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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첸을 향하여 (3) - 샤른호스트의 빈 자리 5월 6일 아침, 나폴레옹은 스파이들로부터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이 각각 따로 엘베 강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매우 흡족해 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은 북쪽의 마이센(Meissen)으로 향하고 러시아군은 예상대로 남쪽의 드레스덴으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나폴레옹은 자신이 토르가우로 네의 군단을 보낸 것에 프로이센군이 베를린이 위협받고 있다고 겁을 집어먹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기분 좋게 그 날 저녁 뷔르젠(Wurzen)까지 도착했지만, 프로이센군 중 일부 1만2천 정도만 마이센으로 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러시아군을 따라 드레스덴으로 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 소식에 놀란 나폴레옹은 정확한 정보를 얻기를 원했고, 프랑스군의 진격은 또 잠시 멈춰야 했습니다. 혹시나 이것들이 결별하지 않으면 어떡.. 2022. 12. 26.
최초의 민족 전쟁? - "나의 국민에게"(An mein Volk) 먼저, 언제나 문제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본인이었습니다. 러시아와의 동맹 체결을 위해 2월 26일 칼리쉬로 떠나면서 샤른호스트는 한시가 급한 프로이센군 병력 증강안을 세세히 마련해두었습니다. 그 요지는 대국민 호소에 따른 국민방위군(landwehr)의 대대적인 증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샤른호스트가 칼리쉬로 떠나자마자 그런 모병 움직임은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나폴레옹에 대한 선전포고를 최대한 늦추고 싶어했고, 또 지엄하신 호헨촐레른 왕가의 수호를 귀족들이 아닌 평민들에게 호소하여 국민방위군을 모집한다는 것이 무척 못마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이런 마음가짐은 재빠른 병력 증강을 위해서는 프랑스식으로 국민군을 모병해야 한다는 개혁파 관료들의 염원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습.. 2022.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