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목요일은 'PX병과 취사병을 없앤다'라는 군 개혁안을 기념하여 올리는 재탕글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군 생활을 했던 미군 부대에는 식당(mess hall)이 2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군 애들 중 취사가 주특기인 애들이 요리도 하고 식당 관리도 했습니다만, 다른 하나에서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미국인 민간 군속 아저씨의 관리 하에 그런 주방일을 했습니다.  즉, 식당이 거의 민영화되어 있더라고요. 


카투사에 가게 되면 미군에서만 사용하는 희한한 용어들을 몇개 배우게 되는데, 그 중 kitchen pol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주방을 감시하는 경찰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방에서 (요리 외에) 하는 청소 및 설거지 같은 잡역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Police up 이라는 단어는 동사로서 뭔가를 청소하다 라는 뜻이 있거든요.  미군의 역사를 보면 예전에는 뭔가 가벼운 죄를 저지른 병사들에게 처벌로 이런 kitchen police를 시켰습니다.  감자껍질 깎기나 바닥 청소 뭐 그런 것들이지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는데, 2017년 6월 25일 일요일에 강경화 장관이 미 제2사단을 찾아 성명을 발표하며, '내가 이렇게 주말에 방문하는 바람에 미군 병사들이 니들 말로 'police up'을 해야 하는 등 내가 민폐를 끼쳤을 거다, 그래도 한미 연합의 중요성은...'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한국 외교부 장관이 'police up'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보고 미군들도 웃었을 것 같습니다.  외교에서 해당 외국어를 잘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원래 미군은 주방에서 일하는 것을 약간 천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한국군에서는 취사병을 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미군은 취사특기병을 뭐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벌로 일반 전투병을 주방 허드렛일을 시키기도 하는 것이고, 또 카투사 초창기에는 카투사를 주로 취사병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영화 진주만을 보더라도 흑인인 쿠바 구딩 주니어는 전함에서 멸시받는 주방일을 하면서, 백인 병사들의 존중을 끌어내기 위해 권투를 하는 것으로 나오지요.  한국 전쟁 때만 하더라도 미군은 백인 부대 속에 흑인을 따로 집어 넣지 않았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아예 유색 인종에게는 전투 임무를 주지 않았습니다.  열등한 유색 인종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또 흑인들에게 무장 훈련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속셈도 있었지요.




(Beetle Bailey라고, 미군 신문인 Stars & Stripes에 연재되던 군대 코미디 만화입니다.  지금도 연재되지는 않겠지요.  보시다시피 베일리 이병은 주로 주방에서 감자 껍질 벗기는 벌을 자주 받습니다.)




이렇게 천대 받는 취사병은 그다지 오랜 역사를 가진 병과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불과 제1차 세계대전 초창기만 하더라도 취사병이라는 병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군대에서의 모든 식사는 그냥 중대 단위로 알아서들 해먹는 것이 상식이었고, 군 지휘부에서는 오직 식재료와 취사도구의 배급만 책임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독립 전쟁 때나 나폴레옹 전쟁 때나,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군 병력에 대한 식량 보급은 항상 다음과 같이 쇠고기 몇 파운드, 밀가루 몇 파운드 등 재료에 대해서만 기록될 뿐, 점심은 빵과 로스트 비프, 저녁은 파스타와 치킨 등 요리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1776년 미국 독립 전쟁 중에 펜실바니아 의회에서 병력을 동원하면서 그 병력들에게 지급할 식량 목록을 규정한 내용입니다.  원래 당시에도 미국이 유럽보다 식량 형편이 좋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만, 현대적 기준으로 보기에도 무척 푸짐해 보입니다.


1인당 정량


. 하루 쇠고기 1파운드, 또는 돼지고기 3/4파운드, 또는 염장 생선 1파운드

. 하루 빵 1파운드 또는 밀가루 1파운드

. 일주일에 완두 또는 콩 3파인트, 또는 그에 상응하는 채소 1부셸 당 1달러

. 하루 우유 1파인트, 또는 그에 상응하는 1/72 달러

. 일주일에 쌀 1/2파인트, 또는 옥수수 가루 1파인트,

. 하루 스프루스 비어 (spruce beer, 가문비나무의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 술) 1 쿼트 또는 사과주 1 쿼트


(다른 주의 메뉴를 보면 몰트 비어가 들어가기도 하고 버터가 1주일에 6온스씩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진은 영국 해군의 요일별 배식 품목입니다.  맥주를 매일 4.5리터나 !!)





이런 배급과 요리 등은 중대 혹은 대대 단위로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병사들이 순번을 정해 요리를 했습니다.  이렇게 순번을 정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귀찮은 의무'였으므로, 나중에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취사병이라는 병과가 생겼을 때 병사들이 취사병을 어떤 시선으로 봤을지는 뻔합니다.  아마도 그런 역사 때문에 미군을 포함한 유럽 문화권의 군대에서는 취사병을 불명예스러운 병과로 취급했나 봅니다.


이렇게 배급된 날재료로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  그야 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좋은 오븐이나 화력 좋은 가스 레인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들은 주로 남비에 끓여 먹는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븐 없이 병영에서 빵을 구워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대대에서 일괄적으로 구워서 배급되는 빵이 없다면 이들은 배급된 밀가루를 이용해 밀가루 죽을 쑤어 먹거나 요령껏 마련한 돌판이나 철판에서 얇은 전병을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적이지만 아마추어적인 배식 제도는 로마 군단 시절부터 무려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이런 배식 제도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도전이란 바로 기나긴 참호전이었습니다.  1914년 마른 (Marne) 강 전투 이후 기관총과 대포를 피해 프랑스군과 독일군 양측이 깊고 체계적인 참호를 파고 참호전에 들어가게 되자, 당장 병사들에게 배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양측 수뇌부 모두에게 있어, 전투란 보병의 전열이 전진하고 기병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돌격하는 그런 장엄한 것이었지, 이렇게 수많은 병사들이 물구덩이나 다름 없는 참호 속에서 두더쥐처럼 웅크리고 수주 동안을 버티는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후방으로 물러나 여유있게 넓은 공간에서 장작을 패고 물을 끓여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좁은데다 위험하기까지 한 곳에서 밥까지 해먹으라는 것은 무리지요.)




고대 로마군 시절부터 병사들을 따라다녔던 지겨운 건빵(biscuit, hardtack)은 참호전에서도 유용한 지겨운 식량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때 즈음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첫선을 보인 통조림이 보편적으로 유통되던 시절이라 참호 속에서 차가운 통조림을 뜯어먹도록 하는 방안도 있었으나, 아무래도 통조림을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 공급하는 것도 어려웠고, 또 먹을 것이 곧 사기로 이어지는 암울한 전장에서 맛대가리 없는 차가운 통조림만으로 하루 세끼를 때우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령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대표적 군용 식량으로 알려진 Maconochie(머카너키)는 묽은 고기 수프에 감자, 순무와 당근이 둥둥 떠있는 통조림 스튜였는데,  이걸 먹어본 병사들은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따뜻할 때 먹으면  Maconochie도 먹을만 하지만, 차가운 채로 먹으면 man-killer다."




(숙명의 머카너키 깡통입니다.)




결국 양측 수뇌부는 일반 전투병들이 순번제로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조리하는 관례를 버리고, 중대 혹은 대대 단위로 조리만 담당하는 병사들을 따로 지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적의 포탄이 날아오지 않는 후방에서 스튜 같은 음식을 만들어 전방 참호 속으로 보내주기로 한 것입니다.  가령 영국군 같은 경우 대대마다 엄청난 크기의 솥 2개씩이 지급되었고, 여기서 수백명 분량의 음식이 끓여져 전방 참호로 보내졌습니다. 


문제는 솥 2개에서 모든 음식을 하다보니 홍차에서도 말고기 맛이 난다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음식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하는데, 이는 춥고 축축한 벨기에의 참호 속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포탄이 닿지 않는 저 먼 후방에서 끓여서 양동이나 심지어 석유통 속에 담아서 가져오는 음식은 차갑게 식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서부 전선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Remarque)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없다' 초반부에 보면, 주인공 파울이 소속된 중대 취사병은 그렇지 않지만 옆 중대의 취사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참호 가까운 곳에까지 접근하여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병사들이 더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도 하지요.



(제가 읽은 어떤 소설에서도 이 '서부전선 이상없다'처럼 군대밥과 취사병에 대해 생생하고도 감칠맛 나는 묘사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식은 음식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했습니다.  참호 속에 작은 난로를 배급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이런 난로는 공식 배급 물품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병사들 개개인이 몇명씩 돈을 모아 구매하여 참호 속에 들어갈 때 가지고 들어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난로를 사가지고 참호에 들어간 병사들은 왜 군 당국이 중대 단위로 난로를 배급하지 않았는지 곧 깨닫게 됩니다.  연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입니다. 


유럽 서부 전선이 사막도 아닌데 장작으로 쓸 나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숲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연료를 얻는 것이 그렇게까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작은 난로에서 물을 끓일 정도로 충분한 화력을 내기 위해서는 잘게 쪼개진, 잘 마른 장작이 필요한데, 이건 수중에 작은 손도끼가 있고 옆에 숲이 있다고 해서 당장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충분히 마르지 않은 생나무를 연료로 썼다가는 연기가 심하게 나서 독일군의 포격 목표가 되기 딱 좋았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의 근위대로 활약했던 '척탄병 쿠아녜 (Coignet)'의 회고록을 보면,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후 장작을 구하러 산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밤을 새서 걸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또 1807년 폴란드에서 장작을 못 구해 적이 버리고 간 대포의 포가를 끌고 와서 불을 피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체코나 폴란드에 숲이 없어서 장작을 못 구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마 도끼도 없는 상황에서는, 주변이 숲으로 둘러 쌓인 곳이라고 해도 당장 불을 피울 장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쿠웨이트 현지라고 해서 땅에 구멍을 파면 당장 자동차에 넣은 가솔린이 펑펑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군 당국도 병사들의 고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고체 알콜 연료와 빈 깡통 형식으로 구성된 간단한 휴대용 풍로를 만들어 보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미의 조리기 (Tommy's Cooker)라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는 연기가 나지 않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콜라 1캔 정도의 물을 끓이는데 2시간이 걸릴 정도로 비효율적이라서 병사들로부터 욕을 먹기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겠지요.





(토미 쿠커로 참호에서 요란한 연기를 내지 않고 안전하게 차를 끓이는 영국군 병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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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eK의 추천영화 2018.08.09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차까지 끓여 먹는 여유라.
    좀 부럽네요. ^ㅇ^*

  2. 헤비웨폰가이 2018.08.09 1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카너키 깡통 안에 뭐가 들어있나 구글링해봤더니 그냥 고기 스튜네요?

  3. 유애경 2018.08.09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글 맥주와 전쟁에서 본 전투기 연료탱크에 담아 나르는 맥주나 이번글의 석유통에 담아 나르는 음식이나,당시엔 참 절박한 상황이었을텐데도 문장으로만 읽고 상상을 하니 죄송한 얘기지만 웃음이...

    • 최홍락 2018.08.09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파일럿들이 동료 파일럿이
      격추되어 사망할 경우 그 동료 비행기가 사용하던 드롭탱크(기체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외부에 장착된 연료 통)에 냄비요리를 해먹으며 동료의 죽음을 애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걸 도무라이 나베라고 했습니다. 일본어로 とむらい(弔い)가 애도의 뜻이 있지요. 전쟁사에서 가장 많이 통하는 격언 중 하나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간다.'인데 확실히 먹는것도 그런거 같습니다.

  4. 헝글 2018.08.0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도 군대가자

    • 유애경 2018.08.10 0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 내용은 여자도 군대가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본문 잘 읽으셨나요?

  5. 이동뎅 2018.08.09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포스트 잘 읽고 있습니다.
    음식 이야기 좀 더 써주시면..^^
    유래없이 무더운 요즘 건강하세요.

  6. reinhardt100 2018.08.09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외로 취사병과가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중세 혹은 근대의 군대에는 다수의 비전투요원들이 항상 따라다녔다는 것 때문입니다. 흔히, 동양에서는 병농일치제가 기본적으로 작동한 시대가 길었기 때문에 비전투요원이 항상 따라다닌다는 개념 자체가 그리 익숙치 않을 수도 있지만 서양에서는 달랐습니다. 로마제국 아니 공화국 후반기부터 이미 제한적 지원병제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동방제국에서의 테마제도 같은 예외가 있지만 이조차도 몇백년만에 프로니아제도로 바뀌는 등 상당기간 내내 용병이 주력인 시대가 됩니다. 흔히, 절대왕정의 상징이라단 상비군을 국민개병제로 운용한 국가가 18세기에 봐도 프로이센을 제외하고 별로 많지 않았고, 프로이센조차도 7년 전쟁 당시에는 병력의 7할을 용병으로 운용해야 했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당장 굶어죽기 싶상이었으니까요.

    서양 군대에서 비전투요원들의 구성은 다양했죠. 장교단 혹은 부사관단의 하인이나 그 가족들부터 해서 비전투용품을 공급해주는 행상들과 그 수하 하인들, 심지어는 군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여성들까지 꽤나 많았습니다. 이유는? 군대가 뿌리는 돈이 꽤나 짭짤했으니까요. 일례로 백년전쟁 내내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경제는 '흑사병'이라는 치명타를 입었는데도 오히려 꽤나 경제성장율 자체는 건실했는데 이유가 전국토가 전장화되었다고 하지만 잉글랜드군의 약탈행렬과 이를 추격하는 프랑스군의 이동이 워낙 빈발해서 오히려 유통망이 급성장하면서 흑사병의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좀 각설이 길었는데, 전투식량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시점은 나폴레옹전쟁시기부터입니다. 니콜라 아페르가 개발한 병조림이 등장하면서 당장은 대량사용이 어려웠지만 꾸준히 개량되었으니까요. 의외로 간과되는 사실입니다만, 러일전쟁이 전투식량의 페러다임을 확 바꾼 전쟁이긴 합니다. 러시아군이나 일본군 모두 당대로써는 유래가 없는 긴 보급거리를 두고 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인데 당시 양측 관전무관단 모두 전투식량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서 향후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것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보고 당시에는 무시되었지만 막상 1차 세계대전 터지니까 잊어버렸던 보고서 꺼내서 나시카님께서 말씀하신 마카너키 통조림 같은 것들 만드느라고 바빴죠.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은 빈약한 공업력 때문에 전투용품과 달리 식량 같은 것은 북만주에서 자체 해결하는 방식이었지만 일본군의 경우에는 야마토니 쇠고기 통조림 같은 통조림을 러시아군보다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활용하긴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통조림이 전투식량으로써 대거 활용되었는데, 특히 부자군대인 미군은 참전 후 참호에 비가 차니까 아예 먹고 남은 통조림을 바닥에 깔아서 비가 새도 발이 안 젖게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썼죠. 의외로 공업대국이던 독일은 통조림을 많이 활용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통조림 만들 설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통조림에 들어갈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괜히 1916년 당시 순무의 계절이 나온게 아닐 정도로 식량사정이 정말 다급했으니까요.

  7. 하모니 2018.08.10 0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량을 현지조달 하지 않고 전부 보급에 의지하는 작전능력을 최초로 갖춘게 2차대전의 미군이었음

  8. 소화낭자 2018.08.10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엔지니어 분이, 이렇듯 훌륭한 글솜씨와 탁월한 식견, 박학다식 하기까지,

    존경하고 있습니다.

  9. 사모작(思慕鵲) 2018.08.10 18: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5년도에 제가 중학생때 보이스카웃 캠핑을 갔을때 고체연료로 밥을 해 먹던 기억이 납니다.
    밥이 꽤 잘 되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2차 대전 때 보다는 화력이 많이 좋아졌었나 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

  10. police 2018.08.10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olish up! 이지요, 갑자기 왠 경찰

  11. 501 2018.08.10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0년 11월 카투사 평시인가 기준
    CP L@@@에 키투사 취사병 TO가 있었고
    그게 마지막 COOK입니다

    제가 듣기론 87년 이후론 배치는 없었구요

    그나저나
    Police call 을 가서
    휴지 줍던 기억은 나네요

  12. 2/28일 입대 2018.08.11 2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먹는 얘기를 읽어서 문득 드는 생각인데, 사치품이었던 담배가 어떤 경로로 일반 사병들한테까지 보급이 되게 된 건가요?

    콰니히그라쯔 전투에서 몰트케가 신선한 담배를 골라서 피는 것을 보고 비스마르크가 안심했다는 야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신선하지 않은' 담배가 있을 정도라면 이미 그때정도 되면 담배의 품질이나 종류가 다양했을까요? 마지막 사진에 병사가 담배를 물고 있는 것을 보니 급 궁금해지네요ㅎㅎ
    (그나저나 갑자기 담배가 다시 땡기는 무서운 느낌이....)

  13. 유애경 2018.08.14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부전선 이상없다.'라는 책을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나, 읽은적이 있습니다. 물론 열일곱살짜리 교교생이 이해할만한 내용은 아니었는데,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구절(장면?)이 두개가 있는데요.

    주인공이 방금전까지도 친하게 얘기를 나누던 고향친구?전우?가 어디선가 날아온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죽었는데 본인은 그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어 주위를 돌아보면서 -하늘이며 숲이며...-묘사한 장면,
    내 친구가 죽었는데 -사람이 죽었는데-그어디를 둘러봐도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사람이 하나 죽었을뿐이다 .

    또하나는,고향에서 같이 입대했다가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 돌아간 상황에서 죽은 친구의 어머니한테 '내아들은 죽었는데 왜 너희들은 살아있지?라는 자조적인 질문(질책)을 받는 장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이었던 그들을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진입대 하게 선동하던 교사가 그자신도 징집당해 결국은 제자한테 갈굼 당하던...여기서는 솔직히 꼬시다라는 느낌 이었습니다.

    어찌됐던 전쟁이란건 이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줬으면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