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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9편) - 알았다면 뽑지 않았을 왕세자 아우구스트 왕세자와 폰 페르센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도 사태는 험악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왕의 역할일텐데, 카알 13세는 정작 거의 아무 역할을 못 했습니다. 이미 1809년 11월 이미 한차례 심장마비를 일으킨 이후 건강 문제로 인해 국정에 거의 참여를 못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스웨덴의 조야는 모두 안정을 원했는데, 이 혼란이 끝나기 위해서는 강력한 후계자를 조속히 선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문제는 카알 13세의 왕비 샤를로타(Hedvig Elisabet Charlotta) 왕비였습니다. 살해된 폰 페르센과 함께 구스타프파의 수장 노릇을 해왔던 여걸이던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스타프 왕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2018. 8. 20.
나폴레옹 시대, 중고 프리깃함 가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 최근에 흥미로운 보험 사기 관련 뉴스가 있었습니다. 길이 100m가 넘는 4천톤급 원양어선에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화재를 일으킨 뒤, 보험금으로 무려 60억원이 넘는 돈을 받아냈다는 것이었지요. (https://news.v.daum.net/v/20180809072704748 참조) 거기서 저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했던 것은 애초에 그런 큰 배를 구입하는데 들었던 금액이었습니다. 19억원이더라구요. 비록 낡은 중고어선이라서 많이 내려간 가격이긴 했지만, 그 정도면 서울에 있는 좋은 동네 넓은 아파트 가격이쟎아요 ? 저는 그런 큰 배는 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서,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정도면 물론 큰 액수이긴 하지만 로또 한방이면 가능한 금액이라는 점에 마음이 설렜습니다. 길이.. 2018. 8. 16.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8편) - 왕세자와 백작의 죽음 이야기를 다시 1809년 초 스웨덴으로 돌리겠습니다. 구스타프 4세를 쿠데타로 축출하고 카알 13세를 새 국왕으로 새운 스웨덴은 이미 노쇠한 카알 13세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카알 13세의 아들들은 모두 유아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카알 13세가 서거하고 나면 왕가 후손이 끊어질 판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유럽 왕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고, 보통 제일 가까운 외국 왕가나 외국 귀족의 자제를 데려와 왕으로 삼는 일이 많았습니다. 딱히 불화가 일어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은 새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대체 그 후보자들이 누구누구였길래 이런 갈등이 생겼을까요 ? 아마 베르나도트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해서 갈등이 생겼나.. 2018. 8. 13.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의 군대에는 취사병이 없었다 ** 이번 목요일은 'PX병과 취사병을 없앤다'라는 군 개혁안을 기념하여 올리는 재탕글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군 생활을 했던 미군 부대에는 식당(mess hall)이 2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군 애들 중 취사가 주특기인 애들이 요리도 하고 식당 관리도 했습니다만, 다른 하나에서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미국인 민간 군속 아저씨의 관리 하에 그런 주방일을 했습니다. 즉, 식당이 거의 민영화되어 있더라고요. 카투사에 가게 되면 미군에서만 사용하는 희한한 용어들을 몇개 배우게 되는데, 그 중 kitchen pol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주방을 감시하는 경찰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방에서 (요리 외에) 하는 청소 및 설거지 같은 잡역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Police up 이라는 단어는 동사로서 뭔가를.. 2018. 8. 9.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7편)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1806년 11월, 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다부를 돕지 않았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욕을 먹어야 했던 베르나도트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시 상황이었고, 그야말로 거미새끼처럼 흩어져 도망치던 프로이센군을 추격하기 위해 베르나도트를 포함한 프랑스군은 승리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강행군을 해야 했습니다. 베르나도트의 군단은 뮈라의 예비 기병대 및 술트의 군단과 함께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 장군이 지휘하는 프로이센군을 추격하고 있었지요. 프랑스군의 맹추격에 퇴로를 끊긴 블뤼허는 11월 5일, 과거 한자 동맹의 주요 항구 도시인 뤼벡(Lübeck)에 입성했습니다. 당시 뤼벡은 프로이센의 영토가 아닌 중립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프로이센의 패잔군 약 1만7천이 성 앞에.. 2018. 8. 6.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6편) - 세상 억울한 사나이 1806년,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가 겁도 없이 나폴레옹에게 도전한 제4차 대불동맹전쟁에서 프로이센은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특히 10월 14일은 아마 프로이센 역사상 최악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프로이센 전체 야전군이라고 할 수 있는 12만 대군이 예나와 아우어슈타트에서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 났거든요. 프로이센에게는 특히 아우어슈테트 전투가 뼈 아픈 상처가 되었습니다. 6만의 프로이센 대군이 불과 2만7천 밖에 안 되는 다부(Louis Nicolas Davout) 원수의 프랑스군 제3 군단에게 박살이 났으니까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박살낸 나폴레옹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놀랍게도 베를린 시민들은 이.. 2018. 8. 2.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5편) - 애매모호한 관계 1798년은 베르나도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던 해였습니다. 데지레와 결혼하여 나폴레옹의 인척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운도 잘 트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에게 관운이 트인다는 것은 전쟁이 났다는 뜻이지요. 그 해 연말 경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과 스위스에서의 시민 혁명이 촉매가 되어 제2차 대불동맹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에 따라 11월, 그는 1개 감시군(l'armée d'observation)의 총사령관이 되어 라인강을 넘어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의 필립스부르크(Philippsburg)로 진격하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드디어 나폴레옹이나 모로, 오슈처럼 1개 군의 총사령관이 될 수 있던 이 기회는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애초에 아무.. 2018. 7. 30.
총기 자유화가 되면 갑질이 사라질까 생각해보면 총기 소유가 자유화되면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도 좀 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총으로는 힘없는 할머니조차도 사람을 해칠 수 있으니까, 남들에게 모질게 대할 때 ‘혹시 저 사람이 빡쳐서 총들고 찾아오지는 않을까?’라고 한번쯤 멈칫 할테니까요. 동네 조폭이건 월세를 4배 올려달라는 악덕 건물주이건 503의 친위 쿠데타군이든지요. 저만 해도 미국에서 운전할 때는 굉장히 얌전하게 운전을 하는 편인데, 가장 큰 이유가 혹시라도 빡친 상대 운전사가 총들고 내려서 “Hey you 어머니...”할까봐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 작 (배경 1930년대 미국) ------------------- (다른 주에서 몰려온 굶주린 농민들이 막노동 일거리를 찾아 캘리포니아에 오지만, 그들을 기다리.. 2018. 7. 28.
나폴레옹 시대에도 청량음료가 있었을까 ? 요즘 기후 온난화의 위기를 다들 온몸으로 느끼시고 계실 겁니다. 전에 제가 조선시대 임금님보다도 요즘 서민이 더 호화로운 삶을 사는 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서도 1950년대의 서민들에게 19세기 말의 귀족들의 생활을 하게 한다면 불편해서 못 견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특히 여름철에 그렇습니다. 전기와 냉장고, 에어컨이 정말 대단한 차이를 만들어내거든요.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면 뭔가 찬 음료수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전기도 냉장고도 없던 나폴레옹 시대, 유럽인들은 여름철에 어떤 음료를 주로 마셨을까요 ?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 Forester (배경: 1821년 자메이카) ----------------- (혼블로워 제독이 자메이카 .. 2018. 7. 26.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4편) - 오스칼이라는 이름 비록 임무가 보충병력의 인솔이라고는 해도, 한겨울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는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의 뛰어난 지휘력이 아니었다면 신병들로 구성된 이 보충병력에서는 아마 탈영이나 부상 등으로 인해 많은 비전투 손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이탈리아로 들어온 베르나도트가 향한 곳은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Milan)였는데, 여기서 나폴레옹과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당시 밀라노 주둔 프랑스군 지휘관은 뒤퓌(Dominique Martin Dupuy) 장군이었는데, 당시 나폴레옹이 이끄는 이탈리아 방면군 전체는 기타 방면군의 졸전과 대비된 자신들의 연전연승으로 인해 정말 기고만장한 상태였습니다. 그건 뒤퓌 장군도 마찬가지였고, 풋내기들로 이루어진 보충병들을 끌고 겨울 행.. 2018. 7. 23.
나폴레옹 시대 역사 소설들 중 식사 장면 모음 혼블로워 시리즈 중 제8편은 "The commodore"입니다. 혼블로워가 임시 제독(commodore)이 되어, 소함대를 이끌고 발트해로 진입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저울질하고 있던 러시아의 짜르 알렉상드르에게 프랑스에게 저항하도록 외교관 역할을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알렉상드르가 불시에 혼블로워의 기함을 방문하여, 영국 해군 측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합니다만, 혼블로워는 일부러 평상시 영국군 장교들이 먹는 식사를 그대로 제공하기로 합니다. The Commodore by C.S.Forester (배경 : 1812년 러시아) ------------------------------- 오찬은 혼블로워의 선실에서 8명이 함께 들었다. 혼블로워와, 기함의 함장인 부시, 그리고 2명의 선임 장교 및 4명의 러시.. 2018. 7. 19.
결승전 상대가 크로아티아가 아니라 흐르바츠카 ? - Exonym과 Endonym 이번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발칸 반도의 소국 크로아티아(Croatia)는 여러가지 단편적인 사실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가령 사무실 근무자들의 멍에처럼 느껴지는 넥타이의 원조 국가라고 알려져 있지요.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끄라바뜨(cravat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동시에 '크로아티아산의'라는 형용사이기도 합니다. 이는 17세기 전반기의 30년 전쟁 때 프랑스 측에서 복무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자기 나라 전통의 작은 매듭 수건을 목에 찬 것이 파리 사람들의 눈에 멋있게 보여서 유행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 그 보병들의 용맹함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찌 측에 협력한 어두운 역사 등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경치가 최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 2018. 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