 중고품으로 팔리고 있더군요.  아주 반갑게 샀습니다.  저도 잘 몰랐던 부분, 가령 저렇게 배식받은 쇠고기는 식사조 mess별로 금속제 꼬리표를 붙여 삶았다는 것도 상세하게 소개되더군요.)




위에서 나오는 음식인 버구에 대해서는 이미 저 소설 본문에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으므로 더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습니다.  참고로 버구라는 것은 미국 요리에도 있는, 일종의 스튜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주제는 저 버구가 아니고 버구를 만들 때 쓴 곡식인 귀리입니다. 


귀리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귀리 농사를 짓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만, 귀리하면 뭐니뭐니해도 스코틀랜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도 고딩 때 성문종합영어인가 무슨 책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영국인이 스코틀랜드인을 멸시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영국에서는 귀리는 말에게나 주는 사료 같은 건데,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걸 먹고 산다지 ?"


그러자 스코틀랜드인이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좋은 말이 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좋은 사람이 나는 거야."


그런데, 이게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실제로 1755년 사뮤엘 존슨 (Samuel Johnson)이라는 사람이 런던에서 발행한 영어 사전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을 보면, 귀리 (oat)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OATS. n.s. [?, Saxon] A grain, which in England is generally given to horses, but in Scotland supports the people.

It is of the grass leaved tribe; the flowers have no petals, and are disposed in a loose panicle: the grain is eatable. The meal makes tolerable good bread.






즉, 귀리라는 곡식에 대한 정의를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말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사람이 먹는 곡물" 이라고 내린 것입니다.  이런 경멸에 가득찬 묘사가 사전에 버젓이 나오는 것을 보면, 왜 스코틀랜드가 최근 독립하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는지 이해가 갑니다.  그쪽도 변화를 바라지 않는 노년층의 투표가 상황을 결정지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왜 밀 대신 귀리를 먹었을까요 ?  아일랜드에서 감자를 주식으로 했던 것은 영국인들의 토지 수탈 때문인 탓이 컸지만, 스코틀랜드의 사정은 그와는 약간 달랐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햇볕이 안 좋고 날씨가 추운 기후에서는 밀 농사가 잘 안되어, 척박한 그런 기후에서도 잘 자라는 귀리를 주식으로 삼아야 했던 것입니다.


다만, 저 위에서 영국인과 스코틀랜드인이 나눈 대화에서처럼, 실제로 밀보다 귀리가 훨씬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은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귀리는 10대 수퍼 푸드로 뽑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요.   특히, 귀리에는 밀이나 보리, 호밀과는 달리 글루텐이 거의 없어 요즘처럼 '글루텐-프리'가 뭔가 멋진 단어로 보이는 시대에 더욱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글루텐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귀리는 과거에는 더욱 천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저 존슨 사전에는 귀리 가루로 tolerable good bread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글루텐이 없는 곡식 가루로는 반죽 모양이 나오지도 않고 발효에 의한 부풀기도 잘 안되므로, 순수 귀리만으로는 빵을 못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귀리는 빵보다는 주로 죽으로 먹어야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오트밀(oatmeal)이라는 것은 영어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귀리가루라는 뜻입니다.  Meal이라는 단어는 식사라는 뜻 외에 가루라는 뜻이 있거든요.   맛없는 요리로 악명높은 영국인들도 아침 식사만큼은 괜찮은 것을 먹습니다.  베이컨, 달걀 프라이, 소시지, 버섯, 콩 등을 아주 푸짐하게 먹지요.  18~19세기 당시 영국 서민들이 그런 기름진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들은 물론 아닙니다만, 영국인들의 그런 아침 식사와 스코틀랜드인들의 초라한 귀리가루 죽이 비교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뭔가 곡식 이름에 ~meal이라는 것이 붙으면 그 곡식의 가루를 뜻하는 것입니다.   가령 보리가루는 barleymeal이지요.  오트밀은 귀리가루 자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거칠게 간 귀리 가루를 물이나 우유에 넣고 끓인 요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회색빛이 나고, 맛도 없습니다.  여기에 설탕을 잔뜩 넣으면 좀 먹을 만 해집니다.)




여러분은 죽 좋아하십니까 ?  저는 싫어합니다.  누가 뭐래도, (새우나 전복 같은 비싼 재료를 넣은 것도 있지만) 죽은 그다지 맛이 있는 음식이 아니라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귀리 죽을 많이 먹는 나라들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북유럽 등 과거 살림살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라들입니다.  죽은 더 많은 머릿수를 먹이기 위해서는 그냥 '물만 좀 더 부으면 된다'는 점 외에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편리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제분입니다. 




(러시아군 식사라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입니다.  진짜 여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빵은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힘도 많이 들어갑니다.  반죽도 발효도 오븐에서 굽는 것도 모두 만만치 않은 과정입니다.  그러나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곡식으로 가루를, 그것도 아주 고운 가루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집에서 손으로 맷돌을 돌려 빻는 것 정도로는 아주 고운 가루를 내기가 어려웠고, 이렇게 거칠게 간 가루로 만든 빵은 부드럽지 않고 식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세 어떤 수도사가 쓴 일지를 보면 "이런 거친 가루로 만든 빵을 먹으면 악마라도 방귀를 뀔 수 밖에 없다" 라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점을 이용해서 중세 유럽의 영주들은 장원의 물레방아 또는 풍차로 된 제분소를 장악하고 제분 과정에서 짭짤한 세금을 뜯었지요. 


이렇게 모든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 때문에,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가령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군이 침공 초기에 마을마다 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방앗간이 없어서 굶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또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감자 잎마름 병에 의한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필(Sir Robert Peel) 경이 미국으로부터 10만 파운드 상당의 옥수수를 대량 구매하여 구호 식품으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미국산 옥수수는 단단하게 마른 옥수수 알갱이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이를 가루로 만들 제분소가 충분치 않아서 이를 제분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또 굶어죽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귀리는 낟알이 너무 길어서, 죽이라도 끓여먹으려면 좀 자르고 빻아서 잘게 부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steel-cut 처리된 귀리 낟알입니다.)



하지만 귀리는 이렇게 곱게 갈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끓여 먹을 거니까요.  요즘 나오는 인스턴트 오트밀을 보면 그 사실이 좀더 명백해집니다.  제가 코스트코에서 가끔 사먹는 Quaker Instant Oatmeal을 보면 거칠게 부순 귀리 낱알을 압착 처리해서, 좀더 쉽게 물이나 우유를 흡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끓이지 않고 차가운 상태에서 완전히 부드럽게 만들어 먹으려면 5분 정도로는 택도 없고 적어도 1시간 이상 물이나 우유를 부어 놓아야 합니다.  저는 전날밤에 우유를 부어 놓습니다.  그러면 다음날 아침 뮤즐리 비슷하게 됩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인스턴트 오트밀입니다.  역시 오리지널 맛은 좀 그렇고, 단풍나무 시럽이나 갈색 설탕이 든 것은 그나마 먹을만 합니다.  가격은 의외로 무척 비쌉니다.)




영국인들은 귀리를 먹지 않았는가 하면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당연히 먹었고, 저 위 소설에서 언급했듯이, 영국 해군에서도 오트밀을 배식했습니다.  혼블로워나 오브리 시리즈에는 염장 쇠고기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영국 해군은 매일 쇠고기를 먹나 보다 싶습니다만, 사실 정확하게는 쇠고기는 일주일에 딱 두번 나왔습니다.  돼지고기도 두번 나왔고, 나머지 3일, 정확하게 월수금요일에는 아예 고기가 안 나오고 오트밀에 버터, 치즈가 조금 나왔습니다. 




(역시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중 일부입니다.  영국 수병들 배식표를 보면, 맛없는 함상 식사 중에서도 월,수,금요일은 특별히 더 우울한 날이었을 것 같습니다.)




요즘 귀리는 그 보습성 때문에 화장품 원료로도 쓰이고, 또 건강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귀리의 인기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0년대에 건강식이라는 이유로 큰 인기를 끌어, 귀리겨를 섞은 포테이토칩이 나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귀리의 꺼끌꺼끌하고 질긴 식감은 인기가 없었는지 불과 5년도 안되어 그 인기는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다시 FDA나 이런저런 유명 기관에서 '귀리가 건강에 좋다' 라고 발표를 하면 다시 반짝 인기를 얻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집에서도 요즘 밥에 귀리를 섞어 먹는데, 우리 식구들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가격이 무척 비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캐나다산 수입품이라서 그런지 그냥 쌀과 비슷한 가격이더군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ob 2018.11.01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ld fashioned rolled oat는 우유나 두유에 말아먹으면 씨리얼처럼 맛있습니다. 후라이팬에 한번 굽거나 전자렌지로 구워서 말아먹으면 더 고소하고 맛있어요. 코코아 파우더랑 견과류 추가해서 먹으면 더 맛있구여

  2. gookenhaim 2018.11.02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_⊙

  3. 예스투데이 2018.11.02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영국에는 좋은 말, 스코틀랜드에는 좋은 사람.. 기억에 남는 명언이네요.
    공감 꾹~ 누르고 갑니다. ^^

  4. reinhardt100 2018.11.02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퇴근하면서 확인했네요. 나시카님도 코스트코 회원이십니까? 저도 저거 먹었는데 전 무첨가가 더 맛있었습니다.

  5. 구와아앍 2018.11.03 1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엔 참 좋것지만 먹기는 음.....그냥 전 쌀밥 먹으렵니다 ㅎㅎ

  6. 박씨 2018.11.07 2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Daum 블로그에서도 재밌게 본 글인데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다시 보니 반갑네요 ㅎㅎ 퀘이커 오트밀 한 컵 정도에 우유 200ml 정도를 부어서 전자렌지에 2분 동안 돌리면 꽤 괜찮은 죽이 됩니다. 저는 거기에 간장 한 숟갈, 참기름 한 숟갈 넣어 비벼 먹는데, 제 입맛에는 먹을 만 하더라구요. 바쁜 아침에도 간단히 먹을 수 있고 먹고 나면 오전 내내 든든해서 애용하는 레시피(?)입니다.

  7. ori 2018.11.08 0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트밀은 개개인이 먹는 방법이 각양각색이지요

    저 같은 경우엔 바나나 한개를 넣고 끓여 먹습니다
    바나나한개를 퀘이커오트밀 적당량에 같이 넣고 으께서 물과 같이 끓여주면 꿀이나 설탕 없이도
    괜찬은 감미와 풍미가 있어 먹기 좋습니다

    혹시 시나몬가루가 있다면 조금만 넣어주면 풍미가 확살지요

    퀘이커 오트밀 큰거 한통 샀다 아무도 안먹고 버리게 생겨서 이거저거 실험해보니
    견과류,말린과일(크린베리,블루베리,자두),꿀,설탕,우유,버터 베이컨,소지시 등등

    바나나가 최고 였습니다 바나나우유맛의 죽이 되더군요 시나몬을 첨가하면 풍미가 업그레이드 되고요 ...

    한번 실험삼아 드셔보셔용 !

  8. ㅋㅋㅋ 2018.11.12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트밀에 우유넣고 시나몬 가루 넣고 끓이면 쿠키같이 맛있어요

  9. hispe 2019.05.06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이런 과거의 생활사글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