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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S Chicago3

무선 침묵 이야기 (2) - USS Chicago의 격침 1943년 1월 말, 일본군은 과달카날 일대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을 결정하고 굶주린 잔존 병력 1만을 몰래 빼내는 케(ケ)호작전을 준비함.  일본군이 뭔가 작전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미해군도 눈치 채기는 했는데, 미해군은 실제와는 정반대로 일본군이 지상군 증원병력을 투입하려 한다고 판단.  결국 할시 제독은 정규항모 2척을 포함한 항모전단을 투입하기로 하고, 먼저 6척의 순양함과 2척의 호위항모, 기타 구축함들로 구성된 Robert C. Giffen 소장의 제18 기동부대를 앞세워 남쪽에서부터 솔로몬해로 진입을 시도.   (지펜 소장의 제18 기동부대에 소속되어 있던 2척의 호위항모 중 하나인 USS Chenango (CVE-28, 1만2천톤, 18노트).  원래 1941년 미해군 유조선 AO-31으로 .. 2024. 8. 1.
미해병대의 레이더 이야기 (1) - Clutter와 noise의 차이 1942년 8월 7일 과달카날에 처음 상륙한 미해병대를 지켜준 것은 전함과 순양함, 그리고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F4F Wildcat 전투기들이었는데, 이들은 USS Enterprise와 USS Saratoga 등의 항모로부터 이함한 것들.  미해병대의 상륙 목적은 일본군이 닦던 활주로를 점령하고 그걸 미군 비행장으로 완성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과 함께 온갖 물자와 장비들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이게 미군이 역사상 거의 처음 해보는 대규모 상륙작전이라는 것.  (흔히 Higgins boat라고 불렸던 상륙용 주정(LCVP, landing craft, vehicle, personnel)은 1941년 5월에야 첫 시험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나중에 개발된 것.) (미군의 LCVP는 일본군이 중일전쟁.. 2024. 6. 13.
과달카날에서의 레이더 이야기 (4) - 기술은 없어도 전술은 있다 1942년 8월초부터 과달카날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해군은 레이더를 경시했던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음. 1) 일단 미해군의 CXAM 레이더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고 2) 레이더만으로 제로센을 쏘아 떨어뜨리지는 못했기 때문. 먼저, 8월 7일 새벽 미해병대가 미해군의 엄호하에 툴라기와 과달카날 등에 상륙하자, 라바울의 일본군 기지에서는 미쓰비시 G4M1 "Betty" 쌍발 폭격기 27대를 날려보내 상륙 함대를 공격. 일찌감치 이들의 내습을 알고 있던 미해군은 Wildcat 전투기들을 보내 요격하려 했으나, 문제가 2가지 있었음. 첫째, 이 27대의 폭격기에는 17대의 제로센 호위 전투기들이 딸려 있었음. 둘째, 언제나 그렇지만 CXAM 레이더는 포착된 적기의 고도 파악을 제대.. 2024.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