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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isch3

휴전 (6) -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훗날인 1814년, 나폴레옹이 폐위되고 아직 엘바 섬에 있을 무렵, 러시아군의 랑제론은 프랑스 파리에서 베르티에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베르티에는 이 때의 휴전협정에 대해 '그 휴전협정은 모조리 나폴레옹의 잘못이었다, 나폴레옹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1812년 이후 나폴레옹은 결코 자신들과 함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싸우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나폴레옹이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휴전협정을 맺은 것은 나폴레옹 혼자의 결정이었고 그로 인한 결과는 모조리 나폴레옹의 잘못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당시 나폴레옹이 휴전을 제의할 때 나폴레옹의 부하들 중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고 그건 베르티에 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전협정이 .. 2023. 8. 7.
정의 같은 소리하고 있네 - 마침내 맺은 칼리쉬 (Kalisch) 조약 레이니에의 군단이 글로가우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알렉산드르의 긴급 요청에 대해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쓴 편지의 내용은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긴 문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았습니다. 1) 슐레지엔은 나폴레옹이 인정한 중립지대이다. 레이니에에게도 그 중립 존중과 함께 글로가우에 들어가지 말라고 요청했으니, 러시아군도 슐레지엔의 중립을 존중해주시길 바란다. 2)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에게 러시아와 싸워줄 것을 요청했고, 국왕인 나는 그러기 위한 조건으로 9,800만 프랑과 영토 회복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했다. 3)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다 하는 것은 내가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하더라도 정당성은 내게 있다는 것과 내가 러시아 측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다. 알렉산드르는 이 한심한 편지.. 2022. 4. 25.
강들과 요새들 - 러시아군의 고민 1813년 1월, 그랑다르메는 요크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의 배신으로 인해 속절없는 후퇴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지장이었으므로 후방의 방어도 공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제1차 방어선은 당연히 폴란드 한 가운데를 흐르는 비스와 강이었습니다. 비스와 강에는 토룬(Torun), 모들린(Modlin) 등 바르샤바부터 단치히까지 일련의 견고한 요새들이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런 요새들에 수비대를 배치해두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군이 워낙 크게 궤멸된 지라, 긴 비스와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박힌 요새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고, 뮈라는 속절없이 비스와 방어선을 버리고 일단 포젠(Posen, 폴란드어로는 포즈나니 Poznań)으로 후퇴했습니다. (오데르 강변이나 비스와 강변의 많은 .. 2022.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