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Cyr2 쿨름 전투 에필로그 - 다시 트라헨베르크 흔히 쿨름 전투에 대해, 방담이 무분별하게 연합군의 퇴각을 추격하다 벌어진 패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당시 드레스덴에 있었던 근위포병대의 노엘(Jean-Nicolas-Auguste Noël) 대령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 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방담 장군에게만 물어야 할까? 사람들은 원래 그가 산 속에 남아 프로이센군의 후퇴를 저지해야 했는데, 워낙 성격이 과감했던 방담이 러시아군을 추격하여 산 밑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이런 패전을 겪었다고들 했다. 또는 그게 아니라, 방담이 토플리츠(Toplitz)까지 추격전을 벌였던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비난을 건성으로 추격에 나섰던 구비옹 생시르(.. 2024. 6. 24. 드레스덴 전투 (1) - 하늘과 땅과 사람 슈바르첸베르크가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거쳐 드레스덴을 들이친 것은 분명히 나폴레옹의 의표를 찌른 멋진 작전이었습니다. 아무리 나폴레옹이 다 계산 안에 있던 움직임일 뿐이라며 침착한 척 했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당시 전황은 마치 새끼곰을 지키는 어미곰 한 마리를 사냥개 세 마리가 둘러싸고 위협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 새끼곰이 바로 드레스덴이었습니다. 드레스덴은 작센 왕국의 수도라는 상징성과 교통의 요지라는 점 외에도 그랑다르메의 온갖 군수품이 쌓인 보급 중심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미곰이 동쪽 사냥개인 블뤼허를 거세게 쫓아내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쪽 사냥개가 새끼곰의 뒷다리를 덥썩 물고 끌고가려는 상황이 8월 22일의 상황이었습니다.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넘은 보헤미아 방면군은 거.. 2024. 2.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