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uentzien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4) - 포로가 된 아들 9월 중순, 블뤼허의 슐레지엔 방면군은 다소 갑갑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단 당장 대치하고 있는 막도날의 보버 방면군을 계속 몰아치고는 있었으나, 베르나도트를 치려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보버 방면군이 전선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계획이 흐트러진다'라는 닥달을 받은 막도날도 결사적으로 블뤼허에게 저항하고 있어서 서쪽 드레스덴으로의 진군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막도날의 등 뒤에는 엘베강과 드레스덴이 있었고 막도날은 여차하면 드레스덴의 견고한 성벽 뒤로 숨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의 주력군이 도사리고 있는 드레스덴에 블뤼허 혼자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중에야 그것이 밀가루 수송선단 호위를 위한 병력 전개라는 것을 알았지만) 엘베강 우안인 그로스엔하.. 2024. 11. 18. 덴너비츠 전투 (2) - 인사가 만사 네가 비텐베르크에 도착하여 확인한 베를린 방면군의 병력과 장비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로스베어런에서의 패배는 우디노가 지나치게 각 군단을 분산시킨 채 전진하는 바람에 병력 집결이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에 겪은 것이었고, 베를린 방면군의 사상자 숫자도 3천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후퇴하는 우디노에 대한 추격이 거의 없었던 덕분이었습니다. 원래 프로이센군의 뷜로는 가열찬 추격전을 벌이려 했으나 소심했던 총사령관 베르나도트가 추격을 중지하도록 명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를린 방면군은 병력도 6~7만으로 크게 줄지 않았고 포병대도 고작 14문의 야포만 상실하여 아직 190문 이상의 야포를 갖춘 상태였습니다. 다만 병사들, 특히 작센과 바이에른, 뷔르템베르.. 2024. 7. 15. 나폴레옹을 잡을 작전 - 샤른호스트의 비책 프로이센이 러시아와 손잡고 나폴레옹과 전쟁을 하기로 했으니 먼저 총사령관을 선정해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프로이센 내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크네제벡과 같은 인물은 러시아군과의 협력이 최우선이니 러시아 짜르의 신임을 받고 있는 타우엔치엔(Bogislav Friedrich von Tauentzien) 장군이 적절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크네제벡이 아무리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측근이라고 해도 그는 중령에 불과했고 인사권자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 국방부 장관 샤른호스트는 바로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를 천거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프로이센 장군들 중에서 오직 블뤼허만이 나폴레옹에게 겁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타우엔치엔 장군입니다. 그는 18.. 2022. 5. 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