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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cheren2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6편) - 세상 억울한 사나이 1806년,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가 겁도 없이 나폴레옹에게 도전한 제4차 대불동맹전쟁에서 프로이센은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이 했습니다. 특히 10월 14일은 아마 프로이센 역사상 최악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프로이센 전체 야전군이라고 할 수 있는 12만 대군이 예나와 아우어슈타트에서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 났거든요. 프로이센에게는 특히 아우어슈테트 전투가 뼈 아픈 상처가 되었습니다. 6만의 프로이센 대군이 불과 2만7천 밖에 안 되는 다부(Louis Nicolas Davout) 원수의 프랑스군 제3 군단에게 박살이 났으니까요.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박살낸 나폴레옹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 놀랍게도 베를린 시민들은 이.. 2018. 8. 2.
땅과 돈과 피의 평화 - 쇤브룬 (Schönbrunn) 조약 7월 11일 츠나임 휴전이 이루어지자, 전투 현장에 있던 장교들과 병사들은 양측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전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불만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일단 프랑스 측에서는 나폴레옹의 참모들, 특히 참모장 베르티에(Berthier)가 이 휴전에 반대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 배은망덕한 합스부르크 왕가를 완전히 권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놀랍게도 오스트리아 측, 즉 합스부르크 궁정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직 충분히 싸울 수 있는데 왜 패배를 인정하고 휴전하느냐는 것이었지요. 양측의 불만은 다 근거가 있었습니다. 프랑스로서야 이기고 있는데 왜 그만 하느냐는 불만을 가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측도 비록 물러서기는 했.. 2017.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