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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굶주림과 희생 - 토헤스 베드하스 공방전

by nasica 2018. 12. 10.

후퇴하는 웰링턴의 뒤를 쫓아 리스본으로 달리던 마세나가 1810년 10월 14일 생각지도 못했던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을 직접 육안으로 보고 그 규모에 경악하는 사이, 웰링턴이 사전에 프랑스군 후방에 미리 풀어놓았던 비밀 병기는 이미 작동을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기아였습니다.  애초에 웰링턴은 마세나와 피투성이가 되어 멱살을 쥐고 구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기본 전략은 리스본 북쪽의 황량한 험지에서 마세나의 진격을 틀어막고 마세나에게 굶어죽든지 돌아가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웰링턴은 부사쿠 전투를 전후하여 계속 그 일대의 포르투갈 주민들을 방어선 이남으로 피난가라고 강요했던 것입니다.  


이는 병력은 부족하지만 물자는 풍부하고 기동력은 느리지만 방어에는 탁월한 영국군에게 딱 어울리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웰링턴의 자화자찬에 불과했습니다.  포르투갈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작전은 웰링턴이 영국군의 전투 손실을 막기 위해 포르투갈 민간인들을 희생시키자는 수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10월 중순부터 우기가 시작되는데, 식량이나 주택이나 영국군은 아무 것도 책임져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집을 떠나 남쪽으로 가라는 것은 사실상 길바닥에서 굶어죽거나 얼어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주민들은 피난 가기를 거부했고 영국군은 집에 남은 주민들에게 '떠나지 않을 경우 무력을 행사하겠다' 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전쟁은 비참한 것입니다.  영국군의 명령에 순종하여 정처없이 길을 떠난 주민들도, 명령을 거부하고 집에 남은 주민들도 모두 전쟁의 참혹함에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프랑스군에게도 인정은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 남은 주민들은 그야말로 프랑스군에게 가진 식량과 주택을 모두 빼앗기고 여성들은 성폭행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그에 저항하던 주민들은 가차없이 살해되었습니다.  가령 쿠임브라(Coimbra) 시의 주민들 중 끝내 피난가지 않고 남은 주민들 약 2만명 중 5% 정도인 1천명 정도가 쿠임브라가 함락될 때의 무질서한 약탈 와중에 살해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영국군의 총칼에 떠밀려 길바닥에 나선 주민들의 처지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동맹군이라지만 난폭하기로는 프랑스군 못지 않았던 영국군의 약탈과 폭행, 굶주림과 추위였습니다.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 뒤로 후퇴할 때 연합군과 함께 집을 버리고 피난가도록 강요된 포르투갈 주민들의 비참함에 대해서는 로열 스코틀랜드 제1 연대 3대대의 존 더글라스(John Douglas)라는 부사관이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불쌍한 주민들은 가족마다 앞에 어린 것들을 앞세우고 걸었는데, 이 어린 것들은 매일, 아니 거의 매시간 줄어들었다.  그러나 난파선의 선원들이 물 위에 뜬 마지막 나무조각에 매달리듯 이들은 계속 어디론가 걸어가야 했다.  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적이나 아군이나 모두 이들의 소지품을 약탈했다.  결국 이들 대부분은 영국군 포병 진지 뒤편에서 땡전 한푼 없이 참혹한 겨울을 보내야 했다.  이 글을 읽는 영국인들이여, 생각해보라.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사실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또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잠시 동안이라도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쉬운 일이리라.  그러나 전쟁의 참혹한 손아귀로부터 이 축복받은 섬 주민들(영국인들을 지칭: 영국)을 지켜주신 주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Los desastres de la guerra, 즉 '전쟁의 참상'이라는 고야(Goya)의 시리즈 판화물 중 'No hay quien los socorra' (그들을 도울 자는 없다)라는 그림입니다.  세 명의 여인이 죽어 쓰러져 있고, 한 명이 서서 울고 있습니다.)




(역시 '전쟁의 참상' 시리즈 중 'De qué sirve una taza?' (컵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는 그림입니다.  두 명의 굶주린 여인이 쓰러져 있는데 다른 여자 하나가 그 중 죽어가는 한 명에게 뭔가가 담긴 컵을 권하고 있습니다.)




결국 1810년 10월부터 1811년 봄까지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동안 무려 5만명의 포르투갈 주민들이 아사 및 병사, 동사해야 했습니다.  5만이라는 숫자는 당시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2%로서 정말 막대한 피해였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남한 인구가 약 2천만명이었는데 그 끔찍했던 3년 전쟁 동안 남한 민간인 사망자만 약 38만명으로 약 2%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포르투갈은 약 5개월 동안 전체 인구의 2%가 사망했으니 얼마나 참혹한 광경이었는지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포르투갈 민간인들에게 이토록 참담한 희생을 강요한 결과 프랑스군도 큰 피해를 입었을까요 ?  예, 당연히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매우 작았습니다.  1810년 9월 기세 좋게 포르투갈 국경을 넘은 프랑스군은 총 6만5천으로 시작했으나 다음해 2월 결국 프랑스군이 철수할 때 살아서 돌아간 것은 4만이었습니다.  그 중 전투에 의한 사상자는 부사쿠 전투 때의 약 4500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굶주림과 그로 인한 합병증에 의해 희생된 것이었습니다.  또 알게 모르게 굶주림에 지쳐 탈영한 프랑스군도 꽤 많았겠지요.  무려 2만이나 되는 적을 총 한방 쏘지 않고 무찔렀으니 웰링턴은 기뻐했을까요 ?


웰링턴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포르투갈 주민들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자책감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세나는 불과 2~3주도 버티지 못하고 스페인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고, 그때 굶주리고 지친 채 후퇴하는 마세나의 군대를 추격하여 격파할 생각이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약 1년 전인 1809년 5월, 포르투(Porto)에서 퇴각하는 술트의 군단을 추격하며 기세를 올렸던 신나던 순간이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마세나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 바로 코 앞에서 무려 1달을 버텼습니다.  웰링턴의 예상대로 프랑스군의 굶주림은 극심했습니다.  불과 2주만인 11월 초 이미 식량 부족으로 인한 프랑스군의 비전투 병력 손실은 5천에 달했으니까요.  수백 명의 프랑스군이 굶주림에 견디지 못하고 영국군 측에 투항해왔습니다.  그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마세나는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확실히 노련한 적수였습니다.  짙은 안개가 끼었던 11월 14일 밤, 프랑스군은 군복을 입고 군모까지 쓴 허수아비들을  감시 초소에 남겨둔 뒤 조용히 철수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가 넘어 안개가 다 걷히고도 몇 시간이 더 지나서야 영국군은 프랑스군이 모조리 철수했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의 기민함이었습니다.  


포르투에서 술트를 결국 놓쳤듯이 마세나도 놓치게 되었다고 생각한 웰링턴이 느림보 영국군을 닥달하여 부랴부랴 그 뒤를 쫓았으나 영국군 전위부대가 프랑스군을 따라잡은 것은 무려 2일이 지난 11월 17일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프랑스군은 기가 죽어 걸음아 날살려라 도망치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쫄쫄 굶은 군대치고는 엄청난 속도인 하루 28km의 행군을 2일간 강행한 프랑스군은 어느 틈에 테주(Tejo) 강 북안에 면한 강변 도시 산타렝(Santarém)에 겨울 숙영지를 마련하고 든든한 방어진지까지 구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마세나는 식량 부족으로 인해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 앞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식량 사정이 그나마 나았던 이 곳에 진지를 구축한 뒤 포병대와 야전 병원 등 이동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대부터 미리 이동시켜 놓았던 것입니다.  산타렝에는 레이니에(Jean Reynier)의 제2 군단이 자리잡았고 나머지 부대들은 역시 먹을 것이 있는 더 북쪽 지역으로 분산되어 있었지만 웰링턴은 감히 프랑스군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닭쫓던 개 신세가 된 영국군을 프랑스군이 든든한 방어진지 안에서 비웃는 상황이 된 셈이지요.  




(마세나가 원래 대치하던 곳은 토헤스 베드하스가 아니라 소브랄이라는 마을 근처였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산타렝까지는 대략 55km 정도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하루에 28km씩 걸었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양군은 지루한 대치 상황에 들어갔습니다.  웰링턴은 프랑스군이 여기서도 굶주리다 결국 몇 주 버티지 못하고 철수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놀랍게도 마세나의 프랑스군은 정말 뛰어난 식량 수집 기술을 발휘하여 다음해 3월까지 무려 3개월이 넘는 기간을 버텼습니다. 


대체 프랑스군은 어떻게 이렇게 먹을 것도 없이 버틸 수 있었을까요 ?  결국 웰링턴의 초토화 작전은 그다지 완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찰스 콕스(Charles Cocks)라는 영국군 정보 장교가 11월 4일 기록한 일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병참 장교들을 동원해서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 앞 10 리그(league, 1리그는 약 5.5km)에 걸친 전 지역에서 모든 식량을 다 사들였더라면 적은 식량 부족으로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페니슈(Peniche) 지방의 총독인 블런트(Blunt) 장군이 얼마전 포르투갈 민병대장들(Capitao Mors)에게 레이리아(Leiria)와 방어선 사이에 있는 전체 곡물을 다 치우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지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답변은 6주였으나, 지난 달 우리가 후퇴할 때 실제로 그들에게 통보가 갔을 때는 불과 며칠의 여유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많은 양의 식량이 적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원래 계획은 토헤스 베드하스 북쪽 100km 넘게 떨어진 레이리아까지 초토화 작전을 펼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철저히 수행되었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죽어야 했을까요 ?)




그래도 물론 먹을 것은 부족했습니다.  마세나가 그렇게 먹을 것도 별로 없는 곳에서 버틴 이유는 웰링턴의 인내심이 바닥이 나서 서투른 공격을 해오는 것을 역공하든가, 아니면 스페인에서 드루에(Drouet)의 제9 군단이 지원을 위해 이동해오면 합세하여 웰링턴을 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웰링턴의 조심성은 바닥을 몰랐고, 레이니에의 제2 군단이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굶주리고 있었는데도 공격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마세나는 다음 해인 1811년 2월, 실패를 인정하고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으로 후퇴했습니다.  그 때 즈음에는 먹이찾기의 귀재 프랑스군조차도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 일대가 탈탈 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웰링턴은 '영국군이라면 한달도 버티지 못할 곳에서 프랑스군은 무려 3달을 버텼다'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결국 1810년~1811년 봄까지 이어진 마세나의 침공과 그에 맞선 웰링턴의 작전은 수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 사망자만 낸 채 양측에게 아무 의미도 없이 끝났습니다.  전쟁, 특히 외국군에게 국토를 맡긴 전쟁이란 이렇게 참혹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Source :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campaign_massena_portugal.html

https://www.lifeofwellington.co.uk/commentary/chapter-twenty-three-torres-vedras-october-1810-to-february-1811/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wars_peninsular.html

https://en.wikipedia.org/wiki/Lines_of_Torres_Vedras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lines_of_torres_vedras.html

http://samilitaryhistory.org/vol102sm.html

https://www.voakorea.com/a/article----625----124496254/1348359.html

https://en.wikipedia.org/wiki/The_Disasters_of_War

댓글21

  • 밥돌이 2018.12.10 08:34

    이때 프랑스군은 나폴레옹 없어도 웰링턴쯤은 두어달 묶어둘수 있는 역전의 용사들이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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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팍아마르 2018.12.10 11:05

    마지막 말이 가슴에 와 닿는군요.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시기, 그리고 한국전쟁때 한반도에 살았던 백성들의 삶이 오버랩되는게 저뿐만이 아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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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ica팬 2018.12.10 11:09

    잘 읽엇습니다

    참고로 한국전쟁의 민간인 피해는 학자마다 추정치가 다르며 남북한 합쳐 최대 수백만명 단위까지 보는 경우도 잇습니다

    본문의 38만명은 수많은 추정치 중 하나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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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anken 2018.12.10 13:52

    앞으로의 전개가 예상되는 게 프랑스군은 몇 번 이런 식으로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 앞까지 왔다가우주방어선을 뚫을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며 몇달간 머물렀고 웰링턴은 뚝심있게 본국이 뭐라 하든 포르투칼이 뭐라 하든 요지부동... 결국 프랑스군이 재풀에 다시 후퇴... 그러다가 러시아원정으로 스페인의 프랑스군까지 불러들였다 대패하여 자연히 균형이 깨지고 기회를 포착한 웰링턴이 드디어 진격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그림이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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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18.12.11 01:44

      이미 벌어진 일인 역사에서 전개를 예상한다는 말은 좀 이상하긴하네요

  • reinhardt100 2018.12.10 17:02

    몇달간의 대치 속에서 양군이 모두 식량 부족에 시달렸군요.

    저번에 한 번 다른 글에서 댓글을 달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나폴레옹이 직접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하여 밀어붙였어야 했다고 생각이 더욱 강해집니다. 방어선 자체가 일단 길더라도 20만 대군의 공성포탄 탄막에 단 한군데만 뚫려도 영국군은 리스본까지 후퇴해야 하는데 리스본까지 간다는건 이미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20만 대군의 보급 문제가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보급이 끊어지지 않게 한다면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을 뚫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19세기판 참호전이 되었을수도 있다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보여지는게 5만의 병력으로 솔직히 40km에 육박하는 방어선 전체에 균일한 밀도의 탄막을 펼친다는 건 당시 군사기술상 불가능했습니다. 당장, 웰링턴도 10km 이상은 기존의 성채 및 자연적 장애물을 활용했는데 프랑스군 입장에서는 일부러 저런 지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중 아무데나 단 한군데만 집중해서 화력을 투사해버리면 방어선이 돌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18세기 전반 모리스 삭스 원수가 유능한 사령관이 지휘하기에 최적,최대의 병력 규모는 당시 기술상 4만 5천명이 한도라고 했는데 웰링턴은 여기에 20% 정도 더 많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자기 병력의 4배를 동원해서 단번에 밀어붙인다면? 막을 방법따위는 이미 없어진다는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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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anken 2018.12.10 19:23

      프랑스가 제해권이 없었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죠. 육상으로는 시대한계상 20만 대군을 먹일 보급을 유지한다는 게 불가능했고 북아프리카와 비슷한 건조기후를 지닌 이베리아 반도서 징발로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니 말이죠. 그럼 답은 목표인 리스본이 해안도시이겠다 대서양 연안이나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해군으로 보급 및 공략을 하는 게 답인데 재해권이 영국에게 있으니 천하의 나폴레옹이라고 답이 있을 리가 없지요ㅎㅎㅎ

      평소 나폴레옹이 영국을 "상점주인들의 나라"라고 비웃었다는데 그 상점주인들이 다른 건 몰라도 돈줄 하나는 아주 두둑했으니 얕잡아본 댓가를 톡톡히 치뤘군요

    • reinhardt100 2018.12.11 00:24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무리를 해서라도 했어야 했다는게 제 솔직한 의견입니다. 일단 프랑스 본토와 이베리아반도는 육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융단폭격하듯이 반도 전체를 진압할 가능성은 있으니까요.

      보급문제 중요하죠. 다만, 보급선을 다양하게 하고 20만 이외에도 보급로 경비병력 확충 및 게릴라 토벌작전 같은 것도 병행해서 아예 저항의 싹을 잘라버리는 식으로 나가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죠.

  • 루나미아 2018.12.10 19:41

    토레스 베드라스의 위엄을 기대하며 글을 열었다가 민간인들의 희생을 보고 씁쓸해지네요...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에서 이런 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폴란드는 굶었을망정 강제 이주나 굶주림으로 사망까지 이르렀단 얘기는 못 들어서;)

    그리고 러시아 원정에 비하면 이건 티저영상 정도밖에 안 되는게 더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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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애경 2018.12.10 23:15

    하여간 전쟁은 만악의 근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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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18.12.11 01:45

      그런 마인드로 2차 세계대전을 막은 위대한 위인 네빌 체임벌린에 대해 아십니까?

    • 유애경 2018.12.11 02:08

      2차 세계대전을 막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 0_- 2018.12.12 20:26

      프로불편러가 유행하더니, 요새는 프로시비러가 유행하나 봅니다?

      전쟁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만 했지, 무슨 돈으로 평화를 사자고 하는 투로 이야기 한 적도 없는 분에게 대뜸 체임벌린 수상 이야기를 왜 꺼내고 있는거죠? 뭐 하나 배웠다고 얄랑궂은 지식자랑 하는 겁니까? 거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수준으로 뜬금없이 뭐시기 저시기를 아느냐고 묻는데, 수준이 딱 외국인 기자회견장에서 질문하랬더니 "두유노 뭐시기저시기" 하는 기레기 수준 내지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하는 "도를 아십니까?" 수준이네요.

      이거 하는 꼴 보니 댓글란에 자주 출몰하는 누구누구가 딱 연상되네요. 또 동일인이 아니라 발뺌은 하겠으나 단어선정수준, 문장력이나 논리전개수준이 딱 그꼴이라서 설령 자아가 동일인이 아니더라도 똑같이 취급하면 좋긴 하겠더라고요.

    • 애독자 2018.12.13 12:54

      눈물닦고 침착하게 좀 말해보세요

    • 푸른 2018.12.18 13:31

      애독자님 뼈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센척하는거 너무 웃기네요ㅋㅋㅋㅋ 불쌍하기도하고ㅋㅋ

    • 애독자 2018.12.18 16:15

      그닥 진지하게 대꾸할 필요를 못느껴서요 글 한줄로 아주 일생이 담긴 소설을 쓰고 자빠졌는데 뭐하러 초를 칩니까

  • Starlight 2018.12.11 01:49

    통신과 보급. 각 지역을 통제할 병력까지 합해 대육군은
    스페인에서만 평균 20만명이 주둔했었습니다.
    끊임없는 게릴라전으로 통신선 유지조차 어려워
    각 부대가 와해된 상태로 각개격파되며 계속 소모되는데,
    이런 스페인을 배후로 두고 포르투갈에서 일시에 20만명을 동원하려면 이건 군역량을 총동원해야겠죠.
    여전히 오스트리아는 강하고, 프로이센은 부활하고 있고,
    러시아는 꼬장꼬장하니 이때쯤 1810년에는 대외적으로는 최상의 국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프랑스의 군사력도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라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이 온전히 이런 시대 흐름을 직관하고 통찰했어도 결국엔 몰락할 운명이란 생각입니다. 서부전선엔 스페인과 포르투갈, 동부전선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북쪽 바다 너머엔 영국.
    북동쪽엔 거인인 러시아. 그리고 베르나도트의 스웨덴까지. 완전히 고립무원입니다. 라인연방과 폴란드.나폴리는 나폴레옹에게 국면을 전환할 큰 도움이 될수는 없었지요.
    답글

    • 웃자웃어 2018.12.11 03:15

      그상황에서 오히려 러시아로 쳐들어가 무덤을 팠죠.

  • 조금 심도 있는 글이라 찬찬히 읽었어요^^;; 그리고 과연 의미있는 전쟁이 있었던 적이 있나? 생각해보니 전 잘 모르겠어요. 갖다붙이면 다 대의가 있었다 하겠지만..
    답글

  • 어이가없네요 2018.12.14 02:27

    위에 눈물닦고 침착하게 말씀해보시라는분, 체임벌린 운운하신게 어거지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에 대한 지적에 응수하는 태도가 실로 수준떨어지네요. 눈물닦고 천천히 말씀해보라니,참 궁색하기도 합니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때엔 상대방을 무시하라고 어디선가 배웠나보지요?
    답글

  • 인퀴지터 2019.02.22 19:14

    계절이 지나서 하는 거론입니다만 좋은 본문에 어째서 이렇게 철딱서니없이 머저리같은 댓글들이 빈번히 달리는지는 글쓴이님도 모르지시 않지 않습니까, 글쓴이님은 논쟁성 화두에 급진적인 정치관을 자주 단언조로 표시해서 ♪♩♫들이 꼬이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시고 계신다고 여길 부류가 적지 않겠죠, 적어도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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