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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른호스트9

바우첸을 향하여 (3) - 샤른호스트의 빈 자리 5월 6일 아침, 나폴레옹은 스파이들로부터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이 각각 따로 엘베 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흡족해 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은 북쪽의 마이센(Meissen)으로 향하고 러시아군은 예상대로 남쪽의 드레스덴으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나폴레옹은 자신이 토르가우로 네의 군단을 보낸 것에 프로이센군이 베를린이 위협받고 있다고 겁을 집어먹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기분 좋게 그 날 저녁 뷔르젠(Wurzen)까지 도착했지만, 프로이센군 중 일부 1만2천 정도만 마이센으로 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군을 따라 드레스덴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 소식에 놀란 나폴레옹은 정확한 정보를 얻기를 원했고, 프랑스군의 진격은 또 잠시 멈춰야 했습니다. 혹시나 이것들이 결별하지 않으면 어떡.. 2022. 12. 26.
상책과 하책 - 두 천재 참모의 작전안 나폴레옹이 잘러 강 서쪽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프로이센군 수뇌부를 걱정시켰다기 보다는 흥분과 전율을 넘어 기대감에 차오르게 했습니다. 가장 흥분한 사람은 블뤼허 본인이었는데, 사실 블뤼허는 이 희대의 괴물과 어떻게 싸워야 하겠다는 작전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프로이센군의 모든 작전은 블뤼허가 아니라 그의 참모들인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도맡아 짜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다고 블뤼허가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샤른호스트는 블뤼허를 매우 존중하고 있었는데, 블뤼허의 진짜 가치는 비상한 머리로 기가 막힌 작전안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적과의 싸움에 임했을 때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 부하들에게 용기와 투지를 불어넣고 사기를 고취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용기와 투지가 넘쳐나는 프로.. 2022. 8. 8.
연합군 내부의 상호 불신 - 엘베 강과 튀링겐 숲 사이에서 샤른호스트가 아무 설명없이 다짜고짜 블뤼허에게 '뮐베르크에 다리를 놓으십시요'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사시 드레스덴을 거치지 않고도 즉각 엘베 강 동쪽으로 퇴각할 수 있는 탈출로를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드레스덴 북쪽, 그러니까 엘베 강의 더 하류 쪽에 새로운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아울러, 너무 서쪽으로 진격하면 고립되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커진다고도 경고했습니다. 샤른호스트의 이런 조바심을 이해하려면 북부 독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개 도로 중 라이프치히 경로와 드레스덴 경로의 위치를 보셔야 합니다. (호프에서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최남 도로의 바로 남쪽은 오스트리아 영토인 보헤미아, 즉 체코였는데, 그 국경은 바로 얼츠 산맥이었습니다. 영어로 오어(Ore) 산맥이라고 하.. 2022. 7. 11.
스페인 모델의 실패 - 냉정한 작센 사람들 3월 30일, 드레스덴의 강북 신도시 노이슈타트(Neustadt)에 들어온 블뤼허는 브레슬라우 사령부에 있던 하르덴베르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서 블뤼허는 노이슈타트와 드레스덴 구도심지 알트슈타트(Altstadt)를 연결하는 아우구스투스 다리의 폭파에 대해 언급하며 이로 인해 작센인들의 반(反)프랑스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썼습니다. 실제로 드레스덴에 입성한 프로이센군은 드레스덴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체제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냥 불만 가득한 침묵을 지켰을 뿐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군도 엄정한 군기를 준수하여, 드레스덴은 물론 모든 작센 주민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드레스덴에 입성한 이후 블뤼허가 자신의 부.. 2022. 6. 27.
진격의 러시아, 뒤쳐진 프로이센 - 갈등의 작은 시작 당시 연합군의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짜르 알렉산드르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을 다 통틀어서 최고의 브레인은 바로 샤른호스트였습니다. 적어도 알렉산드르가 볼 때는 그랬습니다. 누가 봐도 멍게, 즉 멍청하고 게으른 성향의 지휘관인 쿠투조프에게 질렸던 알렉산드르는 샤른호스트와 만나서 이야기해본 뒤 그의 성실과 명석, 치밀한 논리에 홀딱 넘어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 대한 칭송을 늘어 놓았습니다. 평민 출신의 직업 군인 주제에, 군무에 필요하다 싶으면 가끔씩 국왕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까지 서슴치 않는 샤른호스트에 대해 내심 벼르고 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감히 샤른호스트를 어쩌지 못한 것은 사실 알렉산드르의 그런 호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나.. 2022. 6. 6.
드레스덴(Dresden)을 향하여 - 지킬 것과 버릴 것 나폴레옹은 자신이 새로운 군대, 즉 마인 방면군(Armée du Main)을 연성하는 동안 외젠이 기존 그랑다르메의 잔존부대를 지휘하여 어떻게 해서든 오데르 강, 적어도 엘베 강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을 막아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외젠이 아니라 외젠의 아버지, 즉 나폴레옹 본인이 와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폴레옹도 그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월 2일에 외젠에게 편지를 보내어 '곧 내가 30만 대군을 몰고 갈테니 그때까지만 잘 버텨라'라고 위문 편지를 보내면서도, 같은 날 동생 제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외젠은 엘베 강을 포기하고 물러서면 베저(Weser) 강과 카셀(Kassel)에서 적을 막아낼 것'이라고 썼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러시아군은 틀림없이 오데르 강과 엘베 강을 건너.. 2022. 5. 30.
나폴레옹을 잡을 작전 - 샤른호스트의 비책 프로이센이 러시아와 손잡고 나폴레옹과 전쟁을 하기로 했으니 먼저 총사령관을 선정해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프로이센 내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크네제벡과 같은 인물은 러시아군과의 협력이 최우선이니 러시아 짜르의 신임을 받고 있는 타우엔치엔(Bogislav Friedrich von Tauentzien) 장군이 적절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크네제벡이 아무리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측근이라고 해도 그는 중령에 불과했고 인사권자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국방부 장관 샤른호스트는 바로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를 천거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프로이센 장군들 중에서 오직 블뤼허만이 나폴레옹에게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타우엔치엔 장군입니다. 그는 18.. 2022. 5. 2.
지도와 공약(空約) - 프로이센 장교들의 이탈 안실리온(Friedrich Ancillon)의 조언은 꽤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국적에 상관없이 귀족이나 신사라면 모두가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당대의 지식인답게, 야만스러운 러시아보다는 문명국인 프랑스 친화적인 노선을 취하기를 권고하며 러시아 장군들의 무능력 등을 비난하기도 하고, 스페인 민중과는 달리 프로이센 국민들에게는 종교적인 광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페인식 민중 투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럴싸한 이유도 내놓았습니다. 바로 러시아와 프랑스의 지리적 위치였습니다. 기동력이 좋은 군대를 가진 프랑스는 바로 지척에 있는데 러시아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지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전투에서 승리해도 유럽 .. 2022. 3. 28.
항공모함 킬러의 전설 - HMS Glorious 이야기 느린 호위 항모가 아닌 정규 항모를 전함이 함포로 격침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입니다. 1) 정규 항모의 함재기의 공격 범위가 전함의 함포 사거리보다 엄청나게 길다 2) 정규 항모는 최소한 전함만큼 빠르거나 보통 더 빠르다 3) 정규 항모는 보통 전함과 순양함들의 호위를 받는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업적을 이룬 전함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전함(또는 전투순양함)인 샤른호스트(Scharnhorst)입니다. 1940년 6월 8일 노르웨이 인근에서 샤른호스트는 영국 정규 항모 글로리어스(HMS Glorious)를 격침합니다. 샤른호스트는 위의 3가지 불가항력을 어떻게 다 극복했을까요? 샤른호스트가 잘 했다기보다는 글로리어스의 함장이 바보짓을 너무 많이 저질렀고, 거기에 운.. 2020.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