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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tuzov5

쿠투조프의 마성적 매력 쿠투조프가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 알렉산드르로부터 정식으로 야전군 총사령관의 임명장을 받은 것은 1812년 8월 20일이었습니다만, 하루가 급한 전시 상황에서도 쿠투조프는 당장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임명장을 받고 나와서 한 최초의 일은 카잔 성당(Kazanskiy Kafedralniy Sobor, the Cathedral of Our Lady of Kazan)에 가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제복 코트를 벗고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의 성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참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음 날도 출발하지 않고, 이번에는 와이프까지 데리고 상트 블라디미르(St. Vladimir) 성당에 가서 역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임명장을 받은.. 2020. 7. 6.
행운(?)의 쿠투조프 (3) 이하는 랑쥬롱이 그의 비망록에 남겨놓은 쿠투조프에 대한 평가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만, 아마 사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투조프처럼 기백은 넘치지만 별 개성이 없는 인물이 드물 것이다. 수완과 교활함의 그렇게 조합됨과 동시에, 실질적인 재주가 보잘 것 없으면서 거기에 도덕성까지 결여된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억력이 아주 비상하고 배운 것도 많으면서,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의 대화를 그토록 재치있게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었고,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 온화함은 조금 가식적인 것이었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쿠투조프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들이었다. 그는 화가 났거나 상대방이 .. 2020. 6. 29.
행운(?)의 쿠투조프 (2) 1788년 시작된 전쟁에서, 쿠투조프는 포템킨(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uricheski) 대공의 지휘 하에 흑해 연안의 오스만 투르크 요새 오차코프(Ochakov)를 공격 중이었습니다. 수보로프 장군은 '총알은 빗나간다, 총검은 그러지 않는다' 라는 명언처럼 보병 돌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에 비해 포템킨 대공은 원거리에서 포위한 채 포격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병사들은 당장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장기간 포위 작전을 하다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온갖 질병이 유행하며 병사들이 픽픽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템킨 대공입니다. 그는 러시아가 새로 정복한 흑해 연안 일대 전체의 주지사로 있었는데, 그가 당시 건설.. 2020. 6. 22.
행운(?)의 쿠투조프 (1) 알렉산드르가 쿠투조프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오른쪽 눈을 매우 싫어했지요. 심하게 뒤틀린 사팔뜨기 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의 오른쪽 눈은 실명한 상태라는 말도 있고, 양쪽 눈이 다 잘 보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쿠투조프를 정말 영웅적인 현인으로 묘사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쿠투조프의 오른쪽 눈 실명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다소 애매하게 나옵니다. (가만 보면 쿠투조프의 초상화는 대부분 얼굴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오른쪽 눈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 검열 이후 장교들의 쾌활한 분위기는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중대는 기분 좋게 행진했다. 사방에서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렸다. ".. 2020. 6. 15.
두 도시의 분위기 - 쿠투조프의 등장 전방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나폴레옹과 바클레이 등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동안, 후방의 러시아인들도 적어도 마음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황실 가족들이 모여 살던 서구적 도시 상트 페체르부르크는 상류층이나 서민층이나 모두 '이 전쟁은 이미 진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주도적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는데 성공하고 8월 초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돌아온 알렉산드르가 보니, 심지어 자기 모친인 황태후조차도 각종 귀중품을 이미 도시 밖으로 빼돌려 놓고 자신도 언제든 피난갈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귀족 가문들도 모두 말과 마차를 즉시 출발 가능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트 페체르부르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적어도.. 2020.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