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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icolas-Auguste Noël2

쿨름 전투 에필로그 - 다시 트라헨베르크 흔히 쿨름 전투에 대해, 방담이 무분별하게 연합군의 퇴각을 추격하다 벌어진 패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당시 드레스덴에 있었던 근위포병대의 노엘(Jean-Nicolas-Auguste Noël) 대령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 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방담 장군에게만 물어야 할까?  사람들은 원래 그가 산 속에 남아 프로이센군의 후퇴를 저지해야 했는데, 워낙 성격이 과감했던 방담이 러시아군을 추격하여 산 밑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이런 패전을 겪었다고들 했다.  또는 그게 아니라, 방담이 토플리츠(Toplitz)까지 추격전을 벌였던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비난을 건성으로 추격에 나섰던 구비옹 생시르(.. 2024. 6. 24.
드레스덴 전투 (2) - "포위해버리죠 뭐" 8월 23일, 나폴레옹은 분명히 시간, 공간과 병력의 모든 면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었습니다.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를 묘책을 짜내자면, 먼저 나폴레옹 같은 군사적 천재가 어쩌다 일을 이렇게 망쳐 놓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폴레옹은 애초에 이 모든 상황에 대해 꽤 든든히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슐레지엔으로 블뤼허를 치러 가면서 이렇게 장담한 바가 있었습니다. "만약 적군이 드레스덴으로 진군해온다면, 드레스덴으로부터 방담은 2일 거리에, 빅토르는 3일 거리에, 그리고 내 근위 사단들은 4일 거리에 있으니, 이 모두가 드레스덴의 제14군단을 도우러 달려올 것이다." 기억하시겠지만, 빅토르의 제2군단 약 2만은 나폴레옹이 원래 보헤미아 방면군의 침투로로 예상했던 .. 2024. 2. 26.