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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람 전투 (제12편) - 불과 쇠 베시에르, 아니 낭수티가 지휘하는 프랑스군 기병집단으로 하여금 포병과 보병, 기병이 고슴도치처럼 대비를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군 진영으로 돌격하도록 나폴레옹이 명령한 것은 기병대의 위력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을 벌 목적 뿐이었지요. 전쟁터에서 시간이란 수천명의 병사들을 희생시키더라도 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했던 것일까요 ? 어차피 마세나의 군단을 남쪽 에슬링으로 떠나 보내고나면 당장 무너져내리는 아더클라 방면 전선을 막아줄 병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주변에 병력이 있긴 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이 최후의 비상 수단으로 아끼고 아끼던 근위대가 있었지요. 그러나 나폴레옹 같은 대인배에게 있어서, 당시.. 2017. 8. 27.
나폴레옹 당시의 포병 나폴레옹이 포병 전술의 귀재라고들 합니다만, 사실 제가 아는 한에서는 나폴레옹이라고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색다른 포병 전술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프랑스만 뛰어난 성능의 대포를 쓴 것도 아니었고, 나폴레옹이 뭔가 특별한 포병 전술을 직접 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폴레옹의 포병들은 집중된 포병대의 기동성 있는 운용을 꽤 중요시했습니다. 많은 대포를 집중시킨 포병단을 신속히 이동시키고 집중적인 화력을 퍼부어 적을 뒤흔들어놓고, 그래서 생긴 틈으로 또 다시 신속하게 이동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진 전투가 2개의 포병단이 번갈아 가며 러시아군을 향해 돌격한 프리틀란트 전투입니다. 그러나 이건 나폴레옹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세나르몽 (Alexandre-Antoine Hure.. 2017. 8. 22.
두바이 여행기 (2011년) 6년전에 출장으로 두바이에 한달 정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1. 두바이 사람들과 일 휴일에 (여기는 금토가 휴일이랍니다) 두바이 시내를 지하철 및 시내 버스를 타고 그냥 막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전철이나 버스에서 두바이 사람은 거의 못본 것 같아요. 대부분 인도인 또는 필리핀 사람들이고, 유럽계 사람들이 좀 섞여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인도-파키스탄 내지는 동남아 분들 같았습니다.) 두바이 지사에 출근하고 나서 더 놀랐습니다. 여기서 현지 고위 매니저인 오스트리아 여자분과 그 밑의 하위 매니저인 크로아티아 남자분과 커피 한잔 하면서 미팅을 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 두바이 지사에는 두바이 국적인이 전혀 없답니다.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두바이 사람들은 주로 공무원이나 .. 2017. 8. 21.
바그람 전투 (제11편) - 기병대의 궤멸 기세 좋게 달려들어간 낭수티의 제1 중기병사단이 첫번째로 맞이한 난관은 그 지대가 너무 평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병이 달리는데는 평평한 것이 좋지 않냐고요 ?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완만하게 오르내림이 있는 평원이 기병 돌격에는 더 좋았습니다. 여기 아더클라 앞마당처럼 너무 평평하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병대가 그대로 적의 시선과 대포에 노출되면 기병대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낭수티의 기병들이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동안, 오스트리아 보병들은 침착하게 방진(square)을 구성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기병에 대항하여 보병 방진을 구성한 오스트리아군의 모습입니다. 1788년의 오스트리아-오스만 전쟁 때의 모습입니다. 머스켓 소총과 함께 총검이 개발되고 대포의 기동성이 향상되면서부터는,.. 2017. 8. 20.
바그람 전투 (제10편) - 초심을 지키다 이렇게 오스트리아군이 모처럼 맞은 절호의 기회를 지휘부의 처절한 무능함 속에서 날려버리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머리도 바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이미 끝났다고들 말했지만, 그의 클래스는 살아 있었습니다.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가 주저하며 오스트리아군의 승리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몰랐을텐데도, 그는 이런 위기 속에서 침착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후방으로 침입한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를 막기 위해 모든 병력을 동원하는 등 허둥거렸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아직 교전하지 않은 병력이 아주 많았습니다. 최우익의 다부 외에도 우디노와 막도날, 외젠과 근위대 등 어제 밤에 장전해둔 탄약이 머스켓 약실에 그대로 들어 있는 병력이 대부분이.. 2017. 8. 15.
맥주와 전쟁 - 스핏파이어 전투기의 생산적 사용에 대해 맛없는 음식과 전투 본능으로 유명한 영국인들은 사람들이 '예술적 재능이 떨어진다'라고 비웃기는 해도 문화적 강국임에 틀림없습니다. 축구, 골프와 같은 스포츠는 물론이요, 대중음악과 영화 등 비교적 현대적인 문화 트렌드에서 특히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요. 또 피쉬앤칩스와 장어파이로 쌓은 악명이 있기는 해도, 홍차와 더불어 펍(pub)의 맥주 문화도 영국의 존재감을 세계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서머셋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Of humna bondage)'에서 주인공 필립이 그의 아재 친구 아쎌니의 집을 일요일에 방문한 장면에서 영국 가정 음식 문화의 단편을 보여줍니다. 가족들과 함께 로스트비프(roast beef)와 요크셔푸딩(Yorkshire pudding)으로 오찬(dinner)을 먹고,.. 2017. 8. 12.
바그람 전투 (제9편) - 위기일발 전날 밤 카알 대공도 나폴레옹과 생각하는 것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좌익과 중앙에서 잽을 날리며 적의 시선을 끈 뒤, 강력한 우익의 우회 진격을 통해 적의 측면을 관통하여 끝장을 본다는 것이었지요. 차이는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공격자였던 나폴레옹은 방어자 입장인 오스트리아 측이 먼저 선제 공격을 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 카알 대공이 한두 시간 먼저 공격을 해들어온 것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이 베르나도트의 아더클라 무단 이탈과 마세나가 지휘하는 제4 군단의 아더클라 쪽으로의 이동이었습니다. (카알 대공이 준비한 회심의 라이트 훅, 클레나우의 진격 방향이 파란색 화살표로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와 직각을 이루며 북쪽으로 올라가는 붉은색 화살표가 프랑스군 마세나의.. 2017. 8. 6.
바그람 전투 (제8편) - 아더클라의 혈전 새벽부터 동쪽의 포성을 듣고 혹시 요한 대공의 군대가 쳐들어온 것인가 깜짝 놀라 병력을 이끌고 다부의 전선으로 달려갔던 나폴레옹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쪽의 소란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엔 중앙부에서 들려오는 포성에 이건 또 뭔가 싶어 말을 달렸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대노했습니다. "어제 밤부터 베르나도트 저 허풍선이는 병신짓만 골라 하는구나 !" 다행히 그는 어제 밤 베르나도트 없이 열었던 작전 회의에서 베르나도트를 지원하기 위해 마세나의 병력을 좌익에서 중앙부로 이동시킨 바 있었습니다. 해가 밝아오는 상황에서, 그의 눈에 마세나의 병력이 현장에 도착하는 것이 보였고, 곧 이어 마세나의 눈처럼 하얀 색의 무개마차도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마세나는 베르나도트 못지 않게 돈 욕심.. 2017. 7. 30.
영화 덩케르크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 - 불시착부터 홍차까지 영화 덩케르크 개봉 기념으로, 영화 보면서 궁금했던 점 몇가지 정리했습니다. (주의 : 일부 약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1. 톰 하디의 스핏파이어 전투기에는 총알이 몇 발이나 들어 있었을까요 ? 어설프게 만든 전쟁 영화 또는 드라마의 특징이 총에 화수분 탄약이 들어 있는지 총알이 떨어지는 일 없이 아주 무한정 쏟아지는 것입니다. 톰 하디가 몰던 스핏파이어에는 몇 발의 총알이 들어 있었을까요 ? 스핏파이어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A wing 타입의 기체에는 0.303 구경 (7.7mm) 브라우닝 마크 2 기관총이 날개당 4정씩, 총 8정 장착되어 있었고, 정당 장탄수는 350발씩이었습니다. 이 브라우닝 마크 2 기관총은 초당 발사 속도가 약 7발 정도이므로, 톰 하디가 쏜 것처럼 약 2초씩 끊어서 쏜.. 2017. 7. 27.
바그람 전투 (제7편) - 베르나도트의 사정 7월 6일 새벽, 카알 대공이 정한 공격 개시 시간을 제대로 지킨 것은 로젠베르크 대공 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카알 대공이 위치한 도이치-바그람 마을 인근에 있던 부대들도 제때에 작전 명령을 받았고, 그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1 군단도 벨가르드(Heinrich Joseph Johannes, Graf von Bellegarde) 백작의 지휘 하에 오전 3시부터 행군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공격 목표는 바로 코 앞에 있는 아더클라(Aderklaa) 마을이었습니다. 카알 대공의 이 날 공격의 진짜 펀치는 오스트리아군의 우익, 즉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의 2개 군단이었으나, 벨가르드 백작이 맡은 이 아더클라 공격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이 전체 전선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므로, 이 곳을.. 2017. 7. 23.
바그람 전투 (제6편) - 라데츠키의 분전 오스트리아군의 좌익을 맡고 있던 로젠베르크(Franz Seraph von Orsini-Rosenberg) 대공의 제4 군단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기만을 위한 미끼였습니다. 카알 대공의 주공은 어디까지나 우익, 즉 게라스도르프(Gerasdorf) 쪽의 클레나우의 제6 군단과 콜로브라트(Kollowrat)의 제3 군단이었지요. 그러나 미끼도 너무 작으면 큰 고기를 낚을 수 없는 법이었으므로 로젠베르크의 군단도 총 1만8천의 꽤 큰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저녁 무렵에 만신창이가 되어 합류한 노르드만(Nordmann)의 전위대 6천, 그리고 노스티즈(Nostitz)의 기병대 3천이 합류해 있었으므로 총 2만7천의 강력한 군세였습니다. (로젠베르크는 당시 49세로서, 작위는 Reichsfürst 였습니다. 왕보다는.. 2017. 7. 16.
토르 라그나로크 - 바이킹들의 빵 몇 달 전에 토르 3, 라그나로크(Thor Ragnarok)의 티저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었습니다. https://youtu.be/v7MGUNV8MxU 무척 재미있어 보이는 이 티저 영상의 배경 음악은 1970년대의 헤비메탈 그룹인 레드 제펠린(Led Zeppelin)의 히트곡인 '이민자의 노래'(Immigrant Song)입니다. 이민자라고 하니까 뭔가 애달프고 핍박받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데, 요즘 구미 선진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민자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멋진 노래가 묘사하는 이민자 역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바로 바이킹에 대한 노래이거든요. 저 토르 3 티저 영상을 만든 프로듀서가 정말 기가 막히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낸 것이지요. A.. 2017.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