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Sharpe's Triumph'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9.01.17 19세기초 영국군과 인도군은 어떻게 싸웠나 - Sharpe's Triumph (10)
  2. 2018.06.07 머스켓 소총의 경제학 (17)




Bernard Cornwell이 지은 Sharpe 시리즈는 1799년 영국군이 인도 중부 마이소르(Mysor) 지방을 침공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3년 정도의 안정기를 지나, 마이소르 지방의 수도인 셰링가파탐이 영국군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인도 군주 하에서 안정화되자, 영국은 다시 더 북부의 마라타 연합이 지배하는 지역을 노립니다.  이런 식으로 영국이 인도 전체를 식민지화하는데는 무려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버트 클라이브가 7년 전쟁 도중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인도에서 영국의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 1757년이었으니까,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야금야금 먹어들간 셈이지요.  인도 대륙이 정말 크긴 큰가 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인 무렵, 영국은 아직도 인도 대륙 일부만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인도라는 블루 오션을 아무 경쟁없이 야금야금 파먹어가는 동안, 나폴레옹은 해군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도가 영국에게 있어 거저먹기인 블루 오션이었을까요 ?  그렇게 표현한다면 인도 사나이들을 너무 모욕하는 셈이지요.  당시 인도는 정말 수많은 소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왕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문물, 특히 군사 기술을 많이 받아들여 유럽식 무장을 상당히 갖춘 편이었습니다.  


영국은 이렇게 잘 무장된 왕국들을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이간질로 차례차례 각개격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어쨌든 압도적인 숫자의 인도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무기가 비슷하더라도, 영국군의 훈련 및 전술 전략이 우월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훗날 웰링턴 공작이 되는 아더 웰슬리도 군 생활 초기는 인도에서 시작합니다.  아래 묘사되는 전투는 훗날 웰링턴 공작에게 누군가 '공작께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투는 어느 전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웰링턴이 망설이지 않고 뽑은 아사예 전투입니다.  여기서 웰슬리가 이끄는 영국 정규군 스코틀랜드 연대와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세포이 연대들은 인도 중북부의 마라타(Maratha) 연합군과 혈전을 벌입니다.  이 전투의 묘사를 보면, 당시 보병과 포병이 어떤 식으로 전투를 벌였는지 실감나게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스코틀랜드 연대는 이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관목 그루터기를 짓밟으며 나아갔고, 이제 곧 언덕 능선을 넘어서면 또 다시 인도군 포병대에 노출되면서 대포 사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인도 포병대에게 처음으로 관측되는 것은 두 개의 연대 깃발일테고, 다음으로는 말을 탄 장교들, 그리고는 붉은색, 흰색, 검은색으로 치장된 전체 연대들이 머스켓 소총에 장착된 총검을 햇빛에 번쩍이며 인도군의 시야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리고는 신의 도움이 필요할테지'라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앞쪽에 있는 망할 놈의 대포들은 그 사이에 모두 재장전을 마쳤을 것이고, 이제 표적물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첫번째 대포알이 바로 몇 발자욱 앞에 쾅하고 떨어졌다가 튕겨올라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머리 위로 넘어갔다.


"저 자식은 너무 일찍 쐈군." 바클리가 한마디 했다.


"이름을 적어 두지 그러나. (전투 중 잘못을 저지른 병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체벌하는 관습에 대한 농담임 : 역주)"


샤프는 오른쪽을 보았다. 모두 세포이 용병으로 구성된 그 쪽 4개 연대는 아직 언덕 능선에 가려져서 대포의 포격으로부터는 안전한 사각지대에 있었고, 오록 대령의 초계병력과 제74 연대는 계곡 북쪽의 숲 속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하니스 대령의 스코틀랜드 연대가 가장 먼저 언덕 능선을 넘을 것이고, 적어도 한순간은 전체 적 포병대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것이었다. 몇몇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의 별칭 : 역주)는 마치 이왕 맞을 매를 빨리 맞겠다는 듯이 서두르고 있었다.


"천천히 !" 하니스 대령이 고함을 질렀다.


"이게 뭐 술집을 향한 달음박질인 줄 알아 ?  이 빌어먹을 놈들아 !"


엘시.  갑자기 샤프의 머리 속에 자기가 양조장 골목에서 도망친 이후 숨어들었던 웨더비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왜 그 여자 이름이 기억나지 ? 그리고는 그 술집 내부의 광경이 떠올랐다.


'겨울비에 젖은 남자들의 코트에서 김이 올라오고, 엘시를 비롯한 여급들이 쟁반 위에 에일을 나르는 동안, 벽난로에서는 불이 타닥 소리를 내고 있겠지. 눈이 먼 목동은 술에 취했고, 개들이 식탁 밑에서 자고 있는 그 때, 내가 장교의 장식띠를 매고 칼을 찬 모습으로 그 검댕투성이 술집으로 걸어들어가는거야'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샤프는 요크셔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렸고, 그 사이에 제778 연대는 웰슬리 장군의 참모진을 오른쪽에 끼고, 적 포병대의 코 앞의 평지로 올라섰다.


샤프가 우선 놀란 점은 적 포병대가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저지대를 통과하는 동안, 제778 연대는 적 포병대로부터 150보 전방까지 접근해 있었다. 샤프가 두번째로 놀란 것은, 인도군이 정말 멋지게 정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적 포병대는 마치 검열을 받듯이 정열해 있었고, 그 뒤로는 인도 마라타 연합군의 연대들이 4줄의 밀집 대형으로 깃발 아래 정렬해 있었다.  샤프가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긴 모양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멋진 적군의 대형이 한꺼번에 모두 포연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 포연은 물결치듯이 밀려나왔는데, 그 속에서 불과 몇 야드 간격으로 포화의 번쩍임이 보였다. 쏟아져 나오는 포연 바로 앞의 곡식들이 포화의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는 동안, 무거운 대포알들이 하이랜더들의 대오를 찢어놓으며 날아왔다.


사방에서 피가 튀었고, 박살이 난 병사들이 대살육 속에서 쓰러지거나 뒤로 휩쓸려 날아갔다. 어디선가 병사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백파이프 연주병 하나가 다리가 날아간 채 쓰러진 병사에게 악기를 내던지고 달려갔다. 몇 야드 간격마다 죽거나 죽어가는 병사들이 뒤엉켜 쓰러져서, 전체 대열 중 어디를 대포알이 휩쓸고 지나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젊은 장교가 놀라서 눈을 뒤집고 머리를 흔드는 자기의 말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니스 대령은 자기 앞에 창자가 터져나온 채 쓰러져 있는 병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 말을 그 옆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사관들은 대열에 빈틈이 생긴 것이 마치 하이랜더들의 잘못이라는 듯이 화를 내며 곳곳에 생겨난 간격을 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웰슬리 장군은 옆을 보며 바클리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샤프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샤프는 적의 포격으로 자기의 귀가 멍멍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웰슬리의 예비마인 디오메드가 샤프의 손아귀로부터 고삐를 당기며 옆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샤프는 그 회색말을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겨야 했다.  피 위로는 온통 파리떼가 들끓었다. 한 하이랜더가 자기를 놔두고 행진해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엄청난 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병사는 무릎과 팔꿈치를 땅에 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상처는 전혀 없어 보였지만, 샤프를 한번 쳐다보면서 마지막으로 욕 한마디를 지껄이고는 푹 쓰러져 버렸다.


병사들의 배에서 터져 흘러나온 퍼런 창자 위로 더 많은 파리떼가 모여들었다. 다른 병사 하나는 머스킷 소총을 멜빵으로 질질 끌면서 관목 그루터기 사이를 기어갔다.


"이제 침착하게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서두르지마 이 자식들아 !  지금 달리기 경주하는 줄 알아 ?  니들 에미를 생각해 !"


"에미 ?"  블래키스턴 소령이 물었다.


"간격을 메워라 !" 하사관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 !"


마라타 포병대는 미친 듯이 재장전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보통의 쇠로 된 포탄이 아니고 속에 소총탄이 가득 든 깡통으로 된 산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연이 산들바람에 걷히고 있었고, 샤프의 눈에 포구를 쑤시며 화약을 운반하는 적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른 적병들은 아까의 포격으로 뒤로 밀려갔던 포신들을 지렛대로 다시 스코틀랜드 연대에게 조준하고 있었다.


웰슬리는 그의 숫말이 하이랜더들의 대열 앞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포이 용병들은 아직 언덕 능선 밑의 사각지대에 있었고, 우익은 북쪽의 숲과 구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순간에는 하니스 대령의 하이랜더들 600명이 10만 명의 인도 마라타 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상자와 전사자를 뒤에 내버려두고 자기들의 죽음을 장전한 채로 기다리는 적의 대포를 향해 탁 트인 벌판을 걸어갔다.  백파이프 연주병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그 사나운 음악이 하이랜더들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했다. 그들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완벽한 대오를 이루고 있었고 아주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인들에 대해 노래를 만든게 거저 만든게 아니군' 하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니 캠벨 대위가 아까의 전령 임무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캠벨 대위는 아메드누거 성벽 위에 맨 처음 기어오른 공으로 1계급 특진하며 웰슬리에게 발탁된 바로 그 실존 인물 캠벨 대위입니다.  : 역주)


대위는 샤프를 보고 씩 웃었다.


"난 내가 너무 늦었나 싶었지."


"시간에 딱 맞게 오셨습니다, 대위님. 정말 딱이요." 샤프는 말했다. 그리고는 황당해했다. '죽을 시간에 딱 ?'


캠벨은 웰슬리 장군에게 다가가서 보고를 했다.  장군은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앞쪽의 대포들이 불을 뿜었는데, 이번에는 아까처럼 일제히 쏘지 않고 재장전을 마친 순서대로 개별적으로 발사했다.


각각의 포성은 끔찍하게 커서 귀를 멍멍하게 울렸고, 산탄은 스코틀랜드군의 바로 앞에서 수많은 먼지 연기와 함께 튀어올라 병사들을 뒤로 낚아채듯 휩쓸어버렸다.


각각의 포탄은 속에 둥근 머스킷 소총탄이나 쇳조각, 돌조각이 가득 든 금속 깡통이었고, 포구를 떠나자마자 깡통이 찢어지며 그 내용물을 마치 거대한 산탄총처럼 쏟아붓는 것이었다.


차례차례 또 다른 대포가 불을 뿜었고, 각각의 포격이 대지를 강타하며 각각에게 할당된 스코틀랜드인을 저승으로 보내거나 혹은 고향 교구에게 부담이 될 불구자로 만들거나, 나중에 군의관의 무자비한 손에 고통을 당하도록 만들었다.  북치는 소년들은, 비록 하나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또 하나는 자기 북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아직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백파이프 연주병들은 적의 대군 속으로의 행진이 마치 뭔가 축하할 일인 것처럼 좀더 쾌활한 음악을 연주했고, 몇몇 하이랜더들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라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 !" 그는 큼직한 칼자루가 달린 클레이모어(스코틀랜드 식 대형 검)를 손에 들고 자기 병사들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가고 있었는데, 마치 병사들을 헤치고 말을 달려서 자기 연대를 박살내고 있는 적의 포병들에게 그 거대한 칼날을 들이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산탄에 곰가죽 모자가 날아갔는데, 그걸 쓰고 있던 병사는 멀쩡했다.


"이제 침착해라 !" 소령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라 !  간격을 메워 !"  하사관들이 외쳤다.


"대오의 간격을 메워라 !"


대오의 간격을 메우는 임무를 띤 상병들이 대열 뒤에서 바삐 움직이며 병사들을 좌우로 끌어다가 포탄이 휩쓸어간 자리를 메웠다. 이제 그 빈 자리를 더 넓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전의 보통 대포알은 한번에 한개 열의 병사를 날려버렸지만, 지금의 산탄은 네다섯 열의 병사를 한꺼번에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네 문의 대포가 불을 뿜더니 이어서 다섯 번째, 그리고는 나머지 전체 대포들이 연달아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샤프 주변의 공기는 거센 포탄이 일으키는 바람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하이랜더들의 대열은 그 폭풍 속에서 뒤틀리는 듯 했다.  그 뒤에 피를 흘리고, 토하고, 울부짖고, 동료 혹은 어머니를 부르는 병사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은 대오의 간격을 좁히며 굳건하게 계속 전진했다.  더 많은 대포들이 불을 뿜으며 적진을 포연으로 감쌌다.  샤프는 산탄이 연대의 병사들에게 날아와 꽂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병사들이 그렇게 하듯, 하이랜더 병사들은 개머리판이 사타구니를 가리도록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한방 한방의 포화로부터 수많은 머스킷 총탄이 쏟아져나와 병사들의 소총을 따닥 때리는 소리를 냈다.  이제 병사들의 대오는 처음보다 많이 짧아져 있었지만, 이제 적 대포가 뿜어낸 자욱한 포연의 가장자리까지 거의 도달했다.


"778 연대 !" 하니스 대령이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정지 !"


웰슬리 장군은 말의 고삐를 당겼다.  샤프가 오른쪽을 보니, 계곡으로부터 세포이 용병들이 한줄의 긴 붉은 선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선은 세포이들이 관목으로 가득찬 계곡을 통과하면서 조각조각 끊어져 있었다. 연이어 마라타 연합군의 북쪽 대오에서도 포격을 시작했고 세포이들의 대오는 더욱 더 조각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좌측의 스코틀랜드인들처럼, 세포이들도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했다.





(당시 영국군 정규병보다 세포이가 좋았던 점은 2가지 -  채찍질 체벌이 없었다는 것과 반바지)




"조준 !" 하니스의 구령 속에는 약간의 흥분감이 섞여있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머스킷 소총을 들어올려 조준했다. 이제 그들은 적 포병들로부터 겨우 60야드(54m) 떨어진 상태였고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킷 소총도 그 정도의 거리에서는 상당히 정확했다.


"높게 쏘지 마라, 이 개새끼들아 !" 하니스가 경고했다.


"높게 쏘는 놈들은 한놈 한놈 채찍질을 할거다.  발사 !"


소총의 일제사격 소리는 거대한 대포 소리에 비하면 빈약하게 들렸지만 그 소리가 주는 안도감은 대단했고, 하이랜더들의 일제사격이 그루터기 너머를 휩쓰는 것을 보며 샤프는 하마트면 환호성을 올릴 뻔 했다.  적 포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몇몇은 죽었을테지만, 나머지는 그저 큰 포가 뒤에 숨어있었다.


"재장전 !" 하니스가 소리쳤다.


"우물쭈물하지마라 !  재장전 !"


여기서 그동안 하이랜더들이 받았던 훈련이 그 성과를 발휘했다.  머스킷 소총은 재장전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물건이었고, 특히나 17인치(43cm)짜리 총검이 착검된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 삼각형 칼날은 총구에 탄약을 밀대로 밀어넣는 것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에, 몇몇 병사들은 총검을 떼내어 재장전을 쉽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은 고향에서 몇주간 힘들게 훈련받은 그대로, 신속하게 재장전했다.  탄약을 넣고, 밀대로 밀어넣고, 뇌관 화약을 집어넣고, 다시 밀대를 총신 홈에 집어넣었다. 총검을 떼어냈던 병사들은 서둘러 다시 착검했고, 다시 세워총 자세로 돌아갔다.


"지금 장전한 총알은 적 보병을 위해 남겨둔다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이제 전진이다 ! 저 이교도 개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일 학살이 뭔지 보여줘라 !"


이건 복수였다.  이건 그 동안의 분노의 고삐를 풀어준 것이었다.  적 대포는 아직 재장전되지 않은 상태였고, 적 포병대는 일제 사격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포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백병전 거리에 들어올때까지 재장전할 시간이 없을 것이었다.  몇몇 적 포병은 도주했다.  샤프의 눈에 말을 탄 마라타 장교 하나가 도주하는 포병들을 잡아들여 칼등으로 다시 원위치로 몰고 가는 것이 보였다.  또한,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색칠이 된 거대한 대포를 두 명의 적 포병이 장전을 끝내고 옆으로 돌아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가 받게 될 것에 대해서도... (뒤에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하소서 - 당시 일제 사격을 받기 전 병사들이 외우는 일종의 기도 : 역주)" 블래키스턴 소령이 중얼거렸다.  이 공병 장교도 적 포병이 재장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포구로부터 몰아쳐닥친 포연이 장군 일행을 삼켜버렸다. 한순간 샤프는 희미한 연기 속에서 웰슬리 장군의 키 큰 윤곽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보이는 것은 피바다 속에 쓰러지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산탄 조각들이 샤프 주변을 휩쓸고 나서 한 박자 뒤에 그 포격의 열기와 폭풍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는 웰슬리 장군의 바로 뒤에 있었으므로 포격을 정통으로 맞은 것은 바로 웰슬리였다.


실은 장군이 아니고 그의 말이었다.  그 종마는 십여발의 산탄을 맞았지만 웰슬리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었다.  그 큰 말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다.  말이 쓰러지기 전에 웰슬리가 발을 등자에서 빼면서 안장에 손을 대고 몸을 빼내는 것이 샤프의 눈에 들어왔다.  웰슬리는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자, 종마의 몸무게가 그의 다리 위를 덮치기 전에 비틀거리며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캠벨 대위가 장군 쪽을 돌아다 보았지만, 장군은 그에게 그대로 전진하라고 손짓을 했다.  샤프는 타고있는 암말에 박차를 가하며 벨트에서 디오메드의 고삐를 풀어내었다.  먼저 죽은 말에게서 안장을 벗겨야 하나 ?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 샤프는 먼저 말에서 내렸다.  하지만 죽은 종마에게서 안장을 벗겨내는 동안 암말과 디오메드는 어떻게 하지 ? 




머스켓 소총의 경제학

나폴레옹의 시대 2018.06.07 06:30 Posted by nasica



요즘 미국에서 무차별 총격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등장하는 AR15 소총, 즉 M4 소총의 민수용 반자동 버전 가격을 찾아보니 대략 600~700불 정도 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60~70만원 하는 셈이지요.  비싸게 느껴지시나요 ? 최저임금으로 일할 때 대략 12일 정도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니 엄청나게 비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10kg짜리 어른 돼지 1마리의 가격이 대략 45만원 정도한다니까, 돼지 1.5마리 정도의 가격입니다.  하지만 원래 무기라는 것은 이 정도보다는 훨씬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적어도 산업 혁명 이전까지는 말이지요.  일리아드(Illiad)에서 트로이의 편을 든 전쟁의 신 아레스가 그리스군 장수를 때려죽인 뒤 하는 일이 쓰러진 적의 갑옷과 투구를 벗겨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비싼 전리품이거든요.  중세 시절까지도 전투가 끝난 전쟁터는 값비싼 전리품으로 가득찬 보물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생산력이 한심한 수준이던 시절에는 갑옷과 검, 투구 등의 무기는 물론이고 그 밑에 입는 평범한 덧옷과 장화 등이 모두 팔 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이 막 일어나던 시점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일반 머스켓 소총 가격은 어땠을까요 ?





(제 눈엔 무척 비싸 보입니다만....)




여기 영수증이 하나 있습니다.  181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3정의 머스켓 소총을 조셉 헨리( Joseph Henry)라는 업자로부터 도시(Dr. Dorsey)와 그라프(Mr. Graff)라는 양반들(어쩌면 Dr. Dorsey & Mr. Graff가 사람이 아니라 가게 이름일지도...)이 사들이면서 받은 영수증입니다.  여기에는 부품을 완전히 다 갖춘 머스켓 3정의 가격이 한정에 15달러, 총 45달러라고 되어 있습니다.





(맙소사... 경매에 나온 이 영수증 가격이 무려 450달러입니다.  여러분도 영수증 챙겨뒀다 후손에게 물려주시길...)




1814년 기준이니까, 당연히 15달러라는 가격은 지금의 15달러, 즉 1만8천원은 아닐 겁니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필라델피아가 위치한 지역인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당시 1달러의 가치가 영국돈 90펜스, 즉 7실링 6펜스(1실링=12펜스) 였다고 하네요.  전에 한번 계산해드렸듯이, 당시 영국돈 1실링으로는 금을 0.31g 정도 살 수 있었습니다.  금의 가치는 불변이라고 가정하면, 당시 영국돈 1실링은 현재 우리나라 원화로는 (1g의 금에 4만2천원라고 하면) 약 1만3천원 정도가 됩니다.  


자, 다시 계산하면, 1814년 미국에서 머스켓 1정을 사는데는 15달러가 들었고, 이를 당시 영국돈으로 계산하면 1350펜스 (112실링 6펜스)이며, 다시 현재의 우리나라 원화로 계산하면 약 146만2천5백원이 됩니다.   현재의 AR15 소총과 비슷할 때 약 2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군요.  그렇지만 이런 가격 해석은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 146만원이야 소득 수준 대비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닙니다만, 당시 영국에서는 숙련공 하루 일당이 4실링에 불과했고, 빵 4파운드짜리 덩어리 하나에 6 펜스 정도의 가격이었기 때문에, 머스켓 한정에 112.5 실링이라면 어지간한 가정의 1달 소득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습니다.  





(지난번 posting에서 보신 그래프입니다.  원본은 http://www.johnhearfield.com/History/Breadt.htm )




게다가, 이런 가격은 영국이나 미국의 공업화된 지역에서나 통용되던 가격이었습니다.  머스켓 소총이 바다넘고 산을 건너 당시 유럽 문명이 미치지 않은 곳에 도착할 때면 그 가격은 훨씬 비싸졌겠지요.  하기사 당시의 목조 범선으로 화물을 수송하려면 그 수송비며 보험료 등만 해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이런 예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습니다.  남태평양 피지 군도에 속해있는 마마누카(Mamanuka) 섬에는 머스켓 만(Musket Cove)라는 멋진 해안이 있습니다.  이 곳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땅의 원주민이, 유럽인에게 실제로 머스켓 소총 한자루를 받고 이 해변가를 팔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원주민은 이웃한 다른 원주민과 싸우기 위해 총이 필요했다고 하네요.  참고로 지금은 이 해변가는 어떤 돈많은 호주인 사업가의 소유지라고 합니다.





(피지의 머스켓 코브... 총 한 자루와 맞바꾼 경치입니다.)




만약 저 피지섬 원주민이 이웃 주민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  뭐 햇빛 쬐고 쉬는 것 이외에는 별로 쓸모 없는 땅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동산을 이상한 천둥 막대기 한개를 받고 팔아넘겼을까요 ?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히 모든 상품의 가치는 그 수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머스켓 소총의 가격도 전쟁이나 분쟁이 일어날 경우 높아졌고, 평화로운 시기에는 떨어졌습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혓바닥 길게 내빼는 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영국인들을 당혹케 할 정도의 육체적 강인함과 호전성을 띤 용맹한 부족이었습니다.) 




뉴질랜드의 용감하고 호전적인 마오리족도 유럽인들과 접하면서 머스켓 소총의 위력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이들도 머스켓 소총을 구입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는데, 이들은 백인들에게 주로 감자와 돼지를 팔고 머스켓 소총을 얻었습니다.  원래 마오리족의 주식은 쿠마라(kumara)라는 일종의 고구마였는데, 유럽인들이 전해준 감자가 훨씬 재배에 쉬웠고 재배량도 많았기 때문에, '용감하고 호전적인' 마오리족 남자들이 농사일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이들은 노예들에게 경작을 시키고 자신들은 다른 노예를 잡으러 나가는 것이 더 수지맞는 장사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노예를 잡자면 머스켓 소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자면 감자를 더 많이 키워야 했고, 그러자면 더 많은 노예들이 필요하게 되는, 일종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던 것이지요.  이로 인해 발생한 약 500회 정도의 분쟁을 뉴질랜드 역사에서는 '머스켓 전쟁' (일부에서는 '감자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전쟁은 1818년~1820년대 초반까지 계속 되었는데요, 이 기간 동안 머스켓 소총의 수요가 폭발하면서 그 가격도 껑충 뛰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지요.   머스켓 전쟁 직전에는 돼지 8 마리 또는 감자 150 바구니에 살 수 있던 머스켓 소총 가격이 전쟁이 격화되면서 3배 넘게 뛰었다가, 결국 다시 원래 가격을 되찾습니다. 





(AR15 소총 한 정 가격이 돼지 1.5마리 정도라는 거, 이 그림을 보면 대단히 저렴한 가격입니다...)




마오리족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도 머스켓 소총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골치를 썩혔습니다.  나폴레옹은 자칭 100만이라는 그랑다르메(Grand Armee)를 충분히 무장, 재보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백만 정의 머스켓 비축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는 결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를 침공할 때도 70만 수준이었던 그의 군대를 위해 필요한 머스켓 소총 숫자가 3백만 정이라는 것은 확실히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만, 당시 현실적으로 나폴레옹은 식량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개인 화기 면에서도 병참이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그의 군대가 가장 절정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전에도, 제1선 부대들은 물론 완전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으나, 프랑스 국내의 예비대들은 제대로 된 무장을 갖추고 있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제1선 부대들도, 전투를 거치면서 계속 무기를 상실했습니다.  소위 말해서 전투 손실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그나마 압도적으로 승전했다고 하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만도 무려 1만2천정의 머스켓 소총이 파손되거나 분실되어, 새로 보충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기본 화기 부족은 적국, 그러니까 프러시아나 오스트리아의 무기고를 점령하고 압수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이들 국가로부터 노획한 대포들로 보병대대에도 자체 포병대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808년부터 시작된 스페인 전쟁은 그야말로 군수품의 블랙홀로 작용했습니다.  병력 뿐만 아니라, 무수한 군수물자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투입되었고, 거기서 아무 소득 없이 스러져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1809년 전쟁성 장관인 클라르크(Clarke)에게 1810년 7월 초까지 20만 정의 머스켓을 신규로 장만하도록 명령을 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산업 능력으로, 1년도 안되어 20만 정이라는 머스켓 생산량을 맞출 수는 없었지요.





(18세기 초기부터 프랑스 육군의 표준 소총이자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군들에게 대량으로 보급되었던 머스켓의 걸작, 샤를르빌르(Charleville) 머스켓)




이런 군수품 부족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의 참담한 실패로 파국을 맞이합니다.  나폴레옹은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거의 20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는데, 이때 긁어모은 신병들에게 쥐어준 머스켓 소총은 프랑스 육군의 표준 지급품인 0.69 인치 구경의 샤를르빌르(Charleville) 머스켓 소총이 아니라 급히 긁어모은 온갖 비표준 구경의 독일제 및 민간용, 구식 머스켓 소총들이었습니다.  특히,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전선이 프랑스 국내로 급격히 후퇴하는 바람에, 주요 보급창이었던 비스툴라(Vistula) 및 엘베(Elbe) 강가의 요새들을 상실했고, 그 결과 더더욱 무기 보급 사정이 열악해졌습니다.  





(나폴레옹의 패망을 사실상 결정지은 당대 최고 규모의 대전투, 라이프치히 전투)




1813년 11월,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 방어전을 위해 의회에 새로 30만 명의 신병을 요청했지만 (물론 이 정도의 병력은 결코 모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무기고는 거의 텅 비어있어 이들에게 쥐여줄 머스켓 소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전쟁성 장관인 클라르크에세 보낸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프랑스 포병대가 (별 쓸모도 없이) 많이 보유하고 있던 창(pike)을 회수하여 파리 인근의 민병대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어쩔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1813년 11월, 마침내 모든 독일 및 이탈리아 동맹국 병사들의 무장 해제를 지시하게 됩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외국 병사들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아, 좀 더 믿을 수 있는 프랑스인 신병들을 무장시키자는 것이었지요.  다만, 이때 폴란드군은 무장 해제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폴란드인들의 충성심 (또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증오심)은 믿을만 했었던 것이지요.





(우리 폴란드인들은 우리의 생명과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의 운명을 나폴레옹에게 걸었다 !)




나폴레옹 전쟁 당시, 병사들은 언제나 약탈을 했습니다.  적의 도시나 마을을 점령했을 때는 물론, 전투가 끝난 뒤 쓰러진 적군 병사들의 시체가 주요 약탈 대상이었지요.  (때로는 쓰러진 아군 병사들도 약탈의 대상이었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물론 금화나 은화같은 돈이었고, 그 외에는 적의 장교들이 가진 권총이나 검이 인기 품목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적의 머스켓 소총은 전혀 인기 품목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전투가 끝난 자리에는 수많은 머스켓 소총이 널려 있었으니까, 당연히 공급 과잉으로 값어치가 별로 없었지요.  그 외에도, 머스켓 소총은 무거운 것에 비해, 위에서 보았듯이 별로 비싼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한정에 6파운드도 하지 않는 머스켓 소총에 비해, 장교들의 검은 무척이나 인기가 있었습니다.  전에 인용했던 글이지만 다시 한번 보시지요.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장교가 되는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네, 샤프."  맥캔들리스 대령이 말했다.


"첫번째 방법은 장교직을 돈주고 살 수 있지.  소위 계급의 가격은 400파운드야.  하지만 소위로서 복장과 장비를 갖추는데 또 150파운드가 들지.  하지만 그 정도 돈으로는 겨우 쓸만한 말과 4기니짜리 검, 그리고 중고품 제복을 살 수 있을 뿐이야.  게다가 장교 식당의 식대를 대려면 따로 사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네.  소위의 연봉은 약 95파운드 정도인데, 거기서 비용으로 일부를 떼가고 소득세라는 명목으로 더 많이 얼마를 떼가지.  자네 소득세라고 들어보았나, 샤프 ?"


--------------------------------------------------------------------------------------------


저 위에 나오는 품목은 장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물품 목록입니다.  즉 싸구려 검일지라도, 장교가 들고 다닐만 한 검은 최소 4기니 (4기니는 84실링 = 약 100만원) 정도는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돈 많은 장교가 들고다니는 명검은 몇백 기니짜리였습니다.  





A Ship of the Line by C.S. Forester (배경: 1810년, 영국) -------------------------------


(혼블로워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유부녀 바바라와 그 남편이자 자기 상관인 레이튼 제독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몸단장에 신경을 쓰지만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좌절합니다.)


혼블로워의 구두 버클은 금이 아닌 그저 모조품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신고 올 진짜 금으로 된 버클과 대조되어 자신의 버클이 놋쇠로 된 것이라는 것이 두드러져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가 이 물건을 살 때는 금전 사정이 안 좋을 때였고, 감히 금으로 된 구두 버클에 20기니를 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구두 쪽에 이목을 끌 만한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애국자 기금이 자신이 나티비다드 호를 격침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수여하기로 한 100기니 짜리 검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는 그가 아직 중위 계급이었을 때 카스틸라 호를 나포한 공로로 그에게 수여되었던 50기니 짜리 검을 차고 가야 했다.


---------------------------------------------------------------------------------------------


이렇게 검이라는 것은, 머스켓보다도 위력은 약했을지 몰라도 훨씬 더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병사들에게 약탈품으로서 아주 인기가 높았던 것이지요.  





(아무리 나폴레옹의 척탄 근위대라고 해도, 머스켓을 든 일개 병사가 장교의 상징인 검을 차고 있네요 ?  어찌된 일일까요 ?)




그런 점 때문이었을까요 ?  검은 약탈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보조 무장으로서도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사실 머스켓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보조 무장은 당연히 총검이였으므로, 병사들이 검을 패용하고 다닌다고 해도 괜한 장비 무게만 더 늘어날 뿐 전투력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일종의 신분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영국군 일반 보병들에게는 검이 지급되지 않았지만, 프랑스군은 엘리트 부대인 척탄병 중대에게는 짧은 검(short saber)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 사이의 경쟁심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유격병(voltigeur) 부대와 엽병(chasseur) 부대에게도 이런 검이 지급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검은 특히 사열을 할 때나 주둔지 근처 마을에서 어슬렁거릴 때는 으스대기 위해서 꼭 패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실제 전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전투를 하기 위해 나갈 때는 이 짧은 검은 주둔지에 남겨 두고 갔다고 합니다.  이런 비효율성 때문에, 나폴레옹은 1807년에 유격병이나 엽병들은 검을 휴대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명령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1815년 워털루 전투를 앞두고 다시 한번 이 명령을 내려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도 그 명령이 제대로 지켜졌는지는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